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24화 (224/296)

224화 전설의 자격 01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세웠기 때문일까?

김민의 승리 투수 인터뷰는 다른 날보다 길었다.

지터는 그의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복도에 서 있었다.

‘늦는군.’

“혹시 지터 선수인가요?”

아르바이트 스텝으로 보이는 소녀의 물음에 지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사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경기가 끝난 후, 소녀는 퇴근을 재촉하던 길에 지터를 만났다.

미스터 뉴욕.

전설적인 바람둥이.

하지만 여자들은 그런 지터를 좋아했다.

지터가 펜과 종이를 받으며 물었다.

“이름이?”

“엘리스. 엘이라고 적어 주셔도 괜찮아요.”

지터가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엘.”

그는 빠르게 펜을 휘둘렀다.

“여기 됐습니다!”

지터가 환한 미소와 함께 사인을 건넨 순간 김민과 이반 감독이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지터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왔군.’

그는 펜을 소녀에게 넘기곤 김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김민은 자신을 바라보는 지터를 확인하곤 이반 감독에게 말했다.

“손님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이반 감독 역시 지터를 알아보았다.

“그런 것 같군.”

그는 슬쩍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터와 김민뿐.

김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렸나?”

“조금.”

“식사라도 할까?”

지터가 미간을 좁혔다.

“킴, 난 네 기록을 축하하기 위해 지금까지 기다린 게 아니야.”

“그런 것 같긴 했어. 그래, 여기서 날 기다린 이유가 뭐야?”

지터가 말했다.

“이제 그만뒀으면 좋겠어.”

무엇을 그만둔단 말인가?

김민이 말끝을 살짝 올렸다.

“설마 야구를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겠지? 그건 무리야.”

“킴, 난 네가 뭘 하고 있는지 다 알아.”

“…….”

김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흐흠,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터가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착각은 무슨…… 탬파베이가 약물에 절어 있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김민은 이제 그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자네는 오늘 승리가 스테로이드로 만들어진 승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지터가 얼굴을 굳혔다.

“그럼 아닌가?”

“지터, 스테로이드를 쓰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는 건가?”

“알고 있지. 부풀어 오르는 근육, 탄탄해지는 상체, 그리고 탈모와 그곳에 악 영향이…….”

김민이 모자를 벗으며 물었다.

“그 세 가지 모두 난 해당 사항이 없는 것 같은데? 아닌가?”

지터가 멈칫했다.

‘상체 근육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클레멘스나 무시나에 비하면 얇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빽빽한 머리카락은 탐스럽기까지 하다. 킴은 약물을 사용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대화의 주도권은 이제 김민에게 넘어왔다.

“후…… 마이너리그를 초토화시킨 괴물 루키도 아니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투수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서 리그를 휘어잡았으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하지만 난 절대 약물에 손을 대지 않았어.”

지터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다 그렇게 말하지. 난 무죄라고 말이야.”

김민이 오른손을 들었다.

“증거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보여 주지.”

지터는 김민의 오른팔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이것은!”

“공을 한계까지 던졌다는 뜻이지. 고작 100개도 던지지 않았는데 이런 꼴이 됐어. 어쩌면 다음 등판을 거를 지도 몰라.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것 치고는 우습지 않나?”

평균 이하의 한계 투구수.

낮은 체력.

김민은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투수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면이 많았다.

지터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럼 늘어난 구속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김민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투구 폼 교정, 하체 강화, 이상적인 밸런스. 이 세 가지면 1, 2마일 정도는 충분히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지터는 점점 말문이 막혔다. 자신도 모르게 말꼬리가 낮아졌다.

“킴은 몰라도 탬파베이의 다른 선수들은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고 있는 게 분명해.”

김민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우리 선수들이 약물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장담은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단언할 수 있어. 우리 팀에서 약물을 사용하고 있는 선수는 양키스보다 적어.”

“뭐라고?”

지터의 두 눈이 커졌다.

김민이 말했다.

“왜 그렇게 놀라지? 유격수로 50홈런을 치는 선수나 3년 동안 홈런 120개를 넘기는 선수가 흔히 나온다고 생각하는 건가?”

한 동안 스테로이드는 홈런과 동일어였다.

지터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망각하려 했다.

‘킴의 말이 맞다. 양키스에는 뛰어난 홈런 타자들이 즐비하다. 그들의 능력은 분명 과거에는 없던 것이다.’

김민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리 팀에는 양키스처럼 40, 50 홈런을 치는 타자가 없어. 가장 뛰어난 타자인 윌리엄도 1년에 30개 남짓 홈런을 칠뿐이지. 하지만 그의 재능은 다른 슈퍼스타들 못지않아. 만약 윌리엄이 약물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메리칸 리그 홈런 레이스가 바뀌었을 거야. 이것 하나는 내가 보장하지.”

지터는 김민을 다그치려다가 역으로 다그침을 당하고 있었다.

“지터,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지. 약물의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야. 길어도 2, 3년…… 아마 그쯤이면 끝나게 될 거야. 그러니 지금부터 그 다음 시대를 대비하라고.”

김민은 말을 마친 뒤 지터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잠깐!”

지터의 외침에 김민이 걸음을 멈췄다.

“또 궁금한 게 있나?”

지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브라이튼과 산체스 그리고 라이트, 탬파베이에는 유독 뛰어난 신인이 많아!”

김민이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뛰어난 신인과 기존 선수들의 폭발은 왕조를 향해 가는 팀의 공통점 아니었던가? 10년 전 양키스도 그랬을 텐데? 지터와 포사다, 그리고 오스번…… 모두 대단했지.”

지터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킴을 오해하고 있었다. 아니, 그를 비난하기 위해 누명을 씌웠다.’

김민은 이제 통로 끝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지터, 오늘 경기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건 빈말이 아니야. 양키스가 아니었다면 절대 이런 기록은 나오지 않았을 거야.”

그는 양키스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번트 없이 정면 승부.

이것은 양키스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터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킴. 미안하군. 널 의심하고 말았다.”

김민은 말없이 오른손을 흔들었다.

오늘 일은 신경 쓰지 않겠다.

그라운드에서 다시 만나자.

그의 손짓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킴!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같은 팀에서 뛰고 싶다!”

김민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목소리를 높였다.

“매년 같이 뛰고 있잖아. 올스타전에서.”

그의 말은 이것이 끝이었다.

탁.

문이 닫히면서 김민의 뒷모습이 사라졌다.

혼자 남은 지터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킴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괜찮은 친구다. 그런 친구를 의식한 나는 최악이군.’

자신을 책망하던 그는 순간 마음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 * *

주차장에 들어서자 한 사내가 지터를 향해 손을 들었다.

그는 바로 포사다였다.

“여기야.”

지터는 홀로 서 있는 포사다를 보며 생각했다.

‘구단 버스는 이미 떠났군.’

포사다가 말했다.

“30분 이상 널 기다려줄 수는 없다고. 다들 호텔로 갔어.”

“코치에게 말을 남겼어. 기다릴 필요는 없다고, 자네는 날 위해서 남은 건가?”

“맞아.”

“택시를 타면 되는 것을…….”

포사다가 오른쪽의 포드 자동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택시 말고 드라이브 어때? 플로리다의 밤은 훌륭하다고.”

지터가 포사다와 함께 차에 올랐다.

“역사에 남을 패배 뒤에 드라이브라. 이것도 나쁘지 않겠군.”

포사다가 시동을 걸자 묵직한 배기음이 흘렀다.

“6기통인가?”

“아니, 8기통이지.”

악셀을 밟자 차가 빠르게 주차장을 벗어났다.

포사다는 말 그대로 드라이브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호텔이 아닌 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어땠어?”

“어땠냐니?”

“킴을 만나러 갔던 것 아니었어?”

지터가 손을 내저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경기 내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포사다는 지터를 말리지 못하면 메이저리그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

“예전부터 메이저리그에는 반칙을 사용하는 이들이 있어서. 코르크 배트, 스핏볼, 암페타민…… 같은 것들 말이야.”

지터가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기자에게 연락하는 것은 그만 둬.”

“그건 이미 포기했어.”

“뭐라고?”

포사다가 눈을 크게 떴다.

“킴에게 완전 당했지.”

“흠, 뭔가 일이 있었군.”

“킴은 내게 자신이 약물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했어.”

포사다가 차를 몰며 말했다.

“약물 검사라도 받은 건가?”

“녀석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어.”

“손끝이라고?”

“사실은 팔 전체가 떨리고 있었지.”

포사다가 미간을 좁혔다.

“부상인가?”

“본인은 한계 투구수를 넘겼기 때문이라고 하더군.”

“24개의 삼진을 잡기 위해서 한계를 넘겼다. 그 말이군.”

“한 차례 정도 등판을 거를 것이라고 하더군.”

포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에 만날 팀만 좋게 만들어줬군.”

“녀석은 약물을 하지 않았어. 약물을 한 녀석이 그렇게 스테미너가 부족할 리 없지.”

“약물을 하지 않고 그런 괴물 같은 성적을 내다니, 녀석의 정체는 대체 뭐야?”

지터가 짧게 말했다.

“천재 중에 천재.”

그것밖에는 설명할 말이 없었다.

“이야기가 잘 풀렸다니 다행이군.”

“오히려 킴에게 한 방 먹었어.”

“어떻게?”

“우리 팀에 스테로이드를 하는 선수가 더 많다고 하더군.”

포사다는 스테로이드를 손에 댄 선수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럴 지도 모르지.”

“50홈런을 치는 유격수 3년간 120홈런…… 모두 정상이 아니라고 하더군.”

“…….”

이번에는 포사다가 침묵에 빠졌다.

지터가 언급한 두 선수는 현재 양키스의 클린업을 형성하고 있었다.

포사다가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킴은 뭐라고 했어?”

“약물의 시대가 곧 끝난다고 하더군.”

“으음…….”

“킴은 그다음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어.”

포사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구단주가 되더니, 야구의 미래까지 보는 건가?”

“그런 모양이야. 녀석은 우리하고 완전히 다른 곳에서 야구를 하고 있어.”

“난 배리 본즈보다 킴이 더 괴물이라고 생각해.”

“같은 생각이야.”

두 사람은 바다를 향해 차를 달렸다.

* * *

“믿을 수 없는 피칭이 이어집니다!”

파앙!

공이 미트에 들어온 순간 주심이 손을 뻗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7이닝 12K 2피안타 무실점.

김민의 다섯 번째 피칭은 기대 이상이었다.

“대단한 투구입니다!”

“양키스전 2회부터 시작한 무실점 행진이 오늘 경기까지 이어지는군요.”

15이닝 무실점.

아직은 기록을 논할 단계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은 어떻게 되죠?”

해설자가 캐스터의 물음에 답했다.

“오렐 허샤이저의 59이닝이 최고 기록입니다. 이전 기록은 돈 드라이즈테일의 58이닝이었죠.”

“킴이 연속 이닝 무실점에 도전하려면 아직 멀었군요.”

“그렇습니다.”

김민은 이날 7과 2/3이닝을 투구했다.

“킴, 축하해.”

“오늘도 대단한 투구였어.”

완벽한 승리였지만 김민은 환하게 웃을 수 없었다.

그가 등판을 한 번 거른 사이 팀이 연패에 빠졌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연승을 이어가고 있지만, 승차가 적지 않다.’

현재 탬파베이는 19승 7패로 아메리칸 리그 전체 2위를 달리고 있었다.

문제는 전체 1위인 양키스가 같은 지구에 속해 있다는 것이었다.

클락이 김민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또 양키스 걱정인가?”

“오늘 양키스는 이겼나?”

“이겼어 8-6로 말이지.”

“다득점 경기에서 승리라. 클린업의 힘이군.”

클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레미, 에이로드, 오스번이라고, 올스타 클린업하고 다를 게 뭐야. 이런 라인업은 게임에서나 가능하다고.”

탬파베이 타선도 강했지만, 뉴욕 양키스 타선은 10년 뒤에도 팬들에게 언급될 정도로 가능했다.

“킴, 그렉스가 구단주실로 와 달라고 하던데?”

“인터뷰가 끝난 뒤 바로 갈게.”

김민은 아이싱을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딸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들은 모두 전 구단주 빈스의 취향에 맞춘 것들이었다.

그렉스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바꾸지 않고 있었다.

“여! 킴!”

활짝 미소를 짓는 이는 탬파베이 구단주이자 사장인 그렉스였다.

“그렉스, 무슨 일이죠?”

김민은 그렉스와 함께 공동 구단주였으나 개인 사무실을 가지지 않았다.

그렉스는 그래도 사무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김민은 선수로서 전념하고 싶다며 그의 제안을 사양했다.

“트로피카나가 우리와 협의에 합의했어.”

트로피카나는 탬파베이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의 구장 명명권을 가지고 있는 음료 회사로 팹시의 자회사 중 하나였다.

“그럼 네이밍 페이가 올라가는 겁니까?”

“그 반대야. 우리와 계약한 10년 계약 기간 중 3년을 포기하는 데 합의했어. 물론 공짜는 아니지.”

김민이 그렉스 앞에 앉으며 말했다.

“어떤 조건인가요?”

“이번 시즌 사용료를 받지 않기로 했어.”

메이저리그에서 구단 명명권은 제법 큰 금액에 거래 되고 있었다.

탬파베이에서 트로피카나에 명명권 계약 파기를 요구한 것은 신구장 건설 때문이었다.

그렉스와 김민은 신구장의 네이밍을 팔아 구단 건설에 필요한 돈의 일부를 충당할 작정이었다.

“1년 사용료라면 이번 시즌 수익이 너무 주는 것 아닙니까?”

그렉스가 김민에게 재무제표 요약본을 내밀며 말했다.

“자네 덕분에 지난 달 구단 수익이 늘었어.”

“그건 좀…….”

과장된 것 같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렉스의 말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김민이 탈삼진 신기록을 잇달아 세우면서 그의 저지와 관련 상품이 미친 듯 팔려나갔다.

“자네 덕분이 맞아. 자네는 이제 전국구라고. 뉴욕이나 LA에서까지 저지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월드시리즈 우승은 지난 시즌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렉스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고 전국구 팀이나 스타가 되는 건 아니야. 월드시리즈는 그 시즌에 가장 뛰어난 팀을 뽑는 것뿐이니까. 전국구 스타가 되려면 메이저리그 팬들이 좋아할 만한 큰 임팩트나 그에 버금가는 플레이를 남겨야 한다고. 자네의 삼진 기록은 그런 의미에서 큰 도움이 되었지.”

메이저리그 팬들은 김민이 전설적인 투수들의 기록을 갈아치우기 전까지 그를 뛰어난 투수 또는 잘 던지는 투수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경기 이후 메이저리그 팬들은 김민을 닥터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삼진을 잘 잡는 투수.

그가 바로 김민이었다.

- 이번 시즌은 트리플 크라운도 가능하겠어.

- 트리플 크라운이 뭐야 300K도 가능할 것 같은데.

- 30승과 300K 그리고 0점대 평균 자책점을 함께 기록하는 건 아니겠지?

김민은 지금까지 삼진이 적어 트리플 크라운이 불가능한 투수로 꼽혔다.

하지만 지난 4월 한 달 동안 김민은 54개의 삼진을 뽑아내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랐다.

“제 활약이 팀에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하지만 그걸 알려 주려고 절 여기로 부른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렉스는 동업자의 일침에 미소를 지었다.

“맞아. 자네가 확인해 줬으면 하는 것이 있어.”

그는 두 가지 회사의 로고가 들어간 제안서를 꺼냈다.

“새로운 구장의 명명권을 입찰에 붙였네. 여기 두 회사는 그 명명권의 최종 후보야.”

명명권을 가져갈 새로운 회사는 기존의 명명권을 가지고 있던 트로피카나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

“벌써 후보까지 뽑은 겁니까?”

“새로운 구장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 공사를 시작했으면 좋겠어.”

김민은 두 회사를 번갈아 확인했다.

“인터넷 기업인 구글과 리먼 브라더스군요. 금액은 어느 쪽이 더 높습니까?”

“금융 쪽이 더 높더군.”

미국 3대 금융 기업 중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

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글로 하죠.”

그렉스는 내심 리먼 브라더스 쪽을 더 선호하고 있었다. 그들은 탬파베이에게 40년 동안 2억 달러(2천5백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안했다.

“흠? 이유가 뭐지?”

“새로운 구장에는 참신한 기업이 좋을 것 같습니다.”

“리먼 브라더스가 구시대를 대표한다는 말인가?”

김민이 대답했다.

“그보다는 구글이 새로운 시대를 대변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가 구글을 선택한 것은 구글의 조건이나 이미지보다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할 것이라는 미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내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 중 하나도 리먼 브라더스 때문이지.’

그렉스는 잠깐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구글 쪽을 집어 들었다.

“30년 동안 1.5억 달러(1,870억 원) 계약일세.”

“나쁘지 않군요. 구글이 수용했습니까?”

“그쪽에서 먼저 제안했네.”

앞서 2000년 휴스턴과 코카콜라 그룹이 체결한 계약이 30년 간 1억 달러(1,250억 원)였다.

탬파베이와 구글의 계약금액은 이를 50%나 초과한 것이었다.

“구글로 하실 겁니까?”

“그래야지. 리그 최고의 스타가 원하니까.”

김민이 물었다.

“사실은 리먼 브라더스로 하고 싶었던 거죠?”

“그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걸리는 게 있어서 말이야.”

혹시 그렉스가 리먼 브라더스의 위기를 알고 있는 것일까?

“걸리는 것이라면?”

“리먼 브라더스 파크. 너무 길잖아. 구글 필드, 짧고 좋아.”

“아, 그겁니까?”

“왜? 구장 이름은 아주 중요하다고.”

이후 5분 동안 그렉스는 입에 붙는 이름이 중요하다고 김민에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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