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전설의 탄생 03
“투수 교체.”
무시나는 맥코비 감독에게 공을 넘겨주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양키스, 투수를 교체합니다.”
“맥코비 감독, 투수 교체 타이밍이 살짝 늦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동점이 되었을 때 투수를 교체했다면 어땠을까 싶군요.”
호이스트는 옆에 앉은 팬의 라디오를 통해 해설자의 말을 들었다.
‘한 발 빠른 투수 교체, 결국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월드시리즈도 아니고, 7회 말 1-1 동점 상황에서 에이스를 내리는 감독은 많지 않을 것이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마운드를 내려가는 무시나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 거렸다.
“무시나는 오늘 박수를 받을 만큼 잘 던졌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승리 할 수 없었다.”
리베라는 라이트의 홈런이 나온 뒤 몸을 푸는 것을 멈췄다.
- 지는 경기에 클로저는 등판하지 않는다.
“무시나를 응원했습니다.”
제임스 불펜 코치가 그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벽을 깨지 못했군.”
“그 벽은 저도 깨지 못한 것입니다.”
리베라와 제임스 코치가 말하는 벽은 레전드 플레이어와 올스타 플레이어 사이에 놓인 벽이었다.
“아니, 자네는 그 벽을 깼어.”
리베라가 멈칫했다.
“제가요?”
“난 그렇게 생각하네.”
리베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전 월드시리즈에서 결정적인 블론을 저질렀습니다. 그런 투수가 레전드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야. 자네가 나와 잃은 승리보다 지킨 승리가 더 많지 않은가? 앞으로 5년…… 그 안에 자네는 레전드 반열에 오르게 될 거야.”
제임스는 리베라의 레전드 등극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시나는 아니었다.
아쉬움이 듬뿍 담긴 한마디가 이어졌다.
“무시나는 힘들겠어.”
최선을 다한 투구.
박수를 쳐도 무방한 그런 피칭에 제임스는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리베라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말년에 행운이 깃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 불운이 그를 따라다니고 있어.”
“그가 불운했다면 핀스프라이트를 입을 수 없었을 겁니다.”
리베라는 무시나가 불운하다는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무시나는 마스터도 하지 못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낸 선수입니다.”
“리베라, 그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알고 있어. 나도 무시나가 좋은 투수라고 생각해. 하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은 그가 한 것이 아니라 양키스가 한 것이야.”
제임스는 자신이 무시나를 비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고개를 흔들었다.
“방금 내 말은 모두 잊게. 내가 무시나를 평가한다는 건 주제를 넘은 행동인 것 같아.”
리베라는 제임스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
‘제임스는 무시나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는 레전드와 올스타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무시나에게는 아직 레전드가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는 무시나의 선수 생활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반 감독이 전광판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킴이 걱정되는군.”
“킴이 말입니까?”
“이번 회…… 우리 공격이 길어지고 있어.”
“그 말씀은 투구 리듬이…….”
이반 감독이 블렛소 투수 코치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끊길 우려가 높아.”
지난 시즌부터 김민은 좋은 투구 리듬을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말했다.
“지금 당장 워밍업을 지시하겠습니다.”
“워밍업은 이미 하고 있네.”
블렛소 투수 코치는 감독의 말에 멈칫했다.
“불펜에 킴이 없습니다만…….”
“아니, 클럽 하우스야.”
블렛소 투수 코치가 갸웃했다.
‘워밍업을 불펜이 아니라 클럽 하우스라고?’
이반 감독이 블렛소 투수 코치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내가 지시했네. 이번 7회 말은 상위 타선과 클린업이야. 강한 타구가 외야에 있는 불펜을 향할 가능성이 크지. 오늘 같은 날 부상으로 대기록이 무산되면 안 되지 않겠나?”
“그건 그렇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종종 투수들이 클럽 하우스에서 워밍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클럽 하우스에서 몸을 풀면, 부상방지 외에 상대 코칭 스텝을 혼란시킬 수 있다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장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클럽 하우스에서 워밍업.
이것의 단점은 명확했다.
실제로 공을 던질 수 없다는 것.
공을 던지면서 어깨의 온기를 유지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컸다.
김민은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수건을 든 채 피칭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
휙! 휙!
수건이 허공을 갈랐다.
‘아직 공격은 끝나지 않은 건가?’
팀이 역전했다는 메시지가 흘러나온 것이 7분 전.
탬파베이 공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덜컥.
문이 열리면서 구단 스텝이 안으로 들어왔다.
“킴, 드디어 공격이 끝났습니다.”
1번 타자 브라이튼으로 시작한 탬파베이 공격은 7번 타자 스나이더의 2루수 땅볼로 끝이 났다.
공격 시간은 총 26분.
김민이 수건을 내려놓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오래 공격했군. 스코어는?”
“3-1입니다.”
“잔루가 있었던 모양이군.”
“1루였습니다.”
‘생각보다 잔루는 많지 않아.’
구단 스텝이 시간을 확인하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투수 교체가 없었더라면 5분 정도 더 단축되었을 겁니다.”
“투수 교체? 무시나가 내려갔다면 누가 올라왔지?”
“콜드입니다.”
김민은 고개를 끄덕이곤 글러브를 들었다.
‘콜드라면 괜찮아.’
구단 스텝이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킴, 신기록을 부탁드립니다.”
구단 스텝들은 동료이자 팬이었다.
김민은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미소를 지었다.
“테리, 기록을 세울 테니까. 샴페인을 부탁해.”
“알겠습니다!”
구단 스텝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라운드로 향하는 김민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휴식이 너무 길었어. 제대로 된 리듬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이 걸려 있는 경기.
김민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 차리자. 이런 상태라면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한 채 흠씬 두들겨 맞고 강판 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더그아웃에 들어서자 동료들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대기록을 앞두고 있는 투수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었다.
김민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그런 얼굴 할 필요 없습니다. 퍼팩트 게임도 아니고 큰 기록이…….”
그가 말을 줄인 것은 선수들의 표정이 밝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탬파베이 동료들은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최다 탈삼진 경기가 퍼팩트 게임보다 힘들다는 것을.
그라운드로 나가자 그에게 말을 붙이는 선수가 있었다.
“킴, 몸은 제대로 풀었어?”
그는 바로 록튼이었다.
“어깨가 식진 않았을 거야.”
“일단 연습 투구를 해 보자.”
“오케이.”
김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운드에 섰다.
‘패스트볼로 조금씩 속도를 높여 보자.’
팡! 팡!
공을 채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미간을 좁혔다.
‘나쁘지 않다로는 안 되는데……’
7회까지 김민은 ‘나쁘지 않다.’가 아니라 ‘아주 좋다.’라는 느낌을 공을 던졌다.
“나이스 볼!”
록튼은 여전히 좋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김민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위험하겠어.’
길게 한숨을 내쉰 순간 배터 박스에 5번 타자 오스번이 들어섰다.
탬파베이 팬들은 숨을 죽인 채 김민의 투구를 관전했다.
“제발 삼진…….”
“8회에 기록을 깨 버리자고.”
김민은 사인을 교환한 뒤 발을 높이 들었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을 향했다.
오스번은 배트를 내밀지 않았다.
탕!
둔탁한 소리는 미트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공이 백네트에 꽂혔습니다!”
“손에서 공이 빠진 모양이군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선 뒤 처음으로 공이 백네트를 강타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의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고 판단했다.
“불펜을 가동하겠습니다.”
이반 감독은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감독님, 2점 리드입니다.”
“에이스가 마운드에 있지 않은가? 자네는 에이스를 믿지 못하나?”
에이스를 믿고 맡기자.
이반 감독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맥코비 감독은 김민의 초구를 보곤 주먹을 꾹 쥐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는 것은 기록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파고들 틈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네네 코치를 불렀다.
“네네, 웨이팅으로 간다.”
7회까지 적극적인 배팅을 요구했던 맥코비 감독이었다.
“기다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킴은 스스로 무너질 가능성이 있어.”
네네 타격 코치도 김민이 긴 휴식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탬파베이의 리드는 딱 2점. 2점이라면 한 번의 찬스에서 뒤집을 수가 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오스번에게 기다리라는 사인을 냈다.
팡! 팡!
이윽고 연속 2개의 볼이 들어왔다.
카운트 3-0.
김민답지 않은 카운트였다.
록튼은 바로 타임을 불렀다.
“킴, 어떻게 된 거야?”
김민이 글러브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패스트볼 제구가 잘 안 되고 있어.”
“뭐라고?”
“어떻게 할까?”
지금까지는 김민이 볼 배합을 주도해 왔다.
록튼은 방법을 찾는 김민의 물음에 살짝 당황했다.
“킴, 어떻게 하다니?”
“오스번 말이야. 볼넷으로 내보낼까? 아니면 잡을까?”
잡을 수 있다면 잡는 게 가장 좋았다.
이것은 고민할 이유가 없는 질문이었다.
‘잡는 게 쉽지 않은 거야. 무리도 아니지 쓰리 볼 노 스트라이크라고.’
록튼이 대답했다.
“거르자.”
김민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잡자.”
말을 반대로 알아듣는 병에 걸리기라도 한 걸까?
록튼은 분명 거르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민은 잡자고 말을 하고 있었다.
“킴!”
록튼이 목소리를 높이자 김민이 한 발 더 다가섰다.
“오스번도 록튼처럼 생각하고 있을 거야.”
“아…….”
록튼은 깨닫는 것이 있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투구. 이게 바로 킴의 트레이드 마크였지.’
그가 홈플레이트로 돌아가자 김민이 바로 사인을 냈다.
- 한가운데 높은 공.
오스번이 노리고 있다면 무척 위험한 공이었다.
하지만 오스번은 긴장을 살짝 풀고 있었다.
‘카운트 3-0이야. 삼진 기록을 의식하고 있다면 날 거르고 다음 타자를 상대하는 게 맞겠지.’
그를 삼진으로 잡으려면 스트라이크존으로 연속해서 3개의 공을 던져야 했다.
이것은 투수에게 큰 부담이었다.
슉!
4번째 공이 날아왔다.
‘높은 코스?’
오스번은 헛스윙을 유도하는 하이 패스트볼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걸려들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다는 공이군.’
그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뺐다.
다음 순간 공이 미트를 강타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주심의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오스번은 고개를 주심에게 돌렸다.
“홈콜입니까?”
주심이 미간을 좁히며 오스번을 노려보았다.
“존에 들어왔어.”
“정말입니까?”
“퇴장당하고 싶나?”
오스번은 주심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단어를 조절했다.
“아닙니다. 높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카운트 3-1.
여전히 타자가 유리한 상황.
김민은 다음 공으로 커브를 선택했다.
휙!
높은 코스에서 떨어지는 공.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온다!’
오스번은 배트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내야에 높이 떠올랐다.
“3루!”
3루수 스나이더가 마운드 쪽으로 조금 움직인 뒤 공을 잡아냈다.
“오스번, 3루수 플라이로 아웃입니다.”
오스번은 아웃이 되긴 했지만, 김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삼진을 잡는 투구가 아니었다.’
삼진을 잡기 위해서는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유인구가 제격이었다.
하지만 김민은 유인구가 아닌 스트라이크존에 커브를 꽂아 넣었다.
‘신기록까지 남은 건 삼진 하나, 기록은 의식하지 않아도 깨진다는 건가? 아니야. 그게 아니야. 녀석은 기록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야.’
그는 더그아웃에 들어가자마자 네네 타격 코치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킴이 삼진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고?”
“그렇습니다.”
네네 타격 코치는 즉시 그의 말을 감독에게 전달했다.
맥코비 감독이 말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의식하려는 흐름을 억지로 막는 거야. 한마디로 좋지 않은 리듬을 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지.”
그는 오스번이 3루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이번 회 김민을 끌어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생각했다.
“다음 타자는 머레이입니다.”
“지난 시즌 동료인가? 어쩌면 그가 킴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머레이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김민과 맞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같은 팀에 있을 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킴은 정말 무시무시한 공을 던지는군.’
그는 오늘 김민을 상대로 삼진 퍼레이드를 벌였을 뿐이었다.
“킴이 록튼과 사인을 교환합니다.”
김민은 경기 초반 보여 주었던 절묘한 제구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긴 휴식으로 투구 리듬만 무너진 게 아니야. 손끝의 감각도 무뎌졌어.’
그는 조금 더 안쪽을 겨냥했다.
슉!
바깥쪽 빠른 공.
머레이는 그대로 배트를 돌렸다.
휙!
“스윙 스트라이크!”
김민의 초구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고속 슬라이더였다.
“킴, 초구로 슬라이더를 던졌습니다.”
“88마일(142km), 멋진 고속 슬라이더입니다.”
맥코비 감독이 혀를 찼다.
“기다리라고 했잖아.”
그는 기다리면 충분히 김민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김민은 연속해서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아 넣었다.
탁!
3번째 공을 머레이가 커트해 내지 않았다면, 삼진 신기록이 나왔을 것이다.
머레이는 배트를 내리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킴, 날 상대로 그런 무시무시한 기록을 세우지 말라고.’
기록을 의식하는 것은 투수만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삼진 기록의 희생양이 된다면, 오늘 저녁 전국에 삼진을 당하는 모습이 하이라이트로 제공될 것이다.
머레이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차라리 땅볼이……’
그가 배트를 짧게 잡은 순간 커브가 날아왔다.
‘그래 이거야.’
머레이는 커브를 향해 배트를 내밀었다. 그러나 김민의 커브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낮게 떨어졌다.
‘너무 낮잖아.’
팍!
바운드를 일으킨 공이 미트에 맞고 옆으로 흘렀다.
“공이 옆으로 빠졌습니다.”
머레이는 1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1루 베이스를 밟아도 삼진이잖아!’
스트라이크 낫 아웃.
1루에서 타자 주자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기록은 삼진이었다.
이 룰 때문에 투수들은 종종 1이닝 4삼진을 기록하곤 했다.
한마디로 록튼이 머레이를 잡아내지 못해도 김민의 삼진은 인정되는 것이었다.
“록튼이 공을 잡아 1루에 던집니다.”
팡!
아울의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나이스 피칭!”
머레이의 아웃과 동시에 장내 아나운서가 목소리를 높였다.
“킴이 오늘 경기 21번째 삼진을 잡아냈습니다.”
록튼이 머레이를 잡아냈기 때문에 삼진이 인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아웃 카운트가 삼진과 함께 올라갔기 때문에 관중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킴! 킴! 킴!”
“최고의 경기다!”
여성 팬들도 오늘 만큼은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랑해요! 킴!”
맥코비 감독은 더그아웃 앞 펜스를 잡곤 손에 힘을 주었다.
“최악의 경기군.”
김민의 다음 상대는 7번 타자 포사다.
평소라면 그는 쉽게 삼진을 잡을 수 없는 타자였다.
하지만 7회 말 수비 이후 포사다는 흔들리고 있었다.
‘무시나가 무너진 것은 나 때문이다. 내가 포스트 시즌처럼 던져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체력이 바닥나고 만 것이다.’
그의 걱정은 무시나만이 아니었다.
‘지터는…… 지터는 어떻게 하고 있지?’
포사다는 배터 박스에서 고개를 돌려 더그아웃을 확인했다.
‘지터는 말없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그라면 정말로 뉴욕 타임즈에 제보를 할 거야.’
걱정이 겹치니, 타격에 집중을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휙!
“스윙 스트라이크!”
초구를 크게 스윙한 포사다.
그는 두 번째 공도 놓쳤다.
카운트 0-2.
“포사다,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삼진 신기록을 의식하고 있는 것일까요? 평소의 날카로운 모습이 없습니다.”
포사다는 마른침을 삼켰다.
‘삼진 기록이 문제가 아니야. 자칫 잘못하면 메이저리그 전체가 날아갈 수 있다고.’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슉!
빠르고 낮은 공.
포사다는 타이밍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건 틀렸어.’
이제 그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것뿐.
그러나 김민이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지 않았다.
파앙!
95마일(153km)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존을 직격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오늘 경기 24번째 아웃이자 22번째 삼진.
“킴이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합니다!”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8이닝 동안 22번의 삼진이 나왔습니다.”
그 어느 투수도 해내지 못한 기록.
“킴! 킴! 킴!”
오늘 트로피카나 필드를 찾은 관중들은 김민의 투구가 끝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