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전설의 탄생 01
6회 말.
무시나는 탬파베이 타선을 다시 한번 침묵시켰다.
“탬파베이 레이스, 6회 말 공격에서 적극적으로 배트를 냈지만, 안타를 뽑아내지 못했습니다.”
“지난 이닝도 그렇고, 탬파베이 레이스가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킴의 호투 때문일까요?”
“그런 것도 있겠죠. 연속 타자 삼진 신기록을 세운 에이스를 조금도 지원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아직이라고 생각했다.
‘7회 말 다시 상위 타순이 돌아온다. 그때가 바로 승부처다.’
그는 마운드로 향하는 김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킴은 우리가 점수를 뽑아 줄 때까지 마운드를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 킴은 삼진을 잡기 위해 다소 무리한 피칭을 했다 아마 9회까지 던지지 못할 거야. 그 전에 점수를 뽑아야 한다.’
7회 초.
김민은 이번에도 휴식을 거의 취하지 못한 채 마운드에 올랐다.
록튼은 지난 이닝과 달리 김민의 상태를 묻지 않았다.
‘우리 공격은 5분 남짓, 템포가 어그러질 가능성은 없다.’
그는 연습 투구를 받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스 볼.”
연습 투구가 끝나자 타자가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양키스! 2번 나이젤부터 공격을 시작합니다.”
나이젤은 7회 초에도 트래쉬 토크 없이 타격에 집중했다.
어떻게든 1루에 나가겠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슉!
‘95마일 전후의 빠른 공이군.’
나이젤은 망설임 없이 배트를 두 손으로 잡았다.
‘기습 번트!’
록튼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음순간 배트가 공과 만났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1루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주심의 판정에 나이젤은 혀를 찼다.
‘쳇, 파울인가? 1루로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을 끝까지 확인하지 못했어.’
TV로 야구 경기를 시청하는 팬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 저 친구 왜 번트도 제대로 못 하는 거야?
번트는 얼핏 보면 상당히 쉬워 보인다.
두 손으로 배트를 잡은 뒤 공을 ‘툭’하고 치면 끝.
하지만 번트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궤적을 정확히 읽지 못하면, 원하는 코스에 공을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록튼은 나이젤이 번트에 익숙한 타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타구의 숨을 죽이는 부분이 미흡해.’
번트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은 바로 타구의 숨을 죽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이젤이 타구의 숨을 죽일 수 있었다면, 공은 1루 라인을 벗어나지 않고 라인을 따라 달렸을 것이다.
김민은 생각했다.
‘나이젤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해도 20대 초반의 신인이다. 디테일한 면에 허점이 있는 게 당연해.’
그는 나이젤의 자세를 보고 다음 공을 결정했다.
‘나이젤이 두 번 번트를 대진 않을 테고, 다음은 아마도…….’
배트를 짧게 잡고, 컨택에 집중한 타격을 할 가능성이 컸다.
삼진 가능성은 낮추고, 출루 가능성은 높이고.
첫 카운트를 빼앗긴 나이젤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터는 그 선택에 함정이 있다고 보았다.
‘킴의 공은 변화가 너무 심해 눈으로 보고 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선구안에 강점이 있는 선수가 아니라면 코스를 정해놓고 치는 것이 좋다.’
그는 김민의 공은 눈이 아닌 머리로 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젤은 아직 자신의 재능을 믿었다.
슉!
두 번째 공이 바깥쪽에서 낮게 떨어졌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1루 베이스 옆을 지나갔다.
“파울!”
맥코비 감독은 나이젤의 타구 방향에 미간을 좁혔다.
“계속 1루 쪽이군.”
네네 타격 코치가 말을 받았다.
“나이젤은 의식적으로 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투수도 알겠지?”
“아마 알 겁니다.”
“그런데도 녀석은 바깥쪽에 계속 공을 던지는군.”
네네 타격 코치는 맥코비 감독의 지적에 흠칫했다.
“알고도 그곳에 공을 던진다는 것은…….”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다른 수가 있다는 것이겠지.”
네네 타격 코치는 마른침을 삼켰다.
‘승부구는 안쪽이다.’
그는 나이젤이 의식적으로 밀어치려는 것을 김민이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돼 사인을 내야겠어.’
네네 타격 코치가 나이젤을 향해 사인을 내보냈다.
나이젤은 타격 코치의 사인에 고개를 갸웃했다.
‘치지 말라고? 하나 기다리라는 건가? 하지만 킴은 0-2이라고 공을 하나 빼는 투수가 아니야.’
그는 미간을 좁힌 채 배트를 들었다.
‘기다릴까? 아니야. 킴은 공을 낭비하지 않아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면 무조건 때린다.’
잠시 뒤, 세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슉!
안쪽 빠른 공.
나이젤은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로케이션 승부다! 이 정도 공이라면 나도 쳐 낼 수……’
그의 생각은 중간에 끊어졌다.
‘뻗는다!’
떠오르는 공이 아니라 뻗는 공.
나이젤은 네네 코치의 사인을 무시하고 배트를 냈지만, 공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전광판의 구속은 94마일(151km).
나이젤은 스피드건이 고장 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 공이 94마일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있나!”
그러나 스피드건은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김민은 약간의 착시를 이용했을 뿐이었다.
록튼은 생각했다.
‘80마일(129km) 체인지업 이후 들어오는 94마일(151km) 패스트볼. 게다가 킴의 패스트볼은 공 끝까지 살아 있지. 아마 97마일(156km) 정도로 느껴질 테지.’
네네 타격 코치는 나이젤의 삼진에 혀를 찼다.
“끝내 배트를 휘두르는군.”
맥코비 감독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네네, 혹시 자네 기다리라는 사인을 냈나?”
“안쪽 공으로 승부구가 들어오면 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맥코비 감독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바보 같은 사인이군. 킴이 나이젤을 상대로 빠지는 공을 던질 리가 없잖아. 쯧쯧…….”
그는 혀를 차곤 시선을 다시 그라운드로 돌렸다.
지터는 입이 험하지만 맥코비 감독이 경기의 맥을 정확히 짚고 있다고 생각했다.
‘킴은 0-2에서 유인구를 던지는 투수가 아니야. 상대가 나이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여기서는 기다리는 것보다는 배트를 휘두르는 것이 옳아.’
그가 미간을 좁힌 순간 장내 아나운서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삼진은 킴의 18번째 삼진입니다.”
팬들이 일제히 김민의 이름을 연호했다.
“킴! 킴! 킴!”
메이저리그 타이기록까지는 앞으로 단 2개.
빠르면 이번 이닝에서 메이저리그 타이기록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한 경기에서 18개의 삼진인가? 믿기지 않는군.”
포사다가 낮게 중얼거리자마자 3번 타자 제레미가 타석에 들어섰다.
제레미는 오늘 킴에게 철저하게 막히고 있었는데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킴에게 연속 타자 삼진 기록을 세워 주고 말다니, 굴욕이군.’
그는 굳은 얼굴로 배트를 세웠다.
“저 친구 홈런을 노리고 있습니다.”
리베라의 한마디에 제임스 불펜 코치가 이마를 찌푸렸다.
“제레미가 두 번이나 삼진을 당해서 벼르고 있는 모양이군.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을 거야.”
그는 강한 타구가 나올지 모른다며 불펜 스텝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투수들에게 맞지 않게 하라고!”
트로피카나 필드는 메이저리그에서 얼마 남지 않은 불펜이 외야에 위치한 구장이었다.
제임스의 한마디는 예언처럼 적중했다.
딱!
초구와 동시에 강한 타구가 불펜을 향해 날아왔다.
“위험해!”
불펜 뒤를 막고 있던 스텝이 재빨리 공을 잡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공에 맞았을 것이다.
“제레미, 초구를 강하게 돌렸습니다. 하지만 파울이군요.”
“안쪽으로 공이 깊었습니다. 킴이 영리하게 피칭을 했습니다.”
김민은 안쪽으로 하나 정도 빠지는 볼을 던져 첫 카운트를 잡았다.
‘이번 타석…… 제레미는 적극적으로 나올 게 분명하다.’
그는 제레미가 적극적으로 나올 것을 알고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지는 공을 던졌던 것이다.
맥코비 감독은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인 제레미를 알고도 막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제레미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공은 바로 그렇게 치는 거야!”
네네 타격 코치는 맥코비 감독의 말에 경악했지만, 지터는 감독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제레미는 머리싸움에 능숙한 타자가 아니다. 타고난 힘과 재능에 의지하는 타자, 그가 바로 제레미다. 그에게 기다리며 공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는 룩킹 삼진으로 이번 타석을 날릴 게 뻔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강한 스윙에 도박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김민은 두 번째 공으로 커브를 선택했다.
휙!
안쪽을 향해 떨어지는 공이 중간에 배트를 만났다.
따악!
큰 타격음과 함께 공이 하늘 높이 뻗어나갔다.
“큽니다!”
이반 감독은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여기서 홈런이 하나 더 나온다면……’
스코어는 2-0까지 벌어졌다.
무시나의 오늘 컨디션을 생각한다면 이 이상 점수를 내줘서는 곤란했다.
‘제발 파울…….’
기도가 통했을까?
탁!
공이 떨어진 지점은 불펜 바로 뒤쪽이었다.
“파울!”
1루심의 판정에 탬파베이 코칭 스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파울이군.”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나 김민은 파울이 될 걸 알았다는 듯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안쪽으로 떨어지는 커브, 제법 잘 받아쳤지만, 그게 한계겠지.’
그는 아무리 힘이 강해도 물리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공은 이게 좋겠어.’
빠른 공, 느린 공, 다시 빠른 공.
이번에는 분명 빠른 공을 던질 타이밍이었다.
하나 김민은 선택은 빠른 공도 느린 공도 아닌 중간쯤 되는 공.
슉!
공이 좌타자 바깥쪽으로 흘렀다.
제레미는 처음부터 배트를 내지 않았다.
‘이번 공은 멀다고.’
그는 김민이 바깥쪽에서 휘어져 들어오는 백도어 슬라이더를 던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날아오고 있는 공의 구속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슬라이더보다 느렸다.
‘구속만 느린 게 아니야. 거리도 멀어. 분명 저건 공이 손에서 빠진 거야.’
김민이 던지고 싶었던 공은 십중팔구 빠르게 휘어져 들어오는 고속 슬라이더였을 것이다.
볼이라는 것을 확신한 제레미가 배터 박스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이었다.
공이 궤적이 변하면서 그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뭐야?’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슬라이더인가? 그것도 느린……’
제레미는 급히 배트를 움직였다.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타격이 불가능하다면 커트라도 하겠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공은 배트에 맞는 대신 그대로 포수 미트에 들어갔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관중들은 김민의 19번째 삼진에 열광했지만, TV 해설자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공은 완전히 빠지는 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제레미가 배트를 냈군요.”
놀란 것은 해설자만이 아니었다.
포수 뒤쪽에서 경기를 보던 호이스트와 포수 록튼도 크게 놀랐다.
‘이런 공을 친단 말이야?’
‘이 공에 왜 배트가 나오지?’
느린 화면에 한참이나 먼 공에 배트가 나가는 것이 보였다.
“어째 서지?”
호이스트는 지금이라도 당장 아래로 내려가 제레미에게 그 이유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제레미에게 에이로드가 말을 걸었다.
“제레미, 너무 적극적이었던 것 아니야?”
제레미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난 배트 박스를 벗어나려고 했어. 하지만 그게 안 되더군.”
에이로드가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
“뒤로 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단 말인가?”
제레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마법이 걸린 것처럼 공이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들어왔지.”
에이로드는 김민이 던진 마지막 공이 스트라이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볼로 보인 공이 제레미에게는 스트라이크로 보였단 말인가?’
그는 제레미에게 더 묻지 않고 배터 박스로 향했다.
‘상대해 보면 알게 되겠지.’
김민은 배터 박스에 들어서는 에이로드를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느낌이 좋지 않아.”
그의 본능은 에이로드를 볼넷으로 거르라 말하고 있었다.
‘제레미보다 한 클래스 위, 그런 타자를 3연 타석 막아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이번 타석만큼은 막아 내기 힘들다.
그러나 그는 그 본능과 다르게 사인을 조합하고 있었다.
슉!
초구는 안쪽 공.
에이로드는 이 공을 치지 않았다.
팡!
공이 미트에 들어왔으나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볼, 볼입니다!”
이번 공은 제레미에게 던졌던 초구와 같은 것이었다.
‘제레미는 속지만 에이로드는 속지 않는다. 이게 클래스 차이인가?’
김민의 두 번째 공은 바깥쪽.
에이로드는 이번에도 배트를 내지 않았다.
팡!
“이번 공도 볼입니다.”
“킴이 에이로드를 거르려는 것일까요?”
4번 타자인 에이로드를 거르고 5번 타자 오스번을 상대.
이론적으로는 납득할 수 있는 전개였다.
하지만 그것을 행하고 있는 투수가 김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에이로드는 배트를 바짝 당겼다.
‘이번 공은 반드시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온다.’
그는 김민이 자신을 볼넷으로 내보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슉!
빠른 공.
‘역시.’
에이로드는 확신을 가지고 강하게 배트를 휘둘렀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총알처럼 날아갔다.
그러나 그 타구는 안타가 되지 못했다.
“아! 타구가 라인을 벗어납니다.”
“강한 타구였지만, 너무 당겼군요.”
이번 공도 볼.
에이로드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세 개 연속 볼이라. 이건 절대 좋은 공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군.’
그냥 내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는 공도 주지 않는다.
에이로드가 배터 박스 뒤쪽으로 물러나며 생각했다.
‘킴 잘못 생각한 거야. 그건 공을 그냥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김민이 그답지 않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슉!
바깥쪽으로 빠른 공이 날아왔다.
에이로드는 배트를 멈췄다.
스트라이크존에서 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공이 휘어졌다.
‘이건……’
에이로드는 급히 배트에 힘을 주었다.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온다.’
모두가 빠졌다고 생각한 공을 친 제레미.
에이로드는 이 공이 제레미가 본 바로 그 공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것 같지만, 이건 착시다.’
그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빼고 공의 궤적을 살폈다.
‘분명 스트라이크존과 거리가 있는 공이다.’
팡!
포수의 미트는 홈플레이트 앞에 멈춰 있었다.
‘이건!’
“스트라이크!”
주심의 제스처와 함께 카운트가 2-2로 변했다.
“킴, 에이로드를 상대로 좋은 공을 꽂아 넣었습니다!”
에이로드는 오른손 타자였다. 왼손 타자인 제레미와 달리 백도어 슬라이더를 쓸 수 없었다.
‘무슨 공이지?’
미간을 좁히는 에이로드에게 록튼이 말했다.
“신기하지? 처음 봤을 때는 나도 그랬어.”
“…….”
“이건 투심 패스트볼이야.”
“뭐?”
에이로드의 입이 벌어졌다.
그가 알고 있는 투심 패스트볼은 살짝 꺾이며 떨어지는 공이었다.
하지만 김민이 던진 투심 패스트볼은 마치 슬라이더처럼 크게 휘었다.
“어떤 요령으로 던지는지는 몰라. 하지만 정말 멋지게 들어오지.”
에이로드가 배트를 세우며 말했다.
“좋은 공이군. 하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아.”
김민도 그에게 같은 공이 두 번 통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음 공은……’
그는 사인을 내곤 바로 투구에 들어갔다.
슉!
빠른 공이 안쪽을 향했다.
‘안쪽 패스트볼이라. 로케이션 승부군. 받아주지!’
에이로드는 나이젤 이상의 컨택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로케이션 된 패스트볼은 어려운 공이 아니었다.
그러나 배트가 공을 치려는 순간 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휙!
배트가 크게 허공을 쳤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에이로드가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는 순간 주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20K.
메이저리그 한 경기 삼진 타이기록.
에이로드는 자신이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보다 방금 사라진 공을 더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공을 던지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록튼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공이었지?”
록튼이 걸음을 멈추며 대답했다.
“봤잖아.”
“사라졌어.”
“그럴 리가?”
에이로드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공인지 말해 줘!”
그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김민이었다.
“스플리터. 조금 느리고, 더 떨어지는 공.”
그는 대답을 마친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관중들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