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제국의 반격 06
“자네마저 킴을 보는 건가?”
리베라에게 말을 건 이는 불펜 코치 제임스였다.
제임스는 지난 시즌까지 양키스 산하 더블A 팀의 투수 코치였다.
그가 메이저리그 코칭 스텝에 합류하게 된 것은 맥코비 감독이 양키스에 부임한 다음이었다.
그러나 양키스 투수들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제임스는 4년 전까지 그들과 함께 양키스 마운드를 지켰던 투수였다.
리베라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런 장면은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드니까요.”
“그래도 자네라면 무시나를 봐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군.”
무시나는 4회 말까지 노히트 경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노히트 경기를 주목하지 않았다.
아니, 주목할 수 없었다.
김민의 화려한 삼진 퍼레이드에 사람들은 시선을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제임스 코치가 말했다.
“무시나는 항상 이랬지. 잘 던지고도 조연. 한 번도 가운데에 위치한 적이 없었어.”
제임스 코치는 무시나가 다른 팀에서 활약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에이스의 이미지가 강했을 거야.’
그러나 무시나는 자신이 양키스에서 뛰는 것을 아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그 외에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리베라가 마운드에 오르는 무시나를 보며 말했다.
“언젠가 사람들이 무시나를 알아줄 때가 올 겁니다.”
“은퇴하기 전에 그를 알아줬으면 좋겠군.”
제임스 코치는 무시나처럼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5회 말.
무시나의 첫 상대는 4번 타자 아울이었다.
“아울이 살아나가야 찬스가 날 텐데…….”
이반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울의 타구가 높이 떠올랐다.
“중견수 플라이군요.”
바이슨 수석 코치가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의 예상대로 아울의 타구는 중견수 글러브에 들어가고 말았다.
팡!
“무시나, 어려운 선두 타자를 쉽게 처리합니다.”
무시나의 호투는 5번 타자 라이트를 상대로도 계속되었다.
라이트는 2-2까지 버텼지만, 낮게 떨어지는 커브에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감이 좋은 라이트까지 삼진이라니, 오늘 무시나는 지뉴 이상이군.”
블렛소 투수 코치가 이반 감독의 말을 받았다.
“원래 무시나는 지뉴 이상입니다.”
지뉴가 슈퍼 퍼포먼스를 보였던 2시즌 정도를 제외하면 항상 무시나가 그를 앞서 왔다.
하지만 그 두 번의 슈퍼 퍼포먼스 때문에 사람들은 지뉴를 무시나보다 뛰어난 투수라고 생각했다.
“코스타, 공략법은 나왔나?”
코스타 타격 코치가 대답했다.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반 감독은 코스타 코치의 해결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방금 아울처럼 말인가?”
아울은 초구를 공략해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이는 마이너리그 코치들이 흔히 말하는 성급한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코스타 타격 코치는 그의 타격을 지지했다. 그가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감독님, 지금 당장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 적극적인 타격만이 무시나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반 감독은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는 것을 깨닫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늘 경기는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끝까지 책임지도록 하게.”
6번 타자 케니히는 원래 공을 오래 보고 공략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한 박자 빠른 공격은 맞지 않는 옷이었다.
탁!
빗맞은 타구가 3루수 쪽으로 흘렀다.
“에이로드가 공을 잡아 강하게 1루에 송구합니다!”
최고의 유격수였던 에이로드.
그는 지금 최고의 3루수였다.
그의 송구에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다.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이 강한 울림을 냈다.
“케니히, 그대로 아웃입니다!”
공 7개로 삼자 범퇴.
무시나의 피칭은 완벽 그 자체였다.
덕분에 김민은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마운드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보다 못한 록튼이 말했다.
“킴, 연습 투구를 조금 길게 가져가는 게 어떨까?”
그의 권유에 김민이 웃었다.
“괜찮아.”
“그래도…….”
김민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난 오히려 무시나의 빠른 투구에 감사하고 있어. 덕분에 지금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김민은 좋은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투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투수 코치 시절부터 긴 휴식은 짧은 휴식만 못하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체력 안배보다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김민은 선발 투수가 마라톤 선수와 같다고 생각했다.
‘한 번 멈춘 마라토너는 다시 달릴 수 없다. 선발 투수도 마찬가지다. 동료들의 공격이 너무 길어지면 리듬을 잃어버려 그 이전처럼 던질 수 없게 된다. 좋은 투구를 위해서는 적절한 페이스메이커가 필요하다.’
오늘 그의 페이스메이커는 무시나였다.
“플레이!”
주심의 경기 재개 사인과 함께 양키스의 6회 초 공격이 시작되었다.
맥코비 감독은 6회 초 공격에 앞서 목소리를 높였다.
“기록이 깨진 지금이 기회다. 상대의 허를 노리고 그것을 공략하라!”
긴장과 집중력이라는 팽팽한 실이 끊어진 지금이 바로 기회라는 뜻.
하지만 김민은 기록 중단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팡!
초구가 안쪽을 깊이 파고들었다.
“스트라이크!”
양키스 하위 타선은 하위권 팀의 클린업과 맞먹는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김민 앞에서는 그 공격력이 무의미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다시 한번 삼진.
김민의 삼진 숫자가 15개로 올라갔다.
“킴! 오늘 경기 15번째 삼진을 잡아냅니다!”
“대단하군요. 설마, 오늘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는 건 아닐까요?”
메이저리그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은 20개(정규 이닝 기준).
김민은 남은 11명의 타자 중 5명만 잡아내도 타이를 이룰 수 있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말했다.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오늘 컨디션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상당히 큰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반 감독이 두 손을 모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경기에서 지면 비운의 기록이 될 뿐이야.”
연속 탈삼진과 최다 탈삼진 모두 승리를 보장하는 기록은 아니었다.
지금 탬파베이 레이스는 뉴욕 양키스에 1-0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김민의 대기록을 세우고도 패전 투수가 된 불운의 투수가 되었다.
“경기가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바이슨 코치의 한마디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었다.
그는 세 번째 타석부터는 탬파베이 타자들이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시나의 커브와 제구는 최고다. 하지만 그 공끝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유지할 수는 없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공끝이 무뎌진 순간 바로 득점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유격수 글러브에 들어갔다.
“브라이튼! 빠르게 송구합니다! 1루에서 아웃!”
김민이 아웃 카운트를 올렸지만, 팬들은 아쉬움에 탄성을 터트렸다.
“아…… 그냥 파울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팬들이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은 삼진이었다.
“몇 개였지?”
“15개.”
“아니, 신기록 말이야.”
“20개면, 타이, 그 이상이면 신기록이야.”
“오늘 킴이 반드시 신기록을 세워줬으면 좋겠어.”
탬파베이 팬들은 이미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을 의식하고 있었다.
김민은 무표정한 얼굴로 9번 타자 에드를 상대했다.
‘쉬운 타자는 아니다. 하지만 너무 어렵게 가는 것도 좋지 않아.’
그는 그립을 고쳐 잡은 뒤 안쪽으로 강하게 공을 뿌렸다.
슉!
투심 패스트볼이 안쪽에서 멋지게 떨어졌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에드는 헛스윙 뒤 혀를 찼다.
“대체 뭘 던진 거야? 싱커?”
록튼이 미트에서 공을 빼며 대답했다.
“투심이야.”
“완전 사기군. 킴에게 전해 가지고 있는 구종 중 절반은 삭제하라고.”
록튼이 미소를 지으며 에드의 말을 받았다.
“전하긴 할 텐데. 킴은 구종을 늘리면 늘렸지 삭제하진 않을 거야.”
슉!
두 번째 공은 바깥쪽 코너를 찌르는 패스트볼.
에드는 몸을 움찔했지만, 이번에도 배트를 내지 못했다.
팡!
94마일(151km)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너를 완벽히 공략했다.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카운트가 0-2로 바뀌었다.
“투 스트라이크!”
“삼진 기회군!”
트로피카나 필드를 가득 채운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K! K! K! K!”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삼진.
김민은 팬들의 함성과 함께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킴,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빠른 공이 안쪽을 공략했다.
‘웃…… 빠르다.’
탁!
에드가 필사적으로 쳐낸 공이 3루 라인 밖에 떨어졌다.
“파울!”
팬들은 에드의 파울 타구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이대로 이닝이 끝나는 줄 알았어.”
“그러게 말이야. 여기서 삼진을 하나 더 잡아야 해.”
에드를 삼진으로 돌려세운다면 김민의 삼진 숫자는 16개까지 늘어났다.
남은 이닝은 3이닝.
매 이닝 하나 씩 삼진을 잡은 다음 하나만 더 추가하면 메이저리그 타이 기록이었다.
그러나 김민 본인은 삼진 기록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투구수를 줄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하위 타선이라고 해도 양키스는 양키스라는 건가?’
그는 로진백을 만진 뒤, 그립을 고쳐 잡았다.
‘이번 공으로 이닝을 끝낸다.’
슉!
빠른 공이 바깥으로 향했다.
에드는 이 공이 일반적인 패스트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커터인가?’
그는 커터를 의식하며 배트를 내밀었다.
‘만약 커터가 아닌 패스트볼이라면? 배트 안쪽에 맞는 땅볼이 나올 테지.’
배트가 공을 향해 나아간 바로 그 순간 공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패스트볼이 아니었어!’
에드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1, 2루 사이를 뺀다!’
그러나 배트는 공을 만나지 못한 채 허공을 치고 말았다.
팡!
공이 미트에 들어온 순간 주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에드는 두 눈을 감았다.
‘빌어먹을! 커터가 아니라 슬라이더였어!’
김민의 승부구는 커터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휘어지는 고속 슬라이더.
공은 에드의 배트를 마치 담을 넘어가듯 부드럽게 피해냈다.
“킴! 에드를 상대로 16번째 삼진을 뽑아냅니다!”
16번째 삼진에 탬파베이 팬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킴! 킴! 킴!”
맥코비 감독은 탬파베이 팬들의 함성이 듣기 싫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제길…… 거기서 도망가는 공을 던질 줄이야. 진짜 에이스라면 가운데로 팍팍 던져야 하는 것 아니야?”
그의 물음에 네네 타격 코치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죠.”
“대답이 왜 그래?”
“…….”
맥코비 감독이 화를 내고 있는 사이 1번 타자 지터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양키스다운 경기를 한다.’
지터는 단순히 이기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보고 강하게 때린다.’
그가 재차 확인한 두 가지는 야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를 앞두고 그는 그 두 가지보다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에게 집중하고 말았다.
‘덕분에 홈런을 때리긴 했지만…… 그건 우연의 산물이다.’
우연이 계속 되면 실력이라지만, 그는 우연이 계속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슉!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타자의 눈에서 가장 먼 이 코스는 헛스윙 유도에도 좋은 코스였다.
‘떨어지는 공이라면…… 아니, 조금만 더 지켜보자.’
공이 홈플레이트 중간까지 이른 시각, 지터가 배트를 움직였다.
‘존으로 들어온다.’
탁!
배트를 스친 공이 백네트에 꽂혔다.
“파울!”
지터는 공을 끝까지 본 덕분에 헛스윙은 면했지만, 타이밍이 밀리고 말았다.
‘이래서는 안타를 만들어 낼 수 없어.’
결국은 게스 히팅.
지터는 게스 히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지켜보도록 하자.’
그는 배트를 세우고 김민을 주시했다.
휙!
두 번째 공은 커브.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향하고 있었다.
‘유인구는 없는 모양이군.’
지터는 커브를 결대로 밀었다.
딱!
좋은 소리와 함께 공이 1루 라인 옆에 떨어졌다.
“파울!”
김민은 파울이 되긴 했지만, 이번 타구는 안타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공을 끝까지 보고 결정했다. 성급한 승부보다는 정확한 승부를 펼치고 있어.’
맥코비 감독은 지터의 타구가 50cm정도 라인을 벗어나자 아쉬움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아주 조금만 더 들어가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안 되는군.”
네네 타격 코치는 지터의 타구가 파울이 된 이유를 알고 있었다.
‘타이밍은 완벽했다. 히팅 포인트도 좋았고, 그럼에도 안타가 되지 않은 것은 코스 때문이다.’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이었지만, 한가운데가 아닌 코너를 향하고 있었다.
이런 공은 완벽한 타이밍으로 때려내도 안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카운트 0-2, 킴이 유리한 고지에 섰습니다.”
김민은 세 번째 공으로 안쪽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딱!
지터는 이 공도 당겨서 파울을 만들어냈다.
“지터,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김민은 호흡을 조절한 뒤 4구를 던졌다.
바깥쪽 스플리터.
지터의 배트가 움직인 순간 록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17번째 삼진이다.’
그러나 공이 미트에 들어오기 전 지터의 배트가 멈췄다.
이 공이 패스트볼이 아니라는 것을 꿰뚫어 본 것이었다.
팡!
“지터가 4번째 공을 걸러냈습니다.”
카운트 1-2.
김민은 모자를 벗었다.
‘제레미와 에이로드를 상대하기 위해 아껴 두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군.’
그는 모자를 쓰곤 다시 사인을 냈다.
- 하이 패스트볼.
록튼은 사인을 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 지터를 잡아낼 수 있을 거야.’
김민이 발을 높이 들며 속도를 높였다.
슉!
95마일(153km) 하이 패스트볼이 미트를 향해 날았다.
‘이것은!’
지터는 하이 패스트볼을 피하지 않고 맞섰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뒤로 흘렀다.
“파울!”
김민은 지터가 하이 패스트볼을 쳐 내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초구 홈런은 우연이 아니었군. 오늘 지터의 컨디션은 최고야.’
그는 상대가 최고의 컨디션이라면 자신도 최고의 공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하이 패스트볼.
록튼은 조금 전과 같은 사인에 멈칫했다.
‘아무리 자신 있는 공이라고 해도 두 번이나 같은 공을 던진다면 먹히지 않을 거야.’
그는 지터의 배팅 타이밍이 좋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김민은 자신의 사인을 바꾸지 않았다.
‘힘으로 승부하는 건가?’
록튼은 자기도 모르게 미트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두 눈에 김민이 서서히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킴…… 무모한 공은 던지지 말라고.’
슈욱!
빠르고 높은 공.
지터는 무표정한 얼굴로 배트를 움직였다.
‘놓치지 않는다.’
라이징 패스트볼은 실제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타자는 마치 공이 떠오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타자가 착각을 일으키는 건…… 수만 개의 패스트볼을 본 덕분이지.’
지터는 스윙 궤적을 수정했다.
‘앞서보다 조금 높게.’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타이밍이 맞는다면 공은 앞으로 나갈 것이다.
팡!
포수 미트에 들어온 공.
그 말은 지터의 배트가 공을 맞추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거기서 더 떠오르다니……’
업 라이징 패스트볼.
김민이 던진 최고의 공이 지터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17번째 삼진이자 이번 이닝을 끝내는 삼진.
“킴! 17번째 삼진입니다!”
“멋진 경기입니다. 오늘 트로피카나 필드에 모인 분들은 평생 오늘 경기를 잊지 못하실 겁니다.”
마운드로 향하는 김민에게 트로피카나 필드에 모인 팬들이 박수를 보냈다.
“킴! 킴! 킴!”
그 모습을 본 맥코비 감독이 미간을 잔뜩 좁혔다.
“아직 경기는 끝난 게 아니야!”
그의 말대로였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양키스는 1-0으로 경기를 리드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김민의 투구를 현장에서 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