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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212화 (212/296)

212화 괴물 신인과 노망주 02

메이저리그에 첫 발을 내딛은 타자는 어떤 공을 노릴까?

코칭 스텝이나 프로 선수가 아니더라도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대부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 카운트를 잡으려고 던지는 패스트볼.

라이트도 이 정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이 올 가능성이 크다.’

웨이크도 그가 패스트볼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데뷔와 동시에 디펜딩 챔피언의 5번, 힘으로 누를 수 있는 어설픈 타자가 아니다.’

그는 라이트를 인정하고 볼 배합을 바꿨다.

슉!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나아갔다.

라이트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온다!’

웨이크가 던진 공은 패스트볼과는 거리가 멀었다.

높은 코스에서 스트라이크존으로 떨어지는 커브.

미리 준비를 했다면 충분히 쳐 낼 수 있는 공이었다.

하지만 그의 배팅 타이밍은 패스트볼에 맞춰져 있었다.

휙!

배트가 허공을 가른 순간 주심이 오른손을 뻗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김민은 볼 배합을 확인하곤 백업 포수인 스미스에게 물었다.

“스미스, 다음 공은 어떤 공이 올까?”

“커브로 스트라이크를 잡았으니, 다음 공은 타이밍을 빼앗는 패스트볼이 아닐까요? 느린 공 다음에 빠른 공은 공식이기도 하고…….”

김민이 웨이크를 주시하며 말했다.

“아니, 내가 웨이크라면 스트라이크존에서 떨어지는 커브를 던질 거야.”

“커브를 연속으로 던진다면 잡힐 수도 있습니다.”

“커브를 예상하고 있다면 스미스의 말이 맞아. 하지만 라이트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걸? 삼진을 당하기 전까지 패스트볼 하나는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온다. 나는 그 공을 놓치지 않겠다.”

김민의 말대로였다.

라이트는 여전히 패스트볼을 노렸고, 웨이크는 다시 한번 커브를 선택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연속 헛스윙.

라이트의 장갑 안에 땀이 찼다.

‘젠장…… 계속 도망치기만 하다니.’

웨이크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3선발이었다. 라이트는 그 정도 되는 투수가 자신을 상대로 커브를 계속 던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나, 하나 정도는 존으로 들어올 거야.’

그러나 세 번째 공도 커브.

이번 공은 낮게 떨어지는 볼이었다

“후우…….”

라이트는 공을 간신히 고르곤 호흡을 조절했다.

‘카운트 1-2, 이번에는 반드시 승부구가 온다.’

그는 웨이크의 손끝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나 이번 공도 패스트볼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

그가 혀를 차는 순간 공이 배트를 지나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패스트볼과 같은 궤적으로 날아오다가 떨어진 공.

그 공은 바로 체인지업이었다.

“웨이크의 체인지업이 완벽하게 통했군.”

웨이크는 라이트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6번 타자 스나이더마저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곤 이닝을 마쳤다.

“장타를 3방 맞은 것 치고는 실점이 적군.”

“킴을 상대로 2점은 적은 게 아닙니다. 그의 지난 시즌 평균자책점은 1점대 초반에 불과합니다.”

호이스 감독도 김민이 뛰어난 투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시즌의 성적을 이번 시즌까지 이어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는 지난 시즌이 김민의 몬스터 시즌이었다고 생각했다.

“킴은 뛰어난 투수야. 2점대 초반 정도의 평균자책점을 언제든 찍을 수 있는 투수지. 하지만 1점대 초반은 몬스터 시즌이 아니고는 불가능해.”

2회 초.

김민은 4번으로 자리를 바꾼 라파엘과 끈질긴 승부를 펼쳤다.

탁!

“파울!”

라파엘이 소매를 걷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킴, 이번 시즌만큼은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거야.’

그는 감량을 통해 배트 스피드를 지난 시즌보다 더 높인 상태였다.

- 약물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오프 시즌 동안 약물과 함께 식이요법을 병행하는 독특한 트레이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그는 배트 스피드를 3% 이상 증가시킬 수 있었다.

카운트 2-2.

김민이 승부구를 선택했다.

‘이번 공으로 잡는다.’

슉!

빠른 공이 한가운데로 날아왔다.

‘스플리터인가?’

라파엘은 스플리터라고 해도 그냥 보낼 생각이 없었다.

‘어퍼 스윙으로 쳐낸다.’

스피드가 확보되었기에 그는 다른 타자들보다 공을 조금 더 볼 수 있었다.

배트가 큰 호를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잡았다!’

하지만 김민이 던진 공은 떨어지면서 옆으로 이동했다.

횡과 종.

양쪽의 무브먼트를 다 가지고 있는 공.

이 공은 바로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93마일(150km) 투심 패스트볼.

호이스 감독은 라파엘의 삼진에 혀를 찼다.

“이번 시즌도 1점대 평균자책점이군.”

김민은 5, 6번 타자마저 삼진으로 돌려세우곤 2회 초 수비를 마쳤다.

“대단합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4, 5, 6번을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습니다.”

“킴이 지난 시즌 MVP의 위용을 다시 한번 보여 주는군요.”

“메이저리그 최강 투수 킴은 이번 시즌도 건재합니다!”

보스턴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소식은 선발 투수인 웨이크가 안정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2회 말 그는 탬파베이의 하위 타선을 가볍게 처리했다.

“웨이크의 제구가 좋아졌습니다.”

“그런 것 같군.”

김민과 웨이크, 두 투수는 2회부터 6회까지 0의 행진을 이어갔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턱을 쓰다듬었다.

“일방적인 경기가 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군요.”

“산체스도 잠잠하군.”

산체스는 첫 타석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준 뒤, 다음 두 타석에서는 삼진과 2루수 플라이로 미숙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산체스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메이저리그에 막 데뷔한 루키가 매 타석 안타를 때려낼 수는 없겠죠.”

딱!

강하게 맞은 타구가 중견수 키를 넘어갔다.

“윌리엄이 친 타구가 펜스까지 굴러갑니다.”

3번 타자 윌리엄의 첫 안타는 펜스까지 굴러가는 2루타.

“윌리엄이 이름값을 하는군.”

“언제든 한 방을 쳐줄 수 있는 친구죠.”

탬파베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아울의 적시타와 희생타 그리고 상대 실책을 묶어 스코어를 4-0까지 벌렸다.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문 수석 코치의 말에 호이스 감독이 미간을 좁혔다.

“아직 우리 공격은 2번이나 남아 있어.”

그는 김민의 투구수를 체크하며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8회 초.

보스턴 레드삭스 공격.

선두 타자 코버가 2루수 칼튼의 실책으로 출루에 성공했다.

“보스턴이 무사에 주자를 내보냅니다.”

“제가 보기에 이번이 보스턴의 마지막 기회인 것 같습니다.”

TV 앞에 모여든 보스턴 팬들은 흥미진진한 8회 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한두 점 따라간다면 아슬아슬할 거야.”

“오늘 킴의 투구수는 평소보다 많다고, 여기서 실점하면 9회에는 볼튼이 올라올 거야.”

“볼튼과 보스턴 타선이라면 한번 해 볼 만하지.”

하지만 도루를 시도한 코버가 김민과 록튼 배터리의 피치아웃에 잡히면서 맥이 빠지고 말았다.

“코버! 2루에서 아웃입니다! 포수 록튼의 절묘한 송구가 나왔습니다.”

“이건 보스턴에게 치명타입니다. 순식간에 루상에 주자가 지워집니다.”

보스턴은 이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들은 9회 초 공격에서도 힘없이 물러나며 탬파베이에게 개막전 승리를 내주고 말았다.

최종 스코어 3-0 탬파베이 승리.

“탬파베이 레이스가 시즌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합니다!”

“오늘 승리 투수는 킴, 승리 타점은 산체스입니다.”

데뷔 타석에서 홈런을 때린 산체스는 승리 투수 김민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거물 신인의 탄생이야.”

“홈런을 친 뒤 반응을 봤어?”

“당연히 칠 홈런이었다는 반응이었지.”

“산체스는 크게 될 거야.”

반면 산체스와 함께 데뷔전을 치른 라이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클럽 하우스 한쪽에 앉아 있었다.

‘이게 아니었는데.’

4타석 3타수 무안타 2삼진.

팀에 도움이 된 것은 7회 말 나온 희생타 하나.

5번 지명 타자로 나선 것 치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다.

‘지금 당장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어도 할 말이 없다.’

고개를 숙인 그에게 누군가 다가갔다.

“나쁘지 않은 데뷔전이었어.”

나쁘지 않다고?

그를 놀리는 것일까?

라이트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었다.

“킴!”

그는 다음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오늘 완봉승을 거둔 팀의 MVP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민이 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승리 투수 인터뷰는…….”

김민이 미소를 지었다.

“오늘 스포트라이트는 모두 산체스가 가져갔어. 그리고 내가 완봉승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이제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기자들은 완봉승을 거둔 그보다 데뷔 타석에서 홈런을 때린 산체스를 취재하기 위해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반 감독이 인터뷰룸으로 먼저 데려간 것도 산체스였다.

라이트가 물었다.

“킴, 날 위로하려는 건가?”

나이는 라이트가 더 많았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경력은 김민이 훨씬 위였다.

“아니, 난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야.”

“그 말은…….”

“오늘 라이트는 나쁘지 않았어.”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는데도 말인가?”

김민이 그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

“타자는 안타만으로 팀 승리에 기여하는 게 아니야.”

라이트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나한테 해당되는 말이 아니야. 난 지명타자라고 수비를 하지 않는 내가 안타를 때려내지 못하면, 그건 내 몫을 하지 못한 거야.”

그는 수비를 면제받은 만큼 공격에서 그 이상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 투수가 보통 투수였으면 그렇겠지. 하지만 오늘 자네가 만난 투수는 웨이크였어. 보스턴 레드삭스의 3선발이라고.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루키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투수가 아니야.”

“하지만 산체스는 홈런을 때렸지.”

김민이 말했다.

“웨이크의 방심을 노렸기 때문에 나온 홈런이야. 실제로 웨이크는 다음 타석부터 철저하게 산체스를 내리 눌렀어.”

웨이크는 홈런을 맞은 뒤,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나는 패스트볼과 완급조절로 산체스를 상대했다.

결과는 대성공.

산체스는 안타를 추가하지 못한 채 경기를 마쳤다.

“킴이 그렇게 말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군. 내가 안타를 때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가? 하지만 매 타석 5개의 공을 던지게 한 건 좋았다고 생각해.”

라이트는 첫 타석에서 4개의 공을 던지게 한 뒤, 그 다음 타석에서는 6개, 그 다음과 마지막 타석에서는 5개를 던지게 했다.

“킴은 공을 오래 보는 타자를 좋아하는 모양이군. 하지만 그 정도로는 상대 투수의 힘을 빼놓았다고 할 수 없어.”

그는 머릿속에 10구까지 가는 긴 승부를 그렸다.

“볼넷.”

“응?”

“볼넷을 골라. 그러면 안타가 나올 거야.”

김민의 조언에 라이트가 미간을 좁혔다.

“5번 타자에게 볼넷은 별로야.”

라이트는 윌리엄과 아울이 베이스에 있을 때, 그들을 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라이트, 마이너리그에서 갓 올라온 루키에게 정직한 공을 던지는 투수는 없어.”

“…….”

“나라면 헛스윙이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유인구를 던질 거야.”

라이트의 머릿속에 웨이크의 투구가 떠올랐다.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나?’

라이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볼넷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건가?”

“투수에게 주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줘야 해. 그게 안 된다면 곧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게 될 거야.”

김민의 조언은 여기까지였다.

30분 뒤.

김민은 그렉스와 통화했다.

“라이트 말입니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안타는커녕 좋은 타구 하나 나오지 않았는데도 말인가?”

김민이 말했다.

“대화를 좀 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괜찮더군요.”

그렉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킴답지 않은데? 근거가 너무 빈약해.”

스윙 스피드가 빠르다.

안쪽 공 컨택이 좋다.

참을성이 있다.

그렉스는 이런 말들을 기대했다.

하지만 김민은 단순히 괜찮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괜찮을까?’

“내일 경기 결과를 보면 제 말이 들리지 않았다는 걸 알 게 될 겁니다.”

다음 날.

보스턴 레드삭스는 4선발 제크를 내보냈다.

“제크는 지난 시즌 데뷔한 2년 차 투수입니다. 지난 시즌은 주로 불펜에서 뛰었고, 선발 등판은 이번 경기가 3번째입니다.”

“선발 등판이 적은 투수를 4선발이 기용했다면 캠프 성적이 좋았던 모양이군.”

“시범 경기 성적이 좋았습니다. 3번 등판해서 21이닝 4실점입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의 대답을 들은 이반 감독이 질문을 던졌다.

“라이트와 상대 전적은 어떤가?”

어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던 5번 타자 라이트.

바이슨 수석 코치는 이반 감독이 그를 언급한 이유가 궁금했다.

“산체스가 아니라 라이트 말입니까?”

“라이트는 트리플A에서 오래 뛰었잖아. 4년이던가? 그 정도면 쓸 만한 데이터가 모이지 않나?”

바이슨 수석 코치가 대답했다.

“리그가 달라서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 그것 참 아쉽군.”

이반 감독이 라이트에 대해 언급한 것은 그를 특별히 생각하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늘 경기 타순은 어제와 같이 가지.”

“라이트를 내리지 않는 겁니까?”

“한 경기로 타순을 바꾸진 않아.”

탬파베이 레이스는 어제와 같은 타순으로 경기에 임했다.

1회 초.

보스턴이 라파엘의 투런 홈런으로 선취점을 뽑았다.

“라파엘이 어제의 울분을 토해 냅니다.”

“클락으로서는 아쉬운 공입니다. 낮게 제구가 되었지만, 라파엘이 그대로 걷어 올렸군요.”

클락은 라파엘의 홈런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빌어먹을 약물! 정말 못 해 먹겠군.’

그는 아메리칸 리그 타자들 사이에 약물이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클락은 5번 타자 닉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곤 첫 번째 이닝을 마쳤다.

그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김민이 손을 들며 말했다.

“나이스 피칭.”

“홈런을 맞았는데도 나이스야?”

김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닉을 삼진으로 잡았잖아.”

“그래, 닉은 삼진으로 잡았지.”

클락이 수건으로 땀을 닦은 뒤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타자들이 힘을 좀 내줘야 할 것 같아.”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그저 그래.”

클락은 퀄리티 스타트를 하면 정말 잘 던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젠장 아침부터 재채기가 나오더라니…….’

1회 말.

탬파베이 공격.

보스턴 선발 투수 제크는 브라이튼과 산체스 그리고 윌리엄으로 구성된 강타선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웠다.

“포크볼인가? 상당히 떨어지는데?”

블렛소 투수 코치가 감독의 물음에 대답했다.

“노모에게 전수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음, 그 노모에게 전수받은 포크볼인가?”

노모 히데오는 지난 시즌까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선발로 뛰었다.

이번 시즌 그는 시애틀 매리너스로 팀을 옮겼다.

“우리 타자들은 떨어지는 공에 약한데. 어려운 경기가 될 것 같군.”

이반 감독의 예상대로 경기가 흘러갔다.

2회 말.

4번 타자 아울이 떨어지는 공에 크게 헛스윙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제크는 아울을 삼진으로 잡은 뒤 주먹을 꾹 쥐었다.

‘포크볼은 무적이야.’

그는 포수에게 공을 받은 뒤 다음 타자를 확인했다.

“5번 라이트.”

어제 데뷔전을 치른 지명타자.

‘나이가 잔뜩 찬 노망주라. 이 승부, 내가 질 리 없어.’

그는 어제 웨이크가 라이트를 어떻게 상대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초구는 커브. 아니, 내 경우는 포크가 낫겠지.’

제크는 손가락 사이에 공을 끼우곤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대로 떨어져라!’

한가운데로 날아가던 공이 마치 마법이 걸린 것처럼 홈플레이트 앞에서 떨어졌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갔지만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라이트가 초구를 골라냅니다.”

김민의 조언 덕분일까?

라이트는 어제보다 신중했다.

호이스 감독은 라이트의 배트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미간을 좁혔다.

“초구는 버린 모양이군.”

“제크의 포크볼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정면 승부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크가 두 번째 공을 구사했다.

이번 공도 떨어지는 포크.

라이트는 마치 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포크를 흘려보냈다.

“또 골라냈습니다! 이제 카운트는 2-0입니다.”

“라이트가 제크를 상대로 인내심을 발휘하는군요.”

제크는 라이트가 두 번이나 공을 흘려보내자 미간을 좁혔다.

‘걸어 나가겠다는 건가?’

그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했다.

‘난 포크만 있는 게 아니야.’

제크는 포심 패스트볼 그립을 잡았다.

‘안쪽으로 깊게.’

바깥쪽 패스트볼은 라이트가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슉!

빠른 공이 배터 박스 쪽을 향해 날아갔다.

‘빨라.’

예상한 것보다 빠른 공.

라이트는 배트를 내려다가 멈추고 말았다.

‘이건 칠 수 없어.’

파앙!

강한 패스트볼이 미트를 울렸다.

“97마일(156km) 패스트볼입니다.”

빠르고 강한 공이었다.

그러나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또 볼입니다!”

“제크, 너무 깊게 찔렀습니다. 오늘 주심인 칸터는 안쪽 깊은 공을 잡아 주지 않았습니다.”

제크가 실수한 것이라고는 주심의 스트라이크존보다 반개 정도 안쪽으로 공을 찔러 넣은 것뿐이었다.

“큭…….”

카운트는 이제 3-0까지 벌어졌다.

제크가 라이트를 노려보았다.

‘겁쟁이 녀석…… 절대 걸어 내보내지 않겠다.’

4번째 공은 바깥쪽 패스트볼.

그러나 포수는 고개를 흔든 뒤 포크볼 사인을 냈다.

‘여기서 포크라고? 3-0에서 카운트 잡는 공을 상대가 노린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선 상대가 노리고 있어도 패스트볼을 꽂아 넣어야 해.’

그는 재차 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그러자 포수가 못 이기는 척 미트를 두드렸다.

“사인이 길어. 제크가 당황하고 있는 모양이군.”

스미스가 김민의 말을 받았다.

“투수가 스트라이크존으로 던지는 걸 망설이는 게 아닐까요?”

“아니, 그 반대겠지. 상대는 5번 타자라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제크가 패스트볼을 밀어 넣었다.

슉!

빠르고 강한 공이 바깥쪽을 노렸다.

‘그대로 들어가랏!’

그러나 공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지 못했다.

따악!

강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높이 솟아올랐다.

“큰 타구입니다!”

탁!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은 지붕 구조물을 맞고 그라운드로 내려왔다.

“판정은?”

이반 감독이 주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인정 2루타입니다. 라이트, 첫 안타를 2루타로 장식합니다!”

캐스터가 핏대를 세움과 동시에 라이트가 1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해냈어. 메이저리그 첫 안타야.’

그는 김민의 조언이 아주 적절했다고 생각했다.

‘킴의 조언으로 공을 거르지 못했다면 안타를 치지 못했을 거야.’

타율이 2할까지 떨어진 산체스는 라이트의 2루타에 느끼는 것이 있었다.

‘끝까지 기다리고 친다. 좋은 판단이다. 우리 같은 루키를 상대로 정직하게 승부하는 투수는 많지 않아.’

그는 자신도 라이트처럼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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