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10화 (210/296)

210화 2004 스프링 캠프 04

시범 경기 종료까지 앞으로 7일.

탬파베이 레이스는 25인 로스터 중 23인을 확정했다.

“남은 것은 외야 한 자리와 투수 한 명인가?”

이반 감독과 코칭 스텝은 외야 한 자리에 유틸리티 플레이어인 멀린을 넣고자 했고, 홀먼 단장과 구단 스텝들은 중견수 돌먼을 원했다.

“돌먼이 좌익수와 우익수도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레이먼드 수비 코치가 고개를 흔들었다.

“중견수라고 해서 외야 모든 수비에 능한 건 아닙니다. 특히 돌먼은 좌익수 수비가 약하죠.”

“그것참 이상하군요. 중견수로 수비가 가능한 선수가 좌익수 수비가 안 되다니…….”

중견수 중 간혹 돌먼과 같은 선수들이 나타났다.

가장 수비 범위가 넓은 중견수 수비가 가능한데 좌우 코너 수비가 불안한 선수.

혹자는 이런 선수를 두고 상하 수비가 잘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견수도 상하 수비가 꼭 필요한 포지션 중 하나였다.

“그럼 좌우익 백업과 중견수 백업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군요.”

팽팽한 상황에서 한 사람이 입장을 바꿨다. 그는 바로 수석 코치인 바이슨이었다.

“중견수 백업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이반 감독의 시선이 바이슨 수석 코치를 향했다.

“바이슨, 좌우 백업보다 중견수 백업이 급하다는 건가?”

바이슨 수석 코치가 어깨를 으쓱했다.

“백업 때문이 아닙니다. 전 산체스가 맡은 중견수 포지션이 아무래도 불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반 감독은 산체스를 중견수로 강하게 밀고 있었다.

“산체스가 불안할 리가 있나? 그는 실전에서 좋은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 줬어.”

산체스는 시범 경기 내내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한 스포츠 매거진은 산체스가 이제까지 낮은 순번에 머물러 있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에 관한 기사를 내기도 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물러서지 않았다.

“시범 경기는 어디까지 시범 경기입니다. 포지션 결정은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홀먼 단장이 바이슨 수석 코치의 말에 힘을 실었다.

“우리도 바이슨과 생각하고 있네. 그리고…… 돌먼은 좌익수 수비가 안 되는 것이지 우익수 수비가 안 되는 건 아니야. 즉, 그를 백업으로 쓰면 우익수와 중견수 쪽은 커버할 수 있어.”

탬파베이가 외야 백업을 두고 고민하는 것은 새로 지명타자가 된 라이트가 외야 수비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탬파베이의 현재 야수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외야수: 윌리엄, 케니히, 산체스.

내야수: 아울, 브라이튼, 칼튼, 스나이더

지명 타자: 라이트

포수: 록튼, 스미스

내야 백업: 아담스, 칸터, 자일스

외야 백업 :

지명 타자인 라이트가 좌익수 백업이 가능하다면 탬파베이는 망설이지 않고 돌먼을 로스터에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트의 수비 포지션이 1루에 한정되면서 고민이 생겼다.

운영 팀장 코너가 손을 들었다.

“차라리 내야 백업을 한 명 줄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탬파베이는 현재 3명의 선수를 내야 백업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자일스나 칸터를 내리자는 말인가?”

“그것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수석 스카우트 베넨이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정말 열심히 이번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시범 경기 성적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중 한 명을 마이너로 내리기보다는 차라리 좌익수 쪽을 비워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외야 백업으로 돌먼을 넣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케니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는 산체스가 좌익수로 이동하면 됩니다. 이건 그가 좌익수 수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자료입니다”

베넨은 말을 마친 뒤 마이너리그 스카우트가 작성한 자료를 내밀었다.

“음, 여차하면 산체스를 좌익수로 옮기자는 말이군.”

“열심히 준비한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반 감독이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

“흠, 베넨이 저렇게까지 말을 하니, 산체스의 좌익수 수비를 한번 테스트해 보겠습니다.”

홀먼 단장은 남은 한 자리에 돌먼의 이름을 써넣었다.

“케니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산체스가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하지.”

남은 것은 이제 한 자리.

“10명의 투수 로테이션은 다음과 같습니다.”

10명의 투수 로테이션이 화면에 떠올랐다.

[선발 투수]

김민, 클락, 렉터, 설리반, 부르스

[불펜]

스페이츠, 라우리, 에르난데스, 슈트

[클로저]

볼튼

“불펜 한 자리가 남았군요. 이건 블렛소 투수 코치의 의견을 듣는 게 좋지 않을까요?”

코너는 투수 쪽은 현장에 양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불펜 투수 후보는 두 사람입니다. 첫 번째는 에두아르도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쪽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에두아르도인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스카우트 팀장 그레이였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그레이, 그는 이번 오프 시즌 동안 몸을 잘 만들어 왔습니다. 구속도 지난 시즌보다 1마일 정도 더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시범 경기 성적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노장의 마지막 투혼.

블렛소 투수 코치는 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카우트 팀장 그레이가 물러서지 않고 반대를 표했다.

“하지만 에두아르도는 나이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차라리 유망주를 한 명 더 올린다면…….”

홀먼 단장이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나도 그레이와 같은 생각이네. 블렛소, 유망주를 올리는 게 낫지 않겠나? 에두아르도는 나이가 너무 많아.”

블렛소 투수 코치가 다음 후보에 대해 말했다.

“에두아르도가 아니라면 카노가 적당할 겁니다. 하지만 이 친구…… 불펜에서 뛰기보다는 선발로 육성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음, 완전한 선발형 투수란 말인가?”

블렛소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노는 공이 좋지만 몸이 늦게 풀리는 선수입니다. 불펜 투수로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죠.”

홀먼 단장이 물었다.

“다른 투수는 없나? 에릭도 나쁘지 않을 텐데?”

“에릭은 지난 마지막 투구 때 손가락 부상을 입었습니다. 2주 정도는 등판이 힘들 것 같습니다.”

홀먼 단장이 혀를 찼다.

“결국 에릭의 부상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단 말이군.”

그는 고개를 이반 감독에게 돌렸다.

“감독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반 감독이 대답했다.

“전 에두아르도에게 기회를 줬으면 합니다.”

그러나 코너와 그레이는 여전히 에두아르도에게 기회가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에두아르도는 이미 은퇴했어야 하는 선수입니다.”

“젊은 선수들의 멘토는 이미 부르스가 하고 있습니다. 에두아르도가 합류하면 오히려 부르스가 거북해할 겁니다.”

홀먼 단장은 쉽게 결론이 나지 않자 테이블 끝에 앉아 있는 김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킴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민은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제가 말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니까요.”

김민이 목소리를 낮췄다.

“전 에두아르도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홀먼 단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라 말했다.

“킴,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에두아르도는 지난 시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하지만 그는 탬파베이에서 여러 시즌을 뛴 선수입니다. 전 그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그레이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실패할 기회라면…….”

김민이 살짝 톤을 올리며 말했다.

“시즌 초반 에두아르도가 나설 경기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가 나선다고 해도 팀의 승패와 직결되는 그런 상황은 아닐 겁니다. 점수 차이가 큰 상황에서 실패한다면 에두아르도는 미련 없이 은퇴를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마이너리그로 내려간다면, 그는 자신의 은퇴를 납득할 수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한다면…… 2주 정도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으로 유망주들이 어떻게 되진 않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그레이와 코너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는 대세가 결정되었다는 뜻이었다.

홀먼 단장이 남은 한 자리에 에두아르도의 이름을 써넣었다.

회의가 끝난 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김민에게 말했다.

“킴, 고맙네. 과거의 인연을 생각해 줬군.”

김민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과거의 인연 때문이 아닙니다. 팀을 위해 공헌한 선수를 잊는다면 그 팀은 잘 되기 힘들 겁니다. 전 팀을 위해 에두아르도를 추천했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살짝 주제를 바꿨다.

“2선발로 클락을 내려고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2선발은 김민의 뒤를 받치는 자리였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뿐인가?”

“블렛소는 설리반을 2선발로 원하는 것 같군요.”

블렛소 투수 코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렇게 티가 났나?”

“스프링 캠프 내내 설리반을 지도하셨으니까요.”

“이번 시즌 설리반이 일을 낼 거야.”

그는 설리반이 20승에 도전할 포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은 뭐라고 하시죠?”

“내 뜻에 따르겠다고 하셨지. 하지만 주변의 눈이…….”

“설리반이 2선발로 시즌을 시작하면 렉터와 클락이 실망할 것이라는 말이군요.”

“맞아.”

선발 투수들은 팀에서 자존심이 가장 강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자신의 편애로 팀의 케미스트리가 깨질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김민이 말했다.

“그럼 두 사람을 2, 3선발에 기용하고 설리반을 4선발로 내리는 게 좋을 겁니다.”

“그대로 가란 말인가?”

“2선발이 4선발에 비해 기회가 더 많은 건 아니니까요. 전 오히려 성적을 쌓기에는 4선발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물었다.

“순번에 의미를 두지 말라는 소린가?”

“그렇습니다.”

김민은 무리해서 2선발 자리에 놓지 않더라도 설리반이 에이스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면, 에이스의 성적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자네 말을 들으니,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군.”

이번에는 김민이 블렛소 투수 코치에게 물었다.

“카노 말입니다. 아직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키고 싶지 않은 거죠?”

블렛소 투수 코치가 움찔했다.

“들켰나?”

“와일드한 공이었습니다.”

스프링 캠프에서 만난 카노는 그 누구보다 크게 웃는 선수였다.

김민은 지금까지 그런 투수를 본 적이 없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그게 바로 카노야.”

“트리플A까지 거쳤는데 다듬어지지 않았다면 곤란한 게 아닐까요?”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이 아픈 곳을 찌른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에게 마이너리그는 놀이터 같은 곳이었어. 그래서 다듬어지지 않은 거야.”

“블렛소, 그 말대로라면 하루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키는 게 낫지 않습니까?”

블렛소 투수 코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는 카노가 메이저리그에 올라 기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꼭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완성되기 전에는 절대 메이저리그 콜업은 안 돼.’

* * *

개막 4일 전.

탬파베이는 25인 로스터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지난해보다 로스터 발표가 빠르군.”

“지난해가 너무 늦었던 거야.”

“그건 그렇고, 산체스를 중견수로 기용하려는 모양이군.”

“머레이의 빈자리를 신인으로? 하긴…… FA 시장에서 중견수를 구하지 못했으니…….”

탬파베이 레이스는 FA 시장에서 노장 중견수를 여럿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머레이를 대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범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준 산체스를 선택했다.

3시간 뒤.

트로피카나 필드.

구릿빛 피부를 가진 청년이 김민의 앞을 막아섰다.

“해냈습니다.”

그는 바로 산체스였다.

“25인 로스터에 들었나?”

“그렇습니다.”

25인 로스터 등록.

이는 메이저리그 데뷔를 의미했다.

“수고했군.”

김민이 지나치려 하자 산체스가 다시 한번 그의 앞을 막아섰다.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김민이 미소를 지었다.

“약속이라면…… 그렇군. 내가 도전할 기회를 준다고 그랬던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난 개막전 선발이 예정되어 있어.”

산체스가 멈칫했다.

‘개막전 선발이라면…….’

지금 공을 던지게 된다면 루틴은 물론 컨디션까지 변할 수 있었다.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강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김민이 그런 산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15분 뒤, 배터 박스로 들어와.”

그의 한마디에 산체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 애송이 하나 잡는 걸로 어떻게 된다면 에이스가 아니지.”

산체스는 즉시 더그아웃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사라진 뒤 클락이 나타났다.

“킴, 괜찮겠어? 개막전 선발이잖아.”

김민이 오른손을 들며 말했다.

“괜찮아.”

“정말로?”

“두 번 대답해야 하는 건가?”

“킴, 시즌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김민이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15분 몸을 풀고, 3분 정도 던질 거야. 그것으로 어떻게 될 어깨였다면 진즉 망가졌을 거야.”

그는 클럽 하우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그라운드로 나가 몸을 풀기 시작했다.

“킴이 왜 몸을 푸는 거지?”

“산체스와 대결한다는군.”

일찍 출근한 탬파베이 선수들이 배터 박스 주변에 몰려들었다.

“저녁 내기라도 하는 모양이군.”

“아니면 신인 기죽이기?”

“킴이 그렇게까지 하는 친구였던가?”

“두 사람 사이에 사정이 있는 모양이야.”

김민은 몸을 다 풀곤 스미스에게 말했다.

“스미스, 공을 받아 줄 수 있겠어?”

스미스가 장비를 착용하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록튼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미트를 꼈다.

“시작하군.”

“누가 이길까?”

“난 킴에게 걸겠어.”

“나도 킴.”

“젠장, 이러면 내기가 성립하지 않잖아.”

탬파베이 선수들은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김민이 산체스에게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김민은 연습 투구를 끝난 뒤, 산체스에게 말했다.

“원 아웃 시합이다. 안타를 치면 네 승리, 아웃을 잡으면 내 승리다.”

원 아웃 시합이라면 타자보다 투수에게 유리했다.

그럼에도 산체스는 항의를 하지 않았다.

“볼넷은 어떻게 합니까?”

김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도 내 패배로 하지.”

“좋습니다.”

산체스가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원 아웃 시합이라면 절대적으로 킴에게 유리하군.”

“산체스는 타이밍을 맞추다가 끝날 거야.”

윌리엄이 말했다.

“타이밍은 이미 잡혀 있어.”

“뭐?”

“윌리엄, 그게 정말이야?”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의 머릿속에는 지난번 대결이 아직 선명할 거야.”

칼튼이 혀를 차며 말했다.

“지난번 대결? 그럼 이게 처음이 아니란 말이군.”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산체스는 킴의 공을 목표로 하고 있어.”

김민은 스미스와 사인을 교환한 뒤 초구를 던졌다.

슉!

바깥쪽 낮은 코너를 노리는 패스트볼.

산체스는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철망을 때렸다.

“파울!”

주심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인 것은 배터 펜스 뒤에 선 윌리엄이었다.

김민은 윌리엄의 목소리를 듣곤 미소를 지었다.

“윌리엄이 판정을 맡아주는 건가?”

“주심 없는 경기는 말이 안 되니까.”

산체스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김민의 패스트볼이 빠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번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건가? 아니야. 이건 몸의 차이다.’

스프링 캠프 전과 개막전을 앞에 두고 있는 지금.

선발 투수의 몸이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1-2마일 정도 더 빠르다고 생각해야 할 거야.’

산체스는 배트를 세우곤 김민을 노려보았다.

“저 친구 눈이 무서운데?”

“그러게 말이야.”

두 번째 공은 낮은 커브.

산체스는 이 공을 골라냈다.

“카운트 1-1!”

김민은 공을 받곤 그립을 고쳐 잡았다.

‘좋은 눈은 여전하군.’

그는 안쪽을 향해 다시 한번 강하게 던졌다.

슉!

빠른 공이었다.

산체스는 그 공을 보곤 벼락처럼 배트를 냈다.

탁!

빗맞은 공이 그대로 3루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산체스는 파울이 나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쳇, 반 개 정도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지는 공이었어.’

카운트 1-2.

승부구를 던질 타이밍이었다.

‘그게 올 거야.’

산체스가 원하는 공은 단 하나.

라이징 패스트볼.

그는 그 공을 정조준 했다.

김민은 사인이 끝난 뒤 바로 투구에 들어갔다.

‘미안하지만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자네처럼 순진하지 않아.’

손끝을 떠난 공이 맹렬히 돌진했다.

슉!

‘바깥쪽?’

산체스는 크게 당황했다.

이럴 리가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김민이라면 한가운데로 강하게 공을 던졌을 것이다.

‘이건 하나 공을 빼는 건가?’

바깥쪽 공을 보여 주고 안쪽으로 승부구.

충분히 있을 수 있는 패턴이었다.

산체스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공의 궤적이 변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쉬익!

좌타자 바깥쪽을 향해 공이 돌진했다.

‘슬라이더!’

궤적을 읽었지만, 배트를 움직일 시간이 없었다.

‘당했다!’

파앙!

스미스의 미트에 들어온 공이 정확히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윌리엄의 외침에 산체스가 배터 박스에서 물러났다.

“제가 졌습니다.”

김민은 글러브를 벗은 뒤, 산체스에게 말했다.

“다음 승부는 올스타에 뽑힌 다음으로 하지.”

탬파베이 선수들은 김민이 산체스에게 던진 마지막 공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까 그 공 말이야. 백도어 슬라이더지?”

“맞아. 킴이 그런 공까지 던질 줄은 몰랐어.”

“산체스를 잡기 위해서는 그 정도가 아니면 곤란하다는 것 아닐까?”

“산체스는 아직 메이저리그를 한 게임도 뛰지 않은 루키야. 난 킴이 과하게 대응했다고 생각해.”

산체스는 자신에 대한 말들을 뒤로하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백도어 슬라이더. 킴의 승부구는 하나가 아니었어.’

그는 김민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김민의 새로운 무기를 알게 되어 기뻤다.

‘윌리엄이 한 말은 사실이었어. 웬만한 실력으로는 절대 킴을 잡을 수 없어.’

그는 윌리엄 이상의 타자가 되어야 김민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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