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2004 스프링 캠프 01
화려한 파티와 폭죽 그리고 함성.
시간은 2003년을 지나 2004년에 이르렀다.
“Happy New Year!”
사람들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보다 더 나은 성적을, 이번 시즌에는 반드시 우승을.
“두 번이나 실패했어.”
“그래 두 번이나 좌절했지.”
글래스를 든 채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은 지터와 포사다였다.
2002년과 2003년의 실패.
양키스 구단주는 두 번의 실패를 용서하지 않았다.
토린 감독이 팀을 떠났으며, 에이스 로저 클레멘스도 핀 스프라이트를 벗었다.
“우리를 믿지 못했던 것 같아.”
“초점을 제대로 잡자고, 믿지 못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제레미야.”
양키스는 우승을 위해 오클랜드의 4번 타자 제레미를 영입했다.
하지만 팀은 월드시리즈도 오르지 못한 채 아메리칸 챔피언십에서 탬파베이에게 무릎을 꿇었다.
“제레미도 입장이 그렇겠군.”
“1년 만에 4번을 내놔야 할 테니까.”
제레미에게 양키스의 4번을 빼앗은 선수는 바로 알렉스 로드리게스였다.
그는 데릭 지터와 함께 3대 유격수로 불리었지만, 사실은 그 이상의 선수였다.
“자네의 유격수 포지션은 어때?”
“원한다면 주겠어.”
포사다가 빙글 글래스를 돌렸다.
“그렇게 쉽게 내어 줄 수 있는 자리인가?”
“포사다 팀보다 중요한 선수는 없어.”
양키스의 유니폼 핀 스트라이프에는 선수의 이름이 없었다.
이는 ‘팀보다 중요한 선수가 없다.’라는 격언에 따른 것이었다.
“아메리칸 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가 합류했으니, 반드시 우승해야겠군.”
포사다가 미간을 좁혔다.
“난 조금 그래, 이렇게까지 해야 우승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구단주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급해졌다는 말이겠지.”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타자들이 양키스로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김민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야구는 팀 스포츠이고, 팀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다.”
그는 선수들에게 팀 캐미스트리를 강조했다.
“양키스에게 돈으로 우승 트로피를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도록 하자!”
2004년 1월.
탬파베이 레이스는 윈터 캠프라 불리는 트레이닝 캠프를 열었다.
참가 조건은 미혼에 25인 로스터 미포함 선수.
이는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는 탬파베이 캠프가 오프 시즌 선수들의 휴식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해 그 참가 인원을 제한한 것이었다.
“투수조가 7명, 타자조가 8명입니다.”
그렉스가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말했다.
“킴, 오프 시즌 팀 훈련은 원래 금지라고.”
“지난 시즌은 피칭 스쿨을 열 수 있었습니다만…….”
“그건 자네가 구단주가 아니었을 때였지.”
김민이 중심이 된다는 것은 구단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는 김민이 중심이 된 캠프를 구단 캠프로 해석했다.
김민이 스파이크 끈을 조였다.
“타자조는 그렉스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여행도 다녀왔고, 제대로 시작하도록 하지.”
그는 연말과 연초에 걸쳐 가족들과 12박 13일의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같은 기간 김민은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이번 일을 알리고,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명했다.
“무리는 말아 주십시오.”
김민의 걱정에 그렉스가 손을 흔들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그렉스가 여행을 마치고 탬파베이로 돌아온 것은 1월 5일.
캠프를 시작한 것은 1월 7일.
즉, 그렉스는 도착일을 제외하면 단 하루를 쉬었을 뿐이었다.
김민은 그것이 걱정되었다.
‘타자조는 조금 더 쉬어도 상관이 없다고 했는데…….’
그라운드로 나간 그렉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빨리, 더 빨리! 탬파베이 겨울은 눈이 없다!”
야수들은 그의 외침에 발을 빨리했다.
그렉스는 휴가를 보내고 있는 메이저리그 코치들 대신 다섯 명의 인스트럭터를 영입해 훈련을 돕도록 했다.
“선수가 15명인데 코치가 7명이군. 이쯤 되면 개인 교습이나 다름이 없어.”
한 코치가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탬파베이는 이번 캠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아.”
“여기 모인 선수 중에 25인 로스터에 합류할 수 있는 선수가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몰라. 제2의 킴이 나타날 수도 있는 거고.”
김민의 등장으로 탬파베이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었다.
만년 하위팀에서 디펜딩 챔프로.
그들은 이제 패배를 모르는 위닝팀이었다.
김민은 지난 캠프와 마찬가지로 체력 훈련을 강조했다.
“투수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하체와 지구력이다. 이 두 가지가 받쳐 주지 않으면 절대 좋은 공을 던질 수 없다.”
마이너리그 투수들은 반복된 체력훈련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입으로 불만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수가 2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한 김민이었기 때문이었다.
“킴은 우리와 같은 거리를 더 빨리 뛰고 있어.”
“오늘 얼마나 뛴 건지 모르겠어.”
선수들은 훈련이 끝나면 다른 일을 할 틈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훈련과 휴식이 숨 가쁘게 반복되었다.
김민은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하고, 데일리 코멘트를 달았다.
“킴, 열심이군.”
불이 꺼진 로비.
김민을 찾아온 것은 그렉스였다.
“양키스가 추격해 오고 있으니까요.”
그렉스가 김민 옆에 앉으며 물었다.
“이번 시즌도 이길 생각인가?”
“돈으로 만든 슈퍼 팀에 질 생각은 없습니다.”
“돈으로 만든 슈퍼 팀이라.”
그렉스는 캠프에서 선수들을 가르치며 자신이 구단 사장보다는 코치에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렉스, 타자 쪽은 어떻습니까?”
“그저 그래.”
그렉스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산체스는요?”
산체스는 김민이 회심의 카드로 데려온 선수였다.
“내일 라이브 타격이 있어. 직접 확인하도록 해.”
김민이 알고 있는 산체스라면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 줄 것이다.
“산체스가 잘해 주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그는 산체스가 양키스 격파의 선봉에 서길 바라고 있었다.
“40인 로스터에 한 번도 들지 못한 선수에게 너무 기대가 크군. 자네는 대체 산체스에게 무엇을 본 것인가?”
“미래를 보았습니다.”
“미래?”
“그는 훌륭한 선수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렉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그의 라이브 배팅을 보고도 그런 말을 나올지 모르겠군.”
12시간 뒤.
탬파베이 트레이닝 캠프.
“다음!”
그렉스의 지시에 따라 배터 박스에 들어선 선수는 바로 A. 산체스였다.
김민은 그렉스 옆에 서서 그를 주시했다.
‘얼굴은 내가 알고 있는 산체스가 맞다.’
산체스는 미첼 리포트에 등록되지 않은 선수였다. 그래서 김민은 더욱 그의 기량을 믿었다.
“시작해!”
산체스를 상대하는 투수는 더블A에서 올라온 에르난데스.
지난 시즌 성적은 8승 8패 평균자책점 4.12.
‘에르난데스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투수다. 내가 알고 있는 산체스라면 충분히 공략 가능해.’
초구는 빠른 공이었다.
팡!
“스트라이크!”
산체스는 배트를 내지 않았다.
“바깥쪽 빠른 공을 놓쳤어.”
그렉스가 미간을 좁혔다.
“공을 하나 봤을 뿐입니다.”
“그냥 놓친 거겠지.”
슉!
두 번째 빠른 공.
이번에도 산체스의 배트가 나오지 않았다.
“적극성이 부족해.”
그렉스는 마이너리그 타자라면 어떠한 공도 공략하겠다는 적극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산체스는 공을 두 개나 흘리면서 배트를 내지 않았다.
“다음 공을 보죠.”
에르난데스의 세 번째 공.
이번 공은 커브였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2루수 키를 살짝 넘겼다.
“안타!”
판정을 맡은 코치의 한마디에 산체스가 미소를 지었다.
“안타군요.”
김민은 나쁘지 않은 타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렉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적당히 하고 있어.”
“그게 무슨…….”
“이번 공, 산체스는 코스를 읽고 있었어. 하지만 스윙을 보라고 적당히 하고 있잖아. 저런 공은 안타가 아니라 홈런으로 연결했어야지.”
김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렉스, 산체스가 좋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만 배트를 휘두른다는 말입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아. 라이브 배팅 때마다 저런단 말이지.”
재능은 있는데 그것을 다 쓰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다음!”
그렉스의 외침에 다음 타자가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산체스를 고칠 방법이 없을까요?”
“그에게 절실함을 만들어 주고 싶단 말인가?”
“없다면 만들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렉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쉽진 않을 거야.”
라이브 배팅이 끝난 뒤, 김민은 산체스에 대해 자세히 조사했다.
“가족은…… 아버지가 큰 사업체를 하고 있군. 경제적으로는 부족함이 없겠어.”
경제적으로 산체스를 압박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형제는…… 형이 둘, 여동생이 하나.”
형제를 이끌어 갈 위치는 아니다.
“형이 성공한 스포츠 스타라면 형에 대한 투쟁심이 있을 텐데. 그런 걸 기대하긴 힘들 것 같군. 메츠는 어떻게 산체스의 절실함을 끌어낸 것이지?”
그는 순간 뉴욕 메츠의 타격 코치를 떠올렸다.
‘그를 스카우트 하면 될까? 아니야. 이건 우리가 생각해 내야 해.’
김민은 파일을 덮은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산체스, 킴의 호출이야.”
산체스는 동료의 전언에 고개를 갸웃했다.
“킴이?”
“그래, 구단주 호출이야.”
오늘 라이브 배팅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것은 홈런 2개를 친 알버트였다.
주변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여! 산체스 출세했구나.”
“구단주 대면이라니, 대박이야!”
“그대로 40인 로스터에 들어가는 거 아니야?”
산체스가 미간을 좁히며 동료에게 물었다.
“알버트가 아니라 나인 것이 확실해?”
동료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몰래카메라 같은 게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킴이 널 부른 건 라이브 배팅 때문이 아니라고 했어.”
“흠, 그럼 이유가 뭐지?”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2분 뒤.
똑. 똑.
산체스는 김민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낮은 목소리.
김민은 메이저리그 4년 차에 접어든 영건이었지만, 산체스의 몸을 움찔하게 만들 정도로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산체스입니다.”
산체스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왔군.”
김민은 꼬았던 다리를 펴며 산체스를 올려다보았다.
“오늘 라이브 배팅 말일세.”
산체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뭐가 라이브 배팅 때문이 아니야. 라이브 배팅 때문에 불렀구만……’
그러나 그는 미간을 좁힐 수 없었다.
김민은 구단주 이전에 이번 캠프를 총지휘하는 헤드 코치였다.
“오늘 3번 타석에 들어서서 안타 하나 볼넷 하나 그리고 삼진 하나더군.”
산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안타는 에르난데스에게 볼넷은 피츠, 삼진은 러시에게 당했어.”
산체스는 김민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몰라 답답했다.
‘왜 투수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걸까?’
김민이 말했다.
“산체스, 앞뒤 생략하고 묻도록 하지. 투수들을 봐주면서 배트를 휘두르고 있는 건가?”
꿀꺽.
산체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들킨 건가?’
그는 당황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뭐지? 에르난데스는 오늘 성적이 나쁘지 않았어. 자네에게 안타를 맞기 전까지 삼진 2개에 파울 플라이 하나. 반면 자네에게 삼진을 잡은 러시는 연속 2안타를 맞고 있었다고.”
라이브 배팅으로 캠프 탈락이나 40인 로스터 등록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단주와 인스트럭터가 보고 있는 앞에서 나쁜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메이저리그와 멀어진다는 뜻이었다.
선수들은 이것을 알고 있기에 최선을 다해 라이브 배팅과 피칭에 임했다.
“잘하고 있는 투수에게는 안타를, 부진한 투수에게는 삼진을. 자네는 균형의 수호자인가?”
“그게 아닙니다. 전 그냥 공을 노려서 쳤을 뿐입니다.”
“게스 히팅이라고?”
“그렇습니다.”
산체스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킴에게 들킬 줄이야.’
그는 천성이 착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캠프에서 낙오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에르난데스에게 친 안타는 그 자신을 위해서 러시에게 당한 삼진은 고전하고 있는 러시를 위해, 피츠에게 얻은 볼넷은…… 이건 설명이 잘되지 않는군.”
“킴, 억측입니다. 전 최선을 다해 라이브 배팅에 임했을 뿐입니다.”
김민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일 라이브 배팅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군.”
산체스가 멈칫했다.
“내일 라이브 배팅이 있단 말입니까?”
예전에 없던 라이브 배팅.
김민이 미소를 지었다.
“러시가 등판할 거야. 자네도 알다시피 러시는 오늘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 줬거든.”
“러시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아. 내일 라이브 피칭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싱글A로 돌려보낼 거야.”
러시는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라이브 피칭 이틀 전 배탈이 나는 바람에 정상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공을 던지고 말았다.
산체스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러시에게 삼진을 당해 준 것이다.
“킴! 러시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습니다.”
산체스의 변호.
김민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런 성격이었군.’
그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그래서?”
“다음 주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산체스, 지금이 며칠이라고 생각하나?”
“1월 24일입니다.”
캠프가 시작한 지 벌써 보름이 지난 상황.
“우린 한가롭게 러시의 부활을 기다려 줄 입장이 아니야. 곧 메이저리그 스프링 캠프가 시작한단 말일세. 그리고 자네 내가 왜 자네를 이곳에 불렀다고 생각하나?”
“그것은…….”
“난 러시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기 위해 자네를 부른 게 아니야. 자네 또한 탈락 위기에 있어. 내일 장타를 쳐 내지 못하면 자네 또한 더블A로 돌아가게 될 걸세.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나?”
산체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알겠습니다.”
김민은 그런 산체스를 보며 말했다.
“알았으면 나가서 배트라도 한 번 더 휘두르게.”
산체스는 고개를 숙인 채 김민이 방을 빠져나왔다.
“유망주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기 위한 캠프가 아니었단 말인가?”
그는 주먹을 꾹 쥐었다.
“제길…….”
러시를 상대로 장타를 쳐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2루타 이상 장타를 때려내며 러시는 그대로 싱글A행이었다.
이날 밤.
산체스는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그렉스는 워밍업이 끝나자마자 타자들을 집합시켰다.
“오늘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타석씩 라이브 배팅을 실시한다.”
산체스는 퀭한 얼굴로 그렉스를 주시했다.
‘시작하는군. 데스 게임이.’
그렉스는 산체스의 얼굴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곤 속으로 혀를 찼다.
‘킴이 어제 한소리를 한 모양이군. 킴, 다그친다고 해서 없던 절실함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그는 첫 타자로 산체스를 지목했다.
“산체스. 1번이다.”
산체스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예?”
“어서 배터 박스로 들어가!”
그렉스의 외침에 산체스가 바짝 긴장했다.
‘하필 내가 1번이라니…….’
첫 타석에서 장타를 맞게 된다면 러시의 자신감은 바닥을 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러시에게 삼진을 당해 줄 수도 없었다.
‘이번 캠프에서 탈락하면 스프링 캠프 초청도 물거품이야.’
스프링 캠프에 초청받지 못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구멍이 난다고 해도 메이저리그 콜업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가 배터 박스에 들어서자 한 투수가 마운드로 향했다.
산체스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뭐야! 러시가 아니잖아!”
마운드로 향하는 선수는 바로 김민이었다.
1시간 전.
“그렉스, 워밍업 이후에 라이브 피칭을 한번 하고 싶습니다.”
“킴, 라이브 피칭은 어제 했잖아.”
그는 이틀 연속 라이브 피칭은 투수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제 던진 투수가 아닌 다른 투수가 나설 겁니다.”
“음?”
김민이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제가 마운드에 설 겁니다.”
그렉스가 깜짝 놀랐다.
“뭣?”
“슬슬 공을 잡을 때가 되었습니다. 너무 오래 쉬었거든요.”
김민은 월드시리즈 이후 거의 공을 던지지 않았다.
그렉스는 갑작스럽게 공을 던지면 팔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롱 토스부터 시작하지 그래?”
“토스나 피칭은 이미 다 소화했습니다.”
“뭐야? 언제 그런 걸 하고 있었어?”
“훈련이 끝난 뒤, 실내 연습장에서 틈틈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렉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 못 당하겠군.”
그는 잠시 말을 쉬었다가 질문을 던졌다.
“라이브 피칭은 어떻게 할 건가? 배터 박스에 그냥 타자를 세워 두고?”
“아뇨. 제대로 던져야죠. 그래야 타자들에게 연습이 될 것 아닙니까?”
그렉스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위험한데?”
“지나친 걱정입니다. 상대는 마이너리그 애송이들입니다.”
“뭐, 그렇긴 하지.”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라이브 피칭을 받아들였다.
마운드에 선 김민은 산체스를 바라보았다.
‘산체스, 밤잠을 설치게 한 구단주가 상대라면 의욕은 충분하겠지.’
그는 오른손을 어깨에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