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204화 (204/296)

204화 탬파베이 레이스 02

탬파베이 레이스의 오프 시즌은 구단 매각으로 시작했다.

많은 이들은 탬파베이 레이스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매각 20일이 지난 지금 탬파베이 레이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홀먼 단장을 유입시킬 줄은 몰랐어.”

“그러게 말이야. 그렉스가 구단주라면 홀먼을 내칠 줄 알았는데.”

“홀먼이 자신에게 좋은 계약을 제시했기 때문에 그냥 두는 것 아닐까?”

“설마.”

탬파베이에 그렉스를 영입한 것은 지금 단장인 홀먼의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렉스는 그 때문에 홀먼을 유임한 것이 아니었다.

그와 김민은 홀먼이 뛰어나진 않아도 준수한 능력을 지녔다고 판단했다.

“킴, 홀먼보다 뛰어난 단장 후보는 돈을 많이 줘야 한다고.”

“동의합니다. 우리 팀 사정상 구단 스텝들에게 큰돈을 줄 수는 없죠.”

3명의 FA를 모두 잡기 위해서는 페이롤을 제외한 다른 부문의 지출을 최대한 억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렉스와 김민은 단장 홀먼은 물론 스카우트 팀, 계획운영 팀, 마케팅 팀 등 대부분의 직원을 그대로 유임시켰다.

“내부 FA 말이야. 우선 클락인데. 이 친구…… 노리는 팀이 많아.”

클락과 협상하는 것은 홀먼의 몫이었다.

하지만 홀먼의 협상 능력으로 클락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김민이 말했다.

“밀워키와 볼티모어가 노린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2년 연속 준수한 성적을 올렸으니까. 하지만 우리 팀을 나가면 성적이 다소 하락할 거야.”

데이터로 확인한 클락은 탬파베이에서 시프트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은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우린 이 점을 강조해야 할 것 같아.”

네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좋은 성적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팀에 남아 달라.

그러나 김민은 이 전략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에이전트를 상대로는 그 전략이 통할지 몰라도 선수를 상대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같은 조건이라고 해도 다른 팀을 선택할 겁니다.”

그렉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음, 그럼 어떻게 하지?”

“클락은 제가 맡아 보겠습니다. 그렉스는 부르스를 맡아 주십시오.”

부르스는 전성기에서 내려온 투수였지만, 탬파베이에 꼭 필요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흠, 홀먼이 나설 수도 있지만…… 킴이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좋아. 내가 부르스와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지.”

메이저리그는 FA 협상은 구단과 에이전트 사이의 싸움이었지만, 선수의 의향이 가장 중요했다.

김민과 그렉스는 팀 동료라는 이점을 살려 선수를 직접 공략하기로 했다.

* * *

다음 날.

그렉스는 탬파베이 시내에서 부르스를 만났다.

“부르스, 잘 지내나?”

부르스가 앞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구단주께서 왜 절 부르신 겁니까?”

“구단주라니, 호칭이 너무 거창해. 그냥 그렉스라고 불러.”

부르스가 입술 끝을 올렸다.

“그렉스, 너무 큰 도박을 한 것 아닙니까?”

“도박이라니, 탬파베이는 좋은 구단이야.”

“수익이 많이 남는 구단이 아닙니다. 차라리 펀드를 드시지 그랬습니까?”

“이 사람…… 그래서 발표를 했지 않은가? 새로운 구장을 짓겠다고.”

부르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방금 한마디 덕분에 세인트피터즈버그 팬들이 그렉스를 썩 좋아하지 않아요. 구단주로서 새 인사가 지역을 떠난다는 것이었으니…….”

그렉스는 두 손을 어깨까지 올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세. 트로피카나 필드는 위치가 너무 안 좋으니까. 그리고 탬파시에 새로운 구장이 건설된다고 해도 세인트피터즈버그 팬들이 오지 못할 정도의 거리는 아니지 않은가?”

“냉정히 생각하면 그렇죠. 하지만 사람은 냉정한 동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흘 전.

그렉스는 탬파 시장과 새로운 구장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

“탬파 시민들은 지금 상황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의 재정 상황을 고려할 때 새로운 구장에 대한 건설은 곤란합니다.”

“시에 신구장 건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구장을 건설할 때, 어느 정도의 지원이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시장은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를 머금었다.

“탬파베이 구단이 자체적으로 새로운 구장을 짓는다고요?”

그는 탬파베이 구단에게 새로운 구장을 건설할 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렉스의 대답은 그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였다.

“그렇습니다.”

시장이 놀람을 억누르며 물었다.

“자체적으로 구장을 짓는다면,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갈 텐데요?”

최신식 구장이라면 적어도 3억 달러(3,720억 원)는 필요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시에서 20% 정도만 부담해 주신다면…….”

20%, 비율로 따지면 큰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필요한 금액이 컸기 때문에 탬파 시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20%라면, 6천만 달러(744억 원)군요.”

그렉스가 물었다.

“안 되겠습니까?”

“안 될 것까지는 없지만, 시민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렉스가 말했다.

“구단 주변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과 스포츠 시설을 건설하겠습니다.”

“스포츠 시설이라면?”

“간이 야구장과 리틀 야구장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풋볼 연습장도…….”

“흠, 그 정도면 나쁜 것은 아니지만 6천만 달러의 반대급부라고 하기에는 좀 작지 않겠습니까?”

그렉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는 킴이 예상한 그대로군. 다음 카드가 중요한데. 이게 먹힐지 모르겠어.’

그가 시장의 두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메디컬 센터를 개방하겠습니다.”

“메디컬 센터라면?”

“탬파베이 선수들의 재활과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메디컬 센터를 구장 지하에 둘 생각입니다. 선수들이 치료를 받는 시간을 제외하곤 일반 시민들의 진료를 위해 이곳을 사용할 계획입니다.”

메디컬 센터 개방.

이것은 확실히 앞서 제시한 카드들보다 효과가 있었다.

‘킴의 말대로야. 시장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

시장이 말했다.

“무료로 개방하는 것은 아닐 테고…….”

“시에서 운영하는 병원과 같은 가격을 받겠습니다.”

미국의 민간 의료기관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운영하는 공공 의료기관보다 훨씬 비쌌다.

그렉스는 손해를 감수하고 같은 가격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었다.

탬파 시장은 확실히 메리트가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탬파베이 레이스 메디컬 센터는 저소득층 위주로 했으면 좋겠군요.”

“시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 보겠습니다.”

새로운 구장 건설을 위한 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렇다면 언제쯤 착공에 들어갈 예정입니까?”

“일단 부지를 확보해야겠죠.”

“시에서 제공하는 토지면 괜찮겠습니까?”

그렉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시에서 토지를 제공해 주시면 신구장 건설이 더욱 빨라질 겁니다.”

시장은 2년 뒤 연임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선거에 탬파베이 레이스 신구장 건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컬 센터 건설. 다음 선거에 사용하면 괜찮을 것 같군.’

그가 그렉스를 재촉했다.

“그렉스, 가능한 빨리 신구장 착공에 들어갔으면 좋겠군요.”

“시에서 협조해 주시면 계획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탬파 시장이 물었다.

“얼마나 당길 수 있습니까?”

“2005년 초반이면 될 겁니다.”

시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탬파베이는 겨울에도 충분히 공사할 수 있습니다. 2004년 후반기로 잡아 주십시오. 물론 신구장 건설을 위한 행정 편의는 충분히 제공될 것입니다.”

그렉스는 조금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시장의 비위에 거슬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돈에 땅까지 내어주겠다고 하는데 뒤로 물러서는 건 좋지 않아.’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2004년 후반기까지 계획을 당겨 보겠습니다.”

“그렉스, 부탁합니다.”

그렉스는 시장과 악수를 나눈 뒤 청사를 빠져나왔다.

* * *

푸른 바다.

하지만 망망대해는 아니었다.

근처에는 섬도 몇 개 보였고, 희미하지만 육지도 시야에 머물러 있었다.

“킴, 네가 그런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어. 우리하고 상의라도 좀 하지.”

김민이 낚싯대를 드리우며 말했다.

“연락이 갑작스럽게 와서 말이야.”

“계획이 있던 게 아니었나?”

“계획은 무슨, 월드시리즈가 막 끝났을 뿐이었어. 난 파티장을 전전하고 있었고.”

“그런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거야?”

김민에게 묻는 이는 클락이었다.

“구단에서 연 파티였던가? 아니, 지역 방송사에서 주최한 파티군. 파티가 끝난 다음 날이었을 거야. 그렉스가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하더군.”

클락이 고개를 갸웃했다.

“흠, 그렉스가 먼저 제안한 건가?”

“우리 구단이 위험하다고 하더군. 정확히는 빈스였지만…….”

클락은 배를 멈추곤 닻을 내렸다. 그리곤 김민의 옆으로 와서 낚싯대를 점검했다.

“그렇다면 그렉스가 구단을 매입할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군.”

김민이 손을 저었다.

“그렉스도 구체적인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어. 당시 그는 자신의 은퇴 인터뷰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하긴, 그렉스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로 했지.”

김민이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월드시리즈를 막 우승한 구단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소식에 급히 돈을 모으게 된 거야. 정말로 그것뿐이라고.”

클락은 월드시리즈 우승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장면은 그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빈스가 구단을 판다는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군.”

“그 비슷한 소문이 돌고 있었어.”

“그래서 움직인 건가?”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빈스보다 더한 녀석들도 있으니까. 팀 선수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팔고, 사무국에서 주는 보조금이나 타 먹으려는 녀석이 구단주로 온다고 해 봐. 지금까지 해 온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되는 거라고. 월드시리즈는 꿈도 꿀 수 없을 거야.”

클락은 김민과 그렉스가 급히 나선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가는군. 나라도 그랬을 거야. 물론 난 킴이나 그렉스처럼 금전적인 여유가 많지 않지만.”

“클락도 꽤 벌지 않았던가?”

“벌긴 했는데 쓴 곳도 많아서 말이야.”

클락은 탬파베이 북쪽에 작은 선착장이 딸린 저택을 가지고 있었다.

첫 FA 계약 때 받은 돈 대부분이 이 저택 구입에 들어갔다.

김민이 말했다.

“그럼 이번 FA 때 가장 중요한 게 금액이구나.”

클락이 피식하며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돈…… 은 아니지. 난 그냥 즐겁게 야구를 하고 싶어. 물론 헐값은 곤란해. 구단주 양반.”

김민이 낚싯줄을 감아올리며 말했다.

“헐값은 아니라고.”

“이 친구. 이제 보니, 계약서라도 가져온 것 아니야?”

“계약서는 아니지만…… 난 클락과 함께 뛰고 싶어.”

클락이 짧게 말했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그는 손을 내밀어 김민이 잡아 올린 물고기를 처리했다.

“작아, 이놈은 별로야.”

클락은 바늘을 빼낸 뒤 물고기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

퐁.

작은 파문과 함께 물고기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김민이 물었다.

“에이전트는 뭐라고 해?”

“6년 1,200만 달러.”

예상보다 큰 금액.

김민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뭐야? 그럼 총액이 7천2백만 달러(892억 원)인가?”

“그 정도 계약은 따낼 수 있다고 하더군.”

탬파베이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계약이었다.

‘에이전트가 생각보다 세게 부르고 있군. 클락이라면 10승 이상은 어떤 구단에서도 해 줄 수 있지만, 저 정도 금액이면 1선발은 아니라고도 2선발은 해 줘야 한다고.’

클락은 지난 시즌 렉터와 함께 2선발을 다투었다.

탬파베이에서는 그는 2선발로 보아도 무방했다.

하지만 다른 구단에서 뛴다고 하면 2선발로 나서긴 힘들었다.

그 이유는 클락이 탬파베이에서 수비 도움을 가장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클락은 원정과 홈 성적의 차이가 큰 투수 중 한 명이다. 그가 투수에게 유리한 트로피카나 필드를 떠난다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

김민이 물었다.

“구단주를 만났다고 허세를 부리는 건 아니지?”

클락이 바다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허세일 수도 있지. 하지만 난 가능하다면 그 금액을 받고 싶어. 내 마지막 FA일 수도 있으니까.”

그는 아직 젊었다.

그러나 30대 중반 이후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로 뛸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가능하면 많이 받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

“이쪽 계약은 곤란하겠네.”

클락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탬파베이는 얼마인데?”

김민은 단숨에 최고 금액을 이야기했다.

“5년 5천만 달러(620억 원).”

에이전트의 목표 금액과는 2천2백만 달러(272억 원)나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클락은 자신의 예상보다 높은 금액에 고개를 갸웃했다.

“킴, 그렇게 세게 질러도 되겠어?”

“클락은 그 정도는 받을 수 있는 투수니까.”

“후후후…… 선수 출신 구단주라서 그런지 후하군.”

김민이 아쉬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후한 금액이지만, 다른 구단 제시액에는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야.”

클락이 그의 옆에서 낚싯대를 드리웠다.

“그 정도라면 탬파베이에서 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김민이 고개를 돌렸다.

“클락? 괜찮겠어? 2천만 달러 이상 차이가 나는 계약이라고.”

“5천만 달러를 받으면서 우승권 팀에서 뛰는 것과 그저 그런 팀에서 7천만 달러를 받으면서 뛰는 것. 각자의 사정이 다르겠지만, 난 전자를 선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페이컷 개념이 자리 잡히지 않는 시대였다.

클락의 발언은 시대를 앞서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클락이 5천만 달러를 선택하면 난 기쁘겠지만, 조금은 더 생각해 봐.”

클락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킴, 자네는 지금 누구 편을 들고 있는 거야?”

“나? 난 당연히 친구 편을 들고 있지.”

클락은 그가 냉철한 구단주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킴, 모두 함께 뛰기 위해서 탬파베이를 사들인 거잖아.”

“그건 그렇지. 돈을 생각했다면 탬파베이가 아니라 다른 곳에 돈을 썼겠지.”

그는 미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애플이나 구글 같은 곳에 투자했다면, 금전적으로 확실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클락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돈만 생각하면 밀워키 같은 팀에서 뛰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그곳은 썩 재미있는 곳이 아니지. 양키스 녀석들하고 정면 대결할 수도 없고. 그곳에서 뛰게 된다면 월드시리즈는 머나먼 이야기가 될 거야. 게다가 결정적으로 바다가 없어. 킴, 난 여기가 좋아. 넓은 바다가 있잖아.”

밀워키는 오대호에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바다는 없었지만, 물이 없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클락이 원하는 것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였다.

“클락…….”

클락이 말했다.

“킴, 또 우승하자고.”

“그래, 우승해야지.”

“그리고 우승 반지는 제대로 만들어 줘.”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지.”

클락과 함께 바다로 나오기 전, 김민은 오랜 설득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락은 그의 예상과 달리 2천만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페이컷하는 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 * *

“클락이 계약했더군.”

“잘 잡았지.”

두 사람은 낡은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이제 내 차례인가?”

“아마도.”

부르스와 그렉스는 벌써 3번째 만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렉스. 왜 홀먼이 아니라 자네가 나서는 건가?”

그렉스가 대답했다.

“내가 나서는 게 더 깎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으…… 이 만남이 싫어지려고 하는데?”

“농담이야. 홀먼은 기계적인 친구니까. 인간미가 없다고 할까? 내가 아는 부르스는 그런 친구를 싫어할 거야.”

부르스가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

“난 홀먼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에이전트는 다를 수도 있다고.”

“에이전트에게 계약을 일임할 생각인가?”

“지금까지는 그렇게 해 왔지.”

“…….”

부르스를 잡는 방법은 간단했다.

경쟁 구단보다 높은 금액을 부르는 것.

하지만 탬파베이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부르스가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얼마나 깎으려고 자네까지 온 건가?”

그렉스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하면 자네가 그 칼로 날 찌를지도 몰라.”

“그럼 이야기하지 말게.”

“3년 동안 매년 300만 달러(37억 원) 보장, 옵션으로 100만 달러(12억 원).”

“짜군. 3년에 1천만 달러(124억 원)라니.”

부르스가 시장에 나온다면 장기 계약은 어려워도 연간 500만 달러(62억 원)의 2년 계약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내가 그랬잖아. 자네가 날 그 칼로 찌를 수도 있다고.”

“뭐, 그 정도 금액은 아니야. 나도 시장 가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총액은 다른 구단과 같았지만, 탬파베이는 2년이 아닌 3년을 제시했다.

“1년을 다른 구단에서 싸게 뛴다면…….”

“적어도 2백만 달러(25억 원)는 더 받을 수 있겠지.”

부르스가 말했다.

“그렉스, 자네가 나라면 어떻게 할 건가?”

앞서 은퇴를 한 노장에게 그가 물었다.

“나라면? 글쎄…….”

그렉스는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부르스가 말했다.

“자네는 끝이 좋았어. 월드시리즈 우승과 함께 은퇴라니. 나도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그러려면 한 구단에서 오래 뛰는 게 좋겠지.”

그렉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르스가 계속해서 말했다.

“난 에두아르도처럼 되기 전에 은퇴할 거야. 박수칠 때 떠나는 게 좋지. 그렉스, 계약서를 가져왔나?”

그렉스의 두 눈이 커졌다.

“부르스, 설마?”

“탬파베이에 남을 거야. 자네도 좋지만, 난 킴과 록튼이 좋거든. 그 두 친구와 함께한다면 다시 월드시리즈 반지를 낄 수 있을 것 같아.”

다음 날.

부르스는 총액 1천만 달러 계약에서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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