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월드시리즈 챔피언 01
“팔꿈치 인대에 약간의 염증이 보입니다.”
팔꿈치 인대가 늘어났거나 끊어졌다면 토미존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토미존이라면 적어도 1년 길게는 1년 반 이상 쉬어야 한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물었다.
“인대에는 이상이 없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의사는 바이슨 수석 코치와 김민에게 염증이 심해지지 않도록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3년 동안 많은 공을 던졌다고 들었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3년 중 2년은 포스트 시즌을 던졌으니까요. 적은 투구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탁.
의사가 고개를 차트를 내려놓았다.
“휴식을 취하십시오. 적어도 3개월은 공을 잡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에 다시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민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건 증상에 비해서 너무 긴 휴식이 아닙니까?”
그도 다친 투수들을 여럿 경험한 코치였다.
인대에 발생한 염증은 주사나 약물로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었다.
의사가 목소리를 낮췄다.
“그렇게 수술대에 오르고 싶습니까?”
“…….”
“그게 아니라면 제 말을 따르도록 하세요.”
3개월 이상 휴식.
월드시리즈가 끝난 이후 적어도 스프링 캠프 때까지는 공을 만지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3개월이면 감각이 무너질 수도 있어.’
김민은 다른 투수들에 비해 많은 구종을 던졌다.
덕분에 손끝의 감각을 예민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휴식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병원을 나오며 말했다.
“7차전 등판은 무리겠어.”
“진통제를 맞는다면…….”
“킴.”
김민이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4차전에서 승리해 시리즈 스코어를 3-1로 앞서 나갔지만, 5차전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내주면서 3-2로 쫓기기 시작했다.
탬파베이는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한 경기만 이기면 시리즈를 끝낼 수 있었지만, 최강의 카드인 김민을 소모한 이상 시리즈 승리를 낙관할 수 없었다.
“킴, 동료들을 믿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배리 본즈라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4차전 김민에게 막혀 무안타로 물러났던 배리 본즈는 5차전 2루타 2개를 포함해 3안타로 폭발했다.
클락은 경기가 끝난 다음 배리 본즈에게 맞은 2루타 2개가 모두 볼이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지금의 배리 본즈는 단순히 볼을 던지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대야.’
바이슨 수석 코치가 김민의 걱정을 덜어 주려는 듯 말했다.
“그리고…… 홈으로 돌아왔으니, 타선이 살아날 거야.”
그는 탬파베이가 투수력으로 승부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화력전으로 나간다면 배리 본즈 한 사람이 버티는 자이언츠보다 우리가 더 낫다.’
브라이튼, 케니히, 윌리엄, 아울 그리고 그렉스.
세 사람 중 2, 3명만 폭발해도 탬파베이는 쉽게 리드를 가져갈 수 있었다.
“타지.”
바이슨 수석 코치의 차량은 은색 캐딜락이었다.
딸칵.
김민은 차문을 열고 보조석에 앉았다.
아늑한 느낌이 역시 고급 차였다.
“좋은 차네요.”
바이슨 수석 코치가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은퇴할 때 구입한 차를 아직도 타고 있다네. 자네라면 나보다 더 좋은 차가 있을 텐데?”
“아직 차를 살 생각이 없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불편하지 않나?”
“당분간은 택시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짧은 거리라고 해도 차를 이용하는 게 좋아. 탬파와 세인트피터즈버그는 치안이 좋은 편이지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거니까. 특히 자네 같은 슈퍼스타는 더 그래. 많은 팬이 자네를 지지하지만, 그중에는 단순히 지지하는 것 이상을 바라는 팬도 있다고.”
그는 김민에게 차량 구입을 추천한 뒤 엑셀을 밟았다.
부우우웅……
김민은 샌프란시스코에서 1차로 MRI를 찍었지만, 더 자세한 검사를 위해 오늘 탬파에 있는 종합병원을 찾았다.
“앞으로 1시간은 가야할 걸세. 잠을 자두는 게 어떤가?”
“아닙니다. 어느 기사에서 본 것인데 보조석에서 잠을 청하는 것은 드라이버를 피곤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미소를 지었다.
“야구만 생각하는 게 아닌 모양이군.”
“시즌 중에는 야구만 생각하려고 노력하지만, 오프 시즌 때는 다른 것도 종종 보고 있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차를 몰며 말했다.
“다른 것이라…… 그러고 보니 로버트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로버트는 FA로 팀을 떠난 마무리 투수.
탬파베이 시절 그는 독서광으로 소문난 선수였다.
* * *
“킴은 역시 무리인가?”
바이슨 수석 코치가 대답했다.
“인대에 큰 손상이 없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스프링 캠프까지는 공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반 감독이 목소리를 낮췄다.
“킴이나 페드로처럼 작은 체구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은 부상을 가장 조심해야 해.”
블렛소 투수 코치가 그 말을 받았다.
“다음 시즌에는 킴의 투구수와 이닝을 관리할 생각입니다.”
그는 김민의 내구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근 2시즌은 220이닝을 넘겼지만, 킴은 200이닝 전후로 던지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 그 이상은 몸에 무리가 갈 가능성이 크단 말이지.’
1년에 200이닝이라면 높은 승률을 유지한다고 해도 20승 전후밖에는 기대할 수 없었다.
역대 최고를 노리는 김민 입장에서는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10년 이상 롱런하기 위해서는 투구수와 이닝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6차전은 렉터인가?”
“렉터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클락이 완패를 당한 5차전.
탬파베이가 내세울 수 있는 선발 투수는 렉터, 설리반 그리고 부르스였다.
“7차전까지 간다면 설리반을 쓸 수밖에 없겠군.”
“6차전에서 끝내는 게 좋습니다.”
“그게 좋은 걸 누가 모르나? 상대가 순순히 져 줄 생각이 없으니까 그렇지.”
6차전 자이언츠의 선발 투수는 최강의 싱커볼러 브로닝겐이었다.
“타선이 터지지 않는다면…….”
“힘든 경기가 되겠지.”
샌프란시스코는 3-2로 뒤처져 있었지만, 3차전을 무실점으로 막아 낸 브로닝겐의 등판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브로닝겐이 6차전을 잡아준다면, 7차전에서 승부를 걸어 볼 수 있어.”
“라이브도 힘을 보텔 거야.”
월드시리즈에 더 이상 등판하지 못하는 김민과 달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라이브는 7차전에 등판해 2, 3이닝 정도는 던질 수 있었다.
“디펜딩 챔프의 힘의 발휘되는 건 지금부터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그 팬들은 순순히 우승 트로피를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 * *
월드시리즈 6차전
트로피카나 필드는 만원이었다.
“탬파! 고! 탬파! 고!”
탬파베이를 응원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트로피카나 필드를 휘감았다.
“대단한 응원이군요.”
“오늘 시리즈 승자가 결정될 수도 있으니까.”
“오늘 탬파베이가 우승한다면 탬파와 세인트 피즈버그는 잠을 자지 않는 날이 될 거야.”
이반 감독은 예상대로 렉터를 선발 투수로 결정했다.
“렉터, 이닝을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던지게.”
렉터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마운드로 향했다.
‘투구에 여유를 두지 말라는 소리군.’
1회 초.
렉터는 맥기에게 중전 안타를 맞으면서 불안하게 시작했다.
“맥기가 1루에 나갑니다. 샌프란시스코가 경기 초반부터 찬스를 잡습니다.”
2번 타자 해리스는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이 되었지만, 3번 타자 하울러가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치면서 상황은 1사 1, 3루로 변했다.
“1사 1, 3루입니다! 자이언츠!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다음 타자가 배리 본즈군요. 렉터 1회 초부터 상당히 괴로운 상황입니다.”
배리 본즈는 배트를 세우며 미소를 지었다.
“월드시리즈 트로피는 한 사람의 힘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러나 그의 미소는 곧 사라졌다.
“록튼이 일어납니다.”
“탬파베이가 배리 본즈를 거르는군요.”
1사 1, 3루 상황에서 고의사구.
“만루가 차라리 더 낫다는 판단이군요.”
“탬파베이가 테닝험을 너무 얕보는군.”
“그것보다는 배리 본즈가 너무 두려운 겁니다.”
자이언츠 코칭 스텝은 탬파베이의 선택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리 본즈 1루로 향합니다.”
배리 본즈는 1루 베이스에 들어간 뒤 미간을 좁혔다.
‘킴이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탬파베이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되는군.’
이반 감독은 5차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볼도 2루타로 만드는 타자와 승부할 필요는 없다.”
렉터는 베이스에 가득 들어찬 주자를 보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1회부터 만루인가?”
만루는 분명 부담스러운 상황.
그러나 여기서 달아날 수는 없었다.
‘월드시리즈잖아. 어쩌면 이번 월드시리즈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후회가 남지 않게 있는 힘을 다한다.’
그는 록튼과 수비를 믿었다.
록튼은 주자를 확인하곤 시프트 사인을 냈다.
‘주자 만루, 안타 하나면 2점을 내줄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수비 위치는 오히려 1, 3루보다 이쪽이 편해.’
잠시 뒤, 렉터가 초구를 던졌다.
슉!
바깥쪽 낮은 코스.
테닝험은 초구부터 배트를 휘둘렀다.
딱!
경쾌한 타격음.
이것은 분명 좋았다.
그러나 테닝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3루수 스나이더가 공을 잡아 2루에 연결합니다! 2루수 칼튼! 다시 1루로!”
5-4-3의 병살타.
“환상적인 수비 시프트입니다. 테닝험의 강한 타구가 3루 베이스 위에서 잡혔습니다.”
테닝험의 타구가 안타가 아닌 병살타가 된 것은 탬파베이의 시프트 때문이었다.
배리 본즈는 더그아웃으로 향하며 미간을 좁혔다.
‘3루수가 3루 베이스 위, 유격수가 2, 3루 사이, 그리고 2루수가 2루 베이스, 1루수가 1루를 지키는 수비 시프트. 이건 좌타자의 밀어치기를 저격한 수비야.’
자이언츠 선수들은 절호의 찬스를 날리곤 씁쓸하게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야 했다.
“저 녀석들…… 운이 좋았어.”
“쳇, 하필 수비수 정면이라니, 그것만 아니었다면 1점은 뽑았을 거야.”
피올라 감독은 단순히 운이 좋아 타구가 잡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탬파베이의 시프트는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 오늘 이긴다고 해도 내일은 장담할 수가 없겠구나.’
1회 말.
탬파베이는 브로닝겐에게 다시 한번 막히고 말았다.
“브로닝겐 세 타자를 모두 내야 땅볼로 처리합니다.”
“싱커가 멋지게 떨어지는군요. 윌리엄을 유격수 땅볼로 돌려세운 공은 구속이 93마일(150km)까지 나왔습니다.”
싱커는 변형 패스트볼 중에 투심 패스트볼과 함께 가장 빠른 스피드를 지니고 있었다.
93마일 싱커가 등장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브로닝겐의 싱커를 공략하지 못하면 오늘 경기는 끝이겠군.”
2회 초.
자이언츠 공격.
타순은 6, 7, 8번으로 이어지는 하위 타순.
록튼은 경기 전 김민의 조언을 떠올리며 사인을 냈다.
‘하위 타선을 장타력이 부족하니까. 높은 코스도 상관없다.’
볼 배합을 직접 한다고 가정하면, 포수는 투수 이상으로 경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슉!
초구는 바깥쪽 높은 코스.
일반적으로 이 코스의 공은 쳐 내기가 쉬웠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우익수 머리 위로 날아갔다.
하지만 이 공은 펜스를 3m 정도 앞에 두고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칼테라, 우익수 플라이 아웃입니다.”
김민은 윌리엄의 수비에 목소리를 높였다.
“윌리엄! 나이스 플레이!”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동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3회 그리고 4회.
스코어는 여전히 0-0, 어느 쪽도 점수를 내지 못한 채 경기가 흘러갔다.
“자이언츠는 주자를 꽤 내보내고 있는데 불러들이지를 못하는군요. 반면 탬파베이는 꽉 막혀 있습니다.”
“가능성만 보면 자이언츠 쪽이 높지만, 탬파베이도 저력이 있는 팀이라 속단은 금물이야.”
경기 시작 후 12타자 연속 범타.
탬파베이 타선은 퍼팩트로 막히고 있었다.
5회 말.
코스타 타격 코치가 대기 타석으로 들어가는 그렉스에게 말했다.
“그렉스, 자네가 해 줘야 할 것 같아.”
“농담이시죠? 저 친구는 93마일(150km)짜리 싱커를 던진단 말입니다.”
노장은 빠른 공에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였다.
“배트에 스치지 못할 정도로 빠른 건 아니잖아. 그리고 자네는 저것보다 더 빠른 싱커를 쳐 낸 경험이 있잖아.”
그렉스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건 젊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젊은 그렉스.
그는 하드 싱커로 유명했던 캐빈 브라운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쳐 냈다.
하지만 늙은 그렉스는 아니었다.
그는 브로닝겐에게 5타수 무안타로 철저하게 막혀 있었다.
딱!
아울의 배트에 맞은 공이 큰 바운드를 일으켰다.
“바운드가 큽니다! 2루수 키를 넘어가는 바운드! 탬파베이의 첫 안타입니다.”
4번 타자 아울의 안타.
이로써 탬파베이는 첫 주자를 1루에 내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득점은 장담할 수가 없었다.
다음 타자는 5타수 무안타의 그렉스였다.
“5번 타자 그렉스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그렉스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체력 문제일까요?”
체력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었다.
월드시리즈 6차전이 열린 날짜는 10월 31일.
정규 시즌이 끝난 지 정확히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젊은 친구들처럼 뛰고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미간을 좁히면서 배트를 세웠다.
슉!
안쪽을 파고드는 빠른 공.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4마일(151km).
‘싱커는 아니군.’
안타를 만들고자 했다면 이 공을 쳤어야 했다.
하지만 그렉스는 이 공을 놓치고 말았다.
“카운트 0-1, 브로닝겐이 셋 포지션에 들어갑니다.”
공이 투수의 손끝을 떠나려는 순간 아울이 스타트를 끊었다.
“아울! 빠릅니다!”
4번 타자 아울의 도루.
배터리는 물론 탬파베이 더그아웃조차 눈을 크게 떴다.
“이 상황에서 도루라고?”
그렉스는 2루를 향해 달려가는 아울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까지 이기고 싶단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배트가 힘차게 허공을 쳤다.
이 헛스윙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렉스의 배트는 공이 아닌 포수의 눈높이를 향하고 있었다.
‘배트가……’
배트가 잠깐 시야를 막은 것이 포수의 송구 타이밍을 늦췄다.
“테리! 2루에 공을 쏘지 못합니다!”
테리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2루에 공을 던지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빌어먹을…… 배트가 시야를 방해했어.’
“아울, 2루 도루에 성공합니다.”
브로닝겐은 도루를 허용했지만,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탬파베이는 4번 타자가 도루를 시도할 정도로 필사적이다. 여기서 그 필사적인 저항을 누른다면 완승을 거둘 수 있다.’
그는 가장 빠른 공으로 그렉스를 압도하고자 했다.
‘다음 공은 바깥쪽 코너다.’
슉!
공이 바람을 뚫고 날아갔다.
‘바깥쪽이군.’
그렉스는 다시 한번 배트를 움직였다.
‘카운트 0-2, 치지 못하면 삼진이다.’
그의 눈이 공의 궤적을 쫓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딱!
공이 튕겨 나갔다.
“타구가 1루수 키를 넘깁니다!”
아울은 홈을 향해 전력질주.
“아울이 홈으로 파고듭니다!”
우익수 해리스가 홈으로 송구했으나 아울의 발이 한 타이밍 빨랐다.
“세이프!”
주심의 판정과 함께 스코어 보드가 바뀌었다.
탬파베이 1:0 샌프란시스코
“탬파베이가 선취점을 뽑아냅니다.”
“그렉스가 브로닝겐을 상대로 무안타를 깨고 타점을 만들어 냈습니다.”
탬파베이 팬들은 그렉스의 이름을 부르며 열광했다.
“그렉스! 그렉스!”
경기의 흐름이 바뀐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그렉스의 안타 이후, 2루수의 실책이 나왔다.
이것은 잘 던지고 있던 브로닝겐마저 흔들어 놓았다.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펜스를 넘어갑니다! 스나이더의 쓰리런!”
5회 말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5-0까지 벌어져 있었다.
“틀렸어.”
“아직이야! 아직! 공격 기회가 남아 있다고.”
탬파베이가 유리한 고지에 올랐지만, 아직 승부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앞으로 4이닝을 더 막아 내야 했다.
“승부수를 던질 때가 왔군.”
이반 감독이 꺼내든 히든카드는 부르스였다.
“렉터가 내려가고 부르스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지금까지 잘 던지던 렉터.
호투하던 투수를 교체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이반 감독은 미련 없이 그것을 선택했다.
“이 경기에서 패한다면 모두 내 책임이다.”
월드시리즈에서 단 하나의 공도 던지지 않은 부르스.
누군가는 그의 실전 감각을 의심했고, 누군가는 부르스의 구위로는 자이언츠 타선을 막아 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부르스는 공으로 자신을 증명해 보였다.
2이닝 3피안타 1실점 2K.
완벽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탬파베이에게는 이것으로도 충분했다.
남은 이닝은 스페이츠와 록튼이 1이닝씩 나누어 막아 냈다.
탬파베이 6:2 샌프란시스코
월드시리즈 6차전 승리 팀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