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96화 (196/296)

196화 대관식 02

배리 본즈가 배트를 만지면서 두 눈을 감았다.

단풍나무로 만든 배트의 감촉이 양손을 타고 올라왔다.

‘좋은 느낌이야.’

배터 박스에 선 배리 본즈.

그는 바깥쪽 낮은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다.

슉!

패스트볼 구속은 대략 94마일(151km).

코너를 노리는 정확한 공이다.

배리 본즈는 몸을 숙인 채 배트를 강하게 돌렸다.

딱!

높이 솟아오른 공은 그대로 중앙 펜스를 넘어갔다.

“이미지 트레이닝인가?”

눈을 감고 있는 배리 본즈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라이브?”

본즈는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머릿속에서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었다.

라이브가 곁에 앉으며 말했다.

“본즈,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어.”

배리 본즈가 눈을 떴다.

“자네답지 않군.”

“자네 같은 천재는 내가 느끼는 압박감을 모를 거야.”

라이브는 자이언츠의 에이스로서 배리 본즈와 함께 6년을 함께 뛴 사이였다.

두 사람은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 반지를 손에 넣음으로써 최고의 동반자임을 입증했다.

“라이브, 자네는 천재를 능가하는 범재가 아니었던가?”

“지금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녀석들의 재능을 보면 내 한계가 명확하게 느껴져.”

“양키스보다?”

“양키스는 천재라기보다는 괴물 같았지. 하지만 저 녀석들은…….”

“천재라 그 말인가?”

라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배리 본즈가 짧게 말했다.

“6이닝 2실점.”

그는 라이브가 이 정도만 해 주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로 이길 수 있을까? 상대는 킴이야.”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해. 킴은 도망치는 친구가 아니니까.”

배리 본즈는 김민이 자신을 향해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키는 좀 작지만 괜찮은 녀석이야. 홈런을 맞더라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 테지.’

라이브가 두 손을 모았다.

“도망치지 않는다. 거친 도전자로군.”

“생각보다 영리한 친구는 아니야.”

배리 본즈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르는 것이었다.

그를 볼넷을 내보내면 심력 낭비는 물론 장타에 대한 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내일 경기에 이기면 2승 2패. 리핏(연속 우승)……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라이브, 자네는 우리 팀의 우승을 의심하고 있군.”

배리 본즈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우승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라이브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내내 탬파베이의 우승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원정에서 2패를 했으니까.”

“그건 원정이었잖아. 난 원정에서 4패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

“본즈, 자네는 홈 게임을 모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이지.”

배리 본즈는 홈에서 3, 4, 5차전을 잡고, 원정 6, 7차전 중 한 경기에 이겨 월드시리즈 반지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라이브는 여전히 비관적이었다.

“내가 이긴다고 해도 내일 조슈아가 무너지면 끝장이야.”

“조슈아는 두 번 실수하지 않아. 1승 1패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친구지.”

배리 본즈는 낙관적으로 시리즈를 보고 있었다.

“라이브, 자네는 참 이상해.”

라이브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소속 팀을 자네처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이는 드물 거야.”

“난 비관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팀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라이브는 배리 본즈라는 위대한 선수를 제외한다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짜임새가 그리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에이스가 나라는 것부터가 문제야. 월드시리즈에서 승리하려면 로저 클레멘스나 그와 동등한 에이스가 필요하다고.”

그는 랜디 존슨, 커트 실링, 로저 클레멘스, 요한 산타나, 페드로 마르티네스 같은 에이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리 본즈의 생각은 달랐다.

“위대한 에이스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어쩔 수 없는 요소야.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른 팀 중에는 위대한 에이스가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그리고 자네는 그리 나쁜 투수가 아니야.”

그는 에이스가 아니라 미치는 선수가 나오는 팀이 월드시리즈를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브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미치는 선수는 상대 팀에서 나오지 않았나?”

“상대팀에 누구?”

“킴이나 윌리엄 말이야.”

배리 본즈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두 사람은 미친 선수가 아니야.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을 뿐이라고. 나도 마찬가지고.”

그는 자신도 미친 선수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네나 킴도 아니라면 누가 미친 선수인가?”

배리 본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브로닝겐.”

3차전 승리의 주역 브로닝겐.

그는 탬파베이의 막강 타선을 완벽히 봉쇄했다.

“으음…… 확실히 어제 피칭은 대단했지.”

“브로닝겐이 6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낼 거야.”

피올라 감독도 배리 본즈와 생각이 같았다. 그는 시리즈가 6차전에서 끝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3번 타자 자리가 문제인데.”

마커 수석 코치가 물었다.

“하울러를 5번으로 내릴 작정인가?”

“킴이 본즈를 거를 가능성이 크거든.”

“난 킴이 본즈를 거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

“시리즈 4차전이야. 여기서 이기는 팀이 시리즈 분위기를 가져간다고. 기세 싸움을 할 때가 아니란 말이지.”

피올라 감독은 탬파베이가 2차전처럼 본즈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반 감독은 김민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킴, 오늘 경기를 자네에게 위임하겠네.”

“대타도 말입니까?”

“투수 타석에서 쓴다면 자네의 의견을 참고하지.”

김민이 말했다.

“대타를 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경기는 AT&T 파크에서 열렸기 때문에 내셔널 리그룰에 따라 선발 투수가 타석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배터 박스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말게.”

“손가락에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까?”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재능을 의심하진 않지만, 아메리칸 리그 투수들에게 배터 박스는 생소한 것이니까.”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공이 오면 휘둘러보겠다는 말이군.”

“제가 결승타를 칠 수도 있으니까요.”

김민은 말을 마친 뒤 몸을 풀기 위해 불펜으로 향했다.

월드시리즈 4차전 시작까지는 앞으로 1시간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 * *

“나이스 볼!”

미트에서 공을 뺀 것은 불펜 포수 라몬이었다.

“정말 좋습니까?”

“사실 평소의 80%야.”

김민은 라몬의 솔직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3일 쉬고 휴식이니, 그것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합니다.”

“손가락 통증은 어때?”

“괜찮아졌습니다.”

김민은 그 어떤 경기보다 4차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승리를 거두면 시리즈 분위기는 완전히 우리 쪽으로 넘어온다. 하지만 4차전에 패해 2승 2패를 허용한다면, 시리즈는 자이언츠 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그는 슈퍼 에이스인 자신이 등판하는 경기는 모두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팡! 팡!

“우리 쪽 공격이 시작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잠깐 볼까?”

“아뇨. 괜찮을 겁니다.”

김민은 몸을 푸는 데 집중했다.

“플레이볼!”

1회 초.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가 선공에 나섰다. 하지만 탬파베이 공격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잘 풀지 않았다.

딱!

“브라이튼의 잘 맞은 타구를 3루수 하울러가 처리합니다.”

이반 감독은 하울러의 호수비를 보곤 자이언츠 라인업을 확인했다.

‘하울러는 오늘 3번에서 5번으로 자리를 바꿔 출장했다. 하지만 타순 변화가 수비력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 것 같군.’

라이브는 계속해서 탬파베이 타선을 압도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눈이 좋은 케니히의 삼진.

캐스터는 신이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라이브! 케니히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이번 슬라이더는 아주 좋았습니다.”

라이브는 1차전 패배에서 벗어난 듯 탬파베이 테이블 세터를 간단히 처리했다.

“라이브의 피칭이 안정적이군요.”

“라이브는 언제나 안정적이지. 문제는 타선이야.”

피올라 감독은 타선이 김민을 상대로 얼마나 점수를 뽑아낼 수 있느냐에 승리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3점은 내야 해. 지난 1차전처럼 완봉으로 묶인다면 로저 클레멘스가 와도 이길 수가 없단 말이지.’

3번 타자 윌리엄.

그는 탬파베이가 가장 자신 있게 꺼낼 수 있는 카드였다.

그러나 그도 AT&T 파크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윌리엄,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납니다.”

삼자범퇴.

탬파베이의 월드시리즈 4차전 시작은 좋지 못했다.

“탬파베이, 어제 패배를 떨쳐 내지 못한 것일까요? 무기력한 모습으로 1회 초 공격을 끝냅니다.”

해설자의 마지막 멘트가 탬파베이 팬들을 조금씩 불안하게 만들었다.

1회 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공격.

김민은 상대 타자들의 눈빛이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트로피카나 필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군. AT&T 파크에서 승률이 높은 이유를 알겠어.’

1번 타자는 지난 경기와 같이 맥기.

‘맥기의 이번 시리즈 활약은 좋지 못해.’

평소라면 쉽게 잡아냈을 타자였다.

하지만 맥기는 4구까지 버티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살아 있는 눈빛은 느낌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배트를 짧게 잡고 가볍게 커트하고 있어. 이런 타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강한 공이 필요한데……’

김민은 맥기를 상대로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지고 싶지 않았다.

‘라몬은 80%라고 했지만, 오늘 컨디션은 아마 70%라고 가정하는 게 좋을 거야.’

그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체력을 아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리하지 말고, 허를 찌르자.’

김민은 그립을 고쳐 잡곤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휙!

큰 호는 맥기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이었다.

‘뭐야! 이 공은!’

그를 당황하게 만든 공은 바로 이퓨즈였다.

그러나 맥기는 뒤로 물러나는 대신 몸을 숙이면서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번트?’

타이밍이 전혀 맞지 않는 공에 스윙 대신 번트를 가져간 것이었다.

‘3루 쪽인가?’

록튼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공이 배트에 닿았다.

탁!

“맥기의 기습 번트!”

김민은 타구가 3루 라인을 따라 흐르는 것을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기다려!”

타구 방향이 좋았다.

이대로라면 3루수 스나이더가 공을 잡는다고 해도 타자를 아웃시킬 수 없었다.

‘남아 있는 가능성은 번트 타구가 라인을 벗어나는 것뿐.’

그는 스나이더가 공을 잡는 것을 막곤 타구를 주시했다.

하지만 맥기의 번트 타구는 끝내 라인을 벗어나지 않았다.

“맥기! 내야 안타입니다!”

피올라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스 번트!”

번트 하나에 목소리를 높이는 감독이 아니었지만, 이번 맥기의 번트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본즈 앞에 주자가 나갔어.”

지난 1차전.

김민은 본즈 앞에 주자를 지우며, 그와 정면 승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4차전은 전혀 다르게 게임이 흘러가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첫 공격에서 주자를 내보내는 데 성공했다.

“무사 1루. 샌프란시스코가 홈에서 힘을 냅니다.”

“킴, 선두 타자를 내보냈습니다. 스타트가 썩 좋지 않아 보이는군요.”

김민은 2번 타자 해리스를 확인하곤 셋업 피치에 들어갔다.

‘맥기라면 초구에 도두를 시도할 수도 있어.’

슉!

예상대로 투구와 동시에 맥기가 스타트를 끊었다.

록튼은 맥기의 움직임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잡았어.’

김민이 던진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이었다.

2루로 향하는 주자를 잡아내는 데 이 공보다 좋은 공은 없었다.

그러나 김민의 패스트볼은 록튼의 글러브에 들어오지 못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파울!”

‘아쉬운 기회를 놓쳤어.’

록튼은 경기 리듬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야수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대로 록튼이 공을 잡았다면 2루에서 맥기를 잡아낼 수 있었을 거야.’

맥기는 파울이 나오자 천천히 1루로 되돌아갔다.

“타임!”

타임을 먼저 외친 것은 김민이었다.

“킴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록튼은 주심에게 말을 남기곤 재빨리 마운드로 향했다.

“킴, 안 좋은 곳이라도 있어?”

김민이 글러브로 입을 가리며 대답했다.

“흐름이 좋지 않아서 한 번 끊었어.”

“맞아. 오늘 경기 흐름이 좋지 않아. 공기도 답답하고. 바람도 멈춰 있어. 이런 날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던데.”

AT&T 파크는 외야에서 홈으로 바람이 부는 것이 보통이었다.

오늘처럼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타구의 비거리가 길어졌다.

“바깥쪽으로 하나 더 가자.”

“오케이.”

김민과 록튼 배터리는 두 번째 공으로 바깥쪽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슉!

이번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하나 정도 빠지는 공이었는데 해리스는 배트를 내지 않았다.

파앙!

“볼, 볼입니다! 주자 움직이지 않습니다.”

“해리스가 공을 아주 잘 보고 있습니다.”

김민이 패스트볼을 두 번째 공으로 선택한 것은 주자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1루 주자 맥기는 조금 전과 다르게 어떠한 움직임도 보여 주지 않았다.

사실 이것은 피올라 감독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었다.

- 맥기, 지나친 움직임은 위험하다. 지금은 본즈에게 기회를 주는 게 좋아.

맥기는 1루 코치로부터 감독의 지시를 전해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리드폭을 줄이고, 확실히 타구를 본 뒤에 뛴다.’

김민은 맥기의 소극적인 움직임에 반신반의했다.

‘도루를 위한 페이크인가? 아니면 정말 도루할 의지가 없는 건가?’

어느 쪽이든 맥기의 움직임은 김민의 심력을 조금씩 소모시키고 있었다.

“킴, 1-1에서 3구 피칭에 들어갑니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에서 휘어졌다.

“다시 볼입니다. 해리스, 슬라이더를 참아냅니다.”

“킴을 상대로 유리한 카운트를 가져갑니다. 인내심이 많이 좋아졌군요.”

해리스는 김민의 슬라이더를 골라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공이지만, 집중하면 골라낼 수 있어.’

이반 감독은 불리한 김민의 볼 카운트를 보곤 물병을 들었다.

“목이 타는군.”

그는 물을 마신 뒤 블렛소 투수 코치를 불렀다.

“블렛소, 킴의 컨디션 말이야. 좋아 보이지 않아.”

“3일 휴식 후 피칭입니다. 평소보다 좋지 않은 게…….”

이반 감독이 블렛소 코치의 말을 끊었다.

“단순히 휴식이 부족한 게 아닌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이번 이닝이 끝나면 체크를 다시 한번 해 봐.”

“알겠습니다.”

탬파베이 팬들도 오늘만큼은 김민의 피칭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안타를 맞으면 무사 1, 2루야.”

“본즈 앞에 주자를 2명이나 두면 끝장이야.”

“주자를 2루에 보내더라도 타자만은 잡아내야 해.”

김민은 1루 주자를 확인하곤 공을 글러브에 넣었다.

‘무사 1루, 카운트는 2-1,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군.’

그는 호흡을 조절한 뒤 공을 강하게 챘다.

슉!

한가운데 빠른 공.

해리스는 가운데로 날아오는 공을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실투다!’

그는 좋지 않은 컨디션이 실투를 끌어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휙!

배트가 거친 바람을 일으키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본즈까지 갈 필요 없다. 내 선에서 끝내주마.’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공이 배트에 닿으려는 순간 거짓말처럼 공이 안쪽으로 휘어졌다.

‘빌어먹을!’

해리스가 속으로 욕을 내뱉은 순간 배트가 공을 밀어냈다.

탁!

느린 타구는 투수 옆을 지나 2루 베이스 쪽으로 향했다.

록튼은 타구의 방향을 읽자마자 콜 플레이에 들어갔다.

“유격수!”

“맡겨 달라고!”

유격수 브라이튼은 타구가 자신을 향해 올 줄 알았다는 듯 여유 있게 바운드를 처리했다. 그리곤 2루 베이스를 밟은 뒤 1루에 강하게 공을 던졌다.

파앙!

아울의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AT&T 파크 곳곳에서 낮은 한숨 소리가 들여왔다.

“아하…….”

“이런!”

“여기서 하필 이런 타구가…….”

해리스의 병살타.

달아올랐던 AT&T 파크의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킴, 해리스를 더블 플레이로 잡아내면서 자이언츠의 찬스를 소멸시킵니다.”

“멋진 투심 패스트볼이었습니다. 해리스가 완벽하게 속았군요.”

김민은 투심 패스트볼로 해리스를 잡아낸 뒤 담담하게 글러브를 내밀었다.

배리 본즈는 여유 있는 김민의 모습을 보곤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킴은 해리스가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그는 배트를 든 채 대기 타석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배리 본즈가 1회 말 타석에 들어서는 일은 없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높게 떠올랐다.

“머레이가 공을 쫓아갑니다.”

오늘 3번 타자로 타순을 옮긴 테닝험의 타구가 머레이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중견수 플라이 아웃! 샌프란시스코의 1회 말 공격! 소득 없이 끝납니다.”

“해리스의 병살타가 컸습니다. 병살타만 아니었더라면 주자를 둔 채 본즈가 타석에 임할 수 있었을 겁니다.”

피올라 감독은 입맛이 썼다.

“본즈 앞에 주자를 두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마커 수석 코치가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2사 2루였다면 킴이 본즈를 1루로 내보냈을 겁니다. 그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배리 본즈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마운드로 향하는 라이브에게 말했다.

“6이닝 2실점이야. 기억하라고.”

라이브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말을 받았다.

“염려하지 말라고. 오늘은 그 이상도 해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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