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야구의 신 04
“킴! 2회 초 첫 타자를 삼진을 돌려세웁니다.”
“첫 대결은 킴의 승리군요. 하지만 승부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본즈가 다음 타석에서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되는군요.”
배리 본즈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기 전 록튼에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공, 킴이 언제부터 던지기 시작했지?”
록튼이 미트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영업비밀이야.”
본즈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는 김민이 던진 마지막 공이 평범한 라이징 패스트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월드시리즈를 위해서 감춰둔 건 아닌 것 같고…… 위기의 순간 때문에 꺼내는 히든카드인가? 아니면 컨디션이 좋을 때만 던질 수 있는 공인가? 뭐, 어느 쪽이든 재미있는 싸움이 되겠군.’
김민이 그에게 던진 마지막 공은 업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본즈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난 같은 공에 두 번 당하지 않아.”
그는 차갑게 식었던 가슴에 불씨가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김민은 배리 본즈를 삼진으로 잡아내곤 미간을 좁혔다.
‘손끝이 찌릿찌릿해. 역시 완벽하게 회복된 것이 아니었어.’
손끝에 통증이 느껴지는 이상 업 라이징 패스트볼은 앞으로 잘해야 1개 정도 더 던질 수 있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라. 업 라이징 패스트볼에 의존하다가는 그것마저 분석되어 버릴 테니까. 본즈는 한두 구종을 잡을 수 있는 타자가 아니야.’
김민은 본즈가 더그아웃으로 돌아간 직후 타임을 걸었다.
“사인 미스입니다.”
록튼이 재빨리 마운드로 향했다.
“킴, 무슨 일이야?”
김민이 글러브로 입을 가리며 대답했다.
“한 타이밍 쉬려고.”
“뭐?”
“본즈를 상대했잖아. 본즈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1이닝 이상의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해.”
“그 정도인가?”
“그런 타자야. 배리 본즈는.”
김민은 휴식을 취하는 동시에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타임을 걸었다.
잠시 뒤, 록튼이 물었다.
“킴, 조금 더 있을까?”
“30초 정도.”
“괜찮을까? 주심이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데.”
“괜찮아. 타자에게도 준비할 시간은 필요할 테니까.”
배리 본즈 다음 타자는 5번 타자 테닝험.
테닝험은 4번 타자 본즈나 3번 타자 하울러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장타력이 아니었다면 자이언츠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민이 테닝험을 보며 말했다.
“테닝험이 별 볼 일 없는 타자였다면 본즈는 모든 타석을 고의 사구로 채웠을지도 몰라.”
록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타율은 조금 낮지만 한 방이 있는 친구야. 최대한 낮게 가자고.”
“오케이.”
록튼은 김민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홈플레이트로 돌아왔다.
“플레이!”
주심의 사인과 함께 경기가 재개되었다.
“킴, 초구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초구는 바깥쪽 낮은 코너를 노리는 패스트볼.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록튼은 테닝험의 큰 스윙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TV 화면 그대로군. 라이징 패스트볼이 아니라 평범한 패스트볼이었는데도 헛스윙이 나왔어. 테닝험은 바깥쪽 공에 확실히 약점이 있어.’
테닝험은 바깥쪽 공에 크게 헛스윙했으나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바깥쪽 낮은 코너는 타자의 눈에서 가장 먼 공, 헛스윙이 나온다고 해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헛스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깥쪽 낮은 코스는 테닝험의 말대로 타자의 눈에서 가장 먼 코스였다.
타자들 대부분 이 코스에 들어오는 공을 공략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바깥쪽 낮은 코스가 가장 타율이 낮은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타자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메이저리그에 콜업되기 전 이 코스의 약점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이 코스에 약점이 있는 경우는 메이저리그에 콜업 되는 것이 힘들었다.
메이저리그에 콜업 되었다는 것은 바깥쪽 낮은 코스를 공략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테닝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는 바깥쪽 낮은 코스에 여전히 약점이 있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클린업으로 뛰고 있었다.
‘약점을 지우지 않고도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건 나머지 부분이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는 뜻이야.’
김민이 본 차트에 의하면 테닝험은 안쪽 공에 그 누구보다 강했다.
‘안쪽은 온통 붉은색. 로케이션은 위험하다는 뜻이겠지.’
바깥쪽에 약하다고 바깥쪽으로만 던지면 결국에는 안타를 맞게 되어 있었다.
‘하나 정도는 더 던져도 괜찮을 거야.’
두 번째 공은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
테닝험은 이 공에 배트를 멈췄다.
록튼은 그의 배트가 멈추는 것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바깥쪽에 약한 것 치고는 잘 멈췄어. 약점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지 않은 건가?’
TV 중계진은 느린 화면으로 테닝험의 배트가 멈추는 것을 확인했다.
“테닝험, 배트를 잘 멈췄습니다. 이것으로 카운트는 1-1이 되었군요.”
“처음에는 존으로 들어오는 공이라고 생각해서 배트가 출발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배트를 멈췄다는 것은 패스트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죠.”
김민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바깥쪽에 약점이 있지만, 그렇게 허술하진 않다는 거군.’
그는 그대로 세 번째 공을 던졌다.
슉!
빠른 공이 안쪽 코스로 날아갔다.
‘훗, 바깥쪽 유인구가 통하지 않으니, 바로 안쪽인가? 어설프군.’
테닝험은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휘둘렀다.
인코스에 그 누구보다 강한 자.
그게 바로 테닝험이었다.
휙!
거친 바람과 함께 배트가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테닝험은 허공을 친 뒤,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퉤, 도망치다니!”
김민이 던진 빠른 공은 포심 패스트볼이 아니라 스플리터였다.
록튼은 미트에서 공을 뺀 뒤, 김민에게 던졌다.
‘인코스 괴물을 상대로 정면 승부할 리가 없잖아.’
그는 김민의 볼 배합이 여전히 좋다고 평가했다.
“킴이 좋군요.”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이반 감독과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의 컨디션이 평소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민은 자신의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끝의 통증, 예상보다 무거운 몸…… 평소의 70%인가? 완투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군.’
팀이 점수를 많이 뽑아준다면 7이닝 정도에서 투구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팽팽한 승부가 이어진다면 1, 2점 정도 실점은 각오해야 했다.
“자이언츠의 다음 타자는 6번 타자 칼테라입니다!”
칼테라는 에콰도르 출신 타자로 유연한 배트 컨트롤이 장점이었다.
‘어떤 공도 다 칠 수 있다는 칼테라. 하지만 그 말은 칭찬이 아니야. 모든 코스, 모든 구종에 배트가 나간다는 뜻이니까.’
김민은 안쪽으로 초구를 바짝 붙였다.
슉!
칼테라는 깜짝 놀라 엉덩이를 뒤로 뺐는데 공은 놀랍게도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자이언츠 투수 코치 체인저는 김민의 초구를 보고 낮은 신음을 흘렸다.
“음, 저 공은…….”
김민이 칼테라에게 던진 공은 라이브가 윌리엄에게 던졌던 공과 같은 것이었다.
“복사했군요.”
라이브의 한마디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복사라, 그건 아닐 거야. 라이브의 슬라이더는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니까.”
라이브는 슬라이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마이너리그에서 5년 그리고 프로에 와서 5년, 그것도 모자라서 팔꿈치 수술로 2년을 더했죠. 하지만 저 친구는 제가 12년을 투자한 공을 바로 던지는군요.”
그는 김민의 재능에 질투를 느꼈다.
“재능이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입니다.”
체인저 투수 코치가 말했다.
“라이브, 자네의 재능도 작지 않아.”
“하지만 킴의 그것에 비하면 반딧불 수준입니다.”
그는 김민이 하늘에 떠있는 별처럼 느껴졌다.
“킴은 분명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난 그것만으로 킴이 이 자리에 섰다고 생각하진 않아.”
라이브가 시선을 마운드에 고정했다.
“그가 노력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재능만으로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설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킴의 나이를 보십시오. 23? 24? 그 정도겠죠. 그 정도 나이라면 잠을 자지 않고 노력했다고 해도 제 노력의 절반 정도밖에는 되지 않을 겁니다.”
체인저 투수 코치가 그의 말을 받으려는 순간 공이 높이 떠올랐다.
“중견수 머레이가 전진합니다.”
머레이는 4m 정도를 달려와 글러브를 들었다.
팡!
높이 떠올랐던 공이 정확히 글러브에 들어왔다.
“머레이,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냅니다.”
“킴이 막고! 윌리엄이 치고! 탬파베이! 시작이 좋습니다.”
라이브가 글러브를 들며 말했다.
“상대의 재능은 분명 부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승리를 양보할 생각은 없습니다.”
“라이브, 난 자네를 믿는다.”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라이브는 탬파베이 타선을 막기 위해 마운드로 향했다.
2회 말.
탬파베이 타선은 라이브의 슬라이더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그렉스 영감은 몰라도 머레이는 쳐 줄 줄 알았는데 삼진이군.”
라이브는 그렉스, 머레이, 스나이더로 이어지는 타선을 삼진 2개와 내야 플라이 하나로 막아 냈다.
“윌리엄에게 맞은 홈런을 제외하곤 정타를 허용하지 않는 라이브입니다.”
“라이브는 지난 월드시리즈에서도 1승 1패를 기록했던 에이스입니다. 초반 대량 득점은 힘들 겁니다.”
지난 월드시리즈에서 라이브의 상대는 로저 클레멘스였다.
‘난 언제나 언더독이군. 하지만 나쁠 건 없어. 아래에서 위를 노리는 건 부담이 적으니까.’
3회 초.
김민은 7, 8, 9번으로 이어지는 하위 타순을 상대했다.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이야. 하위 타순이라고 해서 얕보면 곤란해.’
그는 세심하게 공을 컨트롤하며, 세 타자를 범타로 막아 냈다.
마지막 타자가 아웃된 순간 피올라 감독이 목소리를 높였다.
“마커, 난 더 이상 참지 못할 것 같아.”
마커 수석 코치가 감독의 한마디에 식은땀을 흘렸다.
“감독님, 아직 한 타순이 돌았을 뿐입니다.”
“두 번째 타석이 된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야.”
샌프란시스코 전력분석팀 하우저는 자이언츠 타자들이 최대한 공을 오래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을 기다린 결과는 참혹했다.
자이언츠 타자들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1루를 밟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더 지켜보면 어떨까요?”
피올라 감독이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페이스라면 세 번 타순이 돌면 경기가 끝나게 될 거야. 기다리는 건 이제 그만하지.”
“…….”
“마커, 봤잖아. 저 녀석은 제구가 좋아. 저 녀석을 상대로 기다리는 건 스트라이크를 2개 먹고 타석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피올라 감독은 타자들에게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할 것을 주문했다.
3회 말.
탬파베이 공격.
브라이튼은 2사 후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조합.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하지 않군.’
윌리엄은 그가 타석에 들어오기 전 이렇게 조언했다.
“라이브의 패스트볼은 대부분 유인구야. 스트라이크존에서 하나 정도 빠지는 공이 60%가 넘어. 노릴 거면 슬라이더를 노리는 게 좋아. 이쪽도 유인구가 적지 않지만, 패스트볼보다는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공이 더 많아.”
‘패스트볼을 버리고, 슬라이더를 노려라.’
브라이튼은 배트를 바짝 세웠다.
‘가능할까?’
록튼과 칼튼은 윌리엄이 가르쳐준 그대로 슬라이더를 노렸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
‘어쩌면 녀석은 우리가 노리고 있는 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지도 몰라.’
슉!
초구가 바깥쪽으로 들어왔다.
‘빠르다.’
순간 패스트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윌리엄은 패스트볼을 버리라고 했어. 하나 정도는 버리자.’
그가 배트를 멈춘 순간 공이 앞으로 뻗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4마일(151km).
평소보다 훨씬 빠른 공이었다.
‘94마일이라고? 이건 마음먹고 던진 거잖아.’
라이브는 패스트볼 구속과 슬라이더 구속이 비슷한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번 공은 슬라이더의 구속을 한참 넘어선 것이었다.
김민은 라이브의 구속을 체크하곤 혀를 찼다.
“두 번째 타석이 되자마자 볼 배합을 바꿨군.”
록튼은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볼 배합을 바꿨다기보다는 브라이튼을 견제하는 것 아니야? TV로 볼 때 저렇게 빠른 공은 몇 개 되지 않았다고.”
김민은 공의 숫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빠른 공을 계속 던질 필요는 없어. 타자의 머릿속에 94마일 이상 빠른 볼이 그려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라이브는 초구에 패스트볼을 던진 다음 두 번 연속 슬라이더를 던졌다.
브라이튼은 하나를 참고, 하나를 놓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카운트 1-2.
투수에게 유리한 상황.
김민이 짧게 말했다.
“다음 공이 중요해.”
록튼도 4번째 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승부구가 들어오겠군.”
“나라면 기다릴 거야.”
“기다린다고?”
“라이브는 상대를 힘으로 누르는 투수가 아니니까.”
김민의 예상대로였다.
라이브는 승부구로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졌다.
‘빠지는 공이다.’
브라이튼은 팔을 길게 펴면서 간신히 슬라이더를 커트해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관중석에 떨어졌다.
“브라이튼, 물러서지 않고 버팁니다.”
“예상하지 못한 공이 들어왔지만, 배트 컨트롤로 삼진을 막아 냅니다.”
브라이튼은 배트를 세우며 미간을 좁혔다.
‘라이브, 날 쉽게 생각하지 마라. 로저 클레멘스도 잡은 사나이니까.’
그는 성공을 위한 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안타! 안타입니다!”
“탬파베이가 2사 후에 주자를 내보내는군요.”
2사 주자 1루.
라이브는 모자를 벗었다.
“귀찮은 친구군.”
그가 던진 승부구는 안쪽에서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가는 슬라이더였다.
브라이튼은 그 슬라이더를 정확하게 쳐 냈다.
윌리엄은 브라이튼의 안타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그렇게 치는 거야!”
그는 자신의 조언이 드디어 통했다며 주변 동료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이반 감독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작전을 걸어 볼까요?”
“2사 1루. 히트 앤드 런인가? 상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실패한다고 해도 클린업부터 시작입니다. 성공한다면 안타 하나로 추가점을 얻을 수 있죠.”
득은 크고 잃을 건 적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 뜻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타자와 주자에게 빠르게 사인을 냈다.
‘히트 앤드 런. 성공하면 안타 하나로 3루 또는 홈을 노릴 수 있다.’
브라이튼은 사인을 받자마자 리드를 죽이곤 베이스 쪽으로 이동했다.
‘히트 앤드 런이라. 뛰지 않는다고 기만술을 펼치는 게 좋겠군.’
라이브와 포수는 이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도루보다는 타자를 믿는다는 건가? 하지만 완전히 베이스에 붙은 건 아니야.’
‘브라이튼처럼 발이 빠른 주자가 리드를 포기한다고? 이건 뭔가 있어.’
자이언츠 배터리는 브라이튼의 무브먼트를 수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초구를 과감하게 뺐다.
팡!
포수가 공을 받은 지점은 타자의 배트가 닿지 않는 곳이었다.
“피치아웃입니다!”
브라이튼은 순간 작전이 상대에게 간파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큰일이군.’
그는 있는 힘을 다해 2루로 달렸지만,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아웃!”
2루심의 선언에 바이슨 수석 코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제 실패입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자네의 실패가 아니야. 이건 작전을 건 감독의 실패지.”
그는 작전을 낸 코치보다 그것을 허락한 감독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주자의 그린라이트조차 결국에는 감독의 책임이다. 하물며 히트 앤드 런이야.’
라이브는 안타를 하나 맞았지만, 주자를 잡아내며 기분 좋게 3회 말을 끝낼 수 있었다.
“정확한 송구였어. 덕분에 깔끔하게 잡을 수 있었어.”
“주자 견제는 맡겨 달라고, 자신이 있으니까.”
자이언츠는 1점을 리드 당하고 있었지만,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4회 초.
김민은 자이언츠의 1, 2, 3번을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1번부터 3번…… 한 명이라도 내보내면 본즈에게 찬스가 간다.’
그는 배터 박스에 들어선 타자를 확인하곤 사인을 냈다.
- 초구는 바깥쪽 스플리터.
그가 유인구를 선택한 것은 1번 타자 맥기가 1회 초보다 배트를 짧게 잡았기 때문이었다.
‘배트를 짧게 잡았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두르겠다는 뜻이다.’
슉!
예상대로 바깥쪽 공에 맥기의 배트가 나왔다.
탁!
배트는 공의 윗부분을 때렸고, 공은 이내 바운드를 일으켰다.
“2루!”
록튼의 사인에 칼튼이 빠르게 전진했다.
“맡겨달라고!”
2루수 칼튼은 두 번째 바운드를 기다려 공을 잡았다.
‘좋았어. 제대로 캐치했어. 그대로 1루에 던진다!’
그는 빠른 스냅으로 공을 던졌다.
파앙!
1루수 아울의 미트에 들어온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아웃! 아웃입니다!”
피올라 감독은 초구에 맥기가 아웃되자 크게 화를 냈다.
“젠장! 공 하나로 아웃이라고!”
적극적으로 공격하란 지시를 내린 것은 바로 그였다.
“빌어먹을! 녀석 때문에 타자들의 타이밍이 어긋나버린 거야!”
피올라 감독은 모든 것이 하우저 때문이라며 그에게 욕을 한 사발 퍼부었다.
마커 수석 코치는 그런 피올라 감독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킴은 어차피 공략이 힘든 투수입니다. 어떤 작전을 썼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피올라 감독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대로 가면 끝장이야. 본즈 앞에 주자가 없다고.”
“없어도 괜찮습니다. 킴은 본즈를 피하지 않으려는 것 같으니까요.”
마커 수석 코치는 1점 차이라면 본즈가 어떻게든 동점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피올라 감독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아. 피하지만 않는다면, 본즈가 어떻게든 해 줄 거야.”
본즈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쓴 미소를 지었다.
‘날 마법의 지팡이로 아는 모양이군. 그건 그렇고…… 킴이 투구 스타일을 바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