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야구의 신 03
1회 말.
탬파베이 선두 타자는 브라이튼이었다.
“브라이튼, 지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날아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활약을 보여 줬습니다.”
“월드시리즈에서도 그 활약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하다면, 디펜딩 챔프를 상대하는 탬파베이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마운드에 선 투수는 모두의 예상대로 라이브였다.
김민은 1회 초 투구를 마친 뒤 불펜이 아닌 더그아웃에서 라이브의 투구에 집중했다.
“패스트볼과 같은 속도로 날아오는 슬라이더. 이건 단순한 양자택일이 아니야.”
브라이튼도 라이브의 슬라이더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셔널 리그라고 하지만 평균자책점 2점대는 무시할 수 없어. 에이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지.’
그는 라이브가 양키스의 빅3 라몬스 이상의 투수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상대하면 7이닝 2실점, 뭐 그 정도면 충분해. 오늘 우리 투수는 킴이니까.’
배트를 들자 초구가 날아왔다.
슉!
바깥쪽 코너를 향하는 빠른 공.
브라이튼은 마음먹고 배트를 돌렸다.
‘스트라이크라면 홈런, 아니라고 해도 카운트를 하나 내주는 것뿐이다.’
휙!
배트는 허공을 쳤고, 공은 미트에 들어왔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라이브가 브라이튼에게 던진 초구는 패스트볼이 아닌 슬라이더였다.
“초구부터 슬라이더군요.”
코스타 타격 코치가 입맛을 다셨다.
“라이브는 시그니처가 확실한 투수야.”
이반 감독은 처음부터 치고 나가는 건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이언츠가 배리 본즈 한 사람의 팀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그들은 양키스를 월드시리즈에서 잡은 디펜딩 챔피언이야.’
그는 냉정하게 자이언츠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자이언츠는 라이브 빼면 에이스라 불릴 만한 투수가 없었지만, 크게 기량이 떨어지는 투수 또한 없다. 특히 단단한 불펜진은 시리즈 내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거기에…… 투수진을 뒷받침하는 내야 수비는 메이저리그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강하다.’
사람들은 자이언츠를 창이라고 말했지만, 이반 감독은 그들이야말로 단단한 방패라고 생각했다.
‘배리 본즈라는 창을 빼면 모든 곳이 방패인 상대. 그게 바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다. 이번 시리즈의 승패는 우리가 가진 망치로 그 방패를 어떻게 깨뜨리느냐에 달려 있다.’
탁!
빗맞은 공이 뒤로 흘렀다.
“파울!”
브라이튼은 패스트볼을 놓치곤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한 타이밍이었는데 히팅 포인트가 어긋났어. 초구 슬라이더 때문인가?’
그는 배트를 짧게 잡은 뒤 배터 박스 안쪽에 붙었다.
“브라이튼이 바깥쪽 공에 집중하는군요.”
“이럴 때 안쪽 공이 들어오면 위험해.”
김민은 생각했다.
자신이라면 과감하게 안쪽 공을 꽂아 넣을 것이라고.
‘하지만 라이브는 아니야. 그는 브라이튼 같은 타자를 다른 방식으로 잡아냈어.’
슉!
바깥쪽 빠른 공.
브라이튼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바깥쪽에 붙은 타자에게 바깥쪽 공으로 승부하다니, 구위에 자신이 있는 건가?’
그는 슬라이더가 들어온다고 해도 컨택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엉덩이를 빼고 가볍게 밀면 2루수 키는 충분히 넘길 수 있어.’
하지만 라이브의 슬라이더는 브라이튼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휘어졌다.
‘이건 대체…….’
그는 엉덩이를 빼며 배트를 내밀었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허공을 쳤을 뿐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이반 감독은 라이브의 결정구를 보곤 낮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저 공은 치기 힘들 것 같군.”
블렛소 투수 코치는 라이브가 위닝 샷으로 사용한 슬라이더가 초구로 던졌던 슬라이더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력분석팀 말대로 라이브는 두 가지 슬라이더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크게 휘는 슬라이더 말인가?”
“전력분석팀에서는 S슬라이더라고 이름을 붙였더군요.”
“나도 들은 적이 있지.”
김민도 S슬라이더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는 라이브가 S슬라이더를 던질 때 몇 번이나 화면을 되감아 팁(버릇)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라이브의 S슬라이더는 일반 슬라이더와 폼과 릴리스 포인트가 일치했다.
‘라이브의 S슬라이더는 아마 그립을 다르게 쥐는 것일 거야.’
1번 타자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운 라이브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는 2번 타자 케니히를 2루수 땅볼로 잡아낸 뒤 3번 타자 윌리엄과 맞섰다.
‘윌리엄…… 탬파베이 타선의 중심이 되는 선수. 윌리엄을 제압하면 탬파베이 타선을 제압할 수 있다.’
라이브는 호흡을 조절하곤 슬라이더 그립을 잡았다.
‘이건 처음 경험하는 타자는 절대 칠 수 없는 공이지.’
그는 안쪽 코너를 향해 슬라이더를 던졌다.
슉!
우타자 안쪽으로 향하는 슬라이더는 그 종착점이 한가운데였다.
그래서 대부분 투수들은 이 코스에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았다.
그러나 라이브는 달랐다.
그는 안쪽 코너로 깊게 슬라이더를 찔러 넣었다.
우타자에게 이 슬라이더는 몸에 맞는 공처럼 느껴졌다.
열이면 아홉은 뒤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킬 수밖에 없었다.
라이브의 슬라이더는 바로 그 순간 스트라이크존으로 휘어져 들어왔다.
라이브는 윌리엄의 배트가 나오는 것을 보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뒤늦게 슬라이더를 따라가 봐야 좋은 타구가 나올 리 없지.’
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이 떠올랐다.
라이브는 고개를 돌려 공의 궤적을 쫓았다.
‘포물선이 높군. 하지만 펜스를 넘어가진 못할 거야. 아니, 저건……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했던가?
윌리엄의 타구는 그대로 좌측 펜스를 넘어갔다.
툭…….
비거리 410피트(125m).
캐스터가 순간 목소리를 높였다.
“윌리엄! 홈런입니다!”
선제 홈런에 해설자도 흥분했다.
“윌리엄이 넘겼습니다. 멋진 홈런입니다! 월드시리즈 첫 홈런입니다.”
라이브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그 완벽한 스윙은 대체…… 슬라이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건가?’
윌리엄은 묵묵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윌리엄! 윌리엄!”
탬파베이 팬들은 선제 홈런을 날린 3번 타자의 이름을 연호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동료들이 나와 그와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윌리엄, 멋진 홈런이었어.”
“어떻게 그런 홈런을 칠 수가 있어?”
윌리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킴 덕분이지.”
“킴?”
“어제 킴이 특별 훈련을 시켜줬거든.”
머레이가 고개를 김민에게 돌렸다.
“킴, 이게 무슨 말이야.”
김민이 윌리엄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대답했다.
“특별 훈련이라기보다…… 윌리엄의 좋은 눈을 조금 빌렸어.”
22시간 전.
김민은 윌리엄과 반복해서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윌리엄, 구별이 가능하겠어?”
김민의 물음에 윌리엄이 대답했다.
“힘들겠는데.”
“윌리엄이 힘들면 다른 타자들은 가망이 없군.”
김민이 윌리엄에게 보여 준 장면은 안쪽 코스로 들어가는 슬라이더와 패스트볼이었다.
이 두 가지는 같은 폼에서 나왔기 때문에 공이 휘어질 때까지 구별이 거의 불가능했다.
“산타나의 체인지업보다 폼이 좋아.”
눈이 좋은 윌리엄이 그렇게 평가했다면 더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복사한 것과 같은 폼으로 두 가지 구종을 던지는 투수라.”
“라이브를 넘지 못하면 월드시리즈 1차전 승리는 없다고 보는 게 좋을 거야.”
윌리엄은 라이브의 슬라이더와 패스트볼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볼 때 라이브의 공을 공략하는 건 어렵지 않아.”
김민이 물었다.
“뭔가 팁이라도 찾은 건가?”
“그게 아니라 두 가지 구종이 같은 스피드로 날아오잖아. 같은 타이밍으로 치면 되는 것 아닐까?”
“…….”
윌리엄은 김민의 냉담한 표정에 어깨를 으쓱했다.
“킴……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히팅 포인트가 완전히 다른 두 구종이야. 단순히 타이밍만 맞춰서는 아무 쓸모가 없어.”
“포인트를 패스트볼에 맞춘다니까.”
“가능하겠어?”
김민의 물음에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라이더의 궤적을 완전히 지우면 되잖아.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투 피치 투수는 많이 상대해 봤다고. 이게 가능한 녀석은 우리 구단에도 열은 될걸?”
“그런데 왜 화면에 나온 저 친구는 치지 못하는 걸까?”
윌리엄은 그 물음에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라이브는 투 피치에 가까운 투수. 슬라이더가 크게 휘긴 하지만, 못 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내셔널 리그 타자들은 그의 공을 쳐 내지 못했다.’
김민이 뭔가 말을 하려고 하자 윌리엄이 손을 들었다.
시간을 달라는 뜻.
‘단순히 투 피치가 아니야. 뭔가…… 뭔가 있어.’
그는 투 피치 투수 중 뛰어난 이들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랜디 존슨, 그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두 가지만을 던진다. 던지는 팔은 다르지만 구종은 라이브와 똑같다. 하지만…… 이쪽은 참고가 되지 않아.’
랜디 존슨이 던지는 두 가지 구종은 알고도 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구위를 자랑했다.
특히 2층에서 떨어지는 듯한 패스트볼은 김민의 떠오르는 공과 같은 마구였다.
‘스플리터와 패스트볼…… 투 피치인 친구들도 대부분은 패스트볼의 구위가 좋기 때문에 스플리터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어. 하지만 라이브는 패스트볼이 좋은 친구가 아니야.’
김민은 윌리엄이 답을 찾도록 시간을 주었다.
10분, 20분, 그리고 30분.
윌리엄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이유를 찾았어.”
“오래 걸렸군.”
윌리엄이 물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저건 이레귤러니까.”
“답은?”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야.”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타자들은 슬라이더를 무시하고 패스트볼을 공략하기가 힘들어.”
패스트볼을 유인구로 슬라이더는 결정구나 카운트 잡는 공으로.
일반론에서 벗어난 변칙 투구이기 때문에 타자들은 패스트볼만 노릴 수가 없었다.
윌리엄이 화면을 보며 말했다.
“차라리 슬라이더를 노리는 게 낫겠는데?”
“하지만 슬라이더도 정확히 이게 슬라이더라는 것을 알 수가 없어. 종종 슬라이더 코스에 패스트볼이 들어온단 말이지.”
라이브는 코스에 변화를 줘서 선택지를 두 개에서 넷으로 나눠버렸다.
윌리엄이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래도 슬라이더를 공략하는 게 낫겠어.”
“이유는?”
“라이브가 슬라이더를 안쪽으로 던질 때 말이야. 이렇게 안쪽 스트라이크존을 찌르거든.”
김민은 윌리엄과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기에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깊게 찌르는 패스트볼로 위장한 슬라이더를 치겠다는 건가? 하지만 화면에 나오는 것처럼 대부분의 타자들은 엉덩이를 빼면서 공을 피하게 된다고.”
“피하지 않고 맞서면 돼.”
“가능하겠어?”
“맞으면 1루, 그렇지 않으면 안타, 손해 볼 건 없어.”
투수가 던지는 공은 흉기와 같았다.
그것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민은 윌리엄의 홈런이 비범한 용기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있었다.
‘중세시대였으면 윌리엄은 용맹한 기사가 되었을 테지.’
라이브는 4번 타자 아울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곤 이닝을 마쳤지만, 입맛이 썼다.
“라이브, 표정이 좋지 않군.”
체인저 투수 코치의 물음에 라이브가 혀를 찼다.
“그 공을 맞을 줄은 몰랐습니다.”
“안쪽 공이었나?”
“슬라이더였습니다.”
체인저 투수 코치는 라이브의 대답에 멈칫했다.
“그 슬라이더를 쳐 냈다고?”
“예, 깔끔하게 홈런으로 연결했죠. 윌리엄이라는 녀석…… 천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탬파베이도 천재가 있었군.”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오늘의 주인공이 타석에 들어섰다.
“2회 초 샌프란시스코의 선두 타자는 배리 본즈입니다!”
야구의 신.
최강의 타자.
트리플 MVP.
록튼은 본즈에게서 그 어떤 타자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압박감을 느꼈다.
‘이것이 본즈인가?’
김민이 제대로 공을 던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킴, 록튼과 사인을 주고받습니다.”
김민의 초구 사인에 록튼이 깜짝 놀랐다.
‘킴 무리야.’
그는 급히 사인을 검토해달라는 사인을 냈다.
그러나 김민의 사인은 바뀌지 않았다.
‘본즈는 그 공을 쳐 낼 거라고.’
록튼이 미간을 좁혔지만, 김민은 그대로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휙!
큰 호를 그린 공이 미트를 향해 떨어졌다.
록튼은 호흡을 멈췄다.
‘배트가 나올 거야.’
김민이 배리 본즈를 향해 던진 초구는 이퓨즈였다.
팡!
록튼은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본즈가 이퓨즈를 지나쳤어.’
그는 지난 며칠 동안 김민과 함께 배리 본즈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본즈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이퓨즈나 느린 커브를 쳐 낼 수 있는 선구안과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퓨즈를 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냈다.
‘이유가 뭐지?’
김민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윌리엄의 홈런이 그를 자극했군.’
그는 배리 본즈가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본즈는 안타가 아니라 단숨에 동점을 만들 수 있는 홈런을 원하고 있었다.
‘이퓨즈는 완벽하게 쳐 내지 않는 이상 2루타가 한계. 본즈는 그래서 거른 거야.’
김민은 록튼에게 공을 받은 뒤 전광판을 확인했다.
‘카운트 0-1, 첫 단추는 나쁘지 않아.’
그는 나머지 두 개의 카운트에 집중했다.
‘할 수 있다. 본즈는 진짜 신이 아니야.’
슉!
두 번째 공은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고속 슬라이더.
본즈의 배트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멈췄다.
“볼, 볼입니다.”
“카운트는 1-1이군요. 본즈!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합니다.”
김민은 배리 본즈의 배트가 멈춘 것을 확인하곤 속으로 혀를 찼다.
‘쳇, 제레미라면 통했을 텐데, 본즈는 본즈인가? 그걸 참아내는군.’
배리 본즈의 선구안은 눈이 좋기로 유명한 윌리엄을 능가하고 있었다.
‘킴, 내가 원하고 있는 공은 그런 공이 아니다. 하울러에게 던졌던 승부구. 그걸 던져다오.’
그는 처음부터 라이징 패스트볼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김민은 쉽게 라이징 패스트볼을 던지지 않았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강하게 3루 쪽 펜스를 때렸다.
땅!
“파울!”
김민은 새 공을 받은 뒤 로진백을 만졌다.
‘투심 패스트볼에는 헛스윙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 공까지 따라가는군. 정말이지 답이 나오지 않는 타자야.’
배리 본즈는 김민의 투심 패스트볼을 쳐 낸 뒤 미간을 좁혔다.
‘꽤 뜸을 들이는군.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으니, 이제 던질 건가?’
김민은 공을 글러브에 넣은 뒤 록튼에게 사인을 냈다.
- 바깥쪽 패스트볼.
록튼은 미트를 두드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킴, 얼마든지 던지라고.’
배리 본즈가 배트를 세우자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이게 통했으면 좋겠군.’
슉!
94마일(151km)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배리 본즈는 배트를 내면서 혀를 찼다.
‘평범한 패스트볼, 끝내 던져 주지 않는군.’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이 솟아올랐다.
“공이 좌측 펜스로 날아갑니다!”
김민은 공이 외야로 날아간 순간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설마 홈런이 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의 법칙은 김민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배리 본즈의 타구는 아슬아슬하게 폴대(홈런과 파울을 판정하는 기둥)를 빗나갔다.
“파울!”
배리 본즈는 파울 홈런을 친 뒤 쓰디쓰게 웃었다.
‘킴, 목숨을 하나 건졌군.’
김민은 잠시 타임을 걸고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승부구로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하나 벗어나는 패스트볼이었다. 배트에 맞춘다고 해도 3루 선상을 벗어나는 플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타구가 나오다니, 본즈의 파워는 상식을 벗어났어.’
그는 이번 공을 던지기 위해서 초구부터 함정을 팠다.
이퓨즈-고속 슬라이더-투심 패스트볼
구속을 높이면서 본즈의 투쟁심을 자극한 뒤,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나는 곳에 던져 본즈의 범타를 유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배리 본즈는 스트라이크존에서 하나 정도 빠지는 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형 타구로 연결했다.
“힘으로는 당할 수가 없어.”
김민은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로진백을 내려놓았다.
“카운트 1-2, 킴이 다시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김민은 알고 있었다.
약물로 스피드와 회전수를 올린 라니에의 포심 패스트볼이 어떻게 되었는지.
‘99마일(159km) 패스트볼이 멋지게 펜스를 넘어갔지.’
본즈는 라이징 패스트볼을 마음먹은 대로 쳐 낼 수 있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이것이라면 가능해.’
슈욱!
김민의 손을 떠난 공이 록튼의 미트로 질주했다.
‘빠르군.’
배리 본즈는 높은 코스로 날아오는 패스트볼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배트가 마치 공을 부술 것처럼 뻗어 나갔다.
툭.
배트에 맞은 공은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파울 팁.
본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공이 어떻게 그렇게 움직일 수 있지?’
그가 속으로 의문을 던진 순간 주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두 사람의 첫 대결은 김민의 승리였다.
하지만 아직 두 사람의 대결은 세 번이 더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