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월드시리즈로 가는 길 06
“8회 초 주자 없는 상황에서 1사…… 위험하군요. 아웃 카운트가 5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토린 감독이 전광판을 확인하며 말했다.
“포사다를 믿을 수밖에.”
홀리스가 삼진으로 물러난 이상 믿을 수 있는 타자는 포사다밖에 없었다.
‘포사다가 해내지 못하면 하위 타선에는 희망이 없어.’
포사다는 올스타 레벨 선수답게 플레이했다. 그는 투 스트라이크로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도 공을 잇달아 커트하며, 결국 볼넷을 골라냈다.
“포사다가 1루에 나갑니다.”
“1사 1루군요. 포사다, 노련한 플레이로 스페이츠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스페이츠는 포사다가 1루에 나갔지만,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1루 주자는 신경 쓸 필요 없어. 7, 8번 두 사람만 처리하면 8회는 끝난다.’
그는 록튼의 리드에 따라 공을 던졌다.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3루수 스나이더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스나이더 2루에는 늦었습니다. 1루에 길게 공을 던집니다!”
2사 2루.
안타 하나면 동점.
하지만 투수 쪽도 아웃 카운트 하나면 이닝을 끝낼 수 있었다.
“대타를 내보낼까요?”
타격 코치의 물음에 토린 감독이 고개를 흔들었다.
“알렌으로 가지.”
그는 대타 대신 8번 타자 솔 알렌에게 동점 찬스를 맡겼다.
그러나 알렌의 타구는 스테이츠의 스피드를 이기지 못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 자리에서 떠올랐다.
“홈플레이트 위에 높이 떠오른 공. 포수가 미트를 들고 기다립니다.”
록튼은 침착하게 파울 플라이를 잡아냈고 양키스의 8회 초 공격은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박빙의 리드를 지켜냅니다.”
김민은 의무실에서 엑스레이 촬영을 하는 도중 8회 초를 막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9회에는 볼튼이 올라오겠군요.”
“그렇겠지.”
찡.
짧은 소리와 함께 엑스레이 촬영이 끝났다.
“결과는 어때?”
“조금 기다려주시죠.”
의료진은 필름에 찍힌 김민의 손을 유심히 관찰했다.
“엑스레이 상태만 보면 뼈에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통증이 있으니, 병원에서 MRI를 찍는 게 좋을 겁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네. 그리 하지.”
그는 김민과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큰 함성 소리를 들었다.
김민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홈런이 나온 것 같습니다.”
“시간을 보면 우리 쪽인 것 같은데. 누가 친 걸까?”
8회 말.
탬파베이 공격은 하위 타순이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공격이 시작하기 전 타자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투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다. 그러니, 삼진이나 땅볼이 나온다고 해도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는 타자들을 둘러보곤 다시 말을 이었다.
“아웃당할 때 아웃당하더라도 자신의 스윙을 가져가라. 알겠나?”
그렉스를 뺀 젊은 타자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알겠습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의 격려와 함께 시작된 8회 초 공격.
그렉스와 머레이는 힘껏 배트를 휘둘렀지만, 파울 플라이와 2루 땅볼에 그치고 말았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를 상대로 자신의 스윙을 지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2사에 주자는 없습니다.”
“스나이더로서는 오히려 이 상황이 편할 수도 있습니다.”
“부담이 없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기대가 크지 않기 때문에 부담이 적을 것이다.
해설자가 아닌 다른 이들도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스나이더는 무거운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이번 시리즈에서 내 활약은 최악이야. 이대로 간다면 월드시리즈 로스터에서 빠질 수도 있어.’
그는 배트를 세우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안타 하나. 안타 하나만 치자.’
스나이더는 패스트볼을 정조준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패스트볼이 날아왔다.
따악!
공이 배트와 충돌한 순간 모두가 결과를 알았다.
중견수 더글라스는 공을 쫓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런 타구가 넘어가지 않으면 어떤 타구가 넘어가겠어.’
맞는 순간 결과를 알 수 있는 초대형 홈런.
돔 구장이 아니었다면 장외홈런이 되었을 타구였다.
“스나이더가 큰일을 해냅니다!”
“이 점수는 크군요. 킴이 내려간 상황에서 탬파베이가 리드를 벌립니다!”
토린 감독은 두 눈을 감았다.
“느낌이 좋지 않더라니…….”
스나이더는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었지만, 표정이 밝지 못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믿기지 않아. 내가 로켓맨을 상대로 홈런이라고?’
로저 클레멘스는 로진백을 만지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카운트를 잡으려고 던진 공을 제대로 받아쳤군.’
샌프란시스코 전력분석팀은 스나이더에 대한 자료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레귤러군요.”
“단기전에는 항상 미치는 선수가 나오지.”
“괜찮을까요?”
“챔피언십 시리즈가 끝난 뒤, 며칠 휴식이 있어. 그 사이에 저 광기가 가라앉길 바라야지.”
로저 클레멘스는 8번 타자 칼튼을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8회 초 탬파베이는 스나이더의 솔로 홈런으로 귀중한 추가점을 뽑았다.
탬파베이 2:0 뉴욕
9회 초.
양키스 공격.
양키스 타자들은 탬파베이 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격 시작 전, 한자리에 모였다.
“마지막 공격이야.”
“로저를 패전 투수로 만들 수는 없어.”
“이번 이닝에 반드시 동점을 만든다.”
“당연하지.”
양키스 타자들은 로저 클레멘스를 패전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오늘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볼튼이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팡! 팡!
미트에 꽂힌 공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포사다는 포수 장비를 해제하며 혀를 찼다.
“킴의 패스트볼과는 소리부터 다르군.”
지터가 배트를 들며 말했다.
“난 그래도 저런 소리가 좋아.”
“음?”
포사다가 고개를 돌리자 지터가 대기 타석으로 향하며 말했다.
“저런 소리를 내는 투수는 자신 있게 가운데로 찔러 오거든.”
그는 힘으로 승부하는 투수라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타. 폴리오!”
토린 감독은 에드 타석에서 대타를 기용했다.
“폴리오가 대타로 나오는군요.”
“폴리오는 양키스의 중요한 대타 자원 중 한 명이죠. 그러나 이번 시리즈 성적은 좋지 않습니다.”
볼튼은 초구를 던지기 전 공을 강하게 쥐었다.
‘티처의 승리는 내가 지킨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초구를 뿌렸다.
슈욱!
빠른 공이 한가운데로 향했다.
‘초구부터 가운데라고?’
폴리오는 미간을 좁히면서 두 손에 힘을 주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내야에 높이 떠올랐다.
“초구 타격!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볼튼이 힘으로 폴리오를 눌렀습니다.”
스나이더가 마운드 쪽으로 달려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맡겠어!”
그의 콜 플레이에 볼튼과 록튼이 뒤로 물러섰다.
“스나이더에게 맡겨!”
잠시 뒤, 스나이더의 글러브에 공이 들어왔다.
팡!
“스나이더가 플라이를 처리합니다.”
“양키스, 9회 초 첫 타자가 허무하게 아웃되는군요.”
대기 타석에 서 있던 지터는 그 장면을 보곤 쓰디쓰게 웃었다.
“대기 타석에서 바로 배터 박스로군.”
그는 바뀐 투수의 공을 관찰할 여유도 없이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뭐 상관없어. 상대가 힘으로 승부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지터는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췄다.
‘녀석의 주 무기는 98마일(158km)에 육박하는 포심 패스트볼이다.’
슉!
초구는 분명 빨랐다.
그러나 지터는 이 빠른 공에 위화감을 느꼈다.
‘패스트볼이 아니야.’
그는 급히 배트를 멈췄고,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스플리터였군.’
지터가 가슴을 쓸어내리려는 순간 록튼이 미트로 1루심을 가리켰다.
지터의 스윙에 대한 확인을 요한 것이었다.
1루심은 포수의 요청에 오른손을 들었다.
“스윙! 스윙입니다!”
1루심은 지터가 배트를 멈추긴 했지만, 그 지점에 홈플레이트를 지나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느린 화면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터의 배트는 분명 홈플레이트를 지나 있었다.
“지터의 스윙이 확실하군요.”
“공의 무브먼트를 확인하고 배트를 멈췄지만, 이미 늦었다고 할까요? 볼튼의 스플리터는 훌륭한 무기입니다.”
이반 감독은 록튼의 플레이에 주목했다.
“록튼이 경기의 맥을 정확히 짚었군.”
코스타 타격 코치도 록튼의 판단이 좋았다고 칭찬했다.
“이번 시리즈의 숨은 공로자는 바로 록튼입니다. 그는 시리즈 내내 높은 공헌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전력분석팀도 록튼의 포수 리드와 수비를 A로 표기했다.
“록튼이라. 듣던 것보다 훨씬 좋은 포수야.”
“하지만 도루 허용이 좀 있습니다.”
“어깨는 썩 좋지 않은 것 같지만 블로킹과 프레이밍이 수준급이야. 그리고 견제 타이밍도 좋아.”
“그래서 A입니까?”
“어깨까지 좋았다면 수비에 AA를 줘야 했을걸?”
지터는 볼튼의 스플리터를 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플리터만 놓고 보면 킴보다 낫다.’
볼튼의 스플리터는 김민에게 전수받은 것이었지만, 꾸준히 노력한 결과 스승의 그것을 뛰어넘었다.
‘티처에게는 무기가 많지만, 내겐 이것밖에 없으니까.’
슉!
패스트볼이 안쪽 코스를 공략했다.
‘로케이션이냐?’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뒤로 밀려났다.
“지터의 배트가 늦고 있어.”
전광판에 표시된 볼튼의 구속은 98마일(158km).
지터는 전광판의 구속을 확인한 뒤 배트를 짧게 잡았다.
‘98마일을 안쪽으로 꽂아 넣을 수 있게 된 건가? 볼튼, 좋은 투수가 됐군. 로버트보다 한 수 위야.’
샌프란시스코 전력분석팀의 평가도 지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볼튼과 로버트, 최고 구속은 비슷하지만, 세컨 볼과 무브먼트에서 차이가 큽니다.”
“저 친구를 월드시리즈에서 만난다면 정규 시즌에 상대했던 로버트보다 나은 투수라고 생각하고 임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다시 한번 관중석에 떨어졌다.
“지터, 패스트볼을 커트하며 버팁니다.”
“미스터 뉴욕은 오늘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로저 클레멘스는 아이싱을 하지 않은 채 더그아웃에서 9회 말을 기다렸다.
“지터, 넌 할 수 있다.”
지터가 출루한다면 양키스 공격은 3번 타자 제레미까지 이어졌다.
탁!
다시 한번 빗맞은 공이 관중석에 떨어졌다.
“99마일(159km)! 지터! 99마일을 커트했습니다.”
“지터의 배트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볼튼은 속도를 더 높였지만, 지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월드시리즈를 쉽게 넘겨줄 것 같아?’
그는 배트를 더욱 짧게 잡았다.
‘어떤 공이든 쳐 내주마.’
지터는 무려 7개의 파울을 만들어 내면서 8구까지 버텼다.
그러나 9번째로 들어온 스플리터에 배트가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경기 종료까지 아웃 카운트 하나.
로저 클레멘스는 주먹을 꾹 쥐었다.
“완투패인가?”
그는 8이닝 2실점으로 자신의 몫을 다했다.
그러나 더글라스가 살아 나가지 못한다면 오늘 경기는 여기에서 끝이었다.
“볼튼! 볼튼! 볼튼!”
트로피카나 필드의 관중들은 클로저 볼튼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볼튼,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98마일(158km) 강속구가 포수 미트를 노렸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더글라스의 배트는 볼튼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배트를 더 짧게 잡아!”
포사다의 외침에 더글라스가 손의 위치를 바꿨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볼튼의 공을 공략할 수 없었다.
탁!
빗맞은 타구가 유격수 브라이튼에게 굴러갔다.
“브라이튼이 달려듭니다!”
브라이튼은 빠른 동작으로 공을 잡은 뒤 그대로 1루에 송구했다.
팡!
1루심이 강하게 오른손을 들었다.
“아웃!”
경기 종료.
탬파베이의 2-0 승리.
제레미는 대기 타석에서, 포사다는 더그아웃에서 5차전이 패배로 끝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탬파베이가 3-2로 시리즈를 리드합니다!”
“양키스는 패했지만, 낙담할 필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홈 2연전이 남아 있습니다.”
이반 감독은 시리즈를 리드하기 시작했지만,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홈에서 2승 1패, 하지만 두 번의 원정 경기가 남아 있다. 킴까지 나서지 못한다면 오히려 유리한 것은 양키스일지도 모른다.”
그는 클럽하우스에 들어가자마자 스탭에게 김민의 상태를 물었다.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병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기 결장은 아니겠군.”
이반 감독은 가능하다면 월드시리즈 전까지는 김민이 돌아 와주길 빌었다.
* * *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
양키 스타디움.
이날 경기는 두 감독의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로저 클레멘스에 이어 2선발로 등판한 무시나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음에도 탬파베이 타선에 난타당하고 말았다.
“1과 2/3이닝 5실점입니다. 이런 투구로는 승리를 바랄 수가 없습니다.”
무시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양키스에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탬파베이 선발 투수 설리반도 형편없이 무너졌다는 것이었다.
설리반은 지난 2차전에서 좋은 피칭으로 선발진에 힘을 불어넣었지만, 6차전에서는 무시나보다 딱 1이닝을 더 던졌을 뿐이었다.
탬파베이 5:4 뉴욕
“4회 초 1점차 살얼음판 승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반 감독은 예상외의 타격전에 고개를 갸웃했다.
“쌀쌀한 날씨면 보통 투수들에게 유리할 텐데…… 오늘은 그 반대로군.”
“아침에 내린 비가 마운드를 무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 비로 마운드가 물러진단 말인가?”
“눈으로 보면 차이를 느끼실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투구판을 밟고 공을 던지면 미끄러지는 느낌이 확실히 들 겁니다.”
하머스 투수 코치가 토린 감독에게 설명한 것도 이것과 비슷했다.
그는 젖은 마운드 주변 흙 때문에 무시나가 밸런스를 잃었다고 말했다.
“마운드 주변에 마른 흙을 뿌리지 않았나?”
“젖은 흙 위에 마른 흙을 뿌린다고, 젖은 흙이 마르진 않습니다.”
하머스 투수 코치는 조금 더 일찍 방수포를 덮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5회 말.
제레미가 2점 홈런을 치며 스코어를 역전시켰다.
“양키스! 6-5로 역전입니다!”
“스페이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제레미를 상대로 정면 승부,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양키스의 리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6회 초.
탬파베이가 타자 일순하면서 대거 6점을 뽑아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양키스 불펜진이 버티질 못하는군.”
“폴과 켄드릭이 저렇게까지 무너질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거야.”
“타격전으로 가니까 탬파베이도 강하군.”
“물론이지. 탬파베이에는 브라이튼, 윌리엄, 그리고 아울이 있다고.”
토린 감독은 리베라라는 절대적인 불펜 카드를 손에 쥔 채 팀의 침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리베라를 내보지도 못했군. 6회에 이렇게 무너질 줄이야.”
양키스 코칭 스탭의 표정은 파산한 회사의 주식을 들고 있는 투자자들 같았다.
이날도 양키스에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린 것은 스나이더였다.
그는 무사 1, 2루 상황에서 2타점 2루타를 쳐 냈다.
이 한 방으로 탬파베이 타선은 상위 타선까지 연결되었다.
혹자는 그의 활약을 하위 타선의 반란이라 말하기도 했다.
“5점 리드라. 양키스가 따라가기 버겁겠군.”
기자들은 작성하고 있던 기사를 양키스의 패배로 정정하기 시작했다.
6회 말.
지터가 타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5점이고 6점이고, 우리 양키스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어!”
이반 감독은 양키스가 1점을 따라붙자 빠르게 터커를 투입했다.
“터커로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야.”
이날 터커는 이반 감독의 기대에 답하듯 부진을 씻는 피칭을 보여 주었다.
2이닝 1실점.
평균자책점으로 따지면 4.50에 불과한 투구였지만, 양키스의 추격을 따돌렸다는 점에서 그의 투구는 큰 의미를 지녔다.
그리고 9회 말.
탬파베이가 다시 한번 볼튼 카드를 꺼내들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볼튼은 강력한 패스트볼과 스플리터 조합으로 양키스 타선을 막아 냈다.
마지막 공도 먹힌 플라이였다.
“중견수 머레이가 손을 높이 듭니다!”
“이 타구로 경기가 마무리될 것 같군요.”
팡!
머레이의 글러브에 공이 들어온 순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가 끝났다.
탬파베이 12:8 양키스
시리즈 스코어 4-2.
김민은 마운드로 달려나가 볼튼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볼튼, 최고였어!”
“티처, 이제 월드시리즈로 가는 겁니다.”
지터는 더그아웃을 떠나지 못한 채 탬파베이 선수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터.”
포사다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지터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지터!”
포사다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을 때 지터가 말했다.
“포사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우리가 질 때도 있는 건가?”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여기서 우린 무적 아니었어?”
포사다가 지터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지터, 우리 시즌은 이제 끝났어.”
지터는 아직도 시즌이 끝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월드시리즈도 가지 못한 채 이렇게 끝난 건가?”
포사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터, 이번 시즌은 탬파베이에게 기회를 주자고. 녀석들은 월드시리즈에 올라갈 자격이 있어.”
“그래, 녀석들은 자격이 있지.”
그는 포사다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터가 몸을 일으킨 것은 헤드라이트가 꺼진 다음이었다.
“다음 시즌은 절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는 2004 시즌을 기약하며 더그아웃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