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월드시리즈로 가는 길 04
4회 말.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공격.
마운드에 선 로저 클레멘스는 거대한 바위처럼 탬파베이 타선을 막아섰다.
“뚫을 수 없는 벽이군.”
“공이 앞으로 나가지 않아.”
팬들의 목소리도 타자들의 타구를 앞으로 나가게 만들 수는 없었다.
“윌리엄까지 당하다니…….”
“브라이튼이 쳤는데 왜 윌리엄은 치질 못하는 거야.”
이반 감독은 멀리서 들려온 팬의 한마디에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야구란 절대적인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지. 0.287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타자가 쳐낸 공을 0.331의 타율을 기록한 선수가 놓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야구야.”
코스타 타격 코치는 절대적인 수치로 환산할 수 없지만, 오늘 경기 브라이튼의 컨택 능력은 윌리엄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브라이튼의 배트는 지금 상한가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가 로저 클레멘스의 공을 쳐 낸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자네 말도 맞아. 오늘 경기만큼은 브라이튼이 윌리엄보다 나아 보이는군.”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탬파베이 공격이 끝났다.
“로켓맨이 4회 말을 간단히 막아 내고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로저 클레멘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아니, 밝을 수가 없었다.
자책점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미 선취점을 내준 상황이었다.
‘타선이 한 점도 뽑지 못한다면 1-0으로 경기가 끝날지도 모르겠군.’
그러나 그는 양키스 타선이 끝까지 침묵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터와 포사다 그리고 제레미는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선수지. 아무리 킴이 뛰어나도 그들을 20이닝 연속으로 막을 수는 없어.’
아무리 뛰어난 투수도 언젠가는 맞는다.
김민도 이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은 맞을 수 없었다.
“양키스의 5회 초 공격은 5번 타자 홀리스부터 시작합니다.”
“제레미를 제외하곤 정타가 없습니다. 오늘 경기 양키 타자들의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홀리스는 배트를 바짝 세우곤 턱을 당겼다.
‘패스트볼, 패스트볼 하나만 노린다.’
김민은 공을 던지기 전 가볍게 호흡을 조절했다.
‘투구수를 생각하지 않고 공을 던진다. 언제였더라?’
그의 생각은 와인드업에 들어가면서 끊겼다.
공을 던질 때는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 포수의 미트에 꽂는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수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파울입니다. 홀리스, 타이밍이 늦었던 것일까요?”
“타이밍보다는 히팅 포인트가 어긋났군요.”
홀리스의 히팅 포인트가 어긋난 것은 김민이 던진 공이 패스트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커터군.”
홀리스는 미간을 좁혔다.
‘킴처럼 많은 공을 완벽하게 던지는 투수는 드물다. 어찌 보면 종합선물 세트 같은 녀석이야.’
그는 김민과 상대하는 게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다.
팡!
김민의 글러브에 록튼이 던진 공이 들어왔다.
‘언제였을까? 투구수를 생각하지 않고 던진 게…….’
그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곧 찾아냈다.
‘그래, 그때였군.’
초등학교 5학년.
첫 번째 선발 등판.
김민의 원래 포지션은 투수가 아니었다.
투수는 또래 중에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센 친구가 맡고 있었다.
김민이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게 된 것은 그 힘이 센 친구가 배탈이 나면서였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외야수였는데도 마운드에 섰어. 왜였지?’
30년도 더 된 기억.
김민은 그 흐릿한 기억을 찾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고자 했다.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군. 카운트 0-1, 타자는 아마 로케이션을 노리고 있겠지.’
바깥쪽 공을 본 타자가 안쪽 공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했다.
홀리스는 김민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바깥쪽 초구는 안쪽 공을 던지기 위한 목적구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자신이라면 이렇게 볼 배합을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 안쪽으로 깊게 찌른 뒤,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궁지에 몰린 타자는 배트를 내지 않을 수 없겠지. 다시 말해 킴을 상대할 때는 궁지에 몰리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휙!
김민의 손을 떠난 공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다른 공이었다.
‘빠르지 않아.’
앞으로 나간 배트는 이미 홈플레이트 입구에 들어서 있었다.
‘이대로라면 스윙이다.’
홀리스는 배트를 멈춰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관성을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트는 그대로 돌았고, 주심은 목소리를 높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김민이 던진 두 번째 공은 체인지업이었다.
‘로케이션이 아니라 체인지 오브 페이스였군.’
홀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타임을 걸었다. 그리고 대기 타석으로 돌아가 배트에 왁스를 발랐다.
‘역시 볼 배합을 읽는 건 무리야. 킴을 상대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좋아.’
그는 머릿속을 비우곤 타석에 들어섰다.
김민은 잠시 쉬는 동안 첫 등판에 대한 기억을 수집했다.
‘맞아, 그랬었지. 3루수와 유격수가 서로 마운드에 오르겠다고 싸우는 바람에 감독님께서 내게 마운드를 맡겼어.’
당시 김민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프로 선수를 배출하는 그런 학교는 아니었다.
때문에 선수 출신이 아닌 야구에 관심이 많은 학교 선생님이 감독을 맡고 있었다.
‘선생님은 싸우면 어느 쪽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고자 했던 것 같아. 뭐, 어쨌든 그 덕분에 내가 마운드에 서게 되었지.’
김민의 상대는 프로 선수를 4명이나 배출한 나름 유명한 초등학교 야구부였다.
상대는 김민과 그의 야구부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콜드 게임을 입에 올리고 있었던 것 같아.’
그 시합에서 김민은 놀라운 피칭을 보여 주었다.
‘삼진을 잡고, 또 잡았지.’
김민의 어깨는 타고 난 것이었다.
상대 팀 선수들은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의 강속구에 속수무책이었다.
‘그 경기 끝까지 던졌지.’
그날의 경기는 오늘의 김민을 만들어준 경기였다.
그의 피칭에 놀란 상대 팀 코칭 스텝이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열을 올렸고, 그 소문이 서서히 주변 학교들로 퍼져나갔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쯤 김민은 지역 야구계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통쾌한 시합이었어.’
김민이 고개를 돌리자 배트를 세우고 있는 홀리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 통쾌함, 오늘도 맛볼 수 있을까?’
포심 패스트볼 그립을 잡곤 공을 강하게 뿌렸다.
슈욱!
‘하이 패스트볼!’
홀리스는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파앙!
미트에 공이 들어왔다는 것은 홀리스의 배트가 공을 맞히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홀리스는 삼진을 당했지만,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한가운데 높은 코스. 훌륭한 공이군. 이런 공이라면 어쩔 수 없지.’
로저 클레멘스는 김민의 피칭이 바뀐 것을 깨달았다.
“4회도 아니고 5회, 어째서 달라진 것일까?”
라몬스는 김민의 투구에서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로저, 킴이 달라졌단 말입니까?”
“그래, 달라졌어.”
“볼 배합인가요?”
“아니, 공을 채는 느낌이 달라졌어. 조금 전 공…… 아주 좋았어.”
전광판에 기록된 김민의 패스트볼 구속은 95마일(153km)이었다.
그러나 로저 클레멘스는 마치 100마일(161km)짜리 공을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타석 더 지켜봐야겠어. 이런 느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지터와 제레미도 방법이 없을 거야.’
다음 타자는 6번 타자 포사다.
포사다는 포스트 시즌 경험이 풍부한 포수였다.
‘킴, 자네와 볼 배합 싸움을 하는 건 솔직히 말해 즐거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난 끝까지 해볼 작정이야.’
그는 앞서 홀리스가 실패한 것을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자 했다.
‘초구는 아마도 안쪽 패스트볼이겠지.’
그가 안쪽 패스트볼을 생각한 것은 김민이 홀리스에게 바깥쪽으로 초구를 던졌기 때문이었다.
‘킴이 두 타자에게 같은 코스로 연속해서 공을 던질 리 없어.’
슉!
초구는 예상대로 빨랐다.
‘패스트볼!’
하지만 포사다는 그 공을 쳐 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포사다는 헛스윙을 한 직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한가운데 높은 코스에서 솟아오르는 공이라니, 처음부터 그런 공을 던지면 어쩌자는 거야?’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4마일(151km).
적당히 빠르면 위로 솟아오르는 그런 공.
로저 클레멘스는 김민이 가위바위보를 거부했다고 생각했다.
‘이번 공은 자신이 던지고 싶은 코스에 던지고 싶은 공을 던졌어.’
5회 초 김민의 피칭은 맞춰 잡는 피칭이 아니었다.
“이번 공, 느낌이 좋군요.”
김민의 공을 칭찬한 이는 블렛소 투수 코치였다.
“자네도 그렇게 느꼈나?”
바이슨 수석 코치도 블렛소 코치가 느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공을 던져 본 사람이라면 알 겁니다. 이번 공이 어떤 공이었는지.”
그의 말대로 그라운드를 주시하고 있는 투수들은 대부분 김민의 초구에 고개를 끄덕였다.
“탄성이 살아 있는 공이군.”
“새총에서 총알이 날아가는 느낌이었어.”
“괜찮은 공이야. 나도 컨디션이 좋을 때는 저렇게 공을 던지지.”
라몬스도 로저 클레멘스가 앞서 말한 것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흠, 좋은 공이야. 리듬이 좋아진 건가? 확실히 이전 이닝보다 경쾌하게 공을 던지고 있어.’
두 번째 공은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꽉 찬 공이냐?’
포사다의 배트가 공을 쫓아갔다.
그러나 배트는 공을 맞히지 못한 채 다시 한번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라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91마일(146km)이라고? 고속 슬라이더군!”
그의 음성에는 감탄사가 묻어 있었다.
“카운트 0-2, 킴이 포사다를 압도합니다.”
“포사다가 궁지에 몰렸군요. 킴의 투 스트라이크 이후 피안타율은 1할이 되지 않습니다.”
포사다는 김민의 투 스트라이크 이후 피안타율을 알고 있었다.
‘챔피언십 시리즈가 시작하기 전 배포한 자료에서 보았지. 녀석의 투 스트라이크 이후 피안타율은 0.051에 불과해.’
스무 명의 타자가 도전해 단 한 명만이 안타를 쳐낸다는 뜻이었다.
토린 감독은 고전하고 있는 포사다를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월드시리즈 패배 다음은 챔피언십 시리즈 패배인가?”
수석 코치가 토린 감독의 말에 깜짝 놀랐다.
“감독님!”
시리즈 스코어는 아직 2승 2패로 대등했다.
양키스의 패배를 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토린 감독은 자신의 발언이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곤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냥 느낌이 좋지 않아.”
“위험한 느낌이군요.”
다음 순간 포사다가 삼진으로 돌아섰다.
“포사다! 삼진입니다! 킴의 삼진 퍼레이드가 시작되었습니다.”
로저 클레멘스는 김민의 피칭을 보곤 팔짱을 꼈다.
“녀석이 홈플레이트를 제대로 공략하기 시작했군.”
‘구속은 다르지만 오늘 킴의 투구는 나의 전성기를 보는 것 같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 끝을 올렸다.
‘후후후…… 그땐 약이 필요하지 않았지.’
스테로이드 없이 타자를 압도하던 시절.
로저 클레멘스는 그때가 그리웠다.
‘쳇, 바보 같은 생각이군. 과거는 이미 흘러간 강물에 불과해. 중요한 것은 현재다.’
그는 글러브를 들었다.
“라몬스, 불펜에서 바로 마운드로 나가겠어.”
라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았다.
“투수 코치에게 전하겠습니다.”
“부탁해.”
아직 아웃 카운트가 남았기 때문에 로저 클레멘스는 마운드가 아닌 불펜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홀랜드가 떨어지는 커브에 크게 헛스윙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네 타자 연속 삼진.
탬파베이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K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K! K! K!”
김민의 삼진 행진은 4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6회 초 8, 9번 타자를 연속해서 삼진으로 잡아내며 팬들의 함성을 크게 만들었다.
“K! K! K!”
데릭 지터가 타석에 들어섰지만, 팬들의 목소리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6연속 삼진인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킴이 달아올랐군.’
그는 대기 타석에서 맹렬하게 날아오는 패스트볼을 확인했다.
‘하위 타선을 상대로도 전력투구였어.’
평소 김민이었다면 맞춰 잡는 피칭으로 상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모든 타자를 상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널 그렇게 달아오르게 만든 이유가 뭐냐?’
배트를 세우자 초구가 날아왔다.
슉!
빠른 공.
지터의 배트가 공을 쳐 냈다.
딱!
“파울!”
지터의 타구가 떨어진 지점은 파울 라인과 겨우 15cm 정도가 차이 날 뿐이었다.
‘완벽한 타이밍으로 때린 공이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떨어졌다.’
지터는 그 이유를 김민의 구위에서 찾았다.
‘단순히 무브먼트가 뛰어난 게 아니야. 공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어.’
록튼은 트로피카나 필드에 모인 이 중 김민의 공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볼 끝이 살아났어. 무리하게 상대를 누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압도하고 있어.’
김민은 록튼에게 공을 받은 뒤 인터벌(투구와 투구 사이 간격)을 짧게 가져갔다.
‘좋은 리듬을 잃고 싶지 않아.’
슉!
빠른 공이 바깥쪽에서 낮게 떨어졌다.
“스윙 스트라이크!”
지터는 스플리터에 헛스윙하곤 미소를 지었다.
‘멋진 공이군. 인정하지. 이건 스윙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공이었어.’
그는 1회 초 던졌던 스플리터와 지금 던진 스플리터가 전혀 다른 공이라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아주 좋은 리듬을 탔어. 하지만 나도 쉽게 물러서진 않을 거야.’
지터는 배트를 짧게 잡았다.
삼진만은 당할 수 없다는 뜻.
휙!
낮게 떨어지는 커브.
지터는 이 공을 커트해냈다.
탁!
“지터,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로저 클레멘스는 5회 말 탬파베이 공격이 끝난 뒤 더그아웃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불펜으로 향했다. 그리곤 그곳에서 몸이 식지 않도록 공을 던지고 있었다.
팡!
불펜 포수가 미트에서 공을 빼며 말했다.
“나이스 볼.”
그가 로저 클레멘스에게 공을 던지려는 순간 구단 스텝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지터가 투 스트라이크에 몰렸습니다.”
스텝의 전언에 로저 클레멘스가 고개를 돌렸다.
“지터가 마지막인가?”
“지금 투 아웃입니다.”
“그렇군.”
로저 클레멘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로저, 더 던지지 않는 건가?”
동료의 물음에 로저 클레멘스가 대답했다.
“곧 마운드에 올라가야할 것 같아.”
딱!
타구가 다시 한번 관중석에 떨어졌다.
“지터가 버팁니다!”
“짧게 배트를 잡고 빠르게 돌리고 있습니다. 투수 입장에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입니다.”
지터는 벌써 3개의 공을 커트해 내고 있었다.
‘커브, 패스트볼, 그리고 다시 커브.’
패턴대로라면 패스트볼이 날아올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상대는 킴이야.’
배트를 짧게 잡은 타자를 헛스윙으로 돌려세우기 위해서는 스트라이크존에서 빠지는 유인구를 던질 가능성이 컸다.
‘고속 슬라이더.’
지터는 몸의 중심을 바깥쪽으로 움직였다.
김민의 손에서 공이 떠난 것은 바로 그 시점이었다.
슈욱!
심장이 얼어붙을 만큼 빠른 공이 스트라이크존으로 날아들었다.
‘위험해!’
지터는 배트를 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틀렸어.’
파앙!
패스트볼이 록튼의 미트를 강타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안쪽 코너를 찌르는 패스트볼.
지터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공이었다.
‘유인구가 아닌 정면승부라니……. 설마 커브 그리고 패스트볼의 리듬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는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확인했다.
“97마일(156km)이라고? 스피드건이 고장 난 건가? 킴은 그런 공을 던지지 않아.”
블렛소 투수 코치는 절대 스피드건 고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은 리듬으로 최고 구속의 벽을 깼어.”
“포스트 시즌에서 자신의 최고 구속을 깬 투수는 아마 킴이 처음 일 겁니다.”
클락은 오늘 김민이 일을 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블렛소 코치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일은 이미 벌어졌어.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스 타선을 상대로 7연속 삼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