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월드시리즈로 가는 길 02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
경기 시작 20분 전.
탬파베이 클럽하우스.
“우린 2승 1패로 시리즈를 리드하고 있다. 하지만 홈 어드밴티지가 양키스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오늘 패하면 단순히 2승 2패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은 이반 감독의 말에 낮게 중얼거렸다.
“오늘 양키스가 이기게 되면 시리즈는 다시 양키 스타디움에서 끝나게 된다고.”
“양키 스타디움의 양키스는 얄미울 정도로 강하지.”
“한마디로 오늘 지면 녀석들의 홈에서 끝장을 봐야 한다는 거야.”
탬파베이는 원정 1차전에 승리했지만, 그것은 김민의 눈부신 역투 덕분이었다.
김민이 나오지 않는 원정 경기에서 양키스를 꺾는다는 것은 이곳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울 것이다.
이반 감독이 목소리를 높였다.
“난 시리즈를 이곳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한마디로 오늘 경기와 내일 경기 모두 이기고 싶다!”
그의 말이 끝나자 라커룸 리더인 김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고! 레이스!”
다른 선수들의 그의 말을 받았다.
“고! 레이스!”
“고! 레이스!”
탬파베이 선수들은 뜨거운 분위기와 함께 그라운드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이 열리는 트로피카나 필드입니다. 캐스터 브라운이라고 합니다.”
“해설을 맡은 젝슨입니다.”
젝슨은 전국 방송 중계로 유명한 해설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다소 내셔널 리그 팀들에게 치중된 해설자였는데 오늘은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를 맡게 되었다.
“젝슨, 오늘 경기는 그 어느 경기보다 치열하겠죠?”
“물론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는 팀이 시리즈를 가져갈 가능성이 60% 이상입니다. 한마디로 물러설 수 없는 경기란 뜻이죠.”
양키스의 토린 감독은 선수들에게 정규 시즌처럼 경기할 것을 요구했다.
“정규 시즌 내내 우린 그 누구보다 강했다. 원정이라고 기죽을 필요 없다. 우린 양키스다. 가슴을 펴고, 상대를 내리눌러라!”
양키스 선수들은 짧게 고함을 외치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
탬파베이 선발 투수는 렉터, 양키스 선발 투수는 아이작이었다.
“오늘 양 팀의 선발 투수는 렉터와 아이작입니다. 젝슨, 두 선수를 어떻게 보십니까?”
“렉터는 지난 시즌부터 클래스가 올라간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아이작에 비하면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젝슨은 아이작이 3선발로서 2개의 월드시리즈 반지를 획득했으며, 포사다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오늘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전력분석팀도 관중석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선발만 보면 아이작의 압승이야.”
“시즌 승수를 보면 렉터도 크게 처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다르잖아. 이닝, 삼진, 그리고 평균자책점. 모두 아이작이 앞선다고.”
샌프란시스코 전력분석팀 하우저는 어느 팀이 올라와도 쉽지 않은 월드시리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탬파베이는 에이스 킴이 강력해. 반면 양키스는 선발진이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아.’
그는 오늘 경기가 박빙으로 흘러간다면 리베라를 보유한 양키스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1회 초.
주심의 경기 시작 사인과 함께 렉터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노렸다.
‘나쁘지 않아.’
록튼은 미트를 움직이며 패스트볼을 받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공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저지되었다.
따악!
강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좌중간으로 날아갔다.
“지터! 바깥쪽 공을 강하게 당겼습니다!”
“초구부터 노리고 들어왔군요!”
탁!
큰 타구는 그대로 펜스를 직격했다.
“지터! 펜스 직격 2루타입니다!”
“이건 넘어가지 않은 게 다행인 타구입니다. 렉터, 시작부터 위기에 몰렸습니다.”
김민은 미간을 좁혔다.
‘느낌이 좋지 않아.’
그는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배터 박스와 대기 타석 그리고 더그아웃에 위치한 선수들의 표정이 어제와 달라.’
지난 3차전.
양키스 선수들은 뒤지고 있을 때조차 여유가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오늘 4차전은 달랐다.
그들은 냉정한 눈으로 시합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거야.’
김민은 KBO 시절 코치 입장에서 7차전 시리즈를 치른 경험이 있었다.
당시 시리즈 성적은 1승 1패.
김민은 그때의 경험을 잊지 않고 있었다.
‘4번을 먼저 이겨야 하는 시리즈. 기세가 좋다고 잡을 수 있는 시리즈가 아니야.’
투수 로테이션과 타자들의 컨디션 유지, 그리고 벤치의 전략이 잘 어우러져야 시리즈를 잡을 수 있었다.
“2번 타자는 더글라스입니다.”
“양키스는 타순 변화 없이 4차전에 임하고 있습니다.”
렉터는 록튼과 사인을 교환한 뒤 2루에 있는 지터를 살폈다.
‘3루 도루는 없다.’
그는 바깥쪽으로 다시 한번 초구를 던졌다.
딱!
강하게 맞은 타구가 그대로 2루수 쪽으로 향했다.
“2루!”
칼튼은 록튼의 콜 플레이가 나오기 전 이미 공을 향해 글러브를 뻗고 있었다.
‘잡았어!’
그는 공을 잡은 직후 3루를 확인했다.
가능하다면 3루로 향하는 데릭 지터를 잡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데릭 지터는 이미 3루에 거의 도착한 상황.
‘큭, 늦었군.’
“1루!”
칼튼은 록튼의 콜에 따라 1루에 공을 던져 2번 타자 더글라스를 잡아냈다.
“더글라스 2루수 땅볼로 아웃되었습니다. 하지만 양키스 주자를 3루까지 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1사 3루. 외야 플라이 하나만으로도 점수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반 감독은 록튼에게 점수를 줘도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중요한 것은 아웃 카운트다. 희생 플라이를 주지 않으려고 공을 빼다가는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록튼은 벤치의 사인에 따라 볼 배합을 가져갔다.
‘높은 코스로.’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높이 떠올랐다.
제레미는 그 타구를 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펜스를 넘진 못하겠군.’
그는 렉터의 초구가 볼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배트를 냈다.
그 이유는 외야 플라이를 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레미는 1루로 달려가며 생각했다.
‘뭐, 안타가 되지 않아도 상관없어. 지터를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으니까.’
지터는 3루 베이스에 바짝 다가서 있었다.
우익수의 글러브에 공이 들어간 순간 그는 스타트를 끊었다.
“지터가 홈으로 돌진합니다.”
우익수 윌리엄이 홈으로 공을 던졌지만, 접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세이프! 양키스가 먼저 득점을 올립니다.”
이반 감독은 양키스 선수들의 플레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짜임새가 좋아졌군.”
바이슨 수석 코치도 같은 의견이었다.
“오늘 경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록튼은 냉정하게 경기를 바라보려 노력했다.
‘선취점을 내줬지만, 투구수는 많지 않아.’
양키스 타자들이 초구를 적극적으로 공략해 준 덕분이었다.
‘6회까지 3실점 정도면 비벼 볼 수 있어.’
그는 오늘 경기가 막 시작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3회 초.
양키스가 다시 득점에 성공했다.
“오늘 양키스 타선이 힘을 내는군.”
“장타는 지터의 2루타뿐입니다만, 팀플레이가 좋군요.”
안타와 도루 그리고 희생타 2개를 묶어서 1점.
샌프란시스코 전력분석팀은 양키스가 자신들의 색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민은 다른 관점에서 양키스를 분석하고 있었다.
‘월드시리즈를 연속을 제패하던 시절 양키스는 50홈런을 넘긴 타자가 없었어. 이는 그들이 장타로 상대를 내리누른 게 아니라는 뜻이야.’
물 흐르듯 이어지는 플레이.
탄탄한 투수진.
이 두 가지가 바로 최강이라 불리던 양키스의 장점이었다.
‘오늘 양키스는 90년대 후반처럼 플레이하고 있어.’
강타자 제레미가 있었지만, 양키스는 한 방이 아닌 팀 플레이로 점수를 뽑아내고 있었다.
5회 말.
탬파베이는 아울의 솔로 홈런으로 추격을 시작했다.
“스코어 2-1 탬파베이가 추격합니다.”
아이작은 어제 등판한 라몬스보다 훨씬 뛰어난 피칭을 보여 주었다.
“라몬스의 영입은 불필요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군.”
“정규 시즌은 라몬스가 나았을지 몰라도 플레이오프는 역시 경험입니다. 월드시리즈 반지 2개가 있는 아이작의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죠.”
렉터는 2점을 내주긴 했지만, 그래도 잘 버텼다.
6회 초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6회 초.
양키스는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 주며 렉터를 순식간에 강판시켰다.
“이반 감독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이건 교체군요. 연속 4안타. 이 상황에서 교체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록튼은 마운드를 내려가는 렉터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타구가 전부 내야수 키를 넘어갔어. 이래서는 시프트도 의미가 없단 말이지.’
이반 감독은 터커를 올렸지만, 그도 양키스 타선을 막아 내지 못했다.
김민은 지금 양키스를 내리누를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경기…… 볼튼이 등판해도 막을 수 없어.”
이반 감독은 셋업인 스페이츠까지 당겨서 투입해 보았지만 양키스 타선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양키스가 6회 초 뽑아낸 점수는 무려 7점이었다.
탬파베이 1:9 뉴욕
한 이닝에 극복하기 힘든 점수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양키스가 집중타로 승기를 잡습니다!”
“속단은 이릅니다. 탬파베이에게는 아직 4번의 공격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젝슨은 뒤지고 있는 탬파베이 위주로 해설을 하고자 했지만, 양키스 마운드를 지키는 아이작은 단단했다. 그는 6회 말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웠다.
“아이작이 6회 말을 무실점으로 막아 냅니다. 뛰어난 운영 능력은 마치 킴을 보는 것 같습니다.”
로저 클레멘스는 1루 더그아웃에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렉터를 보며 말했다.
“어제 라몬스하고 똑같아. 힘으로 배트를 누르려 했지, 어리석은 일이야. 여기서 그게 가능한 건 나나 킴뿐인데 말이야.”
그는 무시나마저도 타자들을 힘으로 누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아이작은 잘하고 있군. 원래 제구력이 좋은 녀석이었지만, 오늘은 더 좋아 보여.”
아이작은 공을 하나 넣고 하나 빼는 것이 아니라. 반개를 넣고 반개를 빼는 극한의 컨트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수준급 구위를 가지고 있는 투수가 이렇게까지 컨트롤이 가능하면 공략이 거의 불가능했다.
7회 말.
아이작의 좋았던 컨트롤이 흔들리면서 탬파베이에게 마지막 찬스가 돌아왔다.
“1사 1, 3루! 아울의 배트에 오늘 경기가 달려 있습니다.”
장타가 나온다면 점수 차이를 상당히 좁힐 수 있었다.
그러나 아울의 타구는 투수 정면으로 가고 말았다.
“아이작이 공을 잡아 2루에! 그리고 다시 1루에! 더블 플레이입니다!”
이반 감독은 두 눈을 감았다.
“오늘 경기는 틀렸군.”
아울의 더블 플레이가 나오기 전까지 그는 역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울의 더블 플레이는 그가 생각한 모든 가능성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9회 말.
양키스는 호투한 아이작을 내리고 리베라를 투입했다.
“1:9의 스코어에서 리베라가 등판합니다.”
“8점 리드에 리베라입니다! 토린 감독,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리베라는 세 타자를 간단히 처리하곤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양키스가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에 승리하면서 시리즈 스코어는 2승 2패가 됩니다.”
“양키스가 분위기 전환에서 성공했군요. 시리즈는 이제 양키 스타디움으로 이어집니다.”
이반 감독은 경기가 끝난 직후 김민을 불렀다.
“킴, 몸은 괜찮은가?”
김민이 오른팔을 들며 대답했다.
“언제라도 던질 수 있습니다.”
이반 감독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킴,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시리즈를 끝내는 건 실패했어. 하지만 난 아직 시리즈가 넘어갔다고 생각하지 않네.”
“2승 2패 일뿐입니다.”
이반 감독이 김민에게 물었다.
“킴, 자네라면 양키 타선을 막을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이반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에이스를 앞에 두고 왜 이렇게 한숨을 내쉬는 것일까?
킴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설리반과 클락이 등판하는 6, 7차전이 걱정되기 때문이야.’
6, 7차전이 열리는 곳은 양키 스타디움이었다.
김민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시리즈는 7차전까지 갈 겁니다.”
이반 감독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나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네.”
“7차전…… 제가 다시 한번 나서겠습니다.”
“이틀 쉬고 투구가 가능하단 말인가?”
“2, 3이닝 정도라면 가능할 겁니다. 위기의 순간 마운드에 세워 주십시오.”
선발로 나선 투수를 이틀 쉬고 다시 마운드에 세우는 것은 혹사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전개였다.
이반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리야.”
김민은 물러서지 않았다.
“내일 경기를 80개로 막겠습니다.”
물이 오른 양키스 타선을 투구수 80개 이내로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킴!”
“해 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최소한의 투구수로 5차전을 잡고, 7차전에도 등판하겠다.
김민의 시나리오는 만화에나 나올 법한 것이었다.
이반 감독이 김민에게 물었다.
“만약 투구수가 넘어선다면?”
“이기고 있다면 교체해 주십시오. 지고 있다면 끝까지 던지겠습니다.”
이반 감독은 생각했다.
킴이 반대로 말한 것은 아닐까?
이기고 있다면 승리를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던질 것이다.
반대로 지고 있다면 지는 경기에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지고 있을 때 끝까지 던지겠다니, 이유가 뭔가?”
이반 감독의 물음에 김민이 대답했다.
“내일 경기에 이긴다면 7차전까지 갈 겁니다. 하지만 내일 경기에 패한다면 7차전이 없겠죠. 이번 시즌 마지막 등판, 가능하면 길게 던지고 싶습니다.”
이반 감독은 김민의 대답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킴이 나보다 낫군.”
“아닙니다.”
“아니야. 자네의 눈은 시리즈 전체를 보고 있어. 분명 나보다 나아.”
이반 감독은 김민의 어깨를 두드린 뒤 감독실로 걸음을 옮겼다.
‘내일 경기에서 패한다면 킴의 말대로 6차전에서 끝나고 말겠지. 설리반이 물이 오른 양키 타선을 막아 내긴 힘들 테니까. 하지만 내일 경기에 이기면…… 6차전에 패한다고 해도 7차전까지 갈 수 있다.’
김민의 두 어깨에 탬파베이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 * *
환호하는 팬들과 두 손을 번쩍 든 타자들.
이곳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와 뉴욕 양키스의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이 열리고 있는 트로피카나 필드였다.
“브라이튼이 멋진 안타로 칼튼을 홈으로 불러들입니다.”
“3회 말 탬파베이가 선취 득점에 성공하는군요. 킴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아울이 대활약했다면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브라이튼이 있었다.
그는 1차전 자신을 막아섰던 로저 클레멘스를 상대로 적시타를 터트리면서 기세를 올렸다.
“98마일(158km) 강속구를 때려 2루수 키를 넘겼어.”
샌프란시스코 전력분석팀은 브라이튼을 요주의 인물로 판단했다.
“빠른 발과 좋은 타격. 왜 저런 타자가 탬파베이에 있는 걸까요?”
“자네는 그 이유를 정말 모르는 건가?”
“알면 제가 선배님에게 묻겠습니까?”
하우저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후우…… 탬파베이는 말이야. 만년 하위 팀이었지. 그 덕분에 상위픽으로 유망주를 왕창 뽑을 수 있었어.”
“아! 그러면 킴도 그 상위픽으로…….”
하우저가 고개를 흔들었다.
“킴은 달라.”
“다르다면…….”
“탬파베이에서 픽한 선수가 아니야.”
김민을 발굴해 탬파베이로 보낸 팀은 바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킴은 파드리스에서 스카우트한 선수였지.”
“라몬스에 이어 킴까지 파드리스 스카우트 팀은 대단하군요.”
“스카우트 팀만 괜찮을 뿐이야. 최근 행보를 보라고.”
FA와 트레이드 실패.
그 덕분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는 몇 년간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다.
“파드리스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음 타자를 주목하도록 하지.”
2사 1루에서 배터 박스에 들어선 타자는 케니히였다.
하우저는 케니히의 선구안에 B+를 주었다.
“기다리는 게 능숙한 타자인데 로저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 같군.”
파앙!
강력한 패스트볼이 포사다의 미트를 때렸다.
“스트라이크!”
케니히는 기다려도 볼 카운트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초구에 배트가 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잖아. 기다리는 게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
두 번째 공도 빨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0-2.
하우저가 펜을 놀리며 말했다.
“로저가 우위에 섰군.”
“로켓은 오늘도 대단하군요. 조금 전 브라이튼에게 맞은 안타를 빼면 정타가 거의 없었습니다.”
로저 클레멘스가 선취점을 내주게 된 것은 3루수 홀리스의 실책이 결정적이었다.
그 실책이 아니었다면 브라이튼이 3회 말 타석에 들어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까 실책은 양키스답지 않은 것이었어.”
하우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99마일(159km) 강속구가 미트를 파고들었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케니히의 배트는 로저 클레멘스의 스피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로저는 강력하고, 킴은 빈틈이 없군. 이 경기 어느 쪽이 승리할지 점점 궁금해지는군.”
4회 초.
양키스의 선두 타자로 나선 것은 1번 타자 데릭 지터였다.
이 말은 1회부터 3회까지 3번의 공격 기회 동안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