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83화 (183/296)

183화 월드시리즈로 가는 길 01

김민이 정신을 차린 것은 라커룸 안이었다.

“얼마나 정신을 잃었죠?”

“5분 정도?”

“그리 오래 지나진 않았군요.”

“탈진이었던 것 같아.”

트레이너는 김민에게 조금 더 누워 있을 것을 지시했다.

“훌륭한 피칭이었어.”

“1차전을 잡고 싶었습니다.”

덜컥.

문이 열리자 구단 스텝이 모습을 드러냈다.

“킴은 어떻습니까?”

“괜찮아.”

“승리 투수 인터뷰는…….”

트레이너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잘랐다.

“아직은 휴식을 더 취해야 해.”

김민의 몸 상태는 병원으로 향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킴, 다음에는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난 의사가 아니라서 정확히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정도 피칭을 하게 되면 몸이 버텨내지 못해.”

김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무리했다는 것은 누구보다 제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무리해서라도 이기고 싶었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은 탬파베이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시리즈의 승패를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양키스의 저력은 한두 게임으로 드러나지 않아.”

“맞는 말이야. 양키스의 진짜 힘은 마지막 한 경기에 나오거든.”

“게다가 오늘 경기는 킴, 한 사람의 힘으로 끌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중심 타선이 터지지 않는다면 탬파베이는 시리즈를 이끌어가기 힘들 거야.”

인터넷 팬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탬파베이가 기적 같은 승리를 끌어냈지만, 그것이 탬파베이의 힘이 아니라 김민의 힘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시즌에서 에이스의 위력이 한 번 발휘된 것뿐이야.”

“맞는 말이야. 그리고 킴은 4경기 연속 등판이 불가능하다고. 시리즈 승자는 양키스야.”

“4승 2패 양키스의 승리. 양키스가 시리즈에서 질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언론과 팬포럼 양쪽 모두 탬파베이에게 비관적이었다.

이반 감독은 경기 직후 코칭 스탭을 불러 투수 로테이션을 조정하고자 했다.

“5차전 킴의 등판 어떻게 생각하나?”

블렛소 투수 코치가 말했다.

“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에이스의 역투와 승리.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에이스는 한계를 넘어선 투구로 탈진했고, 팀 타선은 화끈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포터 불펜 코치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5차전 등판이라면, 긴 휴식을 가지는 것 같지만 4일 쉬는 것밖에는 안 됩니다. 킴에게 더 많은 휴식을 줘야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탈진한 투수를 4일 휴식 후 등판시킨다는 것이…….”

이반 감독도 더 긴 휴식을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김민에게 5, 6일씩 휴식을 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팀 전력에 여유가 있다면 5차전까지 쉬고 6차전에 등판하는 것이 낫겠지. 하지만…….”

하지만 탬파베이는 양키스에 비해 전력이 낫다고 할 수 없었다.

경험과 관록이라는 면까지 고려하면 1차전 승리로 이제 겨우 대등해졌다고도 할 수 있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손을 들며 말했다.

“6차전까지 등판을 연기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킴의 등판 없이 4승 1패로 시리즈가 끝날 수도 있습니다.”

팀 사정상 휴식은 4일이 최대라는 뜻.

블렛소 투수 코치는 그래도 더 많은 휴식을 김민에게 주고 싶었다.

“시리즈 상황을 보고 로테이션을 결정하면 어떨까 합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 회의를 연 것도 결국에는 김민에게 더 많은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4차전까지 2승 2패면 5차전, 그 이상으로 유리하다면 6차전으로 하지.”

바이슨 수석 코치도 양키스와 대등한 상황이라면 굳이 김민을 먼저 내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리즈 상황을 보고 로테이션을 조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의견인 것 같습니다.”

같은 시각.

양키스 코칭 스탭도 탬파베이 코칭 스탭과 비슷한 회의를 벌이고 있었다.

“오늘 로저의 투구수가 많았습니다.”

“로저도 이제 40세, 3일 휴식 이후 등판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양키스는 탬파베이와 달리 단단한 선발진을 갖추고 있었다.

로저 클레멘스가 선발을 한 차례 늦춘다고 해서 구멍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작을 내지.”

아이작은 양키스에서 4선발로 활약하고 있었으나 하위권 팀이라면 1선발로 뛸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투수였다.

“4차전 선발로 아이작, 알겠습니다.”

토린 감독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중요한 건 아이작이 아니라 타선이야.”

탬파베이를 상대로 1-0 완봉패.

토린 감독은 이것이 마음에 걸렸다.

“킴은 분명 뛰어난 투수일세. 그러나 그의 평균자책점은 제로가 아니야.”

그는 양키스 타선이 리그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화력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했다.

“2차전은 다를 겁니다.”

타격 코치의 말에 토린 감독이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곤란해.”

* * *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

뉴욕 양키스 vs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플레이볼!”

주심의 시작 사인과 함께 투구에 들어간 것은 양키스의 에이스 무시나였다.

그리고 그를 상대하는 타자는 어제 결승타를 쳐 낸 브라이튼이었다.

19시간 전.

브라이튼은 탈진한 에이스 김민을 대신해 수훈선수 인터뷰를 했다.

‘어제는 킴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완봉패였다.’

그는 무시나의 초구를 날카롭게 쳐 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타구가 1루 쪽 파울 라인에 떨어졌다.

“카운트 0-1, 무시나가 첫 카운트를 잡았습니다.”

“파울이 되긴 했지만, 브라이튼의 배트 스피드가 괜찮아 보이는군요. 어제 결승타를 친 덕분일까요? 몸이 가벼워 보입니다.”

브라이튼은 수훈선수 인터뷰를 마친 직후, 오티즈 2세에게 문자를 받았다.

- 친구, 승리 파티를 즐겨야지.

뉴욕 출신 셀럽답게 파티부터 생각하는 오티즈 2세였다.

다른 때라면 브라이튼은 그 파티에 기꺼이 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브라이튼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 미안하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해.

브라이튼은 동료들과 함께 호텔로 돌아온 뒤 불 꺼진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리곤 직원에게 묵직한 팁을 쥐어 주고 조명을 켜달라고 말했다.

호텔 직원이 스위치로 향하며 브라이튼에게 말했다.

“브라이튼, 그래도 수영은 안 됩니다.”

브라이튼은 미소로 그의 말을 받았다.

“이 복장으로 물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까?”

스탭은 고개를 끄덕이곤 스위치를 올렸다.

탁!

불이 켜지자 브라이튼이 배트를 들었다.

휙! 휙!

배트가 거친 바람을 일으켰다.

“훈련입니까?”

브라이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오늘 스윙이 좋지 못했거든요.”

그는 연장 11회 극적인 안타를 때렸지만, 그것은 실투나 다름없는 공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98마일(158km) 패스트볼이 나왔다면 절대 그런 타구를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거야. 난 더 빠르게 공을 때려내야 해.’

휙! 휙!

브라이튼의 배트는 멈출 줄을 몰랐다.

그의 수영장 훈련은 기량을 끌어올리기보다는 마인드 컨트롤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카운트 1-2.

무시나는 승부구를 선택했다.

- 낮게 떨어지는 너클 커브.

손을 떠난 공이 춤을 추면서 떨어졌다.

브라이튼의 배트는 그 춤을 멈추게 만들었다.

딱!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공이 1, 2루 사이를 뚫었다.

“안타! 안타입니다!”

선두 타자 안타.

탬파베이의 시작은 좋았다.

“오늘은 느낌이 좋군.”

이반 감독은 어제에 이어 오늘 경기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우익수 키를 넘겼다.

2번 타자 케니히의 2루타였다.

브라이튼은 속도를 높여 홈으로 파고들었다.

“우익수 에드가 홈으로 송구합니다.”

브라이튼의 발은 에드의 어깨보다 빨랐다.

“세이프! 세이프!”

그토록 얻기 힘들었던 선취점.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그것을 가져갔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가 1-0으로 앞서 나갑니다.”

무시나는 1회 초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윌리엄에게 볼넷, 아울에게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맞으면서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2점을 내주고 말았다.

“무시나가 심각하군요.”

“설마 홈에서 2패하고 탬파베이로 가는 건 아니겠죠?”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1, 2차전 뉴욕

3, 4, 5차전 탬파베이

6, 7차전 뉴욕

다시 말해 홈에서 2연패를 하게 된다면 원정에서 2승 1패 이상을 하지 못하는 한 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시리즈가 끝나 버린다는 뜻이었다.

“빠른 투수 교체도 답 중 하나야.”

기자들은 무시나를 내리고 불펜을 일찍 가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토린 감독은 무시나를 내리지 않고 계속 가져갔다.

무시나는 그런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듯 그렉스를 더블 플레이, 머레이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곤 실점을 최소화했다.

“2-0이라면 따라갈 수 있겠어.”

“3점 이내라면 원 찬스지.”

양키스팬들은 경기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들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양키스에게는 아직 9번의 공격 기회가 남아 있었다.

1회 말.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설리반이었다.

이반 감독은 어깨가 싱싱한 그에게 2차전 선발의 중임을 맡겼다.

“오늘은 설리반이 양키스를 상대로 등판했습니다.”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무시나와 설리반 큰 차이는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설리반은 포스트 시즌 선발 등판 전적이 없습니다.”

경험의 차이.

이반 감독은 이 차이를 패기로 메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1회 말 설리반의 피칭은 최악이었다.

“양키스! 경기를 3-2로 뒤집습니다!”

볼넷과 안타 그리고 다시 안타.

설리반은 아웃 카운트 3개를 잡는 동안 4실점하며 부진했다.

이반 감독은 블렛소 투수 코치를 마운드에 조기 투입하는 등 선발 투수를 안정시키려 노력했지만, 결국 그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렵게 이기고 쉽게 내주는 건가?”

클락의 말에 김민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경기는 이제 막 시작했어.”

그는 1점을 뒤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경기는 1, 2점 승부가 아니야.’

2회 초.

무시나는 가볍게 하위 타선을 막아 냈다.

“무시나, 1회 흔들렸던 제구를 만회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게 바로 15승 보장 수표의 안정감이죠. 다음 이닝도 괜찮을 겁니다.”

설리반은 무시나와 달리 2회 말에도 흔들렸다.

1사 주자 1, 2루.

양키스의 좋은 찬스.

딱!

강하게 맞은 타구가 마운드 옆을 타고 흘렀다.

‘안타인가?’

설리반이 고개를 숙인 순간 브라이튼이 공을 향해 글러브를 뻗었다.

“브라이튼! 멋지게 공을 잡아 2루에 연결합니다.”

탬파베이 키스톤 콤비의 환상적인 수비.

이 수비는 설리반을 살리고 팀을 구하는 것이었다.

“양키스, 기회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브라이튼, 오늘 공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제 결승타를 친 것이 아직까지 좋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키스 팬들은 뉴욕 홈보이 출신인 브라이튼이 고향에 비수를 꽂는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브라이튼! 살살하라고!”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할 이유가 어디 있어! 양키스는 고향 팀이라고.”

브라이튼은 그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고는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했다.

그는 3회와 6회에도 안타를 쳐 내며 최고의 집중력을 보여 주었다.

“브라이튼이 오늘 3안타 경기를 완성합니다.”

양키스 에이스 무시나를 상대로 3안타 경기.

그의 대활약 덕분에 팀은 4-4로 팽팽하게 맞설 수 있었다.

“오늘은 그래도 득점이 좀 나는군요.”

“어제와 같은 것은 스코어가 팽팽하다는 것뿐이야.”

6회 초까지 두 팀은 4-4로 맞서며 상대에게 리드를 허락하지 않았다.

선발 투수가 먼저 내려간 것은 탬파베이였다.

6회 말 이반 감독은 설리반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구위가 떨어지자마자 바로 바꾸는군.”

“5와 1/3이닝 4실점. 기대보다는 살짝 떨어지지만, 양키스 타선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야.”

“다음 투수가 중요하겠군.”

설리반의 뒤를 이어 등판한 투수는 터커였다.

터커는 6회 말을 깔끔하게 막아 내며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반 감독은 터커의 호투에 신뢰를 보냈다.

“하위 타선이라고는 하지만 깔끔한 마무리군.”

바이슨 수석 코치도 터커에게 기대를 걸었다.

“터커가 이번 시리즈에서 힘을 내주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 5선발과 불펜을 오갈 수는 없으니까요.”

7회 초.

양키스도 불펜을 가동했다.

“로저와 달리 일찍 교체해 주는군요.”

이반 감독이 마운드에 오른 캔드릭을 보며 말했다.

“두 투수의 스태미너가 다르니까.”

캔드릭은 3번 타자 윌리엄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4번 타자 아울과 5번 그렉스를 삼진으로 처리하곤 이닝을 마무리했다.

“캔드릭의 투심이 좋군요.”

“투심만 놓고 보면 캔드릭이 킴보다 한 수 위지.”

이반 감독은 캔드릭의 투심을 공략하지 못하면 오늘 경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7회 말.

양키스가 터커를 상대로 기회를 잡았다.

무사 2루.

타석에 들어선 것은 3번 타자 제레미.

“여긴 승부하면 안 돼.”

김민이 낮게 중얼거린 순간 터커가 스트라이크존으로 패스트볼을 던졌다.

따악!

초구를 공략한 타구가 양키 스타디움 좌측 상단에 꽂혔다.

“제레미의 투런이 터졌습니다!”

“대형 홈런입니다! 양키스 팬들의 속이 뻥 뚫리겠군요.”

김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걸렀으면 좋았을 것을…….’

그는 제레미가 약물로 괴물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차라리 제레미의 약물 복용 사실을 밝힌다면?’

김민은 고개를 저었다.

‘증거가 없는 비난은 위험해.’

그는 리첼 리포트가 발표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날 제레미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그는 어제의 침묵을 깨고 4타수 3안타 3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양키스 6-4로 경기를 리드합니다.”

“양키스, 훌륭한 공격입니다. 탬파베이가 필승조를 투입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군요.”

터커가 7회 말을 실점 없이 막아 냈다면, 이반 감독은 필승조를 투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양키스는 탬파베이 필승조가 투입되기 직전 터커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8회 초.

탬파베이도 기회를 잡았다.

2사 1, 3루.

2루타 한 방이면 동점까지 가능한 찬스.

토린 감독은 위기의 순간 투수를 교체했다.

“투수 교체, 리베라!”

마리아노 리베라.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팡! 팡!

탬파베이 더그아웃은 그가 연습 투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얼어붙었다.

“리베라군.”

“패스트볼처럼 빠른 커터가 날아오겠지?”

“제길…… 이번 시즌도 최고 클로저는 리베라였어.”

탬파베이 팬들은 TV 앞에 앉아 경기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선수들보다 희망적이었다.

“아무리 리베라라고 해도 약점은 있어.”

“맞아, 애리조나와 월드시리즈에서 블론을 저질렀지.”

그러나 리베라는 탬파베이 4번 타자 아울을 커터로 무력화시키면서 팬들의 바람을 깨 버렸다.

“배트가 부러집니다!”

아울의 빗맞은 타구는 지터에게 흘러갔고, 지터는 그 공을 2루에 연결해 이닝을 끝냈다.

“남은 건 9회 초뿐인가?”

“상대가 리베라라면 9회 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클락의 말대로였다.

리베라는 9회 초에도 등판해 세 타자를 삼자범퇴로 간단히 돌려세웠다.

“양키스가 6-4로 2차전에 승리합니다.”

“이것으로 시리즈 스코어는 1승 1패가 되었군요. 조금도 방심할 수 없는 시리즈입니다.”

이날 승리는 양키스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중심 타선이 살아났고, 지터의 활약도 좋았어.”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리베라가 완벽하게 탬파베이 타선을 틀어막았다는 거야.”

마무리의 절대적인 신뢰는 시리즈를 치러 나가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난 탬파베이의 패기를 눌렀다는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어. 젊은 팀은 연승할 때가 가장 무섭거든.”

양키스가 많은 것을 얻은 반면, 탬파베이는 선발진에 약점만 드러내고 말았다.

“선발 투수가 길게 던져 주지 못하면, 뎁스가 얇은 불펜이 견뎌내지 못해.”

“선발이 적어도 6이닝은 막아줘야 해. 그래야 7회 터커, 8회 스페이츠, 9회 볼튼으로 마무리할 수 있지.”

2차전처럼 터커가 2이닝을 맡아야 할 경우.

탬파베이는 실점 가능성이 컸다.

“에두아르도나 에릭을 써 보는 건 어떨까?”

“에두아로드는 구위가 떨어져서 곤란하고, 에릭은 경험이 부족해서 위험하다고.”

이반 감독은 불펜의 약점을 지적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펜이 일찍 마운드에 올라간다는 것은 상황이 이미 나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승리를 결정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전승이 아니라 초반 승기를 잡은 뒤 굳히기를 바란다는 말이었다.

* * *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은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열렸다.

탬파베이 팬들은 3차전 표를 구하기 위해 전날부터 긴 장사진을 쳤다.

그러나 현장에서 표를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은 30%에 지나지 않았다.

“트로피카나 필드가 매진되었습니다. 이건 정말 흔히 있는 일이 아닙니다.”

탬파베이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는 접근성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김민의 선발 등판 때도 매진되는 일이 적었다.

그러나 탬파베이의 첫 챔피언십 시리즈는 나쁜 접근성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탬파베이 팬들은 트로피카나 필드를 가득 채우곤 목소리를 높였다.

“고! 레이스! 고! 탬파!”

3차전 양키스의 선발은 라몬스였다.

라몬스는 양키스가 우승을 위해서 데려온 에이스였다.

“선발 투수만 놓고 보면 양키스의 우세군.”

“클락으로 라몬스를 상대한다는 게 넌센스야.”

클락은 기자들의 저평가에도 불구하고 5이닝 동안 단 1실점으로 버텼다.

그 사이 탬파베이 타선이 힘을 냈다.

“윌리엄이 멀티 홈런을 쏘아 올립니다!”

라몬스는 공이 펜스 중앙을 넘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대단한 녀석이잖아.’

그는 윌리엄을 거르지 않고 정면 상대한 것이 패착이라고 생각했다.

탬파베이 4:1 뉴욕

기자들은 예상과 전혀 다른 전개에 고개를 갸웃했다.

“탬파베이는 홈에서 강한 건가?”

“그게 아니라 양키스가 돔에서 약한 것이겠지.”

“돔을 공략할 줄 모른다는 말인가?”

“돔구장은 흐르는 기류가 다르니까.”

김민은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탬파베이가 강한 것이 단순히 돔구장에 흐르는 기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류만이 아니야. 타자들의 컨디션 자체가 달라.’

10월 중순 뉴욕의 날씨는 싸늘했지만, 이곳 트로피카나 필드는 추위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탬파베이 선수들은 쾌적한 상태에서 플레이하는 법을 잘 알고 있어.’

라몬스는 윌리엄에게 홈런 2개를 내줬지만, 7이닝 4실점으로 역투했다.

그러나 양키스 타선이 경기를 뒤집는 데 실패하면서 그는 패전을 떠안아야 했다.

“탬파베이가 7-4로 3차전에 승리합니다.”

“홈에서 탬파베이는 강하군요. 양키스의 관록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직후, 로저 클레멘스가 라몬스에게 물었다.

“오늘 경기 어땠나?”

“윌리엄을 얕본 게 패인입니다.”

라몬스는 윌리엄에게 허용한 멀티 홈런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뿐인가?”

“그뿐입니다.”

“그렇다면 자넨 포스트 시즌의 맥을 잘못 찾고 있는 거야.”

라몬스는 로저 클레멘스의 오랜 경험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라몬스, 자네는 오늘 너무 강하게만 던지려고 했어. 트로피카나 필드에서는 그렇게 던져서는 안 된다고.”

트로피카나 필드는 양키 스타디움보다 투수 친화적 구장이었다.

‘투수 친화적 구장에서 정면 승부를 하면 안 된다고?’

로저 클레멘스가 꽉 막힌 천장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10월에는 이곳이 가장 뜨거운 구장이야.”

라몬스는 로저 클레멘스의 말에 깨닫는 것이 있었다.

‘따뜻한 돔구장이기 때문에 여름의 핫한 타선이 재현된다는 말이군.’

로저 클레멘스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내일 패하면 꽤 볼 만하겠군.”

4차전에서 양키스가 패하게 된다면, 시리즈 스코어 1승 3패로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1승 3패에서 시리즈를 역전한 팀은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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