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챔피언십 시리즈 07
“좋았어!”
탬파베이 더그아웃이 환호성에 휩싸였음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브라이튼! 나이스 배팅!”
“네가 해냈구나!”
로저 클레멘스는 적시타를 맞은 뒤 고개를 돌려 구속을 확인했다.
‘94마일(151km)인가?’
그의 최고 구속과 큰 차이가 나는 구속이었다.
스테로이드로 끌어올린 힘에도 한계는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기에서 한계를 확인하게 될 줄이야.’
젊은 시절 그였다면 120개가 아니라 130개도 전력으로 던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40세의 노장이었다.
“나이스 배팅!”
오티즈 2세는 자신의 친구가 양키스의 심장을 저격한 것에 환호했다.
주변 양키스 팬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브라이튼은 뉴욕에서 태어나 양키스만을 보고 자란 친구라고. 잘못은 모두 양키스에 있어. 어떻게든 저 녀석을 양키스로 데려왔어야지! 녀석은 뉴욕이 낳은 최고의 야구 선수라고.”
그는 양키스의 캡틴 데릭 지터는 뉴욕 출신이 아니며 브라이튼이 뉴욕의 정통성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대부분 양키스 팬들은 오티즈 2세의 주장에 고래를 흔들었다.
“브라이튼의 친구인 모양이군.”
“오티즈 2세가 브라이튼과 친분이 있는 줄은 몰랐어.”
토린 감독은 실점 뒤 투수 코치를 불렀다.
“불펜을 가동하게.”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상황이 빠르게 나빠졌다.
‘적시타를 맞은 게 문제가 아니야. 로저의 패스트볼 구위가 빠르게 나빠지고 있어. 이대로는 윌리엄은 물론이고 아울도 쉽게 넘을 수 없어.’
연장전 대량실점.
이는 곧 패배를 의미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우리에게는 11회 말 공격이 있다.’
토린 감독은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리베라를 준비시키겠습니다.”
동점도 아닌 뒤진 상황에서 리베라의 등판.
투수 코치 역시 경기를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게. 다만, 몸 푸는 시간을 많이 줄 수는 없다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리베라는 몸을 푸는 게 빠른 선수 중 한 명이었지만, 타자 1, 2명 상대하는 시간으로는 몸을 다 풀 수 없었다.
로저 클레멘스가 연속 안타를 맞기라도 한다면, 리베라가 등판하기 전에 상황이 모두 끝나 버릴 것이다.
토린 감독이 낮게 중얼거렸다.
“야구의 신을 너무 믿은 것일까?”
그는 로저 클레멘스가 가능한 오래 시간을 끌어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 시각 양키스 불펜.
팡! 팡!
강하게 공을 던지는 선수는 바로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였다.
다른 불펜 투수들은 곁에 서서 그의 투구를 바라보기만 했다.
“스트레칭은 이미 끝낸 모양이군. 리베라는 이 상황을 예상한 건가?”
3년 차 불펜 투수 폴의 물음에 셋업맨 캔드릭이 대답했다.
“예상했다기보다는 만약에 대비한 것이겠지. 스트레칭 정도는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으니까. 등판이 취소된다고 해도 잃을 게 없다고.”
리베라는 더그아웃의 통보가 오기 전부터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다른 불펜 투수들보다 빠르게 연습 투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윌리엄 타석까지는 시간에 맞추지 못할 거야.”
“볼넷 작전이라도 쓰지 않으면 곤란하겠군.”
로저 클레멘스는 벤치로부터 불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는 사인을 받았다.
‘불펜이라고? 토린 영감, 날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그는 입술 끝을 올렸다.
‘구속이 떨어졌다고 해도 한 타자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어.’
그가 상대할 다음 타자는 탬파베이 2번 타자 케니히.
‘선구안이 좋은 녀석이군.’
구속이 떨어진 로저 클레멘스에게 케니히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딱!
예상대로였다.
케니히는 빠른 공을 연신 커트하며 볼 카운트를 2-2까지 끌고 갔다.
“탬파베이 찬스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케니히! 집중력이 좋습니다. 다섯 번째 타석은 확실히 다르군요.”
로저 클레멘스는 모자를 벗은 뒤 어깨로 땀을 닦았다.
‘곤란한 녀석이군.’
하나 넣고, 하나 빼고.
로저 클레멘스는 마치 존 스몰츠가 된 것처럼 던지고 있었지만, 케니히는 그것을 모두 골라내고 있었다.
팡!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패스트볼.
케니히는 이 공을 다시 한번 골라냈다.
“카운트 3-2, 풀카운트입니다.”
“케니히의 선구안이 빛을 발하는군요.”
로저 클레멘스가 케니히에게 던진 6번째 공은 93마일(150km).
이반 감독은 로저 클레멘스의 힘이 확실히 떨어졌다고 판단했다.
‘93마일이라. 케니히의 사정권에 들어왔어. 이 승부…… 케니히가 이길 가능성이 크다.’
코스타 타격 코치가 물로 목을 축이면서 케니히의 승부에 집중했다.
‘94마일(151km) 전후라면 케니히의 선구안이 공의 속도를 이길 수 있다.’
슉!
빠르게 날아간 공은 높은 코스를 직격했다.
이 코스는 케니히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코스였다.
‘지금까지 바깥쪽으로 던졌던 공들은 이 하나의 공을 위한 것이었나?’
배트가 나가려는 순간 이미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마운드의 제왕은 아직 왕관을 건네지 않았다.
- 왕관을 원한다면 네 힘으로 가져라!
로저 클레멘스의 피칭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로저 클레멘스가 케니히를 룩킹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타자의 허점을 완벽하게 찔렀군요. 로저 클레멘스의 관록이 케니히의 패기를 잠재웁니다.”
이반 감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저는 로저군. 케니히를 룩킹 삼진으로 돌려세울 줄 이야.”
그는 11회 말 수비에 앞서 블렛소 투수 코치를 불렀다.
“블렛소, 어떻게 할까?”
그가 물은 것은 다음 투수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 연장 10회는 선발 투수인 김민이 소화했다.
하지만 선발 투수의 무리한 역투는 로저 클레멘스가 보여 준 것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컸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대답했다.
“정상적인 운영이라면 클로저를 투입하는 게 맞을 겁니다.”
이반 감독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답변에 왜 정상적인 운영이라는 말이 붙은 건가?”
그는 블렛소의 답변에 섞여 있는 뼈를 지목했다.
“이 경기가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이기 때문입니다.”
“자네는 킴을 올리고 싶은 모양이군.”
블렛소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규 시즌 경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중압감이 있는 무대입니다. 볼튼이 이 경기를 막아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군. 하지만 블렛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네. 그리고 위기를 넘긴 투수는 더욱 강해진다네.”
이반 감독이 볼튼을 마운드에 올리라는 지시를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김민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감독님, 마운드를 맡겨 주십시오.”
이반 감독이 눈살을 찌푸렸다.
“킴?”
“이 경기는 아메리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입니다. 게다가 장소는 양키 스타디움, 역전패라도 하게 된다면 시리즈 분위기를 양키스에게 완전히 내주게 됩니다.”
이반 감독이 물었다.
“자네가 나가면 승리할 수 있는 건가?”
김민이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전 항상 이기기 위해 마운드에 오릅니다.”
“다음 양키스 공격이 하위 타선이라는 것 때문인가?”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오늘 경기만큼은 제가 나가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김민이 설명을 덧붙였으나 이반 감독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킴, 자네의 한계 투구수. 이미 지난 것으로 알고 있네.”
김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전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이후 한 번도 한계 투구수까지 던진 적이 없습니다.”
이반 감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정말인가?”
그는 김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고개를 블렛소 투수 코치에게 돌렸다.
“아마 킴의 말이 맞을 겁니다. 킴은 제구가 어긋날 때까지 공을 던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계 투구수 근처까지 공을 던진 적은 있습니다.”
“으음…….”
곧 11회 말이 시작했다.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반 감독은 결심을 굳힌 듯 고개를 끄덕이곤 김민에게 말했다.
“좋아. 킴, 자네에게 오늘 경기를 맡기겠네. 이 경기에서 패한다면 자네가 아닌 내 책임일세.”
“오늘 경기에 패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김민은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곤 마운드로 향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뒤에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챔피언십 시리즈 11이닝 완봉승. 성공한다면 정말 대단한 기록이 될 겁니다.”
이반 감독이 김민의 등 번호 30번을 주시했다.
“이변이 없는 한 트로피카나 필드 상단에 저 번호가 박히게 되겠군.”
그는 김민이 지금까지 이룩한 업적만으로도 팀의 영구 결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민이 마운드에 오르자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킴! 연장 11회 말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오! 이것은 에이스의 자존심 대결입니다! 로저가 올라왔으니, 나도 올라온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킴의 굳은 의지입니다!”
로저 클레멘스는 김민의 등판을 보곤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여기서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면 에이스가 아닌 거야.”
라몬스는 자존심 싸움으로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로저 클레멘스가 그 말에 입술 끝을 올렸다.
“선수 생명? 선수 보호 어쩌고 하면서 투구수를 100개 이하로 제한하는 건 강이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물길을 막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한계 투구수는 투수마다 다르다고!”
그는 팀의 승리를 짊어진 에이스라면 120개 아니 그 이상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경기 말이야. 포스트 시즌이잖아. 이 한 경기로 시리즈 승패가 판가름 날 수도 있다고. 라몬스,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양키스를 선택했다고 했지? 그럼 오늘의 피칭을 잘 기억해야 할 거야.”
라몬스는 로저 클레멘스의 투수론이 너무 낡았다고 생각했다.
“정신력으로 떨어지는 체력을 메울 수는 없습니다. 로저도 결국에는 실점하지 않았습니까?”
로저 클레멘스가 미간을 좁혔다.
“그 실점은 내가 한계를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야. 한계를 정확히 알았다면 점수를 주지 않았을 거야.”
김민은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었을까?
정답은 ‘아니오.’였다.
그는 힘들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공을 던진 적은 있었지만, 구위가 급격히 떨어지거나 제구가 되지 않는 한계 투구수까지 던진 적은 없었다.
‘110개? 아니면 115개? 어느 시점에서 한계가 오는 걸까?’
김민은 호흡을 가다듬고 연습 투구에 들어갔다.
팡! 팡!
록튼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경기 초반만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킴이 지친 건가? 하긴 연장 11회 말…… 지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11회 말 선두 타자 포사다는 조용히 김민의 연습 투구를 관찰했다.
‘투구 밸런스와 축발과 내딛는 발, 모두 정상이다. 아직은 제대로 된 공을 던질 수 있어.’
그는 김민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승부를 길게 가져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10개 정도…… 아마 그 정도가 킴의 한계 투구수일 거야.’
주심의 사인에 따라 포사다가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섰다.
“연장 11회 말! 첫 타자는 포사다입니다!”
캐스터의 목소리는 왠지 들떠 있었다.
“포사다! 포사다!”
양키스 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포사다를 연호했다.
승리에 대한 바람.
양키스 팬들은 1차전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킴, 초구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을 노렸다.
‘킴은 투심 패스트볼을 제외하곤 좌타자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공이 없다. 이 공은 포심 패스트볼일 가능성이 크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백네트에 꽂혔다.
“파울!”
포사다의 예측은 정확했다.
김민이 던진 공은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그냥 포심 패스트볼이 아니야.’
포사다는 미간을 좁혔다.
김민이 초구로 선택한 공은 95마일(153km)짜리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있는 힘을 다해 던지겠다는 거군.’
그는 어쩌면 김민이 한두 타자만 상대하고 마운드를 클로저에게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2사에 클로저의 등판. 최악의 시나리오군.’
포사다는 어떻게든 자신이 출루해 동점으로 가는 물고를 터야 한다고 생각했다.
탁!
두 번째 공도 파울.
이번 공은 낮게 떨어지는 커브였다.
포사다는 자신의 스윙이 너무 성급했다고 후회했다.
‘킴의 함정에 말려들고 말았군. 눈에 오래 보인다고 해서 스트라이크가 아닌데 말이야.’
긴 승부를 하겠다는 그의 계획은 단 2개의 공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카운트 0-2입니다.”
“킴이 포사다를 상대로 유리한 고지를 점했군요. 여기서 브레이킹볼을 하나 던진다면 포사다의 배트는 따라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투 스트라이크 후 유인구.
너무나 자연스러운 볼 배합이었다.
하지만 김민은 유인구가 아닌 승부를 선택했다.
‘투구수를 아껴야 해.’
슉!
빠른 공이 다시 한번 높은 코스로 날아갔다.
‘빠, 빨라! 내가 쳐 낼 수 있을까?’
포사다는 떠오르는 공을 필사적으로 쳐 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뒤로 흘렀다.
“파울! 파울입니다!”
“95마일(153km)의 빠른 공. 포사다가 커트해냅니다.”
김민은 공을 던진 뒤, 손가락이 살짝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한계가 오고 있어.’
그가 삼구삼진을 잡으러 들어간 것은 투구수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이제 라이징 패스트볼은 더 이상 못 던지겠군.’
김민은 그립을 고쳐 잡고 네 번째 공을 던졌다.
‘하지만 내 무기는 라이징 패스트볼만 있는 게 아니야.’
딱!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공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타구 방향은 2루수 정면.
포사다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패스트볼이 아니라 커터였군. 뭐, 좋아. 적어도 삼구삼진은 면했으니까.’
그가 김민에게 던지게 한 공은 모두 4개였다.
팡!
1루수 아울의 미트에 공이 들어오면서 포사다의 아웃이 확정되었다.
“킴, 첫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아냅니다.”
“이제 완봉승까지 앞으로 2아웃이 남았군요.”
양키스를 상대로 양키 스타디움에서 완봉승.
TV 앞에 앉은 탬파베이 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우린 역사를 보고 있는 거야.”
김민은 담담한 표정으로 아울에게 공을 받았다.
‘남은 타자는 둘. 반드시 잡는다.’
다음 타자는 7번 타자 홀랜드였다.
그는 빠른 발을 가진 2루수로 탬파베이 2루수 칼튼보다 수비가 약간 떨어졌지만, 공격력만큼은 한수 위였다.
“홀랜드! 홀랜드!”
양키스 팬들은 포사다에 이어 홀랜드를 연호했다.
“어떻게든 1루에 나가라고!”
“상위 타선까지 기회를 이어줘!”
토린 감독이 초조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주시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진 않을 거야.”
그가 두 손을 모은 순간 배트가 공을 쳐 냈다.
탁!
“파울!”
홀랜드가 쳐낸 공은 낮게 떨어지는 커브였다.
“커브 비중이 높군.”
“체력을 덜 쓰는 공을 던지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요?”
“체력을 가장 적게 쓰는 건 투구수를 줄이는 거야.”
시프트를 이용한 맞춰 잡기는 김민의 특기였다.
그러나 11회 김민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구위에 자신이 없는 건가?”
“내야수의 실책을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토린 감독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흠, 내야수가 실책을 저지르는 것마저 차단하겠다는 뜻인가? 할 수 있다면 가장 완벽한 피칭이겠지. 하지만 킴, 야구는 그렇게 간단한 스포츠가 아니야.”
탁!
다시 한번 파울.
호이스트는 김민의 구위가 하락했다고 확신했다.
“지금은 빗맞고 있지만, 몇 개만 더 지나면 정타가 나올 거야.”
그는 휴대폰을 들었다.
구단 스텝에게 연락해 적극적인 타격을 주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순간 홀랜드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크게 떨어진 스플리터.
그 각도는 포크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직 저런 공을 감추고 있었나?”
호이스트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면서 혀를 찼다.
“킴! 완봉까지 앞으로 단 하나의 아웃 카운트가 남았습니다.”
“토린 감독, 대타를 기용하지 않는 것일까요?”
양키스의 마지막 타자는 8번 타자 알렌.
토린 감독은 대타 없이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알렌은 이번 시즌 18개의 홈런을 때려냈어. 어설픈 대타보다는 알렌이 나아.”
알렌은 배트를 다소 길게 잡았다.
‘2사야. 연속 안타를 바라는 것보다는 한방으로 동점을 노리는 게 좋아.’
그는 초구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췄다.
‘빠른 걸로 하나 보내 달라고.’
예상 코스는 바깥쪽.
그의 눈동자에 와인드업하는 김민이 담겼다.
‘온다!’
슉!
한가운데 빠른 공.
원하던 공보다 더욱 좋은 공이었다.
알렌은 망설일 것이 없었다.
‘이것으로 동점이다.’
배트가 공을 향해 빠르게 돌았다.
이윽고 터진 둔탁한 소리.
탁!
알렌은 두 눈을 감았다.
‘공이 배트 안쪽에 맞았군.’
김민이 던진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이 아닌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록튼이 몸을 일으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격수!”
유격수 브라이튼은 빠르게 움직여 공을 잡았다. 그리곤 1루에 정확히 송구.
파앙!
아울은 공이 미트에 들어온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가 이겼어!”
그의 외침과 동시에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스코어 1-0! 킴이 양키 스타디움에서 11이닝 완봉승을 완성합니다!”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은 탬파베이가 가져가는군요. 정말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김민은 경기 직후 마운드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한계로군.”
그가 던진 마지막 공은 평범한 투심 패스트볼이었지만, 그의 남은 힘 전부를 담은 공이었다.
록튼이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킴! 넌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다른 동료들도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김민은 그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