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78화 (178/296)

178화 챔피언십 시리즈 03

김민이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바깥쪽 낮은 코스였다.

그러나 이 코스는 메이저리그 투수라면 누구나 선호하는 코스였다.

‘오늘 경기…… 킴은 바깥쪽 낮은 코스에 패스트볼을 선호하지 않았다.’

김민은 바깥쪽 낮은 코스에 패스트볼이 아닌 스플리터나 슬라이더를 던져 범타와 헛스윙을 유도했다.

‘타선이 한 번 돌 때까지는 이런 패턴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초구로 스플리터를 예상했다.

‘슬라이더보다는 스플리터야. 킴은 횡으로 휘는 공보다 종으로 떨어지는 공에 더 익숙해.’

배트를 세우자 초구가 날아왔다.

슉!

바깥쪽 빠른 공.

포사다는 그 공에 집중했다.

‘분명 떨어진다.’

그러나 공은 떨어지지 않고 배트를 스쳐 지나갔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4마일(151km).

자로 잰 듯 제구된 빠른 공이었다.

포사다는 미간을 좁혔다.

‘정확히 제구하면 날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건가? 쳇, 킴에게 얕보이고 있군.’

김민은 포사다를 좋은 타자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가 제레미나 오스번 같은 파워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라이징 패스트볼이나 고속 슬라이더 같은 공 없이도 포사다는 잡을 수 있어.’

탬파베이 타자 중에 포사다와 비슷한 유형은 아울이 있었다.

언제나 평균 이상을 해 주지만 몬스터 시즌은 없는 타자.

물론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아울은 그런 선입견을 깨는 디비전 시리즈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카운트 0-1, 킴이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빠른 공이 안쪽 코너를 노렸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포사다는 배트를 쓰다듬으면서 미간을 좁혔다.

‘바깥쪽 코너에 스트라이크를 꽂은 다음 안쪽으로는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나는 공을 던졌어.’

김민이 던진 두 번째 공은 코너로 향했으나 스트라이크존이 아닌 존밖에 걸치는 공이었다.

이런 공을 당기면 대부분 라인을 벗어나는 파울이 나왔다.

“카운트 0-2입니다.”

“킴이 포사다를 상대로 유리한 승부를 가져가는군요.”

양키스의 토린 감독은 호이스트가 경기 전 건넨 파일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다양한 공을 구사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패스트볼을 노리는 것이 좋다. 바뀐 것이 하나도 없잖아. 지난해 보고서를 복사기로 복사한 것 아니야?”

그가 눈살을 찌푸린 순간 포사다가 두 번째 파울을 만들어 냈다.

“포사다! 커터를 커트하면 버팁니다.”

포사다는 파울을 친 직후 배트에 숨을 불어넣었다.

“후우…… 네가 날 살렸다.”

오늘 경기는 월드시리즈에 설 팀을 가리는 챔피언십 시리즈였다.

포사다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한 번도 쉽게 물러선 적이 없었다.

‘월드시리즈라면 모를까? 아직은 아니야.’

그는 차분하게 배트를 세웠다.

‘3구는 커터. 남은 공은 아마도 스플리터겠지.’

포사다는 김민이 결정구로 사용하기 위해 스플리터를 아껴두었다고 판단했다.

‘코스는 아마도 한가운데 낮은 코스.

한가운데 낮은 코스는 오스번에게 던졌던 바로 그 코스였다.

그러나 김민의 손을 떠난 공은 홈플레이트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지 않았다.

‘커브라고! 타이밍이 맞지 않아.’

포사다는 커트를 시도하기보다는 볼이 되길 바라고 배트를 멈췄다.

긴 호를 그린 커브가 그대로 록튼의 미트에 내려앉았다.

팡!

록튼은 주심의 입에서 스트라이크 판정이 나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주심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홈콜이었다.

‘이게 볼이라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칠게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김민은 그런 그를 다독이듯 글러브를 들었다.

어서 공을 달라는 뜻.

록튼은 김민의 사인을 보고 화를 억눌렀다.

‘그래, 킴이 참고 있는데 내가 화를 내면 안 되지.’

록튼은 미트에서 공을 뺀 다음 김민에게 던졌다.

“나이스 볼!”

팡!

김민은 공을 잡은 뒤, 2루 베이스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 커브를 잡아주지 않으면 곤란한데 말이야.”

카운트 1-2, 여전히 김민에게 유리한 카운트였다.

하지만 주심이 홈콜을 적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하나 정도 더 뺄 수 있는 카운트. 하지만 홈콜도 있고…… 포사다를 상대로 길게 승부를 끄는 건 좋지 않아.’

김민은 왼쪽 어깨에 오른손을 가져갔다.

“킴! 빠르게 사인을 주고받습니다.”

“킴의 사인은 언제나 빠르죠. 그래서 킴이 사실은 사인을 내지 않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양키스 전력분석팀은 김민과 록튼이 주고받는 사인을 분석하려고 몇 번이나 도전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이 없었다.

호이스트는 미간을 좁혔다.

‘김민과 록튼이 주고받는 사인은 보통 선수들의 그것과 달리 너무 간단했지. 처음에는 아주 쉽게 분석할 수 있다며 쾌재를 부를 정도였어.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상대는 킴이잖아.’

김민의 손가락 수는 구종을 뜻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이를 바탕으로 한 분석은 양키스 타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킬 뿐이었다.

‘손가락 사인은 페이크고 김민과 록튼은 다른 부분 제스처로 사인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호이스트는 그것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소매, 로진백, 모자, 공을 받기 전 움직임.

하지만 어느 부분에도 공통적인 사인이 없었다.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포사다는 타격에 앞서 배트를 3cm 정도 더 짧게 잡았다.

이는 타구 비거리를 약간 손해 보더라도 스윙 궤적을 줄여 다양한 공에 대처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스플리터!’

그는 끈질기게 스플리터를 노렸다.

슈욱!

홈플레이트를 지난 공이 그대로 미트를 파고들었다.

이번 공은 커트를 시도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공이었다.

‘스플리터가 아니잖아.’

파앙!

공이 미트를 강하게 때렸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포사다는 스윙 직후 록튼의 미트 위치를 확인했다.

미트는 홈플레이트 바깥쪽으로 살짝 움직인 채였다.

‘볼? 킴이 빠지는 패스트볼을 던졌다고? 믿을 수가 없군. 와일드한 바깥쪽 공을 던지는 킴이라니.’

김민이 포사다에게 던진 패스트볼은 95마일(153km)의 빠른 공이었다.

이 공은 위로 떠오르는 라이징 패스트볼이 아니었지만 횡으로 지저분한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었다.

김민은 포사다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다음 마운드를 내려왔다.

“나이스 피칭.”

록튼이 다가오며 미트를 내밀자 김민이 글러브로 미트를 받아주었다.

“나이스 캐칭.”

두 사람은 더그아웃으로 향하며 다음 이닝에 사용할 사인 패턴을 확인했다.

“B야.”

“오케이 B."

두 사람은 2년 차부터 매 이닝 사인을 바꿔 상대 팀의 분석을 피하고 있었다.

다른 팀들은 이렇게 사인을 바꾸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매 이닝 사인을 바꾸게 되면 내야수들이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 내야수 중 절반 이상은 투수의 볼 배합을 보고 타자의 타구를 예측했다.

매 이닝 사인을 바꾼다면 내야수들이 자칫 타구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스타트를 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탬파베이에서는 이것이 문제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탬파베이의 거의 모든 내야 수비가 시프트에 의해서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수비수들은 타구를 예측하기보다는 시프트 진형을 잡는데 더 많은 신경을 썼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마자 록튼이 미간을 좁혔다.

“킴, 아까 그 커브 말이야.”

김민이 글러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홈콜이겠지.”

“챔피언십 시리즈라고, 홈콜이 말이 되는 건가?”

김민이 시선을 관중석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가장 비싼 푯값을 내고 홈팀을 응원하기 위해 온 팬들이야. 그들을 위해 홈콜이 존재한다고 하면…….”

“그건 지나친 가정이야.”

김민의 말을 끊은 사람은 블렛소 투수 코치였다.

“실제로 홈콜이 있다고 해도 투수는 그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공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마운드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

김민 역시 몇 년 전 블렛소 투수 코치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조리야.’

김민이 말을 하려는 순간 이반 감독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선수들을 향해 좀처럼 말을 하지 않는 감독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대부분 코치들을 통해 전달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이 직접 김민에게 뜻을 전달하고자 했다.

“아니, 홈콜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메이저리그가 자본으로 운영되는 프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우린 기록지에 기록될 기록 때문에 야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한 팬들을 위해 야구를 하는 것이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미간을 좁혔다.

“그렇기에 더욱 홈콜 같은 불공정한 것에…….”

“블렛소, 팬들은 정당한 시합을 보기 위해서 스타디움을 찾는 것이 아니야. 자네는 아직도 그것을 모르는 것인가? 팬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것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것이다. 즉, 저기 보이는 양키스 팬들은 우리의 패배를 보기 위해서 비싼 티켓을 구입한 것이라고.”

이반 감독은 말을 잠시 쉰 뒤, 김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킴, 스트라이크존이 일관되게 변하는 홈콜이라면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일관됨이 없는 콜이라면 기다려라. 내가 주심의 머리를 받아 버릴 테니까.”

선발 투수가 홈콜에 대한 항의를 해서는 안 된다.

대신 감독인 자신이 주심에게 항의하겠다.

김민은 이반 감독이 달리 보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다음 이닝도 그 자세로 간다.”

3회.

양 팀 선발 투수는 하위 타선을 상대했다.

실점은 당연히 없었으며, 주자 또한 내보내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1, 2회 달랐던 두 투수의 패턴이 3회 같은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로저가 삼진 없이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이번 이닝은 삼진 없이 땅볼 2개에 플라이 1개군요. 굉장히 평범한 이닝입니다.”

이반 감독은 절대 평범한 이닝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위 타선을 상대로 투구수와 체력을 아꼈군.”

“7번부터 시작하는 하위 타선이 로저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김민은 처음부터 운영을 위주로 하는 피칭이었기 때문에 스타일에 큰 변화가 없었다.

‘치지 않는다면 삼진, 친다면 땅볼. 그게 가장 좋아.’

세 타자를 상대로 1삼진 2땅볼.

충분히 만족할만한 피칭이었다.

4회 초.

탬파베이 1번 타자 브라이튼이 타석에 들어섰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브라이튼이 타석에 들어서기 전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다.

“한가운데 패스트볼만 노려라. 나머지는 어차피 네가 칠 수 없는 공이다.”

데뷔 시즌 내내 3할을 유지했던 브라이튼이었다.

지난 시즌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번 시즌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브라이튼은 코스타 타격 코치의 주문에 눈썹을 세웠다.

“제 배트 컨트롤을 의심하는 겁니까?”

그는 코치의 한마디가 자신의 타격 재능을 의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브라이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정확히 5분 뒤, 윌리엄에게도 같은 주문을 할 것이다. 네가 윌리엄보다 더 뛰어난 타자라고 생각한다면 내 지시를 무시해도 좋다.”

브라이튼은 이 한마디에 꼬리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가운데 공만 치겠습니다.”

그가 배터 박스로 향한 직후 바이슨 수석 코치가 코스타 타격 코치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좀 강하게 나갔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로저는 이길 수 없는 투수입니다.”

“그건 그렇고. 가운데라. 로저는 그렇게 제구력이 나쁜 투수가 아니야.”

코스타 타격 코치가 말했다.

“나쁜 투수는 아니지만, 제구력이 킴처럼 아주 좋은 투수도 아닙니다. 한 경기에 5, 6개 정도는 가운데로 몰린 공이 들어오곤 합니다.”

“하지만 그 몰린 공에 담긴 힘을 생각해야 해. 알고도 못 치는 공이 2, 3개는 될걸?”

“남은 2, 3개가 있지 않습니까? 그 공을 공략하면 됩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로저 클레멘스에게 빼앗을 수 있는 점수가 많아야 1, 2점이라고 생각했다.

‘단타 하나에 장타 하나. 이 정도면 점수를 낼 수 있어.’

그는 타순을 점검하며 미간을 좁혔다.

‘오늘 같은 경기는 단순한 머레이를 2번으로 당겨도 좋았을 텐데 아쉽군.’

케니히는 좋은 눈을 가졌지만, 지나치게 공을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타입은 로저 클레멘스처럼 힘으로 타자를 압도하는 유형에게 약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힘없이 유격수 쪽으로 흘러갔다.

“지터! 가볍게 공을 캐치합니다.”

브라이튼은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했지만, 공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아웃!”

그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마자 코스타 타격 코치에게 사과했다.

“바깥쪽 공에 배트가 나가고 말았습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꾸짖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칠 수 있다고 생각했나?”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쳐도 좋아.”

브라이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배터 박스에 들어가기 전에는 분명 가운데 공만 치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타자가 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코치가 그것을 말린다면 말이 되지 않지. 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은 치는 게 좋아. 단, 정말로 칠 수 있는 공인가는 잘 생각해야 할 거야.”

브라이튼이 유격수 땅볼로 물러난 공은 바깥쪽에 걸치는 패스트볼이었다.

전광판에 기록된 구속은 96마일(154km).

‘정말로 칠 수 있는 공이었나? 코너에 들어갔다면…… 칠 수 없었을 거야. 하지만 로저의 공은 코너가 아닌 스트라이크존 근처에서 걸쳤어. 힘을 빼고 조금 더 컨택에 집중했다면…….’

브라이튼은 자리로 돌아가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컨택에 집중하는 사이 공이 미트에 꽂혔을 거야. 바깥쪽 공은 웬만하면 치지 않는 게 좋겠어.’

그가 자리에 앉은 순간 로저 클레멘스가 초구를 스트라이크존에 꽂아 넣었다.

“로저가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습니다!”

“케니히, 배트를 내지 못하는군요.”

이반 감독이 바이슨 수석 코치에게 말했다.

“코스타가 바쁘게 움직이더군. 방법을 찾았나?”

바이슨 수석 코치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기도하는 게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기도라. 로켓맨을 상대로 타석에 들어선다면 그 방법밖에 없긴 하지.”

로저 클레멘스가 신인이던 시절 이반 감독은 은퇴를 앞둔 노장이었다.

그는 딱 한 타석 로저 클레멘스와 상대한 적이 있었다.

“드와이트 구든이라고 알지? 그 친구와 똑같았어. 맞으면 죽을 것 같더라고.”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케니히가 배터 박스에 쓰러졌다.

“케니히!”

탬파베이 더그아웃의 코칭 스텝과 선수가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바이슨, 어서 가봐!”

바이슨 수석 코치는 이반 감독의 지시에 트레이너와 함께 배터 박스로 향했다.

“케니히, 괜찮나?”

케니히가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지금 여긴 천국인가요?”

“아니, 지옥이야.”

“허벅지에서 고통이 느껴지는 게 굉장히 설득력이 있네요.”

바이슨 수석 코치가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케니히, 몸에 문제가 없다면 일어나서 1루로 향하는 것이 좋겠어.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의료팀과 함께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지.”

케니히가 호흡을 조절하며 말했다.

“망치로 맞은 것처럼 아프지만 병원에 가는 건 사양하겠습니다.”

그는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케니히가 1루로 걸어 나갑니다.”

포사다는 로저 클레멘스의 이번 공이 실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쪽 스트라이크존을 노린 패스트볼이 너무 깊게 들어갔어.’

실투는 한가운데로 몰린 공만 있는 게 아니었다.

투수가 던지고자 하는 코스에서 멀어진 공.

그 공이 바로 실투였다.

“1사 1루, 3번 타자 윌리엄이 등장합니다.”

윌리엄은 탬파베이의 시몬스였다.

“탬파베이가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타자가 타석에 섰습니다.”

탬파베이 선수라면 누구나 그의 실력을 인정했다.

“윌리엄이 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정말로 윌리엄이 치지 못한다면?”

“그땐 방법이 없는 거지.”

윌리엄은 배터 박스에 서기 전 코스타 타격 코치로부터 브라이튼과 똑같은 지시를 받았다.

그는 코스타 타격 코치의 말을 듣자마자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실투를 노리라는 소리야.’

제구된 공은 칠 수 없다.

그러니 실투를 노려라.

윌리엄은 배트를 세우면서 생각했다.

‘제구된 공을 정말로 칠 수 없을까?’

슉!

초구가 날아왔다.

‘바깥쪽 공.’

그는 배트를 멈춘 채 공이 미트에 꽂히는 것을 지켜보았다.

파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7마일(156km).

‘치고자 한다면 못 칠 공은 아니야.’

문제는 무브먼트였다.

로저 클레멘스가 던지는 패스트볼은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 이상으로 떠올랐다.

‘플라이가 될 가능성이 너무 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배트를 다시 들었다.

‘답은 다운스윙이야.’

이론상으로…….

떠오르는 공을 다운스윙으로 찍어 누르면 안타성 타구가 나왔다.

문제는 이 이론을 완벽하게 입증해 보인 타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한번 해 보겠어.’

윌리엄은 배트를 꾹 쥐었다.

그리고 잠시 뒤, 빠른 공이 들어왔다.

‘높은 코스. 칠 수 있어.’

한가운데는 아니었지만, 한가운데에 근접한 공이었다.

윌리엄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의 배트가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대로 찍어낸다.’

딱!

경쾌한 소리는 타구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좋았어! 내야를 빠져나갈 수 있어.’

윌리엄은 회심의 미소와 함께 1루로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양키스에는 최고의 수비를 자랑하는 유격수 데릭 지터가 있었다.

“지터! 믿기지 않는 순발력으로 2루 베이스를 지난 공을 잡아냅니다!”

지터는 공을 잡은 뒤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2루로 향하는 주자는 늦었어.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야.’

그는 강하게 1루에 공을 던졌다.

팡!

“윌리엄, 1루에서 아웃입니다. 하지만 주자를 2루에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2사 2루.

이어지는 타자는 4번 타자 아울.

3번 타자 윌리엄이 아웃 되긴 했지만, 탬파베이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김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윌리엄의 타구를 지터가 막아 낼 줄이야. 일이 어렵게 되었어.”

그가 바랐던 상황은 1사 1, 3루였다.

1사 1, 3루라면 플라이나 땅볼로 쉽게 점수를 뽑을 수 있었다.

하지만 2사 2루는 아니었다.

안타가 아니면 점수를 뽑을 수 없었다.

‘로켓을 상대로 안타. 못 칠 건 없지만…… 그는 가장 자신 있는 공을 아울에게 던질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