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75화 (175/296)

175화 디비전 시리즈의 승자 05

8이닝 1실점 승리.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 두 선발 투수가 동시에 거둔 기록이었다.

먼저 기록을 세운 선수는 탬파베이의 김민이었다. 그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상대로 호투 승리를 따냈다.

그리고 잠시 뒤, 다른 구장에서 또 한 명의 투수가 8이닝 1실점으로 4차전 승리를 따냈다.

“미네소타가 뉴욕 양키스를 꺾고, 시리즈를 5차전으로 몰고 갑니다!”

“오늘 승리는 요한 산타나가 만든 것입니다.”

미네소타 선발 요한 산타나는 90마일 중반의 강속구와 변화무쌍한 써클 체인지업을 무기로 양키스의 무적 타선을 단 1점으로 막아 냈다.

“타구장 소식을 알려 드리면, 오클랜드와 탬파베이의 시리즈는 탬파베이가 2-1로 승리하면서 오늘 막을 내렸습니다.”

“탬파베이가 창단 최초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했군요.”

“그렇습니다. 5차전 승자가 탬파베이를 상대로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를 치르게 됩니다.”

창단 최초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

탬파베이 선수들은 클럽 하우스에서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었다.

“우리가 통과했어!”

“이제 챔피언십 시리즈야!”

역사가 짧은 신생팀에게 챔피언십 시리즈는 월드시리즈 진출과 맞먹는 기쁨을 주었다.

“킴! 최고의 피칭이었어!”

록튼이 김민과 어깨동무를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잘해 준 덕분이지.”

디비전 시리즈 MVP는 폭발적인 화력을 보여 준 아울에게 돌아갔다.

아울은 선수들에게 샴페인 세례를 받으면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세계의 왕이다!”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모 감독이 보여 준 퍼포먼스를 재현해 팀 메이트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아울! 아울!”

“멋지다! 아울!”

오늘만큼은 이반 감독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훌륭한 시리즈였다. 다들 최고였어.”

코칭 스텝도 승리를 축하하는 짧은 파티에 참여했다.

“고! 레이스! 고 레이스!”

1시간가량 이어진 파티가 끝나자 선수들이 라커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킴, 오늘도 숙소에서 자는 건가?”

김민이 고개를 돌리자 취기가 오른 머레이가 보였다.

‘머레이, 꽤 취했는데.’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오늘 같은 날은 여자라도 불러 보라고. 침대에 혼자 눕는 건 재미가 없잖아.”

김민이 오른손을 흔들며 말했다.

“머레이, 난 스캔들에 휘말리기 싫어.”

“스캔들?”

김민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돈 많은 싱글은 매사를 조심해야 한다고.”

머레이는 김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킴은 최저연봉 아니었어?”

“지난 시즌 연장 계약을 했잖아. 연봉 500만 달러(62억 원)라고.”

“아, 그렇군. 서비스 기간에 돈을 받는 대신 연봉을 크게 깎았지? 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킴!”

머레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통로를 따라 비틀비틀 걸었다.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군.”

김민은 그가 걱정되어 구단 스텝을 불렀다.

“존, 시간이 되면 머레이를 좀 태워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민은 스텝인 존과 함께 머레이를 차에 태웠다.

머레이는 술이 깨지 않은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킴, 다른 파티장에 가는 건가?”

“파티는 끝났어.”

“그래?”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집은 싫어. 파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파티는 끝났어.”

김민은 존의 차로 머레이를 집까지 데려다준 뒤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딸칵.

불을 켜자 정면의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1시인가?”

자정을 훌쩍 넘은 시간.

김민은 TV를 틀었다.

“5회 초 오클랜드의 공격입니다.”

TV에 나온 경기는 그가 선발로 등판한 디비전 시리즈 4차전이었다.

“녹화 방송이군.”

김민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경기에 집중했다.

딱!

경쾌한 타구와 함께 호세의 타구가 하늘 높이 날아갔다.

“이건 파울이었지.”

툭.

호세의 타구는 펜스를 넘어갔지만, 그의 말대로 파울 지역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삼진.”

볼 배합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나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표정이 너무 어두워.”

김민은 마운드에 있는 자신이 너무 지쳐 보였다.

“오늘 피칭이 그렇게 힘들었던가?”

3일 휴식 후 등판.

시즌 로테이션보다 딱 하루를 덜 쉬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느낀 피로는 예상 이상이었다.

“포스트 시즌과 정규 시즌의 집중력 차이 때문일까? 1차전의 피로를 풀지 못한 채 등판했어.”

김민은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시선은 여전히 TV에 고정되어 있었다.

“삼진! 삼진입니다!”

캐스터의 목소리가 아련해진 순간 눈꺼풀이 눈을 완전히 덮고 말았다.

김민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창밖으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아, 아침인가?”

그는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유니폼도 벗지 않고, 씻지도 않았어. 모든 게 엉망이군.”

그는 한숨을 내쉬며 욕실로 향했다.

띠리리릭.

휴대폰 벨소리가 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침부터 누구지?”

액정화면에 뜬 번호는 모르는 번호였다.

“광고전화인가?”

김민은 미간을 좁히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킴, 나야.”

“음?”

“록튼이라고.”

“번호가 다른데?”

록튼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케니히의 집이야. 그리고 지금 걸고 있는 휴대폰은 누구 건지 모르겠어.”

“케니히 휴대폰 아니야?”

“그게…… 지금 이 집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있거든. 다들 술에 취해서 자고 있어.”

김민은 그들이 새벽까지 승리 축하 파티를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월드시리즈 우승도 아닌데 지나치군.’

그는 양키스와 미네소타의 시리즈가 5차전까지 이어진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상태로 바로 챔피언십 시리즈를 시작했다면, 끔찍했을 거야.’

1, 2차전 패배는 물론이고 스윕까지 각오해야 했을 것이다.

록튼이 물었다.

“킴, 내 말 듣고 있어?”

김민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듣고 있어.”

“케니히의 집까지 와 주지 않겠어?”

“난 파티는 사양이야.”

“그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갈 차비가 없어서 그래. 다들 술에 취해서 일어나도 운전을 할 수가 없다고. 새벽 내내 무슨 짓을 했는지. 지갑도 텅텅 비였어.”

“택시를 타면 되잖아. 돈은 후불로 줘도 되고, 메이저리그 스타가 왜 그 모양이야.”

록튼이 곤란한 듯 말했다.

“킴, 여긴 택시가 오는 곳이 아니라고.”

김민은 미간을 좁힌 뒤 테이블로 향했다.

“주소를 말해 봐.”

“오케이.”

1시간 뒤.

김민은 택시 기사와 함께 한적한 바닷가를 달리고 있었다.

“이야. 킴 선수를 모시게 될 줄이야. 오늘은 정말 운이 좋습니다.”

김민은 택시 기사가 내민 사인지 4장을 순식간에 채우곤 미소를 지었다.

“꽤 먼 곳이네요?”

“그렇죠. 여긴 경치가 좋다는 것 외에는 좋은 게 없습니다. 마트도 멀고, 강력 범죄가 일어나도 알 수 없는 곳입니다.”

김민은 해변 도로를 달리면서 생각했다.

‘케니히가 매일 지각하는 이유가 있었군. 이런 곳에 살고 있으니, 지각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잖아.’

이곳에서 트로피카나 필드까지는 무려 2시간 이상이 걸렸다.

‘케니히는 왜 이런 곳에 사는 걸까?’

그의 의문은 케니히의 저택에 도착하고 나서야 풀렸다.

“굉장한 해변이군. 이게 개인 해변이란 말인가?”

케니히의 저택은 멕시코만과 마주하고 있었다.

희고 고운 백사장.

파란 바다 그리고 그보다 더 파란 하늘.

천국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

“여! 킴!”

저택 입구에서 손을 흔드는 이는 바로 록튼이었다.

“록튼.”

김민은 택시를 기다리게 한 뒤, 록튼에게 다가갔다.

“케니히는 괜찮은 거야?”

“몰라. 아직도 자고 있어.”

“나머지는?”

“버넷이 함께했는데 그 친구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아.”

버넷은 내야 백업으로 브라이튼과 칼튼의 빈자리를 채우곤 했다.

“일단 돌아가자고.”

김민은 거실에 누워 있는 여자들을 보고 어제 파티가 어떤 것이었는지 잠시 상상했다.

‘약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가 생각한 약은 근육강화제나 스테로이드가 아닌 마약을 말했다.

메이저리그 선수가 파티에서 마약을 흡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커리어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록튼, 가루는 없었지?”

록튼이 두 손을 마구 휘두르며 말했다.

“당연하지. 저 파티는 술이 주였다고. 물론 2층으로 올라간 친구들은 잘 모르겠어.”

“케니히도 2층에?”

“아니야. 그 친구는 모래사장에서 자고 있더라고.”

“깨우지 그랬어.”

“깨웠지. 그래서 지금은 1층 침실에서 애인과 함께하고 있을 거야.”

김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애인이 있었던가?”

“6개월 되었다고 하더라.”

“한창 좋을 때군.”

“그래 보이더라고. 나도 오프 시즌에는…….”

김민이 록튼의 말을 끊었다.

“오프 시즌에는 훈련이야.”

록튼이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킴!”

“케니히는 FA로 대박을 쳤고, 우린 아직 이룬 게 없다고.”

록튼은 막 서비스 타임이 끝났을 뿐이었다.

그가 FA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아직 3시즌을 더 기다려야 했다.

“알겠어. FA까지만 참으면 되잖아.”

“FA 이후 성적은 어떻게 하려고?”

“성적과 사랑, 둘 다 잡으면 되잖아.”

록튼은 김민이 깐깐한 어머니처럼 느껴졌다.

그가 차에 오르자 기사가 차를 돌렸다.

“여기 사시는 겁니까?”

“그냥 파티에 참석했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택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김민은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탬파베이 선수들이 전부 케니히나 록튼 같으면 곤란한데.’

그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선수들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렸다고 생각했다.

* * *

탁!

타구가 힘없이 2루수 옆에 떨어졌다.

“칼튼 뭐 하는 거야! 그런 타구를 놓치다니!”

수비 코치의 불호령에 칼튼이 목소리를 높였다.

“수정하겠습니다.”

이반 감독은 선수들의 몸 상태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리 파티가 심했던 것 같군.”

“몇몇 선수들이 다음 날 아침까지 파티를 벌였다고 합니다.”

“아침까지?”

“예.”

“그런 파티는 우승 뒤에 해도 늦지 않아.”

이반 감독은 연습 일정을 조금 더 타이트하게 잡기로 했다.

‘젊은 친구들에게 시간은 곧 일탈이란 말인가? 포스트 시즌은 아직 반도 지나지 않았어.’

모든 선수들이 칼튼이나 케니히처럼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 아니었다.

빠른 송구가 외야에서 홈까지 단숨에 이어졌다.

“나이스 송구!”

“멋진데! 레이저빔이잖아.”

정확한 홈송구를 보여 준 이는 윌리엄이었다.

그는 클럽하우스 파티가 끝난 뒤 집으로 직행한 다섯 명 중 한 명이었다.

“윌리엄은 좋군.”

“모범생이니까요.”

“생긴 것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윌리엄은 탬파베이 선수 중 얼굴이 뛰어난 편에 속했다.

그 덕분에 윌리엄은 여성들의 지지도가 높았다.

“머레이도 괜찮군.”

“머레이는 킴이 집까지 데려다줬다는 소문입니다.”

“킴이?”

“술이 약해서 클럽 하우스 파티만으로도 취했다고 하더군요.”

이반 감독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럴 때는 술이 약한 것도 도움이 되는군.”

탬파베이 선수들은 시즌 중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술에도 취기가 오르는 선수들이 많았다.

“브라이튼! 더 빨리 움직여!”

“알겠습니다!”

브라이튼의 풋워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저 친구도 일찍 퇴근한 건가?”

“브라이튼은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따로 노는 친구라서…….”

탬파베이 선수들의 연습이 끝날 무렵.

뉴욕 양키스와 미네소타 트윈스의 디비전 시리즈 5차전이 열렸다.

“고! 양키! 고! 양키!”

장소는 양키스 홈구장 양키스타디움.

“미네소타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양키스 선발 투수는 우승을 위해 영입된 좌완 투수 라몬스였다.

“라몬스는 이번 시즌 18승을 거두면서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습니다.”

“4일 휴식 후 등판, 컨디션은 괜찮을 겁니다.”

지난 경기 라몬스는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승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라몬스의 슬라이더가 1번 타자 카인의 배트를 무력화시켰다.

“라몬스,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군요.”

미네소타는 어떻게든 라몬스를 쓰러뜨려야만 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끝낼 수는 없어.”

그러나 라몬스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2번 타자 번즈와 3번 타자 헐크가 나란히 내야 땅볼과 외야 플라이로 물러났다.

시몬스는 그 상황을 대기 타석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승을 위해 영입한 에이스라. 쳇, 양키스다운 짓이군.’

미네소타는 탬파베이보다는 재정 상황이 나았지만, 선수 영입에 큰돈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양키스 타선에 맞설 미네소타 선발 투수는 바로 레드입니다!”

레드는 요한 산타나가 등장하기 전까지 1선발을 맡았던 에이스였다.

“레드가 양키스 타선을 막아 낸다면 미네소타는 그토록 원하던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지터를 상대한 레드는 1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연속 안타입니다!”

1, 2번 타자에게 안타, 그리고 3번 제레미를 볼넷.

“무사 만루입니다! 레드, 어떻게 된 일일까요?”

시몬스는 레드의 얼굴이 창백한 것을 보곤 혀를 찼다.

‘안 되겠어. 경기의 무게에 눌렸어.’

지면 끝인 서든 데스 게임.

레드는 서든 데스 게임의 압박감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타임!”

포수가 타임을 부르고 마운드에 올라갔으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딱!

높이 뜬 타구가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를 갈랐다.

“3루 주자, 2루 주자 홈에 들어옵니다! 단숨에 2득점! 양키스 2-0으로 앞서 나갑니다.”

레드가 정신을 차린 것은 4점을 주고 난 다음이었다.

그는 6, 7, 8번을 연속해서 잡아냈으나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김민과 록튼은 레드의 피칭을 보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챔피언십 시리즈에 올라오는 것은 역시 양키스군.”

“레드, 너무 아쉬운 피칭이었어. 평소대로 던졌다면 그래도 해 볼 만했는데.”

레드는 1회 4실점 한 뒤 3이닝 동안 양키스 타선을 잘 막아 냈다.

하지만 5회 다시 2실점하면서 마운드를 내려오고 말았다.

“6-2, 승부가 갈렸어.”

록튼이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시몬스의 투런 홈런으로 4-2까지 따라갔는데 또 실점하고 말았어.”

시몬스는 미네소타 트윈스를 챔피언십 시리즈로 이끌기 위해 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양키스를 누를 수는 없었다.

8회 말 스코어는 8-3까지 벌어졌다.

“미네소타, 이제 마지막 공격이 남았을 뿐입니다.”

시몬스는 배트를 쥔 채 마운드를 노려보았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5점 차.

빅이닝을 만들 수 있다면 역전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양키스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전설의 클로저 마리아노 리베라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경기는 리베라의 삼진으로 마무리되었다.

“뉴욕 양키스! 다시 한번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합니다!”

김민이 TV를 끄며 말했다.

“록튼, 시몬스의 복수를 해 줄 차례야.”

* * *

띠리리.

김민은 눈을 감은 채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그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다.

“킴, 나야. 시몬스.”

김민과 시몬스는 지난 올스타전에서 번호를 교환한 사이였다.

“시몬스?”

김민이 스탠드에 불을 켰다.

“대체 몇 시인데…….”

“6시야.”

“6시?”

“난 항상 6시에 일어난다고.”

김민은 미간을 좁혔다.

“야간 경기 때도 말인가?”

“맞아. 잠은 하루에 6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김민은 속으로 혀를 찼다.

‘6시간으로 충분하다니, 슈퍼 유전자를 가진 모양이군.’

“네가 부지런하다는 건 알겠는데.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네게 하나 알려 주고 싶은 일이 있어서 말이야.”

“내게?”

시몬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제레미를 조심해.”

“제레미?”

“가능하면 볼넷으로 내보내. 맞춰도 좋고.”

‘맞춰도 좋다니, 대체…….’

“…….”

“디비전 시리즈 2차전이었어. 완벽히 제구된 공이었지. 그런데 녀석은 그걸 밀어서 넘겼어. 심지어 먹힌 타구였다고.”

제레미의 믿기지 않는 힘.

김민은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스테로이드의 힘을 빌렸기 때문이지.’

그는 그 사실을 시몬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괴물 같은 힘이야. 아니, 뭔가 수작을 부렸어. 내가 보기에 배트가 정상이 아니야. 4차전에서는 타이밍이 어긋난 상태에서 산타나의 완벽한 공을 2루타로 연결했다고.”

시몬스는 스테로이드보다는 코르크 배트를 의심했다.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 시몬스. 네 의견 참고할게.”

“그냥 참고만 하라고 알려 준 게 아니야. 반드시 거르라고. 주자가 있든 없든 걸러. 그 녀석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야.”

시몬스의 목소리에 분한 감정이 묻어났다.

“시몬스, 내가 제레미에게 진다면 날 한 방 때려도 좋아.”

“널 때리기 위해서 전화를 건 게 아니야. 이겨, 무조건 이기라고, 그런 비겁한 녀석들에게 지지 말라고.”

“그래, 알았어. 이길게. 반드시 이겨서 월드시리즈에 나갈게.”

시몬스가 분한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부탁한다. 킴. 제레미 같은 녀석이 월드시리즈에 나간다면 난 견딜 수 없을 거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뭐?”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월드시리즈에 나가는 건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야.”

시몬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한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그는 짧은 한마디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삑.

김민은 휴대폰을 접은 뒤 시선을 천장으로 돌렸다.

“제레미의 괴력……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주사를 맞은 건가?”

그는 아직 스테로이드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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