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디비전 시리즈의 승자 03
호세는 기자들이 좋아하는 메이저리그 선수 순위 3위에 랭크되었다.
그는 구김살이 없고 매너가 좋아 기자들은 물론 야구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굴곡 없는 인생이라.”
호세는 미간을 좁혔다.
그는 이민 2세대인 아버지의 성공으로 유복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경제적인 걱정 없이 야구에만 전념했고, 타고난 재능과 노력 덕분에 어려움 없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그런 그가 첫 실패를 맛본 것은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이었다.
데뷔 시즌, 그는 신인왕을 자신했다.
그러나 같은 해 데뷔한 타격 머신 이치로에게 압도적인 차이로 신인왕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이치로는 신인왕은 물론 시즌 MVP까지 거머쥐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호세는 다음 해를 기약했다.
다음 시즌은 MVP로 갚아준다고.
그러나 이번에는 김민이라는 투수가 그의 MVP를 빼앗아갔다.
김민은 믿기지 않는 페이스로 승을 쌓아 시즌 25승과 함께 사이영상까지 가져갔다.
그리고 2003년.
그는 다시 한번 김민에게 막혀 있었다.
“시리즈 스코어 2-1, 한 번만 더 지면 끝이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를 상대로 서든데스 게임에 몰려 있었다.
“호세, 뭘 그렇게 생각해?”
동료의 물음에 호세가 손을 흔들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지난 1차전 기록지였다.
‘킴은 지저분한 볼끝으로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공을 던진다. 그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초반에 점수를 낼 필요가 있다.’
초반에 점수를 내야 한다는 뜻은 선택지가 다양해지기 전에 승부를 내라는 뜻이었다.
‘초반에 선택지가 적다고? 절대 아니야. 킴이 초반에 점수를 많이 내준 것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평소처럼 던졌기 때문이야.’
호세는 김민이 자신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나면 더욱 무서운 투수가 된다고 생각했다.
‘킴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 투수야. 그를 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내심이 필요해.’
풀카운트 승부를 두려워하지 마라.
공을 많이 던지게 한다면 그것으로 이미 이긴 것이다.
호세는 스스로에게 이처럼 말하며 주먹을 꾹 쥐었다.
‘절대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어.’
같은 시각.
오클랜드의 에이스 마린이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팡! 팡!
미트에 들어간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투수 코치와 불펜 코치는 뒷짐을 진 채 그의 투구를 체크하고 있었다.
“감독이 1차전 마린을 일찍 내린 건 오늘을 대비하기 위해서야.”
파출리아 감독은 이른 백기를 든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마린의 투구수를 제한했다.
이는 투수 코치의 말대로 4차전을 위한 배려였다.
“감독은 탬파베이와 시리즈가 3차전으로 끝날 리 없다고 생각한 거야.”
“길게 갈 것이라는 예상은 맞았지만, 시리즈 승패가 감독의 예상과 달라.”
파출리아 감독은 홈에서 2승을 거둔 뒤, 원정에서 1승 1패로 시리즈를 끝내려 했다.
하지만 시리즈는 그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오클랜드는 홈에서 1승 1패를 거둔 뒤, 원정에서 1패 시리즈 탈락 위기에 몰려 있었다.
“마린의 컨디션은 어때?”
“보는 대로.”
“자네 의견을 듣고 싶은 거야.”
“난 좋다고 생각해.”
투수 코치가 다시 한번 물었다.
“어느 정도로 좋다고 생각해?”
“1차전보다 좋아.”
불펜 코치는 적어도 6이닝 안에 마운드를 내려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린이 6이닝을 버텨준다면 문제는 타선인가?”
오클랜드 타선은 좋은 스탯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문제는 그 스탯을 유지하는 안타가 2차전에 몰아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1차전의 재판이 되면 곤란해.”
“타자들이 분발해 줘야 할 텐데…….”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대 점수를 막는 것뿐이었다.
같은 시각 탬파베이 불펜.
“하나! 둘! 하나! 둘!”
김민은 아직 불펜 투구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킴, 오늘은 어때?”
“나쁘지 않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을 라몬에게 돌렸다.
“오늘은 우리 선공이 아니니까. 록튼이 공을 받아줄 거야.”
라몬은 고개를 끄덕이곤 장비를 내려놓았다.
“알겠습니다.”
원정 경기에서는 라몬이 록튼을 대신해 선발 투수의 공을 받아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홈경기 만큼은 록튼이 직접 선발 투수의 연습 투구를 받곤 했다.
“킴, 좋은 꿈 꿨어?”
록튼의 물음에 김민이 팔을 앞으로 뻗으며 대답했다.
“괜찮았어.”
“미녀가 나오는 꿈이라도 꾼 건가?”
“아니, 아무 꿈도 꾸지 않았어.”
록튼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게 뭐야.”
“무소식이 희소식. 꿈을 꾸지 않았으니까 괜찮은 거야.”
록튼은 어깨를 으쓱하며 장비를 착용했다.
“몸 다 풀리면 투구에 들어가자.”
“오케이.”
김민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록튼은 그 모습을 한 발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메이저리그 선수 중에는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려는 이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이치로가 그렇다. 그는 경기 시작 전 식사로 카레만을 먹는다고 한다. 다른 것을 막고 트러블이 일어날 위험을 방지하고자 하는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킴은 그런 루틴이 없다. 그가 보여 주는 루틴은 몸을 푸는 동작이 일정하다는 것 정도다. 정말이지 일반인스러운 친구야.’
김민은 스트레칭이 끝나자 가볍게 왕복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는 짧은 거리를 뛰면서 발목과 무릎 그리고 허벅지의 근육을 체크했다.
‘문제없어. 좋은 컨디션이야.’
홈으로 돌아온 지 3일째.
승리 축하 파티로 진을 빼지 않았다면 컨디션이 좋은 게 당연했다.
‘오늘 이기면 드디어 챔피언십 시리즈. 상대는 아마 양키스겠지?’
양키스는 현재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시리즈 스코어 2-1의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양키스가 4차전에서 승리하면 양키스의 진출로 디비전 시리즈가 마무리되었다.
* * *
미네소타의 4차전 선발 투수는 요한 산타나였다. 그는 1차전 선발 투수로 나와 7이닝 3실점으로 패전을 경험한 바 있었다.
‘오늘만큼은 지지 않겠어.’
3일 쉬고 선발 등판.
컨디션은 시즌 때보다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집중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팡!
미트를 때리는 패스트볼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스트라이크!”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시작한 산타나는 양키스 강타선을 상대로 3이닝 무실점이라는 좋은 시작을 보였다.
같은 시각 트로피카나 필드.
이곳에서는 탬파베이와 오클랜드가 1-1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오클랜드 3회 초 귀중한 한 점을 뽑았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선취점을 뽑은 것은 탬파베이었다.
그들은 1회 말부터 마린을 공략해 득점에 성공했다.
그러나 마린은 윌리엄에게 적시타를 맞은 뒤 아울과 그렉스를 차례로 잡아내면서 실점을 최소화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마린이 오늘 벼르고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 무기는 체인지 오브 페이스인가? 1차전 패전이 좋은 약이 된 모양이군.’
그는 그래도 오늘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탬파베이라고 생각했다.
‘킴이 무실점으로 막아 낸다면 마린이 지금부터 아무리 잘 던져도 소용이 없다.’
김민은 지난 경기도 무실점으로 오클랜드 타선을 막아 낸 바 있었다.
그러나 3회 초.
오클랜드 타선은 기어코 김민에게 점수를 뽑아냈다.
“도루에 이은 적시타! 오클랜드 1-1로 스코어에 균형을 맞춥니다.”
김민은 실점한 뒤 모자를 고쳐 썼다.
‘빗맞은 공이 행운의 안타. 그리고 이어진 도루와 적시타. 문제는 역시 도루인가?’
그는 주자의 도루 타이밍을 읽어내지 못한 것이 패인이라고 생각했다.
‘깊이 생각하지 말자. 큰 문제는 아니잖아. 록튼은 물론 나도 8번 타자가 도루를 할 줄은 몰랐으니까.’
완벽해 보이는 그도 방심이라는 단어를 피해갈 수 없었다.
둔해 보이는 8번 타자의 도루는 그의 방심을 완벽히 찔렀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김민은 2번 타자 카를로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곤 3회 초 수비를 마쳤다.
“나이스 피칭.”
“수고했어.”
김민은 더그아웃에 들어온 뒤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3일만의 등판. 역시 어깨가 무거워.’
그는 강철 체력을 타고난 사나이가 아니었다.
꾸준한 훈련으로 체력을 길렀지만, 3일 휴식 후 등판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 평소의 70% 정도야.’
조금 전 맞았던 적시타도 평소 컨디션이었다면, 공이 떠오르면서 내야 플라이가 되었을 것이다.
“킴, 괜찮아?”
김민에게 말을 건 이는 파트너 록튼이었다.
“괜찮아.”
“공이 좋지 않아. 패스트볼이 조금 뜨더라.”
김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록튼이 말한 뜨는 공은 회전수가 높아 떠오르는 라이징 패스트볼과는 다른 공이었다.
그가 말한 떠오르는 공은 제구가 어긋나 원하는 코스보다 높게 들어온 공을 말했다.
이런 공은 보통 힘이 떨어지는 경기 후반에 많이 나오곤 했다.
“그래도 커브는 좋더라.”
“패스트볼이 위력을 잃어버리면 커브도 죽어.”
“그건 그렇지.”
김민은 제구가 어려워도 패스트볼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패스트볼은 투수의 기본이야. 너클볼러조차 패스트볼을 던진다고.’
그는 시선을 마운드로 돌렸다.
‘마린도 같은 3일 휴식. 하지만 나와 달리 일찍 마운드를 내려갔어.’
록튼이 배트를 들며 말했다.
“킴이 안심하고 던질 수 있도록 홈런이 나오면 좋을 텐데 말이야.”
“무리하지 마. 난 파트너를 부상으로 잃고 싶지 않다고.”
록튼이 타석으로 향하며 미소를 지었다.
“타자는 한 경기 4번 정도 타석에 들어설 뿐이야. 무리해서 부상을 입을 틈도 없다고.”
4회 말.
마린은 초구부터 96마일(154km)을 기록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기자들이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린이 좋군. 정규 시즌보다 구속이 올랐어.”
“놀랄 것 없어. 마린은 원래 97마일(156km)까지 던지는 투수야.”
“그래도 10월에 저런 구속이 나온다는 건 컨디션이 좋다는 뜻이겠지. 반면 킴은 최고 구속을 밑돌고 있어.”
마린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최고 구속을 높이기보다는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쪽으로 피칭을 변화시켰다.
이번 시즌 그가 던진 패스트볼 중 96마일 이상은 14%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경기에서 96마일 이상 패스트볼은 20%를 넘고 있었다.
딱!
록튼의 배트에 맞은 공이 2, 3루 사이를 통과하는 듯 보였다.
‘안타야!’
하지만 공은 마지막 순간 유격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버나드가 멋진 수비를 보여 줍니다!”
록튼은 버나드를 슬쩍 보곤 속으로 혀를 찼다.
‘시프트를 깨는 안타에 적시타라. 훨훨 나는군. 설마 디비전 시리즈에서 미친 선수가 되는 건 아니겠지.’
메이저리그 감독은 포스트 시즌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미친 선수가 나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시즌과 똑같은 성적을 내서는 이길 수 없어.
-단기전인 만큼 3경기 정도 미쳐 주면 좋다고.
-우승한 팀은 모두 미친 선수가 있었지. 우리 팀은 뭐…… 디비전 시리즈도 올라가지 못했잖아. 인터뷰는 여기서 끊지.
2승 1패로 앞서고 있는 탬파베이에서 미친 선수라 부를 수 있는 선수는 아울이 있었다.
그는 3경기 동안 홈런 2개를 포함해서 5타점을 쓸어 담았다.
반면 오클랜드에서는 아직 미친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린, 1번 타자 브라이튼을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브라이튼은 포스트 시즌에서 유독 삼진을 많이 당하고 있었다.
코스타 타격 코치와 바이슨 수석 코치는 그의 삼진에 미간을 좁혔다.
“스윙이 커.”
“큰 걸 노리는 모양인데. 마린처럼 노련한 투수가 실투를 던질 리가 없지.”
마린은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속마음은 필사적이었다.
‘오늘 지면 우리 시즌은 끝난다. 내 손으로 팀의 시즌을 끝낼 수는 없다.’
그는 4회 말을 무실점으로 막아 내곤 마운드를 내려갔다.
“킴, 우리 쪽 공격이 끝났어.”
김민은 클락의 전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는 글러브를 들고 마운드로 향했다.
렉터는 더그아웃에서 마운드로 향하는 김민을 보곤 클락에게 물었다.
“오늘은 불펜에서 몸을 덥히지 않는군.”
클락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체력적으로 약간 힘든 것 같아.”
“킴이?”
“정규 시즌 이닝을 생각해 봐. 200이닝을 가볍게 넘겼잖아.”
렉터가 혀를 차며 말을 받았다.
“하긴…… 그렇게 던지고 지치지 않는다면 아이언맨이지.”
김민의 지쳤다는 분석은 1차전에서 어긋났지만, 4차전은 그대로 들어맞고 있었다.
이반 감독이 블렛소 투수 코치를 불러 김민의 투구수를 확인했다.
“몇 개지?”
“45개입니다.”
“평소보다 많군.”
“커트 당하는 공이 적지 않습니다.”
“구위가 떨어진 것 때문이겠지.”
이반 감독은 김민의 체력 회복을 위해서라도 시리즈가 오늘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4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면 적어도 5일은 쉬고 등판할 수 있다.’
양키스와 미네소타가 5차전까지 가준다면 더욱 좋았다.
5회 초.
호세가 김민을 상대로 대형 타구를 뽑아냈다.
“큽니다! 가볍게 펜스를 넘어갑니다!”
우측 펜스를 넘어간 타구는 아쉽게도 파울이었다.
“힘이 제대로 실린 타구군요. 호세,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윙합니다.”
김민은 호세의 파울 홈런을 보곤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외야 시프트로 맞춰 잡으려 했다가 큰일 날 뻔했군. 저렇게 멀리까지 타구가 날아갈 줄이야.’
그는 카운트를 확인한 뒤에 원 바운드 커브를 던졌다.
호세는 이 공에 반응했지만,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배트를 멈췄다.
“호세, 킴의 커브를 참아냅니다!”
“훌륭한 선구안입니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호세의 인내심을 칭찬하기 바빴다.
호세는 지금 마린 못지않게 필사적이었다.
‘킴, 2년 연속 MVP를 양보했다. 월드시리즈까지 내놓으라는 건 너무 한 거야!’
김민은 볼을 하나 내줬지만 아직 카운트에 여유가 있었다.
‘카운트 1-2, 나쁘지 않아. 그건 그렇고 호세의 눈매가 매섭군.’
그는 록튼과 사인을 교환한 뒤 안쪽으로 깊이 찔러 넣었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간 순간 호세가 이마를 찌푸렸다.
‘쳇, 어쩔 수 없군. 볼이라고 생각한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어.’
잠시 뒤, 주심이 멋진 제스처와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룩킹 삼진.
호세는 배트를 내리곤 천천히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킴, 아직 타석은 많이 남아 있다. 다음 타석은 기대해도 좋아.’
완봉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김민은 앞으로 2타석 이상 호세를 상대해야만 했다.
김민은 호세가 나올 때마다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200이닝 이상 투구한 피로가 나오는 건가? 아니면 3일 쉬고 등판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가?’
20년을 되돌아와 메이저리그에 데뷔.
김민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3일 휴식 후 등판에 나선 상태였다.
호세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키드.
구위가 평소보다 떨어졌기 때문에 키드의 배트도 상당히 위험했다.
‘신중하게 던져야 해.’
슉!
빠른 공이 안쪽 코너를 향했다.
키드는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었다는 듯 좋은 타이밍으로 공을 때려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브라이튼에게 향했다.
‘좋아. 시프트에 걸렸어!’
김민은 유격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키드의 타구는 시프트에 걸리긴 했지만, 완벽히 걸린 것이 아니었다.
브라이튼은 이 타구를 잡기 위해 다이빙 캐치를 시도해야만 했다.
“브라이튼, 재빨리 일어나 1루에 송구합니다!”
“키드, 1루에서 아웃 되고 마는군요.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브라이튼의 수비는 안정적입니다.”
이반 감독은 브라이튼이 타격에서 부진하고 있지만,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계속 주전으로 기용하고 있었다.
“투 아웃이군. 이번 이닝도 잡았어.”
김민의 한계 투구수를 100개로 가정한다고 하면, 아직 완투가 가능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거야.’
그는 김민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주면 바로 필승조를 투입할 예정이었다.
‘포스트 시즌까지 가지 않아도 필승조의 이틀 연속 등판은 흔히 있는 일. 아낄 이유는 없지.’
탬파베이 필승조는 앞선 3차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준 바 있었다.
이반 감독은 그들 외에도 4선발로 활약했던 설리반을 불펜에 대기시킨 상태였다.
딱!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2루수 키를 넘어갔다.
“2사 이후, 콜론의 안타가 나왔습니다.”
파출리아 감독은 콜론의 안타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분석팀이 마냥 밥통들은 아닌 모양이군. 킴의 체력이 확실히 떨어졌어.”
그는 김민을 잡으면 시리즈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5차전으로 시리즈가 이어지면 우린 지뉴를 쓸 수 있다.’
렉터 vs 지뉴.
오클랜드 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매치업.
이반 감독은 렉터와 지뉴가 나란히 마운드에 오르는 것을 절대 보고 싶지 않았다.
“블렛소, 불펜을 가동하지.”
감독의 지시에 블렛소 코치가 미간을 좁혔다.
“감독님, 에이스가 마운드에 있습니다.”
“킴의 자존심을 세워달라는 건가? 하지만 이 경기는 포스트 시즌이야.”
“킴이 5회까지는 버텨줄 겁니다. 절 믿어주십시오.”
에이스의 자존심.
팬들은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며 반문하겠지만, 이것은 팀캐미스트리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지시를 정정했다.
“좋아. 불펜 가동대신 투수들에게 스트레칭을 시작하라고 해. 가동은 5회가 지난 다음이야.”
“알겠습니다.”
탬파베이 불펜 투수들을 조금씩 몸을 풀기 시작했다.
카운트 2-2.
김민의 선택은 이퓨즈였다.
‘오늘 하나도 던지지 않은 이퓨즈. 패스트볼의 위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얼마나 해 줄 수 있을까?’
높은 코스로 올라간 공이 파도를 타듯 느릿하게 떨어졌다.
콜론은 이 공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소문의 이퓨즈인가? 하지만 너무 느리군. 배트에 직격한다고 해도 장타가 되긴 힘들겠어.’
그는 이퓨즈를 커트하려고 했다.
그러나 배트에 맞은 공은 커트가 되는 대신 포수 머리 위로 떠올랐다.
‘큭, 처음 보는 공이라 히팅 포인트가 어긋나고 말았어.’
이퓨즈는 패스트볼의 절반 정도의 속도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슬로우 모션으로 날아오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 타이밍을 잡지 않는다면 빗맞은 타구가 나올 가능성이 컸다.
“위!”
김민이 손을 들자 록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스크를 쓴 채로 미트를 들었다.
‘반드시 잡아야 해.’
파울 플라이 캐치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이 기본을 해내지 못하면 경기는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떨어진다.’
그는 역회전이 걸린 타구를 끝까지 따라갔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오자 이반 감독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오늘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군.”
“그래도 5이닝 1실점입니다. 절대 나쁜 내용이 아닙니다.”
경기는 이제 중반으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