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71화 (171/296)

171화 디비전 시리즈의 승자 01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그들은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 최다승을 기록하며 뉴욕 양키스를 넘어섰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을 우승 후보라 부르지 않았다.

“오클랜드는 이번 시즌도 똑같아.”

“딱 디비전 시리즈까지인가?”

“압도적인 에이스가 없는 이상 탬파베이를 넘어서긴 힘들 거야.”

“오클랜드의 좋은 타선은 역시 정규시즌용인가?”

“빌리 빈의 머니볼 자체가 정규시즌 승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야. 적당히 잘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은 슈퍼 에이스나 미치는 선수가 필요한 포스트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지.”

기자들은 물론 인터넷 팬들까지 오클랜드의 우승 가능성을 낮추기 시작했다.

2차전을 앞에 둔 오클랜드 클럽 하우스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래서는 정규시즌 100승을 넘겨봐야 아무 의미가 없어.”

“농구나 미식축구처럼 대단한 홈어드밴티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에이스 마린을 내고도 4점차 패배.

호세는 에이스를 내고 패배한 것보다 시리즈 1차전에 패했다는 것이 더 아프다고 생각했다.

‘이제 홈어드밴티지는 소멸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킴이 등판할 때까지 앞으로 2경기. 그 2경기를 모두 잡지 못하면 이번 시즌도 디비전 시리즈에서 끝나고 만다.’

오늘 오클랜드 선발은 20승 에이스 지뉴였다.

지뉴는 선발 3인방 중 가장 안정적인 투수였다.

그를 내고도 진다면 오클랜드의 시즌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호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모두를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지뉴가 나온다. 선발은 우리가 더 낫다는 뜻이다. 2차전에 패한다면 우리 타자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다.”

타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메시지.

4번 타자 키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았다.

“맞는 말이다. 오늘 패한다면 우린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적어도 5점 이상은 뽑아 줘야 한다.”

오클랜드 타자들의 눈빛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탬파베이까지는 긴 여행이지. 긴 여행 전에 패배를 승리로 씻고 싶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오늘만큼은 지고 싶지 않아.”

버나드를 비롯한 나머지 선수들 역시 투지를 불태웠다.

“좋아. 오늘 경기는 이기자!”

“고! 오클랜드! 고! 어슬레틱스!”

빌리 빈은 클럽 하우스 안에서 들어오는 소리를 듣곤 걸음을 멈췄다.

‘내가 굳이 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군.’

그는 자신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 * *

탬파베이 선발 렉터는 시즌 내내 3선발로 활약했다.

그러나 포스트 시즌에서는 2선발의 중책을 맡았다.

“클락보다는 렉터인가?”

“이반 감독은 경험을 높이 사는 것 같아.”

“클락도 경험이 적은 선수는 아니잖아.”

두 사람의 포스트 시즌 등판은 각각 2경기와 1경기였다.

“1경기 더 던진 것으로 경험이 많다고 할 수 있을까?”

“포스트 시즌만 놓고 보면 별 차이 나지 않지만, 렉터는 이전 팀에서도 큰 경기를 맡았었으니까.”

렉터는 부르스처럼 탬파베이 프랜차이즈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렉터도 곧 FA지?”

“맞아. 탬파베이 같은 스몰 마켓으로서는 부담되는 금액이 책정될 거야.”

뛰어난 에이스가 마켓에 등장하지 않는 경우 15승 이상 투수는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설마 1억 달러(1,240억 원)까지 가격이 올라가지는 않겠지?”

“포스트 시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준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보스턴 레드삭스 같은 팀에서 배팅할걸?”

보스턴 레드삭스는 올해로 계약이 끝난 노모의 후계자를 찾고 있었다.

“탬파베이에게는 이번 시즌 우승하지 못한다면 당분간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그래, 우승은 할 때 해야지. 시애틀을 보라고, 앞으로 몇 년간은 힘들 거야.”

시애틀 매리너스는 이치로가 MVP를 탔던 2001시즌 메이저리그 최다승 신기록을 세우면서 다른 팀들을 압도했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에서 기세가 꺾이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시애틀은 내리막을 타고 있었다.

“시작하는군.”

1회 초.

지뉴는 날카로운 커브로 탬파베이 타선을 요리했다.

“또 삼진입니다!”

“지뉴의 커브가 상당하군요. 마치 포크볼처럼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커브는 홈플레이트 앞에서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포크볼과 달리 부드럽게 떨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지뉴의 커브는 다른 커브보다 훨씬 큰 각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삼진을 당한 윌리엄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오늘은 3점 안에서 승패가 갈릴 것 같아.”

“3점을 먼저 뽑는 팀이 이긴다는 말인가?”

“그래.”

윌리엄의 가정은 렉터의 컨디션이 좋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1회 말.

렉터가 오클랜드 콜로세움에 등판했다.

“초구는 볼입니다.”

90마일(145km) 패스트볼.

초구 구속을 확인한 블렛소 투수 코치가 미간을 좁혔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것 같군.’

공이 코너로 제구된 것을 보면 최악은 아니었다.

그러나 90마일이란 구속은 베스트 컨디션과 거리가 멀었다.

렉터는 컨디션이 좋을 경우 94마일(151km) 패스트볼을 코너에 꽂아 넣을 수 있었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버나드! 3구를 노려쳐서 안타를 만들어 냅니다.”

오클랜드의 반격은 1회부터 매서웠다.

딱!

“펜스 직격입니다!”

“주자가 모두 홈으로 들어오는군요.”

볼넷 1개와 안타 3개를 묶어 3득점.

오클랜드는 윌리엄이 말한 3점을 1회 말에 뽑는 기염을 토했다.

탬파베이 더그아웃 분위기가 급격히 다운되었다.

“오늘 경기는 힘들겠군.”

“아직 1회일뿐이잖아.”

“오클랜드의 기세가 너무 좋아.”

이반 감독은 선수들의 분위기가 다운되는 것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선수들이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3점은 원 찬스에서 따라갈 수 있는 점수 차이에 불과해. 1회부터 힘들다는 말은 누구 입에서 나온 건가?”

그의 한마디에 탬파베이 더그아웃은 침묵에 빠졌다.

이반 감독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럴 때는 라커룸 리더가 팀을 잡아줘야 하는데…… 킴은 어디 있는 거야?’

김민은 더그아웃이 아닌 불펜에서 렉터를 만나고 있었다.

그가 급히 불펜을 찾아온 것은 이 이상 실점하면 경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렉터는 김민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킴, 여긴 무슨 일이야?”

“렉터, 공을 던지기 전에 글러브를 강하게 쥐는 게 좋겠어.”

렉터는 김민의 한마디에 살짝 놀랐다.

“설마 녀석들이 내 투구 동작을 읽은 건가?”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해. 그래서 하는 말인데 글러브를 강하게 쥐면 괜찮을 거야.”

김민은 글러브를 강하게 쥠으로써 상대의 분석을 무력화시키라고 말하고 있었다.

렉턴은 김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킴, 네 충고 참고하도록 하지.”

김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2회부터는 좋아질 거야.”

“고마워.”

렉터는 진심으로 김민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럼 난 더그아웃으로 가보지.”

“오케이.”

김민이 더그아웃을 빠져나가자 에두아르도가 따라붙었다.

“킴.”

그의 부름에 김민이 걸음을 멈췄다.

“에두아르도?”

“아까 그 말. 사실이야?”

“…….”

에두아르도는 탬파베이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투수였다.

“역시 거짓말이었군.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김민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1회부터 난타당한 투수는 공에 대한 자신감을 잃기 쉽습니다. 하지만 난타당한 이유가 상대의 분석 때문이라면 달라지겠죠.”

“렉터의 자신감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자신감을 잃은 투수는 끝장이니까요.”

그는 이 이상의 실점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점수 차이가 5점 이상 벌어지면 이반 감독은 아마 백기를 던지겠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훌륭한 팀이었지만, 아직 끝까지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끈기가 약했다.

김민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빠른 수습에 나선 것이었다.

“렉터가 더 얻어맞으면 어쩌지?”

“그건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말 몇 마디로 렉터의 구위를 좋아지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구분하는 선수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렉터의 너클커브가 위력을 발휘합니다!”

김민의 조언 때문일까?

렉터는 2회와 3회를 깔끔하게 막아 내곤 1회 3실점을 털어냈다.

“렉터가 실점 없이 이닝을 마무리하는군요. 2회부터 피칭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포스트 시즌에 대한 부담감을 벗어낸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렉터가 부활하면서 탬파베이의 실점은 3점에서 멈췄다.

문제는 타선이었다.

2회와 3회 그리고 4회.

지뉴는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고 완벽한 피칭을 보여 주었다.

“4이닝 12명인가?”

“완벽한 피칭이군. 삼진도 7개나 된다고.”

오클랜드 에이스 지뉴는 어제 김민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 타선을 압도했다.

“지뉴가 오늘처럼 던져 줬다면 2001 시즌도 할만 했을 거야.”

“2001시즌뿐인가? 2002 시즌도 달랐겠지.”

기자들은 지뉴의 포스트 시즌 호투가 너무 늦게 나왔다고 생각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펜스를 넘어갔다.

“탬파베이! 아울의 솔로 홈런으로 반격에 나섭니다.”

탬파베이 1:3 오클랜드.

“이번 시리즈는 아울이 좋군.”

“이것으로 2점 차. 경기는 모르겠는걸?”

지뉴는 5회 초 아울에게 솔로 홈런을 맞았지만, 추가 실점 없이 6회와 7회를 막아 냈다.

그리고 7회 말.

오클랜드 타선이 다시 한번 렉터를 공략했다.

“2사 2루에서 적시타가 나옵니다!”

“떨어지는 너클커브를 정확히 걷어 올렸습니다.”

렉터는 마운드를 발로 차면서 이번 투구를 곱씹었다.

‘패스트볼이 좋지 않아서 너클커브를 너무 많이 쓴 게 패착이야.’

블렛소 코치 역시도 같은 판단이었다.

“너클커브가 좋다고 너무 그것에 의존하고 말았어.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조금 더 던졌어야 했는데…….”

렉터는 6과 2/3이닝 4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고, 에두아르도가 그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

탬파베이 팬들은 에두아르도의 등판에 고개를 내저었다.

“이반 감독이 백기를 던졌어.”

“아직 2이닝이나 더 남았는데 벌써 백기인가?”

“그러게 말이야. 에두아르도는 절대 오클랜드 타선을 막아 낼 수 없다고.”

에두아르도는 팬들의 비난에도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공을 던졌다.

‘이반 감독이 포스트 시즌 로스터 한 자리를 내게 준 것은 날 믿었기 때문이야. 난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해.’

그러나 떨어진 구위와 나이는 그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었다.

따악!

하늘 높이 올라간 공이 관중석 상단에 떨어졌다.

탁!

“큽니다! 정말 큽니다! 호세가 이번 시리즈 첫 홈런을 신고합니다!”

“대단한 파워입니다! 호세가 탬파베이를 상대로 오클랜드의 힘을 보여 줍니다! 메이저리그 최다승 팀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호세의 3점 홈런은 2차전 승부에 쐐기를 박는 한 방이었다.

이반 감독은 에두아르도의 실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모양이군.”

그가 에두아르도를 포스트 시즌 로스터에 합류시킨 것은 경험이 부족한 젊은 투수들을 돕기 위함이었다.

에두아르도는 경험이 부족한 투수들의 멘토가 될 수는 있어도 실제 전력은 되지 못했다.

“슬슬 은퇴를 생각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에두아르도를 더 이상 포스트 시즌에 등판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라우리가 부상당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탬파베이는 9회 초 윌리엄의 안타와 그렉스의 적시타로 1점을 보탰지만 8-2로 완패하고 말았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반 감독이 바이슨 수석 코치에게 말했다.

“원정에서 1승 1패. 나쁘지 않아.”

“홈에서 2게임을 다 잡으면 시리즈를 끝낼 수 있습니다.”

탬파베이 코칭 스탭은 4차전 안에서 시리즈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민도 이러한 생각에 동의했다.

‘오늘 패배로 시리즈는 타이가 되었다. 코칭 스탭은 아마도 4게임으로 시리즈를 끝내고자 하겠지. 더 길어지면 오클랜드의 기세를 막을 수 없을 테니까. 문제는 3차전이야.’

그는 3차전 선발 클락이 호투를 해 줄 경우, 이반 감독의 생각대로 시리즈가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클락이 무너진다면 시리즈가 오클랜드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클락이 오클랜드 타선을 넘을 수 있을까?’

호세가 중심이 된 오클랜드 타선은 매 시즌 100승을 넘기는 강타선이었다.

그는 강타선을 상대할 때는 실투가 나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제구란 말이군.’

김민은 클락의 안쪽 제구가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3차전 경기 양상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쪽 제구가 된다면 7이닝 2실점 또는 3실점, 제구에 실패한다면 5이닝 5실점 또는 4이닝 5실점으로 무너질 거야.’

공항에 도착한 직후 김민은 클락을 식사에 초대했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의 초대라. 느낌이 다르군.”

“시차는 어때?”

김민의 물음에 클락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쁘지는 않아.”

“지금 자는 것보다 깨어 있는 게 좋을 거야.”

클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내일 경기에 대비하라는 말이지?”

“포스트 시즌은 야간 경기니까. 게다가 오클랜드와 탬파베이의 시차는 무시할 수가 없어.”

오클랜드와 탬파베이의 시차는 3시간.

같은 시간에 경기를 시작한다고 하면 오클랜드 쪽이 탬파베이보다 3시간 늦었다.

“그건 나도 알지. 그건 그렇고 킴이 날 이렇게 혼자 불렀다면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유가 있어서 부른 거야.”

“볼 배합에 관한 주문인가?”

“그게 화제였다면 록튼을 동석시켰겠지.”

“음, 볼 배합이 아니라면 투구 동작인가?”

김민이 스푼을 들며 말했다.

“그 비슷한 거야.”

“뭔데 그래?”

“투구판.”

“투구판이라고?”

“조금 더 왼쪽을 밟는 게 좋을 것 같아.”

클락은 김민의 조언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하면 공이 오른손 타자 안쪽으로 더 들어갈 텐데?”

“그게 제구에 더 편할 거야. 가운데에 넣는다는 느낌으로 안쪽에 던지면 되니까.”

김민은 클락에게 안쪽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실투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세 같은 친구에게는 절대 실투를 던져서는 안 돼.”

“집중하란 말이지?”

“맞아. 그리고 테일러를 조심해.”

“그 친구를 왜?”

“이번 시즌 좌완 투수에게 상당히 강해.”

클락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데이터가 있었나?”

“시즌 16연승할 때 데이터가 그랬어.”

“흠, 참고하지.”

김민은 클락에게 가능한 많은 것을 알려 주고자 했다.

그러나 식사 시간 동안 알려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이쯤 하는 게 좋겠어. 더 알려줘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클락의 말에 김민이 동의했다.

“그렇군.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알려 주면 소화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 클락, 다른 것은 다 잊어도 되니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 발판을 왼쪽으로.”

클락이 입을 닦으며 말했다.

“오케이. 발판을 왼쪽으로. 기억했어.”

두 사람은 식당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김민은 이번 디비전 시리즈의 운명이 클락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5차전이 아니라 4차전에서 끝내야 해.’

클락이 이긴다면 4차전 등판은 김민이었다.

김민은 자신의 손으로 시리즈 마침표를 찍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디비전 시리즈 3차전.

탬파베이는 클락, 오클랜드는 하이드를 선발 투수로 내세웠다.

“클락, 이번 시즌 17승을 올리며 탬파베이 2선발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습니다.”

클락은 2003 시즌 김민, 렉터와 함께 15승 트리오를 형성했다.

그가 버텨준 덕분에 탬파베이 선발진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뉴욕 양키스와 함께 아메리칸 리그 베스트3라 불리었다.

“디비전 시리즈는 5판 3선승제입니다. 다시 말해 3차전을 잡는 팀이 매우 유리해진다는 뜻입니다.”

탬파베이 팬들은 트로피카나 필드를 가득 메웠다.

“고! 탬파베이! 고! 레이스!”

“월드시리즈로 가자!”

탬파베이는 팬들의 힘찬 응원과 함께 3차전을 시작했다.

탁!

빗맞은 타구가 유격수 브라이튼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브라이튼! 깔끔한 수비로 버나드를 잡아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브라이튼은 공격이 아닌 수비로 한몫을 해 주고 있습니다.”

호이스트는 브라이튼이라는 내야수를 수비보다 공격에 특화된 선수라고 보았다.

‘언제든 20도루를 할 수 있는 빠른 다리. 2할 후반에서 3할 초반을 칠 수 있는 컨택 능력, 그리고 심심치 않게 나오는 장타. 브라이튼은 분명 유격수 평균 이상의 공격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수비가 문제야. 유칼리스가 이적한 뒤 날카로운 맛이 사라졌어. 3루수 쪽으로 치우친 타구는 따라가기보다는 그냥 보고 마는 경우가 많고, 2루수 베이스를 지나는 타구도 놓치는 때가 더 많아.’

그는 브라이튼이 견고한 수비수이긴 하지만 위력적인 수비수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유격수치고는 파인 플레이가 너무 적어.’

다이빙 캐치나 맨손 캐치는 항상 실책이라는 리스크를 동반했다.

이번 시즌 브라이튼은 다이빙 캐치를 크게 줄였다.

‘다이빙 캐치를 줄여 실책수가 줄었지만, 수비가 좋아졌다고 할 수는 없지.’

호이스트는 브라이튼의 수비가 투수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클락은 브라이튼의 도움이 필요한 투수가 아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클락은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은 다음 모자를 고쳐 썼다.

‘다음 타자는 호세인가?’

호세는 배터 박스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을 줄 수 있는 타자였다.

“호세가 배트를 세웁니다.”

“클락, 큰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클락은 김민이 가르쳐 준 대로 투구판 왼쪽을 밟고 투구에 들어갔다.

‘안쪽으로 들어가라!’

딱!

강한 타구가 3루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클락은 글러브를 들어 공을 받았다.

‘킴의 말대로야. 바깥쪽은 몰라도 안쪽 제구는 더 쉬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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