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디비전 시리즈 02
“우리 팀에는 나보다 더 괴짜인 선수들도 많은걸.”
호세가 페인트가 덧칠된 기둥을 잡으며 말했다.
“그런가? 탬파베이에는 야구 말고 다른 걸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는 모양이군. 우리 오클랜드는 아니야. 우리팀 선수들은 오직 야구만 생각한다고, 술도 담배도 여자도 야구 앞에서는 순위가 뒤처질 뿐이지. 여기 와서 난 많은 것을 배웠어. 성공과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강함에 대한 추구, 자신에 대한 절제, 목표를 향한 열정. 마이너리그에서 승승장구하던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이지.”
그는 자신의 팀을 사랑하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킴, 난 오클랜드를 사랑해. 이건 그냥 하는 립서비스가 아니야. 이곳 사람들은 야구를 진심으로 좋아한다고. 물론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건 탬파베이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이쪽도 그 수가 많지 않아.”
호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킴, 최선을 다해 싸우자.”
그는 마음이 맑은 선수 중 하나였다.
“물론이지.”
김민은 그와 손을 마주 잡은 뒤 가볍게 흔들었다.
“호세, 널 삼진으로 돌려세운다고 해서 불쾌하게 생각하진 말라고.”
“킴, 너야말로 홈런을 맞고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배트는 지금 최고니까.”
호세는 작별 인사를 남기고 그라운드로 내려갔다.
잠시 뒤, 록튼이 김민에게 다가왔다.
“킴, 호세하고 무슨 말을 한 거야?”
“페어플레이.”
“선전포고가 아니라?”
“선전포고를 할 만한 사이는 아니라서 말이야.”
“1차전 선발 투수와 상대 팀의 4번 타자 불꽃 튀기는 신경전을 예상했는데 아니었군.”
그라운드로 내려온 호세에게 오클랜드의 에이스 마린이 다가갔다.
“호세, 킴과 대화를 나눈 모양이더군.”
“데뷔 동기니까 반가워서 말이야.”
“2001 시즌 데뷔 신인인가?”
“맞아.”
마린이 글러브를 챙기며 말했다.
“2001 시즌 루키들은 대단하군. 이치로, 킴, 그리고 호세 너까지. 모두 시즌 MVP급이야.”
“2001 동기들은 화려한 친구들만 있는 게 아니야. 록튼처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구도 많다고.”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았지만 록튼 역시 2001 시즌 데뷔해 레귤러로 자리를 잡은 선수였다.
“파출리아 감독의 전략 어떻게 생각해?”
“킴이 지쳤다고 하는?”
“그래.”
호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친구가 지칠 리가 없잖아. 그것도 디비전 시리즈를 앞두고, 킴은 어깨가 부서진다고 해도 전력으로 공을 던질 거야. 가을 잔치잖아.”
“감독이 말하는 이점은 없단 말인가?”
“그렇다고 보는 게 좋을 거야.”
마린이 오랜만에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며칠 동안 고민했던 내가 우습게 느껴지는군.”
“무슨 고민?”
“탬파베이 타선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라는 고민 말이야.”
마린은 웃음을 지우곤 목소리를 낮췄다.
“무의미한 고민이었지. 가을 잔치잖아. 최고의 공을 던지면 되는 건데 말이야.”
호세가 배트를 점검하며 말했다.
“상대 타선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느냐는 고민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단지 자신을 잊고 상대에게만 포커스를 맞춘다면 그것은 올바른 일이라고 할 수 없지.”
마린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것이 메이저리그 3년 차가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는 호세가 적어도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 뛴 선수처럼 느껴졌다.
‘그릇이 다른 거야. 호세는 기량만이 아니라 야구 자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
마린은 호세가 자신과 달리 팀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오클랜드에서 던지는 시즌은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 되겠지. 하지만 호세는 아니야. 녀석은 은퇴할 때까지 프랜차이즈라는 왕관을 쓰고 이곳에 남을 거야.’
이번 시즌이 끝나면 마린은 FA 자격을 얻었다.
오클랜드는 스몰 마켓이었기 때문에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에이스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마린은 팀을 떠나는 것이 확실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디비전 시리즈에 집중하는 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함이 더 컸다.
‘프로는 돈, 호세 난 너와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어.’
마린은 최고의 몸값을 받기 위해서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 * *
경기 시작 30분 전.
다양한 식전 행사가 이어졌다.
오클랜드 레전드의 시타와 시구.
그리고 소년 합창단의 축가.
“야구팬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2003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와 함께 주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플레이볼!”
마린은 그립을 고쳐 잡곤 초구를 던졌다.
슉!
93마일(150km)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파앙!
“스트라이크!”
이반 감독은 브라이튼이 배트를 내지 않고 공을 보자 고개를 갸웃했다.
“저 친구 왜 배트를 내지 않은 거야? 그리 빠르지도 않은 공이었잖아.”
브라이튼은 1번 타자이면서도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적인 배팅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디비전 시리즈 첫 타석에서 브라이튼은 초구를 참아내는 그답지 않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이반 감독의 말을 받았다.
“브라이튼이 오늘만큼은 초구를 하나 보고 경기에 들어가겠다고 하더군요.”
“초구를?”
“성급했던 지난 시즌을 반성하는 것 같았습니다.”
“성급했던 지난 시즌이라. 디비전 시리즈를 말하는 모양이군.”
브라이튼은 2002 시즌 디비전 시리즈에서 17타수 4안타로 부진했다.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그대로 백네트에 꽂혔다.
퍽!
“파울!”
카운트 0-2.
마린에게는 여유를 브라이튼에게는 초조함을 가져다주는 카운트였다.
“마린, 브라이튼을 코너로 몰아붙입니다.”
“3구로 체인지업이 날아올 수도 있습니다. 브라이튼, 이번 공을 조심해야 합니다.”
“토니, 마린의 주무기는 슬라이더가 아니었던가요?”
“이번 시즌 후반기부터 마린은 체인지업 비중을 늘렸습니다. 자료를 보면 슬라이더 비율이 21%에서 15%까지 감소하는 동안 체인지업은 9%에서 18%까지 증가했습니다.”
디비전 시리즈 해설을 맡은 토니는 후반기 마린의 부활이 오클랜드의 16연승을 가능하게 한 힘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예상대로 마린의 세 번째 공은 체인지업이었다.
브라이튼은 떨어지는 공에 크게 헛스윙 삼구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헛스윙 삼진 아웃! 브라이튼, 첫 타석에서 마린에게 완패합니다.”
브라이튼은 길게 한숨을 내쉬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후…… 이번 시리즈도 시작이 좋지 않아.”
시작이 좋지 않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구안이 좋기로 유명한 케니히도 룩킹 삼진으로 물러났다.
“마린! 멋진 피칭입니다! 두 타자 연속 삼진입니다.”
“탬파베이가 자랑하는 테이블 세터를 완벽하게 봉쇄합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마린의 공이 꽤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패스트볼 구속은 평소보다 빠르지 않지만 제구가 안정되어 있어. 게다가 체인지업의 낙차가 좋군. 초반은 공략이 힘들지도 모르겠어.’
탬파베이 3번 타자는 이번 시즌 김민과 함께 시즌 MVP 후보에 오른 윌리엄이었다.
윌리엄은 이번 시즌 0.331의 타율과 34개의 홈런, 121타점을 기록했다.
“마린이 초반을 무난하게 넘기기 위해서는 윌리엄을 조심해야 합니다.”
마린은 윌리엄의 타격 자세를 확인하곤 미간을 좁혔다.
‘윌리엄, 빈틈이 없는 녀석이야.’
그는 포심 패스트볼 그립을 잡고 바깥쪽으로 강하게 던졌다.
슉!
96마일(154km)의 빠른 공.
그러나 윌리엄은 그 공을 가볍게 밀어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입니다! 윌리엄이 마린의 삼진 퍼레이드를 중단시킵니다.”
이반 감독은 박수를 치면서 고개를 바이슨 수석 코치에게 돌렸다.
“윌리엄은 홀먼 단장이 영입한 친구 중에 최고야.”
사실 윌리엄 영입을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은 홀먼 단장이 아닌 김민이었다.
“윌리엄이 없었다면 이번 시즌도 애너하임과 치열한 와일드카드 경쟁을 벌였을 겁니다.”
애너하임 에인절스는 이번 시즌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에 밀려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윌리엄,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아울입니다.”
“마린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여기서 끊어야 합니다. 초반 실점은 상대가 상대인 만큼 어떻게든 피해야 합니다.”
4번 타자 아울은 최고의 시즌은 아니었지만, 평균 이상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아울을 조심해야 합니다. 쉽게 승부하려 했다가는 경기 내내 끌려갈 수 있습니다.”
수석 코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큰 타구가 3루 관중석에 떨어졌다.
파출리아 감독이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스윙 스피드를 보니 감이 좋은 것 같군.”
마린도 아울의 컨디션이 좋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울까지 컨디션이 좋은 건가? 그렇다면 어렵게 승부할 수밖에 없겠군.’
그는 슬라이더를 연속으로 던져 헛스윙을 유도하고자 했지만, 아울의 배트는 끌려나오지 않았다.
“아울, 유인구를 잘 참아냈습니다.”
카운트 2-2.
마린은 심호흡을 한 뒤 승부구를 정했다.
‘1회부터 이걸 쓰게 될 줄이야.’
슉!
빠르게 날아간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급격히 떨어졌다.
아울은 떨어지는 공을 따라가지 못한 채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이 목소리를 높이자 오클랜드 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K! K! K!”
아울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간 뒤 다음 타자인 그렉스에게 말했다.
“그렉스, 스플리터였어.”
그렉스는 아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체인지업이 아닌 스플리터를 던졌단 말인가?”
“분명해. 스플리터였어.”
“마린이 스플리터라. 그렇다면 하이든에게 배운 모양이군.”
하이든은 오클랜드의 3선발로 마린이나 지뉴에 미치지 못했지만, 항상 15승 전후의 준수한 성적을 올리는 투수였다. 그리고 마린이 던진 스플리터는 하이든의 주무기였다.
“하이든이 아니라도 투수 코치가 가르쳐 줄 수도 있었겠죠.”
브라이튼은 자주 구사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플리터보다 체인지업 낙차가 큰 게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도 페드로의 체인지업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건 그렇습니다만…….”
쉽게 선취점을 뽑긴 힘들 것 같다는 것이 모두의 중론이었다.
1회 말.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킴이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등판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시리즈 1차전에 등판한 킴은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요?”
파출리아 감독의 시선은 전력분석팀의 보고서에 고정되어 있었다.
“최고 구속은 97마일(156km). 하지만 97마일까지 던지는 경기는 드물다. 보통은 95마일(153km)에서 91마일(146km)까지 패스트볼을 던진다. 주무기는 떠오르는 패스트볼과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와 고속 슬라이더. 그리고 간간이 체인지업과 커터를 섞어 던져 타자를 잡아낸다.”
그는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도움이 되는 것은 후반기 부진과 평소보다 공을 많이 던졌다는 사실뿐이군.”
파출리아 감독은 김민이 어려운 상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역대 3위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다. 2점만 뽑아도 타자들을 칭찬해야 하는 투수라니, 사기가 따로 없군.’
오클랜드의 1번 타자는 버나드였다.
“버나드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클랜드는 첫 단추가 중요합니다.”
김민은 록튼과 짧게 사인을 교환한 뒤 초구를 던졌다.
슉!
한가운데로 향하는 패스트볼.
버나드는 멈칫거림 없이 바로 배트를 냈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6마일(154km).
“킴이 마음먹고 초구를 던졌습니다.”
파출리아 감독은 혀를 찼다.
“96마일을 던지는 투수가 체력이 부족하다고?”
그는 전력분석팀의 보고서를 한쪽으로 치워버렸다.
수석 코치는 공 하나만 보고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민의 다음 공도 95마일(153km)을 기록했다.
“킴! 힘으로 버나드를 압도합니다!”
버나드는 카운트가 몰리자 배트를 짧게 잡았다.
‘디비전 시리즈라 그런가? 무식하게 들어오는군.’
슉!
초구가 바깥쪽으로 날아왔다.
‘제법 빠른 공이다. 코너를 노리는 건가?’
그는 김민이 코너를 노릴 때는 다소 속도를 줄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승부구는 코너를 노리는 패스트볼이 아니었다.
휙!
배트가 공의 위쪽을 지나가면서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제스처에 3루 더그아웃이 술렁거렸다.
“나이스 피칭!”
“좋았어!”
김민이 버나드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공은 89마일(143km) 스플리터였다.
“킴도 첫 타자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킴이 마치 로저 클레멘스처럼 공을 던지는군요. 그의 영혼이 잠깐 빙의라도 하는 걸까요?”
다음 상대는 2번 타자 카를로스.
카를로스는 상대 투수의 버릇과 볼 배합을 읽는데 능했다.
하지만 김민 앞에서는 그의 통찰력이 무의미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코너를 찌르는 93마일(150km) 패스트볼.
카를로스는 혀를 내둘렀다.
‘코너를 정확히 찌르는 93마일이라, 하나의 공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건가?’
그는 배트를 짧게 잡곤 배팅 타이밍을 브레이킹볼에 맞췄다.
그러나 김민의 공은 이번에도 빨랐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관중석에 떨어졌다.
“카운트 0-2, 킴이 앞서 나갑니다.”
“이번 공은 커터였군요. 카를로스가 타이밍을 정확히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세는 대기 타석에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저 친구가 많이 던졌다고 지칠 리가 없잖아.”
카를로스는 3구를 타격했지만 유격수 방향으로 흐르는 땅볼이 되고 말았다.
“브라이튼, 좋은 수비로 타자를 잡아냅니다.”
“탬파베이 내야 수비는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입니다. 어느 포지션이나 준수한 수비를 자랑하죠.”
1루의 아울, 2루의 칼튼, 3루의 스나이더, 그리고 유격수 브라이튼.
네 명의 선수는 록튼의 지휘에 따라 철통같이 탬파베이 내야를 지켰다.
“오클랜드의 다음 타자는 호세입니다.”
호세가 타석에 등장하자 오클랜드 팬들이 일제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호세! 호세!”
호세는 제레미가 떠난 뒤로 오클랜드를 상징하는 선수가 되었다.
오클랜드 팬들은 호세가 적어도 3, 4년은 팀과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탬파베이에 윌리엄이 있다면 오클랜드에는 이 선수가 있습니다. 이번 시즌 홈런왕에 빛나는 호세입니다!”
2003 시즌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 호세.
그는 김민이 아니었다면 유력한 시즌 MVP였다.
호세가 배트를 세우며 낮게 중얼거렸다.
“킴, 좋은 승부를 펼치자고.”
김민은 초구에 앞서 호흡을 조절했다.
‘정확도의 시몬스, 파워의 호세. 하지만 이건 틀린 말이다. 두 사람의 타율 차이는 스윙의 궤적 때문에 벌어진 것. 타고난 컨택 능력은 호세가 시몬스보다 한 수 위다.’
호세는 시몬스처럼 정확도를 위해 파워를 희생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홈런을 더 치기 위해 어퍼 스윙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호세! 호세!”
관중들의 목소리가 낮아진 순간,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투수와 타자.
두 사람의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슉!
‘빠른 공!’
호세는 바로 배트를 휘둘렀다.
‘스플리터라도 상관없다 파워로 넘겨주마!’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이 떠올랐다.
“높이 뜬 타구. 그러나 1루 관중석으로 향합니다!”
호세는 전광판에 표시된 95마일(153km)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킴은 승부를 피하지 않았어.”
김민의 공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타구는 1루가 아닌 우측 펜스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공이 떠오르면서 히팅 포인트가 어긋나고 말았다.
“호세의 파워는 굉장하군요. 제대로 맞지 않은 것 같은데 관중석 상단에 떨어졌습니다.”
“파워가 부족했다면 파울 플라이 아웃이 되었겠죠. 오클랜드 콜로세움은 파울 지역이 그 어느 구장보다 넓으니까요.”
오클랜드 콜로세움은 외야가 넓고 파울 라인이 넓어 투수 친화구장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김민이 과감하게 패스트볼 승부를 가져간 것도 넓은 외야를 믿기 때문이었다.
‘무시무시한 파워군. 하지만 배리 본즈에는 미치지 못해.’
그는 두 번째 공도 패스트볼을 선택했다.
슉!
95마일(153km) 패스트볼이 타자 눈높이로 날아갔다.
‘하이 패스트볼이냐?’
호세는 다시 한번 힘차게 배트를 휘둘렀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백네트에 꽂혔다.
“파울!”
토니는 배트 스피드가 공에 밀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호세는 배트 스피드가 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떠오르는 무브먼트 때문에 히팅 포인트가 어긋난 것뿐이야. 제대로 맞으면 앞으로 뻗어나갈 거야.’
그는 다시 한번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췄다.
그러나 김민의 승부구는 그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공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호세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공은 바로 77마일(123km) 체인지업이었다.
“호세의 타이밍이 완전히 어긋났습니다. 배트와 공의 차이가 무척 큽니다!”
“멋진 체인지업이군요. 페드로의 그것처럼 무브먼트가 심하진 않지만, 패스트볼 코스에서 제대로 떨어졌습니다.”
호세는 삼진을 당한 직후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힘으로 상대하지는 않는다는 건가? 뭐, 좋아. 브레이킹볼과 체인지업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는 삼진을 당했다고 해서 위축되는 타자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