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67화 (167/296)

167화 디비전 시리즈 01

메트로돔 복도.

원정팀 출구 복도에 한 사나이가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는 검은 머리를 한 탬파베이 선수가 나오자 벽에서 등을 땠다.

“킴.”

김민은 익숙한 얼굴을 보곤 어깨를 으쓱했다.

“시몬스, 무슨 일이야? 경기 중에 원한을 살만한 일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네가 던졌던 그 공…… 평범한 공이 아니었어.”

시몬스는 김민의 업 라이징 패스트볼을 끝내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내 공은 원래 평범하지 않아.”

“그런 뜻이 아니야. 네가 승부구로 던졌던 바로 그 공. 흔히 말하는 라이징 패스트볼이 아니었어.”

김민은 시몬스의 말에 속으로 혀를 찼다.

‘허, 좋은 타자는 역시 좋은 눈을 가지고 있군. 업 라이징 패스트볼을 꿰뚫어 볼 줄이야. 시몬스의 눈은 어쩌면 윌리엄 이상일지도 모르겠어.’

그는 직접 찾아와 묻고 있는 시몬스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김민이 짧게 말했다.

“업 라이징 패스트볼.”

시몬스에게는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역시, 우연히 던진 공이 아니었다는 말이군.”

“그 이상은 말해 줄 수 없어. 영업 비밀이니까.”

시몬스가 입술 끝을 올리며 말했다.

“비밀을 알려달라고 온 게 아니야. 내가 본 것이 맞는지 확인을 해 보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는 몸을 돌린 뒤 오른손을 흔들었다.

“킴, 다음 만남은 포스트 시즌이야.”

김민이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거 좋지. 포스트시즌, 가능하면 높은 곳에서 만나자고.”

현재 순위로 볼 때, 두 사람이 포스트시즌에서 격돌하기 위해서는 양 팀 모두 디비전 시리즈를 통과해야만 했다.

‘시몬스를 만나는 것은 챔피언십 시리즈인가? 그 전에 우린 양키스를 넘어야 해.’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도 디비전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만날 가능성이 컸다.

* * *

메이저리그의 9월은 승부 경쟁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오늘 경기에서 패하면 디비전 시리즈와 작별을 고해야 한다! 다들 최선을 다한다!”

“고! 고! 레드삭스!”

보스턴 레드삭스는 9월 중순까지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양키스에게 충격의 스윕을 당하면서 디비전 시리즈가 사실상 좌절되고 말았다.

“이제 탬파베이 같은 팀에게도 밀리는 건가?”

“탬파베이 같은 팀이라니, 녀석들 이번 시즌은 정말 대단하다고.”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9월 21부터 시작한 3연전에서 양키스를 상대로 위닝 시리즈를 거두었다.

“이제 승차는 4게임이야.”

“동부지구 1위는 몰라도 와일드카드는 넉넉해. 이번 시즌은 지난 시즌과 달라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 킴이 등판할 수 있다고.”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김민의 등판 여부에 따라 팀 성적이 크게 달라지는 팀이었다.

“32번 등판에 24승이라. 승률 75%인가?”

“탬파베이 시즌 승률이 0.591이니까. 킴의 등판 시 승률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18% 정도 높아.”

김민은 시즌 종료까지 딱 한 번의 선발 등판을 앞두고 있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2년 연속 25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킴의 다음 상대가 누구지?”

“볼티모어.”

“달성한 것이나 다름이 없군.”

볼티모어는 이번 시즌 이미 100패를 달성했다.

현재 남은 경기는 5경기.

이 경기에서 모두 패한다면 105패까지 가능했다.

그런 볼티모어가 김민과 탬파베이를 막아선다는 것은 잘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었다.

“기적이 일어난다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인 거야.”

“볼티모어 팬들은 이번 시즌 정말 우울하겠군. 100패가 훌쩍 넘는 것도 모자라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다니.”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수밖에…… 유망주들이 잘 커준다면 미네소타처럼 치고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미네소타 트윈스는 중부지구 1위를 끝까지 지켜 디비전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5경기가 남은 현재 성적은 다음과 같았다.

92승 65패 승률 0.588

서부지구에서는 오클랜드가 파죽의 11연승을 질주했다.

그 기세는 메이저리그 최강이라는 양키스도 위협할 정도였다.

“호세가 이번 시즌 일을 낼 모양이군.”

“에이로드와 홈런왕 경쟁도 끝까지 모르겠어.”

두 사람은 각각 45개와 46개의 홈런을 기록중이었다.

“남은 다섯 경기에서 더 많은 홈런을 쳐 내는 쪽이 타이틀을 가져갈 거야.”

오클랜드는 호세가 중심이 돼서 메이저리그 최고 승률을 노리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팀의 기세 때문에 호세의 홈런왕 등극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9월 30일.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이 끝이 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든 타이틀과 디비전 시리즈 진출 팀이 가려졌다.

“길었던 시즌이었어.”

“아메리칸 리그는 지난해하고 비슷하군.”

“내셔널 리그도 마찬가지야.”

2003 시즌 최종 결과를 내셔널 리그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동부지구 1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01승 62패 승률 0.623

중부지구 1위

시카고 컵스

88승 74패 승률 0.543

서부지구 1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00승 61패 승률 0.621

와일드카드

플로리다 말린스

91승 71패 승률 0.562

2002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자이언츠는 동부지구 1위 팀 애틀랜타에 승률 0.002이 뒤진 내셔널 리그 전체 2위로 정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동부지구 패왕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다시 한번 동부지구 1위를 달성하며 내셔널 리그 홈어드벤테이지를 가져갔다.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 매치업은 다음과 같았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vs 플로리다 말린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vs 시카고 컵스

전문가들은 애틀랜타와 샌프란시스코가 각각 말린스와 컵스를 꺾고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격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메리칸 리그는 1위가 바뀌었어.”

“오클랜드의 기세가 대단했지. 하지만 디비전 시리즈 진출팀은 지난해하고 비슷해.”

아메리칸 리그 최종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동부지구 1위

뉴욕 양키스

102승 60패 승률 0.629

중부지구 1위

미네소타 트윈스

94승 68패 승률 0.580

서부지구 1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105승 57패 승률 0.648

와일드카드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98승 64패 승률 0.604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서부지구 1위에 오르는 동시에 아메리칸 리그 1위는 물론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아메리칸 리그에서 열리는 모든 시리즈에서 홈어드벤테이지를 가졌다.

“빌리 빈 단장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군.”

“제레미가 팀을 떠날 때, 다시는 이런 위치까지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빌리 빈은 해냈지. 그는 최고의 단장이야.”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 시리즈 매치업은 다음과 같았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vs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뉴욕 양키스 vs 미네소타 트윈스

“탬파베이가 양키스와 대결을 피했군.”

“하지만 좋아할 수가 없겠어. 상대가 파죽의 오클랜드니까.”

오클랜드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단 한 경기도 패하지 않고 16연승을 달성했다.

그들의 질주는 메이저리그 팬들의 모든 이목을 집중시켰다.

“첫 경기는 마린과 킴인가?”

“시즌 21승 투수와 25승 투수의 대결이군.”

김민은 시즌 마지막 경기를 8이닝 무실점으로 막아 2년 연속 25승 달성에 성공했다.

“킴은 단순히 25승만 한 게 아니야. 이번 시즌 기록은 전설로 남아도 좋을 거야.”

“하긴…… 사람이 던졌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기록이니까.”

김민의 이번 시즌 평균자책점은 1.08이었다.

0점대 평균자책점은 아깝게 실패했지만, 1.08의 평균자책점은 라이브볼 시대는 물론 메이저리그 100년 역사를 통틀어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킴이 밥 깁슨도 넘어선 건가?”

“맞아.”

“타고투저 시즌에 밥 깁슨을 넘어서다니,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밥 깁슨은 1968년 역대 3위에 해당하는 1.1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68년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는 투고타저 시즌이었다.

그 때문에 조정방어율로 비교하면 밥 깁슨의 기록은 김민의 기록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킴은 삼진이 다소 적은 게 흠이군.”

김민은 이번 시즌 166개의 삼진을 잡아 삼진 부문에서 7위를 기록했다.

“킴에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것은 트리플 크라운이 불가능하다는 거야.”

평균자책점, 다승, 그리고 삼진.

세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하는 것을 트리플 크라운이라고 불렀다.

김민은 삼진이 부족해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에 실패하고 말았다.

“삼진이 부족하다고 해도 킴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야.”

“그건 이견이 없지. 1.0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니까.”

기자들은 다루지 않았지만, 세이버 매트릭스를 다루는 팬 사이트에서는 김민의 기록을 두고 끊임없는 비교와 재평가가 이뤄졌다.

“삼진이 적기 때문에 가중치에 마이너스를 줘야 한다고.”

“킴은 삼진이 적고 인플레이 타구가 많아. 나도 마이너스 가중치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

“인플레이 타구가 많은 것은 시프트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야. 선수의 특성을 배제하고 인플레이 타구의 비율로 마이너스 가중치를 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각 사이트에서 계산한 WAR에 따르면 김민은 메이저리그 100년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낸 투수였다.

“14.8이라니…… 베이비 루스의 1923년 기록을 제외하곤 최고야.”

“삼진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도 역대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 낼 뻔했어.”

“투수 부문에서는 벌써 역대 최고야.”

“이번 시즌도 MVP일까?”

“아마도.”

김민은 250이닝과 300삼진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압도적인 평균자책점으로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냈다.

2003 시즌 김민

25승 3패 평균자책점 1.08 삼진 166개 231이닝

* * *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회의실.

“연승 끝에 최악의 적을 만났군요.”

부단장 헉슬리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16연승을 질주한 끝에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달성했지만, 디비전 시리즈에서 예상하지 못한 암초를 만났다.

그 암초는 바로 김민이라는 역대급 투수였다.

“연승을 하지 않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말인가?”

빌리 빈의 물음에 헉슬리가 대답했다.

“냉정하게 보면 그렇습니다.”

빌리 빈은 그 대답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디비전 시리즈는 3경기를 이겨야 끝나는 시리즈야. 킴이 2번 나온다고 해도 나머지 시리즈를 다 잡으면 우리가 이기지. 그리고 킴에게 2번 다 진다고 누가 그러던가?”

헉슬리는 김민이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수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그런 투수를 디비전 시리즈에서 2번이나 만나는 것은 악운입니다.”

빌리 빈이 고개를 돌리자 전력분석팀장 마크가 오른손을 들었다.

“킴은 분명 대단한 투수입니다. 하지만 약점도 많은 투수입니다.”

“킴에게 약점이 많다고요?”

목소리를 높인 사람은 바로 파출리아 감독이었다.

파출리아 감독은 김민의 투구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렇습니다.”

“역대 최강의 투수가 약점이 많다. 그렇다면 다른 투수들은 약점투성이겠군요.”

파출리아 감독이 쏘아붙이듯 말하자 빌리 빈이 가볍게 마른기침으로 그 말을 끊었다.

“흠흠…… 우린 킴을 이기고자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그의 한마디에 파출리아 감독이 침묵했다.

“마크, 자네가 분석한 것을 말하게.”

전력분석팀장 마크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킴은 이번 시즌 지난 시즌보다 12이닝을 더 투구했습니다.”

“완투가 많았으니, 이닝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석 코치의 말에 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더 많은 이닝을 던졌다는 것은 김민처럼 내구성이 좋지 못한 투수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킴의 내구성이 좋지 않다고요?”

“킴은 같은 승수를 거둔 투수들에 비해 소화 이닝이 적습니다.”

“그것은 탬파베이 불펜이 좋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의 체력이 다른 레전드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마크는 김민의 신체 조건을 언급하며 그의 피지컬이 메이저리그 평균 이하라고 말했다.

“킴은 한마디로 지친 상태입니다. 전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흠, 상대가 지쳤기 때문에 쉽게 상대할 수 있다. 그것은 너무 단편적인 분석이군요.”

마크가 손짓을 하자 전력분석팀 스텝이 의자에 앉은 이들에게 자료를 제공했다.

“킴의 마지막 3경기 스탯입니다.”

파출리아 감독이 어깨를 으쓱했다.

“6이닝 1실점, 7이닝 1실점, 8이닝 무실점. 완벽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린 이닝과 스피드에 주목해야 합니다.”

마크는 김민이 마지막 3경기에서 소화 이닝과 최고 구속이 동시에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2경기 중 한 경기는 9이닝을 책임져 주던 그가 아닙니다. 그는 지쳐 있습니다.”

빌리 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크의 말을 받았다.

“나도 마크의 의견에 동의하네. 내가 본 마지막 경기에서 킴은 연신 이마의 땀을 닦고 있었어. 평소의 킴답지 않은 모습이었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지만, 상대는 볼티모어였어. 양키스나 우리를 상대했다면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 거야.”

코칭 스텝은 빌리 빈까지 마크의 의견에 동의하자 적극적으로 반론을 펼칠 수 없었다.

“킴이 지쳤다면 의외로 쉬운 시리즈가 될 수도 있겠군요.”

“물론이지.”

빌리 빈은 16연승으로 아메리칸 리그 홈어드벤테이지를 따낸 것이 절대 실책이 아님을 강조했다.

“우린 탬파베이를 누르고 챔피언십 시리즈에 나가 양키스를 격파할 거야. 그리고 월드시리즈에 오르는 거지!”

그는 2003 시즌이야말로 못 이룬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항상 리그 마지막 경기를 이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상상한다네.”

리그 마지막 경기란 월드시리즈 승자가 정해지는 경기를 말했다.

빌리 빈은 김민 못지않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갈구하고 있었다.

“이번 시즌…… 난 우리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네. 고! 오클랜드! 고! 어슬레틱스!”

그의 마지막 외침에 코칭 스탭과 구단 스텝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고! 오클랜드! 고! 어슬레틱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디비전 시리즈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 * *

원정 경기는 선수들에게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장거리 비행은 더욱 그러했다.

“캘리포니아까지 날아가는 건가?”

“그래도 양키스를 피했잖아.”

“양키스라면 비행이 짧게 끝났을 거야.”

탬파베이 선수단은 오클랜드가 위치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까지 상당한 시간을 전세기로 이동했다.

비행기가 멈추자 이내 문이 열렸다.

선수들은 밖으로 나오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뜨겁군.”

“탬파보다 더해.”

바이슨 수석 코치가 앞서 내려가며 말했다.

“이쪽은 태평양이니까. 다들 이동하자고.”

탬파베이 선수단은 공항 활주로에서 버스로 갈아탔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이동은 이처럼 활주로 위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버스는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브라이튼은 숙소를 확인하곤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이거 힐튼이잖아.”

칼튼도 새로운 숙소에 만족했다.

“구단에서 나름 돈을 쓴 모양이야.”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디비전 시리즈에 앞서 평소 묶던 호텔을 힐튼 오클랜드로 교체했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하라는 구단의 배려일세.”

홀먼 단장은 말을 마치곤 선수단과 함께 힐튼 호텔로 들어섰다.

김민은 숙면을 취하라는 코칭 스텝의 요구에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평소의 나답지 않군.”

첫 번째 포스트 시즌 등판은 지난 시즌에 마쳤다.

그는 가슴이 두근거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는 불을 끈 뒤 어두운 허공을 응시했다.

“그렇군. 내 손에 디비전 시리즈의 승패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2002 시즌 등판에서 그는 승리를 따냈지만, 그의 승리는 디비전 시리즈 승패와 무관했다.

로테이션상 그는 1경기밖에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3 시즌은 달랐다.

“디비전 시리즈는 5판 3선승제. 첫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첫 경기를 잡으면 나머지 경기에서 1경기만 이겨도 챔피언십 시리즈에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첫 경기에서 패한다면 나머지 3경기에서 2경기를 이겨야 탬파베이는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다른 선발 투수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 경기를 패한다면 아마 힘들겠지.”

승리에 대한 부담.

그것이 김민을 잠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그는 오클랜드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가 담긴 자료집을 펼쳤다.

이 자료집은 탬파베이 전력분석팀과 엘린이 보내온 것을 함께 묶은 것이었다.

“흠, 역시 오클랜드의 중심은 호세야.”

그는 한 장 한 장 천천히 분석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다음 날.

탬파베이 선수단은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이 열리는 오클랜드 콜로세움에 도착했다.

“여긴 항상 이래.”

선수들은 오클랜드 콜로세움의 좋지 못한 시설에 혀를 찼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탬파베이와 마찬가지로 스몰 마켓의 대표주자였다.

하지만 탬파베이보다 구장 상태는 더 열악했다.

“NFL하고 같은 구장을 쓰니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해서야. 어떻게 메이저리그 구단이라고 할 수 있겠어.”

김민은 구장 곳곳을 누비며 상태를 살폈다. 그런 김민을 본 오클랜드의 4번 타자 호세가 목소리를 높였다.

“킴, 우리 구장은 아직 재건축할 때가 아니라고.”

김민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냥 보는 것뿐이야.”

“그냥 보는 것 치고는 꼼꼼하던데?”

김민은 호세의 물음을 살짝 흘렸다.

“건축에 조금 관심이 있어.”

호세는 김민이 다 쓰러져가는 아마존에 투자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 메이저리그 선수라. 킴, 넌 정말 괴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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