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2003 시즌 후반기 04
4회 초.
산타나의 삼진 퍼레이드에 제동이 걸렸다.
탬파베이 타자들은 공을 오래 보면서 지공을 펼쳤다.
물론 지공을 펼친다고 해서 산타나를 공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탁!
빗맞은 공이 3루수 머리 위에 떠올랐다.
“아울의 타구가 높이 떠오릅니다.”
2루수 카인의 안정적인 포구.
“아울, 2루수 플라이 아웃입니다!”
2, 3, 4번의 호타순으로 시작된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4회 말 공격은 뜬공 4개로 끝나고 말았다.
이반 감독은 3개의 플라이볼을 보곤 턱을 쓰다듬었다.
“써클 체인지업만 좋은 게 아니야. 패스트볼 구위가 상당하군.”
블렛소 투수 코치가 데이터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산타나는 원래 패스트볼이 좋은 친구였습니다. 지난 시즌 말 영점이 잡히면서 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써클 체인지업은 그 다음에 익힌 구종입니다.”
“패스트볼만으로도 통하는 친구가 써클 체인지업을 익혔다. 그 말인가?”
“앞으로 몇 년, 아니 10년은 리그를 호령할지 모릅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산타나의 패스트볼 구위가 김민과 대등하다고 판단했다.
‘회전수를 정확히 측정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산타나의 패스트볼은 킴의 패스트볼 회전수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거야.’
산타나의 패스트볼은 회전수 외에도 한 가지 장점을 더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왼손에서 던져진 공이라는 사실이었다.
‘흔히 좌완 투수는 우완 투수에 비해 구속에서 3마일(4.8km)의 이점이 있다고 한다. 타자는 92마일(148km)을 던지는 좌완 투수와 95마일(153km)을 던지는 우완 투수의 공을 같게 느끼고 이는 통계 자료를 보아도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산타나의 이번 시즌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95마일(153km)까지 나왔다.
좌완 투수의 이점인 3마일을 더한다면 지금 탬파베이 타선은 98마일(158km)을 던지는 우완투수와 상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구처럼 떨어지는 써클 체인지업과 98마일을 오가는 패스트볼. 바로 그 친구군.’
블렛소 투수 코치의 머릿속에 떠오른 선수는 바로 페드로 마르티네스였다.
“킴이 번즈를 상대합니다.”
김민은 번즈를 상대하기에 앞서 올렸던 기어를 내렸다.
팡!
잘 제구된 공이 안쪽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스트라이크!”
번즈는 초구를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91마일(146km).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공이야.’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2구를 기다렸다.
슉!
바깥쪽으로 흐르는 공.
‘구속이 느려, 흘러나가는 슬라이더인가?’
번즈는 배트를 멈췄고, 공은 그대로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왔다.
파앙!
“스트라이크!”
주심의 판정에 번즈가 눈을 크게 떴다.
“흘러나가는 공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멀리 흘러나가는 공이 아니었어.”
번즈는 김민이 던진 공을 슬라이더라고 판단했지만, 사실은 짧게 휜 커터였다.
록튼은 미트에서 공을 빼며 김민의 속도 조절에 감탄했다.
‘시즌 중반까지는 패스트볼 구속만 조절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스플리터와 커터의 구속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되었어.’
타격은 타이밍.
피칭은 타이밍을 빼앗는 마술.
이 야구 격언에 따르면 김민의 구속 조절은 가장 이상적인 투구 중 하나였다.
“번즈, 카운트 0-2로 코너에 몰렸습니다.”
“그리 빠르지 않은 공이었는데 두 개를 모두 놓쳤습니다. 낮게 떨어지는 브레이킹볼을 노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번즈는 미간을 좁히며 배트를 세웠다.
‘하나는 보고, 하나는 놓친 것뿐이야.’
그는 같은 공을 두 번 놓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배트를 세운 순간 다시 바깥쪽 공이 날아왔다.
‘패스트볼인가?’
번즈는 바깥쪽 공을 그대로 밀어치려 했다.
그러나 공은 그의 배트 헤드에 살짝 걸렸을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떨어졌어. 스플리터인가?’
1루로 달려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2루수 칼튼이 재빨리 달려나와 공을 처리합니다.”
번즈는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발을 활용하기도 전에 아웃 판정을 받고 말았다.
“킴, 공 3개로 번즈를 잡아냅니다.”
잘만 감독은 이번 회에 점수를 뽑지 못하면 한동안 김민을 공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 3, 4번으로 이어지는 호타순이 점수를 뽑지 못한다면 타격 침체가 길어질 수 있다.’
3번 타자 헐크.
헐크는 김민의 초구를 강하게 퍼 올렸다.
따악!
“큰 타구입니다!”
높이 뜬 타구는 그대로 천장에 맞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공은 천장을 1m 남짓 앞두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타구에 실린 힘은 대단했지만 발사 각도가 너무 높았던 것이었다.
“중견수 머레이가 글러브를 듭니다.”
팡!
공이 글러브에 들어오자 잘만 감독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몬스 앞에 주자를 쌓는데 실패했군.”
시몬스는 이번 시즌 홈런보다는 타격의 정확도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타격 코치는 이러한 변화가 시몬스를 2년 차 징크스로부터 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떨어진 장타력은 혼자 힘으로 만들어 내는 득점, 즉 홈런의 수를 감소시켰다.
“시몬스가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등장했습니다.”
안타 하나쯤은 괜찮은 상황.
그러나 김민은 그런 여유가 위기를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시몬스의 장타력이 떨어졌다고? 시즌 22홈런이 장타력이 떨어진 건가? 그를 상대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 존재하지 않아.’
시몬스의 홈런 페이스는 아직도 30홈런에 근접해 있었다.
김민은 시몬스만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로 날아왔다.
시몬스는 이 공을 그대로 밀어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더그아웃 앞쪽에 떨어졌다.
“파울!”
초구는 커터였다.
시몬스는 커터를 밀어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순순히 패스트볼을 던져 줄 김민이 아니었다.
시몬스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린 뒤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볼끝이 지저분하기로는 킴이 메이저리그 제일이지.’
홈플레이트 앞에서 다양하게 변하는 공은 타자의 히팅 포인트를 어긋나게 만들었다.
‘배트 스피드로 승부한다.’
배트를 세우자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슉!
이번에는 안쪽 빠른 공.
딱!
배트에 맞은 공이 총알처럼 3루 베이스 옆을 뚫었다.
“파울!”
시몬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번에는 스플리터군.’
카운트 0-2.
김민은 변형 패스트볼로 시몬스의 히팅 포인트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다음 공은 커브? 아니면 하이 패스트볼이겠군.’
그는 김민이 비슷한 구종을 3개 연속 던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느린 패스트볼이 올 수도 있어.’
시몬스는 스플리터와 같은 속도로 날아오는 패스트볼을 경계했다.
배트를 세우자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휙.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
김민의 세 번째 선택은 이퓨즈였다.
‘손가락 장난이냐?’
시몬스는 미간을 좁혔지만, 김민의 이퓨즈는 그렇게 가볍게 볼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타자 머리보다 더 높이 올라간 공은 정확하게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했다.
이퓨즈를 이렇게까지 컨트롤할 수 있는 선수는 오직 김민뿐이었다.
‘다른 타자라면 몰라도 내겐 통하지 않는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중견수 앞에 안타입니다!”
“이퓨즈를 잘 받아쳤군요. 좋은 타격입니다.”
시몬스의 오늘 경기 첫 안타.
김민은 안타를 맞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유연성이야. 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았다고 생각했는데 뒤쪽 발을 세우면서 배팅 타이밍을 조절했어.’
그는 잠시 하이 패스트볼이나 체인지업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가정이군. 야구에 만약은 없는데 말이야.’
김민은 모자를 고쳐 쓰고는 다음 타자를 상대했다.
“5번 타자 행크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2사 1루.
행크는 자신이 시몬스를 홈으로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하면 이번 이닝도 무득점이다.’
그는 배트를 세우고 공에 집중했다.
슉!
홈플레이트를 향해 날아오는 공이 평소보다 크게 보였다.
‘좋았어. 칠 수 있어.’
배트가 공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공이 살짝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배트 중심을 벗어났다.
딱!
소리는 좋았지만 행크는 타구가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향은…… 방향만이라도!’
그러나 방향조차 그의 바람과 차이가 컸다.
“외야로 날아가는 타구! 하지만 우익수 정면입니다.”
메트로돔은 바람이 없는 돔구장이었기 때문에 타구 방향이 갑자기 바뀌는 행운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우익수 윌리엄은 몇 걸음 이동한 뒤 가볍게 타구를 잡아냈다.
팡!
우익수 플라이 아웃.
시몬스는 1루 베이스에서 더그아웃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타를 하나 맞고도 10개 이내에서 피칭을 끝냈어. 킴의 효율은 막을 수 없는 건가?’
잘만 감독은 행크가 너무 성급하게 배트를 휘둘렀다며 혀를 찼다.
“중요한 순간에 잘못된 판단을 했군.”
“행크는 초구를 패스트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TV 화면에 중계된 김민의 초구는 패스트볼이 아닌 커터였다.
“오늘 경기 킴은 커터 비중이 높아. 타자들에게 경계하라고 말해 줘.”
“알겠습니다.”
5회와 6회.
양 팀 선발 투수는 완벽하게 여섯 타자를 처리했다.
“0의 행진이 6회까지 이어집니다.”
“명품 투수전이란 이런 경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투수 모두 대단합니다.”
산타나는 6이닝 동안 삼진 9개를 잡으면서 삼진 순위를 3위까지 높였다.
반면 김민은 효율이 높은 피칭으로 미네소타 타선을 상대했다.
그는 6회까지 단 45개의 공만을 던지며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산술적으로는 70개 이내에서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말이군.”
“후반에 투구수가 많아진다고 계산해도 대략 85개 안팎에서 경기가 끝날 겁니다.”
“킴의 피칭은 참 대단하단 말이야.”
기자들은 김민의 효율적인 피칭에 혀를 내둘렀다.
7회 초.
탬파베이 2번 타자 케니히가 3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뛰어난 패스트볼, 그리고 그보다 더 뛰어난 써클 체인지업. 둘 다 공략할 수는 없어.’
그는 패스트볼에 배팅 타이밍을 맞췄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쳐야 해!’
탁!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백네트에 꽂혔다.
“파울!”
케니히는 굳이 전광판을 보지 않더라도 손끝의 감각만으로도 산타나의 구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위력이 있어.’
그는 정확한 배팅이 아니라면 산타나의 공을 앞으로 밀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볼을 골라 걸어 나가는 것은 무리겠지.’
그는 좋은 선구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산타나를 상대로는 별반 소용이 없었다.
낙차가 큰 체인지업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왔다.
그것이 체인지업이라고 해도.
“산타나! 2구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케니히는 다시 한번 패스트볼을 노렸지만 이번 공은 스트라이크존에 꽂히는 써클 체인지업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김민은 케니히의 헛스윙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지극히 산타나다운 투구야.”
“티처, 남을 칭찬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산타나를 어떻게 공략할지 생각할 때야. 우리 타선은 아직 1점도 뽑지 못했다고.”
스미스의 말에 김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라고 무슨 수가 있겠어. 저 친구는 약점이 없는 투수라고.”
“티처, 세상에 완벽한 투수는 없어.”
스미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니히가 삼진으로 돌아섰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김민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록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선구안이 좋은 케니히가 삼구삼진이라. 괴물이 따로 없군.”
김민이 시선을 그라운드에 고정한 채 물었다.
“록튼, 패스트볼과 써클 체인지업, 어떤 구종이 더 좋은 것 같아?”
“산타나 말인가?”
“2번이나 타석에 들어가 봤잖아.”
록튼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두 가지 다 좋아.”
“좋은 두 가지 중 굳이 하나만 뽑자면?”
“패스트볼이겠지. 산타나의 패스트볼은 히팅 포인트를 맞추기가 힘들어.”
“써클 체인지업이 아니라 패스트볼이라고?”
“그래 오늘만큼은 패스트볼이야.”
김민이 다시 한번 록튼에게 물었다.
“타이밍이 아니라 포인트를 맞추는 게 힘든 게 확실해?”
록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킴이 던지는 라이징 패스트볼처럼 볼끝이 살아 있어. 아마 회전수가 많기 때문일 거야.”
“그렇다면 써클 체인지업을 노리는 게 좋겠군.”
“말이야 쉽지. 언제 어느 타이밍에 써클 체인지업이 올지 모른다고.”
산타나의 투구 비율은 패스트볼이 61% 써클 체인지업이 34%였다.
록튼은 비율이 높은 패스트볼을 공략하는 것이 써클 체인지업을 공략하는 것보다 낫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김민은 고개를 저었다.
“투구 비율이 높다고 해서 패스트볼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의견이야. 회전수가 많은 패스트볼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스윙 자체에 변화를 줘야 하는데 경기 중 이것이 가능한 선수는 존재하지 않아.”
록튼이 물었다.
“어퍼 스윙을 다운 스윙으로 바꾸는 것은?”
“그게 그렇게 쉽게 되면 왜 산타나에게 고전하겠어?”
김민은 다운 스윙으로 떠오르는 공을 누르는 것보다는 어퍼 스윙으로 체인지업을 퍼올리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흠, 어렵지만 체인지업을 공략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재차 강조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체인지업이 들어오기 전에 카운트가 몰리면 패스트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딱!
날카로운 타구가 외야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날아갔다.
김민과 록튼은 숨을 멈춘 채 그 타구를 쫓았다.
‘잘 맞았어!’
‘체인지업을 퍼 올린 건가?’
윌리엄은 배트를 던지곤 속도를 높였다.
‘펜스를 넘어가기에는 비거리가 부족해.’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타구는 펜스를 넘어가지 못한 채 중견수 글러브에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윌리엄! 대형 타구를 때렸지만, 워닝 트랙에서 잡힙니다.”
“그래도 오늘 나온 타구 중 가장 시원한 타구였습니다.”
산타나는 자신의 체인지업을 정확하게 노려친 윌리엄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세 번째 타석은 다르다는 건가? 윌리엄…… 역시 MVP급 재능을 지녔어.’
김민은 자신이 말한 공략법을 윌리엄이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했다.
‘파워와 기술. 그 두 가지가 다 완벽했는데도 불구하고 펜스를 넘길 수 없었어. 이건 구위가 살아 있기 때문이야.’
그는 아직 점수가 나올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7회 말.
미네소타 타선도 나쁘지 않았다.
“미네소타의 이번 공격은 3번 타자 헐크부터 시작합니다.”
헐크는 김민에게 당할만큼 당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당하지 않아.”
그는 굳은 어조로 말한 뒤 배트를 들었다.
슉!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공은 헐크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뭐야! 이 맥없는 공은!’
그는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빠르게 잔디를 굴렀다.
‘2, 3루를 통과한다!’
그러나 헐크의 타구는 탬파베이의 시프트를 뚫지 못했다.
“유격수 브라이튼이 깊은 수비로 헐크의 타구를 잡아냅니다!”
“공격에서는 빛을 발하고 있지 못하지만, 수비에서는 큰 도움을 주는군요.”
3루수 땅볼 아웃.
헐크의 세 번째 타석도 안타와는 인연이 없었다.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시몬스가 등장합니다.”
“시몬스는 킴을 상대로 상당히 좋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 타석에서도 안타를 뽑으면 천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번 타석에 들어서서 한 번만 안타를 쳐도 타율은 0.333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한 경기에 두 개나 안타를 맞을 수는 없지.’
김민은 기어를 바꿔 넣었다.
슉!
손끝을 떠난 공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질주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관중석에 떨어졌다.
“파울!”
시몬스는 파울을 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주 좋아. 드디어 정면 승부군.’
그가 때린 초구는 그토록 기다렸던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시몬스가 카운트 0-1에서 두 번째 공을 기다립니다.”
“미네소타가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시몬스가 해 줘야 합니다.”
슉!
두 번째 공도 빨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이번 공은 패스트볼이 아닌 고속슬라이더.
시몬스는 전광판에 표시된 88마일(142km)을 보곤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속 슬라이더라. 확실한 전력 승부군.’
투 스트라이크 노 볼로 카운트가 몰려 있음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는 어떤 공이 들어올까 기대가 되는군.’
순간 시몬스는 김민과의 승부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난 경기를 이기기 위해서 배터 박스에 들어선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김민.
시몬스는 김민을 상대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