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2003 시즌 전반기 05
3루에 위치한 호세는 김민의 승리를 보곤 혀를 찼다.
“천 달러(124만 원)가 날아갔군. 그건 그렇고, 킴도 대단한 배짱이군. 그 코스에 그런 공을 넣을 줄이야.”
땅볼 타구를 유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타구의 발사 각도를 낮추는 일이었다.
타구의 발사 각도가 높으면 빗맞더라도 플라이볼이 되었다.
호세는 김민이 타구의 발사 각도를 낮추기 위해 배팅 포인트를 맞추기 힘든 라이징 패스트볼이나 떨어지는 브레이킹볼을 사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김민의 선택은 평범한 패스트볼이었다.
‘라이징 패스트볼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타자가 공을 쳐 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가? 아니야. 이쪽을 선택하지 않은 건 플라이볼이나 파울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일 거야. 떠오르는 공은 타구의 발사각도 때문에 제외된 것이 분명해.’
호세는 김민의 선택을 차분히 분석했다.
‘킴이 공을 던지기 전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구종은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투심 패스트볼은 기본적으로 땅볼을 양산하기 위한 공. 초구 땅볼을 예언했으니, 투심 패스트볼이야 말로 이번 승부에 적합한 공이었지. 하지만 킴은 투심 패스트볼을 선택하지 않았어. 새로 익힌 구종이라 확신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선구안이 좋은 바비가 투심을 거를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어느 쪽이든 킴은 투심 패스트볼이 미끼로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어.’
호세는 그래도 밋밋한 패스트볼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킴의 선택한 공은 91마일 패스트볼(146km). 자칫 잘못하면 올스타전 첫 타자에게 초구 홈런을 맞을 수도 있는 구종이었어.’
그가 미간을 좁힌 순간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일단 경기에 집중하자.’
올스타전이라고 해서 한눈을 팔다가는 실책은 물론 부상까지 각오해야 했다.
따악!
잘 맞은 타구가 호세 정면으로 날아왔다.
‘정면인가!’
호세는 급히 글러브를 들어 타구를 낚아챘다.
팡!
“킴! 라이언을 3루수 라인 드라이브로 돌려세웁니다!”
“단 2개의 공으로 아웃 카운트 2개를 기록하는군요. 킴, 올스타전 최저 투구수 이닝이라도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요?”
김민은 땅볼 아웃을 잡은 뒤 호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호세는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경기 중 한눈팔지 말라는 뜻인가? 그건 그렇고 킴은 타구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건가?’
그는 김민의 제구력과 운영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킴의 커리어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최고가 아닐까?’
호세는 김민이 2003 시즌에 이룬 것들을 다시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앞으로 1, 2번 정도 2003 시즌에 근접한 시즌을 만들 수는 있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0점대 평균자책점에 25승 이상의 페이스는 무리야. 이건 페드로도 해내지 못한 것이라고.’
김민은 호흡을 가다듬고 세 번째 타자를 상대했다.
타석에 선 타자는 내셔널 리그의 강타자 자미칸.
자미칸은 노쇠한 소사 대신 시카고 컵스 타선을 이끌고 있었다.
“자미칸, 슬라이더를 골라냅니다!”
“좋은 선구안입니다.”
김민은 자미칸을 상대로 3-2까지 가는 긴 승부를 펼쳤다.
호세는 김민의 피칭을 보면서 미간을 좁혔다.
‘1, 2번을 상대할 때와는 투구가 완전히 다르다. 다른 투수들처럼 유인구와 승부구를 적절히 분배하고 있어. 상대가 자미칸이기 때문인가?’
김민은 고속 슬라이더를 던져 자미칸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포사다가 일어나 김민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스 볼! 아주 좋았어!”
공수교대.
내셔널 리그의 첫 번째 공격은 득점 없이 끝나고 말았다.
호세가 1루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면서 김민에게 물었다.
“킴, 아까 초구 말이야. 왜 패스트볼이었지?”
김민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무리 좋은 미끼도 타자가 물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대답을 들은 호세가 낮게 신음했다.
“으음…….”
‘그런가? 투심 패스트볼이라는 좋은 미끼도 타자가 배트를 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말이군. 킴은 타자가 100% 배트가 나오도록 가장 치기 좋은 구속의 공을 던진 거야. 하지만 가장 치기 좋은 구속은 가장 위험한 구속과 동일하다. 킴은 위험한 공으로 빗맞은 타구를 만들어 낼 자신이…….’
호세는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렇군. 답은 빗맞은 타구가 아닌 시프트야! 킴은 좋은 타구가 나와도 타구의 발사 각도가 낮다면, 시프트로 충분히 잡아낼 수 있다고 판단한 거야. 무서울 정도로 냉철해.’
그는 김민이 빗맞은 타구가 아니라 잘 맞은 타구를 유도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바비가 친 타구는 1, 2루 사이를 꿰뚫는 안타성 타구였다.
그러나 그 타구는 시프트를 벗어나지 못한 채 2루수 미구엘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훌륭해. 킴은 야구를 예술의 경지까지 올려놨어. 이건 단순히 스트라이크를 잡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아니야.’
호세는 기회가 되면 김민과 한 팀에서 뛰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뭘, 그렇게 생각해?”
호세에게 질문을 던진 선수는 2루수 미구엘이었다.
“아까 빼앗긴 천 달러.”
호세의 대답은 생각과 조금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미구엘은 순순히 그 대답을 받아들였다.
“후…… 그건 정말 믿기지 않더라. 의도한 곳으로 타구를 보낼 수 있는 투수라니, 그러니 0점대 평균자책점이 나오는 걸까?”
그는 자신의 패배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1회 말.
아메리칸 리그는 빠르게 선취점을 뽑았다.
“호세, 좋은 타구로 2루 주자 지터를 불러들입니다.”
스코어 1-0 아메리칸 리그의 리드.
아메리칸 리그 선수들은 올해만큼은 승리를 내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해는 너무 졸전이었어.”
“무승부였지?”
“난 졸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점수가 나지 않은 건 양팀 투수들이 잘 던졌던 것이니까.”
지터가 헬멧을 벗으며 말했다.
“올해는 초반에 점수를 많이 뽑아두는 게 좋을 거야.”
“라니에 때문인가?”
데릭 라니에.
그는 LA 다저스의 특급 마무리로 전반기 30세이브를 올리면서 단 하나의 블론 세이브도 저지르지 않았다.
평균자책점은 김민과 같은 0점대.
불펜 투수라는 것을 감안해도 압도적인 수치였다.
“9회까지 확실히 리드를 잡아야 된다는 말이군.”
“선취점을 뽑았고, 마운드는 킴이 지키고 있어. 9회에 우리가 뒤지는 일은 없을 거야.”
김민은 2회에도 완벽한 투구로 내셔널 리그 타선을 막아 냈다.
“본즈까지 삼진으로 잡아내다니, 이번 시즌 킴은 정말 대단하군.”
“1티어 투수가 몬스터 시즌이 걸리면 저렇게 되는 거야.”
김민의 오늘 성적은 2이닝 무실점 무피안타 3삼진이었다.
“오늘 경기가 투수전으로 흘러간다면 킴의 MVP 수상 가능성도 적지 않겠어.”
“투수전으로 흘러간다면 말이지.”
난타전이 될 경우 김민보다는 다수의 장타를 쳐낸 타자가 MVP를 수상할 가능성이 컸다.
3회와 4회.
경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양쪽 투수의 호투 덕분에 타자들은 1루 베이스조차 밟지 못했다.
그리고 5회 초.
내셔널 리그의 4번 타자 배리 본즈가 동점 솔로포를 터트렸다.
“큭, 여기서 동점인가?”
“본즈는 본즈야. 정면 승부하면 저렇게 된다고.”
배리 본즈에게 홈런을 맞은 투수는 오클랜드의 에이스 지뉴였다.
‘내 커브를 저렇게 잘 걷어 올릴 수 있는 타자가 존재할 줄이야.’
그는 후속 타자를 범타로 처리한 뒤 오늘 투구를 마무리했다.
6회 초.
내셔널 리그가 다시 2점을 뽑아내며 스코어를 3-1로 뒤집는데 성공했다.
아메리칸 리그 타자들의 얼굴에 그늘이 서린 것은 이쯤이었다.
“스코어 3-1 위험한데…….”
“라니에가 나오기 딱 좋은 스코어군.”
포사다가 장갑을 끼며 말했다.
“라니에가 나오기 전에 역전시키면 되는 거야.”
아메리칸 리그 타자들은 6회 말 한 점을 따라갔지만, 역전과는 거리가 있었다.
7회. 양 팀은 1점씩을 주고받으며 스코어를 4-3으로 만들었다.
“초반과 달리 점수가 제법 나오는군.”
“타자들의 집중력이 살아나고 있어.”
8회 초.
내셔널 리그가 마우어의 투런 홈런으로 6-3까지 달아나며 승리를 굳히는 듯했다.
그러나 아메리칸 리그에는 제레미가 있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센터 펜스를 넘겼다.
“제레미! 쓰리런 홈런입니다!”
순식간에 6-6 동점.
양 팀 선수들은 지난해 악몽을 떠올렸다.
“또 동점이야.”
“2년 연속 무승부면 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지난해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무승부로 끝나자 왜 끝장 승부를 하지 않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2년 연속 무승부라면 그 비난은 배가 될 것이 뻔했다.
아울이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져 줄 수도 없잖아.”
미구엘도 이번에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져 주는 건 말도 안 돼.”
아메리칸 리그는 특급 마무리 리베라를 내보내 9회 초를 틀어막고자 했다.
그러나 내셔널 리그는 리베라를 상대로 끈질긴 승부를 펼쳤다.
“8번 퍼시발이 물러나지 않고 버팁니다.”
“퍼시발, 정규 시즌보다 더 끈질긴 것 같습니다. 리베라도 진땀을 흘리는군요.”
리베라는 다시 한번 시그니처인 커터를 선택했다.
‘이것으로 끝이다!’
슉!
가운데를 향하던 공이 좌타자 안쪽으로 휘어졌다.
‘커터냐!’
퍼시발은 몸을 움츠리면서 그 타구를 받아냈다.
탁!
둔탁한 타격음이었지만, 타구는 방향이 좋았다.
“1, 2루 사이를 통과한 타구가 우익수 쪽으로 느리게 굴러갑니다!”
“그 사이 2루 주자가 홈으로 내달립니다! 아메리칸 리그 위기입니다!”
우익수 이치로가 홈으로 레이저 송구를 시도했지만, 주자의 발이 조금 더 빨랐다.
“세이프!”
주심의 사인과 함께 홈팬들이 길게 탄식했다.
“아아…….”
반면 TV 앞에 모인 내셔널 리그 팬들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좋았어!”
“그래! 바로 그거야!”
1루 더그아웃의 제레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좋게 생각하자고. 이것으로 연장전은 없을 테니까.”
9회를 가볍게 막고 팀이 이겼다면 오늘 MVP는 제레미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퍼시발의 역전타로 제레미의 MVP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직 게임은 끝난 게 아니야. 우리에겐 9회가 남아 있어.”
목소리를 높인 것은 시몬스였다.
아울 또한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9회 말 등장한 투수는 두 사람의 목소리 볼륨을 줄여 버렸다.
“투수가 교체됩니다. 마운드로 올라오고 있는 것은 라니에입니다.”
100마일(161km)에 육박하는 강속구와 88마일(142km)에 이르는 벌칸 체인지업.
인터리그에서 라니에를 상대해 본 타자들은 그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틀렸군.”
“여기서 라니에라니, 저 친구 벌칸 체인지업은 도저히 칠 수가 없더라고.”
“쳇, 홈에서 패하다니, 좋은 소리 듣긴 힘들겠어.”
아메리칸 리그의 타순은 8, 9, 1번.
좋은 타순은 결코 아니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하위이라고 해도 팀을 대표하는 타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대타! 마일스!”
아메리칸 리그의 대타 기용에 내셔널 리그 코치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대타를 쓴다고 해도 라니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야.”
“이대로 경기를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일 겁니다. 물론 대타를 쓴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진 않겠죠.”
8번 타자로 타석에 선 마일스는 인디언스를 이끄는 강타자였다.
올스타 출전은 이번으로 2번째.
‘88마일(142km) 체인지업보다는 100마일(161km) 패스트볼 쪽이 나을 거야.’
그가 100마일 패스트볼이 낫다고 판단한 것은 익숙함 때문이었다.
마일스는 100마일에 육박하는 강속구는 며칠에 한 번씩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88마일 벌칸 체인지업은 라니에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구종이었다.
슉!
패스트볼이 한가운데로 날아왔다.
‘시작부터 정면 승부냐!’
마일스는 빠르게 배트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배트는 허공을 쳤을 뿐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마일스는 초구를 헛스윙한 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피드만 빠른 게 아니야. 공이 떠오르잖아.’
라니에의 패스트볼은 김민이나 로저의 패스트볼처럼 평균 이상의 회전수를 가지고 있었다.
데릭 지터가 더그아웃에서 미간을 좁혔다.
“쉽지 않겠는걸…….”
그는 마일스의 배트 스피드로는 라니에의 라이징 패스트볼을 쳐 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
김민이 미간을 좁혔다.
“벌칸 체인지업을 쓸 타이밍이야.”
라니에의 벌칸 체인지업은 그 그립이 벌칸족의 손가락 인사법과 비슷하다고 해서 벌칸 체인지업이란 이름이 붙었다.
“마일스도 알고 있을 거야.”
벌칸 체인지업은 그립과 공의 움직임, 모두 포크볼과 유사했다.
“포크볼을 치듯 치면 칠 수 있을 테지만…….”
김민이 말끝을 흐린 순간 라니에의 손끝에서 벌칸 체인지업이 뿌려졌다.
슈우욱!
커터나 고속 슬라이더와 같은 구속으로 날아와 포크볼처럼 떨어지는 체인지업.
‘이게 뭐야!’
마일스는 공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제대로 된 타구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툭.
배트에 간신히 걸친 타구가 3루수 방향으로 흘렀다.
“이건 좋은데!”
지터가 주먹을 불끈 쥐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일스의 빗맞은 타구는 3루를 향해 번트를 댄 것처럼 라인을 따라 흘러갔다.
“3루수가 공을 잡아 1루에 송구합니다!”
파앙!
공이 1루수에 도착했지만, 타자는 이미 베이스를 통과한 다음이었다.
“행운의 안타군.”
“타구 속도가 죽는 바람에 1루에서 산 거야.”
아메리칸 리그 선수들은 행운의 여신이 자신들에게 고개를 돌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라니에는 모자를 고쳐 쓰면서 기분을 환기하고자 했다.
‘시즌을 치르다보면 운이 나쁠 때도 있는 법이지. 빗맞은 안타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건 바보짓이야.’
무사 1루.
9번 타자 버나드는 강공이 아닌 번트를 선택했다.
툭!
배트에 맞은 공이 투수 정면을 향했다.
“라니에! 공을 잡아 2루에 던집니다!”
빠르고 강한 송구였지만, 라니에의 송구는 유격수 키를 넘어가고 말았다.
“공이 빠집니다! 1루 주자 3루까지 진루합니다.”
무사 1, 3루.
행운의 안타와 실책으로 만들어진 위기.
아메리칸 리그 타자들은 어떤 타구가 나와도 점수를 뽑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6-4-3의 더블 플레이가 나온다고 해도 1점인가?”
“라니에의 이번 시즌 첫 블론이 올스타전이군.”
“안타 하나만 나와도 게임 끝이야. 동점은 물론이고 역전까지 가볍다고.”
아메리칸 리그 선수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라니에는 1번 타자 이치로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건재함을 알렸다.
“이치로의 배트가 공을 따라가지 못했어.”
“후, 빠르긴 빠르군. 패스트볼만큼은 메이저리그 제일일 거야.”
이치로는 헛스윙한 이후 미간을 좁혔다.
‘100마일(161km) 패스트볼이 떠오르기까지 하다니, 믿기지 않는 공이야.’
라니에는 2번 타자 카이엔마저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아메리칸 리그 타자들을 코너로 몰아세웠다.
“이거…… 이대로 끝나는 건가?”
아메리칸 리그 더그아웃은 조금 전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2사 1, 3루.
두 명의 타자가 아웃 되는 동안 주자들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시몬스가 해낼 수 있을까?”
“글쎄.”
포사다는 삼진을 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안타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배터 박스로 향하는 시몬스.
그를 향해 김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초구! 무조건 초구야!”
라니에는 김민의 목소리를 듣곤 미간을 좁혔다.
‘초구를 노린다고 해서 칠 수 있을까?’
그는 패스트볼 그립을 잡았다.
시몬스는 자신이 꺾고자 하는 투수가 한 조언을 마음에 새겼다.
‘초구를 놓치면 끝이라는 뜻인가? 아니지…… 킴의 방금 한마디는 라니에에게 들으라고 한 것인가?’
그는 라니에가 역으로 초구부터 벌칸 체인지업을 던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라니에 같이 자존심 강한 투수는 그 말을 들으면 더욱 패스트볼을 던지려고 할 거야.’
시몬스는 김민이 자신에게 유리한 조언을 했다고 생각했다.
‘좋아. 초구는 무조건 패스트볼이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초구에 모든 것을 건다.’
배트를 바짝 세우자 패스트볼이 날아왔다.
슈우우욱!
‘빠르다! 하지만 칠 수 있어!’
그는 라니에의 패스트볼이 빠르긴 하지만 로저의 패스트볼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딱!
손에서 느껴진 감각은 나쁘지 않았다.
‘좋은 느낌이군.’
멀리 날아간 공은 그대로 펜스를 때렸다.
탁!
“주자들 모두 홈으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2사였기 때문에 주자들의 스타트가 빨랐다.
1루 주자가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진했다.
“공이 홈으로 연결됩니다!”
주자와 포수가 홈에서 크게 격돌했다.
촤아아악!
흙먼지가 가라앉으려는 순간, 주심이 두 팔을 두 번 길게 벌렸다.
“세이프! 세이프!”
8-7 역전.
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몬스! 나이스 배팅!”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고!”
“아메리칸 리그 만세!”
시몬스의 끝내기 2루타.
특급 마무리 라니에는 결국 올스타전에서 시즌 첫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고 말았다.
시몬스는 이 끝내기 2루타로 2003 올스타전 MVP를 수상했다.
그는 수상 소감을 말하는 도중 김민을 언급했다.
“킴의 조언이 끝내기 안타를 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리포터가 그에게 마이크를 내밀며 물었다.
“어떤 조언이었습니까?”
“초구를 노리라는 것이었죠. 킴의 말대로 라니에는 한가운데로 패스트볼을 던졌고, 전 그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데릭 지터는 김민이 한가운데 초구를 만들어 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라니에는 분명 킴의 외침을 들었어. 자존심 강한 라니에라면 공을 코너로 뺄 수 없었을 거야. 킴의 한마디, 그게 라니에의 선택지를 줄였어.’
그는 머리로 하는 야구는 김민을 따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