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2003 시즌 전반기 01
4월이 끝나자마자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이달의 선수와 이달의 신인이 발표되었다.
내셔널 리그 이달의 선수는 배리 본즈.
배리 본즈는 2003년에도 인간계로 내려올 생각이 없었다.
그는 24경기에 출전 타율 0.421과 7홈런 23타점을 적립했다.
“‘본즈의 대활약 덕분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누르고 지구 1위를 수성할 수 있었다’. 그래 이런 타자가 있으면 지구 1위를 하는 게 당연하지.”
클락이 미간을 좁히며 록튼에게 물었다.
“내셔널 리그 이달의 신인은 누구지?”
록튼은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콜먼이야.”
“콜먼?”
“5경기 나와서 4승을 올린 투수라고. 평균자책점은 2.77, 나쁘지 않아.”
클락이 머리를 긁적이며 록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콜먼, 얼굴이나 보여 줘.”
록튼은 마우스를 움직여 콜먼의 투구 영상을 보여 주었다.
젊은 투수가 힘차게 공을 뿌렸다.
클락은 콜먼의 영상을 보곤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아, 저 친구. 몇 번 본 적이 있어.”
“내셔널 리그에서 가장 핫한 신인인데 ‘몇 번 본 적이 있어.’라니…… 클락! 다른 팀 선수들에게 너무 관심이 없는 것 아니야?”
클락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하고 리그가 다르잖아.”
“인터리그는?”
“거리가 멀어서 아마 불가능할걸?”
클락은 이번 시즌 내내 콜먼과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메리칸 리그는 어때?”
“지금 확인해 보려고 했어.”
록튼이 마우스를 움직이자 화면이 내셔널 리그에서 아메리칸 리그 수상자로 넘어갔다.
“뭐야. 킴이 아니네.”
김민은 4월 한 달 동안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00을 기록했다.
이달의 선수를 수상했던 지난 시즌보다 더욱 좋은 성적이었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는 김민이 아닌 다른 선수의 얼굴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시즌 25승 페이스로도 월간 MVP를 따낼 수 없다는 건가?”
아메리칸 리그 이달의 선수는 뉴욕 양키스의 제레미였다.
“제레미? 이건 양키 프리미엄이라고.”
“사무국이 양키스를 띄우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레미에게 상을 준 거야.”
뒤쪽에서 누군가 클락의 말을 받았다.
“같은 값이면 제레미, 이상할 건 없어.”
클락이 고개를 돌리자 김민이 다가왔다.
“킴!”
“아메리칸 리그 4월은 제레미라면서?”
“맞아.”
김민이 차분한 목소리로 록튼에게 물었다.
“그래 이달의 신인은 누구야?”
록튼이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오클랜드의 젝슨이야.”
“또 오클랜드인가?”
김민은 내심 같은 팀의 스나이더가 이달의 신인을 수상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스나이더가 후보에 없네.”
클락의 물음에 록튼이 스크롤을 내렸다.
“스나이더는 7위야. 타율이 조금 낮아서 평가가 떨어진 모양이야.”
록튼은 이달의 신인을 확인한 뒤 팀 순위로 마우스를 옮겼다.
“팀 순위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김민과 윌리엄의 대활약에 힘입어 18승 7패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승률은 0.720으로 와일드카드를 획득했던 지난 시즌보다 좋았다.
그러나 4월 마지막 날 동부지구 1위를 기록한 팀은 뉴욕 양키스였다.
25경기에서 20승 5패 승률 0.800
아메리칸 리그 전체 1위는 물론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1위였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이었다.
“우리 팀은 여전히 2위군.”
록튼이 혀를 차며 말했다.
“중부지구와 서부지구 팀들을 상대로 3번 연속 스윕. 마지막 2주 동안 11연승. 따라잡을 수 없는 게 당연해.”
“아무리 양키스라도 이건 믿기지 않는 성적이야.”
2주 정도면 몰라도 월간 성적이 8할.
클락과 록튼은 시즌 시작과 동시에 우승팀이 정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민은 아직 지구 우승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양키스도 언젠가는 텐션이 떨어지기 마련이야. 우리가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8월쯤에는 승부를 걸어볼 수도 있어.”
클락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흠, 킴의 말대로 우리 팀의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기회는 올 거야. 하지만 5월 성적이 4월에 미치지 못하면 양키스와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기회조차 사라지고 만다고.”
김민이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양키스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우선 시애틀부터 잡아야 해.”
그의 시선은 다음 시리즈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5월 첫 번째 주.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시애틀 매리너스를 홈에서 상대했다.
“시애틀의 선발 투수는 가르시아입니다.”
가르시아는 2년 전처럼 리그를 호령하는 에이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도 충분히 완봉승을 따낼 수 있는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가르시아와 맞서는 탬파베이의 선발 투수는 부르스입니다.”
부르스는 이번 시즌 5선발 경쟁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해 선발 로테이션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4월 내내 부르스는 4경기에 출전해 2승 2패 평균자책점 4.56을 기록했다.
“예전의 부르스라면 모를까? 지금의 부르스는 가르시아의 상대가 아니야.”
“맞아. 시리즈 전체는 몰라도 오늘 경기만큼은 시애틀이 잡을 가능성이 커.”
기자들은 대부분 시애틀과 가르시아의 승리를 점쳤다.
실제로 시애틀은 1회 초 2점을 뽑으면서 앞서 나갔다.
“시애틀 동부지구 2위 탬파베이를 물고 늘어집니다!”
“시애틀도 이번 시리즈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번 시리즈를 루징으로 마치면 1위 오클랜드와 승차가 더욱 벌어지게 됩니다.”
빌리 빈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이번 시즌도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 1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우익수 윌리엄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윌리엄의 좋은 수비입니다.”
“부르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플레이군요. 경기가 끝난 뒤, 부르스가 윌리엄에게 한턱 쏴야 할 것 같습니다.”
부르스는 예전의 압도적인 피칭 대신 시프트를 선택했다.
‘1회 실점은 시프트를 벗어나는 타구가 많았기 때문이야.’
그는 이닝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타자들의 타구가 평균에 수렴하기 때문에 시프트가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야.’
2회 초는 그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3명의 타자 중 두 명의 타구가 시프트에 걸렸고, 나머지 한 명은 주루 미스로 아웃이 되고 말았다.
“부르스가 2회를 실점 없이 막았군.”
“이번에는 수비 도움이 컸어.”
“그렇다고 해도 막은 건 막은 거야.”
3회 초.
부르스가 오늘 경기 처음으로 삼자범퇴를 성공시켰다.
“부르스,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F 스포츠의 코넬이 부르스의 피칭을 보며 말했다.
“지난 시즌 말부터였던가? 부르스의 피칭에 관록이 붙은 느낌이야.”
“관록이라고?”
“구속은 느리지만 공에 힘이 있어 보여.”
전체적인 구위는 부상 전보다 못했다.
그러나 운영만큼은 부상 전보다 더욱 단단해진 부르스였다.
4회 초.
부르스가 다시 한번 시애틀 타선을 틀어막았다.
“1사 1, 2루를 실점 없이 막아 냈어.”
“이번 회는 부르스 혼자 힘으로 막은 게 아니야. 브라이튼의 도움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야.”
2년 차 유격수 브라이튼은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로 홈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부르스는 그렇고. 탬파베이 타선은 가르시아 상대로 무기력하군. 오늘은 완봉으로 끝낼 모양인가?”
“조금 더 두고 봐야지. 이제 막 한 타순이 돌았을 뿐이니까.”
4회 말.
선두 타자로 나온 브라이튼이 안타로 첫 출루를 신고했다.
“브라이튼이 슬라이더를 정확히 노려서 안타를 만듭니다.”
“좋은 수비 뒤에 좋은 타격. 야구는 이렇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어진 연속 안타.
“케니히에 이어 윌리엄도 안타를 때려냅니다.”
“주자 만루군요.”
무사 만루.
어떤 투수도 이 상황에서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울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무사 만루에 4번 타자. 가르시아, 갑자기 경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트로피카나 필드를 가득 채운 팬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가르시아를 압박했다.
“고! 고! 레이스!”
“고! 고! 레이스!”
잠시 뒤, 날카로운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따악!
아울의 대형 2루타.
베이스를 채우고 있던 주자들이 모두 홈에 들어왔다.
“아울이 주자를 모두 불러들입니다! 탬파베이! 순식간에 경기를 뒤집습니다!”
“이것이 이번 시즌 탬파베이 타선의 힘입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이후에도 공격을 계속해서 스코어를 5-2까지 벌렸다.
“가르시아, 좌익수 플라이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고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하지만 이번 4회 5실점을 하고 말았습니다.”
폴만 감독은 시애틀의 해가 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가르시아도 이번 시즌까지인 것 같군.”
선두 타자 이치로가 뛰어난 활약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지난해보다 못한 모습으로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었다.
폴만 감독은 이번 시즌만큼은 플레이오프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6회 다시 1점을 내주었지만, 부르스는 7회까지 버티며 103구를 투구했다.
7이닝 3실점 6피안타 2사사구.
퀄리티 스타트를 넘어서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7이닝 3실점 이하).
이반 감독은 부르스의 투구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시즌과 비슷하지만 여러 면에서 달라진 부분이 보이는군.”
블렛소 코치가 그 달라진 부분을 언급했다.
“부르스는 이번 시즌은 지구력이 좋아졌습니다. 덕분에 경기 후반 실점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시프트를 사용하는 능력과 체인지업이 발전했습니다.”
이날 경기는 부르스의 호투 덕분에 탬파베이가 7-4로 승리를 가져갔다.
“나이스 플레이. 다들 수고했어.”
“하지만 오늘도 승차는 좁혀지지 않았어.”
양키스는 텍사스를 상대로 11-0 완승을 거두면서 승수를 21승으로 늘렸다.
김민은 이번 시즌 양키스가 자신이 알고 있는 양키스 중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다.
‘메이저리그 역사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이번 시즌 양키스는 정말 강해.’
그는 역사가 바꾼 것을 아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역사가 그대로 흘러갔다면 메이저리그에 데뷔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까.’
김민은 차분히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다음 날.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시애틀과 시리즈 2차전을 가졌다.
“오늘은 탬파베이의 넉넉한 승리군.”
“시애틀로서는 위닝 시리즈를 내주는 날이야.”
“시애틀 선발은 밥 퓨리지?”
“맞아.”
밥 퓨리는 시애틀의 신인 투수로 이번 시즌 3선발의 중임을 맡고 있었다.
“퓨리로 상대가 될 리 없지.”
“내 생각도 그래. 오늘 경기는 탬파베이 압도적인 승리야.”
기자들이 탬파베이의 압도적 승리를 예상한 것은 탬파베이 선발 투수가 김민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이기면 20승이군.”
록튼이 미트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겨서 20승을 채워야지.”
탬파베이가 20승 고지를 밟는다면 아메리칸 리그에서 양키스에 이어 2번째로 20승 고지에 오르는 것이었다.
김민이 불펜 마운드로 향하며 말했다.
“록튼 그거 알아?”
“이치로의 컨디션?”
“사람들의 기대가 점점 커진다는 것 말이야.”
록튼이 피식하며 김민의 말을 받았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잖아. 완투승하면 완봉승을 보고 싶어 하고, 완봉승을 하면 노히트 게임, 노히트 게임 다음에는 퍼펙트 게임, 퍼펙트 게임 이후에는 더 황홀한 걸 보고 싶어 하지. 킴, 세상은 언제나 그런 거야.”
김민이 글러브를 들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에 끌려다니면 곤란해.”
“균형을 잡겠다는 말인가?”
“그 비슷한 거야. 내 루틴을 지키면서 이번 시즌을 치를 생각이야.”
김민의 목표는 리그 MVP가 아닌 월드시리즈 우승이었다.
“그래도 지금 성적이면 충분히 사이영상은 받게 될 거야. 제레미가 삐끗하면 시즌 MVP에 도전할 수도 있을 테고.”
록튼이 자리를 잡자 김민이 그립을 고쳐 잡았다.
“시작하지.”
“오케이.”
미트에 꽂힌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팡! 팡!
록튼이 미트에서 공을 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스 볼!”
김민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계속해서 공을 던졌다.
팡! 팡!
록튼은 김민의 공을 받으면서 생각했다.
‘좋은 컨디션이야. 이런 컨디션이라면 완봉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
그는 김민이 자신의 루틴을 지키기만 해도 사이영급 투수라고 생각했다.
‘몇십 년 뒤에 손자나 손녀를 보며 이렇게 말하겠지. 할아버지가 킴의 공을 받았다고 말이야.’
록튼은 김민이 레전드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 * *
1회 초.
주심의 경기 시작 사인과 함께 김민이 투구를 시작했다.
탁!
강하게 맞은 타구가 3루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이치로는 팀 성적과 상관없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치로가 초구를 노렸지만 라인을 벗어났습니다.”
“어제 경기에서 4타수 2안타. 시즌 타율은 0.351입니다. 이번 시즌 이치로는 코버, 지터와 함께 최고의 리드오프 자리를 다투고 있습니다.”
도루에서는 코버 타율에서는 이치로였다.
김민은 로진백을 만진 뒤 2구를 던졌다.
슉!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향하는 슬라이더.
이치로가 뒤늦게 배트를 움직였지만 공은 이미 미트에 들어온 다음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카운트 0-2.
김민은 바로 승부구를 던졌다.
슉!
낮은 코스에서 솟아오르는 공.
이치로는 이 공을 간신히 커트해냈다.
“파울!”
김민은 새 공을 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삼구삼진은 역시 힘들어.’
그는 4구로 바깥쪽 체인지업을 선택했다.
슈욱!
낮게 떨어지는 공에 이치로의 배트가 끌려 나왔다.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유격수 방향으로 흘렀다.
“유격수!”
록튼의 콜에 브라이튼이 발을 빨리했다.
“맡겨 줘!”
브라이튼은 이치로가 리그에서 손꼽히는 빠른 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빗맞은 땅볼이지만 여유로울 틈이 없어. 맨손으로 처리해야 해.’
빗맞은 땅볼이었지만, 맨손으로 처리하기에는 속도가 제법 빨랐다.
브라이튼은 심호흡을 하곤 손을 뻗었다.
‘할 수 있어.’
탁!
손에 공이 감겼다.
‘됐어!’
오른손에 들어온 공을 그대로 1루에 뿌렸다.
팡!
아울의 미트에 공이 들어간 순간 1루심이 오른손을 들었다.
“아웃!”
김민은 이치로의 아웃을 확인한 뒤 브라이튼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브라이튼! 최고의 플레이였어!”
브라이튼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킴! 땅볼은 언제든 내게 맡겨달라고.”
그는 글러브를 툭 치곤 아울에게 공을 받았다.
“이치로가 1루에서 아웃되었습니다. 킴, 오늘도 시작이 나쁘지 않습니다.”
“이번 시즌 킴은 지난 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이슈가 되질 않는군요.”
“킴에게 이 정도 성적은 당연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한 가지 이유일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킴의 완봉승에 놀라지 않습니다.”
김민은 2번 마이크와 3번 덴을 차례로 처리하곤 첫 번째 이닝을 마쳤다.
“킴이 깔끔하게 1회 초 수비를 끝냅니다.”
“오늘도 킴은 좋아 보입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의 투구수를 체크하곤 미간을 좁혔다.
‘12개. 이번 시즌 평균적인 투구수군. 하지만 지난 시즌보다 투구수가 많이 늘었어.’
김민은 이퓨즈와 투심 패스트볼을 연마해 투구수를 줄이고자 했다.
그러나 투구수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김민에게 다가갔다.
“킴, 이퓨즈 말이야. 당분간 던지지 않는 게 좋겠어.”
김민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팁(투구 습관)을 발견한 겁니까?”
“아니, 팁과는 상관없어.”
블렛소 코치가 말을 덧붙였다.
“지난 한 달 동안 지켜본 결과 이퓨즈가 패스트볼의 위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 최근 투구수가 늘어난 것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
김민은 블렛소 코치의 말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이퓨즈가 패스트볼의 위력을 감소시켰다는 말씀입니까?”
블렛소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단순한 내 생각만이 아니야. 전력분석팀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킴의 이번 시즌 패스트볼의 회전수가 평균적으로 4%가량 줄어들었어.”
4%라면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2000rpm일 때, 80rpm이 줄어든 것이었다.
“라이징 패스트볼은 아직 괜찮지만, 카운트를 잡는 패스트볼이 많이 무뎌졌어.”
김민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째서 그런 결과가…….”
“이퓨즈는 예민한 공이야. 섬세한 감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공을 컨트롤해야 하지. 패스트볼은 그 반대야. 기본 적인 제구에는 신경을 써야겠지만, 패스트볼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하게 때리는 공이야.”
김민은 블렛소 코치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부드러움을 추구한 나머지 강함을 지키지 못했단 말씀이군요.”
“이해가 빠르군.”
김민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패스트볼의 위력을 회복할 때까지 이퓨즈를 쓰지 않겠습니다.”
그는 패스트볼이 모든 투구의 중심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해도 패스트볼이 중심을 잡아 주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킴, 다음 이닝…… 패스트볼만으로 마무리해 보지 않겠나?”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이 지난가을과 같은 패스트볼을 던지길 원하고 있었다.
‘다소 무리한 요구이지만 킴이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서부지구 2위 팀의 4, 5, 6번 타자.
김민은 블렛소의 숙제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피하는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