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보스턴의 리드오프 04
“코버, 그래도 이번 타석은 좋았어.”
노라는 코버가 피치아웃으로 아웃 되긴 했지만, 좋은 승부를 펼쳤다고 생각했다.
“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투수야. 솔직히 말해서 필사적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었어.”
“리그 최고의 투수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것은 당연해.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4회와 5회, 두 팀은 각각 1명씩 주자를 내보냈지만, 득점과는 연결을 시키지 못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김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반에 접어들면서 선발 투수들의 구위가 더 살아나고 있습니다.”
“페드로는 체인지업이 킴은 슬라이더가 좋군.”
4회 이후 김민은 고속 슬라이더로 주 무기를 바꾸었다.
코버는 김민의 슬라이더를 보곤 혀를 찼다.
“저런 슬라이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그런 느린 패스트볼을 던졌던 거지?”
“오늘은 많이 던지고 있지 않지만 킴의 주 무기는 스플리터야. 그 느린 패스트볼은 스플리터의 위력을 키워 준다고.”
코버는 스플리터가 좋다고 해도 결국 스플리터는 스플리터라고 생각했다.
“스플리터는 살짝 떨어지는 공이잖아. 3루로 굴리고 뛰면 그대로 세이프 아니야?”
“말이 쉽지. 잘못하면 헛스윙이라고.”
“킴의 스플리터는 그 정도까지 떨어지는 건가?”
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구위가 좋을 때는 스플리터가 아니라 포크볼처럼 느껴지기도 해.”
코버가 글러브를 들며 말했다.
“구위가 좋을 때라…… 노라, 오늘은 어느 정도야?”
“85%.”
대답을 마친 노라가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향했다.
코버는 노라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85%라. 이기긴 쉽지 않겠지만, 100%인 녀석과 붙고 싶군.’
6회 초.
탬파베이 선두 타자 케니히가 사각지대에 떨어지는 행운의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갔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선두 타자가 1루에 출루합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여기서 1점을 더 뽑을 수 있다면 김민의 어깨를 가볍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찬스가 될 수도 있어. 집중해야 해.”
그는 이반 감독에게 히트 앤드 런(치고 달리기)을 건의했다.
“코스타, 여기서 작전을 걸자는 말인가?”
“페드로는 그냥 넘을 수 있는 투수가 아닙니다.”
“흠…….”
이반 감독은 잠시 망설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게.”
3번 타자 윌리엄은 히트 앤드 런 사인을 보곤 배트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어떻게든 초구를 때리라는 말이군.’
페드로는 김민과 마찬가지로 높은 비율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초구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한다면 때리는 게 맞아. 페드로를 상대로 히트 앤드 런, 나쁜 작전은 아닌 것 같군.’
윌리엄이 배트를 세우자 페드로가 셋 포지션에 들어갔다.
‘온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남과 동시에 1루 주자 케니히가 스타트를 끊었다.
‘반드시 쳐야 해!’
윌리엄은 집중력을 최대로 발휘해 공을 쫓았다.
‘떠, 떨어진다.’
크게 안쪽으로 휘어진 공은 윌리엄의 배트를 뿌리치고 포수 미트에 들어갔다.
팡!
그렉텐은 헛스윙한 공을 잡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그렉텐 2루에 송구합니다!”
유격수 노라가 그렉텐의 송구를 잡았지만, 케니히의 발은 이미 베이스를 터치한 다음이었다.
“케니히! 도루에 성공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단독 도루보다는 히트 앤드 런 사인이 나온 것 같습니다.”
호이스 감독은 케니히의 도루 성공을 보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번에는 탬파베이가 운이 좋았군. 페드로의 초구가 써클 체인지업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는 페드로가 패스트볼을 던졌다면 충분히 2루에서 주자를 잡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윌리엄의 생각은 반대였다. 그는 페드로가 패스트볼을 던졌다면 자신이 그 공을 때려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뭐, 카운트를 하나 손해 봤지만, 주자를 2루까지 보냈어. 나쁘지 않아.’
윌리엄의 다음 목표는 주자를 3루까지 보내는 것이었다.
‘적시타가 나오면 좋지만, 일단 주자를 3루까지 보내고 생각하자.’
페드로는 2루에 주자가 있었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주자가 2루에 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타자를 다 잡아내면 끝이잖아.’
그는 강하게 공을 뿌렸다.
슉!
96마일(154km)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패스트볼이다!’
윌리엄이 배트를 아래로 내리며 공의 윗부분을 내리눌렀다.
‘무브먼트가 심한 패스트볼은 이렇게 누르는 수밖에 없어.’
팍!
바운드와 함께 공이 1, 2루 사이로 방향을 잡았다.
“2루!”
보스턴 수비수들은 그렉텐의 콜 플레이에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3루는 늦었어! 1루!”
2루수 코버는 콜에 따라 1루에 공을 던져 윌리엄을 잡아냈다.
“윌리엄 1루에서 아웃입니다. 그 사이 2루 주자가 3루까지 진출했습니다.”
“탬파베이 아웃 카운트를 하나 내줬지만, 주자를 3루에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1사 3루, 득점 찬스입니다.”
1사 3루.
땅볼이든 외야 플라이든 어느 하나만 나와도 점수를 뽑을 수 있는 상황.
“아울이라면 충분히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4번 타자의 능력을 믿었다.
하지만 이반 감독은 아직 득점을 확신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페드로야. 어떤 타자든 삼진을 잡을 수 있는 투수라고. 희생타를 머릿속에 그린다면 당할 가능성이 커.”
아울도 이반 감독과 생각이 같았다. 그는 희생타를 노리고 강하게 배트를 휘두르기 보다는 제대로 된 배팅으로 공을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스턴의 키스톤 콤비는 수준이 높아. 어설픈 땅볼로는 타점을 만들어 낼 수 없어. 외야로 공을 보내야 해.’
그는 심호흡을 한 뒤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4번 타자 아울, 페드로의 초구를 기다립니다.”
페드로는 포수와 사인을 교환한 뒤 자신 있게 공을 던졌다.
슉!
안쪽으로 들어가는 패스트볼.
아울은 그 공에 크게 헛스윙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이반 감독은 크게 허공을 가른 배트를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 코스타, 자네가 가 봐.”
타석에 선 타자를 불러 주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한 만큼 이것저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코스타 타격 코치가 그라운드로 나가 아울을 불렀다.
“아울,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
아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노리던 공이 초구로 들어와서 흥분하고 말았습니다.”
“페드로의 패스트볼은 무브먼트가 심해, 힘을 빼고 배트에 가볍게 맞춘다는 느낌으로 타격해.”
“알겠습니다.”
배터 박스로 돌아간 아울이 배트를 세웠다.
‘1사 주자 3루. 여기서 타점을 올리지 못한다면 4번 타자로서 자격이 없어.’
슉!
빠른 공이 안쪽 코스로 날아왔다.
‘패스트볼!’
배트가 공을 따라 움직였다.
아울은 이번만큼은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트는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마지막 순간 공이 중력을 벗어난 것처럼 떠올랐다.
‘페드로의 공도 떠오른다고?’
아울은 미간을 좁혔다.
“카운트 0-2, 페드로가 앞서 나갑니다.”
“아울, 패스트볼에 타이밍이 맞지 않고 있습니다. 조금 더 어깨의 힘을 빼야 합니다.”
김민은 불펜에서 그라운드로 고개를 돌렸다.
“주자 3루인가? 타자는 누구지?”
그의 시선에 아울이 잡혔다.
“아울이라면 할 수 있어.”
김민은 팀의 4번 타자를 믿었다.
“카운트 0-2에서 페드로가 투구에 들어갑니다.”
아울은 배트를 들며 숨을 내쉬었다.
“후…….”
여기서 그가 아웃 되면 상황은 2사 3루로 변했다.
2사 3루는 안타나 상대 실책이 아니면 득점이 힘들었다.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야 해.’
슉!
바깥쪽 공.
아울은 이번에도 배트를 냈다.
‘떨어지는 체인지업이다.’
페드로의 써클 체인지업은 세 방향으로 변하기 때문에 배팅 포인트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집중하자.’
아울의 배트는 떨어지는 공을 따라 움직였다.
‘놓치지 않는다!’
마지막 순간.
아울의 배트가 공을 때려냈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홈플레이트 앞쪽에서 튀어 올랐다.
파악!
‘외야로 공을 보내는 건 실패야.’
아울은 고개를 숙인 채 1루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홈!”
그렉텐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공은 홈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타구는 페드로의 옆을 통과해 2루 베이스로 향하고 있었다.
촤악!
먼지와 함께 3루 주자 케니히가 홈에 들어왔다.
“주자 홈에서 세이프!”
2루 주자 코버는 공을 잡은 뒤 침착하게 1루에 송구했다.
“코버가 멋진 송구로 타자를 잡아냅니다. 하지만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3루 주자 케니히가 홈에 들어오면서 추가점을 뽑는 데 성공했습니다.”
탬파베이 2:0 보스턴
보스턴 팬들은 이 점수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추가점이 나오고 말았어.”
“킴을 상대로 2점인가?”
“이기기 위해서 3점이 필요하다고.”
김민을 상대로 3점을 뽑아내는 것은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하는 것보다 힘들었다.
“페드로 5번 타자 그렉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이번 이닝을 마감합니다.”
페드로는 마운드에서 내려오며 슬쩍 탬파베이 더그아웃을 살폈다.
‘저 녀석들…… 마치 플레이오프처럼 플레이하고 있어.’
그는 아울과 케니히의 전력질주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6회 말.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두 타자는 코버였다.
“코버, 오늘 세 번째 타석입니다.”
“두 번째 타석에서 내야 안타를 뽑아내 킴을 상대로 5할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코버는 한두 타석은 큰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좋은 승부였다고 말하기에는 표본이 너무 적어. 4타수 2안타 정도면 괜찮을 거야.’
두 번째 타석에서 내야 안타를 뽑아냈기 때문일까?
약간이나마 여유가 있어 보였다.
슉!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
코버는 날카로운 스윙으로 그 공을 노렸다.
‘1루 라인을 노린다.’
그러나 공은 배트를 그대로 통과해 미트에 꽂혔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코버는 마지막 순간 공이 떠오른 것을 보곤 혀를 찼다.
‘라이징 패스트볼인가? 낮은 코스에서도 떠오를 수 있는 모양이군.’
그는 김민의 라이징 패스트볼을 공략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레벨 스윙이라면 칠 수 있어.’
그는 스윙 궤적을 바꿔 김민의 패스트볼을 노렸다. 하지만 두 번째 공은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연속 헛스윙.
코버가 배트를 기댄 채 장갑을 고쳐 꼈다.
‘노리고 있는 공은 던져 주지 않는다는 건가? 독심술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군.’
그는 다음 공을 예측하기 가장 힘든 투수가 김민이라고 생각했다.
‘자, 승부구는 어떤 공이냐.’
타이밍을 뺏는 느린 공이라면 배트 컨트롤로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그가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것은 높은 코스로 들어오는 패스트볼이었다.
‘하이 패스트볼, 그것만 아니면 칠 수 있어.’
김민은 상대의 자세를 보고 구종을 결정했다.
‘승부를 원한다면 해 주지.’
슉!
공이 바깥쪽 낮은 코너를 향했다.
‘높은 코스는 아니다!’
코버가 배트를 내리며 몸을 숙였다.
‘1, 2루 사이로 뺄 수 있어.’
생각보다 빠르지 않은 패스트볼.
그는 충분히 밀어 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트가 홈플레이트에 이르렀을 때 공이 급격히 떨어졌다.
‘스, 스플리터!’
배트가 허공을 친 순간 공이 미트에 들어왔다.
팡!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코버는 삼진을 당했음에도 미소를 지었다.
‘이게 바로 보스턴 친구들이 두려워하던 킴의 진짜 스플리터군.’
그가 고개를 록튼에게 돌렸다.
“몇 %지?”
록튼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스플리터.”
록튼이 미트에서 공을 빼며 짧게 대답했다.
“90%?”
“좋은 공이군.”
코버는 더 이상 김민을 얕잡아 보지 않았다.
“보스턴의 2번 타자는 노라입니다.”
“노라도 여기서 안타 하나 칠 때가 됐죠.”
해설은 노라의 안타를 예상했지만, 노라의 타구는 우익수 쪽으로 높이 뜨고 말았다.
“윌리엄이 공을 잡았습니다.”
우익수 플라이 아웃.
노라는 오늘 경기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코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야. 내가 가장 풀리지 않고 있어.’
보스턴의 괴물 라파엘은 이번에도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탬파베이 불펜 투수 에드워드가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킴 말이야. 교묘하게 타순을 조정하는 것 같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야? 타순을 조정하다니.”
“2사 후에 라파엘이 들어서게 타순을 조정하는 것 같단 말이지.”
에릭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생각이 지나쳐. 아무리 킴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어. 일단 타순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주자를 내보내야 하는데. 킴은 주자를 내보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카운트가 1-1으로 바뀌었다.
“킴,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라파엘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김민은 록튼으로부터 공을 건네받곤 모자를 벗었다.
‘6회 말 마지막 타자. 7, 8, 9회가 남았으니…… 9회에 또 만나는 건가?’
그는 모자를 다시 쓰곤 사인을 냈다.
- 안쪽 패스트볼.
록튼이 미트를 두드리며 사인을 수락했다.
“킴,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빠른 공이 배터 박스 안쪽을 노렸다.
라파엘은 안쪽 공을 기다렸다는 듯 퍼 올렸다.
‘그린 몬스터를 넘겨 주마!’
따악!
높이 솟아오른 하얀 공.
하지만 그 공은 멀리 뻗지 못한 채 좌익수 케니히의 글러브에 들어가고 말았다.
“라파엘, 킴의 구위에 눌린 것일까요? 좌익수 플라이로 돌아섭니다.”
라파엘의 타구가 펜스를 넘지 못한 것은 구위에 눌린 것이 아니라 배팅 포인트가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떠오르는 공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군.”
호이스 감독의 말에 타격 코치가 미간을 좁혔다.
“라파엘은 아마 스플리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스플리터라. 그렇군. 코버가 삼진당했던 그 공을 노린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호이스 감독은 김민의 무기가 지나칠 정도로 많다고 생각했다.
‘슬라이더, 스플리터, 커터, 커브, 체인지업, 고속 슬라이더, 이퓨즈, 라이징 패스트볼…… 킴은 이 많은 공을 언제 다 배운 걸까?’
하나의 구종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적어도 한 시즌은 필요했다.
하지만 김민은 메이저리그에서 겨우 2시즌을 보냈을 뿐이었다.
‘한 구종을 배우는 데 한 달이면 충분한 천재인가?’
김민은 천재가 아니었다.
그는 이퓨즈를 제외한 모든 구종을 배운 채 과거로 돌아왔을 뿐이었다.
7회 초.
페드로는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곤 10K 경기를 완성했다.
“페드로! 오늘도 두 자릿수 삼진을 기록합니다.”
“3경기 연속 10K 이상이군요.”
페드로는 오늘 10K를 더해 아메리칸 리그 삼진 1위를 질주했다.
“페드로가 있는 한 킴의 트리플 크라운은 힘들겠군.”
“킴은 트리플 크라운에 신경을 쓰지 않아. 그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오직 팀의 우승뿐이야.”
탬파베이 동료들은 김민이 무엇을 위해 뛰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7회 말.
김민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4, 5, 6번을 단 7개의 공으로 막아 냈다.
“킴! 투구수를 크게 절약하며 이번 이닝을 마칩니다.”
“구위가 떨어진 후반에 이렇게 효율적인 피칭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김민의 투구수는 68개.
충분히 9회까지 던질 수 있는 투구수였다.
반면 페드로는 삼진을 많이 잡긴 했지만 투구수가 89개로 9회를 기약하기 힘들었다.
예상대로 페드로는 8회 초를 끝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8이닝 3파인타 2실점 12K.
상대가 김민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승리 투수가 될 수 있는 투구 내용이었다.
8회 말.
김민은 레드삭스 하위 타선을 상대로 더욱 투구수를 줄였다.
“공 5개로 한 이닝이 끝나는군.”
“첫 타자를 공 하나로 잡아낸 게 컸어.”
호이스 감독은 김민의 투구수를 확인하곤 고개를 내저었다.
“9회까지 100개도 못 채우는 건가?”
김민의 목표는 100개가 아닌 90개 안쪽에서 경기를 끝내는 것이었다.
9회 말.
김민은 코버와 노라 그리고 라파엘을 다시 만났다.
‘셋 모두 만만치 않은 상대야.’
그는 코버를 유격수 땅볼로 잡아낸 뒤, 노라에게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맞았다.
“1사 1루. 타석에는 라파엘입니다.”
큰 것 하나면 동점까지 가능한 상황.
김민은 깊게 심호흡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그는 소매로 땀을 닦았다.
‘할 수밖에 없잖아.’
라파엘과 승부는 쉽지 않았다.
딱!
경쾌한 타구가 3루 라인 옆에 떨어졌다.
“파울!”
라파엘은 믿기지 않는 배트 스피드로 파울을 연속해서 만들어 냈다.
“카운트 1-2, 그러나 지금까지 킴이 던진 공은 7개에 달합니다.”
“9회에 투구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건 킴의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민은 파울이 나고 있는 이유가 자신의 체력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라파엘의 집중력이 올라갔어.’
라파엘은 단순히 약을 했기 때문에 뛰어난 타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 기본적으로 라파엘은 뛰어난 타자야.’
그는 그립을 고쳐 잡곤 강하게 공을 밀었다.
‘이게 통하지 않는다면 그냥 걸어서 내보는 게 나을 거야.’
슈우욱!
빠른 공이 높은 코스로 날아갔다.
95마일(153km) 하이 패스트볼.
그러나 라파엘은 그 공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떠오르는 공이라고? 내가 언제까지 이 공에 당할 것 같아!’
라파엘의 배트가 힘으로 라이징 패스트볼을 밀어냈다.
딱!
“강한 타구! 하지만…….”
라파엘이 친 타구는 원 바운드로 1루수 아울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아울은 1루 베이스를 밟은 뒤 그대로 2루에 공을 던졌다.
“아울의 좋은 수비! 더블 플레이로 오늘 경기가 끝납니다.”
라파엘은 1루 베이스 앞에서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더블 플레이라고……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야.”
주루 코치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시프트에 걸린 것뿐이야. 라파엘,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야.”
9이닝 4피안타 8K 무사사구 무실점.
김민은 완봉으로 페드로와 맞대결에서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