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보스턴의 리드오프 01
첫 2주가 끝났을 때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순위는 아메리칸 동부지구 1위.
아메리칸 리그 전체로 따지면 2위, 메이저리그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2년 전과 비교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성장이었다.
“시즌 초반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가 무서운 페이스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2위 뉴욕 양키스마저 압도하는 게 지금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입니다.”
스포츠 프로그램 패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탬파베이가 보여 주고 있는 성적에 놀라움을 표했다.
“안데르센과 로버트의 이탈로 다소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탬파베이는 두 사람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탬파베이 질주를 이끄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킴입니다. 그는 개막전부터 출전해 벌써 3승을 거두고 있습니다.”
김민은 2주 동안 3번 등판해 모두 승리를 거두면서 빠르게 승수를 쌓고 있었다.
“킴은 이제 상수입니다. 전 탬파베이의 상승세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 코칭 스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톰, 코칭 스탭이 지난 시즌과 달라졌단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탬파베이의 시프트 전술은 지난 시즌보다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땅볼 타구가 나올 경우 아웃 될 확률이 지난 시즌보다 15% 이상 상승했습니다.”
탬파베이는 14경기에서 12승 2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뉴욕 양키스의 10승 4패를 가볍게 뛰어넘는 것이었다.
“톰, 탬파베이의 질주가 언제까지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적어도 4월 말까지는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월 말이라면 시즌 초반 대세를 굳힐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긴 여름을 어떻게 나느냐가 가장 중요할 겁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지난 시즌 7월에 성적이 떨어지면서 한 차례 위기를 맞았었다.
“로이, 로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탬파베이의 질주가 어디까지 갈 것 같나요?”
“전 당장 다음 시리즈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시리즈라면…….”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펜웨이 파크에서 보스턴을 만납니다.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위닝 시리즈를 가져갈 수 있다면 저도 4월 말까지 이 기세가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현재 9승 5패로 동부지구 3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승률로 환산하면 0.642로 나쁘지 않았다.
만에 하나 보스턴이 탬파베이를 스윕한다면 두 팀은 똑같이 12승 5패로 동률이 되었다.
보스턴으로서는 리그 선두를 끌어내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보스턴과 탬파베이의 시리즈라면,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다시 한번 킴민과 맞대결을 펼치는 겁니까?”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두 사람 모두 개막전 선발로 등판한 뒤 한 번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았습니다.”
메이저리그 팬들은 김민과 페드로의 재대결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또 킴과 페드로인가?”
“두 사람의 대결은 마치 양키스와 레드삭스 같군.”
“아메리칸 리그의 라이벌이란 말이지?”
“의외로 킴은 로켓과는 대결한 적이 없어.”
“그래서 페드로와 라이벌리가 더욱 강조되는 것 같아.”
김민과 페드로의 대결은 김민이 3승 1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킴이 이기게 될까?”
“지금 탬파베이의 기세나 성적을 생각하면 아마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속단하지 않는 게 좋아. 보스턴 레드삭스는 시즌 초반 양키스와 대결했지만, 탬파베이는 아직 그들과 싸우지 않았으니까. 한마디로 탬파베이의 지금 성적은 거품이 끼어 있어.”
몇몇 팬들은 탬파베이가 양키스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4월 18일.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가 펜웨이 파크를 방문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시즌 1차전이 오늘 펜웨이 파크에서 펼쳐집니다.”
보스턴 선발은 너클볼러 웨이크.
탬파베이 선발은 부르스였다.
“웨이크 대 부르스, 시즌 성적은 부르스가 조금 더 좋습니다.”
“양 팀 선발은 1회가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1회를 무사히 넘겨야만 다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첫 번째 타순을 무사히 넘기지 못한다면 5이닝을 채우기 힘들 겁니다.”
기자들은 오늘 경기가 다득점 양상으로 흘러갈 것이라 말했다.
“5선발 대결. 타격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웨이크의 너클볼이 춤을 추지 않는 한 탬파베이가 5점 이상 뽑을 거야.”
그들은 더 강력한 화력을 보여 주는 팀이 오늘 경기 승리를 가져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1회 초.
탬파베이 1번 타자로 나선 브라이튼이 삼진으로 돌아섰다.
“웨이크!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오늘 너클볼의 움직임이 좋습니다.”
춤추는 너클볼.
탬파베이 타자들은 너클볼의 현란한 움직임에 잇달아 삼진으로 물러났다.
“웨이크! 케니히마저 삼진으로 돌아섭니다!”
웨이크의 연속 삼진.
이반 감독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웨이크의 너클볼이 하필 왜 우리 경기 때 춤을 추는 거야.”
바이슨 수석 코치가 마른 침을 삼켰다.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경기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3번 타자 윌리엄이 빗맞은 안타로 출루했지만, 4번 타자 아울이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탬파베이의 1회 초 공격이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너클볼이 제대로 흔들리는 모양이군.”
“힘든 경기가 될 것 같습니다.”
탬파베이 더그아웃이 아닌 펜웨이 파크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너클볼이 춤을 추면 웨이크는 무적의 투수였다.
1회 말.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 고! 레드삭스!”
“고! 고! 레드삭스!”
공격에 앞서 뜨겁게 달아오른 펜웨이 파크.
보스턴의 선두 타자는 타격왕을 노리고 있는 코버였다.
“코버가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현재 코버는 타율 0.399로 아메리칸 리그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부르스는 록튼과 신중하게 사인을 교환한 뒤 초구를 던졌다.
슉!
낮은 코스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코버는 그 공을 가볍게 밀었다.
툭!
배트를 맞고 튕겨져 나온 공이 2루수 칼튼의 키를 넘어갔다.
“코버, 초구를 노려서 안타를 만들었습니다.”
김민은 코버의 타격을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스트라이크존에서 떨어지는 공을 결대로 밀었어. 저런 타격이 가능할 줄이야.”
클락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떨어지는 공을 밀었다고? 어퍼 스윙이 아니고?”
“어퍼 스윙이라면 오히려 우익수 쪽으로 날아가는 플라이가 되었을 거야. 가볍게 밀었기 때문에 내야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가 된 거야. 떨어지는 공임에도 불구하고 히팅 포인트를 정확히 잡았어.”
김민은 코버의 배트 컨트롤이 예상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내셔널 리그 타격왕 출신. 이 정도는 당연한 건가?’
코버 다음 타자는 보스턴이 자랑하는 테이블 세터 노라였다.
“코버 다음 노라라. 보스턴 테이블 세터가 언제 저렇게 강해졌지?”
클락이 혀를 찬 순간 노라가 1, 2루 사이를 뚫어냈다.
“연속 안타입니다!”
“보스턴이 강한 화력으로 부르스를 압도하는군요.”
코버는 빠른 발을 이용해 3루에 안착했다.
무사 1, 3루.
부르스는 시작부터 위기였다.
“타석에 들어선 것은 3번 타자 라파엘입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라파엘은 양키스의 제레미와 버금갈 정도의 파워 히터였다.
“여긴 어렵겠어.”
클락의 말에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부르스는 라파엘을 막을 수가 없어.”
현실은 냉정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유격수 브라이튼의 머리 위를 넘어갔다.
“라파엘! 적시타입니다!”
3루 주자 코버는 산책을 하듯 여유 있게 홈에 들어왔다.
보스턴의 선취점.
클락은 코버의 여유 있는 모습을 보곤 혀를 찼다.
“1점을 주고 무사 주자 1, 2루인가? 최악이군.”
김민은 최악은 면했다고 생각했다.
“최악은 아니야. 라파엘을 단타로 막았으니까. 승부는 지금부터야.”
그는 부르스가 노련한 투구로 치명상을 막았다고 생각했다.
‘부르스는 오프 시즌 동안 젊은 친구들과 같은 강도의 훈련을 소화해 냈어. 그가 이대로 무너질 리가 없어.’
4번 타자 그란델.
그란델은 라파엘이 입단하기 전 보스턴 타선을 책임졌던 사내였다.
그는 여전히 위협적인 타자 중 한 명이었다.
김민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 승부가 중요해.”
그는 그란델을 넘을 수 있다면 최소한의 실점으로 1회를 막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란델을 막지 못하면 오늘 경기는 시작과 동시에 승패가 결정 날 거야.’
해설자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고의사구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란델을 거르고 닉과 승부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란델과 정면 승부를 펼친다면…….”
부르스는 고의사구가 아닌 승부를 선택했다.
슉!
빠른 공이 잇달아 코너를 찔렀다.
“스트라이크!”
하나의 스트라이크와 하나의 볼.
카운트 1-1.
부르스는 물러서지 않고 다시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밀어넣었다.
그란델은 바깥쪽 코너로 날아오는 공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따악!
총알 같은 타구.
그러나 그 타구는 3루수 스나이더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스나이더!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타구를 잡아냅니다!”
“멋진 수비군요. 오늘의 하이라이트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수비입니다.”
타구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주자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1사 1, 2루입니다. 보스턴 레드삭스 기회를 이어갑니다.”
5번 타자 닉.
그는 전성기가 지난 타자였지만, 그렉스 이상의 기량을 지닌 타자였다.
김민이 낮게 중얼거렸다.
“쉽게 생각하면 큰일 날 거야.”
부르스는 닉을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닉과 5시즌 이상 승부를 이어 온 투수였다.
그는 닉을 상대로 철저히 코너웍을 가져가며 7구까지 승부를 이어갔다.
“파울! 파울입니다! 투수와 타자 두 사람 모두 쉽게 물러나지 않습니다.”
“이번 승부는 부르스가 어려워 보이는군요. 더는 던질 곳이 없습니다.”
해설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닉의 배트가 공을 밀어냈다.
탁…….
둔탁한 소리.
김민은 속으로 됐다고 외쳤다.
‘긴 승부로 닉의 히팅 포인트가 어긋났어.’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칼튼! 공을 잡아 빠르게 2루로 송구합니다.”
유격수 브라이튼은 칼튼의 공을 받은 직후 2피트(61cm) 이상 떠올랐다.
“브라이튼이 공중에서 1루에 송구합니다!”
“멋진 동작입니다!”
팡!
아울의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2루수 칼튼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포효했다.
“와우! 좋았어!”
5번 타자 닉의 더블 플레이.
보스턴 레드삭스는 1, 2, 3번이 나란히 안타를 치고도 1점 만에 만족해야 했다.
“1회 말 탬파베이가 환상적인 수비로 위기를 탈출합니다.”
“칼튼과 브라이튼의 수비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스나이더의 3루 수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란델의 타구가 빠졌다면 경기가 크게 기울었을 겁니다.”
김민은 내야수들의 수비도 좋았지만, 그것을 만들어 낸 부르스가 더욱 좋았다고 생각했다.
‘수비를 믿고 포수의 리드에 따라 공을 던졌어. 믿음이 부족했거나 타자에게 두려움을 가졌다면 경기를 그르치고 말았을 거야.’
부르스는 연속 안타를 맞은 이후 철저히 코너를 공략했다.
물론 모든 공이 코너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제구력은 완벽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볼이 되는 공도 많았다.
그럼에도 부르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포수와 내야수들을 믿고 승부를 펼쳐 추가 실점을 막아 냈다.
2회와 3회.
두 선발 투수는 실점 없이 호투를 이어갔다.
경기는 기자들의 예상과 달리 투수전 양상으로 흘렀다.
“웨이크와 부르스가 선발 투수인데 투수전이라. 두 팀 배트가 고장 난 것 아니야?”
“그렇다고 하기에는 웨이크의 너클볼이 너무 좋아. 저렇게 흔들리면 방법이 없다고.”
“부르스도 괜찮아. 수비의 도움이 있긴 하지만 무너지지 않고 잘 던지고 있다고.”
4회 말.
보스턴이 부르스를 상대로 한 점을 더 뽑아 2-0으로 앞서 나갔다.
“보스턴은 그래도 점수를 뽑는군. 그에 비해 탬파베이 배트가 너무 차갑게 식었는데.”
“웨이크를 상대로 0점은 너무 심하군.”
“심하다고 말하지 말라고, 오늘 웨이크의 너클볼은 제대로 흔들리고 있다고.”
기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 탬파베이 더그아웃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웨이크의 너클볼을 공략할 방법을 찾아야 해.”
“어퍼 스윙으로 공략하는 건 어떨까요?”
“어퍼 스윙은 힘들어. 다른 걸 생각해 봐!”
코스타 타격 코치와 바이슨 수석 코치가 머리를 맞댔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너클볼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어떤 타자도 쉬이 그것을 공략할 수 없었다.
5회 초.
탬파베이 타선이 다시 한번 삼자범퇴로 물러났다.
선두 타자로 나섰던 5번 타자 그렉스는 웨이크의 너클볼이 너무 심하게 흔들린다며 혀를 찼다.
“최근 본 웨이크의 너클볼 중에 오늘이 최고야.”
그는 완봉으로 오늘 경기가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민의 생각은 달랐다.
‘그라운드의 공기가 서서히 식고 있어. 후반이 되면 볼의 움직임 달라질 거야.’
그는 8, 9회에 한 번쯤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6회 말.
보스턴의 슈퍼스타 라파엘이 솔로 홈런을 뽑아내며 스코어를 3-0으로 벌렸다.
“라파엘의 홈런입니다!”
“이번 시즌 5호군요.”
부르스의 투구는 딱 여기까지였다.
“부르스, 5와 1/3이닝 3실점으로 오늘 투구를 마칩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부르스에게 다가가 오늘 피칭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1회 조금 흔들렸지만, 괜찮았어.”
그는 부르스의 어깨를 두드려 주곤 다음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카이번, 부탁한다.”
그러나 카이번은 블렛소 투수 코치의 바람대로 던져 주지 못했다.
1이닝 동안 안타 3개를 맞으면서 2실점.
스코어는 5-0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오늘 경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백기를 들려고 할 때였다.
3번 타자 윌리엄이 솔로 홈런을 뽑아내며 0의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윌리엄! 시즌 4호 홈런을 터트립니다!”
“조금 늦은 것 같지만, 탬파베이가 추격에 시동을 거는군요.”
스코어 5-1.
이반 감독이 그라운드를 주시하며 말했다.
“바이슨,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바이슨 수석 코치가 모자를 고쳐 쓰며 이반 감독의 말을 받았다.
“제가 너무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감독님 말씀대로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민이 예상한 것처럼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너클볼의 움직임이 줄기 시작했다.
탬파베이는 8회 초 2점을 더 보태며 5-3까지 보스턴을 추격했다.
“1이닝 2점 차. 해 볼 만한 경기군.”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보스턴이 투수를 교체했다.
“버나드가 나오는군요.”
버나드는 4년 전 보스턴에 1라운드 17번으로 입단한 영건이었다.
그는 지난 시즌 셋업을 맡았고, 이번 시즌은 시작부터 클로저 자리를 꿰찼다.
버나드는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탬파베이의 추격을 차단했다.
9회 초.
선두 타자 케니히가 안타를 뽑아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9회에 주자를 내보냅니다.”
“무사 1루, 여기서 역전을 당한다면 그 데미지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보스턴 집중해야 합니다!”
보스턴 선수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바짝 긴장했다.
‘설마 역전당하지 않겠지?’
‘역전이라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오늘은 우리가 이기는 날이라고!’
‘집중하자. 집중해!’
모두의 시선이 버나드에게 모아졌다.
버나드는 깊이 심호흡하고 공을 던졌다.
슉!
바깥쪽 패스트볼.
3번 타자 윌리엄이 그 공을 그대로 떠올렸다.
따악!
“타구가 큽니다!”
높이 떠오른 윌리엄의 타구.
타구가 이대로 펜스를 넘는다면 오늘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윌리엄의 타구는 펜스를 넘어가지 못한 채 중견수 헬리오에게 막히고 말았다.
“헬리오가 워닝 트랙에서 타구를 처리합니다!”
윌리엄은 1루 베이스 앞에서 길게 탄식했다.
“하…… 저게 넘어가지 않다니.”
손끝의 감각은 분명 홈런이었다.
하지만 공이 날아간 곳은 펜웨이 파크 외야에서 가장 깊은 곳이었다.
‘차라리 그린 몬스터로 날아갔더라면…….’
펜웨이 파크 좌측에 설치된 거대한 벽 그린 몬스터.
그쪽으로 날아갔더라면 안타가 되지 않았더라도 1타점 2루타는 충분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구에 만약은 존재하지 않았다.
버나드는 윌리엄이라는 큰 고비를 넘긴 뒤, 4번 아울을 삼진, 5번 그렉스를 투수 앞 땅볼로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클로저 버나드가 팀의 승리를 지킵니다!”
“보스턴이 탬파베이의 연승 행진에 제동을 거는군요. 역시 만만한 팀이 아닙니다.”
김민은 보스턴의 승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지난해보다 확실히 좋아졌어.’
오늘 경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코버와 노라 두 명의 테이블 세터였다.
두 사람은 각각 안타 2개를 쳐 내며 보스턴의 승리를 이끌었다.
‘보스턴을 잡기 위해서는 두 사람부터 막아야 해.’
* * *
4월 19일.
펜웨이 파크는 경기 시작 30분 전에 모든 표가 소진되었다.
페드로와 김민의 대결.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누구나 오늘 경기를 보고 싶어 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경기를 맡게 된 캐스터 브라이언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해설을 맡은 톰입니다.”
오늘 경기는 전국 중계 경기였다.
“탬파베이와 보스턴의 시즌 2차전입니다. 톰, 어제는 보스턴이 승리를 거뒀죠?”
“9회 주자가 나가면서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되었지만, 버나드가 세이브를 올리며 보스턴이 탬파베이의 연승 행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반 감독은 오늘 경기가 3연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패하면 보스턴에게 위닝 시리즈를 내주게 된다. 어디 그뿐인가? 시즌 처음으로 연패를 당하게 된다.’
강팀은 연패를 당하지 않는다.
이반 감독은 탬파베이가 강팀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경기만큼은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오늘 선발은 킴이니까.’
그는 김민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경기 시작 20분 전.
보스턴 레드삭스 2루수 코버가 지역 언론과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코버 선수는 오늘 킴과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하십니까?”
“3타수 3안타입니다.”
리포트가 살짝 놀라며 물었다.
“모든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는 건가요? 하지만 킴은 지난 시즌 사이영상 수상자입니다.”
“사이영상 수상자라고요? 랜디 존슨이나 커트 실링에 비하면 킴은 아직 애송이입니다. 전 아메리칸 리그 타자들이 왜 그의 공을 때려내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코버는 킴의 패스트볼이 95마일 전후라고 말하며, 그 정도 패스트볼은 얼마든지 쳐 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파엘은 그 장면을 보고 노라에게 고개를 돌렸다.
“인터뷰, 너무 노골적인 것 아니야?”
노라가 글러브를 꺼내 들며 대답했다.
“선전포고용으로는 딱 적당하지 뭐.”
“선전포고?”
“코버가 그러더군. 오늘 경기는 자신과 킴의 전쟁이라고.”
코버는 이번 시리즈가 시작되기 전부터 김민에 대한 투쟁심을 불태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