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시작과 끝 03
김민과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은 빈스가 아니었다.
간간이 보이는 새치와 눈가의 주름은 그의 나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사내는 유럽 이곳저곳을 떠돌던 용병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민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 시즌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고 생각해.”
“그렉스.”
그의 앞에 앉은 사내는 이번 시즌 탬파베이의 중심 타선에서 활약했던 그렉스였다.
김민이 그렉스와 마주하게 된 것은 3시간 전에 접한 그의 은퇴 소식 때문이었다.
그렉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뛴 14시즌을 감사하며, 은퇴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탬파베이와 함께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야. 난 이쯤에서 은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아직 탬파베이에는 그렉스가 필요합니다.”
그렉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예전처럼 뛰는 건 무리야. 그리고…… 이것으로 지난날 과오에 대한 최소한의 사죄는 되었다고 생각해.”
지난날의 과오.
그것은 스테로이드 복용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렉스는 스테로이드의 힘으로 매년 30개 이상의 홈런을 치며 메이저리그 스타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약물로 쌓은 탑은 오래가지 않았다.
‘약물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치트를 쓰는 것과 같아. 올바른 행동이 아니지.’
김민이 말했다.
“지금 그렉스가 빠지게 되면 팀 타선에 큰 구멍이 뚫리게 됩니다.”
그렉스는 팀 타선을 걱정하지 않았다.
“홀먼은 소문처럼 무능한 단장은 아니야. 9백만 달러(111억 원)면 괜찮은 타자를 구할 수 있을 거야.”
이번 시즌을 끝으로 그렉스의 FA계약이 끝났다.
그렉스는 자신에게 들어가는 돈으로 충분히 좋은 타자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민의 생각은 달랐다.
“홀먼은 무능한 사람이 아니지만 빈스를 이길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렉스가 빠진 자리를 새로운 타자로 메우지 않을 겁니다.”
“…….”
김민은 그렉스가 받던 9백만 달러를 빈스가 어떻게 사용할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서비스 타임이 끝나는 4명의 연봉을 대략 100만 달러(12억 원)씩 올려주겠지. 여기에 들어가는 돈이 400만 달러(48억 원). 남은 5백만 달러는 안데르센을 잡거나 클락과 렉터의 연봉을 올려주는 데 사용하게 될 거야. 한마디로 새로운 선수 영입에 쓸 여유가 없어.’
그는 그렉스의 은퇴가 전력 하락을 부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렉스, 연봉이 낮아지는 걸 두려워하는 겁니까?”
그렉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소리. 난 최저연봉으로도 뛸 수 있어. 하지만 지금 내겐 더 뛰어야 할 이유가 없어.”
“이유가 없다니요. 그렉스, 반지 없이 이대로 은퇴할 겁니까?”
김민의 한마디에 그렉스가 미소를 지었다.
“우리 팀에서 반지는 무리야.”
메이저리거에게 반지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뜻했다.
김민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뇨. 전 다음 시즌 반드시 반지를 낄 겁니다. 그리고 그렉스도 함께 반지를 낄 겁니다.”
“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하지. 동부지구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우리 지구에는 양키스가 있어.”
김민이 그렉스의 두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메이저리그 제1의 팀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상대가 양키스든 자이언츠든 모두 이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구 우승, 아니 그 이상을 목표로 뛴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악의 제국 양키스를 누르고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키스는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준우승에 머무른 뒤, 새로운 선수 영입에 골몰하고 있었다.
양키스와 탬파베이는 연봉에서만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렉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시즌 킴은 최고였지. 하지만 다음 시즌도 그렇게 던진다는 보장은 없어. 킴이 부진하면 이 팀은 끝이야.”
“메이저리그는 혼자 힘으로 우승할 수 있는 리그가 아닙니다. 팀 전체가 강해질 때 비로소 우승 반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탬파베이는 제가 없더라도 이길 수 있는 강한 팀이 될 겁니다.”
“킴, 자네는 좋은 리더야. 다음 시즌은 몰라도 언젠가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에 넣게 될 거야.”
그렉스는 김민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은퇴를 번복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김민이 살짝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렉스, 당장 안데르센이 떠날 수도 있습니다.”
안데르센은 이번 시즌 그렉스와 함께 5, 6번을 번갈아 가며 쳤다.
“홀먼이 안데르센 정도는 잡겠지.”
“안데르센을 잡으려면 5년 3천만 달러(375억 원) 이상의 계약을 제시해야 할 겁니다. 솔직히 말해 빈스에게 그런 의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탬파베이 같은 스몰마켓에서 연평균 600만 달러(72억 원) 계약은 작은 계약이 아니었다.
“킴, 내가 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난 안데르센처럼 3루를 볼 수 없다고.”
“3루는 스나이더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타격은 아직 그렉스나 안데르센에 미치지 못합니다.”
김민은 스나이더가 성장할 때까지 그렉스가 타선에 힘을 보태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킴, 지난 시즌보다 약해진 전력으로 반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약해지지 않을 겁니다.”
“자네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들으면 탬파베이는 전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여.”
김민이 말했다.
“타선은 그럴 겁니다. 하지만 투수진이 변할 겁니다.”
그렉스가 멈칫했다.
“투수진?”
“설리반과 클락 그리고 렉터와 부르스 모두 달라질 겁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김민이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바꿔놓을 겁니다.”
그는 팀의 우승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할 작정이었다.
“음, 겨울 동안 쉬지 않을 모양이군.”
“탬파베이는 신의 축복을 받은 곳입니다. 1년 내내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이점입니다.”
그렉스는 생각했다.
‘킴이 이렇게까지 나서는데 더 뒤로 빼기도 뭐하군. 반지를 얻지 못한다고 해도 지금은 그를 도와주는 게 옳을 것 같군.’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딱 1년만 더 뛰도록 하지.”
김민이 활짝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렉스,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할 필요는 없어. 그냥 뛰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난 FA야. 쉽지 않을 거라고.”
2시간 뒤.
그렉스는 프런트에 은퇴를 번복했다.
그리고 다음 날 50만 달러(6억 원)라는 파격적인 연봉으로 1년 계약을 맺었다.
이는 동부지구 구단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렉스가 50만 달러로 남는다고?”
“은퇴를 번복한 것보다 50만 달러가 더 인상적이군. 그렉스 정도의 성적이라면 적어도 200만 달러(25억 원)는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지난 악성 계약에 대한 보답 차원인가?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그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어쨌든 탬파베이는 걱정거리 하나를 처리했군요.”
다년 계약은 무리였지만, 1, 2년 정도는 충분히 200만 달러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렉스는 돈을 포기하고 탬파베이와 계약했다.
‘월드시리즈 반지라. 얻을 수만 있다면 그 무엇보다 큰 은퇴선물이 되겠군.’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김민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 * *
“그렉스가 좋은 가격으로 재계약했더군.”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돌리는 사람은 빈스였다. 지난해 그는 선수 대표로 김민을 처음 만났다.
“함께 월드시리즈에 도전하자고 말했습니다.”
김민은 이번에도 선수 대표로 빈스 앞에 섰다.
“자네가 설득한 건가?”
“그렇습니다.”
김민은 빈스 구단주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훌륭한 리더군.”
“그에게 월드시리즈 반지를 끼워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
“다음 시즌이 목표입니다.”
빈스는 김민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다음 시즌, 할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쉽진 않을 거야.”
김민이 짧게 말했다.
“우린 해낼 겁니다.”
빈스는 김민의 말에 깔려 있는 요구를 읽었다.
“킴, 자네의 의지가 강한 것은 알겠네. 하지만 구단에는 구단 사정이라는 게 있어.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는 것이 좋아.”
“대형 FA계약은 원하지 않습니다.”
스타급 선수 영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네는 내게 선수 영입을 부탁하려고 온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흠…… 그럼 클럽하우스 정비 같은 건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김민이 대답했다.
“오프 시즌 훈련비용을 부담해 주십시오.”
“오프 시즌 훈련은 노사협약에 위배되지 않나?”
메이저리그는 비시즌을 철저히 지키기로 유명했다.
물론 선수 개개인이 스스로 훈련하는 것은 막지 않았다.
하지만 구단 차원에서 합동 훈련하는 것은 노조에서 금지하고 있었다.
“고용은 선수들이 직접 할 예정입니다.”
“선수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돈을 달라는 말인가?”
“디비전 시리즈 진출에 따른 보너스를 지급해 주시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구단 최초의 디비전 시리즈 진출.
보너스가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디비전 시리즈 진출 보너스라. 그럼 25인 로스터에 든 선수 모두에게 지불해야 할 텐데?”
“아까우십니까?”
10만 달러(1억2천만 원)씩 지불한다고 해도 250만 달러(31억 원).
“솔직히 말해 아깝네.”
“월드시리즈 진출로 갚아 드리겠습니다.”
“월드시리즈 진출이 가능하다면 얼마든지 내지. 하지만, 우리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가능성은 1% 미만이야.”
김민이 말했다.
“외야 광고판에 투자하는 돈보다는 효율이 좋을 겁니다.”
“으음…….”
김민은 빈스가 외야 광고판을 늘리기 위해 300만 달러(37억 원)의 공사를 승인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너스를 지급해 주십시오.”
빈스는 한 번 더 거절하려고 했다.
그 순간 김민이 말했다.
“S전자와 새로운 스폰서 계약을 맺은 걸 알고 있습니다. 그 계약금이면 충분할 겁니다.”
S전자가 탬파베이와 계약을 맺은 이유는 김민이 뛰고 있기 때문이었다.
‘킴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설마 S전자에서 킴에게 이야기한 것인가? 하긴 S전자가 킴을 스폰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빈스는 S전자와 계약이 언급되자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좋아. 그렇게 하지.”
“그리고…….”
김민이 말을 이어가자 빈스가 미간을 좁혔다.
“다른 안건도 있나? 선수 대표로는 하나만 말할 수 있네.”
김민이 살짝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말은 선수단을 대표해서가 아니라 메이저리그 선수 김민의 입장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빈스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선수 김민이라고? 돈을 원하는 건가? 하지만 자네 서비스 타임은 아직 1년이 남아 있어. 연장 계약은 내년에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메이저리그 서비스 타임은 총 6년.
하지만 흔히 서비스 타임으로 부르는 시기는 최저 연봉 기간인 3년이었다.
김민은 메이저리그에서 2년을 뛰었기 때문에 아직 1년 더 최저 연봉으로 뛰어야 했다.
빈스가 연장 계약을 언급한 것은 간혹 이 최저 연봉 기간에 최저 연봉 이상을 받는 선수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김민이 그들과 같은 특별대우를 구단에 요구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킴이 탬파베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인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예외를 둘 수는 없어.’
빈스가 미간을 좁힌 순간 김민이 말했다.
“지난해 이야기한 것의 연장선입니다.”
“연장선이라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왕조를 만들고 싶습니다.”
빈스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나도 왕조를 만들고 싶네.”
“왕조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 맞는 투자가 있어야 하지요.”
빈스가 입술 끝을 올렸다.
‘선수 영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더니, 결국 선수를 사 달라는 말이군.’
그는 이쯤에서 김민의 요구를 자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보너스에 투자까지. 자네는 내 지갑이 무한하다고 생각하나?”
“올해 구단 수입이 25% 이상 증가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빈스는 김민의 말에 멈칫했다.
‘구단 수익 증가분을 정확하게 알고 있군. 역시 킴이군. 그는 평범한 선수가 아니야.’
그는 감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킴, 그건 누구에게 들었지?”
“메이저리그 구단의 재무제표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습니다.”
빈스의 얼굴에서 살짝 핏기가 빠져나갔다.
“흠,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모양이군.”
“전공자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김민에게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사정을 알려 준 사람은 그의 동업자 엘린이었다.
빈스가 살짝 말머리를 돌렸다.
“자네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구단주 빈스입니다.”
“구단주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선수가 있다니, 금시초문이군.”
“구단주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빈스는 수익이 늘어난다고 해도 쓸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25% 수익이 늘었다면, 그 25% 중 5% 정도는 더 쓸 수 있지. 하나 그 이상을 바란다면 불가야.’
김민이 그의 눈을 주시하며 말했다.
“빈스, 매년 증가하는 수익의 절반을 팀에 투자하십시오.”
빈스가 깜짝 놀라 말했다.
“뭐라고?”
수익 증가분의 1/5 정도를 생각하고 있던 빈스였다.
김민의 내건 조건은 그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빈스는 거절 대신 김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게 그런 조건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김민이 대답했다.
“앞으로 5년 동안 500만 달러(62억 원)로 연봉을 고정하겠습니다.”
1년의 서비스 타임 이후 김민의 연봉은 1천만 달러까지 수직 상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민은 그 연봉의 절반 이상을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수천만 달러를 포기하겠다고? 게다가 킴의 서비스 타임은 앞으로 4년이 남아 있을 뿐이야. 5년 계약이라면 FA를 포기하면서까지 우리와 연장 계약을 맺겠다는 말이 아닌가?’
파격적인 연봉 삭감과 5년 연장 계약.
돈을 좋아하는 빈스는 김민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천만 달러를 포기한다고? 킴, 재정신인가?”
그는 미끼를 물기보다는 의심부터 했다.
덥석 물기에는 던져진 미끼가 너무 컸다.
“왕조를 세우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천만 달러의 희생…….”
빈스는 김민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강렬한 눈빛에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진심이군. 킴은 진심으로 메이저리그에 왕조를 세우려 하고 있어.’
김민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왕조를 세우기 위해 내가 희생한 만큼 구단에 투자하라.
빈스로서는 거절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내가 자네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왜?”
“돈이 되는 일이니까요.”
김민은 빈스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후후후…… 재미있어. 자네 같은 선수는 처음이야.”
빈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하지. 하겠어. 하지만 말이야. 자네는 크게 후회하게 될 걸세.”
그는 김민이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올려도 계약을 바꿔 주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계약은 계약입니다. 바꾸는 일은 없을 겁니다. 대신 계약서에 팀의 투자 조항을 삽입했으면 합니다.”
“자네가 아까 언급한 그 조건 말인가?”
“그렇습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이쪽이 그 조건을 어기는 일은 없을 걸세.”
김민은 지금의 조건을 내세우기 전에 에이전트인 엘린과 상의했다.
엘린은 김민에게 그런 조건은 바보나 내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선수라면 자신의 실력에 합당한 연봉을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이건 제가 에이전트이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는 자신의 성적에 합당한 연봉을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것은 연봉이 바로 선수의 가치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김민의 생각은 달랐다.
“현재를 중시하는 선수는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10년 2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아무도 그의 연봉을 언급하지 않을 거야. 훗날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선수의 우승 횟수와 커리어 기록뿐이야.”
“기록과 커리어는 남겠죠. 하지만 돈은 어떻게 할 겁니까? 킴보다 훨씬 못한 선수가 킴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겁니다.”
김민은 돈은 다른 방법으로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난 이미 연봉보다 몇 배나 많은 돈을 스폰서로부터 받고 있어. 메이저리그의 아이콘, 아니 더 나아가 메이저리그 전체의 인기를 끌어올린 선수가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테지.”
김민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많은 프로선수가 자신의 연봉이나 상금보다 큰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었다.
“킴…….”
“엘린이 이렇게 걱정할 정도라면 빈스는 100% 걸려들겠군.”
엘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 아직 킴을 100%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우승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팀을 떠나는 게…….”
“아니, 내가 만든 팀이라야 의미가 있어.”
김민은 마이클 조던이 뉴욕이나 LA로 팀을 옮겼다면 지금의 위치에 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로 스포츠에서 프랜차이즈는 절대적인 존재다. 이것을 무시한 선수는 결코 최고의 위치에 설 수 없다.’
그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왕조를 세워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는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