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일진일퇴 05
“첫 단추를 잘 끼웠군.”
포포비치 감독은 손가락을 빙글 돌리면서 수석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전력분석팀은 아직인가?”
“2분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아직 특별한 건 없다고 합니다.”
“흠, 플레이오프에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피칭이란 말인가?”
포포비치 감독이 에인절스 전력분석팀에게 주문했던 것은 경기 후반 김민의 투구 중 평소와 달라진 점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제가 보기에도 킴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뛰어난 밸런스, 투구판과 발 위치, 릴리스 포인트, 볼 배합, 시프트 활용, 모두 평소와 다름이 없습니다.”
포포비치가 그라운드를 주시하며 말했다.
“2년 차. 그것도 처음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는 선수가 긴장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
“타고난 그릇이 큰 것이 아닐까요?”
수석 코치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정도로는 김민을 긴장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킴은 그 누구보다 큰 심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그를 위축시키려면 적어도 월드시리즈 7차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민은 3번 타자 말론을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내곤 4번 타자 트로이와 맞섰다.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4번 타자 트로이입니다.”
“이번 승부가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트로이는 오늘 경기에서 킴에게 2루를 빼앗은 유일한 타자입니다.”
트로이는 깊게 심호흡했다.
“후우……”
주자가 없는 상황.
4번 타자의 스윙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욕심내지 말자.’
그는 배트를 세우곤 자신을 다독였다.
짧고 빠르게.
군더더기 없는 스윙으로 공을 공략한다.
그러나 초구를 공략한 그의 배트는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트로이는 낮게 떨어진 공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배팅 포인트와 타이밍 모두 어긋났군. 킴은 킴이란 말인가?’
김민이 트로이에게 던진 초구는 체인지업이었다.
캐스터와 해설자는 트로이의 큰 헛스윙에 목소리가 커졌다.
“킴! 트로이가 어떤 공을 노리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 볼 배합을 가져갔습니다.”
“독심술사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닙니다. 심리전만큼은 킴이 메이저리그에서 제일입니다.”
포포비치 감독은 무표정한 얼굴로 기록지를 살폈다.
“초구부터 체인지업이라. 트로이와 대결이 3라운드로 넘어갔군.”
“킴은 체인지 오브 페이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려는 것 같습니다.”
김민은 패스트볼 위주 피칭에서 변형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그리고 커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피칭으로 패턴을 바꾸었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관중석에 떨어졌다.
“마음먹고 당긴 공이 관중석으로 향합니다.”
“트로이의 파워는 확실합니다. 킴, 여기서는 신중하게 공을 선택해야 합니다!”
김민은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모자를 벗었다.
‘커브를 그렇게 잡아당길 수도 있는 건가?’
그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투 스트라이크 노 볼. 투구수를 아끼기 위해서는 바로 승부를 들어가는 것이 좋다.’
평소라면 망설임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트로이의 집중력은 이전 타석과 분명 달라져 있었다.
그는 이미 낮게 떨어지는 커브를 당겨 관중석 상단으로 보내는 괴력을 보여 주었다.
‘패스트볼을 던지면 맞을 지도 몰라. 하이 패스트볼도 반반…… 아직 승부할 타이밍이 아니야.’
그는 모자를 쓴 뒤 그립을 잡았다.
‘안쪽으로 하나 가 보자.’
슉!
빠른 공이 홈플레이트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갔다.
트로이는 이 공에 반응하지 않았다.
파앙!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볼입니다.”
김민이 던진 공은 스트라이크존에서 벗어나는 패스트볼이었다.
‘배트가 움직이지 않았어. 이건 안쪽 공을 두려워했다기보다 무시한 거야.’
그는 트로이가 스트라이크존을 반으로 잘라 바깥쪽만 집중 공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쪽을 노린다면 경기 초반과 반대로 가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배터 박스의 위치가……’
김민은 트로이가 이번 안쪽 공을 거른 것이 함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 더 던져 보면 알겠지.’
김민은 그립을 고쳐 잡았다. 그리곤 안쪽을 향해 다시 한번 공을 뿌렸다.
빠른 공이 포수 미트를 향해 돌진했다.
슉!
다음 순간 트로이의 배트가 움직였다.
‘배트가 나왔어!’
탁!
배트에 맞은 공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1루 더그아웃에 떨어졌다.
“파울!”
트로이는 파울이 된 타구를 보곤 미간을 좁혔다.
‘패스트볼을 기다렸는데 날아온 것은 슬라이더인가?’
처음에는 커터라고 생각해 배트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공은 한 걸음 더 달아났고, 결국 헤드 끝에 맞고 말았다.
트로이는 내야 플라이가 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집중하자! 다음 공은 빠른 게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전광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90마일(145km) 슬라이더. 킴의 패스트볼 구속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슬라이더였습니다.”
이반 감독이 그라운드를 주시하며 그의 말을 받았다.
“언론에서는 고속 슬라이더라고 하더군. 하지만 난 저 공이 커터와 슬라이더의 중간쯤이 아닐까 싶군.”
그는 김민이 후반을 대비한 신무기를 꺼내 들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8회, 길게 잡으면 9회까지 킴이 마운드를 지켜 줄 것이다.’
이반 감독은 그사이 타선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 경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이슨,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수비보다는 공격이야.”
바이슨 수석 코치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음 이닝에 자밀이 등판하면 제대로 승부를 걸어 볼 생각입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자밀이 좋은 투수지만, 긴 이닝을 버틸 수 있는 구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필승조의 빠른 등판, 우리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다.’
캐스터가 그라운드를 주시하며 말했다.
“카운트 1-2, 킴이 다섯 번째 공을 준비합니다.”
김민은 오랜만에 바깥쪽으로 공을 던졌다.
슉!
밋밋하게 느껴지는 스피드.
트로이는 배트를 내면서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킴에게 이런 구종도 있었나?’
그는 패스트볼은 일단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 구속이라면 휘어지기보다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로이의 판단은 포크볼이었다.
김민은 시즌 내내 한 번도 포크볼을 던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트로이는 김민이 포크볼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계, 아니 동양계 투수들은 포크볼 구사가 많은 편이다. 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몸을 살짝 낮추며 어퍼 스윙을 가져갔다.
‘포크볼이라면 우중간을 꿰뚫어주지.’
그러나 공은 트로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궤적을 그렸다.
‘무브먼트가 없어!’
배트가 공의 아래를 지나가는 것을 본 트로이가 눈을 크게 떴다.
‘이것은!’
김민이 던진 공은 고교생도 칠 수 있는 느린 패스트볼이었다.
팡!
미트에 공이 들어간 순간 주심의 손이 올라갔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트로이는 헛스윙 이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건 아니야. 치열한 승부가 이런 식으로 끝나다니.’
그는 김민의 느린 패스트볼에 컬쳐 쇼크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다.
포포비치 또한 이번 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플리터였나?”
“궤적을 보면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전력분석팀에 연락을 해 보게. 이번 공은 좀 이상해.”
수석 코치가 재빨리 전력분석팀과 통화를 했다. 그는 전력분석팀으로부터 김민이 던진 공이 포심 패스트볼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감독님, 포심 패스트볼이라고 합니다.”
“저게?”
김민이 트로이에게 던진 승부구는 87마일(140km)에 불과했다.
“87마일 패스트볼로 삼진이라. 실투가 행운으로 변한 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력분석팀의 보고에 따르면 저 느린 패스트볼은 킴이 종종 던지는 구종이라고 합니다.”
“흠, 종종 저런 공을 던져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단 말이지?”
수석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 느린 패스트볼이야말로 진정한 체인지 오브 페이스가 아닐까요?”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흔히 던지는 체인지업은 패스트볼과 같은 폼에서 나왔지만, 속도와 무브먼트가 패스트볼과 전혀 달랐다.
그러나 김민이 던진 패스트볼은 평소 던지던 패스트볼에서 구속만 6, 7마일(약 10km) 줄인 것이었다.
타이밍을 빼앗는다는 목적만 놓고 보면 이보다 더 좋은 공은 없었다.
“패스트볼, 더 빠른 패스트볼, 그리고 느린 패스트볼인가? 킴은 패스트볼 하나도 세 가지로 나누어 던지는군. 한데 말이야. 이상한 점이 있어. 이렇게 복잡한 투구를 하면서 어떻게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일까?”
포포비치는 김민의 볼 배합이나 구종보다 그의 밸런스에 주목했다.
김민은 1회부터 7회까지 일정한 밸런스로 공을 던지고 있었다.
“하체가 단단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체?”
수석 코치가 김민의 하체를 주목하며 말했다.
“키가 같은 선수 중 킴의 하체는 유난히 두텁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치 남미 선수 같군.”
“동양계 선수 중 저런 하체를 가진 선수는 흔치 않죠.”
포포비치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킴은 부모에게 큰 선물을 타고 났군.”
“그게 데뷔 시즌에는 저렇지 않았습니다.”
“자네는 킴의 데뷔 시즌을 기억하고 있나?”
수석 코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데뷔 시즌이라고 해 봐야 지난 시즌 아닙니까.”
“그땐 어땠지? 난 기억이 나질 않는군.”
“평범했습니다. 우리 팀이 찰리 정도였죠.”
“그런 투수가 1년 만에 저렇게 되었단 말인가?”
“정확히는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부풀어 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시즌 중에도 운동을 쉬지 않았다는 말인데……”
“운동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의 것일 수도 있죠.”
수석 코치의 한마디는 약물을 암시하고 있었다.
포포비치는 김민의 하체가 믿기지 않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자네가 생각하는 그것이었다면 어깨와 팔의 근육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어야 해.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아니야.”
두 사람을 말을 주고받는 사이 탬파베이 1번 타자 브라이튼이 삼진으로 돌아섰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자밀의 체인지업은 8회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다.
이반 감독은 약속한 대반격의 시작이 시큰둥하자 미간을 좁혔다.
“7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군.”
“결과는 그렇지만 과정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타자들에게 체인지업에 히팅 포인트를 맞추고 자신 있게 스윙하라고 주문했습니다.”
방금 자밀의 삼진은 패스트볼에 의한 것이었다.
같은 타이밍에 체인지업이 들어왔다면 그는 삼진이 아닌 2루타를 때려냈을 것이었다.
“자신 있게 배트를 돌리는 건 좋은데 결과가 같으면 곤란해.”
8회 두 번째 타자로 나선 케니히도 브라이튼과 마찬가지로 패스트볼에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우리가 노리는 공을 알고 있는 모양이군.”
바이슨 수석 코치는 한 명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8회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지켜봐 주십시오.”
그는 윌리엄의 재능이라면 충분히 자밀의 체인지업을 걷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포포비치 감독은 바이슨 수석 코치보다 한 수 위였다.
“여기서 투수 교체입니다!”
8회 2사.
애너하임은 투수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애너하임의 수호신 오스카가 등장합니다.”
김민이 선발 투수 중 가장 뛰어났다면, 클로저 중에서는 오스카가 가장 뛰어났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오스카가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필 여기서 오스카가!”
오스카는 90마일 중반대의 빠른 공과 크게 휘어지는 슬라이더, 그리고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떨어지는 싱커를 던졌다.
“윌리엄! 바뀐 투수를 상대합니다.”
윌리엄은 야구 격언대로 오스카의 초구를 노렸다.
‘바깥쪽이나 안쪽으로 잘 제구된 패스트볼이 날아올 테지.’
그는 95마일(153km) 패스트볼이 완벽히 제구된다면 쉽게 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쉽게 칠 수 없는 건 분명하지만,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야.’
배트를 꾹 쥔 순간 초구가 날아왔다.
‘바깥쪽!’
윌리엄은 빠르게 배트를 냈다.
하지만 그의 배트는 그대로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의 구속은 88마일(142km).
‘슬라이더야!’
오스카가 던진 슬라이더는 김민이 던진 것과 같은 고속 슬라이더였다.
“오스카! 멋진 슬라이더로 첫 카운트를 잡습니다.”
윌리엄은 최대한 집중했지만, 순식간에 카운트가 나빠지고 말았다.
“카운트 1-2, 오스카가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윌리엄은 이 상황에서 파울을 2개나 치면서 버텼지만, 결국 떨어지는 싱커에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득점 없이 8회 초 공격을 끝냅니다.”
이반 감독은 김민을 마운드에 올려 보내기 전에 투구수를 확인했다.
“77개입니다.”
“적지 않군.”
“하지만 1이닝은 충분히 던질 수 있습니다.”
이반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블렛소 투수 코치에게 말했다.
“킴의 투구는 9회까지일세.”
“알겠습니다.”
김민은 혼자 애너하임의 1선발과 필승조를 전부 상대하고 있었다.
이반 감독은 9이닝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킴에게 맡길 수만은 없다.’
김민은 8회 말 애너하임을 상대로 깔끔한 피칭을 선보였다.
“킴! 5, 6, 7번으로 이어지는 타순을 출루 없이 막아 냅니다.”
“투구수가 다소 많았지만, 훌륭한 투구였습니다.”
8이닝 무실점 7K 투구수 92개.
김민은 애너하임을 상대로 역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9회 초.
탬파베이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
“이번 회에는 어떻게든 점수를 뽑아야 한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타자들을 모아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오스카는 코치의 독려만으로 넘을 수 있는 투수가 아니었다.
“2002시즌 최다 세이브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스카! 다시 한번 삼진을 뽑아냅니다.”
4, 5, 6번의 호타순이 출루 한 번 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9회 말.
애너하임의 정규 이닝 마지막 공격.
“킴, 9회 말 다시 마운드에 오릅니다.”
“투구수 92개, 킴의 투구도 딱 이번 이닝까지일 것 같습니다.”
애너하임의 타순은 좋지 않았다.
“8, 9, 1번이라. 대타를 쓴다고 해도 좋다고 할 수는 없는 타순이군.”
포포비치는 연장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아직 필승조를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킴이 이번 이닝을 끝으로 내려간다면 우리에게도 승산은 있다.’
김민은 하위 타순을 상대로 공격적인 투구를 펼쳤다.
탁!
배트에 맞은 공이 2루수 스나이더에게 흘러갔다.
“스나이더! 공을 향해 달려듭니다.”
툭.
스나이더의 글러브에 들어갔던 공이 다시 튀어나왔다.
“험블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내야 안타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스나이더는 침착하게 대처했다.
‘당황하지 말자. 타자는 아직 반도 뛰지 못했어.’
그는 맨손으로 떨어진 공을 잡은 뒤 그대로 1루에 송구했다.
“아웃! 8번 스미스! 1루에서 아웃입니다!”
김민이 스미스를 잡기 위해 사용한 투구수는 2개에 불과했다.
“94개…… 첫 타자에게 투구수를 아꼈군.”
“하지만 다음 이닝에 등판하진 못할 겁니다.”
김민은 빠른 승부로 9번 타자를 잡아내고 1번 타자 본과 마주했다.
“본! 여기서 출루한다면 끝내기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주자가 나간다면 킴으로서도 상당한 압박이 될 겁니다.”
그러나 출루를 허용할 김민이 아니었다. 그는 하이 패스트볼로 본의 배트를 돌려세웠다.
“킴! 본을 삼진으로 막아 내고 이닝을 마칩니다!”
9이닝 무실점 8K 투구수 99개.
이반 감독은 박수로 에이스의 노고를 치하했다.
“나이스 피칭! 훌륭한 투구였어.”
그는 김민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아이싱을 지시했다.
그러나 김민은 글러브를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10회도 제가 던질 겁니다.”
블렛소 코치가 재빨리 끼어들며 물었다.
“킴, 그게 무슨 말인가?”
“오늘 경기에 1선발과 필승조를 모두 투입한다면, 양키스를 상대로 승산이 없습니다. 오늘 경기는 제가 끝까지 던지고 싶습니다.”
브라이튼은 뒤에서 그 말을 듣곤 김민의 등이 유난히 넓게 보였던 이유를 깨달았다.
‘킴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던 건 바로 이것 때문이었어. 오늘 킴은 마운드를 다른 누군가에게 맡길 생각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