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일진일퇴 04
“애너하임! 아직 좌절하긴 이릅니다! 찬스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해설자의 말대로 애너하임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3루에는 트로이가 나가 있었고, 타석에는 7번 타자 죠셉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상황만 놓고 보면 언제 점수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조셉은 우리 팀의 머레이 같은 친구지.”
렉터의 한마디에 부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레이라. 적절한 매칭이군.”
준수한 수비, 평균 이상의 컨택 능력, 그리고 일발 장타.
조셉은 2사라고 해도 적시타를 충분히 쳐 낼 수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는 바로 김민이었다.
김민을 상대로 적시타를 때려내는 것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타자들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슉!
빠른 공이 안쪽 코너를 노렸다.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이라고!’
움찔하는 순간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조셉은 미트에 들어온 공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큭…… 94마일(151km) 패스트볼을 안쪽에 그대로 꽂았어. 킴은 제구에 절대적인 자신이 있는 건가?’
보통 투수라면 주자가 3루에 있는 상황에서 원바운드 볼이나 안쪽 공을 쉽게 던질 수 없었다.
타자에게 맞거나 큰 바운드로 와일드 피치가 일어나면 바로 점수를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민의 투구에는 힛 바이 피치볼(데드볼)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김민은 오늘 공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었다.
‘날씨가 조금 쌀쌀하지만, 마운드와 그라운드 컨디션은 좋은 편이다. 외부 요인으로 제구가 어긋날 가능성은 없다.’
그는 3루 주자 트로이를 확인하곤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슈욱!
‘이번에도 빠른 공!’
조셉은 무릎을 굽히며 낮은 공을 공략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공이 낮게 떨어지면서 배트가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트로이는 재빨리 3루로 돌아가면서 미간을 좁혔다.
‘대단한 스플리터야.’
김민은 패스트볼과 스플리터를 섞은 피칭으로 애너하임 타자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애너하임 타격 코치 시몬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빠르거나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인가?’
선택지가 2가지라면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록튼의 생각은 달랐다.
‘오늘 킴의 컨디션은 최고야. 다양한 구종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도 타자를 잡아낼 수 있다는 뜻이야.’
3루 주자 트로이는 록튼과 시몬스 중간 정도의 입장이었다.
그는 김민의 공이 좋긴 하지만, 오늘 게임 전체를 지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플레이오프. 그것도 서든 데스 게임.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평소처럼 던지는 건 한계가 있어.”
다음 순간 김민의 손을 떠난 공이 큰 포물선을 그렸다.
“커브!”
트로이가 외마디 비명을 외친 순간 공이 포수 미트에 들어왔다.
팡!
미트의 위치는 정확하게 한가운데였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조셉은 심판에게 고개를 돌렸지만, 심판은 그의 항의를 받아 주지 않았다.
“한가운데였어.”
조셉이 고개를 숙이자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킴! 조셉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위기를 탈출합니다.”
유격수 브라이튼은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김민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오늘 킴의 투구는 달라.’
평소라면 주자가 3루에 있더라도 마지막 타자 정도는 시프트를 이용해서 잡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김민은 시프트 대신 자신이 직접 타자를 잡아내는 것을 선택했다.
‘타자에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이 보이지 않는 걸까?’
브라이튼은 그 이유가 조금 궁금해졌다.
“킴, 나이스 피칭.”
“좋은 승부였어.”
김민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피곤해.’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음료수를 마셨다.
평소 마시지 않는 스포츠 음료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달랐다.
쌉쌀한 맛이 온 몸에 힘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이 느낌은…… 아마 플라시보 효과겠지. 스포츠 음료에는 대단한 것이 들어 있지 않으니까.’
그는 플라시보 효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스포츠 음료도 괜찮았다.
‘그건 그렇고. 투구수가 생각보다 많아.’
5회 말 수비가 끝난 현재 그의 투구수는 54개였다.
6회 초.
바르가스의 피칭이 다시 한번 탬파베이 타선을 무력화시켰다.
“탬파베이, 오늘 바르가스에게 철저히 막히고 있습니다.”
“경기 초반 좋은 타구가 잇달아 잡히면서 타자들의 밸런스가 무너진 것 같습니다.”
4번 타자 아울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저 녀석 경기 초반보다 공이 좋아졌어.”
“바르가스 녀석, 슬로우 스타터인가?”
“그것보다는 플레이오프 무대에 적응한 것이겠지.”
서든 데스 게임의 선발.
중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바르가스도 엄청난 중압감과 함께 마운드에 올랐다.
1회 초 좋은 타구가 잇달아 나왔을 때, 바르가스의 긴장감은 최고로 높아졌다.
팀의 2002 시즌을 자신의 손에서 끝내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료들의 호수비가 그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바르가스는 1회가 끝난 뒤 평정심을 되찾았고, 3회부터는 중압감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킴이 버텨 줄 때 점수를 뽑아야 하는데……”
그렉스가 아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아울, 킴은 너희가 점수를 뽑아 줄 때까지 마운드를 지켜 줄 거야. 킴 걱정하지 말고 타석에만 신경을 써.”
아울이 고개를 끄덕이며 글러브를 들었다.
“그래야겠죠.”
그는 동료들과 함께 그라운드로 향했다.
6회 말.
애너하임 타석은 8, 9, 1번으로 이어졌다.
“애너하임, 이번 6회 말은 하위 타순입니다.”
“점수를 내기보다는 출루가 목적이 되겠죠. 한 명만 출루해도 2번 또는 3번까지 기회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딱!
날카로운 타구가 유격수 브라이튼의 글러브에 잡혔다.
“브라이튼 빠르게 1루에 송구합니다!”
“좋은 수비입니다!”
시프트의 성공.
김민은 글러브를 들어 유격수 브라이튼의 수비를 칭찬했다.
“브라이튼, 공을 잡는 위치가 좋았어.”
브라이튼은 고개를 끄덕이곤 아울에게 공을 받아 김민에게 연결했다.
“킴의 사인대로 수비 위치를 바꿨을 뿐이야.”
6회 말 김민은 평소의 김민이었다. 그는 시프트와 체인지 오브 페이스로 타자들을 맞춰 잡았다.
브라이튼은 생각했다.
‘킴의 등 뒤에서 더 이상 다른 느낌이 느껴지지 않아.’
그는 안정적인 수비로 김민의 투구를 뒷받침했다.
“9번 타자 빌, 포수 파울 플라이 아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1번 타자 본뿐이군요.”
본은 배트를 바짝 세웠지만, 커터를 패스트볼로 착각해 1루 땅볼에 그치고 말았다.
“애너하임의 6회 말 공격도 소득 없이 끝나고 맙니다.”
경기는 소강상태에 들어간 듯 보였다.
그러나 7회 초.
탬파베이 선두 타자 그렉스가 2루타를 터트렸다.
“그렉스의 2루타! 탬파베이! 단숨에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내보냅니다.”
“이건 노장의 투혼이군요!”
빈스 구단주는 그렉스가 오랜만에 몸값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군. 지난 3시즌 내내 최고 연봉이었던 선수가 이 정도도 못해 주면 곤란하지.”
그는 그렉스가 FA 이전 성적의 80%만 내줬어도 서든 데스 게임 없이 와일드카드를 확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포포비치 감독! 바로 마운드에 오릅니다.”
바르가스는 지금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탬파베이 타선을 잘 막고 있었다.
그러나 포포비치 감독은 바로 그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6이닝 무실점 4K.
바르가스는 이것으로 오늘의 투구를 마무리했다.
“포포비치 감독, 투구수 67개의 선발을 교체합니다. 파격적인 교체입니다.”
“이것은 아마 오늘 경기를 이겼을 때, 상황을 고려한 것 같습니다.”
“이겼을 때 상황이라면…….”
“양키스와 디비전 시리즈를 가정한 투수 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해설자는 오늘 경기 선발 투수를 빨리 내려야만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 다시 투입할 수 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반 감독 역시 포포비치 감독의 판단을 납득할 수 있었다.
“3일 휴식 후 등판이란 말이군.”
“킴은 어떻게 할까요?”
블렛소 투수 코치 역시 포포비치 감독과 생각이 같았다.
그는 김민에게 많은 투구수를 소화시키기보다는 80개 이내에서 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이반 감독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블렛소, 우리 불펜진이 애너하임을 넘을 수 있을까?”
“오스카가 대단하긴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로버트와 볼튼도 나쁜 투수는 아닙니다.”
“나쁜 투수는 아니지. 하지만 오늘 경기는 서든데스 게임일세.”
패하면 바로 끝나버리는 시리즈.
이반 감독은 김민을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블렛소,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곤란해.”
“그렇다면 감독님께서는……”
“우린 선발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도록 하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 킴이 나설 수 없게 됩니다.”
이반 감독이 말했다.
“오늘 게임에서 지면 디비전 시리즈는 한 게임도 할 수 없어. 그리고 디비전 시리즈에 킴이 등판할 수 있는 경기는 딱 1경기뿐이야.”
3차전 또는 4차전.
김민은 디비전 시리즈 5경기 중 딱 한 경기만을 나올 수 있었다.
이반 감독은 그 때문에 김민을 당겨쓴다고 해도 큰 이득이 없다고 생각했다.
‘킴을 당겨써서 얻는 이득보다는 실이 클 것이다.’
그가 코스타 타격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디비전 시리즈는 오늘 경기를 이긴 다음 생각하도록 하지. 코스타, 머레이 다음 타석에 대타를 준비하게.”
머레이 다음 타자는 2루수 칼튼이었다.
칼튼은 테이블 세터와 하위 타순을 오가는 준수한 선수였다.
그를 빼고 대타를 기용한다는 것은 승부수를 건다는 뜻이었다.
“괜찮겠습니까?”
“7회야. 승부를 걸 때가 됐어.”
바르가스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선수는 특급 셋업맨 자밀이었다.
“자밀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애너하임, 필승조를 일찍 투입했군요. 이것은 포포비치 감독의 승부수입니다.”
자밀은 강력한 패스트볼보다는 체인지업 구위가 일품인 선수였다.
“자밀은 완벽한 폼에서 체인지업을 던질 수 있는 선수야.”
“저 친구 체인지업은 중간 지점까지 패스트볼과 똑같다고.”
탬파베이 선수들조차 자밀의 체인지업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7번 타자 머레이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머레이는 길게 심호흡했다.
“후우……”
여기서 한 방이면 오늘 경기를 편하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겠지.’
그는 오른쪽 발로 배터 박스를 두드린 뒤 배트를 세웠다.
‘자, 와라.’
자밀이 글러브를 오므린 뒤 투구에 들어갔다.
슉!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머레이는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초구를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공이 총알처럼 날아갔다.
팍!
하얀 공이 흙과 함께 튀어 오른 곳은 라인 밖이었다.
“파울!”
애너하임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 1피트 차이였어!”
“이번 타구는 위험했군.”
마운드에선 자밀은 날카로운 타구에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음 투구에 들어갔다.
슈욱!
이번에도 바깥쪽.
‘체인지업?’
머레이가 멈칫하는 순간 공이 그대로 스트라이크존을 파고들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92마일(148km) 패스트볼.
빠른 공은 아니었지만 코너를 정확히 찔렀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공이었다.
“머레이가 코너에 몰렸군요.”
이반 감독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진루타라도 쳐 주면 좋겠는데.”
무사 2루 상황에서 애너하임 5번 타자 포델은 기습 번트를 선택한 바 있었다.
그러나 머레이는 포델과 달리 정면 승부를 펼쳤다.
그는 1사 3루보다 여기서 점수를 뽑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머레이는 자밀의 체인지업에 크게 헛스윙한 뒤 고개를 숙였다.
‘하아, 거참. 정말 패스트볼하고 똑같잖아.’
그는 자밀이 상당히 까다로운 투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타! 홀리오!”
코스타 타격 코치의 한마디에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탬파베이에서 대타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홀리오가 타격을 준비하는군요. 그는 3년 전만 해도 탬파베이 클린업을 쳤던 선수입니다.”
“저도 기억합니다. 타율은 좋지 않았지만 한 방이 있는 친구였죠. 그렉스와 화력 콤비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지만, 두 선수 모두 이후 좋지 않았습니다.”
홀리오가 주전 로스터에서 빠진 것은 김민이 25인 로스터에 합류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그는 시범경기 도중 작은 부상이 발견되어 DL(부상 선수)에 올랐다.
문제는 부상으로 쉬는 동안 발생했다.
평소 즐기지 않던 오토바이를 잠깐 탄 것이 문제였다.
빗길에 미끄러진 홀리오는 손목 부근에 부상을 입었고, 그 덕분에 수술대 위에 오르고 말았다.
수술에서 회복한 홀리오는 5월 25인 로스터에 등록되었는데 크게 부진한 나머지 트리플A로 내려가고 말았다.
그의 부진으로 3번 타자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안데르센이었다.
홀리오는 화려한 복귀를 벼르고 있었다.
‘킴이 탬파베이의 간판이라고? 3년 전만 해도 내가 팀의 간판이었어!’
그는 배트를 세우곤 자밀을 노려보았다.
‘자밀, 너도 3년 전에는 하찮은 신인 투수일 뿐이었지.’
슉!
빠른 공이 바깥쪽으로 날아왔다.
‘형편없는 공이군. 90마일(145km)이나 될까?’
배트를 휘두른 순간 공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떨어졌다.
자밀이 자랑하는 체인지업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홀리오는 크게 헛스윙한 뒤 균형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큭.”
캐스터는 그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홀리오! 크게 헛스윙합니다!”
“초구를 노리고 크게 한 번 쳐 봤군요. 하지만 자밀의 초구는 체인지업이었습니다.”
홀리오의 자신감은 대단했지만, 자밀은 3년 전 애송이가 아니었다.
그는 리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셋업맨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홀리오는 두 번 연속 헛스윙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저 녀석이…….”
포수 빌이 공을 미트에서 빼며 말했다.
“그렇게 잔뜩 힘이 들어가 있으면 자밀의 공을 칠 수 없을걸?”
적절한 조언이었지만, 빌의 한마디는 홀리오의 화를 크게할 뿐이었다.
“어림도 없지. 자밀 따위라니!”
그는 배트를 세우곤 다시 타석에 섰다.
“빌 똑똑히 보라고.”
“홀리오, 무리하지 말라고.”
“무리는 무슨. 내가 홈런 치는 걸 보기나 해.”
미간을 좁히자 공이 날아왔다.
슉!
이번 공도 바깥쪽이었다.
‘체인지업이라고? 탬포를 늦추고, 어퍼 스윙으로 걷어 올리면 되는 거야.’
3년 전.
그는 뛰어난 파워로 20홈런을 넘기며 탬파베이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3년 전 일이었다.
지금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막 올라온 선수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파앙!
미트에 들어온 공이 묵직한 소리를 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제스처는 홀리오의 배트가 헛돌았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4마일(151km).
자밀의 공은 체인지업이 아닌 패스트볼이었다.
“자밀, 바깥쪽 패스트볼로 홀리오를 잡아냅니다.”
“아주 좋은 공입니다. 타자의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았습니다.”
홀리오는 배터 박스에서 빠져나오며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어째서 저런 어설픈 공에……’
그는 자신의 아웃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코스타 타격 코치는 그가 아웃된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홀리오는 아직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이래서는 어렵겠군.’
록튼이 탬파베이 마지막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지만, 안타를 추가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록튼, 패스트볼을 공략했지만 2루수에게 잡히고 맙니다.”
“포포비치 감독의 계산대로 경기가 흘러가는군요. 자밀이 뛰어난 피칭으로 탬파베이 타선을 봉쇄합니다.”
록튼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뒤 김민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괜찮아. 상대는 리그 탑 셋업맨이라고.”
김민은 록튼을 다독이고 마운드에 올랐다.
‘애너하임 필승조가 나온 이상 절대 실점할 수 없다.’
그의 7회 말 첫 상대는 2번 타자 조지였다.
‘선두 타자는 조지인가?’
애너하임 더그아웃은 이번 7회 말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2, 3, 4번으로 시작되는 타순.
기대를 걸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3번째 타석입니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2번 타자 조지는 타격 코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초구를 공략했다.
딱!
그러나 코칭 스텝의 기대와 달리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교체된 2루수 스나이더가 두 팔을 벌립니다.”
스나이더는 안정적인 동작으로 공을 잡아낸 뒤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는 간단하지.”
그는 홀리오와 달리 꾸준히 벤치에서 자신을 갈고 닦은 선수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