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42화 (142/296)

142화 일진일퇴 03

2회 말.

김민이 마운드에 오르자 애너하임 관중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고! 고! 에인절스!”

“고! 몽키! 고! 몽키!”

다른 구장이라면 이상할 것이 없는 반응.

하지만 애너하임의 홈구장 에디슨 필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에디슨 필드는 트로피카나 필드 이상으로 팬들의 반응이 적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에인절스에 대한 함성이 나온다는 것은 열성팬들이 자리를 꽉 채웠다는 뜻이었다.

“에인절스! 이번 시즌 랠리 몽키의 기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지 기대가 됩니다!”

랠리 몽키는 애너하임의 비공식 마스코트로 그 기원은 2000년 6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9회 초까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5-4로 뒤지고 있던 상황.

당시 전광판 관리자가 실수로 영화 에이스 벤추라를 전광판에 노출시켰다.

애너하임 팬들은 전광판에 나타난 랠리 몽키를 보고 깜짝 놀랐고, 팀은 9회 말 2득점하면서 역전에 성공.

언론은 전광판에 나타난 랠리 몽키와 역전승을 묶어 기사를 냈고, 애너하임 팬들에게 랠리 몽키는 제2의 마스코트이자 승리의 상징이 되었다.

“킴이 상대할 첫 타자는 4번 타자 트로이입니다!”

트로이는 이번 시즌 32개의 홈런 0.291의 타율 113타점을 기록한 강타자였다.

록튼은 트로이가 들어선 순간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라파엘에 뒤지지 않는 위압감이다. 윌리엄이나 아울 이상이야!’

트로이의 강한 존재감은 김민도 느낄 수 있었다.

‘안쪽과 바깥쪽을 가리지 않는 히팅존, 게다가 파워 히터들이 어려워하는 체인지업에도 강하다. 다른 파워히터에 비해 비거리가 짧다는 것만 빼면 약점이 없는 타자다.’

특히 체인지업에 강하다는 것은 특유의 노림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게 잘 통할지 모르겠군.’

김민은 그립을 고쳐 잡곤 초구를 강하게 던졌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으로 향했다.

트로이는 바깥쪽 빠른 공을 봤음에도 배트를 내지 않았다.

파앙!

“초구는 볼입니다.”

김민이 던진 초구는 바깥쪽으로 휘는 커터였다.

트로이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커터에 반응하지 않았다.

‘커터를 꿰뚫어 본 건가? 아니야.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원하는 코스가 달랐던 모양이야.’

어느 쪽이든 김민으로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바깥쪽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안쪽으로 승부하는 건 말이 안 되고…….’

그는 한숨을 내쉬곤 다시 사인을 냈다.

록튼은 그 사인을 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 번 시험해 보자고.’

슉!

두 번째 공도 바깥쪽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트로이는 이번 공에도 배트를 내지 않았다.

파앙!

미트에 들어온 공이 좋은 울림을 냈다.

완벽한 스트라이크였기에 주심은 망설이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트라이크!”

배터 박스에 선 트로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바깥쪽 공은 철저히 거르겠다는 뜻.

김민은 미간을 좁혔다.

‘안쪽으로 던져 달라는 건가?’

이렇게 철저히 자신이 원하는 코스를 고집하는 타자도 드물었다.

‘좋아. 그렇다면 던져 주지.’

김민은 스플리터 그립을 잡았다.

안쪽으로 공을 던지겠지만, 스트라이크존에는 넣지 않겠다는 뜻.

슉!

빠른 공이 안쪽으로 향했다.

트로이는 이 공에 반응했다.

‘역시, 안쪽을 노리고 있었나.’

김민이 던진 공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빠르게 떨어졌다.

탁!

배트 안쪽에 맞은 공이 3루 라인을 벗어났다.

3루심이 활짝 두 손을 펴며 목소리를 높였다.

“파울!”

트로이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다시 배터 박스에 들어섰다.

‘쳇, 스플리터였군.’

그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김민을 공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트로이는 홈플레이트를 반만 이용하기로 했다.

바깥쪽은 버리고 철저한 안쪽 승부.

물론 김민이 그것을 알고 바깥쪽에 공을 집중적으로 던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트로이는 2번째 타석까지는 반쪽 승부를 고집하고자 했다.

‘스플리터와 패스트볼은 미묘하게 타이밍이 다르다. 다음에 하나 더 오면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거야.’

김민은 세 번째 공으로 트로이가 철저히 안쪽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깥쪽은 버리고 안쪽을 당기겠다는 뜻이군.’

일발장타를 노리는 타격법.

‘홈런은 줄 수 없지.’

김민은 심호흡을 한 뒤 4번째 공을 던졌다.

슈우욱!

빠른 공이 타자 눈높이로 날아갔다.

‘하이 패스트볼!’

트로이는 순간 배트를 멈췄다.

파앙!

“트로이가 하이 패스트볼을 참아냅니다!”

“킴의 하이 패스트볼은 참는 게 쉽지 않은데 잘 참았군요.”

김민은 록튼에게 공을 받은 뒤 모자를 고쳐 썼다.

‘인내심이 대단한 타자야. 그걸 참아내다니.’

그가 던진 하이 패스트볼은 안쪽 코스에 살짝 걸치는 공이었다.

안쪽 공을 노리고 있었다면 배트가 나오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트로이는 강한 유혹을 참아내고 배트를 멈추는 데 성공했다.

김민은 글러브의 공을 잡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하이 패스트볼을 배제했을지도 모르지.’

해설자는 김민이 오늘 경기에서 가장 많은 공을 던지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이윽고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2-2에서 다섯 번째 공을 던집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5구가 바깥쪽을 향했다.

슈욱!

미트에 들어온 공이 다시 한번 좋은 울림을 냈다.

파앙!

그리고 다음 순간 주심이 멋진 제스처를 취했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코너를 찌르는 바깥쪽 꽉 찬 패스트볼.

트로이는 룩킹 삼진을 당하는 순간에도 배트를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히팅 포인트는 완벽히 안쪽에 맞춰져 있었다.

“킴! 트로이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애너하임의 4번 타자가 룩킹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포포비치 감독으로서는 아쉬운 순간입니다.”

김민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트로이를 보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다음 타석을 위해서 아웃 카운트 하나를 버린 건가? 그게 아니라면…….”

그가 말을 줄인 것은 다음 가정이 그에게 불리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트로이가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위해 바깥쪽 공을 포기했을 리는 없다. 언제고 반드시 바깥쪽으로도 배트가 나올 것이다.’

김민은 다음 타석이 진짜 승부라고 생각했다.

“킴이 상대할 두 번째 타자는 5번 타자 포델입니다.”

“포델은 홈런수에서 트로이를 능가하는 타자입니다. 이 타자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포델은 2002 시즌 34홈런에 0.277의 타율 102타점을 기록했다.

트로이와 함께 30홈런과 100타점을 함께 기록한 타자로서 이번 시즌이 끝남과 동시에 FA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포델은 플레이오프에 나가 자신의 몸값을 더 올리고 싶을 겁니다.”

“플레이오프에 나가기 위해서는 오늘 승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포델은 트로이가 자신을 위해 보여 준 다섯 개의 공을 잊지 않고 있었다.

‘초구는 바깥쪽 커터, 2구는 바깥쪽 패스트볼, 3구는 안쪽 스플리터. 4구는 하이 패스트볼, 5구는 다시 바깥쪽 패스트볼.’

패스트볼이 3개. 커터와 스플리터가 1개씩.

김민의 2회 볼 배합은 패스트볼 위주였다.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춘다.’

슈욱!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

그러나 포델은 생각이 많았다.

‘바깥쪽 빠른 공. 커터인가?’

그는 김민이 트로이를 상대했을 때처럼 범타를 유도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속지 않는다.’

포델이 배트를 멈춘 순간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스트라이크!”

트로이를 상대할 때와 전혀 다른 볼 배합.

포델은 혀를 찼다.

‘쳇, 허를 찔렸군.’

김민이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던진 것은 그의 히팅포인트가 오른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었다.

‘포델은 안쪽 공을 당기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는 타자다. 바깥쪽으로 초구가 간다면 하나 정도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포델은 바깥쪽 초구를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대신 그대로 흘려보냈던 것이었다.

두 번째 공도 나쁘지 않았다.

낮게 떨어지는 커브에 포델의 배트가 끌려나왔다.

“스윙 스트라이크!”

카운트 0-2.

다른 투수라면 유인구를 하나 던질 타이밍.

그러나 김민은 망설이지 않고 안쪽으로 승부를 들어갔다.

탁!

여기서 좋지 않은 타구가 나왔다.

“배트 끝에 맞은 타구!”

불완전한 히팅 포인트만 보면 김민의 승리였다.

하지만 타구의 방향이 시프트의 허를 찌르고 있었다.

‘시프트 방향과 역으로 가고 있어!’

시프트를 걸지 않았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다.

그러나 탬파베이는 시프트를 사용하지 않는 타석이 없었다.

3루수 옆으로 흘러가는 타구.

“타구가 안데르센 옆을 통과합…….”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 전 안데르센이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안데르센! 타구를 멈춥니다!”

안데르센은 글러브로 타구를 막아놓곤 2차 동작에 들어갔다.

그는 떨어진 공을 주워 재빨리 1루에 던졌다.

“아웃! 아웃입니다! 안데르센의 파인 플레이!”

“포델의 다리가 느리기 때문에 가능한 플레이긴 했지만, 멋진 플레이였습니다.”

이반 감독은 이 수비를 보고 안데르센답지 않은 플레이라며 격찬했다.

“멋진 수비가 나왔군!”

바이슨 수석 코치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안데르센이 모두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수비가 약한 3루수가 아니다!”

렉터는 안데르센의 호수비를 보곤 이 경기가 시즌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플레이오프군.”

단판 경기였지만, 오늘의 경기는 정규 시즌 경기가 아닌 플레이오프에 해당했다.

“애너하임으로서는 안타를 하나 도둑맞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안타가 나왔다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을 겁니다.”

포델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트로이가 주먹을 내밀었다.

“나이스 배팅.”

“미안해. 패스트볼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플리터였어.”

“그래도 잘 때렸어.”

애너하임 선수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하이 텐션을 유지하고자 했다.

딱!

높이 뜬 공이 머레이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아서! 중견수 플레이로 아웃 됩니다!”

김민은 마지막 타자를 중견수 플레이로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쳤다.

“킴, 2회도 출루 없이 깔끔하게 막아 냅니다.”

“하지만 이번 2회는 1회보다 투구수가 많았습니다. 세 타자 모두 3구 이상을 던졌기 때문에…….”

TV로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팬들은 초반만큼은 탬파베이가 우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초반에 점수를 뽑으면 탬파베이가 쉽게 갈 거야.”

“반대로 0-0으로 간다면 탬파베이가 힘들겠지. 불펜은 애너하임쪽이 더 나으니까.”

탬파베이의 필승조.

볼튼과 로버트.

두 사람은 23홀드와 41세이브를 합작한 상위권 콤비였다.

그러나 그 두 사람도 애너하임 필승조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밀과 오스카.

두 사람은 애너하임의 불펜 콤비로 31홀드와 52세이브를 합작했다.

특히 오스카의 48세이브는 2002 시즌 아메리칸 리그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애너하임은 최강의 뒷문을 가지고 있는 팀이지.”

“오스카는 최강 클로저라고. 그가 나오는 순간 게임 오버야.”

물론 양키스 팬들은 이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리아노 리베라야 말로 최강의 클로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2 시즌으로 한정 짓는다면 오스카가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클로저였다.

3회와 4회.

양 팀은 주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빈타에 허덕였다.

“두 팀의 수비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2이닝 동안 단 한 명의 주자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너하임은 벌써 4이닝째입니다.”

김민은 애너하임을 상대로 완벽한 피칭을 선보이고 있었다.

5회 초.

탬파베이가 다시 주자를 내보내면서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애너하임의 호수비가 잇달아 나오면서 이닝이 종료되고 말았다.

“애너하임 선수들의 투지가 대단합니다.”

“오늘 경기는 물러설 곳이 없는 서든 데스 게임입니다. 평소와 다른 플레이가 연속해서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5회 말.

애너하임의 선두 타자는 4번 타자 트로이.

김민은 바깥쪽이 아닌 안쪽으로 초구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따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공이 펜스까지 날아갔다.

“트로이! 2루타입니다!”

“애너하임의 첫 안타를 장타로 장식하는군요.”

김민은 2루타를 맞은 뒤 로진백을 만졌다.

‘트로이 무서운 타자군. 안쪽으로 던진 스플리터를 그렇게 쉽게 받아칠 줄이야.’

그는 트로이가 약물과도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본즈와 같은 레벨일지도…….’

김민은 로진백을 내려놓은 뒤 트로이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지금 상대해야 하는 것은 트로이가 아닌 포델이다.’

5번 타자 포델은 배트를 바짝 세웠다.

‘적어도 진루타는 쳐야 한다.’

여기서 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웃된다면 상황은 1사 2루로 바뀌게 된다.

그는 적어도 1사 3루까지는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사 3루라면 땅볼 하나로도 점수를 뽑을 수 있다.’

슉!

바깥쪽 빠른 공.

포델은 몸을 낮추면서 두 손으로 배트를 쥐었다.

록튼은 그 자세에 크게 놀랐다.

‘5번 타자가 번트라고!’

포델은 김민을 상대로 연속 안타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주자를 3루에 보내면…….’

탁!

배트에 맞은 공이 1루 방향으로 흘러갔다.

‘좋았어!’

포델의 기습 번트에 탬파베이 내야가 흔들렸다.

“번트야!”

록튼마저 당황한 순간 김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1루부터 처리해!”

록튼은 고개를 끄덕이곤 흐르는 공을 잡아 1루에 송구했다.

파앙!

“아웃!”

1루 주자가 아웃되는 사이 2루 주자 트로이가 3루에 들어갔다.

상황은 이제 1사 3루로 바뀌었다.

“애너하임이 주자를 3루에 보냅니다!”

“포델이 번트를 델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30홈런 100타점을 넘긴 타자가 번트를 델 것이라고는 김민조차 예상할 수 없었다.

‘이것이 플레이오프인가?’

그는 상대의 굳은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이반 감독에게 말했다.

“전진 수비를 할까요?”

내야는 물론 외야까지 수비 위치를 당기자는 뜻이었다.

이반 감독은 고개를 내저었다.

“킴에게 맡기도록 하지.”

“괜찮을까요?”

“오늘 경기…… 우리가 믿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킴이야.”

김민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방법은 삼진과 내야 플라이밖에는 없었다.

땅볼이나 외야 플라이가 나온다면 트로이는 홈으로 돌진할 게 뻔했다.

“6번 타자 아서! 배트를 짧게 잡습니다.”

“이건 외야 플라이보다는 땅볼을 노리는 자세군요.”

“킴을 상대로 깊은 외야 플라이는 무리라는 판단 같습니다.”

김민은 호흡을 조절했다.

“후흡…….”

주자가 3루에 있는 것만 아니라면 땅볼은 훌륭한 투구 결과였다.

하지만 이번 타석에서만큼은 땅볼을 허락할 수 없었다.

‘공을 띄운다.’

슈우우욱!

빠른 공이 타자 눈높이로 날아왔다.

‘하이 패스트볼!’

아서는 찍듯 배트를 내리쳤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6마일(154km).

‘무린가?’

정상적인 스윙이 아닌 다운 스윙.

그 스윙으로는 95마일(153km) 이상 빠른 공에 대한 대처가 늦었다.

“킴! 하이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습니다!”

“아주 위력적인 공입니다.”

아서는 떠오르는 라이징 패스트볼에 미간을 좁혔다.

‘레벨 스윙이 아닌 다운 스윙으로는 저 공을 때려낼 수 없어.’

그는 준수한 타자였지만 트로이나 라파엘급 재능을 가지고 있는 타자가 아니었다.

‘레벨 스윙으로 할 수 있을까?’

아서는 스플리터나 커터가 차라리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위기의 상황에서 던지는 라이징 패스트볼이라. 만화에 나오는 비밀 무기 같군.’

배트를 들자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슉!

바깥쪽 코너를 찌르는 패스트볼.

아서는 이 공에도 헛스윙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4마일(151km).

“아서의 배트가 조금 느린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화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어깨가 평소보다 일찍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면 좋은 결과가 나오기 힘듭니다.”

위기와 찬스.

의미가 크게 다른 단어였지만, 그것을 앞에 둔 두 선수의 반응은 같았다.

긴장과 경직.

“후…….”

김민은 길게 숨을 내뱉는 것으로 흔들리는 자신을 다독였다.

반면 아서는 긴장감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배트를 들자 세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슉!

바깥쪽 빠른 공.

‘패스트볼이든 스플리터든 상관없다! 어떤 공이든 쳐 내주마!’

아서는 앞선 두 번의 다운 스윙을 버리고 레벨 스윙으로 바꾸었다.

‘내 최고의 스윙이다.’

그러나 그의 배트는 끝내 공을 쳐 내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 공이 떠오르면서 배트를 비켜나갔다.

‘라이징 패스트볼!’

파앙!

미트에 들어온 공이 깊은 소리를 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애너하임에게는 최악의 결과였다.

“킴! 아서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2002 시즌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투수가 누구입니까? 바로 킴입니다! 그것을 확실히 보여 주는 삼진이었습니다!”

트로이는 아서의 삼진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포델의 판단은 정확했다. 킴을 상대로 연속 안타를 뽑아내는 것은 무리야.’

그는 정상적인 타격으로는 김민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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