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39화 (139/296)

139화 와일드카드 경쟁 05

“킴! 이치로를 잡아내며 위기를 탈출합니다!”

오늘 경기가 없던 양키스.

뉴욕 양키스의 캡틴 지터는 오랜만에 여자가 아닌 야구와 저녁을 함께 하고 있었다.

“이치로를 삼진으로 잡은 공. 다시 한번 보고 싶군.”

3회 말 마지막 타석이었기에 이치로의 아웃 장면은 다시 재생되지 않았다.

포사다가 광고를 보며 혀를 찼다.

“킴의 공이나 다시 한번 보여 달라고!”

“프로는 돈이고, 돈은 시청률과 광고에서 나오지. 포사다, 그렇게 흥분할 필요 없어.”

“다른 방송사는 광고가 시작되기 전 다시 한번 마지막 장면을 보여 준다고!”

“그보다는 킴의 마지막 공 말이야.”

지터의 한마디에 포사다의 노기가 가라앉았다.

“그 공 말이지?”

TV 화면에 마지막으로 표시된 구속은 92마일(148km).

그러나 지터와 포사다는 그 공이 커터인지 고속 슬라이더인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데릭은 어떻게 생각해?”

“커터일 거야.”

“그렇지?”

포사다는 고속 슬라이더가 92마일까지 나왔다면 이는 큰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슬라이더 구속이 92마일까지 나온다면, 좌타자 안쪽으로 파고드는 코스는 물론 우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코스까지 완벽하게 공략할 수 있다. 랜디 존슨도 아니고 킴이 그런 슬라이더를 던질 리가 없지.’

두 사람이 음료수를 입에 가져간 사이 광고가 끝났다.

“광고가 길지 않아서 좋군.”

“리그 상위권 팀들의 대결인데 굵직한 광고들이 보이지 않는군.”

“그건 시애틀이 아닌 탬파베이 때문이겠지.”

빅마켓 팀과 스몰마켓 팀.

그 차이는 광고만 봐도 확인할 수 있었다.

탬파베이의 4회 초 공격.

가르시아가 처음으로 출루 없이 삼지범퇴 이닝을 만들어 냈다.

“꾸역꾸역이군.”

지터의 평가는 박했다.

반면 포사다는 이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자범퇴 이닝이야. 좋게 평가할 만하다고.”

“수비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번 이닝에도 주자가 나갔을 거야.”

“데릭, 수비의 도움을 받는 것은 가르시아만이 아니야. 모든 투수가 수비의 도움을 받아 타자를 상대하지.”

지터는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비의 도움을 받는다. 보통 투수들은 그렇지. 하지만 킴은 달라. 그는 마치 포수처럼 수비를 지휘하고 있어. 다른 투수들과 킴의 차이를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 점을 언급하겠어.”

포사다는 포지션이 포수였기 때문에 김민이 시프트에 관여하는 것이 마냥 좋게만 보이지 않았다.

“모든 투수가 킴과 같다면 포수들은 연봉을 20%는 삭감해야 할 거야.”

“그러고 보니, 록튼 저 친구는 어떤 것 같아?”

“록튼?”

“탬파베이 포수 말이야.”

TV 화면 속의 록튼은 안정적인 자세로 공을 잡아내고 있었다.

“괜찮은 친구지.”

“그뿐이야?”

“그 이상 평가는 곤란하지 않을까?”

포사다는 록튼이 좋은 포수라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올스타 레벨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데릭은 다르게 생각하는 건가?”

“난 올스타와 레귤러의 경계선에 서 있는 선수라고 생각해.”

“경계선이라 애매한 답변이네.”

지터가 음료수를 들며 말했다.

“공격과 수비, 어느 쪽이든 지금보다 한 발짝 더 내딛는다면 올스타 레벨로 올라서게 될 거야.”

록튼은 준수한 수비력을 가진 포수였다. 하지만 수비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터는 록튼이 50% 이상의 도루 저지를 기록하거나 0.280 이상의 타율에 15홈런 이상을 기록한다면 올스타에 뽑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느 쪽이든 쉽지 않은 일이지.’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2번 타자 마이크의 록킹 삼진.

포사다는 혀를 내둘렀다.

“완전히 허를 찔렀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볼 배합을 할 수가 있지?”

“허를 찔렀다기보다 선택지가 너무 다양해서 타자가 따라가지 못한 게 아닐까?”

지터는 김민이 상대의 심리를 읽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킴은 함정을 파고 그곳으로 상대를 유도하는 투수다.’

그는 김민을 독심술사보다는 트랩 설계자라는 별명으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포사다는 경기를 관전하면서 나름대로 볼 배합을 해 보았다.

‘지금까지 고민에 빠졌던 순간이 두 번 있었다. 하지만 킴은 단 한 번도 없는 사인을 내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볼 배합에서 킴은 나보다 위인 건가?’

포사다는 그럴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킴, 포수를 했어도 잘했을 거야.’

김민은 3번 타자 덴을 단 하나의 공으로 처리하고 4번 타자 브렛과 맞섰다.

“브렛 지난 타석에서 보여 준 아쉬움을 이번 타석에서 지워야 합니다!”

“앞선 타석에서 보여 준 타구는 시애틀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었죠. 팀의 4번 타자라면 그 실망을 환호로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해설자가 목소리를 높인 순간 김민이 초구를 던졌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으로 향했다.

‘또 바깥쪽이냐?’

이번 이닝 김민의 초구는 세 번 모두 바깥쪽이었다.

브렛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배트를 휘둘렀다.

딱!

경쾌한 타격음.

그러나 타구는 3루 라인을 벗어나고 말았다.

“파울!”

김민은 록튼에게 공을 돌려받은 뒤 호흡을 조절했다.

“후우…… 쉽지 않은걸.”

브렛의 배트 스피드는 첫 번째 타석보다 빨랐다.

‘초구에 배트가 나와 주는 것은 고맙지만, 이렇게까지 따라온다면 위험하군.’

그는 그립을 고쳐 잡았다.

슉!

빠른 공이 눈높이로 날아왔다.

‘하이 패스트볼?’

브렛은 배트를 멈췄다.

그는 김민의 하이 패스트볼이 알고도 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파앙!

미트에 들어온 공.

브렛은 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심은 오른손을 들었다.

“스트라이크!”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한 공이 아니라 카운트를 잡기 위한 하이 패스트볼.

“정말로 존에 들어온 겁니까?”

브렛의 물음에 주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덜 떠올랐어.”

순식간에 카운트는 0-2로 나빠졌다.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브렛, 배트를 내지 않고 하나 지켜보았습니다.”

포사다는 브렛의 고민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배트가 나갔을 거야. 하지만 상대가 킴이니 쉽게 배트를 낼 수 없었겠지.”

지터도 이점은 동의했다.

“킴의 라이징 패스트볼은 상당히 까다롭지. 라이징 패스트볼이라고 생각한 순간 평범한 패스트볼이 들어오거든. 두 가지를 모두 머릿속에 넣어야 하니, 스윙이 나빠질 수밖에. 아마 브렛은 자신의 히팅 포인트가 흔들리는 것을 염려해 배트를 내지 않았을 거야.”

브렛은 김민의 유인구를 하나 더 참아냈지만, 다음 공에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브렛 삼진으로 이번 타석을 끝냅니다.”

지터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2, 3, 4번이 그대로 끝나는군.”

“4이닝 무실점. 킴에게는 흔한 일이잖아.”

김민의 무실점 투구는 4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5회와 6회.

김민은 단 한 명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치로가 또 아웃되는군.”

“이번에는 좋지 않은 공을 쳤어. 이치로답지 않아.”

“전 타석의 플라이가 영향을 미친 건가?”

이치로가 2루수 땅볼로 물러난 공은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경기 유독 투구수가 적은데?”

지터가 되물었다.

“우리하고 할 때보다?”

포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6이닝 동안 37개밖에 던지지 않았어.”

“산술적으로는 50개 안쪽에서 경기가 끝난다는 말이군.”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일까?”

포사다의 물음에 지터가 미간을 좁혔다.

“이건 투수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야.”

시애틀 타자들은 페이튼의 전략이 실패했음을 알고도 계속 초구를 공략하고 있었다.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 원하는 공을 치는 게 더 나아.’

김민의 최소 투구수 경기는 시애틀 타자들의 협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투구수는 적지만 오늘은 삼진이 별로 없군.”

“5개였던가?”

6이닝 동안 5개.

이닝당 0.8개였으나 삼진이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삼진이 적어 보였다.

지터가 살짝 화제를 돌렸다.

“이번 시즌 사이영상은 킴의 것이군.”

“지금 당장 시즌이 끝난다고 해도 킴을 이길 선수는 없어.”

보스턴 레드삭스의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2점대 평균자책점과 20승에 도전하고 있었지만, 김민과 비교하면 양쪽 모두 밀렸다.

“그래도 페드로가 트리플 크라운은 막았어.”

트리플 크라운.

평균자책점, 다승, 삼진 타이틀의 동시 획득.

이것은 시즌을 지배한 압도적인 투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 김민은 페드로 마르티네스에 막혀 트리플 크라운만은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많아야 4게임. 50개의 삼진 차이는 줄일 수 없겠지.”

김민은 지난 시즌보다 스피드와 무브먼트가 좋아지면서 삼진 숫자가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 트리플 크라운을 논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삼진 순위는 리그 7위였다.

“트리플 크라운은 그냥 훈장 같은 것이라고. 진짜 중요한 것은 팀 성적이지.”

지터는 김민이 탬파베이를 플레이오프에 보낼 수 있다면 MVP를 수상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탬파베이 말이야. 디비전 시리즈에 나갈 수 있을까?”

포사다의 물음에 지터가 대답했다.

“아마도.”

그는 탬파베이의 지금 기세라면 90승 이상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애너하임의 기세가 좋지만, 그것이 끝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게다가 애너하임은 오클랜드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지. 그 일전에서 스윕이라도 당한다면 와일드카드는 탬파베이의 것이 될 거야.’

머니볼로 유명한 빌리 빈이 이끄는 오클랜드.

그들은 시애틀을 뒤로 밀어내고, 서부지구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가르시아는 여기까지군.”

7회 초.

가르시아는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맞곤 불펜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탬파베이 타자들은 이 기회를 살리려고 노려했지만, 잇달아 범타가 나오면서 기회가 날아가고 말았다.

“시애틀도 저력이 있어.”

“7회까지 2-0, 기세가 좋은 탬파베이를 잘 막고 있군. 하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힘이 부족해.”

7회 말.

4번 타자 브렛이 드디어 출루에 성공했다.

“시애틀 2사 후에 다시 주자가 나갑니다.”

김민은 이마의 땀을 닦곤 모자를 다시 썼다.

‘유인구가 지나쳤나?’

그는 6회 말이 끝난 뒤 투구수를 확인하곤 지나치게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7회 유인구의 비중을 높인 볼 배합을 들고 나왔다.

스타트는 좋았다.

2번 타자 마이크를 삼진, 3번 타자 덴을 2루수 땅볼로 처리한 것이다.

하지만 4번 타자 브렛만큼은 쉽게 처리할 수가 없었다.

“5번 타자 마르틴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킴은 장타를 조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큰 것 한 방이면 바로 동점입니다.”

탬파베이의 2-0리드.

해설자의 말대로 홈런 한 방이면 바로 동점인 상황이었다.

지터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곳이 승부처군.”

포사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마르틴 정도면 쉽게 갈 수 없지.”

두 사람은 김민이 브렛을 상대할 때보다 더 어렵게 승부를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모두의 예상이 어긋나고 말았다.

딱!

페스트볼을 받아친 공이 내야에 높이 떠올랐다.

김민은 뒤로 빠지면서 오른손을 들었다.

“마운드 위야.”

안정적인 수비력을 지닌 1루수 아울이 마운드 쪽으로 달려왔다.

“내게 맡겨 줘.”

그는 침착하게 뜬 공을 잡아내 이닝을 끝냈다.

“마르틴, 초구를 노렸지만, 내야 플라이로 끝나고 맙니다.”

“너무 성급한 승부였습니다.”

해설자와 캐스터 그리고 양 팀 코치진까지 모두가 성급한 승부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 한 명.

김민은 이번 승부가 위험했다고 생각했다.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잘 따라붙었다. 히팅 포인트가 좋지 않았지만,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는 시애틀 타자의 눈에 점점 자신의 공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8회 초.

탬파베이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추가점을 뽑았다.

“케니히가 아울의 적시타로 홈을 밟습니다.”

케니히의 안타, 윌리엄의 진루타. 그리고 다시 아울의 적시타.

탬파베이는 안타 2개와 희생타 하나를 묶어 소중한 추가점을 뽑아냈다.

“승부의 추가 완전히 기울었군.”

지터는 이쯤 되면 상황을 되돌리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포사다가 지터에게 물었다.

“데릭, 그거 알아?”

“킴의 투구수 말인가?”

“아니, 킴이 아직 노히터야.”

메이저리그에서는 사실 노히트 노런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히트 노런 대신 노히트 게임이란 용어를 상했다.

이 둘은 사실 조금 달랐지만,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와일드카드 경쟁팀을 상대로 노히터라. 하지만 그걸 의식하는 순간 피칭이 어려워질 거야.”

퍼팩트 게임이나 노히트 게임 같은 기록들은 마지막 순간이 가장 중요했다.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게임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지. 킴은 어떨까? 그 고비를 넘을 수 있을까? 아니면 기록 따위는 무시하고 자신의 투구를 가져갈까?’

지터는 안타를 하나 맞고 승리를 가져가는 것이 가장 김민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8회 말에도 안타는 나오지 않았다.

“킴, 8회 세 타자를 간단히 돌려세웁니다. 투구수는 60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7회 유인구를 많이 쓰지 않았다면 김민은 50개 선에서 8회를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민은 최소 투구수 완봉 기록과 같은 기록을 신경 쓰지 않았다.

‘퍼팩트 게임도 아니고, 그런 기록을 어떻게 일일이 신경 쓴단 말이야. 그건 기록원들이나 의식하는 기록이라고.’

8회 말 수비를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다들 긴장하고 있잖아. 왜지?’

그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노히트 게임이야.”

김민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실책 하나에 볼넷 하나, 그러고 보니 안타를 맞지 않았군.’

노히트 게임.

대부분의 투수가 의식하는 기록이었지만, 김민은 미소로 흘려넘겨 버렸다.

‘1년에 몇 번씩 나오는 기록이잖아. 의식할 필요는 없어.’

그는 퍼팩트 게임이 아닌 다음에야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9회 초 공격이 끝나고 시애틀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시애틀 선두 타자는 대타 로빈슨입니다.”

“폴만 감독이 드디어 칼을 빼들었군요. 노히터 게임은 허락할 수 없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대타로 나온 로빈슨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가 친 타구는 1루수 아울의 정면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킴! 첫 타자를 1루수 땅볼로 잡아냅니다! 이제 노히트 게임까지 앞으로 아웃 카운트 2개가 남았을 뿐입니다!”

지터가 소파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승부는 탬파베이가 가져갔지만, 기록은 아직 아니야.”

9회 말 시애틀의 두 번째 타자는 이치로였다.

안타 머신 이치로.

그는 지난 시즌 MVP의 명예를 걸고 타석에 들어섰다.

‘팀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대기록의 재물이 될 수는 없다.’

이치로는 신중하게 공을 보기로 했다.

슉!

초구는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이치로는 이 공을 걸러내는데 성공했다.

‘기록을 의식한 것인가? 킴의 볼 배합이 바뀌었어.’

김민이 다소 방어적으로 볼 배합을 바꾼 것은 기록을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4번째 타석. 경기 초반처럼 던지면 타자를 이길 수 없어.’

그는 타자들의 눈에 공이 익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볼 배합을 바꾼 것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안쪽을 파고든 패스트볼에 이치로가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스플리터가 아니라 느린 패스트볼이군.’

빠른 공, 그리고 더 빠른 공.

그 모든 것을 깨는 느린 공.

김민은 세 가지 패스트볼로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탁!

세 번째 공은 커트.

카운트는 1-2로 김민에게 기울었다.

하지만 이치로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2개를 더 커트하면서 버텼다.

“이치로! 느린 커브를 커트합니다.”

“특유의 집중력이 살아난 것 같습니다.”

포사다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땀이 찬 것을 깨달았다.

‘이 승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김민은 이치로에게 여섯 번째 공을 던졌다.

슉!

바깥쪽 꽉 찬 패스트볼.

따악!

이치로는 다시 한번 공을 커트해냈다.

“파울!”

지터는 이치로의 끈질김에 박수를 쳤다.

“훌륭해. 여기서 쓰러진다고 해도 아무도 욕을 하지 못할 거야.”

이치로의 끈질긴 저항에 투구수도 어느덧 60개를 훌쩍 넘었다.

“킴, 일곱 번째 공을 준비합니다.”

“지금 이치로는 빠른 공과 느린 공을 모두 쳐 내고 있습니다. 구종이 다양한 킴도 이래서는 답이 없지요.”

평소라면 한가운데로 공을 던져 안타를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민은 의식적으로 안타를 피하고 있었다.

공을 글러브에 넣은 순간 김민은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바보 같이 기록을 의식하고 있잖아.’

그는 그립을 고쳐 잡았다. 그리곤 한가운데를 향해 공을 밀어 넣었다.

‘그대로 꽂혀라!’

슈우우욱!

빠른 공이 질풍처럼 미트를 향해 돌진했다.

이치로는 한가운데로 날아오는 공에 깜짝 놀랐다.

‘이건 대체!’

배트를 움직였지만, 이미 타이밍이 늦고 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멋진 제스처와 함께 이치로가 삼진으로 물러났다.

지터는 김민의 승부를 보곤 목소리를 높였다.

“어메이징이군! 그 상황에서 한가운데 라이징 패스트볼이라니!”

포사다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라면 걸렀을 거야. 저기서 스트라이크라니.”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김민이 마지막 타자 마이크를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나곤 노히트 게임을 완성했다.

“킴!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첫 번째 노히트 게임을 완성합니다!”

“놀라운 피칭이었습니다! 시애틀을 상대로 이렇게 던질 수 있는 투수가 얼마나 될까요?”

폴만 감독은 노히트 게임과 함께 디비전 시리즈도 날아갔다고 생각했다.

‘와일드카드는 이제 탬파베이와 애너하임의 싸움이 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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