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와일드카드 경쟁 02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후반기 성적은 일정한 패턴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시리즈 첫 경기 성적이 유독 좋지 않아.”
탬파베이는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시리즈 첫 경기 성적이 좋지 않았다.
오늘 경기를 뺀 후반기 첫 경기 승률은 0%.
반대로 시리즈 마지막 경기 성적은 75%로 평균 이상이었다.
‘내 추측이 맞다면, 시리즈 첫 경기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는 달라진 구장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반대로 시리즈 마지막 경기 성적이 좋은 이유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마쳤기 때문이겠지.’
김민은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이유를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찾았다.
‘개방형 구장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무더위가 몰아친다. 반면 돔 구장인 트로피카나 필드는 계절과 상관없이 일 년 내내 일정한 기온을 유지한다. 이 차이가 선수들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야.’
그는 트로피카나 필드를 떠난 날과 돌아온 날 유독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을 주장의 근거로 삼았다.
‘이 차이를 좁힌다면 성적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김민은 노트북을 닫은 다음 이반 감독을 찾아갔다.
이반 감독은 김민을 보자마자 두 손을 활짝 폈다.
“킴, 여기 있었군.”
“감독님 드릴 말씀이…….”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네. 대기록을 세운 투수가 여기서 있으면 곤란해.”
“대기록이라니요?”
이반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킴이 오늘 우리 구단 최소 투구수 완봉승 기록을 세웠어.”
구단 내 기록.
역사가 긴 구단이라면 모를까 탬파베이처럼 역사가 짧은 구단은 구단 기록을 세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탬파베이 구단은 새로운 기록에 주목했다.
- 기록이 쌓여서 역사가 되는 것이다.
빈스 구단주는 짠돌이였지만,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선수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며, 기록 쌓기를 장려했다.
“가세 킴. 기자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면 평판이 떨어지고 말아.”
김민은 이반 감독과 함께 인터뷰룸으로 향했다.
* * *
“킴은 이번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본인 생각하기에 이번 시즌은 10점 만점에 몇 점인 것 같습니까?”
평범한 질문이었다.
김민이 마이크를 끌어당기며 대답했다.
“이번 시즌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 몇 점이라고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목표라면…… 혹시 사이영상이나 트리플 크라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제 목표는 팀을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시키는 것입니다.”
탬파베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없었다.
김민이 그것을 해낸다면 탬파베이 초창기를 이끈 에이스로 이름이 남게 될 것이다.
“개인 기록보다는 팀을 우선하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개인 기록은 승리를 쌓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반 감독은 김민의 대답에 만족했다.
‘킴은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선수다. 그가 굳게 버티는 한 탬파베이는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의 어려움도 곧 이겨낼 수 있을 테지.’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오늘 구단 최소 투구수 완봉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기록을 알고 계셨습니까?”
“아뇨. 기록 자체를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집중해서 공을 던졌기 때문에 나온 기록이란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김민의 인터뷰는 팀 승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킴, 최근 탬파베이가 부진에 빠져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적하신 대로 우리 팀은 부진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톱니바퀴 몇 개가 어긋난 것뿐이죠. 톱니바퀴를 제 자리로 돌린다면 다시 잘 돌아가게 될 겁니다.”
기자들은 김민의 인터뷰 기술이 2년 차 선수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킴이 인터뷰에서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은 수준급이야. 소포모어 시즌이라고 믿기지 않아.’
‘태평양을 건너온 선수 중 인터뷰 기술은 킴이 최고지.’
김민은 몇 가지 질문을 더 주고받은 다음 인터뷰를 마쳤다.
이반 감독은 김민과 함께 인터뷰룸을 빠져나온 뒤 걸음을 멈췄다.
“킴, 아까 내게 할 말이 있던 것 같은데.”
김민은 자신이 찾아낸 사실을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이반 감독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 다음 턱을 쓰다듬었다.
“흠, 아주 일리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군.”
그는 메이저리거들이 얼마나 온도에 민감한지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배트의 상태를 최상으로 맞추기 위해 특수 제작된 케이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몇몇 구장은 공인구마저 특별한 장소에 보관하지. 한여름 4, 5도의 기온 차이…… 이건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이반 감독이 김민에게 말했다.
“자네 말은 이해하겠네. 하지만 구장 내부 온도에 극적인 변화를 주긴 힘들 걸세.”
“관중들 때문입니까?”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트로피카나 필드의 온도를 다른 구장과 같게 맞춘다면 관중들이 꽤 불편해질 걸세.”
“그래도 1, 2도 정도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 2도라. 그 정도는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걸세.”
다음 날.
이반 감독은 운영팀장 코너를 찾아가 실내 기온을 1도 높이는 데 합의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군.’
그가 딱 1도만 온도를 높인 것은 선수들이 어제 경기로 어느 정도 트로피카나 필드에 적응을 마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조금씩 개방형 구장과 격차를 줄여 나가면 되는 거야.’
김민의 조언이 효과를 발휘한 것일까?
탬파베이는 경기 초반부터 상대를 몰아쳤다.
“1사 1, 2루에서 아울의 적시타가 터집니다!”
“오늘은 탬파베이가 초반부터 상대를 몰아치는군요.”
볼티모어 투수진은 5회가 끝나기 전에 9점을 주며 일찍 백기를 들어 올렸다.
“볼티모어, 토미 감독이 백업 선수들을 대거 투입합니다.”
“오늘 경기는 상위권 팀과 하위권 팀의 전력 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경기입니다.”
탬파베이는 7회 다시 3점을 더 뽑아서 스코어를 12-3까지 벌렸다.
“나이스 배팅!”
“잘한다!”
적시타를 친 머레이가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동료들과 하이 파이브를 나누었다.
오늘만큼은 양키스가 부럽지 않았다.
이날 탬파베이는 14-4로 볼티모어를 누르고 연승 행진에 시동을 걸었다.
* * *
메이저리거들에게 8월은 가장 힘든 계절이었다.
더위와 체력 고갈, 그리고 부상이 함께 찾아왔다.
“휴…… 어서 8월이 갔으면 좋겠어.”
그렉스가 땀을 닦으며 말하자 렉터가 유쾌한 목소리로 그 말을 받았다.
“영감님 8월이 지나면 추위가 찾아옵니다. 그땐 8월이 그리워질걸요?”
“그리워져도 좋아. 일단 이 지긋지긋한 더위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탬파베이는 지금 텍사스 원정 중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1차전을 잡았습니다.”
“설리반이 살아난 덕분이지. 그 친구 8월 내내 1승도 올리지 못했잖아.”
오늘 탬파베이 선발 투수는 부르스였다.
부르스는 3이닝 동안 1실점으로 버티며 좋은 투구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는 부르스처럼 노련하게 던지는 게 필요해. 타자들도 지쳐 있거든.”
그렉스는 부르스가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은 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부르스는 강속구를 잃었지만, 운영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얻었어. 운영 능력을 가진 투수는 30대 후반까지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탬파베이는 4회 초 대거 3득점 하며 3-1로 경기를 뒤집었다.
“탬파베이 브라이튼이 살아나면서 좋은 경기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승리하면 와일드카드 경쟁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습니다.”
현재 아메리칸 리그 와일드카드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1위 애너하임 에인절스 72승 48패
2위 시애틀 매리너스 71승 48패
3위 보스턴 레드삭스 70승 49패
4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69승 51패
탬파베이가 승리할 시 오늘 경기가 없는 보스턴을 1게임 차이로 추격할 수 있었다.
이반 감독은 오늘 경기를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즌 종료까지 40경기 남짓 남았을 뿐이다. 지금 경기 차를 좁히지 못하면 마지막 순간 따라갈 힘을 잃고 만다.”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평균적으로 3경기 차이를 좁히는데 1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와일드카드 1위인 애너하임과 탬파베이의 경기 차이는 3경기.
탬파베이는 아직 선두 애너하임을 사정권에 넣고 있었다.
하지만 텍사스에게 패해 4경기 이상으로 경기 차이가 벌어진다면 후반 대역전이 힘들어졌다.
“다들 힘을 내자.”
목소리를 높인 선수는 록튼이었다.
“저 친구 기세가 좋군.”
윌리엄이 미소를 지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그의 말을 들은 퍼지가 미트를 두들겼다.
“배트 휘두르는 능력은 목소리보다는 못하던데?”
“9번은 역시 9번인가?”
“윌리엄, 그럼 자네가 3번 타자다운 모습을 보여 주라고.”
윌리엄이 배트를 세우며 말했다.
“패스트볼을 준다면 생각해 보도록 하지.”
“알겠어. 그럼 초구는 패스트볼이야.”
슉!
초구는 제법 빨랐다.
하지만 윌리엄은 이 공이 패스트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슬라이더군.’
그는 몸을 낮추며 슬라이더를 통타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우중간을 갈랐다.
“윌리엄! 적시타입니다! 주자들 모두 홈으로 들어옵니다.”
“멋진 타격입니다! 윌리엄. 팀이 필요로 할 때 좋은 타구를 만들어냅니다.”
1사 1, 3루 상황에서 나온 2루타.
탬파베이는 5-2로 리드를 잡았다.
“탬파베이 기세가 무섭습니다.”
“7월 부진에서 빠져나온 모습이야.”
탬파베이는 8월 한 달 동안 5할 승률을 회복하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되찾았다.
“가자! 레이스!”
원정 팬의 목소리가 텍사스 팬들을 자극했다.
“언제부터 탬파 녀석들이 여기까지 온 거야?”
“이번 시즌부터겠지. 저 녀석들 지난 시즌까지는 별 것 아니었잖아.”
탬파베이 선발 부르스는 이날 7이닝 3실점으로 호투 시즌 7승을 달성했다.
반면 텍사스는 2연패를 당하면서 4위까지 순위가 떨어지고 말았다.
“에이로드와 퍼지가 그렇게 해 주는데도 4위야?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텍사스 팬들은 부진한 투수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타자들이 아무리 점수를 뽑으면 뭐 해. 투수들이 상대에게 점수를 퍼 준다고.”
“오늘도 심했어. 11-8이 대체 뭐야.”
텍사스 코칭 스탭은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 에이스 아나도를 내보내며 스윕만은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아나도는 텍사스에서만 에이스였다.
다른 팀에서는 3, 4선발 정도가 어울리는 선수였다.
1회 초부터 두들겨 맞은 아나도는 4와 1/3이닝 4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탬파베이 오늘 승리하면 보스턴과 자리를 바꿀 수 있습니다.”
“보스턴으로서는 속이 타겠습니다. 텍사스가 한 경기도 잡지 못하고 스윕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텍사스 코칭 스탭은 입이 바짝 말랐다.
“우리가 언제부터 탬파베이에게 스윕당하는 처지가 되었지?”
“이번 시즌부터인 것 같습니다.”
“한심한 일이야.”
감독이 혀를 찬 순간 이반 로드리게스가 반격의 투런 홈런을 터트렸다.
“퍼지의 홈런으로 점수는 8-5까지 좁혀집니다.”
“투수들은 항상 텍사스 타선을 조심해야 합니다.”
퍼지와 에이로드가 버티는 타선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투수진은 매 시즌 물음표가 붙었다.
9회 말.
탬파베이 클로저 로버트가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곤 스윕을 완성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텍사스를 스윕하고 동부지구 2위를 탈환합니다.”
“와일드카드 순위도 3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이제 선두 애너하임과도 2경기 차이입니다.”
이반 감독은 환하게 웃으면서 인터뷰룸으로 향할 수 있었다.
‘트로피카나 필드의 온도를 올린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팀의 분위기를 수습하는데 성공했어.’
그는 9월 마지막 대반격을 펼칠 생각이었다.
* * *
9월 2일.
김민은 다시 한번 이달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킴의 수상은 당연한 일입니다. 8월 5번 등판에서 무려 4승을 달성했습니다.”
“평균자책점 역시 훌륭했습니다. 6이닝 3실점 한 2번째 선발 등판을 포함해도 1.22에 불과합니다.”
김민은 9월이 오기 전 21승을 달성해 다승 1위를 예약했다.
“남은 경기에서 승리를 못 올린다고 해도 다승 타이틀 확률이 50%가 넘어.”
“이번 시즌은 경이로울 정도로 잘 던지고 있어.”
“백네트 뒤에서 볼 때는 잘 모르겠는데. 기록지를 보고 나면 감탄사가 나온단 말이지.”
기자들은 김민의 시즌 MVP 가능성을 25%로 크게 잡았다.
“킴의 다음 상대는 어느 팀이야?”
“시애틀.”
“이치로의 리벤지인가?”
“이번에도 킴이 이길걸?”
“그렇게 속단하지 말라고 이치로도 후반기 페이스가 좋아.”
시즌 초반 하위권으로 밀려났던 시애틀.
그들은 5월부터 전열을 재정비해 8월에는 본래 자신들의 모습을 되찾았다.
“오클랜드와 애너하임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그렇지 시애틀도 대단하다고.”
“하긴 8월 시애틀은 대단했어.”
시애틀은 시즌 95승 페이스로 돌진하고 있었다.
9월 3일.
탬파베이 선수들은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세이프코 필드는 언제 봐도 기가 질려.”
“부러운 거겠지.”
최신형 개폐식 돔구장.
투수들은 세이프코 필드를 사랑했다.
“킴은 두 번째 날 선발이지?”
“그래, 클락 다음이야.”
클락은 좋지 않은 7월을 보냈지만 8월 중순부터 살아나 지금은 12승 12패 평균자책점 4.77을 기록하고 있었다.
“클락하고 킴만 이겨도 위닝 시리즈군.”
머레이가 목소리를 높이자 그렉스가 한마디 끼어들었다.
“시애틀을 쉽게 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녀석들은 지금 궁지에 몰려 있어.”
머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시애틀이 궁지에 몰려 있다고요? 우리 팀보다 순위가 높지 않던가요?”
“와일드카드 순위는 높지만 리그 순위를 보라고 3위잖아.”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시애틀 매리너스는 애너하임과 오클랜드에 밀려 서부지구 3위에 머물고 있었다.
“이번 시즌 서부지구는 대단하군요.”
“이번 시즌도 지난 시즌 못지않아. 하지만 우승은 양키스겠지. 녀석들 지나치게 강해졌어.”
클락이 뒤로 몸을 눕히며 말했다.
“붙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와일드카드로 올라가서 양키스를 잡을 수도 있다고요.”
“맞는 말입니다. 붙어보기 전에는 몰라요.”
젊은 선수들은 양키스와도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시간.
시애틀 선수들도 시애틀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다음 상대는 탬파지?”
“스윕 아니면 힘들 거야.”
“스윕이라. 최근 탬파 기세가 좋지 않아?”
“맞아, 우리 뒤를 바짝 쫓고 있지.”
브렛의 대답에 덴이 미간을 좁혔다.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스윕이라. 쉽지 않겠는걸.”
이치로는 배트를 쓰다듬으면서 내일 경기를 머릿속에 그렸다.
‘클락, 나쁜 투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울 정도의 무기를 가진 투수도 아니다.’
그는 유리한 카운트에서 나오는 고속 슬라이더만 조심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2차전이다.’
2차전 탬파베이 선발은 김민이었다.
‘최근 킴의 기세는 그 어떤 투수보다 무섭다. 솔직히 말해 이번 시리즈에는 나오지 않았으면 했어.’
그는 김민만 넘을 수 있다면 탬파베이를 스윕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킴을 넘지 못한다면 위닝 시리즈가 아닌 루징 시리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탬파베이와 시애틀의 시즌 마지막 시리즈.
이치로는 2차전을 이긴 팀이 시리즈를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2차전을 잡는다!’
9월 4일.
세이프코 필드.
탬파베이와 시애틀의 선발은 클락과 헨리였다.
“더 무게가 실리는 선발 투수는 헨리입니다.”
“그러나 시즌 12승을 거두고 있는 클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경기 초반 두 선발 투수는 혼신의 역투를 보여 주었다.
“3회 말이 끝난 현재 스코어는 0-0입니다.”
“헨리와 클락이 상대 타선을 꽁꽁 묶고 있습니다.”
양 팀 코칭 스탭은 입이 바짝 말랐다.
“어떻게든 선취점을 뽑아야 해.”
“이대로 나가면 힘들 거야.”
그러나 4회에도 양 팀은 점수를 뽑지 못했다.
그리고 5회.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가 선취점을 뽑았다.
“브라이튼이 2루타로 록튼을 불러들입니다!”
“배트에 힘이 제대로 실렸습니다. 헨리, 잘 던졌지만 여기서 실점하고 마는군요.”
기자들은 탬파베이가 시애틀을 누르고 와일드카드 순위를 한 단계 높일 것이라 생각했다.
“시애틀이 탬파베이의 기세를 막아 내지 못하는군.”
“더 젊은 팀이니까.”
“기세가 오른 젊은 팀은 무섭지.”
하지만 8회 말, 시애틀이 볼튼을 상대로 2점을 뽑아내며 경기를 뒤집었다.
김민은 볼튼의 실점 장면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볼튼의 이번 공은 정말 잘 던졌어.”
“하지만 2루타를 맞았잖아.”
“브렛의 파워는 제레미 이상이니까 어쩔 수 없어.”
김민은 브렛의 파워를 높이 평가하는 듯 말했지만, 진심은 달랐다.
‘약물을 하지 않았다면 이번 공은 절대 쳐 낼 수 없었을 거야.’
약물의 시대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이었다.
9회 초.
탬파베이가 1사 후 주자를 내보내는 데 성공했다.
“탬파베이 반격을 위한 마지막 기회를 잡았습니다.”
“과연 어떤 작전이 나올까요?”
1루에 나간 주자는 케니히.
그는 도루를 많이 시도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코칭 스탭의 사인이 나오자 지체 없이 2루로 뛰었다.
하나 이 도루는 세일의 강한 어깨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세일이 2루에서 케니히를 잡아냅니다!”
“탬파베이의 찬스가 이렇게 끝나는군요.”
케니히의 도루 실패는 윌리엄이 다음 타석에서 안타를 뽑아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탬파베이 2사 1루입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탬파베이가 여기서 한 점을 뽑을 수 있다면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탬파베이의 타자는 4번 타자 아울.
시애틀 선수들은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한 방이면…….’
‘동점이 아니라 역전이야.’
시애틀 클로저 야마모토가 숨을 고른 뒤 투구에 들어갔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으로 떨어진 순간 아울의 배트가 크게 움직였다.
따악!
“큽니다! 좌측으로 날아가는 공!”
그 어떤 타자도 쉽게 공략할 수 없다던 세이프코 필드의 좌측 펜스.
아울은 그 좌측 펜스로 하얀 공을 넘겼다.
탁…….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가 9회 초 역전에 성공합니다! 아울의 빅샷입니다!”
“아울이 다시 한번 해 줬습니다. 이 친구 정말 대단합니다.”
시애틀 코칭 스태프는 아울의 홈런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역시 지난 시즌에 끝을 봤어야 했어.”
“하필 9회에 저런 홈런이 나오다니.”
그들은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 최다승 타이기록을 쓰고도 우승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9회 말.
탬파베이 클로저 로버트는 이치로에게 내야 안타를 맞았지만, 후속 타자를 포수 파울 플라이로 처리하곤 경기를 마무리했다.
“탬파베이! 시애틀과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합니다.”
“시애틀, 오늘 패배로 탬파베이와 동률이 되었습니다. 내일 이기는 팀이 와일드카드 2위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시애틀은 그렉스 말대로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