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33화 (133/296)

133화 슈퍼스타 콜 03

3회 말.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그토록 기다리던 선취점을 뽑았다.

“윌리엄이 선제 솔로 홈런을 터트렸습니다!”

“자신이 왜 올스타인지 증명하는 홈런이라고 생각합니다.”

양키스 선발 아이작은 홈런을 맞은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코너에 꽉 찬 공을 그렇게 받아치면 할 말이 없지.”

그가 던진 공은 바깥쪽 코너에 꽂힌 90마일(145km) 패스트볼이었다.

아이작의 제구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구위는 다른 투수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여세를 몰아 추가 득점을 노립니다!”

“아울이 장타를 한 방 쳐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홈팬들의 응원소리에도 불구하고 아이작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4번 타자 아울을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내곤 이닝을 마쳤다.

“아울의 파워로도 우측 펜스는 무리군.”

“트로피카나 필드는 외야가 넓으니까. 킴도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지.”

기자들은 윌리엄의 선제 솔로 홈런을 인터넷 기사로 작성해 홈페이지에 실었다.

2002년 메이저리그와 언론은 빠르게 인터넷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4회 초.

뉴욕 양키스의 선두 타자는 더글라스였다.

김민은 더글라스를 단 하나의 공을 잡아내며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더글라스, 초구를 노려봤지만 중견수 플라이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초구는 조금 높은 코스의 볼이었습니다. 더글라스가 아니라 제레미에게 갔다면 아주 위험했을 겁니다.”

더글라스는 잘 맞은 타구가 머레이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자 바닥에 침을 뱉었다.

“빌어먹을!”

그는 운이 없어 직선타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옆으로 3m만 더 갔더라도 2루타가 되었을 거야!’

하지만 호이스트의 생각은 달랐다.

“중견수 플라이라. 더글라스가 킴의 함정에 빠졌군.”

그의 말에 웨스트가 고개를 갸웃했다.

“중견수 쪽이면 잘 맞은 타구가 아닙니까? 좌우 시프트도 아니고, 딱히 함정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요?”

호이스트가 기록지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저런 타구를 만들려면 약간의 모험심이 필요하지. 킴은 홈런과 2루타 그리고 중견수 플라이를 주사위에 표시한 뒤, 바닥에 굴린 거야.”

그는 김민이 치기 좋은 높은 코스에 공을 던져 더글라스를 처리했다고 판단했다.

‘다른 타자였다면 펜스를 넘겼겠지만, 더글라스라면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한 거야. 물론 펜스를 넘기지 못한다고 해서 모두 중견수 글러브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 2루타가 될 가능성도 꽤 크니까. 하지만 킴은 그것까지 염두하고 두고 주사위를 던졌어. 모험…… 아니야. 킴은 모험을 하는 투수가 아니야. 그는 머레이의 넓은 수비 범위를 믿은 거야. 아주 좋은 코스가 아니라면 머레이가 잡아 줄 것이라고 생각한 거야.’

호이스트는 머레이가 지금의 실력을 FA때까지 유지하면 연간 1,000만 달러(124억 원)는 무리라도 800만 달러(100억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팀이라면 조금 부족하겠지만 짜임새가 필요한 팀에는 최고의 선수가 될 거야.”

그의 말을 들은 웨스트가 되물었다.

“킴 말입니까?”

“바보 같은 소리! 킴은 어느 팀이나 다 필요한 선수야.”

“그럼 호이스트가 언급한 선수는 누구입니까?”

“머레이.”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머레이가 다시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이번에는 우익수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해서 러닝 캐치를 해냈다.

“머레이의 호수비가 킴을 살렸습니다.”

“이건 2루타를 훔쳤다고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김민도 이번에는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머레이! 나이스 캐칭!”

포사다는 김민의 피칭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더글라스라면 몰라도 제레미까지 맞춰 잡다니, 모험이 지나치군. 저런 식이라면 앞으로 한두 타자 안에 장타가 나오게 될 거야.’

그는 여전히 외줄 타기 피칭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딱!

높이 솟아 오른 타구가 좌측 펜스로 날아갔다.

‘넘어가는 건가?’

포사다는 이번 타구만큼은 펜스를 넘어가길 바랐다.

그러나 4번 타자 오스번의 대형 타구는 워닝 트랙 앞에서 좌익수 케니히의 글러브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킴! 양키스의 2, 3, 4번을 외야 플라이 3개로 잡아냅니다.”

“삼진은 잡지 못했지만 투구수를 상당히 절약했습니다. 이번 회 킴의 투구수는 겨우 5개에 불과했습니다.”

김민은 32개라는 믿기지 않는 투구수로 양키스 타선을 4회까지 막아 냈다.

그가 마운드를 내려가자 탬파베이 팬들이 그의 등에 적힌 ‘Kim’을 연호했다.

“킴! 킴! 킴!”

“네가 있어 우린 트로피카나 필드에 왔다!”

“교통지옥도 상관없다고!”

트로피카나 필드 팬들에게 김민은 탬파베이의 수호신이었다.

양키스 토린 감독은 씹는 담배를 뱉곤 하머스 투수 코치를 호출했다.

“저 친구 몇 개나 던진 거야?”

“32개입니다.”

“한 이닝에 8개밖에 안 던졌다고?”

“이번 이닝에 투구수를 많이 아꼈습니다.”

토린 감독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로마, 호이스트에게 연락해.”

“3회가 끝난 뒤 연락해 봤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사항은 없다고 합니다.”

“다시 연락해.”

“알겠습니다.”

로마 타격 코치는 라커룸으로 들어가 호이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호이스트, 날세.”

“더그아웃 분위기가 좋지 않은 모양이군요.”

“32개로 4이닝이 끝났어. 좋다고 하면 그게 이상한 거야.”

호이스트는 새로 알아낸 사실을 로마 타격 코치에게 전달했다.

“킴은 4회 초에 스트라이크보다는 볼을 많이 던졌습니다.”

“스트라이크가 아니라 볼이라고?”

“예, 캠코더로 돌려 본 것이라 확언은 할 수 없지만, 대략 반 개에서 한 개씩 빠지는 공이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 타격 코치는 그의 말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패스트볼로 우리 타자들을 유인했다는 말이군.”

“제구력이 좋다는 선입견을 이용한 것 같습니다.”

“알겠네. 그 내용을 감독에게 전달하지.”

토린 감독은 로마 타격 코치에게 이야기를 듣곤 혀를 찼다.

“허! 우릴 가지고 노는군. 정말 대단한 친구야.”

그는 말을 마친 뒤 타자들에게 기다릴 것을 지시했다.

“초구는 지켜보자고.”

“알겠습니다.”

4회 말.

양키스 선발 아이작은 선두 타자 그렉스에게 볼넷을 내주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볼넷입니다! 그렉스에 이어 머레이를 출루시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제구력이 좋은 아이작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4회 초 휴식 시간이 너무 적었던 것일까요?”

판파에 가까운 콜을 받는 상황에서 볼넷이 나온다는 것은 심하게 제구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머스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갑니다.”

하머스 투수 코치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이작, 왜 그러는 거야?”

“손톱이 깨졌습니다.”

투수에게 손톱은 어깨나 손목만큼 중요했다.

“어느 정도인가?”

“패스트볼 제구가 잘 안 됩니다.”

“언제 다친 거야?”

아이작은 그렉스에게 두 번째 공을 던졌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고 대답했다.

하머스 투수 코치는 벤치에 불펜을 가동해야 한다는 사인을 내고 미간을 좁혔다.

“왜 일찍 말하지 않은 거야!”

“더 던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욕심이 지나쳤어.”

“죄송합니다.”

하머스 코치는 주심에게 고개를 돌렸다.

“투수의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의료진을 마운드로 부르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짧게 끝내게.”

“알겠습니다.”

의료진이 마운드에 오르는 동안 양키스 불펜 투수들이 빠르게 몸을 풀기 시작했다.

탬파베이 선수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작의 몸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어깨나 손목이 나간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손이야.”

“손가락 골절이라면 더 이상 공을 못 던질 거야.”

그들은 아이작의 투구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잠시 뒤, 예상대로 아이작이 마운드를 내려갔다.

“아이작이 부상으로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심각한 부상이 아니어야 할 텐데요.”

아이작의 뒤를 이어 등판한 투수는 포겔이었다.

“포겔은 이번 시즌 양키스의 허리를 든든하게 받쳐 주고 있습니다.”

화려한 스타군단 양키스.

그들은 불펜조차 다른 팀을 압도했다.

“이번 시즌 포겔의 평균자책점은 2.78에 머물고 있습니다.”

타고투저 리그에서 평균자책점 2.78은 불펜 투수라 해도 상당한 것이었다.

파앙!

미트를 파고든 패스트볼이 97마일(156km)을 기록했다.

“패스트볼이 타자를 압도합니다!”

포겔은 나오자마자 오늘 7번 타순으로 출장한 안데르센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패스트볼에 그대로 헛스윙! 주자 뛰지 못합니다.”

“바깥쪽 패스트볼에 그대로 당하고 말았습니다. 안데르센답지 않은 삼진이군요.”

안데르센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뒤 동료들에게 말했다.

“빨라.”

록튼이 배트를 들며 물었다.

“그것뿐이야?”

“그것만 해도 이미 충분해.”

록튼은 안데르센의 말에 숨겨 있는 의미를 깨달았다.

‘패스트볼의 구의와 무브먼트가 상당하다는 말이군.’

포겔은 8번 타자 칼튼을 1루수 땅볼로 잡아내곤 록튼과 맞섰다.

“2사 주자 2, 3루입니다!”

“록튼, 여기서 안타 하나면 3-0까지 달아날 수 있습니다.”

록튼은 최고의 패스트볼을 수천 개나 받아 본 경험이 있었다.

‘어느 정도일지 기대가 되는군.’

슉!

초구는 바깥쪽이었다.

‘빨라!’

배트를 냈지만 타이밍이 늦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8마일(158km).

김민은 포겔의 구속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다 풀린 모양이군.”

안데르센을 상대로 던진 공은 97마일(156km) 전후였다.

그러나 록튼에게는 그보다 1마일 더 빠른 공을 던지고 있었다.

“킴, 록튼이 칠 수 있을까?”

“글쎄.”

김민은 포겔이 만만한 투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양키스의 필승조. 만만할 리가 없지.’

파앙!

안쪽을 깊게 찌른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이번 공은 95마일(153km)이었습니다.”

“록튼이 꼼짝도 하지 못하는군요.”

록튼은 꼼짝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공이 처음부터 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판의 판정은 스트라이크였다.

‘하나 정도 빠진 걸 다 스트라이크로 잡아 주려는 건가? 치졸하군.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그는 미간을 좁히면서 배트를 들었다.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백네트에 꽂혔다.

“파울!”

록튼은 파울을 친 다음 장갑을 고쳐 꼈다.

‘세 개 연속 패스트볼, 날 깔보고 있군.’

타격이 약하다고 해도 메이저리거였다.

게다가 록튼은 지난 시즌 후반 인상적인 타격을 보여 주었다.

렉터는 포겔이 록튼을 계속 얕본다면 크게 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하나 더 패스트볼을 던진다면 맞게 될 거야.”

“포겔도 여기서는 하나 빼겠지.”

부르스는 포겔이 이 이상 고집을 부리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포겔의 선택은 다시 한번 패스트볼이었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을 향했다.

록튼은 이 공을 놓치지 않았다.

‘깔보는 것도 정도껏 하라고!’

따악!

배트에 맞은 타구가 총알처럼 1, 2루 사이를 갈랐다.

“안타! 안타입니다!”

“주자 모두 홈에 들어오는군요. 깔끔한 적시타입니다.”

스코어 3-0.

트로피카나 필드를 가득 채운 팬들이 적시타에 환호성을 터트렸다.

“나이스 배팅!”

“멋지다! 록튼!”

“난 네 저지를 입고 있다고!”

포사다는 이 안타 한방의 무게가 만루 홈런과 맞먹는다고 생각했다.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넘어갔다.’

그는 김민이 마운드를 지키는 상황에서 3-0 리드는 다른 투수의 7-0과 같다고 생각했다.

양키스 전력분석팀 웨스트는 조금 전 포겔의 승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일까요? 유리한 카운트에서 패스트볼을 연속으로 4개나 던졌습니다. 체인지업을 왜 던지지 않은 걸까요?”

호이스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웨스트, 포겔은 몸이 덜 풀렸을 때 체인지업이 거의 떨어지지 않아.”

“예?”

“목소리를 낮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곤란한 내용이니까.”

포겔이 연속해서 패스트볼을 던진 것은 록튼을 얕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고 구속이 나왔는데 몸이 덜 풀렸단 말인가요?”

“본인이 그렇게 판단한 것이겠지. 이번 실점은 운이 나빴어.”

토린 감독도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하필 거기서 아이작의 손톱이 부러지다니…….’

그는 하머스 투수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이작은 어때?”

“2주는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토린 감독이 미간을 좁혔다.

“2주인가?”

3선발의 2주 아웃.

양키스로서는 뜻밖의 악재였다.

‘어쩌면 천벌을 받는지도 모르지.’

그는 사무국이 양키스를 밀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밀어주는 것도 적당히 하는 게 좋아. 시리즈 내내 편파 판정이라니, 탬파베이가 아니었다면 언론이 꽤 시끄러웠을 거야.’

딱!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지터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지터! 2루 홀랜드에게 토스합니다!”

“완벽한 더블 플레이 찬스입니다.”

브라이튼은 1루로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더블 플레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브라이튼 1루에서 아웃입니다!”

“탬파베이는 4회 말 2점을 추가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코어 3-0 리드.

김민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타자들은 이미 자기 몫을 했다. 남은 것은 내가 얼마나 던지느냐 하는 것이다.’

5회 말.

양키스의 선두 타자는 5번 홀리스였다.

“홀리스, 오늘 멀티 히트에 도전합니다.”

홀리스는 지난 타석에서 김민을 상대로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낸 바 있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그는 단 한 번의 찬스로 역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운드에 선 투수는 바로 김민이었다.

슉!

빠른 공이 그의 눈높이로 날아왔다.

‘하이 패스트볼인가?’

홀리스는 배트를 내지 않고 멈췄다.

‘초구는 그냥 흘려보내라고 했으니, 지켜보는 게 좋겠지.’

스탑 사인이 나온 상황에서 무리하게 배트를 낼 필요는 없었다.

파앙!

미트에 공이 들어온 순간 주심이 멈칫했다.

‘높은 코스에서 스트라이크존으로 떨어졌다. 이건 스플리터야.’

패스트볼이었다면 당연히 볼이었다.

그러나 스플리터라면 사정이 달랐다.

떨어진 지점에 따라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하지?’

아주 짧은 망설임.

다음 순간 주심의 손이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주심은 코너를 노리는 공이면 몰라도 이런 공까지 볼 판정을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카운트 0-1, 킴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습니다.”

토린 감독은 김민의 초구 스트라이크에 입술 끝을 올렸다.

“로마, 더그아웃에 도청기가 설치되었는지 찾아봐.”

로마 타격 코치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토린 감독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농담이야. 하지만 저 친구의 피칭을 보고 있으면, 더그아웃에 도청기가 설치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게 되는군.”

김민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시프트를 조정했다.

홀리스는 탬파베이 시프트에 눈을 크게 떴다.

“저 녀석들 뭐 하고 있는 거야.”

3루수 안데르센이 자신의 베이스를 버리고 2루수 뒤쪽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토린 감독이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왼쪽으로 타구가 가지 않는다는 건가?”

안데르센이 합류한 시프트는 오른쪽에 빈 공간이 거의 없었다.

이번 시프트는 극단적이었기 때문에 블렛소 코치도 살짝 걱정이 되었다.

“안쪽 공을 던지지 않고 바깥쪽으로 승부하겠다는 뜻인데 잘 될까요?”

“킴에게 생각이 있겠지.”

홀리스는 배터 박스 안쪽으로 타격 위치를 이동했다.

‘날 극단적으로 밀어치는 타자라고 생각한 모양이군.’

배트를 세우자 초구가 날아왔다.

슉!

94마일(151km) 패스트볼이 안쪽 코너를 노렸다.

‘오른쪽으로 시프트를 걸고 안쪽이라고? 사인 미스인가? 그렇다면 놓치지 않는다.’

홀리스는 재빨리 배트를 냈지만, 공을 맞히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토린 감독은 시원하게 돌아간 배트를 보곤 혀를 찼다.

“허, 이쯤 되면 상대 생각을 읽는 게 아니라 미래를 알고 던지는 것 같군.”

오른쪽으로 시프트를 건 다음 안쪽 공 승부.

타자가 공을 맞히기만 해도 안타가 될 확률이 50%가 넘었다.

하지만 홀리스는 공을 배트에 맞히지 못한 채 허공을 치고 말았다.

미래를 예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이었다.

호이스트는 홀리스가 김민을 너무 얕봤다고 생각했다.

“홀리스, 이번 공은 94마일(151km)이라고. 밸런스가 바깥쪽으로 몰린 상황에서 칠 수 있는 공이 아니란 말이지.”

그는 아무리 반사 신경이 좋은 선수라 해도 94마일(151km) 이상의 공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공이 궁금하군.”

호이스트가 옅은 미소를 지은 순간 탬파베이의 시프트가 변했다.

‘3루 쪽을 채우고 1루 쪽을 비웠군. 또 페이크 시프트인가?’

탬파베이의 페이크 시프트는 지난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를 침몰시킨 바 있었다.

“이번에는 왼쪽입니다. 탬파베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밀어치는 타구가 많은 홀리스에게 1, 2루 방향을 열어 준다는 것은 자폭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건 안쪽으로 승부하겠다고 예고한 뒤 바깥쪽으로 공을 던지겠다는 뜻이야.”

“페이크 시프트란 말씀이십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어.”

홀리스는 배터 박스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어설픈 장난으로 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는 상대 시프트를 의식하지 않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포지션을 잡았다.

‘바깥쪽 안쪽, 높은 코스 낮은 코스. 모두 쳐 주마!’

김민은 그의 포지션과 스탠딩 자세를 확인한 뒤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홀리스, 모든 것을 다 가지고자 하면 모든 것을 다 잃고 말 거야.’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높은 코스에서 떨어졌다.

‘커브!’

토린 감독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다음 순간 홀리스의 배트가 공을 강타했다.

딱!

토린 감독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안 돼!’

타이밍과 히팅 포인트.

홀리스 타격은 두 가지가 모두 어긋나 있었다.

‘틀렸어.’

높이 떠오른 공은 300피트(91m)를 넘지 못했다.

“중견수 머레이가 공을 잡아냅니다!”

토린 감독은 홀리스가 배트를 낸 순간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홀리스는 좋은 타자지만 본즈나 제레미급은 아니야. 밸런스와 타이밍이 무너진 상황에서 파워만으로 공을 밀어낼 수 없다고.’

하머스 투수 코치는 모든 투수의 귀감이 되는 피칭이라고 생각했다.

‘타자의 허를 완벽히 찌른 볼 배합. 홀리스는 한 순간도 커브가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홀리스가 집중한 것은 안쪽과 바깥쪽의 빠른 공이었다.

그러나 김민의 선택은 시프트와 무관한 커브였다.

6번 타자 포사다는 타석에 들어서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저 괴물을 어찌 상대한담.”

그의 한마디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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