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2002 시즌 올스타전 03
TV 중계진은 김민의 피칭이 끝난 뒤, 그를 올스타전 MVP 후보에 넣었다.
“2이닝 동안 출루 없이 완벽하게 내셔널 리그 타선을 틀어막았습니다.”
“타자 쪽에서 큰 임팩트를 내지 못하고 승리한다면 킴이 올스타전 MVP가 될 수도 있습니다.”
김민이 올스타전 MVP를 수상한다면,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뒤를 잇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셔널 리그가 승리하거나 타자 쪽에서 3타점 이상 올리는 선수가 나온다면 김민의 올스타전 MVP는 어려웠다.
“킴, 수고했어.”
“모두가 도와준 덕분이야.”
김민은 2이닝을 던졌음에도 아이싱을 하기 위해 라커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브라이튼과 윌리엄이 그를 따라 라커룸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은 출전하지 않는 건가?”
김민의 물음에 윌리엄이 어깨를 으쓱했다.
“우린 끝번이잖아. 8회나 돼야 교체 요원으로 출전하겠지.”
두 사람은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본즈에게 던진 승부구. 내게 던졌던 것과 같은 것이지?”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역시 그랬어.”
브라이튼이 김민 옆에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공 꽤 위험한 것 아니야?”
“맞으면 넘어간다는 말이지?”
“그래, 그런 느린 패스트볼은 제대로 맞으면 펜스 밖으로 날아간다고. 그리고 본즈나 윌리엄 같은 친구나 스플리터라고 예상하지. 트리플A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그냥 느린 패스트볼이라고 생각할걸?”
김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페이크 패스트볼은 선구안 좋은 타자에게만 던지는 구종이야.”
“호오, 그 공 이름이 페이크 패스트볼이었어?”
페이크 패스트볼이란 이름은 불펜 포수인 라몬이 지어준 것이었다.
탬파베이 출신 3인방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3회와 4회가 빠르게 지나갔다.
스코어는 아직 0-0이었다.
“2002 시즌 올스타전! 두 리그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경기는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양 팀 투수진이 단단하게 버텨 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취점이 중요합니다.”
내셔널 리그는 커트 실링에 이어 마이크와 코베어가 나와 각각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냈다.
김민과 탬파베이 선수들이 더그아웃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첫 타점이 나왔다.
“피아자가 본즈를 홈으로 불러들입니다!”
아메리칸 리그 3번째 투수 지뉴의 실점.
“내셔널 리그가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윌리엄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렇게 되면 킴의 MVP가 물 건너가잖아.”
“지뉴, 힘을 좀 내라고.”
브라이튼이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지만, 지뉴의 실점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다시 적시타입니다!”
내셔널 리그 3:0 아메리칸 리그.
내셔널 리그는 5회 말 지뉴를 두들겨 3점을 뽑는 괴력을 발휘했다.
“커브의 아티스트가 내셔널 리그 타선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제 아메리칸 리그 타자들이 분발할 때입니다.”
6회 초.
아메리칸 리그도 포사다의 적시타로 1점을 따라붙었다.
“좋았어! 차분하게 1점씩 따라가는 거야!”
지터가 박수를 치면서 더그아웃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다음은 누구지?”
“헨리야.”
“헨리도 나쁘지 않지.”
점수가 나오자 내셔널 리그 더그아웃이 움직였다.
“아메리칸 리그가 추격해 옵니다.”
“여기서 끊는 것이 좋겠군.”
6회 초, 1사 주자 2루.
마운드에 올라온 것은 다저스의 특급 마무리 가리에였다.
98마일(158km) 강속구에 헨리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가리에는 최강의 클로저답게 두 명의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 모습을 본 브라이튼이 미간을 좁혔다.
“올스타전에서 저러기야? 클로저가 6회부터 나오다니, 저건 반칙이라고!”
“저쪽은 클로저가 3명이나 된다고, 9회까지 모두 클로저만 내보낼 수도 있을걸?”
윌리엄이 흥분한 브라이튼을 다독였다.
“스코어 3-1,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쪽에 3번이나 기회가 더 있다고.”
“그래, 아직 기회가 많이 남았어.”
7회.
오클랜드의 마린과 다저스의 가리에가 상대 팀 타자들을 잇달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팬들은 투수들의 삼진 퍼레이드에 박수를 쳤다.
“나이스 피칭!”
“잘한다! 가리에!”
점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경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8회 초.
아메리칸 리그 감독을 맡은 양키스의 토리 감독이 대타 카드를 빼 들었다.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이 줄줄이 퇴장하고 있습니다.”
“토리 감독이 반격 작전에 나서는군요.”
딱!
날카로운 타구가 투수 옆을 빠져나갔다.
“타구가 2루 베이스를 지나 외야로 나갑니다.”
“윌리엄, 대타로 나와서 1루에 나갑니다.”
브라이튼은 윌리엄의 안타에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스 배팅!”
김민은 브라이튼의 목소리에서 젊음의 활기를 느꼈다.
‘젊기 때문인가? 목소리부터 나와 다르군.’
따악!
디트로이트 4번 타자 마이어가 1루에 나간 윌리엄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마이어! 1타점 2루타입니다!”
“이제 1점 차군요. 승부의 향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셔널 리그는 자이언츠의 클로저 포먼을 투입해 아메리칸 리그의 추격을 막으려 했으나 아메리칸 리그는 끝내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는 이제 3-3 동점입니다.”
“아메리칸 리그의 추격이 무섭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더그아웃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자고!”
“이제 역전이야!”
타석에 들어선 것은 1번 타자 노라.
그는 7회 이치로의 대타로 처음 그라운드를 밟았다.
딱!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3루수 옆을 빠져나갔다.
“안타! 안타입니다!”
2아웃 주자 1, 3루.
타석에 선 것은 토론토의 4번 타자 카이엔이었다.
“포먼, 여기서 막아야 합니다.”
“카이엔에게 큰 걸 맞으면 그대로 끝입니다. 포먼도 집중할 겁니다.”
그러나 포먼은 카이엔을 막지 못하고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스코어 4-3, 아메리칸 리그의 역전입니다!”
“지금 당장 MVP를 뽑으라고 한다면 역전타를 기록한 카이엔이 될 것 같습니다.”
카이엔은 이번 시즌 전반기에만 18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
“올스타전 MVP까지 탄다면 최고의 전반기군.”
그러나 카이엔은 2002 시즌 올스타전 MVP가 될 수 없었다.
9회 말.
팀의 마무리로 나온 훌러가 솔로 홈런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4-4, 경기는 연장으로 들어갑니다!”
“내셔널 리그, 쉽게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갑니다.”
올스타전 연장전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연장이라니, 몇 회까지 하는 걸까?”
“글쎄, 시즌이라면 끝까지 하겠지만…….”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곤란하군.”
10회 초.
브라이튼이 교체 선수로 올스타전 그라운드를 밟았다.
“연장전이 아니었다면 브라이튼은 더그아웃에 머물다가 끝났을 거야.”
“연장전이 반가운 선수라. 흔치 않은 일이야.”
기세 좋게 나선 브라이튼은 콜로라도의 1선발 햄에게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스플리터에 완전히 당했군.”
“91마일(146km) 스플리터야. 나도 때려내기 힘든 공이라고.”
“맞아. 저건 어쩔 수 없지.”
아메리칸 리그 타자들은 햄을 공략하기 위해 차례로 나섰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후…… 97마일(156km) 패스트볼 다음에 91마일(146km) 스플리터라니, 정신이 없군.”
“두 타석, 아니 세 타석은 봐야 적응이 될 것 같아.”
하지만 올스타전에서는 투수의 공을 몇 타석씩 볼 수 없었다.
10회 말.
내셔널 리그 선두 타자가 볼넷을 골라 출루했다.
“파울이 볼넷을 골라 1루에 나갑니다.”
“내셔널 리그가 끝내기 찬스를 잡았습니다!”
마운드에 선 투수는 시애틀의 마무리 사토.
사토는 주자를 보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타자가 포크볼에 속지 않는 것뿐이야.’
그는 침착하게 다음 타자를 상대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크게 떨어지는 포크볼에 헛스윙.
브라이튼은 손에 땀을 쥐었다.
“긴장감 넘치는군. 킴, 어때? 우리가 이길 것 같아?”
김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킴은 ‘글쎄’라고 말할 때가 너무 많아.”
“나도 잘 모르니까. 그런 거야.”
“킴은 우리 중에 가장 감이 좋잖아. 솔직히 말해 봐. 여기서 내셔널 리그가 점수를 뽑을 수 있을 것 같아?”
김민이 사토를 바라보며 말했다.
“포크볼을 참아내면 점수를 뽑을 것이고, 배트를 낸다면 뽑지 못할 거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트가 공을 밀어냈다.
탁!
빗맞은 타구가 유격수와 3루수 사이로 굴러갔다.
“애매한 타구인데?”
“타구 방향이 좋아. 이거 위험하겠어.”
윌리엄이 미간을 좁힌 순간 유격수 노라가 달려들었다.
그는 글러브 대신 오른손을 뻗었다.
“노라! 맨손으로 공을 잡아 2루에 연결합니다!”
“멋진 플레이군요!”
6(유격수)-4(2루수)-3(1루수)으로 이어진 병살타.
“최고다 노라!”
“멋진 수비야!”
밀러 파크에 모인 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지만, 보스턴 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올스타전에서 저렇게 위험한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손가락에 공을 맞았다면 몇 주는 출전하지 못했을 거야.”
노라는 부상 위험을 무릎 쓰고 공을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었다.
김민은 노라의 투지에 감탄했다.
“노라는 어떤 경기도 지고 싶지 않은 거야.”
윌리엄이 김민에게 물었다.
“10회가 끝났는데 어떻게 하지?”
“글쎄.”
올스타전은 정규시즌과 달리 다음 날 던질 수 있는 투수를 정해 두지 않았다.
경기가 길어진다면 한 선수가 오래 던질 수밖에 없었다.
10회가 끝난 뒤, 사무국과 두 팀의 코칭 스탭이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스타전에서 긴 이닝을 소화하게 되면 후반기 한 경기 정도를 결장하게 된다고.”
“팀의 주축 선수가 결정하게 되면 순위 경쟁을 하고 있는 팀에게는 큰 손해지.”
“11회까지만 하자고.”
“그러는 것이 좋겠어.”
양 팀의 합의하에 경기는 11회까지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11회 초.
아메리칸 리그가 마지막 공격에 나섰다.
“타석에 들어선 것은 시애틀의 4번 브렛입니다.”
“윌리엄스는 안쪽을 조심해야 합니다. 브렛은 안쪽에 엄청나게 강한 타자입니다.”
윌리엄스는 이번 시즌 11승 3패 3.1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피하지 않고 브렛과 정면으로 맞섰다.
따악!
날카로운 타구가 그대로 3루 방향을 향했다.
안쪽에 강한 브렛을 무시하고 정면 승부를 택한 것이 화근이었다.
‘틀렸어.’
윌리엄스가 혀를 찬 순간 3루수 슬레거가 몸을 날렸다.
“슬레거! 다이빙 캐치로 공을 잡아냅니다!”
슬레거는 재빨리 몸을 일으킨 뒤 노바운드로 1루에 송구했다.
파앙!
1루수 미트에 들어간 공이 깊은 울림을 냈다.
“슬레거! 강한 어깨로 브렛을 잡아냅니다!”
“3루수 골드글러브의 주인공다운 수비입니다. 그의 수비가 아니었다면 아메리칸 리그가 다시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을 겁니다.”
토리 감독은 마지막 대타 카드를 꺼냈지만, 결국 점수를 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슬레거의 어깨가 내셔널 리그의 패배를 막았군.”
김민은 슬레거 같은 3루수가 있다면 마음 놓고 오른손 타자 안쪽으로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안데르센…… 이번 시즌 마치고 FA이지?”
안데르센은 탬파베이의 주전 3루수였다.
브라이튼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팀에서 잡지 않을까?”
“비싼 값을 부르면 잡지 못할 거야.”
김민은 안데르센만 한 3루수를 데려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 시즌 가을 야구에 나가지 못한다면 다음 시즌은 더 어려워질 거야.’
윌리엄이 살짝 말머리를 돌렸다.
“내셔널 리그가 점수를 뽑지 못해 4-4로 경기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브라이튼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어려울 게 뭐가 있어 무승부지.”
“MVP말이야.”
선수들은 올스타전 MVP의 향방에 고개를 갸웃했다.
“흠, 무승부면 어떤 팀에 MVP가 돌아가는 걸까?”
“오늘 경기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에게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오늘 경기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라…….”
아메리칸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는 2이닝 퍼팩트 김민과 역전 적시타 카이엔, 4타수 2안타 1도루를 기록한 지터가 있었다.
내셔널 리그에서는 선제 타점을 올린 피아자, 아메리칸 리그의 추격을 틀어막은 가리에, 9회 동점 솔로 홈런을 날린 페트릭의 이름이 MVP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가장 좋은 건 내셔널 리그가 경기를 끝내고, 끝내기 타점을 올린 선수가 MVP를 가져가는 것이야.”
“무슨 소리야. 어떻게 끌어온 경기인데 내셔널 리그에게 승리를 넘겨.”
“MVP만 따지면 그렇다는 거야.”
11회 말.
내셔널 리그가 마지막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내셔널 리그는 끝내 점수를 뽑지 못했다.
“택사스의 좌완 클루에가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냅니다!”
“클루에의 역투가 아메리칸 리그의 패배를 막았습니다. 4-4 경기는 무승부로 끝이 납니다.”
연장 11회 무승부.
장내 아나운서가 경기 종료를 알리자 팬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 끝나는 게 어디 있어!”
“승부를 가리라고!”
“다시 게임을 시작해!”
메이저리그의 끝장 승부에 익숙해져 있던 팬들은 무승부 선언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내려간 투수를 다시 올릴 수는 없었다.
“MVP는 어떻게 되는 거야?”
사무국은 MVP에 대해서도 입장을 내놓았다.
“2002 올스타전 MVP는 해당 선수가 없습니다.”
승패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쪽에도 MVP를 줄 수 없다는 뜻.
메이저리그 팬들은 사무국의 운영에 불만을 터트렸다.
“뭐라고 MVP가 없다고?”
“그럼 상금은 어떻게 되는 거야? 사무국에서 가져가는 건가?”
“부상도 사무국이 가져가겠지.”
“사무국을 위한 올스타전이 아니라고!”
그러나 선수들과 구단 입장에서는 이 이상 경기를 지속할 수 없었다.
후반기 시작까지 앞으로 이틀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체력을 더 소모하게 되면 후반기 첫 시리즈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윌리엄이 짐을 챙기며 말했다.
“아깝게 되었어.”
“뭐가?”
“킴의 MVP 말이야. 아메리칸 리그에서는 가장 유력했잖아.”
김민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보다는 카이엔이지. 경기 초반 역투보다는 경기 후반 역전타가 더 결정적이니까.”
“그런가?”
“그래서 이런 말이 있잖아. 투수가 포드를 탈 때, 4번 타자는 캐딜락을 몬다고.”
메이저리그에서는 아직 투수보다 타자가 더 인기가 있었다.
* * *
“킴, 돌아왔군.”
“어땠어?”
스미스와 록튼이 김민에게 차례로 말을 걸었다.
김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어땠긴 TV로 봤잖아.”
“TV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잖아.”
“다음 올스타전은 록튼도 참여하도록 해.”
록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나. 다음 시즌도 글렀어. 포사다가 있는 한 올스타전은 무리야.”
“감독 추천도 있잖아.”
“그쪽도 아마 피어리에게 돌아갈걸?”
포사다와 피어리.
두 슈퍼스타는 록튼에게 거대한 벽이었다.
그라운드에서 돌아온 그렉스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서 말했다.
“올스타전 이야기보다는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게 어때? 올스타전 후유증에 휘말리면 답도 없다고.”
“전 수요일 선발입니다.”
김민은 올스타전에 선발로 출전했기 때문에 월요일 경기에 선발로 나설 수 없었다.
“에이스가 3차전인가? 그럼 로테이션이 꼬이겠는걸?”
“올스타전에 선발로 나섰잖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다른 구단들과 선발 로테이션이 달랐다.
김민이 올스타전에서 2이닝을 던진 덕분에 탬파베이는 2-3-1-4-5로 선발 로테이션을 짤 수밖에 없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얼굴을 찡그렸겠군.”
클락이 클럽하우스로 들어오며 말했다.
“렉터가 잘 막아 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우리 첫 상대가 만만치 않잖아.”
탬파베이의 후반기 첫 상대는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였다.
“저쪽도 첫날은 에이스를 내보내지 못할 겁니다.”
양키스의 에이스 로저 클레멘스도 올스타전에서 1이닝을 던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저쪽은 무시나가 있어.”
뉴욕 양키스는 첫 경기에 2선발인 무시나를 내보내고 그다음 경기에 에이스인 로저 클레멘스를 등판시킬 예정이었다.
즉, 양키스는 2-1-3-4-5로 이어지는 로테이션을 가동할 수 있었다.
김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등판일을 조정해 볼까요?”
“킴이?”
“첫날은 무리라도. 둘째 날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올스타전에서 겨우 2이닝을 던졌을 뿐이니까요.”
김민이 2차전에 등판할 수 있다면, 탬파베이는 대등하게 시리즈를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더그아웃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킴, 무리하지 않는 게 좋아.”
목소리의 주인공은 블렛소 투수 코치였다.
“난 에이스를 두 번 잃고 싶지 않아.”
그는 부르스의 부상 이후 투수들의 혹사에 예민해져 있었다.
“블렛소 코치.”
“단순히 2이닝을 던졌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킴은 그 경기에서 배리 본즈와 세미 소사를 상대했어. 게다가 그들을 상대로 전력 투구했지.”
김민은 블렛소 코치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두 사람을 이기기 위해 난 그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높였다. 그날 2이닝은 평소 2이닝과 전혀 다른 투구였어.’
그는 경기가 끝난 뒤, 5이닝 이상을 던진 것 같은 피로를 느꼈다.
“알겠습니다. 3차전 선발을 맡겠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킴, 자네의 어깨에 우리 팀의 후반기가 달려 있어.”
그의 말에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