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21화 (121/296)

121화 마운드의 현자 03

“1회 첫 타자부터 체인지 오브 페이스인가?”

잘만 감독은 미간을 좁혔다.

“예전에는 힘을 아껴 두는 타입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힘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반헬 코치는 김민의 투수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우리가 만난 킴은 바깥쪽의 정확한 제구와 간간이 던지는 안쪽 공이 강점인 투수였다. 그러나 이번 시즌 킴은 다르다. 힘으로 타자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녔어.’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에게 주어진 구속.

반헬 코치는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막을 수 없는 괴물이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캐스터가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네소타의 2번 타자는 레오입니다.”

“이번 시즌 레오는 1번 타자 카인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52경기에 출장해서 0.299의 타율과 13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세터로 필요한 정확한 타격과 빠른 발.

레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타자였다.

테이블 세터, 아니 타선만 놓고 보면 미네소타의 압승이었다.

그러나 경기는 항상 상대적인 것이었다.

오늘 미네소타를 상대하는 투수는 바로 김민이었다.

메이저리그 기자들은 미네소타의 창을 김민이라는 방패가 얼마나 막을 수 있느냐에 오늘 경기 승패가 달렸다고 생각했다.

슉!

초구가 빠르게 안쪽을 향했다.

‘초구부터 안쪽 승부인가?’

레오는 미간을 좁히면서 배트를 휘둘렀다.

탁!

배트 안쪽에 맞은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큰 바운드를 일으켰다.

“파울!”

전광판에 기록된 구속은 94마일(151km).

김민이 던진 이번 공은 ‘제구가 된 빠른 공’이었다.

“킴, 안쪽에 과감하게 초구를 던졌습니다.”

“초구부터 안쪽을 던진다는 것은 타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메이저리그 최고를 목표로 하고 있는 김민.

그에게 레오는 위협적인 타자가 아니었다.

‘레오의 선구안은 괜찮지만, 배트 스피드와 파워에 있어 그는 헐크나 시몬스에 미치지 못한다.’

김민은 자신 있게 두 번째 공을 던졌다.

그가 선택한 구종은 높은 곳에서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커브.

레오는 이 커브에 완벽히 허를 찔리고 말았다.

“스트라이크!”

반헬 투수 코치는 미트에 정확히 들어온 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완급 조절이 대단하군요.”

“빠른 공 다음에 10마일(16km) 이상 차이가 나는 공을 던지고 있어. 레오가 상대하기 버거운 투수야.”

미네소타 전력분석팀장 에드몬드도 혀를 찰 뿐이었다.

“우리가 조사한 것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군. 며칠 전과 완전히 다른 피칭이야.”

“경기 초반부터 이렇게 체인지 오브 페이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었습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내야에 높이 떠올랐다.

“3루!”

록튼의 콜 사인.

“내가 잡겠어!”

안데르센이 두 손을 활짝 펴고 마운드 옆으로 다가갔다.

김민은 안데르센의 수비를 돕기 위해 멀찍이 물러났다.

그리고 몇 초 뒤, 안데르센의 글러브에 하얀 공이 빨려 들어갔다.

“레오, 3루수 플라이로 아웃되고 맙니다.”

“높은 패스트볼이었는데 배트가 따라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시몬스는 더그아웃에서 김민의 피칭을 유심히 관찰했다.

‘양키스에 버금간다는 우리 테이블 세터를 완전히 가지고 노는군. 킴, 내가 없는 동안 많이 변했군.’

그가 알고 있던 마이너리그 김민과 마운드에 서 있는 메이저리그 김민은 전혀 다른 투수처럼 보였다.

“시몬스, 대기 타석으로 갈 시간이야.”

스펜서의 말에 시몬스가 배트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1회가 지나기 전에 타석에 들어섰으면 좋겠군요.”

“헐크가 살아나간다면 그렇게 될 거야.”

대기 타석에 들어간 시몬스는 김민의 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팡!

미트에 들어온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3마일(150km).

시몬스는 3번 타자 헐크가 배트를 내지 못한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공이다. 구속은 그렇게 빠르지 않지만, 헐크가 가장 싫어하는 코스에 들어왔어.’

그는 김민의 제구가 마이너리그 시절보다 더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시몬스는 약점을 가지고 있는 타자는 절대 김민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타자가 싫어하는 코스에 정확히 패스트볼을 꽂아 넣을 수 있는 투수야. 특정 존을 선호하는 타자는 절대 킴을 공략할 수 없어.’

다음 순간 헐크의 배트가 크게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헐크가 헛스윙한 공은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구속은 89마일(143km)이었다.

“원 바운드 스플리터가 들어왔습니다.”

“이번 공은 록튼의 블로킹이 아주 좋았습니다. 록튼도 지난 시즌보다 기량이 크게 발전한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시몬스는 김민의 스플리터를 보곤 낮게 중얼거렸다.

“마이너에서 상대했을 때보다 2~3마일(3~5km) 정도 빨라졌군.”

미세한 공의 변화를 감지하는 타자의 눈에 2~3마일은 작은 변화가 아니었다.

한 타이밍.

아니 반 타이밍 정도는 빨리 대처해야 공을 걷어낼 수 있었다.

“쉬운 투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변했을 줄이야.”

김민은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바깥쪽으로 공을 하나 뺐다.

“헐크, 바깥쪽 공을 잘 참아냅니다.”

“88마일 패스트볼(142km). 킴답지 않은 공이군요. 공이 손에서 빠진 것일까요?”

좀처럼 죽은 공을 던지지 않는 김민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은 누가 보아도 바깥쪽으로 빼는 공이었다.

시몬스는 이 공에 주목했다.

‘방금 그건…… 안쪽을 던지기 위한 목적구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구속이 너무 느리다. 설마 커터에 회전이 제대로 걸리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칠 수 있다.’

그는 김민이 아직 완벽한 투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록튼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김민.

그의 얼굴은 평소와 같았다.

“킴, 카운트 1-2에서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헐크, 이번 공이 중요합니다!”

헐크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승부구가 온다.’

바깥쪽 투구 이후 안쪽 패스트볼.

이는 전형적인 로케이션 승부였다.

헐크는 제구력이 뛰어난 김민이 안쪽 승부구를 선택하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안쪽이다!’

하지만 김민의 선택은 한가운데 높은 코스의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빠, 빨라!’

헐크는 떠오르는 공을 보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타이밍이 늦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6마일(154km).

김민이 이번에 던진 패스트볼은 ‘더 빠른 공’이었다.

시몬스는 헐크의 배트가 허공을 친 순간 세 번째 공에 담긴 의미를 깨달았다.

‘그건 빠진 공이 아니었어. 타자의 타이밍을 늦추기 위한 목적구였어.’

그는 배트를 든 채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김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킴민, 내가 보지 못했던 1년 반, 그 시간 동안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미네소타 타선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운 김민은 그가 알고 있던 마이너리그 투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2회 초.

탬파베이 공격.

“레드 다시 주자를 내보냅니다.”

탬파베이는 선두 타자가 출루하면서 추가득점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레드는 쉽게 추가점을 내주지 않았다.

“유칼리스의 타구가 2루수 카인에게 잡힙니다!”

“이것은 좋지 않습니다.”

2루수 카인은 멋진 수비로 더블 플레이의 시작을 알렸다.

“4(2루수)-6(유격수)-3(1루수)으로 이어지는 더블 플레이입니다!”

“탬파베이 달아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미네소타 에이스 레드는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2회 말.

미네소타의 타선은 4번 시몬스부터 시작되었다.

“슈퍼 루키 시몬스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이번 시즌이 데뷔 시즌이라고 믿을 수 없는 타자입니다.”

“지난 시즌 호세가 있었다면 이번 시즌은 시몬스가 있습니다. 미네소타의 상승세를 이끄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4번 타자 시몬스입니다.”

시몬스는 이치로, 김민과 경쟁했던 호세와 달리 신인왕 레이스를 독주하고 있었다.

6월.

메이저리그 패널들은 그의 신인왕 수상 가능성을 65%로 크게 잡았다.

올스타 브레이크 전 65%의 가능성이라면 신인왕 타이틀은 예약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시몬스라면 킴을 이길 수 있을까요?”

“신인의 패기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해설을 맡은 캐리는 볼티모어에서 12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중장거리 타자로 좋은 선구안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신인의 패기라면 어떤 것일까요?”

“사실 신인의 패기란 것이 특별한 힘을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군요. 모르는 것이 약이다.”

“상대 투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상대 투수가 얼마나 뛰어난지 어떠한 공을 던지는지 그것을 모르는 편이 오히려 나을 때가 있습니다.”

캐스터가 재차 물었다.

“캐리, 그 모르는 것이 나을 때가 지금이란 말씀이신가요?”

캐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킴은 메이저리그에서 다양한 구종을 던지기로 유명한 투수입니다. 그가 던질 수 있는 모든 구종들을 대비할 수는 없습니다. 전 시몬스가 패스트볼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예상과 달리 시몬스는 김민을 잘 알고 있었다.

‘훌륭한 제구력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구종. 여기에 스피드까지 더해졌다. 어떤 공에 타겟을 맞춰야 하는 걸까?’

시몬스는 노련한 타자들처럼 김민을 분석하고자 했다.

그러나 김민은 분석으로 이겨낼 수 없는 타자였다.

그를 분석으로 쓰러뜨릴 수 있었다면 레드삭스나 양키스가 오래전에 그것을 해냈을 터였다.

슉!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

시몬스는 초구를 타격하는 것이 가장 높은 확률로 안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킴이 헐크에게 던졌던 승부구는 마지막 순간 뻗으면서 떠올랐다. 아마 킴의 비장의 무기겠지. 바깥쪽에서 카운트를 잡는 공은 그런 무브먼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안타를 친다면 이 공뿐이다.’

그는 가볍게 민다는 느낌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그러나 공은 그가 예상한 것과 다른 궤적을 그렸다.

‘공이 움직인다!’

탁!

배트 안쪽에 맞은 공이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

1루심이 양손을 활짝 폈다.

“파울!”

시몬스는 김민의 초구를 타격한 뒤 이마를 찌푸렸다.

‘패스트볼이 아니었어.’

그가 패스트볼이라고 생각했던 공은 좌타자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커터였다.

“킴, 파울로 카운트를 잡습니다.”

“이번 공은 시몬스로는 아주 아까운 공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빠르게 배트를 냈더라면, 당겨서 1루수 키를 넘길 수 있었을 겁니다.”

시몬스는 타임을 건 뒤 대기 타석으로 돌아가 배트에 왁스를 발랐다.

이것은 투수의 리듬을 끊기 위한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녀석의 피안타율은 초구 이후 급격히 떨어진다. 좋지 않은 상황이야. 승기를 반쯤은 빼앗겼어.’

김민은 시몬스의 심리전을 담담하게 받아 주었다.

‘준비된 4번 타자라. 시몬스,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보다 성장했군.’

마이너리그 시절과 달라진 것은 김민만이 아니었다.

시몬스 역시 마이너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김민은 로진백을 만진 뒤 손에 묻은 가루를 털어냈다.

“시몬스, 타석으로 돌아왔습니다.”

캐리가 재빨리 말했다.

“시몬스에게 두 번째 공은 아주 중요합니다. 킴은 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피안타율이 0.091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거의 안타를 내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시몬스는 투 스트라이크에 몰리기 전에 승부를 내야 합니다.”

시몬스가 배트를 들자 김민의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슉!

‘또 빠른 공이군.’

마이너리그에서 첫 만남.

시몬스는 당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스플리터에 당했었지.’

패스트볼처럼 보이는 공이었지만, 커터나 스플리터일 수도 있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

망설일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어느 쪽 공이든 눈 깜짝할 사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할 것이다.

‘스플리터!’

그는 자신이 당했던 바로 그 공을 노렸다.

따악!

배트에 맞은 공이 높이 솟아올랐다.

“큰 타구입니다!”

손끝에서 느껴진 감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몬스는 이 타구가 안타가 될 수 없을 잘 알고 있었다.

‘큭, 선택이 빗나갔어.’

김민이 던진 두 번째 공은 바깥쪽 코너로 제구된 패스트볼이었다.

그대로 당겨쳤다면 모를까?

극단적인 어퍼 스윙을 했다면 칠 수 없는 공이었다.

“높이 뜬 타구가 내려옵니다. 중견수 머레이가 글러브를 들고 타구를 기다립니다. 머레이 공을 잡아냅니다!”

“타이밍은 좋았지만 히팅 포인트가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첫 타석은 킴의 승리군요.”

첫 타자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낸 김민.

부르스는 그를 보곤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킴이 던지면 평범한 공이 평범하지 않게 되는군.”

“방금 패스트볼 말인가?

부르스에게 되물은 선수는 렉터였다.

“메이저리그 투수라면 누구나 던질 수 있는 바깥쪽 패스트볼이었어.”

“누구나 던질 수 있는 공은 아니지. 킴은 그 공을 정확히 제구한다고.”

“그 정도는 나도…….”

“부르스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설리반이나 볼튼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한마디로 누구나 던질 수 있는 공은 아니라고.”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5번 타자 행크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벌써 투 아웃이야.”

“1회에는 삼진, 2회는 맞춰 잡는 투구인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행크는 헬멧을 벗으면서 잔뜩 얼굴을 찡그렸다.

“지뉴보다 더 심한 녀석이야.”

“어디 지뉴뿐이겠어? 녀석은 아메리칸 리그에서 제일 까다로운 투수라고.”

레오가 행크의 말을 받으며 글러브를 챙겼다.

그는 6번 피어리의 아웃을 예상하고 있었다.

딱!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2루수 글러브를 스쳐 지나갔다.

“피어리의 빠른 타구를 브라이튼이 놓칩니다!”

김민은 안타를 맞은 직후 브라이튼에게 오른손을 들었다.

이는 자신의 탓이니 괜찮다는 뜻이었다.

“피어리가 좋군요.”

“타구 스피드로 킴과 록튼의 시프트를 뚫었어.”

김민은 피어리를 너무 쉽게 잡으려 했던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미네소타의 슈퍼스타를 상대를 너무 얕봤어.’

지금 미네소타를 이끄는 것은 시몬스였지만, 2, 3년 뒤 미네소타를 이끌 게 되는 것은 피어리였다.

“2사 주자 1루. 미네소타 동점 찬스를 만들었습니다.”

“7번 브라이언은 한 방이 있는 데다가 찬스에 적극적인 타자입니다. 이번에는 킴이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홈런이 나온다면 단숨에 역전이었다.

그러나 김민의 이번 시즌 피홈런은 단 하나에 불과했다.

그가 홈런을 맞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유격수 유칼리스에게 흘렀다.

“유칼리스, 공을 잡아 그대로 2루에 토스합니다. 주자, 그대로 2루에서 아웃됩니다!”

“브라이언, 너무 성급하게 배트를 휘둘렀습니다. 조금 더 공을 지켜보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요?”

김민이 던진 공은 바깥쪽 코너에서 하나 정도 빠지는 패스트볼이었다.

그가 이 공을 던진 것은 브라이언의 선구안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찬스에서 적극적이라는 말은 미끼를 쉽게 문다는 뜻이기도 하다.’

3회 두 팀은 주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삼자범퇴로 물러나고 말았다.

4회 초.

탬파베이가 추가점을 뽑으며 2-0으로 달아났다.

“레드, 후속 타자를 막아 내긴 했지만, 브라이튼에게 맞은 2루타가 치명적입니다.”

탬파베이 타선에서 오늘 가장 좋은 타자를 한 명 꼽으라면 단연 브라이튼이었다.

“2타수 2안타. 1번 타자로 계속 나가고 싶다는 무력시위군요.”

이반 감독이 코스타 타격 코치의 말을 받았다.

“오늘같이 칠 수 있다면 1번이 아니라 4번에 놓아도 좋을 걸세.”

코칭 스탭 사이에서 브라이튼의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4회 말.

김민은 2번 타자 레오를 1루 땅볼로 처리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유격수 유칼리스의 송구 실책이 나오면서 1사 2루의 위기에 몰렸다.

“미네소타,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나갑니다.”

“게다가 타석에는 4번 타자 시몬스입니다. 킴에게는 오늘 경기 첫 위기입니다.”

이반 감독은 4회 말이 오늘 경기 분수령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비가 좋은 유칼리스의 실책. 킴이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군.”

“킴이라면 해낼 겁니다.”

김민은 야수 실책을 탓하기보다는 야수들의 컨디션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유칼리스는 오랜만의 선발 출장이라 컨디션이 좋지 않다. 빠르거나 어려운 타구가 나온다면 실책을 범할 가능성이 커. 반면 2루수 브라이튼은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컨디션을 보여 주고 있다. 오늘 타구는 이쪽으로 보내는 것이 더 낫겠어.’

그는 배터 박스에 선 타자를 보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2루수 쪽이 아니라 아예 배트에 공이 닿지 않게 하는 게 낫겠어.’

2회 말 시몬스는 중견수 플라이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파워와 선구안은 언제나 위협적이었다.

‘초구는 이게 좋겠지.’

김민은 왼쪽 어깨에 오른손 식지를 가져갔다.

- 안쪽 패스트볼.

록튼은 고개를 끄덕인 뒤 미트를 내밀었다.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이라. 킴도 시몬스는 신경을 쓰는군.’

다음 순간 빠른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길게 뻗었다.

슈우욱!

시몬스는 이 패스트볼에 깜짝 놀랐다.

‘이건 대체!’

그가 몸을 뒤로 뺀 순간 공이 미트를 파고들었다.

“스트라이크!”

시몬스가 몸을 뒤로 뺀 것은 공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였다.

그러나 공은 그를 맞추는 대신 안쪽 코너를 절묘하게 찔렀다.

‘깔끔하게 제구된 공이 아니었어. 그런데도 코너를 찔렀다고?’

김민이 던진 공은 와일드한 ‘더 빠른 공’이었다.

“킴! 96마일 패스트볼(154km)을 안쪽으로 깊이 찔렀습니다.”

“타자에게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줄 수 있는 공입니다.”

이반 감독이 고개를 블렛소 투수 코치에게 돌렸다.

“어떤가?”

“이번 공은…… 카운트를 잡기 위한 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이번 공은 안쪽을 조심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두 사람의 예상대로였다.

김민은 타자가 편하게 바깥쪽 공을 공략하지 못하도록 안쪽으로 깊이 찌른 것이었다.

‘공이 코너에 들어간 것은 행운이야.’

그는 공을 손에서 놓을 때 볼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시몬스도 김민의 공에 담긴 뜻을 어느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감히 내게 경고를 하는 건가?’

그는 김민의 안쪽 공에 불같이 화를 냈다.

‘날려 버리겠어.’

시몬스는 역으로 배터 박스에 바짝 붙었다.

이는 바깥쪽 공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뜻이었다.

김민은 그 모습을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사자의 코털을 뽑은 건가?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돌진해 오는군.’

잘만 감독은 김민이 던진 초구가 시몬스의 투쟁 본능을 일깨웠다고 생각했다.

“마운드의 현자가 실수를 저질렀군. 시몬스는 위협에 물러나는 상대가 아니야.”

따악!

날카로운 타구가 3루 베이스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아까운 타구입니다!”

“10cm만 옆으로 갔더라도 2루타가 되었을 겁니다.”

김민은 시몬스가 커브를 끝까지 따라와 때려내는 것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집중력이 좋아졌어. 체인지 오브 페이스가 통하지 않는군.’

어설픈 유인구나 패스트볼로는 시몬스를 잡을 수 없었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이걸 사용하는 수밖에.’

김민은 그립을 강하게 쥐었다. 그리곤 미트를 향해 공을 뿌렸다.

슈욱!

바깥쪽 빠른 공.

시몬스는 투 스트라이크에도 불구하고 풀스윙으로 나왔다.

‘코너 패스트볼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탁!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시몬스는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

‘히팅 포인트가…….’

김민이 던진 패스트볼은 코너를 찌르는 공이 아니었다.

그가 던진 공은 야생마처럼 꿈틀거리면서 위로 솟아올랐다.

‘더 빠른 공.’

시몬스가 히팅 포인트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높이 솟은 공! 2루수 브라이튼이 뒤로 달려갑니다.”

김민이 시몬스를 상대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는 낮은 코스의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브라이튼 공을 잡아냅니다! 2루 주자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시몬스, 너무 생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시몬스는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며 낮게 중얼거렸다.

“다음 타석, 다음 타석에는 반드시 안타를 때리겠다.”

그는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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