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20화 (120/296)

120화 마운드의 현자 02

띠리리릭.

무미건조한 벨소리의 주인공은 김민이었다.

김민은 발신 번호를 확인하곤 휴대폰을 들었다.

“엘린?”

“킴, 10승을 축하드립니다.”

김민의 10승 달성은 지난 시즌보다 상당히 빨랐다.

이번 시즌 김민은 15승을 넘어 20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즌 20승과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동시에 달성한다면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상 수상이 유력했다.

“축하 인사를 하려고 전화를 한 것은 아닐 테고…… 특별한 소식이 있는 모양이군.”

“스폰서 계약 소식입니다.”

현재 김민의 수익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S사와 맺은 스폰서십 계약이었다.

“N사가 드디어 연락을 준 건가?”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 N사.

김민은 그들과 계약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엘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킴, N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계약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어쩌면 N사보다도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김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N사보다 큰 계약이라니, S사에 그런 돈이 있었나?”

S사는 N사에 비해 회사 규모가 1/10에 불과했다.

그들이 N사와 같은 금액을 썼다면 김민에게 모든 것을 올인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

‘S사가 그렇게까지 나올 정도인가?’

김민이 미간을 좁힌 순간 엘린이 대답했다.

“S사가 아닙니다.”

“S사가 아니라고?”

S사가 아니라면 독일에서 온 A사가 있었다.

A사는 N사에 미치지 못했지만, 세계 2위의 스포츠 브랜드였다.

‘A사라면 나쁘지 않지.’

김민은 A사가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면 그들과 10년 이상을 함께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에게 스폰서 계약을 제시한 회사는 스포츠 용품 회사가 아니었다.

김민은 엘린으로부터 계약 내용을 듣곤 눈을 크게 떴다.

“스포츠용품 회사가 아니라 음료 회사라고?”

“사실 이쪽이 시장 규모는 더 크죠.”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다국적 기업 K사 그들은 전 세계에 다양한 음료를 공급하고 있었다.

“K사가 정말로 나와 스폰서 계약을 맺겠다는 건가?”

“일단 3년 계약입니다. 하지만 계약 규모가 대단합니다. 옵션이 들어 있긴 하지만 1년에 1천만 달러(124억 원) 규모입니다.”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을 받는 김민에게 1천만 달러는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계약이었다.

‘메이저리그 2년 차 선수에게 이렇게 큰 스폰서십 계약이 가능한 건가? 믿기지 않는 일이군.’

계약 규모가 커지는 10년 뒤라면 모를까?

2002년 기준으로 1천만 달러짜리 스폰서십 계약은 규격 외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계약이었다.

“기본 계약은 어떻지?”

“1년에 300만 달러(37억 원)입니다.”

김민은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 기본 계약만으로도 연봉의 10배로군.’

그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옵션이 1년에 700만 달러(87억 원)라는 말이군. 옵션 내용은 어떻지?”

엘린이 바로 대답했다.

“우선 올스타 게임 출전이 300만 달러(37억 원)입니다. K사는 킴이 올스타에 나가 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K사는 음료 표면에 올스타 마케팅을 할 예정입니다.”

“흐흠, 올스타전 수당이 37억 원이라면 매년 나갈 수밖에 없겠군.”

“그리고 다승 타이틀에 100만(12억4천만 원) 달러, 삼진 타이틀에 100만 달러, 평균자책점 타이틀에 100만 달러입니다.”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각 타이틀에 100만 달러씩이군. 남은 100만 달러는 사이영상인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것밖에 남은 타이틀이 없으니까? K사에서 승률왕 같은 것에 옵션을 걸지는 않았을 테지.”

“그리고 추가 옵션이 두 가지 있는데 이것은 조금 달성하기 힘든 것이라 뒤로 미뤄 두었습니다.”

김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추가 옵션?”

“리그 MVP와 월드시리즈 우승 시 100만 달러가 추가됩니다.”

리그 MVP와 월드시리즈 우승.

이 두 가지 항목은 투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쉬이 달성하기 힘든 것이었다.

최근 10년 동안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한 투수는 1992년 데니스 에커슬리가 유일했다.

즉, 투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MVP를 차지할 가능성은 10%에 지나지 않았다.

“확실히 쉽지 않은 옵션이군.”

“이 두 가지 옵션은 보너스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하지만 앞에 언급한 옵션들은 킴이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은 대략 7~800만 달러가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라고 계산했다.

‘올스타와 평균자책점 타이틀은 가능성이 크고, 다승 타이틀은 반반, 삼진 타이틀과 사이영상은 장담을 할 수가 없어. 많이 받는다면 800만 달러 정도 되겠군.’

엘린이 김민에게 물었다.

“킴, 이 조건으로 계약을 진행할까요?”

“엘린 뭐 빠진 것 하나 있지 않아?”

“네?”

“이번 스폰서십 계약 말이야. 글로벌인 거야? 아니면 미국 내에 한하는 거야?”

엘린이 아차 싶었다는 듯 뒤늦게 설명했다.

“아, 이번 계약은 당연히 글로벌입니다. K사는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글로벌 기업이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메이저리그 선수가 광고로 사용되는 것은 동아시아와 미국 정도겠지?”

“중남미 쪽도 가능할 겁니다.”

김민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좋아, 이쪽하고 계약을 맺겠어. 그런데 독점 계약은 아니지?”

“아, 음료와 식품 쪽은 독점이라고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식품까지?”

“마트에서 선수 얼굴이 겹치면 곤란하니까요.”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 정도 규모의 계약이라면 식품 광고 정도 제외해도 괜찮겠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저도 이 계약만큼은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계약은 엘린이 직접 오는 건가?”

“물론이죠.”

며칠 뒤, 김민과 엘린 그리고 K사 마케팅팀장이 탬파베이에서 계약에 서명했다.

서명 이후 마케팅팀장이 김민에게 말했다.

“이번 여름 출시되는 신제품부터 킴 선수의 투구 화보가 들어갈 겁니다.”

“화보라면…….”

마케팅팀장이 K사를 대표하는 콜라 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렇게 캔 표면에 그려지는 그림입니다.”

김민은 콜라 캔 표면을 따라 이어진 그림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를 보지 않는 팬들도 이 그림만큼은 기억할 수 있겠군요.”

마케팅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죠. 이 계약은 킴 선수에게도 유리할 겁니다. 유명세는 곧 돈이니까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에게 유명세는 성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었다.

몇몇 이들은 이 유명세로 출연료나 연봉 이상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K사의 모델이 되다니, 갑자기 세계적인 스타가 된 기분입니다.”

“우린 킴이 세계적인 스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계약을 진행한 겁니다.”

K사는 킴의 나이와 성장 가능성 그리고 FA 계약까지도 고려해서 이 계약을 제시한 것이었다.

“킴,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떤 것인지요?”

마케팅팀장이 말했다.

“킴이 뉴욕 양키스나 LA다저스 선수였다면 이보다 조건이 2배는 좋았을 겁니다.”

빅마켓 프리미엄.

김민은 마케팅팀장의 말 속에 담겨 있는 뜻을 잘 알고 있었다.

‘FA 이전에 빅마켓으로 팀을 옮기라는 뜻이군. 계약 기간이 3년인 것도 팀을 이적한 다음 다시 계약을 진행하겠다는 뜻이야.’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양키스에 드래프트 되었다면 그렇게 되었겠죠. 하지만 제가 데뷔한 팀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입니다.”

“킴, 다음에는 더 큰 시장에서 계약을 맺었으면 합니다.”

K사는 그가 이른 시간 내에 빅마켓으로 팀을 옮기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김민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를 자신의 팀으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며칠 뒤, 그의 계좌로 계약금 100만 달러(124억 원)가 입금되었다.

* * *

6월 21일.

미네소타주 휴버스 험프리 메트로돔.

“동부지구 2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와 중부지구 1위 미네소타 트윈스가 메트로돔에서 시즌 첫 번째 맞대결을 펼칩니다.”

“오늘 경기 매치업은 2001 시즌 개막전과 매치업이 같습니다.”

탬파베이 선발은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투수 김민.

미네소타 선발은 중부지구를 대표하는 에이스 레드.

“2001 시즌 개막전에서는 김민이 승리를 따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누가 승리 투수가 될지 예상이 힘든 상황입니다.”

캐스터의 말은 사실이었다.

두 팀의 승자 예상은 51:49로 박빙이었다.

“선발 투수만 보면 탬파베이가 위지. 하지만 미네소타 타선은 만만치가 않단 말이야.”

“양키스도 두들긴 타선이니까.”

“2002 시즌으로 한정한다면 메이저리그 최강 타선은 미네소타야. 킴이라고 해도 완봉으로 막는 건 불가능할 거야.”

양키스를 대표하는 에이스 무시나도 오클랜드의 에이스 지뉴도 미네소타 타선을 막아 내지 못했다.

미네소타는 이번 시즌 양키스를 상대로 2승 1패, 오클랜드를 상대로 4승 2패의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록튼이 미네소타 타자들의 기록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시몬스 한 명의 가세로 팀이 이렇게 바뀐 건가?”

“시몬스 혼자만의 힘이 아니야.”

그의 말을 받은 것은 김민이었다.

“그럼 타격 코치라도 바뀐 걸까?”

“그보다는 젊은 타자들이 1년 더 경험을 쌓은 덕분이지.”

“1년이 그렇게 큰가?”

“우리 팀을 보면 알 수 있잖아. 젊은 선수들에게 경험은 그 무엇보다 좋은 약이야.”

탬파베이 타자들은 대부분 지난 시즌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성장하는 젊은 팀이라. 그렇다면 지난 시즌 자료는 큰 의미가 없겠군.”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지난 시즌보다는 이번 시즌 자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해.”

덜컥.

불펜 문이 열리면서 구단 스탭이 고개를 내밀었다.

“경기 시작 10분 전입니다.”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오케이.”

김민과 록튼, 두 사람은 불펜에서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관중들이 많군.”

“홈팀이 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잖아. 매진이 안 되는 게 이상한 일이지.”

오늘 메트로돔을 가득 채운 관중의 수는 5만 8천 명이었다.

이는 미식축구를 할 때보다 5천 명가량 적은 인원이었다.

미네소타의 홈구장 메트로돔은 슈퍼볼과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월드시리즈 그리고 NCAA(미국 대학 농구) 파이널 포를 개최한 유일한 구장이었다.

“플레이볼!”

주심의 경기 시작 사인과 함께 원정팀 탬파베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오늘 탬파베이의 1번 타자는 유격수 브라이튼이었다.

“브라이튼이 잘해 줄지 모르겠어.”

“괜찮을 겁니다. 그 친구는 큰 경기에 강하거든요.”

코스타 타격 코치는 브라이튼의 야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 그건 일종의 영웅심이야. 좋게 말하면 큰 경기에 강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평소 실수가 많고, 기복이 심한 것이지.

주전 2루수이자 1번 타자였던 칼튼은 며칠 전 타격 훈련 때 손가락 부상을 입어 미네소타 원정에 합류하지 못했다.

메디컬 팀의 예상에 따르면 그의 결장은 2주였다.

기자들이 칼튼의 부상을 두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유칼리스가 유격수 포지션에서 지난해와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면, 칼튼의 부상은 팀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겁니다.”

“반대라면?”

“탬파베이가 3위로 내려앉겠지요.”

이반 감독은 한두 명의 결장으로 주저앉는 팀은 절대 강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4번 타자도 아니고 테이블 세터 한 명의 결장일 뿐이야. 걱정할 건 없어.”

그는 김민이 선발로 나서는 경기인 만큼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딱!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브라이튼! 초구를 정확히 노려서 안타를 만들어냅니다.”

“1번 타순으로 옮기자마자 첫 안타를 뽑아내는군요. 브라이튼, 확실히 기회에 강한 선수입니다.”

미네소타 에이스 레드는 브라이튼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다음 타자인 케니히를 우익수 플라이, 그다음 타자인 안데르센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주자는 아직도 1루에 머물고 있습니다.”

“탬파베이, 선두 타자를 출루시키고도 득점권에 주자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미네소타 해설진은 탬파베이의 팀플레이가 위축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울의 2루타가 터졌다.

“펜스를 맞고 되돌아온 공을 브라이언이 처리합니다!”

좌익수 브라이언이 공을 잡아, 내야로 보내는 사이 1루 주자 브라이튼이 홈으로 파고들었다.

“주자가 홈으로 파고듭니다!”

“공도 홈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주루 코치는 두 손으로 브라이튼을 막았지만, 브라이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반 감독은 그 모습을 보곤 미간을 좁혔다.

‘영웅심인가? 성공하면 최고지만, 실패하면 최악의 결과군.’

포수 피어리가 공을 잡은 순간 브라이튼의 발이 홈플레이트를 터치했다.

다음 순간 주심의 양쪽 손을 활짝 펼치자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우우우우우!”

그러나 주심의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세이프!”

탬파베이의 선취득점.

“잘만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강하게 항의하고 있습니다.”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볼까요?”

느린 화면에는 피어리가 공을 받은 위치가 좌익수 방향이 아닌 우익수 방향으로 조금 어긋나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송구가 조금 어긋났군요. 그래서 피어리의 터치가 늦고 말았습니다.”

미네소타의 항의와 달리 주심의 판정은 정확했다.

코스타 타격 코치는 주루 코치의 사인을 무시하고 홈으로 뛰어든 브라이튼을 꾸짖으려 했다.

그러나 바이슨 수석 코치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바이슨?”

“성공했잖아. 그럼 된 거야.”

성공한 플레이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바이슨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코스타, 여긴 메이저리그잖아.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바이슨, 그게 무슨 말입니까?”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건 교과서적인 플레이가 아니야.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예상을 뛰어넘는 것을 보여 주는 플레이라고.”

그는 브라이튼의 질주를 다이빙 캐치와 같다고 생각했다.

2사 2루.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미네소타,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타석에 들어선 것은 5번 타자 그렉스입니다.”

“그렉스, 이번 시즌 홈런은 줄었지만, 타점이 지난 시즌보다 늘었습니다. 이것은 득점권에서 강하다는 뜻입니다.”

레드는 그렉스를 상대로 9구까지 가는 끈질긴 승부를 펼쳤다.

“파울!”

다음 공은 10구.

레드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노인네를 상대로 내가 이렇게 고생할 줄이야.’

그는 심호흡을 한 뒤 강하게 공을 던졌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길었던 승부의 승자는 레드였다.

“레드, 그렉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불을 끕니다.”

“실점은 1점뿐이었지만, 1회 투구수가 많았습니다. 좋지 않은 시작입니다.”

레드의 1회 투구수는 24개에 달했다.

노리 투수 코치는 마운드를 내려오는 레드를 보고 미간을 좁혔다.

‘1회 투구수가 너무 많아. 완봉은 힘들고, 앞으로 잘해야 7회군.’

미네소타는 이전 시리즈에서 불펜 소모가 많았기 때문에 에이스인 레드가 길게 던져 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레드는 1회부터 예상보다 많은 공을 던지고 있었다.

록튼이 불펜 문을 열며 말했다.

“킴, 이번에는 우리 차례야.”

“좋아, 가 볼까?”

메트로돔은 김민에게 잊을 수 없는 곳이었다.

‘메이저리그 첫 승을 거둔 곳이니까.’

팡! 팡!

미트에 꽂힌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나이스 볼!”

록튼의 잇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포수가 이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상대 타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킴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군.”

“포수의 말을 다 믿지 말라고, 저건 허세일 수도 있어.”

“그래도 저렇게 목소리가 높은 걸 보면 100% 허세는 아닐 거야.”

미네소타 타자들은 김민의 컨디션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네소타의 선두 타자는 1번 타자 카인이었다.

그는 이번 시즌 0.324라는 좋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카인은 배트를 짧게 잡곤 미간을 좁혔다.

‘지난번에는 저 녀석의 다양한 구종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달라.’

그는 어떠한 구종이 오더라도 대처할 수 있도록 오픈 스탠스를 취했다.

“킴, 초구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캐스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초구가 날아왔다.

슉!

‘높은 코스?’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 짧은 사이에 공이 미트에 꽂혔다.

파앙!

“스트라이크!”

카인은 배트를 내보지도 못한 채 초구 스트라이크를 허용하고 말았다.

‘킴이 이렇게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였나?’

고개를 돌리니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이 눈에 들어왔다.

‘96마일(154km)이라고?’

지난 시즌 그가 상대했던 킴의 패스트볼은 이렇게 빠르지 않았다.

‘빨라 봐야 94마일(151km)이었는데…….’

카인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1년 사이에 괴물이 되었어.’

다음 공도 빠른 공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이번 공은 95마일(153km).

“킴, 패스트볼만으로 카인을 코너에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기세라면 다음 공도 빠른 공일 것 같습니다.”

카인은 오픈 스탠스로는 킴의 빠른 공을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1년 만에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다음 공으로 패스트볼이나 스플리터를 예상했다.

‘어느 쪽이든 꽤 빠를 거야.’

그러나 다음 공은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카인은 이 체인지업에 중심마저 잃고, 무릎을 꿇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구삼진.

김민의 스타트는 더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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