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인터 리그 02
“어땠어?”
록튼의 물음에 김민이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았어.”
“그게 전부야?”
“듣던 것보다 외야가 더 넓었어. 좌우도 넓고, 센터도 깊고.”
록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머레이가 커버할 수 있을까?”
플로리다 말린스의 홈구장 프로 플레이 스타디움은 투수 친화구장인 트로피카나 필드보다도 더 넓은 외야를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넓은 외야는 발 빠른 외야수가 반드시 필요했다.
“머레이면 충분할 거야. 물론 130m 이상 가는 타구를 만들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
머레이는 준수한 수비력을 지닌 중견수였지만, 리드 오프로 나설 만큼 발이 빠른 것은 아니었다.
“오늘 바람은 바다 쪽에서 불어오던데…….”
김민이 글러브를 끼며 말했다.
“해가 지면 풍향이 바뀔 거야.”
마이애미는 항구도시였다.
낮과 밤.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당연했다.
같은 시각.
말린스 클럽 하우스에서는 진지한 회의가 한창이었다.
“킴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는 바깥쪽이야. 특히 경기 초반에는 이 코스를 모든 타자에게 던지곤 하지.”
“바깥쪽 코너를 공략하라는 말이군.”
3번 타자 다니엘이 1번 타자 듀크의 말을 받았다.
듀크는 말린스 우승 멤버 중 한 명으로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 그리고 풍부한 경험을 자랑했다.
그는 현재 말린스의 라커룸 리더를 맡고 있었다.
5번 타자 숀이 손에 든 자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듀크, 바깥쪽 코너의 피안타율이 상당이 낮은데 이건 왜 그런 거지?”
“원래 그 코스는 피안타율이 낮아.”
“엥?”
“알고도 치기 어려운 코스라고.”
숀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럼 노린다고 다 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군.”
듀크가 오른손 식지를 들며 말했다.
“거품이 끼어있다고 해도 녀석이 수준급 투수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 이 정도 핸디도 없이 녀석을 잡으려고 생각했다면, 그 생각을 고치기 바랄 뿐이야.”
그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몇 점이나 낼 수 있을까?”
숀의 물음에 듀크가 대답했다.
“점수가 문제가 아니야. 5회 이전에 강판시켜야 해.”
“치기 어려운 공을 던진다면서?”
“메이저리그에 치기 쉬운 공을 던지는 투수가 있었던가?”
숀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았다.
“후…… 그건 그렇지.”
덜컥.
뒤늦게 클럽 하우스로 들어온 사내는 바로 4번 타자 페코였다.
“페코, 왜 이제 오는 거야?”
숀의 물음에 페코가 얼굴을 찌푸렸다.
“좋지 않은 만남이 있었어.”
3번 타자 다니엘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페코, 진짜로 만나고 온 거야?”
페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만나긴 만났지.”
숀이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녀석이 영어를 못해서 제대로 선전포고를 못한 것 아니야?”
페코가 라커로 향하며 목에 힘을 주었다.
“녀석은 비겁자야.”
“페코, 그게 무슨 말이야?”
“홈런을 쳐 주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유인구만 던지겠다고 하더군.”
그의 말을 들은 듀크가 쓴웃음을 지었다.
“크크, 페코, 제대로 당했군.”
페코가 듀크에게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가 제대로라는 거야! 녀석이 제대로 된 투수라면 당당하게 패스트볼로 승부해야 하는 것 아니야?”
듀크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녀석은 블루가 아니야. 불같은 강속구로 타자를 녹이는 친구가 아니라고.”
“그래서 그냥 서서 1루로 나가란 말인가?”
“네가 4번 1루에 나가게 된다면 숀에게 좋은 기회가 갈 거야. 그러니까 녀석이 유인구를 던진다고 해서 화를 내면 곤란해.”
듀크는 페코가 1루로 걸어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코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김민의 공을 펜스 밖으로 넘겨야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 다음으로 넘어가지.”
듀크가 페코를 진정시키며 다음 파트로 대화를 넘겼다.
이후 20분 이상 타자들의 회의가 계속되었다.
말린스 타자들은 단순히 입으로만 호언장담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상대 투수들을 공략하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는 적극성을 갖추고 있었다.
* * *
“플레이볼!”
주심의 경기 시작 사인과 함께 AK. 블루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슈우우욱!
손끝을 떠난 공이 마치 대포알처럼 날아왔다.
파앙!
미트를 울리는 파공성.
그 파공성에 주심의 목소리도 커졌다.
“스트라이크!”
1번 타자 칼튼은 초구를 본 뒤,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너무하잖아 이건.’
전광판에 기록된 초구는 99마일(159km).
관중석 곳곳에서 환호성과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이스 피칭!”
“최고다! 불루!”
“널 보러 500km를 달려왔다고!”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는 바로 너다! 블루!”
블루는 단 하나의 공으로 탬파베이 더그아웃을 심각하게 만들었다.
“바이슨, 저 친구 소문보다 더 빠른 것 같군.”
바이슨 수석 코치가 굳은 표정으로 이반 감독의 말을 받았다.
“오늘 컨디션이 좋은 모양입니다.”
불펜에서 공을 받던 록튼도 환호성에 동작을 멈췄다.
“공 하나를 던졌을 뿐인데 이 소음은 뭐야?”
김민이 글러브를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100마일이라도 던진 모양이지.”
그는 AK. 블루가 터무니없이 빠른 공을 던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록튼이 김민에게 물었다.
“단 하나의 공으로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끓어오를 수 있는 건가?”
“강속구 투수는 메이저리그 팬들의 로망이라고.”
김민은 AK. 블루의 강속구를 부러워하기보다는 자신이 가르쳤던 강속구 유망주들을 머릿속에 그렸다.
‘대부분 팬들을 열광시킬 재능을 타고난 선수들이었어. 하지만 그 재능을 살린 선수는 단 두 명밖에 없었지.’
강속구 투수는 그 어떤 투수보다 매력적이었지만, 제구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AK. 블루도 마찬가지였다.
마이너리그 시절 제구가 너무 나빠, 싱글A 투수 코치가 산탄총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파앙!
두 번째 공은 존에서 크게 벗어나는 볼이었다.
“너무 벗어나는데?”
“타자가 볼이라는 걸 확실히 알겠어.”
배터 박스에 선 칼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 다행히 볼이군.’
카운트 1-1.
칼튼에게는 아직 2개의 여유가 있었다.
‘다음 공도 볼이었으면 좋겠군.’
그는 강속구를 밀어서 안타를 만들기보다는 볼넷으로 나가는 편이 훨씬 편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세 번째 공이 날아왔다.
슈우우욱!
‘또 빠른 공인가?’
칼튼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제길…… 이번에는 존으로 들어온다.’
블루는 김민처럼 정교한 제구는 할 수 없었지만,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파앙!
미트에 공이 꽂힌 순간 칼튼의 배트가 허공을 쳤다.
“스윙 스트라이크!”
카운트 1-2.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8마일(158km)이었다.
칼튼은 크게 헛스윙한 뒤 미간을 좁혔다.
‘패스트볼만 세 개 던졌는데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어. 괴물 같은 스피드군.’
그는 패스트볼만 따지면 블루가 페드로보다도 위라고 생각했다.
‘다음 공도 아마 패스트볼이겠지?’
칼튼은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췄다.
그리고 그 직후 커브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여기서 커브라고?’
배트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 움직인 배트는 쉽게 멈출 수가 없었다.
칼튼은 억지로 배트를 멈췄지만, 주심의 판정은 스윙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첫 번째 삼진.
관중석에서 다시 환호성이 터졌다.
“K! K! K!”
“블루! 멋진 투구다!”
“난 삼진을 사랑한다!”
사람보다 키가 더 큰 ‘K’가 펜스 위에 걸렸다.
“마이애미 팬들이 블루의 삼진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절반은 블루의 삼진을 보기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타자의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는 삼진.
칼튼의 삼진 장면은 하이라이트에 나와도 충분할 정도였다.
“칼튼, 수고했어.”
“칼튼, 마지막 공은 어쩔 수 없었어.”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칼튼은 동료들의 위로에 혀를 내둘렀다.
“블루 저 자식, 괴물 같은 녀석이야.”
블루의 괴물 같은 피칭은 2번 타자 케니히마저 압도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두 타자 연속 헛스윙 삼진 아웃.
케니히도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칼튼과 똑같은 말을 남겼다.
“저 녀석, 괴물이야.”
“대체 어떤 괴물이라는 거야?”
“상대해 보면 알아. 정말 괴물이야.”
이반 감독은 타자들이 블루에게 압도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순히 아웃 카운트가 늘어나는 수준이 아니다. 블루의 패스트볼은 타자들의 멘탈까지 흔들고 있어.’
그는 블루의 패스트볼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스타.”
“예.”
“어떻게 하면 저 공을 칠 수 있을까?”
이반 감독의 물음에 코스타 타격 코치가 대답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을 많이 보고 패스트볼 타이밍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코스타, 우린 저 친구를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야. 다른 방법은 없나?”
“배트를 가능한 짧게 잡고 스윙을 작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의 대답은 일반론이었다.
이반 감독은 그 이상의 대답을 원했다.
“케니히는 배트를 짧게 잡고도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어.”
“…….”
“3회가 끝날 때까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봐.”
코스타 타격 코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알겠다고 대답을 했으나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블루는 3이닝 만에 공략법을 찾을 수 있는 투수가 아니야.’
코스타 타격 코치는 블루를 공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맞붙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행운을 바랄 수 없을 것 같군.’
마운드 위에 선 블루는 마블 코믹스에서 나오는 헐크와 같았다.
탁!
안데르센이 간신히 배트에 맞춘 공이 투수 앞으로 굴러갔다.
“투수 앞 땅볼입니다! 블루, 가볍게 잡아 1루에 송구합니다.”
안데르센은 절반도 가지 못한 채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빌어먹을…… 완전히 넉넉한 아웃이군.’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1회 초 공격은 블루가 얼마나 대단한 투수인지를 확인시켜 줬을 뿐이었다.
“킴, 이제 우리 차례야.”
김민이 불펜 문을 열면서 록튼의 말을 받았다.
“록튼, 오늘은 바운드 볼이 많을 거야. 그러니까 경기 내내 긴장을 풀지 말아 줘.”
록튼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10개든 100개든 마음 놓고 던지라고. 바운드 볼은 내 전문이니까.”
그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록튼은 전문가들과 팬들에게 블로킹이 좋은 포수로 평가받고 있었다.
1회 말.
플로리다 말린스의 첫 번째 공격.
“듀크, 부탁한다.”
“깔끔하게 안타 하나 쳐 달라고.”
플로리다 말린스 타자들의 눈빛은 전에 없이 날카로웠다.
“플로리다 최고의 선수가 누구인지 A스포츠에 확실히 가르쳐 주자고.”
“그래, 확실히 가르쳐 줘야지.”
1번 타자 듀크는 배터 박스에 들어선 뒤 오른발로 박스 위에 흙을 정리했다.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는 배트를 세운 뒤, 바깥쪽에 히팅 포인트를 맞췄다.
‘힘들이지 않고 깔끔하게 밀어친다. 욕심을 부리면 당할 뿐이야.’
주심의 사인이 나오자 김민이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슉!
예상대로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이었다.
‘그대로 민다.’
듀크는 선과 점을 잇는 배트 컨트롤로 공을 밀어냈다.
딱!
배트에 맞은 공이 그대로 1루 라인을 벗어났다.
“파울!”
듀크의 파울 타구를 본 3번 타자 다니엘이 혀를 찼다.
“허, 듀크가 노린 공을 놓칠 때도 있군.”
“듀크답지 않아. 타이밍이 밀렸어. 배트를 조금 더 빨리 돌렸다면 3루수 키를 넘어가는 타구가 되었을 거야.”
타자의 배트가 밀렸다는 말은 투수의 패스트볼 스피드가 예상보다 빨랐다는 뜻이었다.
전광판에 기록된 김민의 초구는 95마일(153km).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의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제구와 구속, 두 가지 모두 좋군. 오늘 킴은 베스트 컨디션이야.’
김민은 두 번째 공으로 안쪽을 깊게 찔렀다.
듀크는 이 공을 기다렸지만, 공은 그대로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카운트가 0-2로 바뀌었다.
“듀크가 코너에 몰렸어.”
“듀크답지 않아. 그 공을 왜 그냥 보낸 거지?”
듀크는 김민의 로케이션에 미간을 좁혔다.
‘예상보다 제구가 더 좋아.’
그는 김민의 안쪽 제구가 바깥쪽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민의 안쪽 제구는 바깥쪽 제구와 큰 차이가 없었다.
‘안쪽과 바깥쪽을 완벽하게 제구할 수 있는 투수라. 녀석의 성적은 플루크(거품)가 아니었단 말인가?’
잠시 뒤, 승부구가 날아왔다.
슉!
‘다시 바깥쪽?’
듀크는 바깥쪽 코너에 들어오는 패스트볼이라고 확신했다.
‘삼구삼진을 노리는 거냐? 난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민이 던진 승부구는 패스트볼이 아닌 스플리터였다.
듀크의 배트가 허공에 큰 호를 그린 순간 주심이 오른손을 빠르게 찔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첫 타자 삼진.
김민의 시작은 블루와 같았다.
“듀크가 삼진으로 물러났어.”
“젠장, 삼구삼진으로 당하다니, 듀크답지 않아.”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1번 타자의 삼진.
블루의 강속구로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 버렸다.
“2번 타자 레나도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2번 타자 레나도는 지난 시즌 12홈런을 기록한 타자였다.
“레나도는 3할을 칠 수 있는 컨택 능력과 15홈런 이상을 칠 수 있는 장타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선수입니다.”
탬파베이에도 레나도와 유사한 선수가 있었다. 그는 바로 5번을 치고 있는 머레이였다.
“레나도가 2번이라니, 말린스 타선은 만만하지 않아.”
불펜에서 경기를 치켜보던 볼튼이 미간을 좁혔다.
“그래도 양키스보다는 낫지 않아?”
볼튼에게 말을 건넨 선수는 에두아르도였다.
“그렇긴 합니다만…… 다른 내셔널 리그 팀들은 조금 더 편하잖아요.”
이 시기 내셔널 리그 팀들은 아메리칸 리그 팀들에 비해 전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 애리조나가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를 꺾으며 그 평가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김민은 초구로 느린 커브를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말린스 더그아웃에서 이를 지켜본 타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초구 커브라고?”
“저 녀석, 패스트볼로 초구를 잡는 타입 아니었어?”
“제길…… 전력분석팀 정보하고 다르잖아.”
레나도는 느린 커브에 카운트를 내준 뒤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쳇,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겼어.’
그는 초구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빠르게 배트를 냈다.
하지만 김민이 던진 공은 느린 커브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허공에 큰 호를 그리는 것뿐이었다.
김민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에도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는 투수들에게 표정 변화가 없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곤 했다.
“킴, 두 번째 투구에 들어갑니다.”
캐스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이 미트를 향해 질주했다.
슈우욱!
초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공.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레나도는 다시 한번 크게 헛스윙했다.
‘제길…… 빠른데다가 떠오르기까지 하잖아.’
말린스 타자들은 레나도의 헛스윙에 고개를 갸웃했다.
“레나도 말이야. 어디 부상이라도 입은 거 아니야?”
“왜?”
“94마일(151km)밖에 안 되는 공에 저렇게 크게 헛스윙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김민이 던진 패스트볼은 94마일에 불과했지만, 다른 투수의 패스트볼보다 훨씬 많은 회전을 가지고 있었다.
스미스는 당황하는 말린스 타자들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런 표정 하지 말라고. 킴의 패스트볼은 보스턴 타선도 잠재운 패스트볼이야.’
말린스 타선은 내셔널 리그에서 손가락에 꼽혔지만, 라파엘이 버티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비교하면 한 수 아래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김민은 95마일(153km) 하이 패스트볼로 2번 타자 레나도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킴! 두 번째 타자도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오늘도 삼진이 많습니다. 킴, 마이애미 팬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 주려는 것 같습니다.”
3번 타자 다니엘이 타석으로 향하려는 순간 4번 타자 페코가 그를 잡았다.
다니엘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페코?”
“어떻게든 1루에 나가.”
“뭐라고?”
“네가 1루에 나간다면 녀석이 나를 거르지 못할 거야.”
페코는 2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서게 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다면 녀석은 주저하지 않고 볼넷으로 나를 거를 거야.’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몸에 맞더라도 1루에 나가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