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인터 리그 01
4월 30일.
탬파베이는 4월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4월을 16승 10패로 마무리했다.
승률은 6할을 넘었고, 3승 이상을 거둔 투수만 3명이 나왔다.
지난 시즌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출발이었다.
“2위 탬파베이가 지구 선두 양키스를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현재 양키스의 성적은 18승 7패.
탬파베이와 승차는 2.5게임.
“보스턴이 3위로 밀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보스턴의 성적도 나쁘지 않습니다.”
보스턴은 15승 11패로 동부지구 3위에 머무르고 있었다.
보스턴 팬들은 탬파베이에게 뒤져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군요. 4위 토론토도 5할 승률을 넘보고 있습니다.”
탬파베이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전장이 되고 말았다.
“5월은 어떻게 될까요?”
“선두 양키스는 일정이 나쁘지 않습니다. 휴식일도 제법 많죠. 1위 수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2위 탬파베이는 어떤가요?”
“탬파베이는 5월초 인터 리그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당분간 2위 자리를 고수할 것 같습니다.”
“탬파베이도 나쁘지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캐스터가 안경을 고쳐 쓰곤 다시 패널들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3위 보스턴이 가장 문제겠군요.”
“보스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시즌일 겁니다. 5할을 훌쩍 넘는 성적에 페드로와 노라까지 돌아왔음에도 지구 3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5월 일정은 썩 좋지 않습니다. 휴식일도 2일밖에 없고, 원정 경기도 많습니다. 5월을 잘못 보내면 4위 토론토에게 따라잡힐 수도 있습니다.”
보스턴은 자신들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탬파베이의 기세가 꺾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4월 MVP는 킴민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5월은 어떤 선수가 MVP를 가져가게 될까요?”
“글쎄요. 이것은 쉽게 속단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 1경기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김민은 4월 MVP로 뽑히면서 F스포츠 MVP 포인트에서 1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질문을 바꿔보도록 하죠. 킴의 페이스가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킴의 페이스는 놀랍습니다.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올스타브레이크 전에 15승을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평균자책점까지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성적이죠. 하지만 이 성적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당장 5월에 성적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넓은 얼굴의 중년인이 첫 번째 대답에 힘을 보탰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킴의 페이스는 5월부터 꺾이게 될 겁니다. 그래도 3점대 초반 평균자책점은 유지할 수 있겠죠. 그는 클래스가 있는 투수입니다.”
패널 대부분은 김민이 4월과 같은 성적을 5월에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5월 2일.
볼티모어 대 탬파베이.
원정 2차전 선발로 나선 투수는 김민이었다.
그러나 김민은 5이닝을 채우지 못한 채 4실점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번 시즌 첫 패전이었으며, 첫 퀄리티 스타트 실패였다.
메이저리그 패널들은 올 것이 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록튼의 생각은 달랐다.
“오늘 패전은 킴의 기량이나 폼이 하락한 게 아니야. 비와 바람이 경기를 망친 것뿐이지.”
이날 볼티모어의 기온은 평년보다 4도 가량 낮았으며 탬파베이에 비해서는 12도 이상 낮았다.
김민은 쌀쌀한 날씨에 몸이 덜 풀린 상태로 마운드에 올랐고, 2회부터 내린 비는 이를 더 악화시켰다.
“그러고 보니, 킴이 비오는 날 등판한 건 처음이군.”
젖은 마운드도 김민에게는 큰 방해물이었다.
그가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뛰었던 플로리다는 화창 날씨로 유명했다.
태풍이 올 때를 제외하곤 비가 오더라도 금방 땅이 말라 젖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일이 적었다.
그러나 볼티모어에서는 달랐다.
축축하게 젖은 마운드는 김민의 착지를 어렵게 만들었고, 거세진 빗줄기에 제구가 흔들렸다.
물론 상대 투수도 같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상대 투수는 볼티모어에서 오래 뛴 노장이었다. 그는 김민보다 이런 날씨에 익숙했다.
“바꿔 말하면 지금의 킴은 악천후만이 막을 수 있는 투수일지도 몰라.”
5월 8일.
김민은 토론토전에 선발 등판했다.
이날 김민의 상대는 카펜터였다.
카펜터는 김민을 상대로 지난 시즌의 복수를 노렸다.
그러나 김민은 8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 내며 압도적인 피칭을 선보였다.
8이닝 3실점으로 버틴 카펜터에게 판정승.
경기가 끝난 직후.
기자들은 태도를 바꾸어 김민의 피칭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8이닝 1실점 11K. 킴이 완전히 부활했군.”
“볼티모어전은 그냥 폼이 조금 안 좋은 것뿐이었어.”
“시즌을 치르다보면 부진한 경기가 나올 때도 있지. 난 볼티모어전이 그런 경기라고 생각해.”
“맞아, 이번 시즌 사이영상은 킴의 차지가 될 거야.”
이날 호투로 김민은 평균자책점을 다시 1.5 아래로 떨어뜨리는데 성공했다.
“6승 1패 평균자책점 1.31, 이 정도 성적이면 페드로도 못 당하겠어.”
페드로 마르티네스 역시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그의 자책점은 1.89로 1점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오직 김민과 페드로만이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몇몇 패널들은 김민이 돔구장에 유독 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론토와 탬파베이는 홈구장이 돔이라고, 킴은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돔에서 유독 강한 투수야.”
“마술사 같은 운영을 위해서는 날씨란 요소를 배제할 필요가 있지. 킴이 돔구장에서 강한 것은 우연이 아니야.”
“바꿔 말하면 양키 스타디움이나 펜웨이 파크에서는 돔구장에서 던지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는 말이군.”
“맞아, 실제로 킴은 펜웨이 파크 성적보다 트로피카나 필드 성적이 훨씬 좋다고.”
록튼이 패널들의 의견을 듣고 김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야?”
김민은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날씨를 배제할 수 있다면 배제하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펜웨이 파크에서 성적이 떨어진 투수는 나만이 아닐 거야.”
양키 스타디움이나 펜웨이 파크는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이었다.
투수에게 유리한 트로피카나 필드보다 기록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5월 11일.
탬파베이는 플로리다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홈이 아닌 원정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다.
내셔널 리그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플로리다 팀, 플로리다 말린스가 그들의 상대였다.
“이번에는 마이애미 원정인가?”
“말린스 녀석들, 이번에는 반드시 콧대를 눌러 주겠어.”
고참 선수들은 플로리다 말린스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지난 몇 번의 대결에서 말린스 선수들이 탬파베이를 얕잡아 보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우릴 완전히 깔봤지.”
“성적에서 차이가 크잖아.”
에두아르드의 말에 렉터가 미간을 좁혔다.
“월드시리즈에서 3번 연속 우승한 양키스도 녀석들보다는 나았어.”
“그건 그렇지.”
플로리다 말린스 선수들은 자신들이 플로리다의 적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주장은 탬파베이보다 월등한 성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플로리다 말린스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와 마찬가지로 90년대 창단한 신생팀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빠르게 강해져 창단 5년도 안 되어 월드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반면 탬파베이는 단 한 번의 플레이오프 진출도 없이 꼴찌만 기록했다.
탬파베이가 꼴찌에서 탈출한 것은 김민이 대활약을 펼친 2001 시즌이 처음.
플로리다 말린스 선수들이 오만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클락이 김민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킴, 마이애미 녀석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해 주라고.”
“인사?”
“콱 눌러 주란 말이야. 20K쯤 해 주면 좋겠네.”
클락 역시 플로리다 마린스에 감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인터 리그 선발로 나와 4이닝 6실점으로 패전을 안은 바 있었다.
“그래 할 수 있다면 20K를 해 주라고.”
로버트가 책을 덮으면서 말했다.
“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 다들 그냥 하는 소리니까.”
렉터가 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야. 나라면 10K 이상으로 녀석들을 눌러 버렸을 거야.”
플로리다 말린스와 시리즈에 나서는 선발 투수는 설리반과 부르스 그리고 김민이었다.
덕분에 렉터는 말린스를 상대로 복수전을 펼칠 수가 없었다.
끼익.
차가 멈춘 곳은 숙소인 하얏트 호텔이었다.
밝은 성격의 불펜 투수 몬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펼쳤다.
“제군들 마이애미에 온 것을 환영하네!”
선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5월 12일.
설리반이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첫 등판을 가졌다.
“설리반, 확실히 눌러 버려!”
렉터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설리반은 플로리다 타선을 막아 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플로리다 말린스는 우승권은 아니었지만, 매년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팀이었다.
이반 감독이 스코어보드를 확인하곤 미간을 좁혔다.
“기세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건가?”
5회 현재 플로리다 말린스가 5-3으로 리드를 잡고 있었다.
“말린스는 만만히 볼 팀이 아닙니다. 지난 시즌도 우리 팀보다 성적이 좋았습니다.”
“바이슨, 이번 시즌만큼은 그것을 바꿔야 하지 않겠나?”
“그건 동의합니다.”
김민은 불펜이 아닌 더그아웃에서 스미스와 함께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말린스 타선의 짜임새가 좋아.”
“마치 우리 타선 같아.”
플로리다 말린스는 30홈런 이상을 때려낼 수 있는 강타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팀 홈런에서 다른 팀에 밀리지 않았다.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타자가 많아.”
“9번 타순이 투수라는 것을 제외하면 절반 이상이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솔직히 말해서 지뢰밭 타선이나 마찬가지야.”
탬파베이는 설리반 다음으로 등판한 몬도가 2점을 더 내주면서 7-3으로 첫 경기에 패하고 말았다.
“으…… 분해.”
부르스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내일 내가 복수해 주겠어.”
다른 때 같았으면 크게 목소리를 높이면서 동의했을 렉터였다.
하지만 이번 시즌 부르스는 예전의 부르스가 아니었다.
“부르스…….”
“걱정하지 마. 할 수 있으니까.”
렉터의 걱정과 달리 부르스는 자신이 있었다.
‘타자를 윽박지르는 것만 답이 아니야.’
보스턴전 이후 그는 새로운 해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시프트를 이용한 맞춰 잡는 투구였다.
‘록튼은 믿을 수 있는 포수야. 그 친구와 내야수들이 날 도와준다면, 상대가 말린스라고 해도 해낼 수 있어.’
다음 날.
부르스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철저한 바깥쪽 투구로 말린스 타자들을 유인했다.
“부르스! 2루 땅볼을 유도해 냅니다.”
“오늘 평소보다 땅볼이 많군요.”
이반 감독이 부르스의 투구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부르스가 잘 버텨 주는군.”
5회까지 2실점.
부르스는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었다.
“반면 타자들이 부진해.”
탬파베이 타자들은 처음 만나는 말린스 투수들에게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6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뽑지 못하는 부진에 빠져 있었다.
“저 투수 말이야. 이상하게 팔을 꼬아 던진단 말이지.”
“저건 이상하게 팔을 꼬아 던지는 게 아니라 사이드암이라고 하는 거야.”
탬파베이 타선이 점수를 낸 것은 7회가 지난 뒤였다.
“7회 초 탬파베이가 스코어 3-1, 2점차로 말린스를 추격합니다.”
“이제 말린스의 필승조가 등장할 타이밍이군요.”
필승조가 등장해 급한 불을 끈 뒤, 경기는 플로리다 말린스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8회 초.
“삼구삼진! 98마일(158km)의 강속구가 미트를 때립니다!”
셋업으로 나선 에스테반이 탬파베이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그러나 9회 초 믿었던 마무리 투수 콜린이 블론 세이브를 저지르고 말았다.
“브라이튼! 역전 2타점 2루타입니다!”
“콜린의 블론 세이브는 이번 시즌 처음입니다.”
“플로리다 말린스, 9회 초 다 잡았던 승리를 놓쳤습니다.”
렉터는 브라이튼의 역전 적시타에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봤어? 브라이튼이 해냈어!”
부르스가 아이싱을 한 채 그의 말을 받았다.
“그래, 꼬맹이가 해냈군.”
콜린의 블론 세이브는 말린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말았다.
이날 경기는 결국 탬파베이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탬파베이와 플로리다 말린스가 1승을 나눠가졌군요.”
“내일 이기는 사람이 이번 시리즈 승리를 가져가겠군.”
“두 팀 모두 승리를 양보하기 싫을 겁니다.”
“하긴,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니까.”
오늘 경기 승리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건 그렇고 두 팀 선발 투수가 대단하군.”
플로리다 말린스의 선발 투수는 AK. 블루.
그는 지난 시즌 12승 11패로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한 뒤, 이번 시즌 에이스로 우뚝 선 강속구 투수였다.
최고 구속은 무려 100마일(161km).
그의 투구 스타일은 김민과 반대였다.
“블루의 강속구와 킴의 운영이 맞붙는 경기군요.”
“누가 이길 것 같나?”
“킴 아닐까요?”
“기세가 좋아서?”
“블루보다는 검증된 투수니까요.”
아메리칸 리그 4월 MVP에 빛나는 김민.
객관적인 성적은 블루가 김민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게일은 블루를 지지하는 겁니까?”
“굳이 하나 선택하라면 블루를 선택하겠어.”
“킴이 아니라 블루란 말입니까?”
“내일은 비가 오거든.”
게일의 선택은 궂은 날씨에 약하다는 패널들의 주장을 따른 것이었다.
다음 날.
경기 시작 2시간 전.
플로리다의 한 언론이 말린스 선수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오늘 등판하는 킴민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민에 대한 물음에 답한 선수는 4번 타자 페코였다.
“킴말입니까? 그 친구는 플루크(거품)입니다.”
“네?”
리포터가 당황할 정도로 강한 대답.
페코가 설명을 덧붙였다.
“어제 던진 부르스하고 비슷한 투수겠죠. 바깥쪽으로 도망치는…… 그런 투구로는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어제 경기도 블론 세이브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겼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러니까 확실히 이길 수 있는 투수란 말씀이신가요?”
“짧게 줄이면 그렇습니다.”
플로리다 말린스 선수들이 김민을 애써 깎아내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탬파베이에서 플로리다 최고의 선수가 나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플로리다 최고 선수는 항상 우리 말린스에서 나왔다고.”
플로리다 최고의 선수.
플로리다 언론은 매년 플로리다 최고의 선수를 투표로 선정하곤 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관심도 없는 타이틀이었지만, 플로리다 말린스 선수들에게는 꽤 중요한 타이틀 중 하나였다.
그들은 구단명에 플로리다라는 지역 이름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들에게 타이틀이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선수 최초로 김민이 플로리다 최고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플로리다 말린스 선수들은 이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들은 김민이 아닌 자신들에게 그 타이틀이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5회 이전에 녀석을 강판시켜 버리자고.”
“맞아, 녀석에게 얼마나 큰 거품이 끼었는지 똑똑히 알려 주자고.”
“이번 시즌 마지막 기회야. 다들 신중해야 해. 감정만 앞세우면 곤란하다고.”
말린스 타자들은 지난해 10월부터 김민과의 만남을 벼르고 있었다.
김민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프로 플레이어 스타디움(말린스 홈구장) 곳곳을 체크하고 있었다.
“내야는 확실히 방수포에 덮여 있군. 비가 조금 더 내린다고 해도 문제가 되진 않겠어.”
일기 예보에 따르면 일출과 함께 비가 그칠 것이라고 했다.
김민은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볼티모어전과는 달라.’
그는 볼티모어전의 패전을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김민이 외야 코너를 돈 순간이었다.
키가 큰 금발 선수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킴인가?”
김민은 목소리에 감정이 실려 있었기 때문에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건가?”
금발 선수가 대답했다.
“선전포고를 해 두려고.”
“선전포고?”
“내 이름은 페코, 말린스의 4번을 맡고 있지.”
김민은 페코의 위아래를 훑어보곤 미간을 좁혔다.
‘헬멧을 벗고 있어서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군.’
페코가 말을 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네게 홈런을 빼앗겠어.”
“그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페코가 짧게 대답했다.
“그래.”
김민이 그의 옆을 스쳐가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헛수고로군.”
페코가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김민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입구로 걸어가며 말했다.
“넌 홈런을 칠 수 없을 거야.”
“날 얕보는 건가?”
“아니, 내가 유인구만 던질 테니까.”
페코가 얼굴을 찡그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비겁자!”
김민은 더 이상 말을 받아주지 않고 통로로 사라져 버렸다.
혼자 남은 페코는 주먹을 꾹 쥐었다.
“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수 없는 녀석이야!”
김민은 통로에서 페코의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꽤 흥분한 모양이군. 심리전에서는 이쪽이 이겼어.’
그는 경기 시작 전 의외의 소득을 거두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