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위기에서 빛나는 별 03
빠른 공, 그리고 더 빠른 공.
처음에는 손끝의 감각으로 구속을 조절하려 했다.
그러나 김민은 곧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의 감각만으로 구속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많은 투구수가 필요하다.’
오프 시즌이라면 모를까?
시즌을 치르는 도중 100개씩 던지는 투구 훈련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김민은 생각을 바꿨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자.
‘공을 던지는 방식을 둘로 나누면 어떨까?’
그는 우선 평범한 빠른 공에 주목했다.
‘밸런스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원하는 곳에 공이 들어가도록 집중한다.’
이렇게 공을 던지자 자연스럽게 구속이 떨어졌다.
패스트볼 구속은 대략 92마일(148km)에서 94마일(151km) 사이에서 형성되었다.
마이너리그 시절과 비슷한 구속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아.’
두 번째 방식은 구위와 스피드에 초점을 맞추고 던지는 것이었다.
하이 패스트볼을 던질 때처럼 힘차게.
투구 동작이 다소 변하는 것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와일드한 투구폼…… 괜찮을까?’
불펜 포수 라몬은 김민의 와일드한 투구폼을 보곤 이렇게 말했다.
“눈썰미가 좋은 친구라면 투구폼을 보고 킴의 패스볼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타자와 승부하는데는 문제가 없을 거야. 타자는 공을 던지고 난 다음 어떤 공을 던졌는지 알 게 될 테니까.”
공을 던지고 난 다음 얻는 정보는 던지기 전에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그 가치가 떨어졌다.
‘라몬의 말이 정확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김민은 라몬의 조언을 근거로 두 번째 투구 방식을 완성했다.
더 빠른 공의 최고 구속은 대략 96마일(154km).
물론 96마일로 들어오는 공은 많지 않았다.
10개를 던지면 1, 2개가 96마일을 찍을 뿐이었다.
대부분은 95마일(153km)과 94마일(151km) 사이에서 형성되었다.
김민은 구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더 빠른 공의 무기는 구속이 아니라 무브먼트야.’
위로 떠오르는 무브먼트.
와일드한 투구폼으로 던지는 더 빠른 공은 라이징 패스트볼 그 자체였다.
1회 말.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공격.
1번 타자 칼튼은 초구를 본 뒤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패스트볼이 패스트볼이 아니야.’
꿈틀거리면서 날아오는 페드로의 패스트볼은 공략이 불가능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2구 연속 헛스윙.
장갑 안에 땀이 고였다.
칼튼은 1회임에도 불구하고 입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타이밍을 맞출 수가 없어.’
코스타 타격 코치는 칼튼의 표정을 보곤 목소리를 높였다.
“칼튼! 그렇게 얼어붙어서는 페드로의 공을 칠 수 없어.”
그는 칼튼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길 바랐다.
하지만 페드로를 앞에 두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타자는 많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헛스윙 삼구삼진.
칼튼은 고개를 숙였다.
“페드로!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멋진 체인지업이군요. 타자가 타이밍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2번 타자 케니히는 페드로가 던진 세 개의 공을 대기 타석에서 똑똑히 보았다.
‘꿈틀거리는 패스트볼과 말도 안 되는 궤적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체인지업. 내가 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안타를 칠 가능성이 20%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이럴 때는…….’
케니히는 정면 승부를 깨끗이 포기했다.
슉!
초구가 들어온 순간 그는 몸을 낮추고 배트를 내밀었다.
케니히가 선택한 카드는 기습 번트였다.
툭!
배트 끝에 맞은 공이 3루수 쪽으로 굴렀다.
“케니히, 초구에 기습 번트입니다!”
“코스가 나쁘지 않습니다.”
보스턴 3루수 넬슨은 강한 어깨를 지닌 수비수였지만, 기습 번트에 대한 대처가 좋지 못했다.
뒤늦게 공을 잡아 강하게 던졌지만, 주심은 양팔을 좌우로 활짝 벌렸다.
“세이프! 주자 1루에서 세이프입니다!”
“케니히의 센스가 빛을 발했습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1회부터 주자가 나가는군요.”
페드로는 케니히의 내야 안타에 고개를 끄덕였다.
‘케니히…… 센스가 있는 친구야. 넬슨의 수비 위치가 깊었던 것을 이용했군.’
그는 번트 안타를 허용했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3번 타자 안데르센.
패스트볼에 삼진.
이반 감독은 페드로는 페드로라고 생각했다.
“저 패스트볼을 보라고 제정신이 아니야.”
바이슨 수석 코치는 오늘 낼 수 있는 점수는 1점이 한계라고 생각했다.
‘양키스 타선도 완봉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게 지금의 페드로다. 우리 타선으로는 1점도 버거운 일이야.’
고개를 돌리자 4번 타자 아울이 배터 박스에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2사 1루, 타석에 들어선 것은 아울입니다.”
아울은 탬파베이의 초반 상승세를 주도했던 선수였다.
“아울이라면 페드로의 공을 공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해설자는 아울에게 좋은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아울의 기량으로도 페드로의 공은 공략이 불가능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그는 안데르센과 똑같은 패턴에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페드로, 아웃 카운트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오늘 페드로의 무브먼트는 상당합니다. 아울마저 삼진으로 물러나는군요.”
이반 감독은 1회 말 페드로의 투구를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오늘 킴을 올린 건 실수였어.”
그는 페드로만큼은 피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킴이 마운드에 올라갑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의 말에 이반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킴이 가능하면 오래 버텨 줬으면 좋겠군.”
지금 바랄 수 있는 것은 김민의 호투뿐이었다.
2회 초.
김민은 보스턴의 4, 5, 6번과 마주했다.
그들은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김민에게 굴욕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킴, 이번 시즌은 달라. 긴장하라고.’
‘우린 스프링 캠프 때 철저하게 연습했다고. 이번 시즌은 쉽게 당하지 않을 거야.’
‘보스턴 킬러라는 그 별명, 이번 시즌 끝내주도록 하지.’
4번 타자 그란델이 헬멧을 고쳐 쓴 뒤 타석에 들어섰다.
“그란델이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이번 시즌 그란델은 놀라운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10경기에서 타율 0.342에 2홈런 8타점.
162경기로 환산하면 32홈런에 128타점 페이스였다.
호이스 감독은 그란델의 배트에 기대를 걸었다.
“여기서 홈런이 하나 나와주면 아주 좋겠는데 말이야.”
“그란델이라면 해 줄 겁니다.”
김민은 초구 사인을 낸 뒤 빠르게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슉!
손끝을 떠난 공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카운트를 잡는 공인가?’
그란델은 충분히 걷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마지막 순간 그의 배트는 공이 아닌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김민이 던진 초구는 패스트볼이 아닌 커터였다.
“킴! 커터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습니다.”
“이건 그란델이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예상한 볼 배합 같습니다.”
“독심술사의 마안이 발동한 것일까요?”
“그렇다고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란델은 다시 한번 헬멧을 고쳐 썼다.
‘1회와 2회는 볼 배합이 다르단 말이군.’
그는 여전히 히팅 포인트를 바깥쪽에 맞추고 있었다.
‘그래도 볼 배합의 중심은 바깥쪽이다.’
슉!
두 번째 공이 안쪽을 향했다.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 로케이션 승부인가?’
그는 노마와 라파엘이 안쪽 공에 카운트를 빼앗긴 것을 알고 있었다.
‘좋지 않아. 이번 공도 스트라이크야.’
그란델은 미간을 좁히며 배트를 냈다.
그냥 카운트를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그냥 서서 카운트를 빼앗긴 것보다 나빴다.
팍!
크게 튀어 오른 공이 유격수 정면으로 날아갔다.
“바운드가 큽니다. 브라이튼! 처리할 수 있을까요?”
브라이튼은 다른 수비수들보다 더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록튼은 그의 플레이를 보고는 지나치게 과감하다고 생각했다.
‘브라이튼, 너무 빠르다고! 잘못하면 공을 놓치고 말아!’
그가 목소리를 높이려는 순간이었다.
브라이튼이 바운드가 된 공을 낚아챈 뒤 1루로 빠르게 송구했다.
그가 보여 준 수비력은 주전 유격수 유칼리스 이상이었다.
“아웃!”
1루심의 판정에 그란델은 고개를 위로 꺾으며 탄식했다.
“제길!”
치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강하게 들었다.
그란델은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후회에 휩싸여서는 곤란해. 지금은 다음 타석과 수비를 생각할 때야.’
플로리다 지역 방송사 중계진은 김민의 호투에 목소리가 밝아졌다.
“브라이튼, 멋진 수비로 킴을 돕습니다.”
“민첩성이 좋지 않으면 이런 수비를 펼칠 수가 없죠. 브라이튼이 이번 시즌 일을 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이스 감독은 믿었던 그란델의 배트가 초라한 결과를 내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또 시작이군.”
그는 보스턴 타자들이 김민만 만나면 약해진다고 생각했다.
5번 타자 닉도 힘 한 번 써 보지 못한 채 3루 땅볼로 아웃 되고 말았다.
“순식간에 투 아웃입니다.”
“킴, 두 명의 타자를 처리하는데 4개의 공밖에 던지지 않았습니다.”
보스턴 팬들은 TV 앞에서 레드삭스답지 않은 공격이라며 타자들을 비난했다.
“조금 더 공을 지켜봐도 좋았잖아!”
“어떻게 하면 저렇게 성급하게 배트를 낼 수가 있지? 킴에게 완봉을 내줄 생각인가?”
“오늘 우리 팀 투수는 페드로라고 1점, 1점만 내면, 이길 수 있어! 그런데 이게 뭐야!”
그들이 타자들에게 바라는 건 홈런을 앞세운 시원스러운 타격이 아니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앞서 갈 수 있는 단 한 점이었다.
“6번 타자 헬리오가 비장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섭니다. 헬리오, 과연 공격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인지!”
헬리오는 앞선 타자들과 달리 처음부터 커터를 노리고 들어갔다.
‘그란델에게 던졌던 그 공을 던져보라고.’
그러나 김민은 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커터를 던지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주심이 목소리를 높인 순간 전광판 카운트가 0-2로 바뀌었다.
김민이 던진 2개의 공은 모두 더 빠른 패스트볼이었다.
“헬리오, 코너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킴은 압도적입니다. 반면 보스턴 타자들의 배트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 보이는군요.”
헬리오는 마지막 공을 남겨두고 갈등했다.
계속 커터를 노려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노리는 코스와 공을 바꿔야 하는 것일까?
슉!
빠른 공이 안쪽을 파고들었다.
‘일단 치고 보자.’
헬리오는 커터를 포기하고 타격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바깥쪽으로 치우쳐 있었던 무게 중심이 스윙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킴,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이닝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김민의 투구는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킴이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온 모양이군.”
노라는 김민의 마음가짐이 자신들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끌려가는 것도 그렇지 않아?”
노라의 말을 받은 선수는 9번 타자 그렉텐이었다.
그는 파이팅이 좋은 포수로 팀의 분위기메이커를 맡고 있었다.
“맞는 말이야. 이렇게 끌려갈 수는 없지.”
노라는 다음 타석에서 기회를 만들어 보이겠다고 말했다.
2회 말.
페드로는 다시 한번 세 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페드로! 다섯 타자 연속 삼진입니다!”
“오늘 페드로의 체인지업은 마구와 같습니다. 탬파베이 타자들 힘을 내야 합니다.”
탬파베이 타자들은 페드로의 투구에 압도당할 뿐이었다.
“무서울 정도군.”
“사이영상 페이스로 돌아왔습니다.”
이반 감독은 연거푸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3회와 4회 그리고 5회.
두 팀 타자들은 단 한 차례 출루도 성공시키지 못했다.
리그 수위 타자를 노리고 있는 노라와 괴물 라파엘, 4번 타자 그란델.
그들은 모두 김민에게 삼진이라는 선물을 받고 물러나왔다.
“킴! 오늘 경기 8번째 삼진입니다!”
“하이 패스트볼에 속수무책이군요.”
김민은 5회까지 15명의 타자를 상대로 삼진 8개를 뽑아내며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그가 알아? 보스턴은 오늘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하지 못했어.”
“퍼펙트란 말이야?”
“그래.”
기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킴이 뛰어난 투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보스턴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상대가 페드로라 자극을 받고 있는 건가?”
“지난 시즌도 페드로 등판 경기에서는 유독 강했어.”
페드로는 김민의 호투를 보곤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 상대할 맛이 나지.”
그는 5회 말 탬파베이 타선을 상대로 다시 한번 삼진 3개를 뽑아냈다.
“페드로! 오늘 12번째 삼진입니다!”
“5이닝 동안 12개의 삼진! 혹시 시즌 하이 기록이 아닐까요?”
“시즌, 하이 맞습니다! 페드로, 이번 시즌 최고의 페이스로 삼진을 쌓아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 탬파베이라면 모를까?
이번 시즌 탬파베이는 5할 승률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팀이었다.
6회 초.
김민은 마운드에 오르기 전 블렛소 투수 코치를 찾아갔다.
“페드로의 투구수를 혹시 알 수 있을까요?”
블렛소 투수 코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네의 투구수가 아니라 페드로의 투구수 말인가?”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제 투구수가 아니라 페드로의 투구수를 알고 싶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기록지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58개야.”
“예상보다 많군요.”
“예상보다 많다고?”
“페드로는 딱 9회까지 던질 수 있을 겁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의 말을 듣곤 시선을 기록지로 돌렸다.
‘킴은 몇 개지?’
김민의 이름 옆에 적힌 투구수는 43개에 불과했다.
‘페드로보다 15개나 적다고?’
“자네는…….”
“전 10회 이상 던질 수 있습니다.”
김민은 글러브를 들고 마운드에 올랐다.
6회 초 그의 상대는 7, 8, 9번으로 이어지는 하위 타순이었다.
“킴! 첫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아홉 번째 삼진인가요? 킴도 오늘 삼진이 많습니다.”
호이스 감독은 한숨을 내쉴 기력조차 없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다들 페드로에게 부끄럽지 않나? 퍼펙트라니.”
“…….”
“아무리 투수가 공을 잘 던져도 타자들이 칠 수 없다면…….”
호이스 감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스턴의 첫 안타가 나왔다.
딱!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굴러간 공이 시프트를 꿰뚫었다.
“이건 시프트가 아니었다면 내야 땅볼이었을 거야.”
시프트의 허를 찌른 공.
김민은 모자를 고쳐 쓰면서 생각했다.
‘하나 정도 빠지는 공이 나올 때도 됐지.’
그는 시프트가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록튼은 김민의 퍼펙트가 깨지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킴의 동요를 막아야 해.’
그는 내야수들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침착하게 가자고! 안타 하나일 뿐이야.”
김민은 록튼이 내야수들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말이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호이스 감독은 주자가 나가자 바로 승부수를 선택했다.
“히트앤드런이야.”
홈런의 시대.
히트앤드런은 병살타를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호이스 감독의 히트앤드런은 목표가 달랐다.
그의 히트앤드런은 안타 하나에 3루 이상을 노리기 위한 것이었다.
“한 방으로 끝내자고.”
9번 타자 그렉텐.
그는 타격 코치에게 사인을 받곤 미간을 좁혔다.
‘히트앤드런이라고? 병살을 막자는 것인가?’
그렉텐은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평범하게 히트앤드런을 이해했다.
‘안타를 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든 땅볼을 만들어 주자를 2루까지 보내야 한다. 뭐, 안타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슉!
초구는 안쪽으로 파고드는 패스트볼.
그렉텐은 이 공이야말로 땅볼을 만들기 아주 좋은 공이라고 생각했다.
‘땅볼쯤이야.’
다음 순간 그렉텐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윙 스트라이크!”
김민의 패스트볼은 하이 패스트볼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2루!”
그렉텐의 헛스윙으로 상황이 종료된 것이 아니었다.
히트앤드런 사인에 따라 주자가 스타트를 끊은 것이었다.
‘도루인가? 아니면 히트앤드런?’
록튼은 미트에 들어온 공을 빼서 그대로 2루에 송구했다.
‘킴의 이번 공은 아주 빠른 공이었어. 승산은 우리에게 있다고!’
유격수 브라이튼의 글러브가 타자의 발을 터치하자마자 2루심의 판정이 나왔다.
“아웃!”
록튼은 2루심의 판정과 동시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반면 호이스 감독은 쓴 약을 마신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완전히 실패했군.”
한 베이스를 더 가려던 욕심이 화가 되어 주자를 소멸시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