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104화 (104/296)

104화 진화하는 괴물 03

“트로피카나 필드의 먼 펜스를 넘기지 못한 것이 아쉽군요.”

코스타 타격 코치가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아울, 이번 홈런은 트로피카나 필드라고 해도 넘어갔을 거야. 비거리가 상당하다고.”

볼티모어의 홈구장 오리올 파크는 타자 친화적인 구장으로 탬파베이의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보다는 홈런이 많이 나오는 곳이었다.

아울은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던 것이었다.

6회 말.

볼티모어가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유칼리스의 송구 실책으로 주자가 2루까지 나갔습니다.”

“무사 2루. 6회 초 아울의 홈런이 아니었다면 킴의 어깨가 꽤 무거워졌을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 주었던 유칼리스.

그러나 이번 시즌은 세 번째 경기에서 두 번째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반 감독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유칼리스가 흔들리고 있군.”

바이슨 수석 코치가 옆에서 감독의 말을 받았다.

“유칼리스는 브라이튼이 치고 올라오는 게 부담이 되는 모양입니다.”

이반 감독은 아직 유칼리스가 수비에서는 위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격은 달랐다.

브라이튼은 좋은 배트 컨트롤로 12타수 4안타 타율 0.333의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탬파베이 지역 언론은 브라이튼을 선발로 내는 쪽이 더 승률이 높다면서 그의 기용을 종용하고 있었다.

“경쟁은 초조한 쪽이 지게 되어 있는 법이야.”

이반 감독은 이대로 나간다면 브라이튼이 주전을 차지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이슨 수석 코치는 아직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비는 상수와 같아서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유칼리스의 실책은 곧 개선될 겁니다. 반면 브라이튼의 타격감은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반 감독은 유칼리스가 포지션을 유지할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반등하지 못하면 대수비나 대주자로 전락하게 되겠지.’

노아웃 주자 2루.

김민은 포지션 경쟁을 하고 있는 유칼리스를 배려할 입장이 아니었다.

‘노 아웃에 주자 2루라. 게다가 볼티모어는 중심 타선…… 상황이 좋지 않군. 1점은 내준다고 생각하고 던지는 게 좋을 것 같군.’

배터 박스에 들어선 것은 2번 타자 잠스.

잠스는 오늘 안타를 하나도 때려내지 못했다.

‘3번째 타석, 이번에는 반드시 출루해야 해.’

시즌 초반 포지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은 볼티모어도 마찬가지였다.

잠스는 트리플A에서 올라온 홀리오와 포지션 경쟁에 들어가 있었다.

‘풋내기에게 밀려날 수는 없지.’

앞으로 두 시즌만 버티면 FA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다.

잠스는 절대 홀리오에게 밀리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다.

“킴, 셋포지션에 들어갑니다.”

“킴은 셋포지션 상황에서도 구속이 떨어지지 않는 투수 중 하나입니다. 잠스, 쉽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해설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민의 패스트볼이 바깥쪽 코너를 찔렀다.

파앙!

“스트라이크!”

잠스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이라 판단했지만, 김민의 컨트롤은 완벽에 가까웠다.

“94마일(151km). 구속은 나쁘지 않군.”

“6회 말에 94마일이면 컨디션이 괜찮다고 봐야 할 겁니다.”

“초반 난조 때 점수를 더 뽑아야 했어.”

볼티모어의 토미 감독은 김민을 상대로 1점밖에 뽑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여기서 한 점 쫓아가면 괜찮을 겁니다.”

“쫓아갈 수 있을까?”

토미 감독의 물음에는 미약하나마 절망이라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아직 6회입니다. 충분히 추격할 수 있습니다.”

타격 코치는 잠스를 믿었다.

하지만 잠스의 배트는 그의 믿음에 답하지 못했다.

탁!

배트 끝에 걸린 공이 그대로 유격수 방향으로 흘러갔다.

“느린 땅볼! 유칼리스가 달려듭니다!”

“이건 빠른 처리가 필요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타자와 주자 모두 살 수 있습니다.”

유칼리스는 조금 전 실책을 만회하려는 듯 맨손으로 공을 잡아 2루수 칼튼에게 토스했다.

‘칼튼 부탁한다.’

그와 칼튼은 지난 몇 년간 손발을 맞춰 온 사이였다.

두 사람은 상대의 스탭만 보고도 다음 플레이를 예측할 수 있었다.

칼튼은 유칼리스의 토스를 받은 뒤 베이스를 밟고 뛰어올랐다.

“칼튼! 베이스를 밟고 뛰어올라 러닝 스로우!”

“멋진 송구입니다!”

멋진 자세로 던진 공이 그대로 1루수 아울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아웃! 더블 플레이입니다!”

볼티모어 팬들은 좋았던 찬스가 더블 플레이로 마감되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더블 플레이가 몇 개나 나오는 거야?”

“한 경기 더블이 3개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하던데 오늘이 그런 날이군.”

“이건 잠스가 성급했어. 거기서 왜 그런 공을 때린 거야!”

토미 감독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헨리, 자네가 잠스 대신 배터 박스에 있었다면 저 공을 고를 수 있었을까?”

헨리 타격 코치는 왕년에 3년 연속 3할을 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성기라면 가능했을 겁니다.”

“기량이 뛰어난 타자라면 골라 낼 수 있는 공이란 말인가?”

헨리 타격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볼 배합과 시프트가 좋긴 했지만, 특별하다고 볼 수 없는 공이었습니다. 선구안이 좋은 타자라면 분명 골라 냈을 겁니다.”

김민은 공 자체만 보면 뛰어난 위력을 지닌 투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특유의 경기 운영 능력과 볼 배합, 그리고 강력한 수비 시프트가 합쳐지면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투수가 되었다.

“전성기 자네와 같은 타자가 없는 게 아쉽군.”

토미 감독은 볼티모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헌터도 전성기 헨리 코치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시즌도 90패는 기본으로 하겠군.’

볼티모어의 앞날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킴,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고 이닝을 마칩니다.”

“초반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줬지만, 오늘도 멋진 투구를 이어갑니다. 킴은 오늘도 킴입니다.”

6이닝 1실점 4파인타 1사사구 6K.

기록만 보면 언제 흔들렸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김민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블렛소 투수 코치가 다가왔다.

“킴, 평소보다 투구수가 많아. 알고 있겠지?”

김민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70개 언저리일까요?”

“72개.”

한계 투구수를 100개로 상정하면 앞으로 2이닝 정도를 더 던질 수 있었다.

그러나 김민은 100개를 채운 적이 별로 없었다.

지난 시즌 그는 대부분 90개에서 경기를 끝내곤 했다.

그 때문에 김민의 안티들은 체력이 약하다면서 그를 깎아내리곤 했다.

“오늘 경기도 80개에서 끊을까?”

블렛소 투수 코치의 물음에 김민이 잠시 망설였다.

‘전체적인 밸런스는 나쁘지 않아. 하지만 경기 초반 오버 페이스로 던진 공들이 많았어. 100개는 절대 무리고…… 그 아래로 끊는 게 좋겠지.’

생각을 정리한 김민이 블렛소 코치에게 말했다.

“오늘은 90개로 하겠습니다.”

90개라면 평소와 같은 페이스였다.

“좋아. 그럼 7회 말까지 막아 주게.”

김민이 7회 말까지 버텨 준다면 탬파베이는 볼튼과 로버트로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7회 말.

김민의 첫 상대는 4번 타자 헌터였다.

‘시작부터 4번이라. 여기서 장타를 하나 맞으면 위험할 거야.’

그는 이번 7회 말 집중력을 최대로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헌터는 배트를 세우곤 김민을 노려보았다.

‘5회부터 킴의 패스트볼 구속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 이번 회는 아마 94마일(151km)이 최고 구속이 될 거야.’

전력분석팀은 경기에 앞서 선수들에게 김민의 패스트볼이 94마일을 전후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 94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은 대부분 회전수가 2,500rpm이 넘어 떠오르는 무브먼트를 보입니다. 반면 93마일 이하 패스트볼들은 회전수가 2,200에서 2,300rpm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 평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력분석팀은 볼티모어 선수들에게 구속이 낮으며, 회전수가 적은 패스트볼을 노리라고 주문했다.

경기 초반 이 주문은 잘 맞아 들어갔다.

그러나 김민이 기어를 바꿔 넣은 뒤, 느린 패스트볼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헌터는 느린 패스트볼을 노렸다.

‘7회 말은 선발 투수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는 시점. 92마일(148km) 이하의 패스트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슉!

빠른 초구가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빠른 공! 하지만 전 타석보다 느리다.’

헌터는 이번 공이 91, 2마일 정도 하는 패스트볼이라고 판단했다.

‘칠 수 있어!’

그러나 그의 배트는 생각과 달리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김민이 던진 공은 바깥쪽 코너에서 휘어져 나가는 커터였다.

헌터는 헛스윙한 뒤 전광판을 확인했다.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88마일(142km).

“쳇, 커터였나?”

그는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느린 패스트볼을 기다렸다.

그러나 두 번째 공도 패스트볼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트라이크!”

높은 곳에서 떨어진 공이 그대로 한가운데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

“킴, 좋은 커브를 던졌습니다.”

“헌터가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었다면 꽤 당황스럽겠군요.”

김민은 철저히 패스트볼을 배제한 볼 배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코너에 몰린 헌터.

‘패스트볼을 끝까지 던지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패스트볼을 끝까지 기다리기로 했지만, 입술이 바짝 말랐다.

‘녀석이 끝까지 던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시점.

김민이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킴,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빠른 공이 다시 한번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빠른 공이다! 하지만…….’

스플리터라면 참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상황.

여기서 참을 수 있는 타자는 많지 않았다.

헌터는 일단 배트를 내고 생각하기로 했다.

‘4번 타자가 룩킹 삼진으로 물러나는 것만큼 무력한 상황은 없다.’

그는 삼진을 각오하고 배트를 냈다.

탁!

배트 상단에 맞은 공이 마운드 쪽에 떠올랐다.

‘패스트볼이었는데…….’

그토록 원하던 패스트볼이 들어왔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투수 머리 위에 공이 떴습니다!”

토미 감독은 헌터가 실패한 이유를 전광판에서 찾았다.

“95마일(153km). 아직도 저 구속이 나오는 건가?”

“75번째 공이었습니다. 스테미너가 나쁜 투수가 아니라면 충분히 구속이 나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투수 머리 위에 뜬 공은 투수가 아닌 1루수나 3루수가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포수인 록튼이 빠르게 수비수를 정해 주었다.

“아울! 아울이 잡아!”

“오케이!”

아울은 재빨리 마운드 쪽으로 이동해 투구판 옆에서 공을 잡아냈다.

“아울, 어려운 타구를 잡아냅니다.”

“저런 경우 마운드와 충돌을 우려해 공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울은 다르군요. 실수 없이 공을 처리했습니다.”

이반 감독은 아울의 좋은 수비에 박수를 쳤다.

“나이스 플레이! 아울!”

탬파베이가 아울을 영입한 이유는 공격력 때문이었다.

코칭 스탭이 시즌 전 그에게 바란 수비는 그렉스 정도였다.

그러나 아울이 보여 주고 있는 수비력은 그렉스를 훨씬 능가해 골드글러브급이었다.

레이먼드 수비 코치는 아울의 합류로 내야진이 한층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강력한 좌타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1루수의 수비도 3루수의 수비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아울의 1루 수비력은 그렉스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나다.’

그렉스는 아울이 좋은 수비를 펼칠 때마다 한숨을 내쉬곤 했다.

“이제 내가 1루를 볼 일은 없겠군.”

물론 그에게는 지명타자란 포지션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수비 포지션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킴, 두 번째 타자도 3루수 땅볼로 처리합니다.”

7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6번 타자.

볼티모어는 패색이 짙었다.

“오늘 지면 스윕이군.”

“탬파베이에게 스윕이라니, 이게 무슨 망신이야!”

볼티모어 팬들은 초반 연패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토미 감독은 6번 고든 타석에서 대타를 투입했다.

“대타! 홀리오!”

홀리오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2번 타자 잠스의 경쟁 상대였다.

김민은 호리호리한 타자를 보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홀리오……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했어. 20년 전 마이너리그에서 만났던 바로 그 친구군.’

어떤 경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 홀리오는 김민을 상대로 홈런을 터트렸다.

그리곤 멋지게 번개 세레머니를 취했다.

마이너리그 경기였지만, 김민은 굴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김민과 홀리오는 입장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20년 전에는 내가 형편없이 당했지.’

쿠바에서 온 슈퍼 유망주에게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던 김민은 좋은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다.

‘한데 어떤 공에 강했더라?’

경기 전 그는 홀리오의 스카우트 리포트를 확인했다.

그러나 검은 얼굴을 보는 순간 그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20년 기억도 지우고. 지금 난 7회 말 마지막 타자를 상대하고 있는 것뿐이야.’

그는 로진백을 만지면서 잡념을 지웠다.

- 바깥쪽 패스트볼.

사인을 낸 직후 강하게 공을 뿌렸다.

슉!

홀리오의 배트는 김민의 패스트볼을 따라오지 못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5마일(153km).

이반 감독은 미소를 지었다.

“좋은 구속이야. 8회도 가능하겠어.”

“하지만 본인은 7회 말까지 던지겠다고 했습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의 말에 이반 감독이 아쉬움을 표했다.

“킴은 더 던질 수 있는데 힘을 억제하고 있는 느낌이야.”

바이슨 수석 코치가 왼쪽에서 감독의 말을 받았다.

“어쩌면 소포모어 징크스를 의식해서 조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킴이 소포모어 징크스를? 난 저 친구가 그런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해.”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 김민이 두 번째 헛스윙을 유도해냈다.

이번 공은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홀리오! 킴에게 속수무책입니다.”

“마이너리그에서 막 올라온 유망주가 평균자책점 타이틀 홀더를 상대하는 건 버거운 일이겠죠.”

20년 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홀리오는 긴장한 얼굴로 김민의 공에 쩔쩔매고 있었다.

‘빠른 공 다음에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 타이밍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

3구.

김민은 과감하게 안쪽으로 패스트볼을 던졌다.

슉!

홀리오는 안쪽으로 깊이 들어오는 공에 깜짝 놀라 엉덩이를 뒤로 뺐다.

‘위험해!’

하지만 공은 존을 벗어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룩킹 삼진.

김민은 삼진을 잡은 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이것은 20년 전 해묵은 원한을 지우는 것이기도 했다.

“킴, 세 타자를 간단히 처리하고 더그아웃으로 향합니다.”

“킴은 킴이군요. 이번 시즌도 평균자책점 타이틀에 도전해 볼 만합니다.”

김민은 2경기 15이닝 2실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를 평균자책점으로 환산하면 1.2에 불과했다.

“나이스 피칭.”

“훌륭했어.”

김민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 한 뒤에 마지막으로 스미스와 주먹을 마주했다.

“킴, 수고했어.”

“내일은 스미스가 나가는 날이지?”

“맞아.”

이반 감독은 주전 포수인 록튼의 체력을 안배하기 위해 다음 경기 선발 포수로 스미스를 예고했다.

“렉터는 좋은 투수니까 괜찮은 결과가 있을 거야.”

이번 시즌 팀의 2선발을 맡고 있는 것은 렉터였다.

“그런데 말이야. 초반 패스트볼 구속이 들쑥날쑥하던데 밸런스 문제였나?”

김민이 라커룸으로 향하면서 말했다.

“밸런스보다는 나 자신의 문제였어.”

그는 7이닝 1실점의 멋진 투구를 선보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구속을 제어하는 건 아직 불가능해.’

김민은 ‘빠른 공, 그리고 더 빠른 공’을 해낼 수 있다면 한 계단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9회 말.

마운드에 오른 로버트는 투런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하얀 공이 그대로 펜스를 넘어갑니다! 투런 홈런입니다!”

“볼티모어 순식간에 4-3으로 추격하는군요.”

마운드에 선 로버트는 식은땀을 흘렸다.

‘제길……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건데?’

이번 시즌 스프링 캠프에서 그는 강력한 경쟁자 볼튼을 누르고 클로저 자리를 지켜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흔들린다면 그 자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록튼은 로버트가 흔들리는 것을 깨닫곤 바로 타임을 걸었다.

“로버트, 홈런은 잊어버려. 아직 우리가 한 점 이기고 있잖아.”

로버트가 글러브로 입을 가리며 대답했다.

“그래서 문제야.”

“부담을 느끼고 있는 건가?”

“내가 맞아 버리면 킴의 승이 날아가잖아.”

록튼이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킴의 날아가는 승보다는 네 세이브를 먼저 생각해.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그는 말을 하면서 불펜을 살짝 바라보았다.

“경쟁자가 보고 있어. 로버트, 힘을 내.”

로버트는 경쟁자라는 말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볼튼…… 내가 흔들리면 그에게 클로저 자리가 돌아가게 될 거야.’

4년.

이는 그가 클로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걸린 시간이었다.

로버트는 그 4년을 잃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해 주겠어.’

2아웃, 주자 없이 5번 타자 릴리아노.

스미스가 김민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거 위험하겠는걸.”

김민이 차분한 목소리로 그 말을 받았다.

“역전은 없을 거야.”

“킴은 로버트를 믿는 건가?”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

릴리아노는 2할 후반대에 두 자릿수 홈런을 매년 기록하고 있는 타자였지만, 로버트에게 유독 약했다.

통산 12타수 2안타.

타율 0.166.

두 사람의 관계는 거의 천적에 가까웠다.

집중력을 되찾은 로버트는 이 천적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삼구삼진입니다!”

“로버트 97마일(156km) 강속구로 볼티모어 타선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김민은 아이싱을 한 채 더그아웃 앞으로 나가 로버트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나이스 피칭.”

로버트는 그와 주먹을 마주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한 하루였어.”

“가끔은 위험할 때도 있는 법이지.”

김민은 투수 코치 출신이었기 때문에 클로저의 고충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마지막 1이닝을 맡는다는 것. 얼핏 생각하면 쉬워 보이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은 상상 이상이야. 로버트는 지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어.’

그는 로버트를 다독이는 것으로 이날 플레이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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