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2002 시즌 01
2002년 시즌에 앞서 아메리칸 베이스볼에서 파워랭킹을 발표했다.
아메리칸 리그 예상 순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1. 뉴욕 양키스
2. 시애틀 매리너스
3. 보스턴 레드삭스
4.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5.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탬파베이의 예상 순위는 10위였다.
“우리 뒤에 있는 팀은 볼티모어와 디트로이트 정도군.”
“그 둘만이 아니야. 캔자스하고 텍사스도 있다고.”
“아, 그래 우리 뒤에 4팀이나 있네.”
14개 팀 중 10위는 좋은 평가가 아니었다.
탬파베이 선수들은 지난 시즌 이상의 성적을 내서 메이저리그 전문가나 패널들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머레이, 우리 개막전 상대는 어디야?”
“안데르센, 일정도 확인해 보지 않은 거야?”
“그래서 상대가 어디인데?”
머레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타이거즈.”
“타이거즈라고? 의외로 쉬운 시작인데?”
“타이거즈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지난 시즌 중부지구 4위로 70승에 2승이 모자란 68승 94패를 기록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팀이 타이거즈보다는 위지.”
“안데르센, 그런 방심이 패배를 부르는 거야.”
야수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투수조가 워밍업을 끝냈다.
“라이브 배팅이다!”
코스타 타격 코치의 외침에 타자들이 배트를 들고 일어섰다.
“시작이군.”
“어느 친구부터 두들겨 줄까?”
탬파베이 타자들은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두 타자 연속 삼진.
보고 있던 머레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안데르센, 두들겨 준다면서?”
안데르센이 삼진을 당한 뒤 미간을 좁혔다.
“신경 끄라고! 몸이 다 안 풀린 것뿐이야.”
이반 감독은 탬파베이 투수들의 선전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투수력이 타선을 압도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군.”
코스타 타격 코치도 얼굴이 좋지 못했다.
“시즌이 시작되면 나아질 겁니다.”
“그래야지. 이대로라면 전문가들이 평가한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나?”
전문가들은 탬파베이를 투수력에 비해 타격이 극단적으로 약해 중위권에 오르지 못할 것으로 평가했다.
딱!
강하게 맞은 공이 그대로 펜스 앞까지 굴러갔다.
“좋은 소린데? 누구지?”
이반 감독이 고개를 돌리자 키 작은 타자가 눈에 들어왔다.
“듀란트입니다.”
코스타 타격 코치의 짧은 대답.
“저 친구가 홈스를 넘을 수 있다면 좋겠군.”
홈스는 탬파베이의 주전 우익수였다.
그는 어깨가 좋고 수비 범위가 넓었지만, 타격에 물음표를 달고 있었다.
‘우익수로서 0.251에 8홈런은 곤란하지. 적어도 0.270에 15홈런을 때려 줘야 한다고.’
우익수는 수비보다는 공격이 강조되는 포지션 중 하나였다.
수준 이하의 수비라면 모를까?
리그 평균 이하라고 해도 공격력이 더 강조되는 포지션이었다.
“개막전 경기 선발 라인업은 정했나?”
감독의 물음에 코스타 타격 코치가 메모를 내밀었다.
“이렇게 갈까 합니다.”
메모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1번 칼튼 2루수
2번 케니히 좌익수
3번 안데르센 3루
4번 아울 1루
5번 그렉스 지명
6번 머레이 중견수
7번 홈스 우익수
8번 유칼리스 유격수
9번 록튼 포수
이반 감독은 라인업을 훑어본 뒤 미간을 좁혔다.
“맛이 살지 않아. 톡 쏘는 느낌이 없다고.”
지난 시즌 4번을 맡았던 그렉스를 5번으로 내리고 그 자리에 아울을 넣은 것을 빼고는 큰 변화가 없는 라인업이었다.
코스타 타격 코치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어느 부분에 변화를 주면 좋을지 말씀을 해 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킴의 경기잖아. 에이스를 믿고 신인을 좀 써 보도록 하지.”
그는 말을 하곤 손가락으로 듀란트를 가리켰다.
“그럼 홈스를 빼고 듀란트를 넣어 보겠습니다.”
“유격수도 브라이튼으로 바꾸도록 하지.”
“유격수도 말입니까?”
“프리배팅에서 좋은 타구를 여럿 날리더군.”
코스타 타격 코치는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다.
“레이먼드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레이먼드 수비 코치는 안정적인 수비를 강조하는 코치 중 한 명이었다.
“레이먼드에게도 변화가 필요해. 언제까지 홈스와 유칼리스를 쓸 건가?”
“홈스는 몰라도 유칼리스는 지난해 좋은 수비를 여럿 보여 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배트가 문제야. 지난 시즌 유칼리스의 홈런은 3개에 불과했다고.”
이반 감독은 지난 시즌 이후 다소 공격적으로 성향이 바뀌었다.
“유칼리스에 대해서는 내가 레이먼드하고 이야기해 보겠네. 하지만 홈스는 반드시 빼도록 하게. 우익수 자리가 고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줄 필요가 있어.”
그는 지난 시즌 손쉽게 주전 자리를 차지한 선수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줄 생각이었다.
* * *
2002년 4월 2일.
플로리다주 세인트 피츠버그시.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오, 나는 외치리라. 이른 새벽의 빛이 전하는 이 감격의 광경을…… ).”
10대 소녀의 열창으로 시작해 관중들의 환호로 끝난 국가 제창.
빈스 구단주는 이제야 제대로 된 개막전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관중이 이 정도는 와 줘야 메이저리그 구단이 아니겠나?”
“이번 시즌 수익이 밝아 보이는군요.”
개막전.
트로피카나 필드는 유례없이 빠른 매진을 기록했다.
표를 구하지 못해 돌아간 팬만 수천 명.
이는 지난해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시구를 비롯한 식전 행사가 끝나고 선발 투수인 김민이 마운드에 올라섰다.
“킴! 킴! 킴!”
단 하나의 공도 던지지 않았는데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시즌도 부탁한다!”
“에이스! 널 보기 위해 3시간 걸려서 왔다!”
“꼭 이겨 줘!”
이번 시즌 처음으로 메이저리그를 밟은 선수들은 김민의 인기에 혀를 내둘렀다.
“겨우 2년 차 투수에게 이 정도로 환호할 줄이야.”
“킴의 인기는 대단해.”
“우리도 머지않아 저렇게 될 거야.”
김민의 연습 투구가 끝나자 주심이 경기 시작을 선언했다.
“플레이볼!”
김민은 투구에 앞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홈 개막전이라. 지난 시즌과 공기가 달라. 뭔가 꽉 찬 그런 느낌이야.’
그는 그립을 강하게 잡곤 초구를 던졌다.
슉!
빠른 공이 스트라이크존으로 밀려 들어갔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타이거즈 1번 타자 파커는 초구를 크게 헛치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패스트볼이 이상해.”
전광판에 기록된 구속은 95마일(153km).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기록했던 최고 구속과 같은 구속.
중계진은 김민의 초구에 흥이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
“킴, 초구를 강하게 꽂아 넣었습니다.”
“개막전 첫 경기에서 95마일을 기록하는군요. 킴이 강속구까지 갖추게 된 것일까요?”
패스트볼 구속이 높은 메이저리그에서도 95마일(153km)은 강속구 취급을 받았다.
김민이 95마일을 계속 던질 수 있다면 그의 평가는 한 단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킴, 두 번째 와인드업에 들어갔습니다.”
파커는 배트를 짧게 잡고 패스트볼을 노렸다. 그러나 두 번째로 들어온 공은 낮게 떨어지는 커브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연속 헛스윙.
트로피카나 필드를 가득 채운 관중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K! K! K!”
블렛소 투수 코치는 분위기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했다.
‘킴, 설마 삼구삼진을 노리는 건 아니겠지? 타자는 지금 잔뜩 긴장한 상태라고. 여기서는 하나 정도 밖으로 빼는 게 좋아.’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를 노렸다.
‘패스트볼? 아니면 스플리터?’
파커는 어느 쪽이든 배트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탁!
배트에 빗맞은 공이 백네트 뒤로 흘렀다.
“파울!”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이 빼는 공이 아닌 승부구를 던졌다고 생각했다.
‘킴, 무슨 생각이야. 흥분하고 있잖아.’
그는 김민이 관중들의 함성에 휘말려 삼진을 잡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민은 오늘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바깥쪽은 확실히 강해, 존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잘 따라왔어.’
그는 그립을 고쳐 잡곤 안쪽을 노렸다.
슉!
파커는 이번에도 배트를 냈다.
‘바깥쪽 다음에 안쪽, 로케이션 승부냐?’
휙!
강한 파공성과 함께 허공을 친 배트.
주심의 판정은 당연히 삼진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강렬한 제스처에 관중들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K! K! K!”
설리반이 볼튼을 바라보며 말했다.
“첫 타자부터 삼진이라니, 킴, 시작과 함께 달아오른 것 아니야?”
“그럴 리가. 킴은 이 정도로 달아오르는 투수가 아니라고.”
파커는 삼진을 당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개막전 첫 타석을 삼진으로 날리다니, 이번 시즌은 시작이 좋지 않아.’
블렛소 투수 코치는 김민의 삼진에 어깨를 으쓱했다.
“달아올랐다고 해도 킴은 킴이란 말인가? 내가 쓸모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군.”
김민은 딱히 삼진을 노린 투구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바깥쪽 공으로 파커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안쪽으로 로케이션 승부를 가져간 것뿐이었다.
‘첫 타자는 잡았고, 다음은 몬데인가?’
몬데는 2년 차 선수로 김민과 같이 2001년 데뷔한 선수였다.
‘지난 시즌 성적은 0.255에 11홈런……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강한 임팩트를 보여 줬다고 할 수도 없는 성적.’
좋아하는 공은 패스트볼.
싫어하는 공은 바깥쪽에서 떨어지는 브레이킹볼.
‘좋고 싫음이 명확한 선수.’
김민은 이런 선수가 상대하기 제일 편했다.
슉!
초구가 바깥쪽을 노렸다.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그대로 백네트 뒤로 흘렀다.
“파울!”
김민은 몬데의 파울에 고개를 갸웃했다.
‘왜 파울이 난 걸까?’
그가 노린 것은 내야 플라이 또는 우익수 플라이였다.
그러나 몬데의 배트는 그의 스피드를 이기지 못한 듯 백네트 뒤로 흐르는 파울볼을 치고 말았다.
“킴의 컨디션이 좋아 보입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의 말에 이반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팀 에이스는 이번 시즌에도 건재한 것 같군.”
그는 김민이 지난 시즌만큼 활약해 준다면 플레이오프도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킴이 15승 이상만 해 주면 승산이 있어.’
딱!
다시 한번 파울.
이번에는 1루쪽 관중석에 떨어지는 공.
“연속 파울입니다!”
“몬데, 좋아하는 패스트볼을 좀처럼 앞으로 밀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거 킴의 구위가 좋다는 뜻입니다.”
몬데는 좋아하는 공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앞으로 타구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배팅 타이밍이 늦었다고? 아니야. 이건 히팅 포인트가 맞지 않고 있는 거야.’
그는 김민의 패스트볼 무브먼트가 다른 선수들과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젠장, 킴! 오프 시즌 동안 무슨 마술을 부린 거냐!’
몬데는 얼굴을 굳히곤 더욱 배트를 짧게 잡았다.
록튼은 그의 극단적인 배트 위치를 보곤 미간을 좁혔다.
‘너무 짧은데. 설마 브레이킹볼을 노리고 있는 건가?’
그러나 그의 짧은 배트는 브레이킹볼을 노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몬데가 목표로 하고 있는 공은 김민의 변화무쌍한 패스트볼이었다.
슉!
세 번째 공이 날아왔다.
‘바깥쪽?’
몬데는 속도로 볼 때 패스트볼이 유력하다고 생각했다.
‘떠오르는 공이라면 내리눌러 주마!’
그러나 김민이 던진 공은 떠오르는 대신 오른쪽으로 휘어져 나갔다.
‘커, 커터!’
눈을 크게 떴지만, 배트는 이미 공을 지나친 다음이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두 타자 연속 헛스윙 삼진.
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들었다.
“K! K! K!”
해설진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킴! 연속 삼진입니다! 시작부터 트로피카나 필드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1회부터 이렇게 열광적인 응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습니다. 탬파베이의 킴! 개막전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김민을 취재하기 위해 트로피카나 필드를 찾은 기자들도 그의 피칭에 휘파람을 불었다.
“패스트볼과 스플리터 그리고 커터라니요. 신들린 피칭입니다.”
“탬파베이 에이스에게 2년 차 징크스는 없는 것 같군.”
루키 시즌 대활약을 펼친 선수 중 많은 수가 2년 차 징그스(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지곤 했다.
기자들은 김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김민의 투구는 소포모어 징크스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3번 타자 코트니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연속 삼진을 잡은 킴이지만 코트니는 조금 어려울 겁니다. 그는 지난 시즌 20홈런과 0.289의 타율을 기록한 강타자입니다.”
코트니의 지난 시즌 성적은 탬파베이의 4번 타자 그렉스를 능가했다.
코트니는 배터 박스에 들어선 뒤, 록튼에게 고개를 돌렸다.
“풋내기가 힘을 내고 있군. 하지만 딱 여기까지야.”
록튼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네, 그러시겠죠.”
김민은 코트니가 좋아하는 코스와 싫어하는 코스, 그리고 실제로 강한 코스를 모두 알고 있었다.
‘좋아하는 공은 안쪽 패스트볼이지만, 의의로 성적은 바깥쪽 패스트볼이 더 좋아. 이렇게 성적이 차이 나는 이유는 안쪽 공을 당길 때 힘을 너무 쓰기 때문이지.’
한마디로 말해 코트니는 안쪽 공을 극단적으로 잡아당기는 타자였다.
‘이런 타자에게는 수비 시프트가 딱이야.’
김민은 시프트 사인을 낸 뒤, 초구를 안쪽 패스트볼로 선택했다.
‘3루 라인 쪽 타구! 기대한다.’
슉!
코트니는 자신이 좋아하는 코스에 좋아하는 공이 오자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초구부터 오는 건가?’
그는 이것이 함정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코트니의 배트가 거대한 파괴력으로 공을 덮쳤다.
그러나 모두의 귀를 울리는 타격음은 들리지 않았다.
휙!
파공성과 함께 허공을 친 배트.
“스윙 스트라이크!”
코트니는 방금 일어난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안쪽 패스트볼에 헛스윙을 했다고?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건가?’
김민 역시 표정이 좋지 못했다.
‘타자들의 컨디션이 안 좋은 건가? 이번 공은 내야 플라이가 됐을 공이라고.’
그는 상대가 좋아하는 코스에 하나 정도 높은 공을 던져 범타를 유도하려 했다.
하지만 코트니는 그대로 헛스윙, 김민은 초구 스트라이크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해.’
그와 코트니의 대결은 공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4구까지 이어진 대결은 카운트 2-2로 팽팽하게 맞섰다.
‘스플리터를 연속으로 골라낸 걸 보면 선구안은 나쁘지 않아. 나빠진 것은 배트 스피드인가?’
그렉스라면 노화 때문에 배트 스피드가 나빠졌다고 할 수 있었지만, 코트니는 31세에 불과했다.
‘단순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걸지도.’
김민은 상대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가정을 한 뒤, 승부구를 선택했다.
슉!
빠른 공이 타자 눈높이로 날아왔다.
‘하이 패스트볼이냐!’
카운트에 여유가 있다면 배트를 멈췄을 것이다.
그러나 2-2의 카운트에서는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장타는 무리야. 배트를 2루 베이스 쪽으로 타구를 보내야겠어.’
코트니는 배트와 공의 궤적을 수평으로 가져가는 레벨 스윙을 통해 패스트볼을 2루로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배트가 닿기 전, 공이 위로 떠올랐다.
‘라이징 패스트볼! 내겐 통하지 않는다.’
그는 손목을 움직여 배트의 높이를 더 높이려 했다.
하지만 공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빠, 빨라!’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공이 미트에 꽂혔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세 타자 연속 삼진.
이보다 더 관중들을 놀라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김민의 최고 구속이었다.
“킴! 96마일(154km) 패스트볼로 코트니를 돌려세웁니다!”
“지난겨울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운영의 마술사 킴이 강속구 투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김민은 관중들의 환호성을 등지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스피드건이 잘못된 것이겠지. 내가 96마일이라고? 지난 생에서도 던진 적이 없는 구속이야.’
그는 자신이 96마일을 던졌다는 것이 아직 믿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