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겨울 리그 01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극적인 우승으로 끝난 2001년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다음 시즌을 위한 휴식에 들어갔지만, 각 구단 프런트는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양키스가 오클랜드에 트레이드 카드를 제시했다고?”
“일단 소문은 돌고 있습니다.”
“양키스가 움직인다면 우리도 레드삭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당장 트레이드 내용을 알아 와.”
“알겠습니다!”
라이벌 구단의 움직임에 몇몇 구단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어떤가 하면 다른 구단보다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예산이 이것밖에 없으니, 뭘 할 수가 없군요.”
운영팀장 코너는 준척급 선수 한 명 정도를 영입할 수 있다면 성공한 오프 시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지난 시즌보다는 늘어난 예산이야.”
홀먼 단장은 빈스로부터 얻어낸 돈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저희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양키스와 레드삭스가 달아오른 바람에 선수들의 몸값이 뛰고 있습니다.”
뉴욕 양키스의 우승 실패는 FA의 시장의 과열로 이어졌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처럼 주머니가 가벼운 구단들은 올스타급 선수를 생각 조차할 수 없었다.
“윈터미팅까지는 그래도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메이저리그의 겨울 리그를 달구는 윈터미팅.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이 윈터미팅에서 팀 전력을 어떻게든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이반 감독, 팀에 가장 필요한 포지션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홀먼 단장의 물음에 이반 감독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4번 타자입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4번 타자는 그렉스였다.
그는 이번 시즌 26홈런과 2할 후반대의 타율을 기록했으나 전성기와 비교하면 장타율이 상당히 떨어지고 말았다.
“그렉스로 부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가능하다면 다음 시즌 그렉스를 5번에 지명타자로 쓰고 싶습니다.”
홀먼 단장도 그렉스가 다른 팀의 4번 타자들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빈스가 제시한 예산으로는 뛰어난 장타력을 지닌 4번 타자를 구할 수가 없었다.
“방법은 트레이드밖에 없군요.”
코너는 트레이드란 말에 미간을 좁혔다.
“저희 팀의 트레이드 자원은 투수 쪽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부르스의 부상 때문에 이쪽도 넉넉하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부르스가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다면 선발 투수 1명을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다음 시즌 복귀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선발 투수를 트레이드로 데려와야 했다.
“프랭키, 부르스의 상태는 어떤가?”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프랭키는 트레이닝 파트를 맡고 있었다.
“수술 후 재활 중입니다. 하지만 공을 던져 보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좋지 않다는 뜻이군.”
“한마디로 줄이자면 그렇습니다.”
홀먼 단장은 선발 투수 쪽 자원을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불펜 쪽 자원으로 트레이드를 시도해야겠군.”
“불펜 자원이라면…….”
“다닐로프 정도가 되겠지.”
“그 정도로는 좋은 타자를 데려올 수 없을 겁니다.”
다닐로프는 25인 로스터에 포함된 투수였으나 큰 장점을 찾기 힘든 선수였다.
“설리반은 어떨까요?”
코스타 타격 코치의 물음에 블렛소 투수 코치가 반발하고 나섰다.
“팀의 미래를 파는 팀이 어디 있나!”
홀먼 단장도 설리반을 파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설리반은 팔 수 없어.”
그는 에두아르드와 다닐로프 정도를 매물로 예상했다.
하나 두 투수는 다른 팀에서 관심을 보일 만한 매물이 아니었다.
홀먼이 테이블 끝에 앉아 있는 김민에게 시선을 보냈다.
김민은 빈스의 지시 덕분에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킴, 자네 생각은 어떤가?”
김민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투수보다는 타자 쪽 자원을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수가 아니라 타자라고?”
그의 한마디에 주변인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홀먼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타자라…… 자네는 우리 팀 타선에 만족하는 모양이군.”
“트레이드는 중복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팀 타선에 중복 자원이 있단 말인가?”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티노와 닐슨입니다.”
티노는 록튼과 출장 경기를 나누긴 했지만, 아직 팀의 주전 포수였다. 그리고 닐슨은 지명타자로서 100경기 이상을 출전한 선수였다.
홀먼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팀의 주전 포수를 팔자는 말인가?”
코너와 포터 코치도 반대하고 나섰다.
“킴, 그건 무리일세.”
“팀의 주전 포수를 파는 팀은 없어.”
김민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티노는 분명 지난 우리 팀의 주전 포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주전 포수로 뛸 수 있는 시간은 1, 2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젠 록튼과 같은 젊은 포수를 키울 때입니다.”
“킴, 파트너를 주전으로 밀려는 건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록튼과 티노가 반반씩 출전하는 것은 팀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 중 한 명으로 가닥을 잡아야 합니다.”
홀먼이 입술 끝을 올렸다.
“만약 우리가 록튼을 판다면?”
김민은 그의 물음에 질문으로 응수했다.
“록튼은 아직 한 시즌도 풀로 뛰지 못한 포수입니다. 록튼을 팔아서 얼마나 가치 있는 선수를 데려올 수 있을까요? 록튼으로 데려올 수 있는 건 마이너리그 유망주 정도일 겁니다. 이반 감독이 원하는 4번 타자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결과일 겁니다.”
바이슨 수석 코치는 김민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포수진을 정리한다면 중심이 되는 것은 록튼이겠죠. 티노는 이제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수석 스카우트 베넨도 김민의 손을 들어주었다.
“티노라면 아직 필요로 하는 팀이 있을 겁니다. 티노에 닐슨 그리고 다닐로프 정도로 패키지를 만든다면 딜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겁니다.”
홀먼 단장 역시 이성적으로는 김민의 카드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감성은 김민의 제안에 반기를 들고 있었다.
‘선수의 제안을 덜컥 수락하는 단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고개를 코너에게 돌렸다.
“흐흠…… 외야수를 매물로 내놓으면 안 될까?”
운영팀장 코너가 고개를 흔들었다.
“외야는 카를로스가 올해 FA라서 오히려 영입이 필요합니다.”
카를로스는 테이블 세터로서 0.267의 타율과 7홈런 16도루를 기록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그를 위해서 200만 달러(24억8천만 원) 정도의 금액을 책정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카를로스와 그의 에이전트는 1천만 달러(124억 원)짜리 장기 계약을 요구하고 있었다.
탬파베이 프런트는 카를로스가 다음 시즌 이적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외야도 안 된다면, 내야는…….”
“내야도 칼튼이 FA라서 어려울 겁니다.”
2루수 칼튼 그는 팀의 선봉으로 150경기 이상을 출전했다.
그는 팀이 자신의 노력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길 원하고 있었다.
“칼튼 쪽과 접촉을 해봤나?”
“연간 300만 달러(37억 원) 이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FA 금액을 거의 다 쏟아부어야 하는군.”
외부 FA를 계약하긴커녕 집토끼를 다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홀먼 단장은 이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다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비싸게 부르는 거야?”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양키스와 레드삭스 때문에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이라면 200만 달러면 잡을 수 있는 선수들이 3,400만 달러를 부르고 있습니다.”
홀먼 단장이 김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킴, 시장이 어렵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과열된 FA 시장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홀먼 단장은 김민의 대답이 의외였다.
‘킴은 이길 수 있는 팀을 원하고 있는 것 아니었나? FA 시장에서 한 발 빼다니…….’
김민이 설명을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트레이드와 육성, 이 두 가지로 이번 오프 시즌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탬파베이의 미래가 오클랜드에 있다고 생각했다.
포터 코치가 김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트레이드라, 자네는 티노를 꼭 내보내고 싶은 모양이군.”
“꼭 내보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저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티노 정도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김민은 어설픈 트레이드 카드로는 절대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홀먼이 두 손바닥을 펴면서 말했다.
“좋아. 티노를 카드로 쓴다고 치세. 자네는 누굴 데려왔으면 좋겠나?”
“에인절스의 1루수 카딘입니다.”
홀먼 단장은 김민의 대답에 고개를 코너에게 돌렸다.
“카딘의 이번 시즌 성적은 0.277에 홈런 14개입니다.”
이반 감독은 30홈런 이상 때려 줄 수 있는 4번 타자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딘의 성적을 듣는 순간 미간을 좁혔다.
“우리 팀에 필요 없는 선수군.”
홀먼 단장도 부정적이었다.
“그런 선수를 우리 팀에 데려올 필요가 있을까?”
모두의 시선이 김민에게 모였다.
“카딘은 많은 홈런을 치는 선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선구안이 좋고, 2루타가 많아 OPS 8할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OPS라면…….”
“빌리 빈 단장이 머니 볼의 데이터로 사용한 기록입니다. 우리 팀에서 그보다 높은 OPS를 기록한 선수는 3번 타자 안데르센과 4번 그렉스 뿐입니다.”
이 시기 빌리 빈의 머니 볼은 WAR이 아닌 OPS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빌리 빈의 머니 볼이 언급되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번 시즌 100승을 넘긴 오클랜드의 질주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빌리 빈이 정말로 OPS 위주로 팀을 꾸렸나?”
홀먼 단장이 작은 목소리로 코너에게 물었다.
“그런 기사가 나긴 했습니다.”
“그렇군.”
홀먼 단장이 김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4번 타자로서 14개의 홈런은 너무 적어. 다른 선수를 고려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군.”
김민은 홀먼 단장이 그의 제안을 거부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순순히 넘어가면 홀먼이 아니겠지.’
그는 홀먼 단장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선수를 좋게 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야.’
김민은 기다렸다는 듯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카드는 거부할 수 없을 거야.’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아울입니다.”
“아울이라고?”
코너가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지난 시즌 아울은 1루수로 101경기에 출전해 13홈런, 타율 0.280, 51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홀먼 단장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13홈런에 0.280이라고? 카딘과 다른 게 뭔가?”
김민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연봉이 다릅니다.”
“으음?”
“카딘의 이번 시즌 연봉은 250만 달러(31억 원)지만 아울은 80만 달러(10억 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티노의 이번 시즌 연봉이 300만 달러(37억 원)라는 것을 생각하면 꽤 큰돈을 줄일 수 있습니다.”
티노를 아울로 바꾼다면 공격력을 소폭 향상시키면서 220만 달러의 여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돈이면 카를로스나 칼튼 두 사람 중 한 명을 잡을 수 있겠군.”
코너가 고개를 끄덕이며 김민의 트레이드를 지지하고 나섰다.
“확실히 80만 달러라는 연봉은 매력적이군. 하지만 캔자스에서 아울을 내놓을까?”
스카우트 팀장 그레이의 물음에 김민이 미소를 지었다.
“캔자스는 지금 주전 포수가 공백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티노라면 아주 좋은 트레이드 카드입니다.”
홀먼 단장도 돈이라는 치명적인 매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80만 달러로 주전 1루수를 쓸 수 있다면 나쁠 게 없지. 아니, 아주 좋다고 봐야지. 킴, 무서운 녀석이야. 다른 팀의 사정과 선수 연봉까지 꿰차고 있잖아.’
그는 시선을 숀 배터리 코치에게 돌렸다.
“숀, 자네 생각은 어떤가? 티노의 트레이드 말일세.”
숀은 새로운 배터리 코치로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에서 선수로 2년간 뛴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티노가 있다면 좋겠지만, 없다면 록튼을 키워보겠습니다.”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홀먼 단장이 김민에게 고개를 돌렸다.
“티노, 트레이드라.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는 김민에게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티노를 트레이드 카드로 올려놓고 있었다.
* * *
티노와 아울의 트레이드는 윈터 미팅 직전 전격적으로 발표되었다.
캔자스시티는 티노와 함께 다닐로프를 영입해 부족한 불펜진을 메웠다.
탬파베이 선수들은 이 트레이드를 두고 고개를 갸웃했다.
“티노가 이렇게 갈 줄이야.”
“록튼에게 밀린 건가?”
“그보다는 돈 때문이겠지. 티노의 다음 시즌 연봉이 300만 달러라고 하더라.”
“휴…… 우리 팀에서 500만 달러(62억 원) 이상 받는 선수는 모두 트레이드 대상이나 마찬가지야.”
빅마켓 팀들은 1천만 달러(124억 원) 선수를 몇 명씩 보유하고 있었으나 탬파베이 같은 스몰마켓은 한 명을 보유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김민은 홀먼 단장이 제법 일을 잘 처리한다고 생각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는 단장은 아니지만 협상 자체는 잘 이끌어내는 것 같군. 유망주 대신 다닐로프로 깔끔하게 트레이드를 처리했어.’
캔자스시티 팬들은 비교적 젊은 1루수를 내주긴 했지만, 팀의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주전 포수와 20대 불펜 투수를 받아 온 것에 만족했다.
“아울이 지난해 1루를 본 경기가 있긴 했지만, 우리 팀의 원래 주전 1루수는 페타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페타가 돌아오면 아울은 헨슨과 지명타자 자리를 놓고 경쟁했어야 했어. 아울로 주전 포수를 얻었다면 이건 크게 남는 장사지.”
“다닐로프는 어때?”
“다닐로프도 나쁘지 않아. 지난해 불펜에서 47이닝, 4.5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고.”
필승조는 아니었지만, 추격조로 충분히 쓸 수 있는 성적이었다.
캔자스시티 팬들이 걱정하는 것은 이번 트레이드로 늘어난 페이롤 정도였다.
* * *
록튼은 티노의 트레이드 소식을 들은 직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어깨가 무거운데.”
티노가 트레이드되었다면 다음 시즌 주전은 록튼으로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경쟁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보다는 주전 포수라는 위치에 부담감을 느꼈다.
“록튼, 메이저리그가 전쟁터라는 사실을 기억해.”
고개를 돌리니 그렉스가 서 있었다.
“그렉스, 티노가 트레이드되었어요.”
“알고 있어.”
“다들 제가 티노를 밀어냈다고 말하고 있어요.”
“록튼, 넌 잘못 생각하고 있어.”
록튼이 멈칫했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요?”
“넌 티노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라는 팀에서 살아남은 거야.”
그렉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몇몇 슈퍼스타를 제외하곤 매년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곳이 바로 메이저리그야. 이건 나도 예외가 아니지.”
그는 자신이 언제 트레이드되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설마 그렉스가 트레이드되겠어요?”
“받는 돈은 많은데 제값을 못하고 있잖아. 사실 홀먼 단장은 티노가 아니라 날 트레이드하고 싶었을걸?”
그렉스는 이번 시즌 820만 달러(101억 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는 양키스의 원투 펀치 클레멘스와 무시나 그리고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 리베라와 같거나 살짝 낮은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그렉스의 연봉은 슈퍼스타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렉스의 성적은 슈퍼스타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것이었다.
“킴의 앞을 막고 있는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어.”
그렉스의 계약은 다음 시즌까지 예고되어 있었다.
그의 계약이 끝나지 않는 한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올스타급 선수를 영입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김민이 워밍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록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그렉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비즈니스지.”
김민이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겨울은 비즈니스의 계절이죠.”
그렉스가 노장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킴, 팀을 위해 너무 헌신하지 말게. 일방적인 헌신은 배신감을 키울 뿐이야.”
그렉스의 조언에 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메이저리그는 비즈니스이니까요.”
김민은 두 번이나 믿었던 구단에게 버림을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구단을 버릴 수는 있어도 구단은 절대 나를 버릴 수 없게 만들어 주겠어.’
그는 그 누구보다 구단을 믿지 않는 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