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라이징 패스트볼-94화 (94/296)

94화 투자 설명회 02

“저희는 새로운 쇼핑몰을 세울 예정입니다.”

“우리 회사는 최고의 IT기업입니다.”

김민은 투자 설명회에 참여한 기업 중 구글이 있는지 지켜보았다.

‘구글은 앞으로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될 거야. 지금이라도 투자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러나 구글은 투자 설명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충분한 자금을 지원받고 있었다.

“다들 자기들이 최고의 회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군.”

“다들 최고면 누가 아래가 된다는 거야?”

록튼이 투자회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50%는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할 것 같아.”

설리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저기 컴퓨터 그래픽으로 뭘 한다는 기업 말이야. 사람들에게 공짜로 서비스를 제공하면 뭐가 남는다는 건지 모르겠어.”

메이저리그 루키들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킴, 투자할 기업을 정했어?”

“아니, 록튼은 어때?”

“나도 별로야. 다 사기꾼들 스멜이 난다고.”

네 명의 선수 중 투자할 기업을 정한 것은 설리반 정도였다.

“설리반은 투자할 회사를 정했더라고.”

“정말?”

“그 뭐냐? 눈을 이용한 암호화?”

“홍채를 이용한 암호화 기술인가?”

“그래, 바로 그거야.”

설리반은 홍채를 이용한 암호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에 3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것은 그가 실제로 올해 수령한 15만 달러의 2배가 되는 금액이었다.

“어디서 그런 거금이 나온 거야?”

“계약금을 남겨 두었거든. 난 저 기술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너무 많은 금액 아니야?”

“가지고 있는 돈의 30% 정도니까. 너무 많다고는 할 수 없을 거야.”

설리반이 김민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킴은 어떻게 생각해?”

김민은 17년 뒤 미래를 알고 있었다.

‘17년 뒤, 홍채 인식 기술은 스마트폰에 적용될 정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나쁜 투자는 아마 아닐 테지.’

그는 설리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는 나쁜 투자는 아닌 것 같아.”

“킴이 그렇게 말해 주니까 안심이 되는군. 사실, 조금 과한 투자가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김민이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조금 더 둘러보고 1시간 뒤, 여기서 다시 만나자.”

“오케이.”

“그렇게 하지.”

김민은 혼자가 되어 부스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대부분 이름을 알 수 없는 기업들이었다.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건 야후 정도인가? 하지만 17년 뒤에 야후는 먼 이름이 되고 말아. 여기에 투자하는 건 아니야.’

그는 전시장 구석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그 이름의 주인공은 바로 아마존(Amazon)이었다.

아마존은 닷컴 기업 중 비교적 빠른 1994년에 세워진 회사로 2000년대 초반 주당 금액이 1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아마존은 초대형 기업인데 어째서 저렇게 작은 부스를 차지하고 있는 걸까?’

그는 궁금증을 가지고 아마존 부스에 접근하려 했다.

그 순간 검은 손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킴, 아마존은 둘러보지 않는 게 좋아.”

고개를 돌리니 오클랜드의 슈퍼루키 호세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세.”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나도 루키라고.”

“하긴, 그렇지. 그런데 왜 아마존은 안 된다는 거야?”

호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킴,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

“그렇지. 난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바로 미국에 왔으니까.”

“역시 그래서 미국 사정에 어두운 거였어.”

김민은 자신의 상식이 어둡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국 사정에 어둡다니. 9.11 테러도 반쯤은 내가 막았는데…….’

호세가 김민을 향해 말했다.

“아마존은 닷컴 버블의 살아 있는 증거라고.”

“닷컴 버블은 나도 알아. 그런데 아마존이 그 증거라고?”

“아마존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이라며 대단한 뭔가가 있는 듯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그래서 107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가 7달러까지 떨어졌어. 10%도 안 되게 주가 총액이 쪼그라든 거라고. 저런 기업에 누가 투자를 하겠어.”

김민은 호세의 설명을 듣곤 그가 다르게 보였다.

‘힘만 센 강타자라고 생각했는데 경제 쪽으로 빠삭하군.’

호세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마존에 투자하는 건 돈을 버리는 길이야. 나하고 같이 페스트로이에 투자하는 게 어때?”

“페스트로이?”

“인터넷 상거래를 주도할 회사야.”

김민은 미간을 좁혔다.

‘17년 뒤에 아마존은 살아남지만, 페스트로이라는 회사는 들어 본 적도 없어.’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데?”

“그건 킴의 선입견이야. 미래를 위한 기술을 가진 회사라고.”

“얼마나 투자할 거야?”

“1만 달러(1,240만 원).”

예상보다 적은 금액에 김민이 미간을 좁혔다.

“미래를 위한 기술을 가진 회사라면서?”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킴도 투자하지 그래?”

“난 아마존에…….”

김민은 호세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을 선택하고자 했다.

‘구글이나 애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마존은 내가 17년 뒤에도 이름을 알 수 있던 회사야.’

호세가 다시 한번 그를 말렸다.

“킴, 내 말을 잘 들으라고, 지금 아마존에 투자하는 건 돈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나하고 같이…….”

김민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난 그래도 아마존에 투자하겠어.”

호세는 김민의 고집을 당해 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마운드에서는 그렇게 똑똑한 친구가 이곳에서는 영 아니군. 그래 얼마나 투자할 거야?”

“100만 달러(12억4천만 원).”

그의 한마디에 호세의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지져스!”

호세는 김민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승부구를 던졌다고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나오는 거야? 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호세가 따라붙으면서 김민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의 적극적인 행동에 주변 선수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저기 두 사람 말이야. 호세하고 킴 아니야?”

“흠, 맞는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걸까?”

“여기서까지 신인왕 타이틀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모양이군.”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후보는 모두 세 사람이었다.

이치로, 김민, 그리고 호세.

이치로는 투자 설명회가 필요 없다면서 참가를 하지 않았고, 김민과 호세는 참가를 했다.

“킴, 제발, 내가 부탁할 테니까. 아마존은 피해 줘.”

김민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호세, 그래도 가서 설명은 들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설명을 들어 볼 필요도 없다니까. 107달러가 7달러가 된 기업이야.”

텍사스의 루키 해리스가 다가와 호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킴이 아마존에 투자하려 한다고.”

“뭐? 닷컴 버블에?”

해리스 또한 김민을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킴, 7달러는 그래도 오른 금액이고. 아마존은 한때 6달러까지 떨어졌었다고, 아마존에 투자하려 한다면 그만두는 게 좋아.”

미래를 알고 있지 않았다면 김민도 이쯤에서 투자를 멈췄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김민은 아마존이 17년 뒤에도 살아남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얼마나 불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7달러보다는 나을 거야.’

그는 큰 수익을 바라기보다는 확실한 곳에 투자를 하고자 했다.

“호세, 해리스, 설명이라도 좀 들어 보자고, 그냥 지나치는 건 불쌍하잖아.”

호세가 허리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좋아. 그럼 설명을 들어 보고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투자를 취소하는 거야?”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그렇게 할게.”

호세는 김민이 아마존에 투자하려는 것이 정말로 안타까워 보였다.

“해리스, 킴이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말려야 해.”

해리스가 호세의 손을 잡으며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하자고.”

김민과 호세 그리고 해리스가 아마존 부스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잠시 뒤, 세 사람이 아마존 부스 앞에 나란히 섰다.

아메리칸 리그를 뒤흔든 신인왕 후보 두 명이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스 직원은 태연했다.

야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직원이라면 이런 태도를 취할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희 부스는 아마존 닷컴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대사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어조는 졸음이 올 정도로 느리고 낮았다.

김민은 직원의 한마디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아마존이 투자를 원하긴 하는 거야?’

“기업 설명을 좀 듣고 싶습니다.”

김민의 말에 옅은 갈색 머리를 한 직원이 팜플렛을 내밀었다.

“여기 저희 아마존 닷컴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팜플렛 말고, 직접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아, 그러신가요? 저희 아마존 닷컴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서점으로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김민은 직원의 불성실한 태도에 미간을 좁혔다.

‘아마존은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는 건가? 이런 기업이 어떻게 17년 뒤까지 살아남은 걸까?’

지금의 상황과 성의 없는 직원의 태도만 보면 아마존은 2, 3년 안에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기업이었다.

“107달러에서 6달러까지 주가가 떨어졌다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김민의 물음에 호세와 해리스가 얼어붙고 말았다.

‘아, 사고를 치고 말았어.’

‘킴, 그걸 직원 면전에서 이야기하면 어떻게 해.’

직원은 김민의 강속구에 움찔했다.

“그……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김민은 더 깊이 강속구를 찔러 넣었다.

“기업 가치가 10%로 줄어들었다면 그 기업은 망해 가는 것 아닐까요?”

직원은 김민의 공격에 태도가 바뀌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회사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망해 가는 기업이라니요. 저희 아마존이 적자가 난 것은 2000년 전후에 인수한 기업들이 수익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서점 자체는 아직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너가 잘못된 투자를 했다는 말인데 그런 기업에 어떻게 투자를 합니까?”

직원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아마존은 이대로 쓰러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부활할 겁니다.”

김민이 계속해서 직원을 몰아붙였다.

“오너를 바꾸기라도 할 겁니까?”

직원은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아마존은 구조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직원의 15%를 내보냈고, 방만한 부분은 모두 잘라낼 예정입니다.”

김민은 구조조정이라는 말에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원래 홍보팀이 아니었군요.”

그의 한마디에 직원이 당황하며 두 손을 내저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죠?”

“홍보팀 소속 직원이 그렇게 형편없는 태도를 취할 리가 없죠. 당신은 다른 곳에서 구조조정을 당해 이곳까지 내려오게 된 겁니다.”

호세와 해리스는 김민이 날카롭게 직원을 몰아붙이고 있지만, 어딘가 핀트가 어긋났다고 생각했다.

‘킴, 독심술을 쓰는 것까지는 좋은데 방향이 이상해.’

‘직원을 몰아붙여서 어떻게 하려는 걸까? 킴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승부욕을 불태우는군.’

아마존 부스 직원은 김민이 허를 찌르자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어, 어떻게 알았지. 내가 좌천을 당해 이곳까지 온 것을…….’

그녀는 원래 아마존의 경영팀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유치한 기업이 적자를 내자 그 책임을 지고 한직으로 물러난 것이었다.

“당신…… 메이저리그 선수라고 하더니, 누구의 사주를 받은 건가요?”

이때 해리스가 끼어들었다.

“킴은 누구의 사주를 받을만한 선수가 아닙니다. 그는 이번 시즌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타이틀 홀더라고요. 한마디로 메이저리그 슈퍼스타죠. 그런 선수가 누구의 사주를 받고 당신을 공격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녀는 해리스의 설명에 울 것 같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대체 왜 제게 이러는 거죠? 전 잘못한 것이 없어요.”

김민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잘못한 것이 없진 않습니다. 당신의 태도가 너무 불성실해서…… 그래서 이렇게 집중하고 만 겁니다.”

직원은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김민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과를 받으려고 여길 찾아온 것은 아니고. 아마존에 투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의 물음에 직원이 계약서를 내밀었다.

“여기 서명하시고 금액을 적어 넣으시면 됩니다.”

투자 계약서에 적힌 내용은 아마존 주식을 주당 7달러에 산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금액을 적으면 되는 겁니까?”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여기에 적으면 되는 거예요.”

김민이 금액을 적으려 하자 호세가 급히 손을 뻗었다.

“킴, 무슨 생각이야?”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호세가 눈을 크게 떴다.

“어디가 나쁘지 않다는 거야?”

“구조조정도 하고 있고, 인터넷 서점 자체는 적자가 아니라 흑자라고 하잖아.”

“그런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속으면 어떻게 해!”

“괜찮을 거야.”

김민은 미소를 지은 뒤 금액을 적어 넣었다.

해리스는 김민이 적은 금액을 보곤 경악했다.

“100만 달러! 킴, 미친 거야?”

투자 상한선을 끝까지 채운 금액.

해리스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김민이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

“해리스, 자네도 투자하라고 아마존은 나쁜 기업이 아니야.”

호세와 해리스는 더 이상 김민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틀렸어.”

“내 생각도 그래. 킴은 마운드에서는 천재지만 다른 면은 꽝이야.”

호세는 신이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신은 킴에게 야구 재능을 부여했지만, 다른 것은 주시지 않은 거야.’

그가 한숨을 내쉰 순간 김민이 투자 계약서에 사인했다.

“다 되었습니다.”

직원은 김민이 작성한 계약서를 읽고는 깜짝 놀랐다.

“100만 달러나 투자하신다고요?”

아마존을 망해가는 기업으로 언급한 것치고는 엄청난 투자금액이었다.

“더 투자할 수 있다면 더 할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게 한계더군요.”

김민은 현재 스폰서 계약과 유니폼 판매수익 그리고 콜업 보너스와 연봉을 합쳐 150만 달러 가까운 현금을 지니고 있었다.

‘할 수 있다면 다 투자하고 싶지만, 50만 달러는 남겨 두는 게 좋겠지.’

아마존 직원은 예상하지 못한 거금에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정말로 투자하시는 건가요?”

“정말입니다.”

그녀는 김민의 과감한 투자에 크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단 한 건으로 목표 금액을 채웠어. 어쩌면 본사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녀의 진심 어린 감사에도 김민은 시큰둥할 뿐이었다.

“제게 감사하기보다는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 주세요. 아까처럼 시큰둥하게 일하다가는 짤릴 테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김민이 이날 7달러(8,500원)에 산 주식은 2018년 1,500달러(162만 원)까지 상승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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