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투자 설명회 01
김민과 볼튼 그리고 록튼과 설리반은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킴, 무슨 바람이 분 거야?”
록튼은 김민이 훈련까지 빠지면서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것이 신기했다.
“무슨 바람이냐고? 선수 노조에서 신인 선수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거잖아. 당연히 참석해야지.”
설리반이 뒷좌석에서 말했다.
“난 킴이 세상에서 훈련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어.”
“훈련은 중요하지. 하지만 메이저리그 선수 이전에 훌륭한 사회인이 되지 못하면 곤란해.”
탬파베이 신인 4인방이 캘리포니아로 향하게 된 것은 김민의 비중이 컸다.
“클락과 그렉스가 쓸쓸해할 거야.”
“내가 보기에는 클락이 그렉스의 비위를 맞추느라 고생할 것 같아.”
“그게 아니지. 성격이 까칠한 건 클락이 더하다고. 오히려 그렉스 영감이 더 힘들걸?”
까칠한 클락과 느릿한 그렉스.
신인 선수들은 두 사람이 잘 맞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의외로 죽이 잘 맞았다.
“애송이들이 돈을 날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
“그럴 리가요? 요즘에는 선수 노조도 제법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렉스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투자 설명회는 사기꾼들이 순진한 선수들의 돈을 뜯어내는 사냥터야.”
“예전에는 그랬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제가 3년 전에 갔을 때만 해도 설명회 전에 오리엔테이션이 있었습니다.”
“응, 그런 것도 있었어?”
“그냥 설명회에 나갔다가는 다들 지갑을 탈탈 털릴 테니까요.”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루키를 위한 투자 설명회’.
선수 노조는 클락의 말대로 투자 설명회에 앞서 경제 상식이 부족한 루키 선수들을 상대로 오리엔테이션에 들어갔다.
첫날은 세금에 관한 것이었다.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등록된 선수는 리그 룰에 따른 최저연봉을 받는다고 해도 법이 정한 최고 세율을 적용받게 된다. 한마디로 너희들은 법이 인정한 고소득자인 것이다.”
선수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인물은 메이저리그 11년 차인 케빈이었다.
케빈은 경제학부 출신이었기 때문에 선수 노조에서 세금과 경제 상식에 밝았다.
“에이전트를 통해 들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금이라는 것은 연방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정해지는 것으로 주세와 지방세를 포함한다. LA에서 뛰는 선수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자네들이 실제로 받는 돈이 연봉의 44%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뛰고 있는 주에 따라 실제 수령금액이 달라졌다.
LA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주세가 높기로 유명했다.
덕분에 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 프로 선수들은 100만 달러(12억4천만 원)의 연봉을 받아도 세금과 에이전트비 그리고 선수 노조 납입금을 제외하고, 44만 달러(5억4천5백만 원)만을 수령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금액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10년 이상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면 그 금액은 적은 것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연봉 협상을 할 때는 자신이 뛰고 있는 주의 세금 체계를 확실히 알 필요가 있다.”
세금에 관한 것은 대부분 에이전트가 책임지지만 그렇지 않은 에이전트도 있었다.
케빈이 목소리를 높인 것은 에이전트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더라도 선수가 기본적인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민을 비롯한 네 선수는 케빈의 설명에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투자 설명회라고 해서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군.”
“난 주마다 세금이 이렇게 많이 차이 나는 줄 몰랐어.”
“텍사스는 주세가 면세라. 그럼 에이로드는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받고 있는 거야?”
훗날 에이로드는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는데 주세의 변화만으로도 100만 달러(12억 4천만 원) 이상 손해를 보게 되었다.
“세금을 줄이는 방법으로 기부를 예로 드는 이들이 있는데 사실 기부는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행하는 것이지 돈을 아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기부로 절약되는 금액보다 그냥 세금을 내고 남기는 돈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네가 돈을 좋아한다면 기부하지 말고 그냥 세금을 내면 된다는 뜻이다.”
메이저리그 루키들은 케빈의 수업을 들은 뒤 표정이 바뀌었다.
“세금이라는 게 무서운 것이었어.”
“결국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네.”
“세금은 세금이니까.”
둘째 날은 메이저리그 연금과 건강보험에 관한 강연이 이어졌다.
이날 강의를 맡은 사람 역시 케빈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연금을 받는다는 사실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연금을 몇 세부터 받는지는 모르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오늘 나는 그것을 알려 주고자 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뛰는 것만으로 메이저리그 연금에 가입되며, 단 하루를 뛴 것만으로도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연금을 받으려면 적어도 1년에 45일 이상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년, 즉 45일 이상 뛴 기록이 있는 선수라면 메이저리그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기본 자격을 갖추게 된다. 여기 있는 이들은 대부분 이 기본 자격을 갖췄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민과 함께 온 탬파베이 선수 중에는 오직 볼튼만이 이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김민과 설리반 그리고 록튼은 45일 이상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려 메이저리그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다.
“1년 차 기준으로 연금 수령 금액을 설명하겠다. 연금은 45세부터 받을 수 있는데 이때 연금을 수령하면 최대금액의 10%밖에 받을 수 없다. 그러니, 여유가 된다면 최대한 늦게 연금을 받는 것이 좋다. 1년 차를 충족한 선수는 60세 기준으로 1년에 3만 달러(3천7백만 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3만 달러라는 금액은 흡족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하고도 남는 돈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단 1년만 뛰어도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최소 금액을 알아봤으니, 이제는 최대 금액도 알고 싶을 것이다. 연금 최고액을 받는 선수들은 리그에서 10년 이상 뛴 베테랑들이다. 다들 10년 이상 뛰어 최고 대우를 받기를 희망한다.”
메이저리그에서 10년 이상 뛴 베테랑들은 60세 기준으로 1년에 30만 달러(3억 7천만 원)를 수령하게 된다.
이는 1년만 뛴 선수의 10배였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연금은 이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이는 메이저리그 연금이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은퇴하자마자 연금을 받는다는 건 거짓말이었군.”
록튼의 말에 김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45세까지 선수로 뛴 다음 연금을 신청하면 거짓말만은 아닐걸?”
“45세에 신청하는 선수가 어디 있어. 그리고 만에 하나 있다고 해도 10%밖에 못 받는데 신청할 리가 없잖아.”
메이저리그 연금은 노후를 위한 대비였기 때문에 60세를 채우고 신청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케빈의 강연이 계속 이어졌다.
“여기에 모인 이 중 45일을 채우지 못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 없다. 메이저리거는 단 하루만을 뛰어도 메이저리거다. 우리 선수 노조는 메이저리거로 인정받는 선수들을 위해 건강보험 시스템을 준비했다.”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 건강보험 시스템은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혜택이었다.
“단 하루만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도 선수는 물론 그 가족 또한 혜택을 받게 된다. 어떤 혜택이 주어지느냐고 묻는 선수에게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메이저리그 선수 협회에서 운영하는 건강보험은 단 20달러(25,000원)만으로도 1인실을 쓸 수 있다.”
미국에서 병원 1인실에 머문다는 것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에 가입된 선수의 가족들은 6인실 이하의 가격으로 1인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탁월한 혜택은 수술과 진료 그리고 처방에 모두 적용되었다.
메이저리그 출전 일수가 부족한 볼튼은 케빈의 설명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평생 건강보험의 보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단 말이 사실인가?”
“당연히 사실이지.”
루키를 위한 투자 설명회는 실제 생활과 연봉 협상에 유익한 내용들이 많았다.
3일째는 투자 설명회에 앞서 은행 예금과 국채 그리고 펀드의 수익률을 다루었다.
3일째 강사 역시 케빈이었다.
설리반이 그를 보며 말했다.
“또 케빈이네. 리그에서 케빈을 만나면 럭키 볼 하나씩은 던져 줘야 하는 것 아니야?”
설리반의 말을 들은 김민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설리반, 리그가 다르니 그런 걱정은 접어 두라고.”
4일째 강연 내용은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였다.
이날은 강사가 바뀌어 에인절스의 모네로가 연단에 섰다.
모네로는 9년 차 베테랑 플레이어로 베네수엘라 출신이었다.
“루키 친구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1년을 보낸 것을 축하한다.”
강연장에 모인 메이저리그 루키는 대략 50명 정도였다.
그들은 모네로의 한마디에 미소를 지었다.
“메이저리그에 선다는 것은 최고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은 앞으로 가장이 되어 자신의 가족을 책임지게 될 것이다.”
록튼은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부터 가족의 생활비를 일부 부양하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돈을 아껴 쓰라는 말이겠지.”
김민은 어느 정도 강연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돈을 쓰더라도 최소한은 남기라는 그런 강연일 테지.’
모네로가 계속해서 말했다.
“유복한 부모를 둔 선수들은 가족을 위해 쓰는 비용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많은 돈을 가족에게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못한 선택이다. 가족에게 많은 돈을 보내는 것은 그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그는 메이너리그 선수들의 생명이 짧으며, 그 기간 동안에 번 돈을 잘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할렘가 출신 중에는 대가족을 부양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나 이것은 절대 피해야 할 행동이다. 여러분의 연봉으로 얼마나 오래 그들을 부양할 수 있을 것 같나? 길어야 10년이다. 10년이 지나면? 여러분의 연봉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 이후 가족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가족들이 과거의 삶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가? 한 번 늘어난 소비는 쉽게 줄일 수 없다. 여러분의 가족들은 줄어든 소비에 불행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것을 해 줄 수 없는 여러분을 탓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불행의 시작일 뿐이다.”
모레노는 가족을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그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많은 돈을 가져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사업 투자도 조심해야 한다. 메이저리그 선수에게 사업은 여분의 투자가 되어야 하지, 미래를 담보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는 사업에 실패했다가 큰 손해를 본 선수 몇 명을 언급하면서 여러분도 언제든 이렇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는 사업 설명회에 앞서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주입시켰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해도 투자를 줄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부터 시작될 투자 설명회에 금액 제한을 걸어 두었다. 어떤 루키도 100만 달러(12억 4천만 원) 이상은 투자를 할 수 없을 것이다.”
100만 달러는 메이저리그 루키들이 받고 있는 최저 연봉의 3배였기 때문에 이를 넘겨 투자할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모네로는 강연 중간 투자를 유치하려는 사람들이 사기꾼이나 다름이 없다고 강조하곤 했다.
1시간 이상 이어진 모네로의 강연이 그 끝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유망한 회사들만을 가려 사업 설명회를 유치했습니다. 그러나 그 유망한 회사들도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신중하게 투자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정중한 어조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것으로 끝인가?”
“내일부터는 진짜 투자 설명회야.”
“난 4일 동안 돈을 아끼라는 말을 들었더니, 투자 설명회에 가는 것조차 꺼려진다.”
“흐, 그 정도인가?”
록튼과 볼튼은 투자에 대한 의욕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내일은 그냥 대충 둘러보는 것이 좋겠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난 플로리다로 돌아가면 은행에 들려 보려고.”
“연방 채권을 살 생각인가?”
“케빈과 모네로의 말을 들어보면 그게 가장 좋은 투자 같아.”
김민과 설리반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이곳에 처음 발을 내딛을 때와 달리 투자에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5일째.
메이저리그 루키들은 컨벤션센터 안에 마련된 대형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김민과 선수들은 정면에 붙어 있는 현수막을 보곤 혀를 찼다.
“‘메이저리그 루키들을 위한 투자 설명회’. 겨우 50명을 상대하는데 현수막이 너무 큰 것 아니야?”
“그러게 과한 지출 같은데?”
“사기꾼 스멜이 난다고.”
김민을 비롯한 4명의 선수는 어느새 자린고비가 되어 있었다.
“자, 들어가자고.”
투자 설명회에 참석한 기업들은 작은 부스를 만들고 그 부스를 중심으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투자를 유치하고자 했다.
가장 먼저 선수들의 눈에 들어온 기업은 야후였다.
“야후가 여기서까지 광고를 하는군.”
“하지만 야후는 조금 그래.”
“왜?”
“지고 있는 해라고.”
최고의 닷컴 기업으로 꼽혔던 야후, 그러나 2001년에 이미 야후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하긴 지고 있는 해에 투자할 필요는 없겠지.”
야후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이름을 알고 있지 않은 기업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