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소시민은 도전자를 비웃는다 04
“다음 타자는 2번 타자 클리어입니다.”
“클리어도 쉽지 않은 타자죠. 이번 시즌 벨라지오에게 1번 타자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2번 타순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어떤 팀에서도 테이블 세터로 활약할 수 있다는 클리어, 그도 커터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탁!
유격수에게 향하는 평범한 땅볼.
“유격수 유칼리스, 빠르게 공을 처리합니다!”
클리어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저 녀석…… 경기 초반과 전혀 다른 투수가 되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보스턴 더그아웃은 김민의 변신에 고민이 깊어졌다.
“한 게임 내에서 저렇게까지 변신할 수 있는 투수는 많지 않을 겁니다.”
“많지 않은 게 아니라 없다고 봐야겠지.”
초반에는 파워 피처, 후반에는 운영의 마술사.
보스턴 타자들은 두 명의 투수를 동시에 공략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호이스 감독의 물음에 수석 코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타자들에게 믿고 맡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그 게일이 말한 그 전략은 안 될까?”
“한 번 실패한 전략이 다시 통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보스턴 코칭 스탭이 고민하는 사이 발렌타인이 무너져 내렸다.
따악!
날카로운 타구가 2, 3루 사이를 꿰뚫었다.
“록튼의 적시타! 유칼리스가 그대로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옵니다!”
“발렌타인에게 이 이상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호이스 감독은 미간을 좁혔다.
“발렌타인까지 무너지다니…….”
그가 삼킨 마지막 말은 ‘오늘 경기는 힘들겠군.’이었다.
반헬 투수 코치가 호이스 감독에게 고개를 돌렸다.
“불펜에 페냐와 더들리가 대기 중입니다.”
페냐는 이기거나 근소한 차이로 지고 있을 때 투입되는 A클래스였고, 더들리는 근 점수 차이로 이기거나 질 때 투입되는 C클래스였다.
“페냐를 투입하도록 하지.”
페냐를 선택했다는 말은 오늘 경기를 버리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다.
반헬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곤 불펜에 페냐의 등판을 알렸다.
“페냐!”
“알겠습니다.”
호이스 감독은 굳은 얼굴로 마운드에 올랐다.
홈에서 열린 시즌 최종전을 포기하는 감독은 없었다.
“수고했네.”
호이스 감독이 발렌타인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았다.
“죄송합니다.”
“싱커가 좋았는데 아쉽군.”
마운드를 내려가는 발렌타인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는 시즌 마지막 경기를 자신의 손으로 망쳤다고 생각했다.
‘너무 싱커에 의지한 것이 화근이 되었어.’
싱커가 너무 좋아 그 비율을 높였던 것이 문제였다.
“보스턴의 다음 투수는 페냐입니다.”
“페냐, 이번 시즌 불펜에서 마당쇠 역할을 해 준 투수입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페냐는 보스턴이 경기를 잡고 싶을 때 내보내는 카드였다.
“스윙 스트라이크!”
97마일 패스트볼(156km)이 칼튼의 안쪽을 노렸다.
칼튼은 빠른 공에 혀를 내둘렀다.
‘발렌타인의 느릿한 공을 보다가 97마일 패스트볼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드는군.’
그는 배팅 타이밍을 앞으로 당겼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칼튼의 삼진에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였다.
“페냐!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급한 불을 끕니다!”
2아웃 주자 1루.
호이스 감독은 페냐가 다음 타자 카를로스를 깔끔하게 처리해 주길 원했다.
하나 페냐는 카를로스에게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맞고 말았다.
“2사 주자 1, 3루. 보스턴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것은 3번 타자 안데르센.
페냐는 안데르센과 어렵게 승부를 이어갔다.
“카운트 3-1, 투수에게 불리한 카운트입니다.”
호이스 감독이 반헬 코치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페냐 말이야. 슬라이더 제구가 안 되는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가?”
“몸이 덜 풀린 것 같습니다.”
“몸이?”
“불펜에서 몸을 먼저 풀었던 것은 페냐가 아니라 더들리였습니다.”
결국 안데르센은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2사 만루.
보스턴 팬들은 숨을 죽였다.
“어쩌다가 상황이 여기까지 왔지?”
“다음 타자는 그렉스야.”
“썩어도 준치라고 저 친구 위험해.”
호이스 감독 역시 보스턴 팬들과 같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그렉스는 좋지 않은데…….”
따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하얀 공이 그린몬스터를 때렸다.
“그렉스! 싹쓸이 2루타입니다! 주자 모두 홈에 들어옵니다.”
“모처럼 시원한 타구군요.”
호이스 감독은 모자를 벗은 뒤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최종전에서 이렇게까지 몰릴 줄이야.”
탬파베이 7:0 보스턴
스코어보드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보스턴은 충격이 적지 않을 겁니다.”
양키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부의 강팀.
그들은 오늘 경기 전까지 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게 된다면, 마무리가 좋지 못하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영봉패는 면해야 해.’
호이스 감독이 타격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대타를 준비해.”
그의 지시에 타격 코치가 눈을 크게 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보스턴이 자랑하는 괴물타자 라파엘의 타석이었다.
라파엘을 빼고 대체 누굴 대타로 넣는단 말인가?
타격 코치는 수행할 수 없는 지시라고 생각했다.
그의 물음에 호이스 감독이 대답했다.
“라파엘이 출루하면 바로 대타를 쓸 거야.”
슈퍼스타 라파엘이 아닌 다음 타자를 교체한다.
얼핏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았다.
하나 타격 코치는 이번에도 순순히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감독님, 그란델을 빼고 대타란 말입니까?”
호이스 감독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란델은 오른손 아닌가? 킴은 왼손에 약하단 말일세. 어서 왼손 대타를 준비하게.”
김민은 이번 시즌 좌타자에게 0.223, 우타자에게 0.201의 피안타율을 기록했다.
타격 코치는 2푼 정도의 차이는 무시할만한 수치라고 생각했다.
“감독님, 킴은 좌타자에게 약하지 않습니다. 전 그란델로 그냥 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란델은 두 번이나 기회를 살리지 못했어.”
“다른 타자를 넣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감독과 코치가 대타 기용을 두고 목소리를 높인 순간이었다.
파앙!
높이 떠오른 공이 그대로 중견수 글러브에 들어가고 말았다.
“킴! 라파엘을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냅니다.”
“이번 승부구는 스플리터였군요. 킴, 6회 말부터 스플리터와 커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견수 플라이 아웃.
호이스 감독과 타격 코치의 언쟁은 이제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다.
“라파엘까지 막히고 말다니…….”
“평균자책점 1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군요.”
보스턴은 라파엘 말고도 30홈런을 넘긴 타자가 2명이나 더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바로 4번 타자 그란델이었다.
“4번 타자 그란델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그란델 이번 시즌 32홈런에 101타점을 기록했습니다. 라파엘과 함께 보스턴 타선을 이끈 쌍두마차입니다.”
“라파엘을 넘으면 그란델. 투수들로서는 괴로운 일이겠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지금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중계진은 김민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투수라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김민은 배터 박스에 선 그란델을 보며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어렵게 라파엘을 잡았더니, 이번에는 그란델인가? 보스턴 타선의 깊이는 정말 깊군.’
그는 로진백을 만진 뒤 그립을 고쳐 잡았다.
- 초구는 커브.
슉!
높은 곳에서 스트라이크존으로 떨어지는 커브.
김민은 그란델이 이 공을 쳐 주길 원했지만, 그란델은 그대로 흘려보냈다.
“스트라이크!”
카운트 0-1.
김민은 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란델은 빠른 공을 노리고 있어.’
그가 노리고 있는 공은 패스트볼 또는 스플리터로 보였다.
‘패스트볼을 노리는 척 하고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나 커터를 노릴 수도 있긴 한데…… 어느 쪽인지는 이번 공을 보면 알겠지.’
김민은 왼쪽 어깨에 오른손 식지를 가져갔다.
- 하이 패스트볼.
록튼은 김민의 사인을 받곤 조용히 미트를 내밀이었다.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는 타자에게 하이 패스트볼, 조금 위험할 수도 있지만, 킴이라면 괜찮을 거야.’
슉!
빠른 공이 타자 눈높이로 날아왔다.
‘빠른 공? 하지만 높다.’
그란델은 이번에도 배트를 내지 않았다.
“카운트 1-1, 그란델 높은 코스를 잘 골랐습니다.”
김민은 시즌 30홈런은 아무나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파워, 선구안, 그리고 스윙,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30홈런은 나오지 않아.’
그란델은 파워와 선구안 그리고 스윙이 모두 갖춰진 타자였다.
그는 라파엘이 입단하기 전까지 보스턴을 대표하는 거포였다.
“킴, 와인드업에 들어갔습니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코너를 향해 밀려들었다.
‘패스트볼인가?’
처음 타석에 들어올 때부터 그란델은 낮은 코스의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원하던 코스에 패스트볼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배트를 낼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해.’
그의 배트를 멈추게 만든 것은 낮은 코스에서 떨어지는 스플리터였다.
‘녀석은 내가 원하는 코스에 순순히 패스트볼을 던져 주는 녀석이 아니야. 이번 공은 스플리터일 가능성이 커.’
그러나 공은 떨어지지 않고 길게 뻗었다.
파앙!
포수 미트에 들어온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스트라이크!”
그란델은 배트를 내린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노린 공도 못 치다니, 한심하군.”
그는 두 눈을 감고는 생각을 정리했다.
‘카운트 1-2, 녀석은 분명 승부구를 던진다. 그 공은 아마도…… 스플리터.’
그란델은 이번에도 스플리터를 생각했다.
‘그래, 녀석이 스플리터를 던진다면 그걸 때리면 되는 거야.’
스플리터는 의외로 장타가 많이 나오는 구종이었다.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그린몬스터를 넘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스플리터, 오직 하나만 본다!’
김민은 그란델이 세 번 모두 배트를 내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란델은 느린 커브와 빠른 패스트볼을 모두 버렸어. 그렇다는 것은 특정 구종이 아니라 코스를 노리고 있다는 말인가?’
그가 지금까지 던지지 않았던 코스는 안쪽뿐이었다.
‘안쪽은 위험해.’
김민은 승부구로 바깥쪽 공을 선택했다.
슉!
빠른 공이 다시 한번 바깥쪽으로 들어왔다.
‘바깥쪽?’
그란델은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휘둘렀다.
‘스플리터라면 홈런이다!’
따악!
강하게 맞은 공이 높이 떠올랐다.
“하얀 공이 높이 떠올랐습니다!”
“중견수 머레이가 자리를 잡는군요.”
그란델의 타구는 높이 떠오르긴 했지만, 각도가 좋지 않았다.
김민은 타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배트 위에 빗겨 맞았군. 내 공이 스플리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가 던진 승부구는 스플리터가 아니라 94마일(151km)짜리 라이징 패스트볼이었다.
그란델은 1루로 걸어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킴, 4번 타자를 상대로 도망치지 않고 정면승부라. 에이스다운 투구군.’
그는 김민에게 에이스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머레이 공을 잡았습니다. 이것으로 투 아웃입니다!”
호이스 감독은 그란델의 아웃에 주먹을 꾹 쥐었다.
“남은 것은 닉뿐인가?”
그러나 닉은 김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주심의 멋진 제스처와 함께 닉이 배터 박스에서 물러났다.
“킴! 오늘 경기 4번째 삼진입니다!”
“낮게 깔리는 체인지업이 정말 위력적이었습니다.”
반헬 투수 코치는 당할 수가 없다는 듯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렸다.
“그 상황에서 체인지업이라니, 닉은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거야.”
운영의 마술사는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6, 7, 8번 타자를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그리고 운명의 9회.
김민은 더 이상 마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5분 전.
탬파베이 더그아웃.
“완봉에 도전하겠나?”
“마지막은 볼튼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킴은 좀처럼 완봉에 욕심을 내지 않는군.”
“욕심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시즌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볼튼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블렛소 코치는 김민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그 경험이 필요한 것은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러나 김민은 메이저리그에서 20년을 뛴 베테랑처럼 볼튼에게 그 마지막 순간을 양보했다.
“알겠네. 볼튼을 마운드에 올리도록 하지.”
9회 말.
탬파베이 불펜.
“볼튼, 출전이야.”
“알겠습니다.”
볼튼은 고개를 끄덕이곤 불펜을 나왔다.
“킴에 이어 마운드를 이어받은 것은 볼튼입니다.”
“볼튼은 98마일(158km)까지 던지는 파이어볼러입니다. 보스턴 타선을 상대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군요.”
9회 말 마지막 공격.
보스턴의 타순은 9, 1, 2번으로 연결되었다.
“타순은 나쁘지 않아.”
“주자가 나간다면 충분히 점수를 뽑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역전은 무리겠지?”
“아마도.”
보스턴 팬들은 역전보다는 영봉패를 면하는 것에 더 관심을 두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보스턴 팬들은 전광판에 표시된 98마일(158km)에 낮게 신음했다.
“너무 빠른데?”
“이거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 것 아니야?”
투구 습관을 고친 볼튼은 보스턴 타자들에게 악몽을 선사했다.
“볼튼, 연속 삼진입니다!”
“오늘 벨라지오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군요.”
남은 타자는 이제 단 한 명.
볼튼은 굳은 얼굴로 투구에 들어갔다.
‘여기서 경기를 끝낸다.’
슉!
빠른 공이 그대로 포수 미트에 꽂혔다.
파앙!
“스트라이크!”
앞으로 두 개.
두 개만 더 던지면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볼튼은 호흡을 조절하고는 다시 한번 패스트볼을 뿌렸다.
슉!
빠른 공이 거침없이 포수 미트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따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보스턴! 9회 말! 기회를 만듭니다.”
2번 타자 클리어의 출루로 2사 1루의 기회가 만들어졌다.
타석에 들어선 것은 3번 타자 라파엘.
볼튼과 록튼 배터리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여기서 라파엘이군.’
‘신은 드라마를 원하는 건가? 라파엘을 앞에 두고 안타라니…….’
김민은 이것이 야구라고 생각했다.
“볼튼, 침착해. 여기서 라파엘을 잡으면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설 수 있어.”
블렛소 투수 코치가 김민의 말을 받았다.
“시즌 마지막 경기, 그것도 9회 말 2아웃. 여기서 라파엘을 잡아낸다면 빅게임을 잡아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겠지.”
볼튼은 신중하게 초구를 던졌다.
슉! 따악!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2층 관중석에 떨어졌다.
“초대형 파울입니다!”
“펜웨이 파크 2층 관중석에 떨어지는 타구는 오랜만이군요.”
볼튼은 카운트를 잡았지만 라파엘의 괴력에 움찔했다.
‘제대로 맞으면 그린몬스터고 뭐고 없겠는걸?’
록튼 역시 바짝 긴장했다.
‘볼튼의 제구는 킴처럼 정확하지 않아. 내가 잘 이끌어줘야 해.’
두 번째 공은 바깥쪽 스플리터.
라파엘은 이 공을 당겨 1루 더그아웃 쪽으로 날아가는 파울을 만들어버렸다.
“라파엘, 총알 같은 타구입니다!”
“무시무시한 파워군요.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당겼습니다.”
볼튼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긴장하고 있는 건가?’
그는 발을 풀곤 모자를 고쳐 썼다.
‘긴장하면 실수를 더 할 뿐이야. 마지막은 자신 있게 가자!’
볼튼은 마지막 순간 직접 사인을 냈다.
- 바깥쪽 패스트볼.
록튼은 투수의 사인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미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투수가 편하다면 사인을 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슉!
빠른 공이 바깥쪽을 노렸다.
‘패스트볼? 스플리터?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라파엘은 이번에도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강한 타격음.
모두의 시선이 총알 같은 타구에 쏠렸다.
“1루수 그렉스! 타구를 잡아냅니다!”
라파엘의 타구를 막아 낸 것은 이번에도 수비 시프트였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시즌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합니다!”
“보스턴에게는 악몽이었지만, 탬파베이에게는 완벽한 경기였습니다.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경기력입니다.”
김민은 볼튼이 마지막 카운트를 잡아내자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박수를 쳤다.
“나이스! 볼튼! 바로 그거야!”
블렛소 코치는 볼튼이 라파엘에게 강한 타구를 내주긴 했지만, 집중해서 마지막 공을 던졌다는 사실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볼튼 좋은 피칭이었다.”
그는 다음 시즌에도 볼튼을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