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소시민은 도전자를 비웃는다 01
보스턴은 탬파베이를 상대로 연승 행진을 달렸지만,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가을 야구에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을 야구에 초대받지 못한 명문구단.
분위기가 좋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양키 녀석들은 이번 가을도 쉬지 않는군.”
“악의 제국이니까.”
“쳇, 그 녀석들…… 과하게 강하단 말이지.”
“맞아,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녀석들처럼 강하다니까.”
보스턴 선수들은 시즌 100승을 넘긴 오클랜드와 시애틀보다 90승도 하지 못한 뉴욕 양키스가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아메리칸 리그 팬들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는 다르다.
그리고 양키스의 플레이오프는 더욱 다르다.
“최강의 1선발 로캣맨과 악의 제국.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맞아, 이번 시즌도 월드시리즈 우승은 양키스일걸?”
“내셔널 리그에서 어떤 상대가 올라와도?”
“그래, 어떤 상대가 올라와도 우승은 양키스야. 애초에 그렇게 정해진 시즌이라고.”
2001년 내셔널 리그에서 돋보이는 강팀은 93승의 휴스턴과 92승의 애리조나 그리고 전통의 강호 애틀란타였다.
그러나 아메리칸 리그 팬들은 세 팀 중 어느 팀이 올라와도 양키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한두 경기라면 몰라도 4선승제에서 양키스를 꺾을 팀은 없어.”
“애리조나의 원투 펀치라면 2승 정도는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딱 그 정도겠지.”
탬파베이에게 가을 야구나 양키스의 강함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탈꼴찌에서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즌이었다.
“우리 팀이 3위라니 믿겨지지 않는군.”
“오늘 져도 순위는 바뀌지 않는 거지?”
“그래.”
“우리 뒤로 두 팀이나 있는 거군.”
탬파베이 더그아웃 분위기는 2연패를 당한 팀답지 않게 밝았다.
“다음 시즌은 어떻게 될까?”
“다음 시즌도 3위겠지. 대규모 투자 없이 보스턴이나 양키를 넘는 건 불가능하니까.”
“빈스가 지갑을 열지는 않겠지?”
“아마도.”
베테랑 선수들은 구단주 빈스가 지갑을 여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빈스는 최종전을 지켜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보게 홀먼, 우리 팀이 가을 야구를 한다면 구단 가치가 얼마나 올라갈까?”
“1년이라면 큰 가치 상승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3년 연속 가을 야구를 할 수 있다면 상당히 올라갈 겁니다.”
“그 ‘상당히’가 어느 수준인가?”
“지금보다 적어도 2배는 올라가지 않을까요?”
3년 연속 가을 야구.
어떤 팀에게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가 그것을 해낸다면 그것이 바로 기적이었다.
“흐흠, 2배라.”
3년을 투자해서 2배의 가치로 구단을 처분할 수 있다면 크게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양키스와 레드삭스가 버티고 있는 동부지구에서 가을 야구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을 야구, 할 수 있다면 좋겠군.”
빈스는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 * *
팡! 팡!
미트에 꽂힌 공이 좋은 소리를 냈다.
“킴, 시즌 마지막 경기라서 힘을 내는 건가?”
김민이 공을 넘겨받으며 대답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가 아니라. 허세 때문이야.”
“허세?”
“설리반에게 큰소리를 쳤거든. 내 투구를 보고 배우라고 말이야.”
록튼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킴의 투구는 보는 것 자체로 도움이 될 텐데, 그게 왜 허세야?”
“오늘은 평소하고 다르게 던지려고 하거든.”
“평소하고 다르게?”
“설리반이 던질 수 있는 3가지 구종만을 쓸 거야.”
록튼이 눈을 크게 떴다.
“뭐?”
“패스트볼, 커브, 그리고 슬라이더야.”
록튼이 목소리를 높였다.
“킴! 무모해!”
“그래, 무모하지. 그래서 허세라고 한 거야.”
“킴, 정신 차려. 오늘 상대는 레드삭스라고. 게다가 오늘 경기에는 타이틀이 걸려 있어.”
김민이 연습 투구를 하며 말을 받았다.
“알고 있어.”
록튼은 김민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3가지 구종으로 라파엘이 버티는 보스턴 타선을 누르는 것은 무리야. 자칫 잘못하면 평균자책점이 3점대로 올라갈 거야.”
시즌 최종전.
김민은 6이닝 2실점만 해도 2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한 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점수를 내준다면 평균자책점이 3점대 초반까지 상승했다.
김민에게 2점대 평균자책점 유지는 아주 중요했다.
그 이유는 그가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다투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종전을 앞둔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1. 갈리아(시애틀) 2.97
2. 김민(탬파베이) 2.98
3. 무시나(뉴욕) 3.01
4. 마린(오클랜드) 3.04
5. 슐러(시카고) 3.11
현재 평균자책점 1위 갈리아는 정규시즌을 모두 마친 상황.
김민이 최종전에서 빼어난 피칭을 보여 준다면 타이틀 주인공은 충분히 바뀔 수 있었다.
구단주 빈스가 멀리 펜웨이파크까지 날아온 것도 김민의 평균자책점 타이틀 수상 때문이었다.
만약 김민이 눈부신 호투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따낸다면, 경기 직후 그에게 구단 MVP상을 수여할 예정이었다.
“킴, 무리하지 마. 오늘 잘못 던지면 5위까지 순위가 내려갈 수 있다고.”
“알고 있어. 하지만 남자가 한 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김민은 단순히 호기 때문에 3가지 구종을 고집하는 게 아니었다.
‘오늘 투구는 내 이번 시즌을 갈무리하는 투구가 될 거야.’
그는 이번 시즌 탬파베이에 수비 시프트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김민은 오늘 그 수비 시프트를 한계까지 끌어올릴 작정이었다.
“괜찮아. 할 수 있을 거야.”
록튼은 미간을 좁혔지만, 더는 김민을 말리지 않았다.
‘킴에게 뭔가 생각이 있는 모양인데. 무모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그는 다시 한번 김민을 믿기로 했다.
* * *
시즌 최종전을 맞아 경기 전 이벤트가 열렸다.
김민과 록튼은 연습 투구를 마치곤 불펜에서 그 이벤트를 지켜보았다.
“빅마켓답게 이벤트도 화려하군.”
“우리 구단도 시즌 마지막 경기 이벤트는 괜찮았어.”
“그렇긴 했지.”
이벤트가 끝나자 바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플레이볼!”
주심의 외침과 함께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2001 시즌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선발 투수는 발렌타인입니다.”
“발렌타인과 킴은 시즌 초반 한 번 맞붙은 전적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 승자는 킴이었습니다.”
“오늘도 승자는 킴이 될까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킴은 현재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운영의 마술사라 불리는 킴이지만, 오늘만큼은 전력을 다해 공을 던질 겁니다.”
발렌타인은 시즌 최종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힘껏 공을 던졌다.
팡!
“스트라이크!”
반면 탬파베이 타자들은 기합이 조금 빠져 있는 것 같았다.
김민은 그 모습을 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아직 탬파베이 선수들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이기고 끝내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르는 것 같군.”
가을 야구에 초대받지 못한 팀은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가 그 해의 마지막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패한다면, 다음 승리까지 반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김민은 그 기다림이 싫었다.
탁!
빗맞은 타구가 2루수 글러브에 들어갔다.
“2루수 가볍게 1루에 송구합니다!”
팡!
“아웃! 발렌타인의 스타트가 좋습니다.”
1회 초 탬파베이 타선은 예상보다 무기력했다.
단 한 명의 주자도 출루하지 못한 채 세 타자가 나란히 땅볼로 물러나고 말았다.
“발렌타인! 1회 초를 삼자범퇴로 마무리합니다.”
“오늘 싱커가 아주 좋아 보입니다.”
발렌타인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다섯 번째 선발로 시즌 성적은 7승 7패 평균자책점 4.99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그의 싱커는 우승 청부사 케빈 브라운 못지않았다.
“킴, 나갈 시간이야.”
“오케이.”
김민은 글러브를 끼곤 록튼과 함께 마운드로 향했다.
“우리 구세주가 마운드에 오르는군.”
김민을 구세주라 부른 사람은 바로 구단주 빈스였다. 그는 여름 무렵부터 김민을 최고의 선수 또는 구세주라 부르곤 했다.
“오늘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두면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딸 수 있는 건가?”
“완봉승이 아닌 7이닝 1실점 정도만 해 줘도 타이틀을 따낼 수 있을 겁니다.”
7이닝 1실점.
상대가 동부지구의 강자 레드삭스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보너스는 얼마나 줘야 하지?”
“계약서에는 타이틀 획득에 관한 보너스 내용이 없습니다. 대략 1만 달러(1,240만 원) 전후에서 책정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빈스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곤란해! 우리 구세주에게 겨우 1만 달러라니, 10만 달러(1억2천만 원)로 올리게.”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메이저리그 선수에게 10만 달러의 보너스는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빈스에게 10만 달러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킴, 첫 번째 타자 벨라지오를 맞이합니다.”
벨라지오는 노라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이후 레드삭스의 테이블 세터를 맡고 있었다.
‘1번 타자 벨라지오. 이번 시즌 천재 타자 노라의 빈자리를 잘 메워줬지만, 레드삭스의 간판이 될 수 있는 재능은 아니야.’
김민은 상대의 자세와 위치를 확인한 뒤, 초구를 강하게 뿌렸다.
슉!
벨라지오는 김민의 초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가운데?’
그가 알고 있는 김민은 좌우 코너 그리고 상하 로케이션을 최대로 이용하는 투수였다.
‘뭔가 있어.’
벨라지오는 배트를 내는 대신 초구를 지켜보기로 했다.
파앙!
미트에 들어온 공이 좋은 울림을 냈다.
“스트라이크!”
벨라지오는 김민의 초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떠오르는 공이군. 구위를 믿고 가운데 던진 건가?’
블렛소 투수 코치는 전광판에 기록된 숫자를 보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95마일(153km)? 킴이 한 번도 기록하지 못한 구속이야. 그게 아니라면 펜웨이 파크 스피드건이 트로피카나 필드보다 조금 높게 나오는 건가?”
록튼 역시 전광판 구속을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95마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최고 구속을 경신한다고? 이런 게 가능한 건가?’
해설자마저 김민의 95마일에 목소리를 높였다.
“95마일입니다! 이번 시즌 최고 구속이군요! 킴, 확실히 타이틀에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민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95마일. 스피드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군.’
그의 이번 투구는 제구를 생각하지 않고 한가운데를 향해 강하게 지른 공이었다.
‘2000년대 후반 구위론이란 투구 이론이 있었지. 제구보다는 강한 구위가 먼저, 볼넷을 내줘도 좋으니, 있는 힘을 다해 공을 던진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어. 늘어나는 투구수만 뺀다면 말이지.’
김민은 구위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구수 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비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투구수를 줄일 수 있을 거야.’
오늘 그의 컨셉은 구위론과 적극적인 수비 시프트였다.
파앙!
두 번째 공 역시 미트를 강하게 때렸다.
“스윙 스트라이크!”
벨라지오는 두 번째 공이 패스트볼이라는 것을 알고도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제길…… 공이 계속 떠오르고 있어.’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4마일(151km).
“킴, 빠른 공으로 발라지오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킴의 구위가 상당합니다.”
보스턴 코칭 스탭은 김민의 과감한 투구에 미간을 좁혔다.
“시즌 최종전을 양보하지 않을 생각이군.”
“평균자책점 타이틀이 걸려 있으니까요. 저라도 저렇게 던질 겁니다.”
노라와 페드로는 양복을 입은 채 관중석에게 김민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알던 킴이 아니야.”
“동감이야. 저건 마치 로캣맨처럼 공을 던지는군.”
“내기 어때?”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기?”
“오늘 ‘킴이 해낸다’에 걸겠어.”
“평균자책점 타이틀 말인가?”
노라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해내지 못한다’에 걸어야겠군.”
“그렇게 되나?”
“그래야 내기가 성립되지.”
노라가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리며 말했다.
“페드로, 나하고 같은 생각이라면 무리해서 내기할 필요 없어.”
“아니, 난 반대야. 킴의 강한 투구는 역효과를 내고 말 거야.”
“역효과라고?”
“킴은 운영과 심리전으로 타자를 요리하는 투수야. 저렇게 던진다면 몇 회 던지지 못할 거야.”
노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자네 말에도 일리가 있군. 하지만 난 킴을 믿겠어.”
“좋아. 이걸로 내기 성립이야.”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벨라지오가 헛스윙 한 세 번째 공은 슬라이더였다.
“저게 슬라이더야 커터야?”
“혹시 저게 바로 고속 슬라이더 아니야?”
설리반은 김민의 과감한 피칭을 보곤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패스트볼 두 개, 그리고 슬라이더. 이 투구 패턴은 킴의 것이 아니야.”
그는 김민이 자신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투구 패턴을 바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던지라는 건가? 하지만 킴처럼 과감하게 던지면 맞을 거야.’
공에 대한 자신감.
설리반은 그것이 떨어졌다.
“킴, 2번 타자 클리어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클리어는 1번 타자 벨라지오가 삼진으로 물러나는 동안 김민의 공을 집중해서 지켜보았다.
‘떠오르는 공으로 카운트를 잡고 슬라이더로 마무리했어.’
그는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췄다.
그러나 김민이 초구로 던진 것은 커브였다.
‘이…… 이런…….’
클리어는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 배트를 멈추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보스턴 팬들은 클리어의 어정쩡한 스윙에 고개를 내저었다.
“벨라지오보다 못하군.”
“그러게 말이야. 차라리 강하게 휘두르던가? 저게 뭐야?”
클리어는 역시 김민은 김민이라고 생각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날아오는 커브…… 역시 대단해.’
그는 배트를 짧게 잡은 뒤 배터 박스에 바짝 붙었다.
‘안쪽 패스트볼은 어쩔 수 없지만, 나머지는 어떻게든 때려내겠어.’
김민은 그의 마음을 읽은 듯 안쪽으로 빠른 공을 던졌다.
슉!
빠르게 들어온 공이 그대로 포수 미트에 꽂혔다.
파앙!
“스트라이크!”
김민은 두 개의 공으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표정이 밝지 못했다.
‘땅볼을 유도하기 위해 던진 공인데 하나도 치지 않는군.’
그는 상대가 자신의 공을 컨택해 주길 바랐지만, 높아진 구위는 타자의 컨택을 허락하지 않았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떠오르는 공에 삼진.
클리어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미쳤어. 킴이 95마일(153km)이라니.”
그는 김민이 리그 수준급의 패스트볼을 던지기 시작하면 막을 타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아니면 킴을 막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라파엘. 이번 시즌 40홈런과 3할을 동시에 넘겼습니다. 보스턴의 본즈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타자죠.”
라파엘은 록튼을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저 친구 오늘 왜 저리 달아오른 거야?”
록튼이 미트를 두드리며 말했다.
“평균자책점 타이틀이 걸려 있잖아. 라파엘 웬만하면 양보해 달라고.”
라파엘이 배트를 세우며 말했다.
“오늘 양보하면 다음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 하이라이트 필름에 계속 나오게 될걸?”
그는 평균자책점 타이틀에 희생양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슉!
초구는 바깥쪽 빠른 공이었다.
라파엘은 기다리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탁!
빗맞은 공이 백네트에 꽂혔다.
“파울!”
라파엘은 초구가 스트라이크가 아님을 깨닫곤 미간을 좁혔다.
‘하나가 아니라 하나 반 빠지는 공이었어. 킴답지 않게 꽤 빠졌어. 장타를 의식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제대로 제구가 되지 않고 있는 건가?’
그는 공을 하나 더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공은 가운데서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
“라파엘 두 번째 공을 참아냅니다. 카운트 1-1입니다.”
라파엘은 하나를 지켜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 모두 볼. 설마 볼넷으로 거르겠다는 뜻은 아니겠지?’
김민은 로진백을 만지곤 공을 강하게 잡았다.
‘이번 공으로 잡는다.’
그는 안쪽을 향해 강하게 공을 던졌다.
슉!
빠른 공이 바람을 가르며 타자 안쪽을 노렸다.
‘안쪽으로 잘 제구된 좋은 공이다.’
라파엘은 두 손에 힘을 주며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내겐 통하지 않는다!’
따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타구가 총알처럼 날아갔다.
‘1루 라인을 꿰뚫는 타구, 이건 2루타야.’
라파엘은 맞는 순간 2루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1루를 향해 뛰지 못한 채 멈춰서고 말았다.
“아! 아깝습니다! 라파엘! 총알 같은 타구가 그렉스의 가슴에 안깁니다.”
라파엘은 자신의 공을 잡아낸 그렉스를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언제 저기 와 있었던 거야?”
1루 주자가 없는 상황.
1루수는 1루 베이스에서 왼쪽으로 떨어진 지점에서 수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렉스는 1루 베이스 바로 위에서 라파엘의 타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이스 감독은 라파엘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보곤 고개를 흔들었다.
“라파엘이 미끼를 물고 말았군.”
그는 김민이 이번 공을 던지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