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볼튼 마운드에 서다 03
마운드 위에 선 볼튼은 가장 먼저 더그아웃을 살폈다.
‘티처는 없는 건가?’
김민은 오늘 선발 투수였기 때문에 라커룸에서 아이싱을 받고 있었다.
볼튼은 다시 고개를 홈플레이트로 돌렸다.
‘티처가 없다고 해도 흔들려선 안 돼.’
오늘 포수는 티노가 아닌 록튼이었다.
‘록튼, 티처와 배터리를 이루고 있는 포수. 그라면 믿을 수 있어.’
노련미에서는 티노가 앞섰지만, 시프트 전개와 도루저지에 관해서는 록튼이 한 수 위였다.
“플레이!”
주심의 사인과 함께 볼티모어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볼티모어 더그아웃은 볼튼을 보자마자 표정이 밝아졌다.
“탬파베이에서 풋내기를 또 내보냈군요.”
“팁을 읽혔다는 걸 깨닫지 못한 건가?”
“루키 투수가 첫 등판에 얻어맞는 건 경기 외적 요소가 많으니까요. 아마 탬파베이는 그런 부분에 주목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토미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잘만하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군.”
수석 코치도 역전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점수 차이가 좀 많이 나지만, 탬파베이에서 저 친구를 계속 고집한다면 역전에 발판을 만드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볼티모어는 큰 점수 차이로 지고 있었지만, 볼튼의 등판 덕분에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9회 초, 첫 타자는 4번 타자 헌터입니다.”
“주자는 없지만 볼튼에게 버거운 타자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장타력은 언제든 20홈런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헌터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코칭 스탭으로부터 볼튼의 투구 습관을 들었다.
- 녀석의 글러브를 주목해. 글러브가 오므려지면 스플리터 펴지면 패스트볼이야.
헌터는 배터 박스 한가운데 섰다.
‘풋내기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떤 공이 올지 알고 있다면 절대 지지 않아.’
록튼은 그의 위치를 보고 그가 특정한 공을 노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수 차이도 많이 나고, 아마 편한 마음으로 타석에 섰겠지. 볼 배합을 짜기에는 나도 이쪽이 더 편해.’
그는 볼튼에게 초구 사인을 냈다.
- 바깥쪽 패스트볼.
타자에게서 먼 바깥쪽 코스는 신인 투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었다.
‘초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면, 자신을 가지고 다음 공을 던질 수 있을 거야.’
볼튼은 사인을 받은 다음 그립을 쥐면서 글러브를 오므렸다.
헌터는 그 동작을 놓치지 않았다.
‘글러브를 오므렸군. 그렇다면 스플리터인가?’
볼튼의 스플리터는 빠른 구속을 가지고 있었지만, 낙차는 김민의 그것과 달리 크지 않았다.
이는 빠른 구속을 유지하기 위해서 스플리터에 많은 회전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헌터는 낙차가 적은 스플리터라면 스윙 궤적을 살짝 조정하는 것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퍼 스윙이 아닌 레벨 스윙으로도 때려낼 수 있다.’
그는 히팅 포인트를 조절하곤 초구를 기다렸다.
‘자, 와라!’
“볼튼,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볼튼은 다리를 중간까지 올리는 미들 킥으로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투구 동작은 마이너리그에서 김민과 함께 만든 것이었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노렸다.
‘빨라! 이게 정말 스플리터인가?’
헌터는 스플리터 타이밍에 배트를 휘둘렀지만, 허공을 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은 97마일(156km).
‘역시 스플리터가 아니었어.’
히팅 포인트와 타이밍.
두 가지 모두 맞지 않았다.
헌터는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설마 풋내기가 그 짧은 시간에 팁을 고친 건 아니겠지?’
다시 배트를 세우자 볼튼이 글러브를 오므렸다.
‘또 오므렸어.’
그는 이번에야말로 스플리터라고 생각했다.
슉!
‘패스트볼보다 확실히 느리다!’
그러나 이번도 배트는 크게 헛돌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헌터는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간 공을 보곤 혀를 찼다.
‘슬라이더잖아!’
4번 타자의 연속 헛스윙.
토미 감독이 타격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것이…….”
타격 코치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수석 코치가 대신 답을 내놓았다.
“탬파베이 코칭 스탭이 저 친구의 팁을 고친 것 같습니다.”
토미 감독이 낮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으음…… 그 말은 더 이상 9회에 기회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인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헌터가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트로피카나 필드를 채운 팬들은 볼튼의 첫 삼진에 박수를 보냈다.
“나이스 피칭!”
“KKK!”
“오늘은 실점없이 끝내자!”
볼튼은 첫 번째 삼진을 잡곤 오른손을 불끈 쥐었다.
“삼진이다!”
록튼은 그의 구위라면 충분히 로버트와 클로저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패스트볼이 훌륭해. 스플리터와 슬라이더도 실전에 사용할 정도는 되는 것 같고, 구위만 놓고 보면 로버트보다 나아.’
볼튼이 상대할 두 번째 타자는 버드맨.
버드맨은 볼튼의 투구 습관을 꿰뚫어 본 타자로 그에게 치명상을 입힌 선수였다.
‘헌터를 삼진으로 잡았다고 해서 나도 삼진으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난 그렇게 호락호락한 타자가 아니니까.’
그는 배트를 세우곤 볼튼을 노려보았다.
‘자, 어서 글러브를 오므려 보라고.’
볼튼은 기다렸다는 듯 글러브를 오므렸다.
‘후후후…… 스플리터군.’
버드맨은 헌터가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아직 자신이 알아낸 팁이 알려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볼튼이 오른발을 들면서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슉!
빠른 공이 바깥쪽을 노렸다.
‘빨라 보이지만, 스플리터야. 어퍼 스윙로 밀어 올린다.’
그러나 배트가 공에 닿으려는 순간 공이 길게 뻗으면서 포수 미트를 때렸다.
파앙!
“스윙 스트라이크!”
주심의 경쾌한 제스처와 함께 카운트가 올라갔다.
“볼튼, 97마일(156km) 패스트볼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습니다.”
“오늘은 지난 경기와 달리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군요.”
해설인 밥은 탬파베이의 클로저 로버트를 언급하면서 볼튼이 로버트의 뒤를 이을 수 있는 클로저 후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공도 글러브를 오므린 상태에서 패스트볼이 들어왔다.
“스윙 스트라이크!”
버드맨은 자신이 알아낸 팁이 읽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큭…… 탬파베이 코칭 스탭을 내가 얕보고 말았군. 그 짧은 사이에 팁을 고치다니.’
그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좋아. 팁을 빨리 고친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메이저리그 클린업은 루키에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버드맨은 실력으로도 충분히 볼튼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집중력을 최대로 발휘한다면 그는 볼튼의 공을 외야로 쳐 낼 수 있었다.
‘다시 바깥쪽이냐?’
버드맨은 패스트볼에 배팅 타이밍을 맞췄다.
‘그대로 넘긴다!’
그러나 볼튼의 승부구는 스플리터였다.
탁!
배트 끝에 맞은 공이 홈플레이트 앞에서 튀어 올랐다.
“1루!”
록튼의 콜 사인에 1루수 그렉스가 달려 나왔다.
“맡겨 줘!”
그렉스는 공을 잡은 다음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는 볼튼에게 토스했다.
‘젊은 친구 서두르다가 공을 놓치면 곤란해.’
그는 볼튼이 공을 잡은 뒤 베이스를 터치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이윽고 볼튼의 발이 1루 베이스를 터치했다.
“아웃!”
그렉스는 그제야 긴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좋았어. 젊은 친구! 수비는 그렇게 하는 거야!”
1루심의 아웃 판정과 함께 팬들이 볼튼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나이스 플레이!”
“볼튼, 좋은 수비였다!”
“46번! 마지막 타자야! 잘 마무리하라고!”
중계진 역시 다음 타자가 오늘의 마지막 타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9회 초 2사에 6번 타자 릴리아노가 들어섭니다.”
“볼튼, 여기서 릴리아노를 잡으면, 오늘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타자를 출루시키지 않고 막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렇습니다. 여기서 주자를 내보내게 되면 코칭 스탭은 투수에게 믿음을 줄 수가 없게 됩니다.”
록튼은 김민에게 릴리아노의 약점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릴리아노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안쪽에 집착하는 친구지.’
그는 철저히 바깥쪽으로 공을 유도했다.
초구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
릴리아노는 폼이 좋지 않은 지 이 공에도 배트가 나오고 말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김민은 어느새 더그아웃으로 나와 볼튼의 마지막 피칭을 보고 있었다.
“록튼의 리드에 여유가 있어.”
배터리 코치도 김민의 말에 동의했다.
“록튼은 2, 3년만 더 경험을 쌓으면 훌륭한 포수가 될 거야.”
볼티모어의 토미 감독은 전세가 크게 기울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게 야구라지만, 여기서 뭔가를 기대하긴 힘들겠군.”
그의 말이 끝난 순간 두 번째 카운트가 올라갔다.
“스트라이크!”
흘려보낸 공이 그대로 존을 통과했다.
“카운트 0-2, 경기 종료까지 앞으로 공 하나가 남았습니다!”
“맞습니다! 공 하나면 오늘 경기가 마무리될 수 있습니다.”
“록튼,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슉!
빠른 공이 타자 눈높이로 날아왔다.
평소의 릴리아노였다면 바로 배트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감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다.
‘이건 타자를 유인하려는 볼이야. 그냥 보내는 것이 좋겠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한 공이 그대로 포수 미트를 때렸다.
파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릴리아노는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중계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볼튼! 삼진으로 경기를 마무리합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어제 패배를 깔끔하게 갚아 주면서 위닝 시리즈를 달성합니다.”
볼튼은 경기를 마무리 지은 뒤 마운드에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해냈어!”
록튼은 마스크를 벗은 뒤 볼튼에게 다가갔다.
“처음으로 경기를 마무리한 공이야. 세이브는 아니지만 기념으로 가져가.”
볼튼은 그의 마음 씀씀이에 고개를 숙였다.
“고, 고마워.”
록튼이 미소를 지으며 마스크를 벗었다.
“다음에는 세이브 공을 챙겨 주도록 하지.”
두 사람이 마운드를 내려오자 김민이 박수로 그들을 환영했다.
“볼튼, 최고의 피칭이었어.”
록튼은 김민의 칭찬에 고개를 흔들었다.
“킴, 칭찬이 지나치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최고는 아니고 나이스 정도라고 생각해.”
“알겠어. 록튼, 오늘 볼튼의 피칭은…… 최고였어.”
김민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면서 애제자의 부활을 축하했다.
승리한 탬파베이의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반면 패한 볼티모어는 탈꼴찌라는 마지막 희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토미 감독이 짐을 챙기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다음 시즌, 나는 이 자리에 없을 것 같군.”
그는 자신의 해임을 예견하고 있었다.
* * *
정규 시즌을 마무리하는 9월.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는 힘을 냈다.
그러나 보스턴 레드삭스는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텍사스를 스윕하곤 탬파베이와 승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9월 26일.
두 팀은 최종전에 들어갔다.
“이번 시리즈는 정규시즌 162경기를 마무리하는 시리즈입니다.”
“보스턴과 탬파베이의 순위는 이미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습니다.”
“보스턴의 경우 탬파베이가 스윕을 한다고 해도 2위가 확정이군요.”
보스턴 레드삭스는 양키스에 이어 동부지구 2위를 확정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와일드카드 싸움에서는 오클랜드에 크게 밀리고 있었다.
이번 마지막 시리즈를 스윕한다고 해도 그들은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없었다.
“오늘 보스턴의 선발 투수는 너클볼 투수인 필더입니다.”
“필더, 이번 시즌도 꾸준합니다. 8승 12패, 평균자책점 4.15입니다.”
승보다 패가 더 많았지만, 평균자책점 자체는 준수했다.
게다가 필더는 선발만이 아니라 불펜 아르바이트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승패와 평균자책점만을 가지고 가치를 논할 수 없었다.
“필더를 상대하는 탬파베이의 투수는 터커입니다.”
터커는 팀의 5선발로서 성실히 로테이션을 지켜주고 있었다.
“탬파베이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마지막 시리즈는 보스턴 원정이었다.
“칼튼! 힘내라!”
원정 팬들이 곳곳에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칼튼은 필더의 너클볼에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필더, 시작이 좋습니다!”
필더의 너클볼은 이날따라 더욱 현란하게 움직였다.
탬파베이 타선은 너클볼을 공략하지 못하고 경기 후반까지 0점으로 묶여 있었다.
이 0점의 벽을 깬 것은 머레이의 2루타였다.
“탬파베이 드디어 득점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미 점수 차가 큽니다.”
보스턴 7:1 탬파베이
터커는 6회까지 4실점으로 버텼지만, 에두아르도가 보스턴 타선을 막아 내지 못하면서 경기가 크게 기울고 말았다.
결국 이날 경기는 보스턴의 대승으로 끝나고 말았다.
“보스턴, 시즌 후반 더욱 힘을 내고 있습니다. 시리즈 1차전에서 탬파베이를 상대로 대승을 거둡니다.”
“내일 경기도 보스턴의 우세가 점쳐집니다.”
“보스턴의 기세가 높기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내일 탬파베이의 선발 투수는 설리반입니다. 설리반은 두 번째 선발 등판으로 아직 선발에 익숙한 선수가 아닙니다.”
다음 날도 보스턴의 우세였다.
설리반은 1회 초부터 흔들리면서 보스턴에 점수를 내주고 말았다.
“보스턴, 무서운 화력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라파엘의 배트가 루키 투수의 커리어를 산산조각 내고 있습니다.”
보스턴의 괴물 타자 라파엘은 설리반을 상대로 3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김민은 난타당한 뒤 들어오는 설리반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구위는 나쁘지 않은데 자신감, 아니 자존감마저 잃고 말았어.’
처음 한 점을 내주었을 때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추가점을 내주면서 설리반의 자신감과 제구가 급격히 무너지고 말았다.
“설리반, 수고했어.”
동료들의 격려에 설리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수고했다는 말을 받을 자격조차 없어.’
마이너리그 시절 당당했던 설리반은 어디에도 없었다.
김민은 설리반을 따라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자존감을 되살리는 게 급선무야.’
“설리반.”
그의 부름에 설리반이 고개를 돌렸다.
“킴?”
“오늘 네가 왜 무너졌다고 생각해?”
설리반이 글러브를 내려놓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실력이 부족하니까.”
김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 실력이 아니라 마음이 부족했다고 생각해.”
“그게 무슨 말이야?”
“타자와 싸워 이기려는 마음. 한마디로 투쟁심이 부족한 투수는 마운드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마운드는 바로 전쟁터라고.”
설리반은 김민의 지적에 미간을 좁혔다.
“네가 뛰어난 투수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 말이 진실이 되는 건 아니야. 난 타자를 상대로 이기고자 했어.”
김민은 설리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설리반, 난 뛰어난 투수가 아니라 좋은 성적을 내는 투수야. 구위는 네가 나보다 훨씬 뛰어날걸? 난 95마일(153km)도 던지지 못하니까. 그럼에도 내가 너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내는 것은 내 투쟁심이 너보다 강하기 때문이야.”
설리반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내 마음속에서 야수라도 찾을 셈이야?”
“내일 네가 내 투구를 봐 줬으면 좋겠어.”
“킴의 투구를?”
“보면 알 거야. 너와 나의 차이를.”
김민은 말을 마치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또 나쁜 버릇이 나오고 말았군. 좌절하거나 고민하는 투수를 보면 그냥 넘길 수가 없다니.’
그는 특히 젊은 투수들에게 약했다.
이는 코치 시절부터 이어진 특징 중에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