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볼튼 마운드에 서다 02
탬파베이 지역 방송사 중계진은 볼튼의 삼진에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볼튼! 광속구로 볼티모어 타선을 잠재웁니다!”
“탬파베이에 또 한 명의 영건이 탄생하는군요.”
블렛소 투수 코치 역시 볼튼의 투구를 칭찬했다.
“루키가 거침없이 공을 던지는군요.”
“코너가 제대로 된 친구를 콜업했군.”
이반 감독 역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볼튼은 다음 타자 헌터마저 내야 땅볼로 잡아내곤 기세를 올렸다.
“볼튼! 나이스 피칭!”
“잘한다!”
볼튼은 홈팬들의 응원에 더욱 기세가 올랐다.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5번 타자 버드맨의 룩킹 삼진.
볼티모어 더그아웃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이너리그 애송이에게 룩킹 삼진이라니, 버드맨은 뭐하고 있는 거야.”
감독의 힐난에 타격 코치가 고개를 숙였다.
“원하는 공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원하는 공이 아니라니, 패스트볼과 스플리터, 투 피치잖아.”
타격 코치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버드맨에게 다가갔다.
“버드, 마지막 공 말이야. 왜 보고만 있었나?”
버드맨이 글러브를 잡으며 대답했다.
“제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 확인해 본 겁니다.”
“뭔가 발견한 건가?”
“팁을 찾았습니다.”
팁은 투수의 투구 습관을 말했다.
“그게 정말인가?”
“다음 공격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볼티모어가 볼튼의 팁을 찾아냈다면 이는 상당한 위협이었다.
6회 말.
탬파베이의 공격은 예상과 달리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스코어는 여전히 5-3 볼티모어의 리드.
“1점만 더 따라가면 될 것 같은데 쉽지 않군.”
“볼티모어 중계진도 영건으로 많이 교체된 것 같습니다.”
현재 볼티모어의 마운드를 지키는 선수는 9월 2일 콜업된 스트라우더였다.
“볼튼만큼은 아니지만 저 친구도 상당히 좋아.”
이반 감독과 블렛소 투수 코치가 두 팀의 영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바이슨 수석 코치가 어두운 얼굴로 다가왔다.
“감독님,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이반 감독은 내용을 예상했는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부르스가 시즌 아웃될 것 같습니다.”
부르스는 김민과 함께 팀의 기둥이었던 선수였다. 그가 빠진다면 2위 경쟁은 물론 현재 순위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필 이런 때에…….”
부르스 본인에게도 이번 부상은 큰 아쉬움이었다.
김민에게 가려져 있었지만, 그는 이번 시즌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 있었다.
“대체 자원을 생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반 감독이 블렛소 코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누가 부르스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현재 선발 후보로는 설리반과 안드레 그리고 다닐로프가 있었다.
“팀에 기여한 바로는 다닐로프가 제일입니다. 하지만 스터프만 보면 설리반이 더 위입니다.”
“안드레는?”
“지난 경기 투구를 보셨지 않습니까?”
“겨우 두 타자를 상대한 것뿐이잖아. 자네의 평가를 듣고 싶네.”
블렛소 코치는 아직 선발로 나설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드레는 스프링 캠프에서 더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이반 감독은 블렛소 투수 코치가 설리반을 강력하게 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리반은 홀먼 단장도 좋아하는 선수지. 이번에는 블렛소의 손을 들어 주는 게 좋겠군.’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부르스의 빈자리에는 설리반을 넣도록 해. 그리고 설리반이 맡고 있던 롱릴리프는 안드레가 대신하고.”
코칭 스탭이 부르스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를 상의하는 동안 볼튼이 연속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볼티모어, 볼튼을 상대로 연속 안타를 때려내고 있습니다.”
티노는 볼튼의 제구가 흔들리는 것이 아님에도 연속 안타가 나오자 타임을 걸었다.
“타임!”
마운드에 오른 티노가 볼튼에게 말했다.
“볼튼, 네 공은 여전히 좋아. 그러니까 흔들리지 말고 던져.”
“알겠습니다.”
티노는 볼튼의 구위라면 충분히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속 안타가 나온 것은 운이 없었기 때문이야. 집중하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그러나 김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하기에는 타자들의 타이밍이 너무 좋아.’
그는 급히 불펜을 나와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타자들의 타이밍이 좋을 때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게스 히팅이었다.
게스 히팅은 투수의 공을 예상하고 배트를 휘두르는 타격법이었다.
이 경우 정확한 타이밍으로 공을 타격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볼티모어의 두 타자는 게스 히팅에 익숙한 타자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김민은 두 번째를 유력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볼티모어가 볼 배합이나 사인을 읽은 거야.”
상대가 어떤 공을 던질지 알고 있다면, 정확한 타이밍에 배트를 낼 수 있었다.
덜컥.
김민은 불펜에서 클럽 하우스로 이동했다.
“킴, 어딜 가는 거야?”
“더그아웃.”
그는 아이싱을 받고 있는 에두아르드를 지나쳐 더그아웃에 들어섰다.
바로 그 순간 큰 타구가 포물선을 그리며 우중간에 떨어졌다.
“도널드가 트로피카나 필드의 가장 깊은 곳을 넘깁니다.”
“볼튼, 아깝습니다. 단숨에 점수 차가 5점으로 벌어지는군요.”
볼티모어의 3점 홈런.
볼튼은 천국과 지옥을 하루 만에 오가는 기분이었다.
“저게 넘어가다니…….”
그가 던진 공은 바깥쪽으로 잘 제구된 94마일(151km) 패스트볼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이 공은 홈런을 맞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티노 역시 도널드의 홈런이 믿기지 않았다.
‘도널드는 기다렸다는 듯 공을 퍼 올렸어. 그 말은 어떤 공이 들어올지 알고 있었다는 뜻이야.’
그는 홈구장에서 상대에게 사인을 읽혔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할 수 있는 건 내 볼 배합뿐인가?’
미간을 좁힌 순간 블렛소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아쉽지만 여기까지 던져야 할 것 같군.”
“죄송합니다.”
“타자가 잘 친 것뿐이야. 자네가 죄송할 건 없어.”
블렛소 코치는 볼튼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다닐로프에게 마운드를 맡겼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볼튼.
그의 표정은 어둠, 그 자체였다.
“볼튼, 수고했어.”
볼튼에게 수건을 내민 선수는 바로 김민이었다.
“티처…….”
“괜찮아. 볼튼 잘못이 아니야.”
볼튼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말했다.
“메이저리그는 역시 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제 패스트볼이 통하지 않았어요.”
김민이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메이저리그는 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긴 해. 하지만 방금 일은 그들의 괴력과는 무관해.”
그는 조금 더 빨리 더그아웃으로 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블렛소 투수 코치가 김민에게 다가와 물었다.
“조금 전까지 볼튼의 구위는 나쁘지 않았어. 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볼튼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볼티모어가 사인을 훔쳤다는 건가?”
김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여긴 저희 홈구장입니다. 원정팀인 볼티모어가 사인을 훔칠 수는 없었겠죠.”
“흠, 그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볼 배합 정도인가?”
블렛소 투수 코치는 볼튼의 구종이 패스트볼과 스플리터로 단순하기 때문에 스플리터 타이밍을 읽히면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티노의 볼 배합을 읽었다면 다닐로프도 고전할 겁니다.”
김민은 다닐로프의 투구를 보면 티노의 볼 배합이 읽혔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딱!
빗맞은 타구가 중견수 머리 위에 떴다.
히팅 포인트는 좋았지만, 타이밍은 엉망이었다.
이는 볼 배합을 읽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일단 첫 타자는 빗나갔군요.”
블렛소 투수 코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 번째를 보도록 하지.”
두 번째 타자 역시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2루수 땅볼! 칼튼, 빠르게 처리합니다!”
김민은 다닐로프의 투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티노의 볼 배합이 읽힌 게 아닙니다.”
“그럼?”
“볼튼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볼튼은 수건을 떨어뜨렸다.
“티처…….”
“괜찮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닐 거야.”
그는 떨어진 수건을 주워 주면서 볼튼에게 말했다.
* * *
탬파베이와 볼티모어의 1차전은 볼티모어의 완승으로 끝났다.
최종 스코어는 다음과 같았다.
탬파베이 5:11 볼티모어
탬파베이는 이날 패배로 인해 2위 보스턴과의 승차가 3게임으로 벌어지고 말았다.
“2위 추격은 무리군.”
“이젠 4위 토론토의 추격을 조심해야 해.”
토론토와 탬파베이의 승차는 이제 1게임에 불과했다.
“난 승차가 좁혀진 것보다 부르스가 무너진 게 더 크다고 봐.”
“그러고 보니 부르스는 어떻게 됐지?”
“아직 구단의 공식 발표가 없어.”
경기 종료 1시간 뒤.
탬파베이 구단은 부르스의 시즌 아웃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탬파베이 팬들은 에이스의 느닷없는 부상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부르스가 시즌 아웃이라고? 그럴 리가?”
“부르스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2위 추격은 이제 끝이잖아.”
“2위 추격이 문제가 아니야. 당장 다음 시즌에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어. 지금은 9월이라고.”
회복까지 반년 이상 걸리는 부상이라면 다음 시즌 스프링 캠프는 물론 개막전도 장담할 수 없었다.
“부르스가 무너지면 킴 혼자 남는 건가?”
“최근 렉터도 좋지 않은데. 부르스까지 시즌 아웃이면 정말 킴 혼자 남는 거야.”
팬들이 부르스와 탬파베이의 미래에 대해 걱정할 때쯤 김민은 볼튼과 함께 영상 자료실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오늘 경기를 계속해서 돌려보며 미간을 좁혔다.
“분명 우리가 찾지 못한 뭔가가 있어.”
화면에 재생되고 있는 것은 볼튼의 투구였다.
팡!
묵직한 울림과 함께 98마일(158km) 패스트볼이 미트를 때렸다.
“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볼튼의 말에 김민이 도넛을 들었다.
“볼튼은 모르는 게 당연해. 잘못된 것을 알아내는 것은 내 몫이야.”
그는 투수 코치 시절로 돌아간 듯 화면을 주시했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린 것은 구장 스탭이었다.
“언제 퇴근하실 겁니까?”
김민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퇴근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이요?”
“문제를 알아야 하니까요.”
“그럼 여기 문서에 서명을 좀 해 주십시오. 누가 남아 있는지 기록해야 해서.”
김민은 스탭으로부터 파일을 받아 빈공간에 자신의 이름과 볼튼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이거면 된 겁니까?”
“감사합니다.”
스탭이 문을 닫으려는 순간 김민의 눈에 비스듬히 달린 스탭의 이름표가 들어왔다.
‘급하게 달았기 때문에 비스듬하게 달린 건가? 아니야. 이건 왼손으로 이름표를 달았기 때문이야.’
“왼손잡이입니까?”
김민의 물음에 스탭이 멈칫했다.
“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뇨, 혹시나 해서.”
“그렇군요.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탁!
김민은 스탭이 문을 닫고 나가자 화면 한쪽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것은 공을 잡고 있지 않은 볼튼의 왼손이었다.
‘볼티모어가 주목한 것은 공을 잡고 있는 오른손이 아니었어. 그들은 아마 공을 잡고 있지 않은 왼손에 주목했을 거야.’
잠시 뒤, 김민이 오른손을 꾹 쥐었다.
‘찾았어.’
그가 볼튼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볼튼, 역시 팁이 있었어.”
“팁이라면 제 투구폼에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단 말씀입니까?”
김민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투구폼이 아니야. 그립을 잡는 순간 팁이 있었어.”
“네? 투구폼이 아니라 준비 동작에 버릇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볼튼은 화면을 집중했다.
아무리 보아도 다른 부분이 없는 것 같았다.
공을 글러브에 넣고 그립을 잡고 그대로 투구.
“잘 모르겠습니다.”
“두 화면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알게 될 거야.”
김민은 화면 두 개에 각각 다른 투구 영상을 담았다. 그리곤 동시에 화면을 정지시키곤 볼튼에게 말했다.
“글러브를 주목해.”
“글러브 말입니까?”
“스플리터를 던질 때는 패스트볼을 던질 때보다 글러브가 더 오므려져 있어. 이건 왜지?”
“공을 강하게 쥐기 위해서…….”
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볼티모어 녀석들은 네가 그립을 쥘 때 글러브를 오므리면 스플리터, 펴면 패스트볼이라고 본 거야.”
볼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런 약점이 있었다니…….”
“투구 습관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야.”
“하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심하지 않아 랜디 존슨이나 다나카 같은 투수들도 볼튼과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볼티모어의 5번 타자 버드맨은 투수의 팁을 꿰뚫어 보는데 능했다.
그는 볼튼의 투구를 준비 동작 그리고 투구폼으로 나누어 관찰했고, 결국 팁을 발견했던 것이었다.
“그럼 앞으로 그립을 쥘 때 글러브를 펴야 하는 겁니까?”
볼튼의 물음에 김민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모든 공을 던질 때 글러브를 오므리도록 해.”
그는 글러브를 펴는 쪽보다 오므리는 편이 그립을 강하게 잡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별 일 아니라 다행이야.”
“티처, 감사합니다. 티처가 아니었다면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갈 뻔했습니다.”
“어떻게 올라온 메이저리그인데 쉽게 돌아갈 수 있겠어. 다시는 마이너리그로 돌아가지 않다고 생각해.”
김민은 볼튼과 함께 영상자료실을 나와 관리 스탭에게 말했다.
“퇴근합니다.”
“빨리 찾으셨군요.”
“덕분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스탭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김민은 자세한 것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 * *
볼티모어와 탬파베이의 3차전.
탬파베이는 렉터가 등판한 2차전마저 패했기 때문에 김민이 등판하는 3차전을 반드시 잡아야 했다.
“킴! 너만 믿는다!”
“독심술사의 능력을 보여 줘!”
토미 감독은 김민마저 잡아서 스윕을 완성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탬파베이가 언제부터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고, 5경기 차이면 충분히 역전할 수 있어.”
오늘 경기에서 볼티모어가 이기면 두 팀의 승차는 4경기까지 줄어들었다.
남은 경기가 많지 않았지만, 역전이 불가능한 차이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김민은 김민이었다.
그는 1회 삼자범퇴를 시작으로 4회까지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고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킴! 대단한 투구입니다. 볼티모어 타선이 완전히 식어 버렸습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타선이 된 볼티모어입니다. 탬파베이의 독심술사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토미 감독은 껌을 잘근잘근 씹을 뿐이었다.
“94마일(151km) 패스트볼이 뭐가 대단하다고 헛스윙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4회 말.
탬파베이가 3점을 뽑아내며 김민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었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지난 두 경기와 다르게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킴이 등판한 날은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볼튼은 불펜에서 김민의 완벽한 투구를 지켜보았다.
“티처는 정말 대단해. 상대에게 버릇을 읽힌 나와 달리 타자들의 버릇을 모두 알고 있는 듯 공을 던지고 있어.”
김민의 호투는 계속되었다.
“킴, 7회까지 단 두 명의 주자만을 내보냈을 뿐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죠. 팀의 연패를 끊어 주는 게 진짜 에이스다라고. 킴은 그 말에 정확히 일치하는 투수입니다.”
8회 초.
김민은 세 타자를 공 6개로 끝내버렸다.
볼티모어 타자들은 김민의 신들린 투구에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저 친구, 만날 때마다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수비 시프트도 부르스 때와 달리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한숨이 절로 나온다니까요.”
“커브는 어떻고? 패스트볼이나 커터를 예상하면 바로 낙차 큰 커브가 들어온다니까.”
그들은 오늘이 김민을 만나는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김민은 블렛소 투수 코치에게 다음 투수를 추천했다.
“스코어 6-0 여기서 클로저를 내보낼 필요는 없겠죠.”
“로버트가 아니라면 누굴 올려야 한다는 건가?”
“볼튼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블렛소 투수 코치가 멈칫했다.
“볼튼이라고?”
볼튼은 지난 경기에서 1이닝 3실점으로 무너진 바 있었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김민이 해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감독님께 추천은 해 보지. 하지만 이번 출전은 볼튼에게 독이 될 수도 있어.”
그는 오늘도 난타를 당한다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다를 겁니다.”
“만에 하나 대량 실점한다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게 되겠죠.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블렛소 투수 코치는 이반 감독에게 볼튼의 등판을 건의했다.
“볼튼?”
“킴이 원하고 있습니다.”
이반 감독은 킴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음…… 킴이 추천한다면, 좋아. 다시 한번 볼튼에게 기회를 주게.”
블렛소 투수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곤 인터폰을 들었다.
“볼튼을 준비시키게.”